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위원장은
통일혁명의 영도자


6.15공동선언은
조국통일의 이정표

    제35호          주체91(2002)년 7월 14일(일)                                                             백두청년회 산하 백두산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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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위원장의 명언

인민을 믿는 자는 보약이 차례지지만 인민을 등진 자는 독약이 차례진다


김일성주석의 회고록에서

어떤 나라를 세울 것인가

실화로 본 김정일위원장

안악 3호 고분은 고국원왕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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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사진상규명위, ≪국가보안법≫개폐
    필요성 공식 제기 (7/12)

노근리는 미제살인귀들을 고발한다
    (7/10-12)

조선중앙통신

여중생참사 관련 미군사령관 ≪성명≫,
    책임회피술책 (7/12) [ 오전 | 오후 ]

오늘의 주요 기사

故 신효선, 심미선 네티즌 추모캠페인 열려
    (통일뉴스, 7/13)

미군의 여중생 살인사건, 서명운동 확산
    (유뉴스, 7/13)

대우조선, 산재환자 사생활 ≪몰래 촬영≫
    (오마이뉴스, 7/13)

민생투어, 민주노동당에게 배워라
    (민주노동당, 7/13)


백산칼럼

≪민족봉숭≫


우리는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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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음악

 

정세 초점

치졸한 모략극, 비싼 대가 치를 것이다


   서해상에서 남북 해군 사이의 교전사태가 벌어졌다. 미국과 남측 군부가 조작하고 ≪북의 도발≫이라는 거짓선전을 돌리고 있다. 한반도에 대결과 분열의 기운이 감돌고, 극우보수 호전분자들이 핏대를 올린다. 남측에서 월드컵 열기와 동반상승하던 민족애 민족단결의식 반미의식에 찬물이 끼얹어졌다.
   그러나 자루 속의 송곳은 숨길 수 없다. 진실이 드러났을 때 모략극의 조작자들은 몇백배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서해교전사건≫, 후과와 대처
    (통일여명 편집국, 7/2)

서해무장충돌사건 일문일답 
    (조선신보, 7/2)

서해사건 ,≪사건발단의 원인의 책임은
    어민들과 군당국≫ (조선신보, 7/4)

민주노동당, 합동조사단 제안
    (디지털말, 7/5)

미국은 흑백을 전도하지 말아야 한다
    (조선중앙통신, 7/5)

서해무장충돌사건과 관련한 매국역적들의
    도발적인 언동 (조선중앙통신, 7/5)

시민사회단체, 조선일보 규탄집회 가져
    (통일뉴스, 7/9)

 

≪서해교전사건≫에 관한 상보 (99/7/10)
    한민전 대변인 성명 (99/6/20)

국지전을 상정한 ≪연평도 군사작전≫을
    추진한 것은 누구인가?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99/6/21)

≪북방한계선≫은 무효
    - 조선인민군총참모부특별보도 (99/9/2)



주한미군 여중생 살인사건 대책위

http://www.antimigu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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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나라를 세울 것인가

≪세기와 더불어≫ 제1권 2장 2절

나는 그런 토론을 들으면서 화성의숙에서 실시하는 민족주의교육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는 것을 더욱 통절하게 느끼었다. 봉건왕조를 되살리겠다는 것도 그렇고 자본주의길로 나가야 한다는 것도 그렇고 다 시대착오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답답해졌다.
   나는 참다못해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 나라는 구라파나라들처럼 부르조아혁명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낡은 봉건통치기구를 그대로 되살려도 안된다고 말하였다.
   자본주의나 봉건사회는 다같이 돈많은 놈들이 근로대중을 착취하여 호강하는 사회이다, 독립된후 조선에 이런 불공평한 사회를 세울 수는 없다, 기계문명의 발전만 보고 자본주의의 병집을 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봉건왕조를 다시 세워야 한다는 것도 당치않은 소리이다, 나라를 외세에 팔아먹은 왕조정치에 그 누가 미련을 품겠는가, 도대체 왕들이 해놓은 것이 무엇인가, 백성들의 등껍질을 벗기고 바른 말을 하는 충신들을 목자르고 귀양보낸 것밖에 더 있는가,
   우리는 조선을 독립시킨 후 조국땅에 착취와 압박이 없는 사회,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근로대중이 잘 사는 그런 사회를 세워야 한다.…
   많은 학생들이 나의 주장에 공감을 표시하였다. 착취와 압박이 없는 만민평등의 부강한 사회를 세우자고 하는데 누가 반대하겠는가.

 

안악 3호 고분은 고국원왕의 무덤

김정일위원장연구1≫(주체91, 백두청년회)

김정일위원장이 황해남도 안악군 오국리에 있는 안악 3호 고분을 찾은 것은 1962년 1월 24일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고분이 발굴되어 여러 해가 지났으나 역사학계에서는 어느 시대, 누구의 무덤인지 완전한 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인접 나라 망명객의 무덤이라고까지 주장하였다.
   이것은 하나의 고분문제가 우리 민족의 역사를 정확히 밝히는데 큰 의의를 가지는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말해주었다.
   그리하여 직접 차를 몰아 현지에 이른 김정일위원장은 곧장 고분 안으로 들어갔다.
   홀가분한 돌문을 손수 여닫아 보며 돌문이 베어링장치를 한 것처럼 잘 여닫긴다고 하며 김위원장은 전실에 들어가서 웅건한 고분 안을 둘러보았다.
   김위원장의 눈길은 벽화들에 집중되었다.
   여러 벽면들에는 인물도들과 풍습도들이 펼쳐져 있었다.
   서쪽 벽에는 번쩍이는 왕관을 쓴 주인공이 신하들로부터 보고를 받는 장면의 그림이 있었고 동쪽과 남쪽 벽에는 씨름하는 장면, 춤추는 장면, 음악을 연주하는 장면 등의 그림이 있었다.
   김위원장은 그림의 주인공이 다른 나라 망명객이라면 어찌하여 그가 왕관을 쓰고 앉아 조선인 신하들로부터 보고를 받을 수 있겠는가, 또 어째서 고유한 조선풍습들이 벽화의 전면을 채웠겠는가 하는 것을 일별해보고 결연히 단정하였다.
   안악고분은 조선사람의 무덤입니다, 풍습을 그린 그림을 보아도 우리 민중들의 생활풍습을 반영한 그림이라고 하며 고분의 주인공이 외국망명객이라는 주장의 부당성을 밝혔다.
   이어 김위원장은 천장을 올려다보며 섬세하게 다듬어진 8각기둥과 역학적으로 잘 맞물린 기둥머리와 보, 마치 해가 뜬 것 같이 능란하게 처리한 채광, 등은 조선 고유의 건축술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우리 민족이 얼마나 슬기롭고 지혜로운 민중인가를 잘 알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일꾼들은 역사유적에 대한 김위원장의 해박한 지식과 주체적인 고찰방법에 탄복을 금치 못하였다.
   김위원장이 이날에 밝혀준 사실은 오랜 기간 미해명 문제로 남아있던 안악 3호 고분문제를 주체적 입장에서 과학적으로 밝혀내는데서 지도적 지침이 되었다.
   그리하여 안악 3호 고분이 고구려의 왕이었던 고국원왕의 무덤임을 확인되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국가보안법≫개폐 필요성 공식 제기

91/07/12 ≪구국의 소리≫ 화제의 초점

최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한총련≫ 투쟁국장으로 활동하다 경찰에 의해 목숨을 잃은 김준배씨에 대해 민주화운동에 따른 의문사로 규정하고 ≪국가보안법≫의 개폐를 주장했습니다.

이 위원회는 ≪국보법≫에 근거한 부당한 공권력행사가 김씨를 죽음으로 몰고간 근본원인으로 제기하면서 ≪국보법≫개폐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주장은 ≪국보법≫폐지에 대한 국민들의 의사와 요구에 따른 정당한 주장입니다.

아시다시피 ≪국보법≫으로 말하면 미국과 사대매국집단의 식민지지배와 파쇼독재를 유지, **하기 위해 조작한 극악한 반통일파쇼악법입니다.

통일하고 함께 살 이북 동포들을 ≪반국가단체≫구성원으로, 타도대상으로 규정하고 그들과 접촉하거나 이북에 대해 얘기해도 크게 문제시하며 쇠고랑을 채우도록 규정한 ≪국보법≫은 그야말로 동서고금에 없는 극악한 반민족반통일파쇼악법입니다.

반민주반통일집단은 지금까지 이 악법을 휘둘러대며 저들의 비위에 거슬리는 애국민중을 닥치는대로 구속처형했습니다. 지금까지 이 악법에 걸려 억울하게 구속처형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이루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반통일파쇼집단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으로 그 적용범위가 한정되어 있지 않은 탄압만능의 ≪국보법≫을 휘둘러대며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해 투쟁하는 애국민중들을 가혹하게 탄압해 왔습니다.

김준배씨가 바로 이 파쇼악법에 걸려 수배를 받아오다가 경찰에 의해 목숨을 빼앗긴 것입니다. ≪국가보안법≫은 김씨를 살해한 장본이라 하겠습니다.

이것이 ***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김준배씨의 사망을 민주화운동에 따른 의문사로 규정하고 ≪국가보안법≫의 개폐를 정부당국에 정식 요구한 것입니다.

구조적인 냉전구도가 무너지고 6.15공동선언이 발표된이후 ≪한≫반도에서 화해와 단합, 통일의 기운이 그 어느때보다 높아지는만큼 이북을 ≪반국가단체≫로, 이북 민중을 ≪반국가단체≫구성원으로 규정한 극악한 반통일파쇼악법을 유지하면서 그것을 휘둘러대며 통일민주인사들을 탄압처형하고 있는 것은 시대의 흐름과 민의에 역행하는 반민족반통일적인 행태로써 그 무엇으로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이회창을 비롯해 반통일수구세력이 ≪국보법≫의 폐지를 한사코 방해하면서 민의에 도전하는데 대해 각계 애국민중이 비난하고 단죄규탄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우리 국민과 세계 진보적 인류는 물론 미국에서까지 ≪국보법≫의 폐기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마당에서조차 이것을 거부하고 그 유지를 한사코 주장하는 반통일세력의 작태야말로 우리 겨레와 세계인의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하겠습니다.

≪국보법≫에 대한 태도는 애국과 매국, 통일과 반통일을 가르는 시금석입니다. 극악한 반통일악법인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는데 자주통일의 활로가 있습니다.

각계 애국민중은 ≪국가보안법≫의 개정이 아니라 철폐를 위해 더욱 과감히 투쟁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자주, 민주, 통일운동의 선봉장인 ≪한총련≫의 합법화와 그 활동의 자유를 위한 투쟁을 보다 힘차게 벌여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노근리는 미제살인귀들을 고발한다

91/07/10-12 ≪구국의 소리≫ 오늘의 연단

지난 6.25전쟁시기 노근리에서 미제침략군이 감행한 양민집단학살사건은 미제침략자들이야말로 사람가죽을 쓴 야수, 인간백정들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데요. 그럼 이번엔 ≪노근리는 미제살인귀들을 고발한다≫, 유진명씨 말씀드리겠습니다.

양키침략자들이 6.25전쟁을 일으킨 때로부터 어언 5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난 3년간의 전쟁은 미국에 의해 강요된 세계전생사상 가장 잔인하고 야만적이고 파괴적인 전쟁이었죠.

우리 민족멸살을 노린 양키침략자들은 ≪한≫반도 전역에서 피비린내 나는 대살육전을 벌였어요. 양키침략군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에서는 우리의 무고한 주민들의 피가 흐르지 않는 날이 없었습니다. 근 50년만에 세상에 알려진 노근리양민학살사건은 양키침략군이 지난 6.25전쟁시기 이 땅에서 감행한 학살만행의 한 사례에 지나지 않죠. 하지만 노근리양민학살만행을 통해서도 양키침략자들이 얼마나 잔인한 살인귀들인가를 똑똑히 보여주고 있어요.

노근리양민학살만행은 양키놈들이야말로 세상에 둘도 없는 인간백정들이라는 걸 보여준다 하겠습니다. 노근리학살만행사건은 전쟁을 일으킨 양키침략군이 우리 인민군대의 반격으로 남으로 패주하면서 충청북도 영동군 산간면 노근리에서 3일동안에 400여명의 무고한 주민들을 무참하게 학살한 사건이죠.

양키침략군놈들은 500여명의 이곳 주민들과 피난가던 200여명의 타곳 주민들에게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켜 주겠다면서 끌고가다가 도로와 강변, 철로위에서 총격과 폭격을 가해 죽였고 폭격을 피해 철로수로용으로 만든 터널로 모여든 주민들에게 또다시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켜 준다면서 쌍굴다리밑에 몰아넣고는 기관총사격을 가해 학살했습니다.

죽음의 함정에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생존자들은 오늘도 분격해서 양키침략군놈들의 학살만행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당시 12살의 어린 처녀였던 정춘자씨는 당시 상황을 말하면서 미군사병놈들이 권총을 가지고 장난을 하는 총각애들처럼 우리의 생명을 가지고 장난하였다고 분격을 토했어요.

당시 현장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났다는 정지호씨는 ≪그때 사람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시체들을 끌어다 방탄벽을 쌓았다. 어머니들은 아이를 담요에 싸고 그를 보호하기 위해 꼭 껴안고 자기 등을 굴입구쪽으로 돌려대고 있었다. 나의 어머니도 둘째날 양키들의 총탄에 맞아 죽었다≫면서 울분에 넘쳐 말했어요.  

당시 16살이었던 정진숙씨는 노근리학살만행은 죽어도 잊을 수 없다며 그때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군용기들이 굉음을 내며 하늘에서 연이어 우리한테 내리꽂히며 기총사격을 가하고 폭탄을 떨구었다. 사람들은 그를 피해 풀숲과 나무들 사이에로 피신하였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현장에서 죽었다. 나의 등에 무엇인가 뜨거운 것이 쏟아지는 느낌을 받았는데 돌아보니 어린애의 머리였다.≫

당시 25살난 아이 어머니였던 박선영씨는 그때를 회고하면 양키놈들에 대한 분격을 금할 수 없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녁 어스름한 때였는데 5살난 아들이 밥을 달라고 울며 보챘다. 2살났던 딸애는 이미 총에 맞아 죽었다. 할머니는 미군사령부에게 살려달라고 부탁하자면서 나를 끌고 굴다리에서 나왔다. 그때 귀청을 깨는 듯한 총소리가 나더니 아들의 허벅지에 총알이 박혔고 총알맞은 다리는 너덜거렸다. 아들은 그 고통속에서도 밥을 달라고 했고 아버지를 보러가자고 했다. 나는 미군사령부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그놈들은 사격을 계속했다. 총알하나가 내 허리를 뚫고 지나가, 아니 가슴에 박혔다. 나는 쓰러져 멍하니 있었는데 그때 미군사령부 두명이 와서 뭐라고 지껄이더니 아이를 흰자루에 집어넣어 땅에 묻어버렸다.≫

당시 12살 소녀였던 양혜숙씨는 굴다리에서 양키놈들의 사격에 할머니와 오빠, 남동생 그리고 삼촌과 삼촌어머니, 그의 두 딸을 잃었다고 했고 당시 16살이었던 박지숙씨는 그때 양키들에 의해 아버지와 어머니, 여동생을 잃었다면서 양키놈들은 가루를 내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살인마들이라고 말했어요.

노근리학살만행에 직접 가담했던 미군사병들도 당시 상황에 대해 실토했는데요. 당시 사병이었던 한 퇴역군인은 인터뷰에서 미군은 ≪한≫반도인을 짐승 죽이듯 했다고 증언했고 당시 사병이었던 캐롤은 노근리사건은 상관으로부터 민간인이건 군인이건 모조리 죽이라는 명령을 받은 이후에 일어났다고 증언을 했죠. 다른 한 사병은 당시 중화기 중대장이었던 넬브론시 캔들리가 상관들과 **모의한후 기관총수들에게 지하도입구근처에 사격진지를 설치하고 모조리 죽이라면서 사격명령을 내렸다고 실토했습니다.

노근리학살사건에 가담했던 퇴역군인들은 당시 대대를 지휘했던 허버트 리헤이어대령이 살인지령을 내렸다고 증언했습니다.

노근리학살만행사건은 군부의 살인명령에 따라 의도적으로 자행된 것으로 관계자처벌과 사과, 배상이 있어야 마땅한 겁니다. 죽음터에서 살아난 생존자들과 학살만행에 직접 가담했던 미군사병들에 의해 노근리학살만행의 전모가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그에 대한 사과나 보상은 물론 학살만행의 범죄행위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어요.

노근리대참살행위에 분격한 피해자들과 각계 민중들의 반미기운이 높아지자 이에 당황한 미행정부는 노근리사건 조사단을 구성하는 등 조사단을 파견해 현장검증을 한다 하면서 마치도 진상을 규명할 것처럼 했지만 그것은 저들의 범죄적 만행을 은폐해 우리 국민들의 반미기운을 눅잦혀보려는 기만극에 지나지 않았어요. 현지조사를 한다면 ≪한국≫에 파견됐던 미육군조사단이 발표한 조사결과라는 것을 봐도 그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미육군조사단은 조사결과에서 이 사건은 미군사병들이 사기고조를 위해 저지른 절망적인 행동이었을 뿐 무고한 양민에 대한 고의적인 살인은 아니었다, 이 사건이 전쟁범죄로 될 수는 없다고 발표했어요.

그들은 또 노근리사건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미군이 참전했던 전쟁시기에 발생한 사건이며 전쟁중 민간인이 미군에 의해 피해를 입은 유사사건은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에서도 있은 점을 감안할 때 그것이 범죄행위로는 될 수 없다고 뇌까렸죠. 참으로 괴이하고 철면피한 궤변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국은 지금까지도 노근리양민학살만행사건을 외면하면서 사과나 배상조차 하지 않고 있어요. 노근리의 영령들은 오늘도 눈을 감지 못한채 양키침략자들에 대한 분노에 치를 떨고 있습니다. 양키침략자들이 지난 6.25전쟁시기 노근리를 비롯한 이 땅 전역에서 감행했던 양민학살만행은 오늘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죠.

지난 6월 13일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앞 도로에서 양키침략군이 길가던 어린 두 소녀를 궤도차량으로 깔아죽이는 범죄행위를 저지른 건 그 대표적 사례의 하나입니다. 이 땅에서는 양키침략군이 돌아치는 곳마다에서 우리 국민들의 피가 흐르고 있고 주≪한≫미군이 존재하는 한 양민살육만행이 근절될 수 없고 국민들이 비극적인 치욕을 면할 수 없습니다.

주≪한≫미군은 우리 국민, 우리 민족멸살을 노린 살인악마들이며 식인종의 무리들이죠. 주≪한≫미군은 반세기가 넘도록 이 땅의 안방에 틀고 앉아서 주인행세를 하면서 우리 국민, 우리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짓밟고 있습니다. 주≪한≫미군은 우리 민족민중에게 있어서 백해무익한 암적 존재이고 미국이야말로 백년 숙적입니다.

각계 민중은 노근리양민들의 한과 양키침략자들에 의해 학살당한 수많은 영혼들의 원혼을 풀어주는 심정으로 반미투쟁에 적극 나서서 미제침략군을 이 땅에서 하루빨리 몰아내야 할겁니다.

 

≪민족봉숭≫

91/07/14 백산칼럼

동지와 사업이야기를 나누다 막간에 ≪봉숭아학당≫이 화제가 되었다. 그 동지는 내가 ≪봉숭아학당≫을 즐겨본다고 하니까, 의외였던지 눈을 동그랗게 뜨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이내 방긋 웃으며 자신도 이 프로를 보는데, ≪연변총각≫이 으뜸이라고 한다. 온 국민이 좋아하는 ≪연변총각≫을 물론 나도 좋아한다.

언제부터인가 ≪봉숭아학당≫에 ≪선생님 말씀에 이의를 제기≫하고 ≪민족봉숭≫, ≪대동단결≫을 외치며 대≪정부투쟁≫을 벌이는 머리띠 두른 학생이 생겼다. 물론 이런 학생은 맨 뒷자리에 앉고 늘 그렇듯이 절정장면에 등장하며 대미를 장식하는 법이다. ≪봉숭아학당≫의 ≪운동권학생≫의 특징은 수업에 착실하다는 것인데, 예나 지금이나 우리 운동권은 결석을 당연시한다.

처음에는 그 ≪머리띠친구≫의 존재가 무척 불쾌하였다. 황당한 이의를 제기하며 물구나무를 서는 것이 마치 대중속에서 고립된 한총련을 희화화한 것 같아 속이 언짢았다. 대중적 인기를 누렸던 전대협시절이나 한총련초기였다면 이런 개그는 국민정서에 맞지않았을 것이다. 별 거부감없이 이 프로가 지속되는 것을 보니 아마 대학생들, 국민들의 정서에는 맞는가 보다.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그 ≪머리띠학생≫이 한사람에서 둘로 늘었다는 것이다. 하늘나라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나이리기집애≫를 미워하는 순수여학생 ≪하니≫가 운동권이 된 것이다. 그러고보면 ≪학생운동≫이 ≪봉숭아학당≫ 10명 중 1명에서 2명으로, 10프로에서 20프로로 확대된 셈이다. ≪봉숭아학당≫의 ≪학생운동≫은 이렇듯 시대추이를 반영하며 대중화되는데, 우리 한총련운동은 언제쯤 대중화될런지... 20프로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출범식에 단 5프로(5만명)만이라도 결집시켰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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