김정일위원장은
통일혁명의 영도자


6.15공동선언은
조국통일의 이정표

    제53호          주체91(2002)년 8월 1일(목)                                                      백두청년회 산하 백두산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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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와 더불어≫

김정일위원장의 명언

일이란 사람들이 하는 것이며 혁명은 대중이 하는 것이다


김일성주석의 회고록에서

길림

실화로 본 김정일위원장

가야금주법이 완성되기까지


오늘의 새 소식

구국의 소리

한나라당패당의 반통일적 악담질 (7/30)

상반기 학생운동을 점검해본다(7/29-30)

민족공멸을 추구하는 세력들 (7/31)

조선중앙통신 (7/30)

노동신문, 여성들 역할 더욱 높일 것 강조
    [ 오전 | 오후 ]

헤로인밀매사건 우리해군과 결부시키려는
    것은 적대적인 도발행위 [ 오전 | 오후 ]

미국의 ≪2004-2009년 국방계획지침≫
    작성을 비난 [ 오전 | 오후 ]

오늘의 주요 기사

미군장갑차 압사사고 여중생 49재 열려
    (통일뉴스, 7/31)

여중생 49재, 대학생 1천여명 한양대 집회
    (오마이뉴스, 7/31)

두 여중생 49재 맞아 시청앞 추모집회
    (민중의소리, 7/31)

북-미, ≪짧지만 의미있는 만남≫
    (프레시안, 7/31)

이회창 처, 아들 병역면제 연루 주장 제기
    (프레시안, 7/31)

이명박, ≪미대사관 아파트≫ 입장 바꿔
    (오마이뉴스, 7/31)

경기도 각계 1200명, 한총련 이적규적 철회
    국가보안법 폐지 촉구 (오마이뉴스, 7/31)


백산칼럼

≪여명≫


우리는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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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음악

정세 초점

분노는 들불처럼 번진다...

≪미·군·나·가·라·!≫


   거리에 나가보았는가. 사람들에게 미군전차에 깔려 죽은 누이동생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는가. 그 처참한 사진을 보여 보았는가. 미군기지 앞 집회 대열에 서 보았는가.
   그러면 알 것이다. 분노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서명용지에, 모금함에, 그리고 이것 말고 더 할 것이 없느냐는 사람들의 눈빛에.
    이 불길로 양키들을 태워 버리자. 죽은 누이들, 먼저 간 억울한 죽음들, 그리고 거리의 들불들이 외친다. ≪미·군·나·가·라·!≫
 

국회의원들, 부시 공개사과 등 요구
    (통일뉴스, 7/9)

故 신효선, 심미선 네티즌 추모캠페인 열려
    (통일뉴스, 7/13)

살인미군 관련 시민특별수사대 발족
    (통일뉴스, 7/17)

민주노동당, 여중생사건 국조권 발동 촉구
    (통일뉴스, 7/18)

미군 여중생 사건 청소년 행동의 날
    (디지털말, 7/18)

7.20 경기북부지역 시민행동의 날
    (민중의 소리, 7/21)

한총련 10여명, 여중생 죽음 진상규명 요구
    미대사관 기습시위 (민중의소리, 7/24)

여중생 범대위, 농성선포 및  범국민행동
    지침 발표 (통일뉴스, 7/26)

미군 규탄 대열 동참한 시사만화작가들과
    국회의원 (오마이뉴스, 7/26)

여중생 범대위, 5차 범국민대회 열어
    (통일뉴스, 7/27)

여중생 사망사고, 해외에서도 시위 잇달아
    (통일뉴스, 7/29)

천주교, 여중생 사망사고 해결 촉구
    (통일뉴스, 7/29)

명동거리 밝힌 반미 여성들의 희망 찾기
    (오마이뉴스, 7/29)

한총련 19명, 미8군사령부 기습시위
    (민중의소리, 7/30)


주한미군 여중생 살인사건 대책위


http://www.antimigu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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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림

≪세기와 더불어≫ 제1권 3장 1절

길림은 중국의 한개 성소재지로서 봉천, 장춘, 할빈과 더불어 만주지방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의 하나였다.
   길림독군서에서는 장작림의 4촌동생 장작상이 우두머리노릇을 하였는데 그는 일본사람들의 말을 잘 듣지 않았다. 일본사람들이 누가 공산당원이고 누가 나쁜 사람이라고 고소하여도 그는 당신들은 상관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그들의 요구를 거절해버리군 하였다. 그가 이렇게 한 것은 그에게 무슨 정치적 견해가 있어서라기보다도 무식하고 자존심이 강하였기 때문이었다. 그의 이러한 특징이 혁명가들과 사회운동자들에게 유리한 조건을 지어주었다.
   만주지방으로 이주해온 조선사람들의 대부분이 또한 이 길림성에서 살고 있었다.
   이러한 사정으로 하여 일본군경들에게 쫓겨다니는 조선 독립운동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이 길림에 많이 모여들게 되었다. 그래서 이 도시는 자연히 조선사람들의 정치활동무대로 되었으며 그 중심지를 이루게 되었다. ≪동 3성에서의 배일의 책원지는 길림≫이라고 한 일본사람들의 평가가 우연한 것이 아니었다.
   길림은 1920년대 후반기 만주에서 조선민족주의운동의 기본세력이었던 정의부, 참의부, 신민부의 수뇌들의 집결처로 되어 있었다. 독립운동자들이 신문을 발간하고 학교를 세우는 일은 화전, 흥경, 룡정 같은데서 많이 하였지만 실지 그 수뇌들이 모여 활동한곳은 길림이었다.
   엠엘파, 화요파, 서상파와 같은 종파분자들이 제각기 자기파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하여 돌아치던 곳도 바로 길림이었다.
   공산주의운동자들가운데서도 내노라고 하는 명물들은 거의다 이 길림에 드나들었다. 민족주의자, 공산주의자, 종파분자, 망명자 등 별의별 사람들이 다 여기로 모여들었다.
   새것을 지향하고 진리를 찾아 모대기는 청년학생들도 이 성시로 찾아왔다.
   한마디로 말하여 길림은 형형색색의 사상조류가 집결된 곳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 내가 공산주의기치를 들고 혁명활동을 벌였다.

 

가야금주법이 완성되기까지

김정일위원장연구1≫(주체91, 백두청년회)

조선의 고유한 민족악기인 가야금은 원래 13줄로 된 반음이 없는 5음계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러다보니 기악연주에서나 독주에서 적지 않은 제한성을 나타냈다.
   그러던 것이 민족악기를 현대적으로 개량할 데 대한 현명한 방침을 제시하고 친히 구체적인 지도를 준 김정일위원장의 지도아래 가야금은 19줄, 7음계로 새로 개조완성되게 되었다.
   가야금의 연주활로는 넓어지고 자유로워졌다. 전문가들은 모두 이제야 가야금이 악기로서 자기의 능력을 다 발휘하게 되었다고 기뻐하였다.
   그런데 1973년 3월 2일이었다.
   이날 외국방문공연을 앞두고 맹렬한 연습을 다그치고 있는 한 예술단에 나온 김위원장은 기악연주를 지도해주다가 특별히 가야금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었다.
   김위원장은 심중한 안색을 지으며 가야금독주는 더 심중하게 연구할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 가야금이 옛날보다 주법상 많은 변화를 가져왔으나 가야금의 독특한 기본음색을 살려야 한다고 일깨워주며 합주할 때는 기타소리를 내도 되지만 독주할 때는 절대로 기타소리를 내면 안된다고 명확한 계선을 그어주었다.
   김위원장의 지적은 ≪기타식 주법≫을 가야금의 기본주법으로 생각해온 예술인들에게 새롭게 밝혀준 방침으로 되었다.
   그러나 그후 예술인들은 그 실천행동에서 또다시 잘못을 범하였다.
   1976년 2월 27일 인민문화궁전에서 가야금병창을 보아준 김위원장은 또다시 심중한 안색을 지었다.
   기타소리가 아닌 가야금의 독특한 소리를 냈기 때문에 이번에는 김위원장이 기뻐하리라고 생각했던 예술인들도 심각해졌다.
   김위원장은 악기 자체를 현대화하고 주법을 현대화한다고 하여도 가야금주법의 기본특징이 농현인데 이것을 무시하면 안된다고 기본주법 자체를 무시하고 기타나 양금소리를 내듯이 연주하려고 해서는 안된다고 차근차근 타일러주었다.
   이어 김위원장은 가야금이란 악기가 남아있는 한 주법에서도 옛날것을 좀 남겨놓아야 한다고 그 방도에 이르기까지 세심히 가르쳐주었다.
   김위원장의 지도는 가야금의 고유한 주법과 탐구된 새 주법을 잘 결합할 데 대한 현명한 지도였다.
   김위원장은 그후에도 여러 차례 가야금독주를 보아주며 그 새로운 주법을 완성하도록 이끌어주었다.
   드디어 1978년 7월 25일, 다시 가야금독주를 보아준 김위원장은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가야금독주 ≪초소의 봄≫은 색깔이 있다고 아주 잘하였다고 지적하였다.
   그리하여 우리 민족이 오랜 기간 음악생활에서 귀중한 악기로 써온 가야금은 새롭게 개조되고 새로운 주법도 완성되어 자기의 새로운 탄생을 세상에 고하게 되었다.

 

한나라당패당의 반통일적 악담질

91/07/30 ≪구국의 소리≫ 화제의 초점

이미 보도가 됐습니다만 이회창과 서청원을 비롯한 한나라당패거리들은 남북장관급회담 북측 대표단 김령성단장이 지난 25일 남측에 보내온 전화통지문을 통해 제7차 남북장관급회담을 금강산에서 개최하고 이미 합의한 남북철도연결문제, 이산가족친척문제 등 4.5공동보도문이행문제와 그밖에 관심하는 문제를 원만히 협의하기 위해 오는 8월초 금강산에서 실무접촉을 가지자는 제의에 대해 당치않은 구실을 대며 반대해 나섰습니다.

그들은 서해교전과 관련한 사과**과 책임자처벌 등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는한 절대로 북과 대화를 재개해서는 안된다면서 현 정권은 남북문제에서 손을 떼고 차기 정권에 넘기라고 촉구했습니다.

이에 따라 지금 국민들은 물론 일부 한나라당소속 의원들도 반대하면서 이회창과 서청원대표를 비난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지난달 29일에 있은 서해사건은 미국과 반통일수구세력의 사주하에 이 땅의 군부호전집단이 불순한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도발한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 교전에 참가했던 해병들과 현장에서 목격한 연평도 어민들에 의해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그러므로 사죄와 책임자처벌, 재발방지약속은 이북이 아니라 바로 사건을 고의적으로 도발한 이 땅의 군부호전집단이 해야 마땅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북에서는 서해해상에서 발생한 교전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대화재개제의를 해왔던 것입니다. 이것은 서해교전으로 인해 더욱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고 어떻게 하나 6.15공동선언을 이행하여 조국통일을 앞당기려는 애국애족의 이념과 결단에서 비롯된 것으로써 우리 온 겨레는 물론 세계가 모두 지지찬동하고 있고 군당국자들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유독 이회창과 서청원 등 한나라당 반통일수구세력만 당치않은 구실로 이북의 대화재개제의를 수긍해서는 안된다며 앙탈을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한≫반도에 조성된 정세는 서해사건에 포로되어 남과 북이 서로 적의를 품고 대결을 고취하며 전쟁의 길로 나갈 때가 아닙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남북쌍방에 다같이 이롭지 못할 뿐 아니라 민족의 공멸밖에 초래할 것이 없습니다. 좋아할 것은 미제와 한줌도 못되는 사대매국노들 뿐입니다.

지금 우리 국민들과 세계 진보적 민중들은 이북의 대범하고 애국애족적인 결단을 높이 평가하면서 이북의 제의가 수용되어 하루빨리 제7차 남북장관급회담이 열리고 이미 합의된 사안들이 실천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회창과 서청원 등 한나라당패거리들은 북과의 대화재개를 한사코 반대하면서 현정부가 남북문제에서 손을 떼고 다음 정권에 넘기라고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회창과 서청원 등 한나라당패거리들에게 남북관계개선과 통일의지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회창은 처음부터 6.15공동선언을 반대하면서 그 이행을 음으로 양으로 방해한 극악한 반통일역적입니다. 서청원대표도 이와 다를바 없는 자입니다.

겨레의 통일진군에 난관을 조성하면서도 도리어 이북을 걸고 들고 하루도 중단해서는 안되는 6.15공동선언실천사업에서 *****하는 것은 결국 그들이 남북관계가 개선되지 못하고 6.15공동선언이 이행되지 못하게 하려는데서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제반 사실은 이회창을 비롯한 한나라당패거리들과 반통일수구세력을 청산하지 않고서는 남북관계를 개선할 수 없고 통일위업도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각계 애국민중은 이회창을 정계에서 매장하며 반통일수구세력을 청산하기 위한 투쟁을 더욱 강력히 벌여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상반기 학생운동을 점검해본다

91/07/29-30 ≪구국의 소리≫ 청년학생들과 함께

이 시간엔 상반기 학생운동을 점검해보는 학생운동가 김모씨의 글을 보내드리겠습니다.

6.15공동선언이행열기로 온 경향이 세차게 끓어번지고 있는 이 땅에서는 지금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조국을 통일하려는 각계층 민중과 민족분열을 영구화하려는 외세와 그 추종세력간의 대결전이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청년학생들은 ≪6.15공동선언이행의 길 청년학생이 선봉에 서서 조국통일 앞당기자≫ 구호 드높이 각계층 민중을 나라와 민족을 위한 애국성전에로 고무격려하며 투쟁기운을 고조시켜 나가고 있다.

학생운동에 대한 기대와 성원의 목소리는 사회 각계에서 더 크게 울려나오고 있다. 나날이 높아가는 학생운동의 위상은 6.15공동선언의 기치를 높이 들고 자주통일의 진격로를 앞장에서 개척해온 우리 청년학생들의 상반기 투쟁평가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자주, 민주, 통일운동사에 특기할 공적을 쌓아올린 상반기 학생운동을 돌이켜보는 것은 금후 학생운동의 강화발전을 위해서도 자못 의미 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상반기는 청년학생들이 범국민적인 반미항전을 앞장에서 주도해온 투쟁과 전진의 나날이었다. 청년학생들의 반미자주화투쟁의지는 한겨울 ***을 뜨겁게 달구며 새해 정초부터 세차게 고조됐다.

≪우리는 반미반전투쟁의 불을 달고 반미대오를 넓혀 식민, 분단의 암이고 전쟁의 화근인 미군을 몰아내는 투쟁에 총집중해나갈 것이다.≫

지난 1월 2002년 우리 민족끼리 조국을 통일하기 위한 청년학생통일일군전진대회에서 채택된 범청학련 남측본부 새해결의문은 곧 우리 청년학생들의 반미자주화의지의 과시였다.

우리 청년학생들의 반미의지는 미국의 부시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절정에 달했다. 그의 방한을 반대하는 민중의 투쟁기운에 걸맞게 2월초부터를 반미총력투쟁기간으로 정하고 집회와 시위, 성조기소각, 미상공회의소와 보잉사간판점거 등 다채로운 투쟁들을 벌여 반미열기를 북돋아온 청년학생들이었다.

투쟁의 봄계절을 맞아 3월에서 4월에로, 4월에서 다시 5월에로 끊임없이 전개된 반미항전. 그 드세찬 투쟁열풍속에 학원자주, 민족자주쟁취를 위한 백만학도 집중투쟁기간이 선포됐고 연이어 반미반전평화기간이 설정됐다. 이 때처럼 반미구호가 힘차게 많이 울려나온 적이 없었고 이 때처럼 반미실천단, 반미반전결사단식단 등 반미운동조직들이 생겨나 맹활약한 적도 없었다.

그 모든 투쟁들은 범국민적인 반미운동을 전망성있게 벌여나가며 6.15공동선언을 철저히 고수이행하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상반기는 청년학생들이 6.15공동선언의 기치를 높이 들고 조국통일의 돌파구를 앞장에서 열어온 투쟁과 헌신의 나날이었다. 6.15공동선언발표이후 각계층 민중들의 통일기운이 날로 높아가는데 질겁한 내외반통일세력은 공동선언이행을 차단하기 위해 악랄하게 발악했다. 이에 대처하여 청년학생들은 미국의 6.15공동선언말살책동에 드세찬 반격을 가하는 한편 이회창을 비롯한 우익보수세력을 정치무대에서 제거하기 위한 투쟁을 강도높이 벌여왔다.

이회창의 사대매국적인 미국행각에 분격하여 그를 통일시대 자격미달정치인으로 낙인하고 ≪이회창은 미국에 뼈를 묻으라≫고 단죄규탄한 것도 청년학생들이었고 ≪보수정치 6.15방해 이회창반대 대학생투쟁본부≫를 구성하고 이회창의 ≪대북기본노선≫과 6.15공동선언 2항폐기망언을 단죄하며 극악한 민족반역배로서의 이회창의 정체를 낱낱이 폭로한 것도 청년학생들이었다.

6.15공동선언을 이행하려는 청년학생들의 지향은 정가로운 샘과 같이 깨끗하고 굽이쳐 흐르는 대하같이 줄기찬 것이었다. 그 지향은 6.15공동선언발표 2돌을 맞는 6월을 계기로 더욱 강렬히 분출했다.

청년학생들은 6.15민족통일대축전 지역총련준비위원회들을 결성하고 이 행사의 성과적 보장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해 분투해왔다. 6월 1일 서울에서는 6.15공동선언이행과 남북청년학생통일대회성사를 위한 청년학생결의대회도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민족분열주의세력의 방해책동으로 하여 청년학생들의 6.15민족통일대축전참가의 길은 가로막혔지만 열혈 청춘들의 성의있는 노력은 통일열기를 더욱 고조시키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상반기는 청년학생들의 조직력과 단결력, 전투력이 일층 강화된 투쟁과 승리의 나날이었다. 정초부터 몰아친 공안당국의 학생운동말살한파는 상반기기간 언제 한번도 멈춘 적 없었고 더욱 기승을 부렸다. 그 한파속에 얼마나 많은 애국학생들이 감옥으로 끌려가고 수배생활을 강요당했던가.

학생운동말살책동은 어제 오늘에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김형주학생에 대한 연행과 같이 ≪한총련≫ 의장으로 선거되기 바쁘게 철창으로 끌어간 예는 일찍이 없었다. 그만큼 분열주의세력의 학생운동탄압은 악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어떤 탄압도 회유기만도 청년학생들의 투쟁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올해를 ≪한총련≫ 합법화의 해로 정한 청년학생들은 유엔인권위원회의 제소를 위한 ≪한총련≫ 이적규정철회 10만인선언운동을 벌이는 등 여러가지 활동으로 ≪한총련≫ 합법화에 대한 범국민적 의지를 모아왔다. 공안당국이 애국학생들을 연행했을 때는 그와 전면전을 선포하며 ≪한총련≫의 존엄을 지켜온 청년학생들이었다.

강철이 불길속에서 단련되듯 지난 상반기는 우리 청년학생들이 6.15공동선언이행열기로 끓어번지는 격정의 현장을 누비며 자주, 민주, 통일운동의 선봉장으로 더욱 억세게 성장하여온 나날이었다.

시련도 컸고 난관도 많았던 지난 상반기간 우리 청년학생들이 온갖 험로역경을 강행돌파하고 전진하여올 수 있은 비결은 어디에 있었던가.

무엇보다도 우리 청년학생들이 6.15공동선언을 투쟁의 기치로 높이 들고 투쟁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시대의 지향과 겨레의 염원이 6.15공동선언에 그대로 비껴있으며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가장 빠른 지름길이 6.15공동선언을 이행하는데 있다.

상반기 학생운동은 6.15공동선언의 기치따라 전진하는 청년학생운동은 언제나 백전백승한다는 것을 빛나는 투쟁성과로써 웅변해주었다.

학생운동조직이 옳은 투쟁방법과 전술을 구사하고 학생대중을 투쟁에로 적극 불러일으킨 것도 상반기학생운동이 성과를 달성할 수 있은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상반기기간에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다채로운 투쟁방식들이 창출구사되어 활기를 띠고 전개되었다.

반미투쟁에서 날로 높아가는 청년학생들의 반미투쟁지향에 걸맞게 여러 단계에 걸쳐 집중투쟁기간을 설정하고 반미실천단, 반미반전결사단식단과 같은 투쟁단체들을 결성하고 투쟁한 사실, 반이회창투쟁에서 그가 한나라당의 대통령후보로 선출된 여건에 걸맞게 전지역의 대학교정과 시내 주요지점들에서 그의 대통령선거출마와 관련한 의사를 묻는 투표를 실시하고 이런 특등사대매국노를 후보로 선출한 한나라당을 ≪딴나라당≫으로 명명하는 사이버서명운동을 진행한 사실 등은 이를 뚜렷이 실증해준다.

학생운동조직들에서는 투쟁도 현실에 철저히 발을 붙이고 벌여나갔다. ≪한총련≫이 ≪한≫미합동군사훈련이 벌어지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학원자주, 민족자주쟁취를 위한 백만학도 집중투쟁기간을 선포하고 각계 민중과의 반미공동투쟁을 전개하도록 한 사실, 6.15민족통일대축전을 대대적으로 준비하기 위하여 ≪한총련≫출범식을 거의 한달이나 앞당겨 진행한 사실을 통해서도 그것을 잘알 수 있다.

각계 운동단체들과의 단합을 강화하고 공동투쟁을 적극 벌인 것 역시 상반기 학생운동이 승리할 수 있은 중요한 비결의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너와 나는 전체 민족안에서 하나라는 관점을 가지고 차이보다는 공통성을 앞세우며 서로 존중, 이해, 양보하면서 단결을 실현해온 청년학생들이었다.

상반기는 학생운동에 대한 운동단체들과 시민단체들의 지지와 성원의 목소리가 그 어느때보다 높이 울려나와 사회각계의 이목을 모았다.

≪한총련의 합법적 활동보장을 위한 범사회인대책위원회≫가 결성되고 ≪한총련≫의 합법화를 요구하는 사회 각계인사 302인선언이 발표되고 미상공회의소 점거농성자들이 감옥으로 끌려갈 때는 ≪미상공회의소점거농성 구속자석방실천단≫이, 범청학련에 대한 탄압이 강화될 때는 ≪범청학련관련 구속자석방대책위원회≫가 범국민적인 차원에서 조직된 사례가 언제 있었던가.

이 모든 것은 우리 청년학생들의 투쟁의 정당성에 대한 명백한 과시로 된다.

물론 우리 청년학생들의 활동에서는 반드시 고쳐져야 할 부분적 결함들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난 1월에 있은 9기 ≪한총련≫ 중앙상임위원회 간담회에서도 선명하게 지적되었지만 일군들의 그릇된 작풍이 조직의 단합에 저해를 주는 것과 같은 결함들이 근절되지 못하고 있다.

이념논쟁속에 조직적인 분열을 자초하는 것과 같은 분파성향도 때때로 나타나고 있으며 국민, 학생대중의 감정정서와 거리가 먼 기습시위나 돌출행동들도 극복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자주, 민주, 통일의 3대전선에서 기어이 전환적 국면을 열어야 할 우리 청년학생들이기에 자기검토에 대해 주저하지 않으며 냉철한 자기성찰과정속에 부분적 결함들을 극복하고 민족의 자랑으로 우뚝 설 것이다.

우리 청년학생들은 상반기투쟁에서 얻은 경험들을 귀중히 여기고 그에 토대하여 하반기에는 더욱 줄기찬 투쟁을 벌여나가야 할 것이다.

6.15공동선언의 기치를 더욱 높이 치켜들어야 한다. 6.15공동선언은 오늘도 내일도 조국통일의 확고한 이정표이다. 청년학생들은 6.15공동선언의 기치따라 올해를 기어이 우리 민족끼리 단합과 통일을 촉진하는 새로운 비약의 해로 되게 하기 위하여 자주와 단결, 투쟁의 함성 드높이 앞으로 내달려야 한다. 당면하게는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나가는 운동기간을 맞은 오늘 남북청년학생통일대회성사를 비롯하여 남북간의 화해와 단합을 도모하고 6.15공동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실천투쟁을 더욱 과감히 벌여나가야 한다.

6.15공동선언을 관철하려는 내외반통일세력들의 책동을 단호히 분쇄해야 한다.

청년학생들은 이미 지펴올린 반미반부시투쟁을 더욱 활성화하여 미국의 대북강경정책과 북침전쟁도발책동을 단호히 파탄시켜야 하며 이남에 대한 미국의 지배와 내정간섭을 반대하는 투쟁의 불길을 높여야 한다. 이와 함께 이회창을 비롯한 우익보수세력의 준동을 가차없이 짓뭉개버려야 한다. 특히 하반기에 있게 되는 12월 대선을 이회창을 비롯한 우익보수세력을 정치무대에서 제거하는 심판장으로 만들기 위해 투쟁의 도수를 더욱 높여나가야 한다.

청춘이 바로서야 조국이 바로선다. 우리 청년학생들이 상반기와 같이 각계층 운동단체들과 연대연합을 더욱 강화하고 옳은 투쟁방식과 전술을 창출구사하며 6.15공동선언이행열기를 드높여나갈 때 학생운동의 승리는 확정적이다.

6.15공동선언 기치 높이 들고 자주통일조국을 향해 총돌격 앞으로 내달리자!

 

민족공멸을 추구하는 세력들

91/07/31 ≪구국의 소리≫ 오늘의 연단

지금 민중들속에서는 서해교전사태와 관련한 이회창의 행태를 보면서 이회창이 대통령자리에 앉게 되면 남북간의 관계가 악화돼서 ≪한≫반도에 전쟁이 터지고 우리 민족이 지난 6.25전쟁보다 더 참혹한 재난을 당하게 될거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요. 이회창은 서해교전이 일어나기 바쁘게 담벽을 문이라고 밀듯이 책임을 이북에 떠밀기에 급급했고 강력히 응징해야한다, 금강산관광을 중단해야 한다 뭐다 하며 떠들다 못해서 나중에는 교전의 확장까지 떠드는 전쟁히스테리를 방불케하는 망발까지 토했습니다.

이런 자가 대통령자리에 앉게 되면 ≪한≫반도에 전쟁이 터지리라는 건 뻔합니다. 이회창과 같은 반북반통일전쟁미치광이는 절대로 대통령자리에 앉지 못하게 해야 하겠죠. 그럼 이번엔 ≪민족공멸을 추구하는 세력들≫ 통일운동가 김인수씨의 글을 박진수씨 보내드리겠습니다.

지금 온 민족은 새 세기 조국통일의 이정표인 6.15남북공동선언의 기치높이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나라의 통일을 자주적으로 실현할 확고한 의지를 안고 민족자주통일대행진에 떨쳐나서고 있다. 그런데 나라의 통일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내외의 반통일세력들은 6.15공동선언을 파탄시키고 나라의 통일을 가로막으려고 필사발악하고 있다. 대북압살책동에 매달리고 있는 호전적인 부시행정부와 그에 추종하고 있는 이회창 한나라당패당을 비롯한 수구보수세력이 바로 그렇다.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이회창을 비롯한 한줌밖에 안되는 친미반통일세력들은 권력욕에 미쳐 미국상전을 등에 업고 공동선언이행을 한사코 막아나서면서 남북사이의 대결과 전쟁광증을 일으키고 있다.

부시정권의 대북전쟁정책의 전위대가 되고 있는 이들에게는 민족의 자긍과 생명,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안중에도 없다. 오로지 이 땅을 지배하고 있는 미국상전에게 잘 보여 어떻게 하나 권좌에 올라앉을 생각밖에 없다.

이런 친미반통일분자들이기에 이번에 서해교전이 발생하자 기다렸다는듯이 이번 사건을 두고 북을 철저히 응징해야 한다느니 공동선언은 이미 한계가 드러났다느니 뭐니 하면서 6.15공동선언을 부정하고 이북에 대한 강경대응을 떠들며 반북대결을 고취하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 이회창은 사건이 발생하자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 금강산관광을 중단해야 한다, 남북교류를 전면 중당해야 한다고 외쳐댔다. 이건 남북사이의 불신과 반목, 대결을 조장시켜 6.15남북공동선언의 이행을 가로막고 외세와 야합해 동족을 압살하려는데서 살구멍을 찾아보려는 친미반통일분자들의 고약한 심보의 발로이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이번 서해교전사건은 북측 영해에 침범한 이남 해군이 정상적인 해상경계근무를 수행하고 있는 이북 경비정들에 먼저 총포사격을 가해 발생한 무장충돌사건이다.

이남에서 국군의 모든 움직임은 철저히 군통수권을 쥐고 있는 미군에 의해 장악되고 있다. 미군의 승인없이는 국군이 총한방 마음대로 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다.

서해교전사건의 진상은 당시 어로작업을 하던 어민들과 교전에서 부상당한 해병들에 의해 명백히 밝혀졌다. 그러나 이회창을 비롯한 친미반통일세력들은 이번 사건의 발생경위와 본질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이북을 걸고 들며 반북대결소동을 벌이고 있다. 심지어 그들은 확전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느니 뭐니 하는 망발까지 늘어놓으면서 전쟁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회창과 군부호전광들은 교전당시의 정황을 여러 각도로 파악하고 평화적 해법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 자체를 이북동조론으로 매도하고 있다.

이회창과 군부호전광들은 서해교전을 빌미로 6.15공동선언을 파탄시키고 남북간의 관계를 어떻게든 냉전시대로 되돌려놓으려고 광분하고 있다. 남북대결의 격화는 전쟁으로 이어지고 이것은 민족공멸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이회창과 군부호전광들은 ≪한≫반도 정세를 이 험악한 길로 몰아가고 있다.

호전적인 부시행정부의 작태는 또 어떤가. 그들은 우리 민족의 자주적 통일열망을 짓밟고 ≪한≫반도에서 새 전쟁을 일으키려고 발광하고 있다. 그들은 부시가 올해를 ≪전쟁의 해≫로 선포하고 이북을 ≪악의 축≫이니 ≪테러지원국≫이니 ≪핵공격대상≫이니 뭐니 하면서 노골적으로 반북대결을 떠들어대고 있는데서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미국이 이 땅에서 전례없는 대규모의 ≪한≫미통합실전연습을 비롯한 각종 전쟁연습을 연이어 광란적으로 벌이고 있는 것은 다 북침을 위한 실동전쟁연습인 것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지면 그에 따른 희생자는 다름아닌 우리 민족일 뿐이다. 때문에 권력욕에 환장이 돼서 민족공멸을 추구하는 이회창역도를 비롯한 친미반통일분자들을 하루빨리 없애버려야 한다. 이와 함께 ≪한≫반도에서 핵전쟁을 일으켜 민족공멸을 꾀하는 미군을 이 땅에서 하루빨리 내쫓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 민족을 전쟁의 참화에서 구원하고 6.15공동선언의 기치밑에 민족자주통일을 안아올 수 있다.

일신의 권력욕과 부귀영화를 위해서라면 민족을 멸살시키는 것도 서슴지 않을 이회창과 같은 역적, 추물이 대통령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건 참으로 민족의 수치라 아니할 수 없죠. 우리 민중은 이회창의 대통령꿈을 오뉴월 개꿈으로 만들고 말겁니다.

 

≪여명≫

91/08/01 백산칼럼

처음 만났을 때 깜짝 놀랐다. 우선 여성인 점에 놀랐고 미인인 점에 놀랐다. 그리고 나보다 많은 나이인데도 미혼인 점에 더욱 놀랐다. 나이도 들고 전혀 치장하지 않아 지금은 수수해 보이지만 대학시절에는 따라다니는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여명≫은 이 동지의 가명이다.

조직에선 여명동지를 선전의 귀재로 부른다. 오랜 세월 다양한 선전사업에서 발군의 능력을 보이며 큰 기여를 하였다고 한다. 대내외적으로 발표된 글 중 이 동지의 글이 적지않다. 여명동지는 가명이란 남성인지 여성인지 모를 때 가장 이상적이라는 소신을 가지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신기에 가까운 방송채록기술로 붙여진 ≪소머즈≫라는 별명이다. 이런 이야기는 이 정도만 하는 것이 좋겠다.

그런데 이 동지의 전공은 선전사업이 아니라 노동운동이다. 학생운동을 마치고 바로 뛰어든 곳도 노동현장이었으며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바친 곳도 바로 노동현장이었다. 특이한 것은 남성들만의 고유분야라고 하는 곳에 도전하곤 하였다는 것이다. 여명동지가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시절을 총화하면서 가장 크게 깨달았던 점은 바로 조직의 중요성이라고 한다.

나는 이 존경하는 상급동지로부터 선전사업과 노동운동에 대하여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러나 가장 크게 배운 것은 혁명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바치는 그 헌신성과 열정이라고 할 것이다. 멀리 떠나게 된 여명동지와 마지막으로 악수를 하게 되었다. 그 때 손이 작고 부드러운데 마지막으로 놀랐다. 만날 때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는데, 역시 여성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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