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위원장은
통일혁명의 영도자


6.15공동선언은
조국통일의 이정표

    제19호          주체91(2002)년 6월 28일(금)                                                                                  백두산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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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대들을 키우는 사업을 한 걸음 늦추면 조국의 전진이 열 걸음 떠진다


김일성주석의 회고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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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로 본 김정일위원장

은장도와 금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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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국의 소리

6.25와 미국 (6/25-26)

양키들의 살육 만행을 돌이켜본다
    (6/25-26)

6.15남북공동선언은 조국통일의 이정표
    (6/27)

더이상 지켜볼 수 없다 (6/24-25)

조선중앙통신

청년군인들 미제의 만행 규탄
    - 시낭송모임 진행 (6/26)

반미공동투쟁월간에 즈음한 영화 상영
    (6/26)

오늘의 주요 기사

조계종 스님들, 29일 평양방문
    (통일뉴스, 6/26)

이회창 아들 병역논란 법정으로
    (오마이뉴스, 6/27)

≪미제반대투쟁의 날≫ 평양시군중대회
    (조선신보, 6/27)

전기통신사업법 ≪불온통신≫조항 위헌
    (오마이뉴스, 6/27)

≪한국은 노조탄압도 4강?≫
    (오마이뉴스, 6/27)


백산칼럼

난수


푸에블로 간첩선과 미제의 세균전 만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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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 초점

우리 딸들을 살려내라!


   미제가 이땅에서 6.25전쟁을 일으켰던 6월, 저들은 다시 한 번 그 본질을 드러냈다. 여중생 둘을 장갑차에  깔아 죽이더니, 그들을 살려내라는 정당한 집회 대오에서 기자들을 납치하였다. 군견까지 동원하고 쇠사슬로  그들을 묶은 미군의 행동은 저들이 우리 민족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6.25전쟁 시기 양민들을 학살한 미군들이 똑같이 그랬다. 미제는 그 원한이 어떻게 돌아오는지를 똑똑히 보아야 한다. 이제 청소년들까지 반미전선에 서고 있다.
 

미군, 장갑차로 두 여학생 깔아죽이는 만행
    (구국의 소리, 6/18)

여중생 미군전차 압사사건 규탄 집회
    (오마이뉴스, 6/21) 

미국, 고의적 살인범죄 책임 벗어날수 없다
    - 조평통 서기국 (조선중앙통신, 6/22)

평양 교직원 학생들 미군의 살인만행 규탄
    - 현장집회 진행 (조선중앙통신, 6/23)

미군, 취재기자 집단폭행후 연행!
    (민중의 소리, 6/26)

살인마의 정체는 결코 가리울 수 없다
    - 노동신문 (조선중앙통신, 6/26)

주한미군, 한국기자 폭행.감금 물의
    (통일뉴스, 6/27)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파렴치한 미군
    (민중의 소리, 6/27)

노래 - 또다시 너를 묻으며 (윤민석)

동영상 - 양주 여중생 사건 목격자 증언
    (민중의 소리)

여중생 살인사건 진상규명 범국민서명운동
    (심효순 신미선 살인사건 범국민대책위)

안티 미군 홈페이지
    (사건 개요, 사이버 서명, 투쟁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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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음악

혁명전통

≪세기와 더불어≫ 제1권 1장 7절

리극로선생은 후대들이 선렬들의 투쟁력사를 모르면 후레자식이 되는 법인데 일군들이 전통교양을 잘하는 것 같지 않다고 걱정하였다.
   창건된지 두해밖에 안되는 청소한 공화국이 생사존망의 기로에 서있던 준엄한 시련의 시기에 혁명전통을 고수해야 한다는 선생의 말을 듣고보니 나도 얼마나 고마운 생각이 드는지 몰랐다. 이 땅을 찾기 위해 싸우다가 희생된 선렬들의 령혼이 우리의 눈앞에 한꺼번에 날아와 싸워서 이기라고, 조국을 끝까지 수호하라고 절규하는 것 같아서 뜨거운 충동을 금할 수 없었다.
   조선이 다 망했다고 떠들던 때에 연포리에 대한 리극로선생의 이야기가 나에게 힘을 주었다.

 

은장도와 금반지

김정일위원장연구1≫(주체91, 백두청년회)

1983년 5월 어느 날, 김정일위원장은 한 일꾼에게 세쌍둥이가 커서도 일생동안 기념이 될 선물을 주어야겠다고 하면서 만수대창작사에 기념품도안을 만들도록 과업을 줄 데 대하여 지적하였다.
   창작가들이 기념품도안창작에 달라붙었으나 신통한 도안을 내놓지 못하였다. 그들이 며칠 밤을 새워가며 그려낸 도안의 대부분은 시계류였다.
   다른 방향으로 모색해보기도 했지만 종내 신통한 안을 찾아내지 못하고 걱정만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사실을 보고 받은 김정일위원장은 그 동안 자신이 생각한 안을 내놓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은장도와 금반지였다.
   ≪세쌍둥이들에게 줄 은장도와 금반지에는 생일을 새겨넣되 은장도와 금반지 세개가 합쳐야 옹근 출생년월일이 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면 세쌍둥이가 어려서 뜻하지 않게 헤어져도 은장도와 금반지를 가지고 자기 형제를 정확히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김위원장이 제안대로 첫째 은장도의 칼날엔 출생년도, 둘째 은장도의 칼날엔 태어난 달을, 셋째 은장도의 칼날엔 태어난날을 각각 새겨넣었다.
   그리고 모든 칼집의 한쪽 면에는 출생년원일을 새겨넣어 칼을 보면 세쌍둥이들의 생년월일과 그가 몇째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하였다.
   칼자루의 양면에는 세쌍둥이라는 것을 상징하여 녹두알 같은 세 개의 홍보석을 세송이의 목란꽃안에 박아넣었다.

 

6.25와 미국

91/06/25-26 ≪구국의 소리≫ 6.25전쟁 52주년 집중방송

6.25전쟁이 38도선 이북지역을 포함한 ≪한≫반도전체를 식민지로, 침략기지로 만들려는 미국의 면밀한 사전계획과 작전에 의해 도발됐다는 건 이미 구체적인 발표자료들에 의해 재론의 여지없이 드러났는데요. 그런데도 파렴치하기 이를데 없는 미국은 지금까지도 6.25전쟁이 저들이 도발한 북침전쟁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고 회피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철면피의 극치를 이룬다 하겠죠. ≪6.25와 미국≫, 윤정원씨 자리함께 했습니다.

사회자 : 안녕하십니까.

윤정원 : 네, 안녕하세요.

사회자 : ≪한≫반도에서 6.25전쟁의 포성이 울린 때로부터 52년이 됐는데요. 우리 민족에게 헤아릴 수 없는 참화를 들씌운 6.25전쟁은 철두철미 미국의 주도세밀한 계획과 준비밑에 감행된 북침전쟁이죠.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6.25와 미국≫, 이런 화제로 얘길 좀 나눠볼까해가지고 이렇게 모셨습니다.

윤정원 : 미국이 6.25전쟁의 도발자라는 건 이미 만천하에 드러날데로 드러났다고 생각을 합니다. 미국은 우리 민중, 민족에게 치유할 수 없는 원한의 상처를 입힌 6.25전쟁의 도발자예요. 해방자의 탈을 쓰고 ≪한≫반도의 38도선 이남을 강점한 미제는 그 첫날부터 이북까지 병탄하기 위해 북침전쟁준비를 계획적으로 추진시켜 왔어요. 특히 이북에 민중중심의 참다운 자주독립국가가 세워지고 그 위상이 날을 따라 높아지는데서 불안을 느낀 미국은 이북을 요람기에 압살하려고 북침준비에 더욱 박차를 가했죠.

사회자 : ≪한국≫을 군사기지로 전락시킨 미국은 저들의 침략전쟁의 돌격대로 써먹을 목적으로 식민지 용병인 국방부를 서둘러 창설하는 한편 현대적인 전쟁장비들을 하늘과 바다를 통해서 대대적으로 끌어들이지 않았습니까.

윤정원 : 그렇습니다. 국방부를 북침전쟁의 토대로 **** 미군부의 호전광들은 북침을 고취하는 한편 1950년에 들어서는 이승만일당을 내세워 북으로부터의 남침위협이라는 허위선전을 유포시키는 것과 함께 무력을 38선 부근에 집결시키고 북벌태세를 갖추도록 했던거죠. 사실 미국의 사주하에 이승만일당은 전쟁준비의 일환으로 이른바 후방안전을 기하기 위해 애국민중들에 대한 파쇼탄압을 유례없이 감행했어요. 그래서 1949년 한해동안에만도 10만9000여명의 무고한 애국민중이 학살당했고 12만4600여명이 부상당했어요.

사회자 : 어떻습니까. 6.25북침전쟁은 이북 전지역에 대한 공격을 개시한 날짜이지 사실에 있어서 벌써 그 이전부터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윤정원 : 그럼요. 6.25전쟁 개시 이전부터 38선일대에서는 전쟁***총포소리가 울렸거든요. 1949년에 들어서면서 미국의 무력침공은 38도선 전역에서 보다 조직적이며 대규모적인 군사작전의 성격을 띠고 감행이 됐습니다. 미호전광들의 직접적인 지지와 사주하에 이승만일당은 ***과 ***, ***을 비롯한 38선 중부로부터 서부에 이르기까지 이북지역에 대한 군사적 도발을 매일과 같이 벌였거든요. 1949년 10월 육군참모본부에서 있은 사단장회의라는데서 미군사고문단 단장 로버트는 ≪38선 이북지역에 대한 공격은 나의 명령에 따라 진행되었으며 또한 **** 준비됐다≫ 이렇게 떠들었어요.

사회자 : 미국의 북침도발책동은 1950년에 들어서면서 더욱 노골화됐습니다. 전쟁의 위험이 시시각각 겹쳐져 오는 정세하에서 이북에서는 조국과 민족앞에 닥쳐온 엄중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평화적 조국통일을 위한 방안들을 연이어 내놓고 그에 호응해 나설 것을 호소했죠. 그러나 미국과 이승만일당은 이북의 성의있는 평화통일제의에 노골적인 전쟁도발책동으로 대답해나섰잖아요.

윤정원 : 그렇습니다. 그들은 50년 6월 9일에 38선 이남 전역에 특별사찰경비를 실시하고 11일에는 비상경계에 대한 작전명령을 하달했고 13일에는 준비상계엄령을 선포했습니다. 이어 6월 19일 서울에서는 트루먼대통령의 특사인 덜레스가 국회에서 전쟁열을 고취하는 연설을 했고 일본 도쿄에서는 미극동군사령관 맥아더와 미국방장관 존슨, 미합동참모본부의장 브레들리간에 북침을 위한 밀담이 있었습니다.

사회자 : 미국이 6.25전쟁의 도발자라는 것은 호전광 덜레스가 38선을 시찰하면서 북벌계획을 최종적으로 검토한 다음 6월 22일 고급장교회의에서 한 말을 통해서도 명백히 드러났다고 보는데요.

윤정원 : 그렇지요. 덜레스는 고급장교회의에서 ≪내가 이번에 트루먼대통령의 특사로 ≪한국≫에 오게 된 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극력 추진해온 북진준비전형을 계획, 검토하고 만일 부족점이 없다면 북진을 개시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제기하기 위해서이다. 벌써 모든 준비는 빈틈없이 잘됐다고 생각한다. 드디어 취지는 성취되었다. 준비가 완료된 이상 하루라도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당신들이 전쟁을 일으키기만 한다면 그후의 모든 문제는 미국이 책임지고 해결할 것이다≫ 이렇게 역설했죠.

그리고 그는 이승만역적에게 취지는 성취됐으니 이북에서 먼저 남침하였다는 역선전과 동시에 북침을 개시하라고 명령을 하고 일본으로 날아갔죠. 덜레스는 도꾜에서 미국방장관, 미합동참모본부의장, 미극동군사령관과 4자밀담을 벌였는데요. 밀담끝에 미국은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려 한다는 성명이 발표됐고 도쿄밀담에서 모아진 호전광들의 북침계획은 6월 24일 워싱턴에서 열린 미합동참모본부와 미국방부 국무부의 연석회의에서 그대로 통과가 돼서 미대통령 트루먼에 의해서 최종적으로 비준이 됐습니다.

사회자 : 1950년 6월 25일은 일요일이였잖아요. 미국이 6월 25일을 전쟁개시일로 선택한데는 교활한 속셈이 있지 않습니까.

윤정원 : 그렇죠. 그에 관해서는 당시 주≪한≫미군사고문단 단장 로버트의 말을 통해서 잘 알 수가 있는데요.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왜 25일을 택하게 됐는가. 여기에는 우리의 충분한 의도가 있다. 6월 25일은 일요일이다. 기독교 국가는 일요일을 안식일로 하고 있다. 그러니 기독교국가인 우리가 일요일에 전쟁을 개시했다는 것을 믿을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먼저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믿게 하기 위해서다.≫

사회자 : 제반 사실은 미국이야말로 6.25전쟁의 도발자라는 걸 똑똑히 보여주고 있는데요. 어떻습니까. 미제는 저들의 힘을 믿고 청소한 이북을 단숨에 먹어보려고 북침전쟁을 단행했지만 결국은 쓰디쓴 참패를 당하고 항복하지 않았습니까.

윤정원 : 그렇죠. 미제는 6.25북침전쟁에 자기 나라 육해공군무력의 3분의 1, 그리고 15개 추종국가 군대들과 국군을 포함한 200여만의 대병력과 방대한 양의 최신 전투기술, 기재들을 투입을 했지만 이북 민중을 굴복시킬 수 없었어요. 절세의 애국자이시고 전설적 영웅이시며 백전백승의 강철의 영장이신 김일성장군님의 영도를 받은 이북의 군대와 민중들의 영웅적 투쟁에 의해서 미국은 수치스러운 대참패를 당하고 마침내 전쟁을 일으키고 3년만인 1953년 7월 27일 항복서에 도장을 찍지 않을 수 없었던 거죠.

사회자 : 미호전광들 스스로가 6.25전쟁은 잘못된 장소에서 잘못 선택한 대상에 대한 잘못한 전쟁이었다고 하는 것처럼 6.25전쟁을 통해 미국의 강대성의 신화는 산산조각나고 미국은 이 때부터 내리막길에 들어서게 됐죠.

윤정원 : 그렇죠. 그런데 지금 미국의 부시호전광은 6.25전쟁에서 교훈을 찾을 대신 이 땅에서 또다시 침략전쟁을 도발하기 위해서 광분하고 있잖아요. 부시호전광은 북을 제1주적으로, ≪악의 축≫으로 몰아붙이면서 어떻게하나 ≪한≫반도에서 불집을 터쳐 전≪한≫반도를 병탄하려고 획책하고 있습니다.

사회자 : 그렇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오판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1950년대의 교훈을 망각하고 또다시 제2의 6.25전쟁을 도발한다면 그건 저들의 종국적 파멸만을 가져오게 될 겁니다. 부시호전집단은 이것을 똑똑히 알고 절대로 경거망동하지 말아야 하며 우리 민중과 세계 평화애호민중들의 일치한 요구대로 새 전쟁도발책동을 즉각 중지하고 주≪한≫미군을 비롯한 일체 침략무력을 이 땅에서 철수해야 할겁니다. 지금까지 말씀 감사합니다.

윤정원 : 감사합니다.

사회자 : ≪악의 축≫망발을 떠들며 ≪한≫반도 정세를 긴장시켜 이북 침략의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부시호전집단의 책동은 신통히도 52년전 ≪한≫반도정세를 긴장시켜 6.25전쟁을 도발한 당시의 미국호전집단을 연상케하죠. 부시호전광이 이 땅에서 또다시 북침전쟁을 도발한다면 6.25전쟁에서 참패당한 선행자들의 운명보다 더 비참한 운명에 처하게 되리라는 걸 알아야 할겁니다.

 

양키들의 살육만행을 돌이켜본다

91/06/25-26 ≪구국의 소리≫ 6.25전쟁 52주년 집중방송

지난 2차 세계대전시기 히틀러 독일이 포로들과 양민들을 수용하여 가두고 강제노동시키고 무리로 학살한 만행이 종전후 국제사회의 규탄을 불러일으켰는데요. 하지만 6.25전쟁을 전후해서 미군이 이 땅에서 감행한 양민집단학살만행은 짐승도 낯을 돌릴 것으로써 히틀러 독일의 만행을 훨씬 능가하고 있습니다. 산사람의 머리위에 못을 박고 또 머리를 켜고 도끼로 장작을 패듯 사지를 찍어낸 미군의 만행. 우리 민족은 미군이 감행한 천추에 용납못할 귀축같은 만행을 기어이 천백배로 갚고야 말겁니다. ≪양키들의 살육만행을 돌이켜본다≫, 김현규씨 모시고 임현아씨 얘기 나눠드립니다.

임현아 : 안녕하세요.

김현규 : 안녕하십니까.

임현아 : 미제침략자들이 6.25전쟁을 일으킨 때로부터 52년이 되었는데요. 6.25전쟁은 미국이 ≪한≫반도를 지배하고 나아가서 세계제패를 실현하기 위해 감행한 침략전쟁이었습니다. 침략전쟁을 일으킨 양키침략자들은 이 땅 이르는 곳마다에서 피비린내나는 살육만행을 감행했는데요. 양키침략군의 대살육만행은 비단 6.25전쟁시기만이 아니었죠. 양키침략군은 이 땅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부터 우리 민중에 대한 살육만행을 업으로 삼아오고 있는데요. 이 시간에는 미제침략군이 얼마나 악랄하게 우리 민중, 우리 민족을 멸살시키려고 책동했는가 하는 걸 가지고 얘기를 나눴으면 하는데요.

김현규 : 양키침략자들이 이 땅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어느 하루도 우리 국민들의 피가 흐르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모조리 죽이고 모조리 빼앗고 불태우고 파괴해 버리는 것이 그들의 지배전략이었죠. 미제침략자들은 1946년 5월 이른바 ≪정판사위조지폐사건≫을 조작해내고 그에 관련시켜 2000여명의 서울시민들에게 총탄을 마구 난사해서 수많은 시민들을 죽였고 1948년 8월에는 전라남도 무안군 하이도에서 많은 농민들을 학살하는 천인공노할 살육만행을 저질렀습니다. 1946년 8월 15일에 감행한 화순탄광노동자들에 양키침략자들의 학살만행은 그들이야말로 인간백정들이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미제침략군의 강제수탈에 항의하는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광주시로 가던 2600여명의 노동자들을 양키침략군은 기동대와 탱크, 군용기까지 동원해 총격을 가하고 대검으로 찌르고 탱크로 깔아뭉개 수백명을 무참하게 학살했습니다. 침략적이고 약탈적인 미군정통치에 항거해나선 노동자들의 1946년 총파업과 전민중적인 반미항전으로 불려진 1946년 10월 민중항쟁도 양키침략자들은 피비린 살육전의 대상으로 삼았던 겁니다.

임현아 : 1947년 8월 15일을 전후한 불과 50일동안에 서울시에서만도 근 3만여명의 무고한 주민들이 양키놈들에 의해 학살당하고 1만1000여명이 투옥됐고 1947년 8월 한달동안에는 2200여명이 학살되고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양키놈들의 살육만행은 1948년 5.10단선을 전후해 더욱 악랄하게 감행됐죠.

김현규 : 이 땅을 무력으로 불법 강점한 미제는 ≪한≫반도를 분단해 ≪한국≫을 영원한 식민지 군사기지로 만들기 위해 이승만괴뢰정권조작에 광분했습니다. 한편 이를 위해 이른바 ≪유엔조선위원단≫을 선거에 끌어들였는데요. 이를 계기로 전민중적인 2.7구국투쟁이 벌어졌습니다. 미제침략자들은 2.7구국항쟁자들을 야수적으로 탄압해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8400여명을 체포투옥했습니다.

특히 이승만정권조작을 위한 1948년 5.10단선을 전후해 미제침략자들의 학살만행은 더욱 광란적으로 벌어졌습니다. 선거일이 임박한 5월 7일, 또 5월 10일 선거에까지의 사이에만도 무려 5만여명의 애국민중을 체포투옥했고 선거당일에는 500여명의 주민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5.10단선을 반대해 싸운 제주도 민중들에 대한 대중적 학살만행은 양키침략군이야말로 인간야수들임을 똑똑히 보여주었습니다. 당시 미제침략군은 ≪미국은 제주도땅이 필요한 것이지 제주도민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전 섬에 휘발유를 붓고 죽여도 좋다≫는 ***살인명령을 내리고 육해공군 합동작전을 벌였는데 1948년 4월부터 10개월 기간에만도 3만5000여명의 무고한 제주도민들을 학살했습니다. 제주도민들에 대한 학살만행은 1950년 6.25전쟁전까지도 계속됐는데요, 미제살인귀들은 제주도민의 3분의 1에 달하는 7만여명의 주민들을 무참하게 학살했습니다. 앞에서 얘기된 건 미제침략군 6.25전쟁전까지 이 땅에서 감행한 학살만행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임현아 : 미제침략자들이 일으킨 6.25전쟁은 민족말살을 목적으로 한 침략전쟁이었죠. 역사에는 크고 작은 전쟁들이 수없이 많았지만 비단 6.25전쟁때 미군이 감행한 치떨리는 살육만행과 같은 사변은 없었지 않습니까.

김현규 : 그렇죠. 지난 3년간의 전쟁기간에 양키놈들의 학살만행은 정말 야만적이었습니다. ≪설사 그대들앞에 있는 것이 어린이나 노인이라고 할지라도 손이 떨려서는 안된다. 죽이라. 그렇게 함으로써 그대들은 자신들을 파멸에서 구원해낼 것이며 또 유엔군 사병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이것이 당시 미8군사령관놈이 내린 살인명령이었습니다. 이 살인지령에 따라 양키침략군놈들은 이르는 곳마다에서 무고한 우리 민족을 닥치는 대로 죽였습니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충청북도 영동군 노근리에서의 양키침략자들의 양민학살사건은 그들이 저지른 학살만행의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6.25전쟁도발후 8월까지의 기간에만도 수천명의 주민들을 학살했고 대전교도소에서는 1800여명을 학살했습니다. 또 1950년 9월 16일 인천에 상륙한 미제야수들은 하루동안에 1300여명의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했고 9월 28일부터 11월 13일까지의 기간에 무려 5만5800여명의 주민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검거, 투옥, 학살하는 만행을 감행했습니다. 그리고 1950년 여름부터 1951년 여름까지 전쟁 1년동안에 양키침략군에 의해 학살된 주민은 무려 1백만여명에 달합니다.

임현아 : 양키침략자들에 의한 살육전은 이남땅에서만 감행된 것이 아니죠. 양키 침략군이 이북지역을 일시적으로 강점했을 때 감행한 민간인 학살만행은 그 수법과 규모, 잔인성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다고 하겠는데요.

김현규 : 그렇죠. 그 진상의 일단을 찾아보아도 분격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황해도 신천군을 일시강점했던 양키놈들은 신천군 주민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3만5380여명을 학살했는데 미제살인귀들은 무고한 주민들을 총으로 쏴죽이고 대검으로 찔러죽이고 사지를 묶어 강에 수장하고 생매장하고 불에 태워죽이고 소달구지에 매어 사지를 찢어 죽였습니다. 그리고 이마에 못을 박고 톱으로 얼굴을 켜고 코와 귀를 떼고 눈알을 뽑고 임신부의 배를 가르고 여성의 국부에 말뚝을 박고 여성들의 유방을 도려내는 등 그 잔인성은 야수들도 얼굴을 붉힐 정도였습니다. 양키침략군은 황해도의 안악에서 1만5000여명, 은률에서 1만3000여명, 평산에서 5200여명, 그리고 해주에서 6600여명, 평양에서 1만5000여명, 또 남포에서 1500여명, 안주에서 5000여명을 학살한 것을 비롯해서 점령한 모든 지역에서 대량 살육만행을 감행했습니다.

지난 전쟁시기 양키들이 감행한 학살만행은 세계 역사에 악명을 기록한 징기스칸의 잔인성과 히틀러 나치스 살인마의 살인범죄를 훨씬 능가했습니다.

임현아 : 양키침략자의 범죄적 만행은 휴전후 오늘까지도 계속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들은 우리 국민, 우리 민족을 열등민족으로 여기면서 온갖 범죄행위를 일삼고 있죠.

김현규 : 이 땅에 도사리고 있는 미군기지주변들에서는 물론 양키침략군의 발길이 닿은 곳마다에서는 우리 국민들의 피가 흐르고 온갖 범죄행위들이 감행되고 있습니다. 양키놈들은 산에서 나물을 캐는 여인과 어린이들을 꿩이라고 쏴죽이고 들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노루이라면서 쏴죽였습니다. 또 어린 구두닦이 소년을 도둑으로 몰아 궤짝에 넣어 헬기에 실어다 던져죽인 부평구두닦이소년헬기사건, 1960년 1월 2일에 자행된 동두천여인삭발사건, 1962년 1월 충청북도 옥천 버스정류소에서 일어난 총격살인사건, 1964년 1월 강원도에서 감행된 12살난 소녀윤간사건을 비롯해서 그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이 땅을 들썩이게 했던 윤금이여성에 대한 야수적 살해사건은 오늘도 국민들의 기억속에 생생히 남아 있어요. 광주를 피바다에 잠그고 수천명의 민중항쟁자들을 죽이게 한 것도 양키침략군입니다. 학살, 강간, 강도, 절도, 이것이 양키침략군이 이 땅에서 저지르고 있는 행위입니다. 인류역사에는 점령군의 만행자료들이 적지않게 기록되어 있지만 ≪한국≫강점 미제침략군들처럼 그토록 강점지역 주민들을 야수적으로 학살하고 온갖 만행을 감행한 예는 없습니다.

임현아 : 양키침략자들의 민족멸살책동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고 오늘에 와서 광란적으로 벌어지고 있죠. 그것은 이 땅에서 새로운 핵전쟁을 일으키려고 책동하고 있는데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현규 : 네, 특히 전쟁광신자 부시가 집권한이후 이 땅에는 전쟁의 먹구름이 무겁게 드리우고 있고 핵전쟁폭발 위기가 임박해지고 있습니다. 북에 대한 부시의 ≪악의 축≫망언은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것이라 하겠는데요. 부시는 북에 대한 핵선제공격설까지 들고 나왔습니다. 부시는 이 땅에 각종 신형무장장비를 계속 들이밀고 북침전쟁을 노린 대규모 전쟁연습을 벌여놓으면서 ≪한≫반도 정세를 격화시키고 있습니다.

오늘의 정세는 지난 1950년 6.25전쟁이 터졌던 그때를 방불케 합니다. 북이 없는 ≪한≫반도, 이북 민중 없는 우리 민족에 대해 생각할 수 없는 겁니다. ≪한≫반도에서 새 전쟁이 터지면 우리 민족은 공멸을 면치 못합니다. 미제침략자들이 일으킨 6.25전쟁 52년이 되는 오늘의 시점에서 양키침략자놈들이 지난 시기 이 땅에서 저지른 온갖 야수적인 범죄적 만행을 돌이켜볼때 그들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철천지 원수임을 실증해 줍니다. 우리 국민들은 전쟁광신자 부시행정부의 새 전쟁책동을 그대로 보고만 있으면 지난 시기에 비할 수 없는 더 큰 고통과 재난, 죽음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범국민적인 반미반부시투쟁, 여기에 국민의 생존과 민족의 존엄을 지키고 나라의 통일위업실현의 길이 있음을 명시해야 할 것이죠.

임현아 : 그렇습니다. 좋은 자리 마련해주셨는데요, 감사합니다.

김현규 : 네, 감사합니다.

 

6.15남북공동선언은 조국통일의 이정표

91/06/27 ≪구국의 소리≫ 오늘의 연단

역사적인 6.15공동선언발표 2돌을 지내면서 금강산에서 또 한차례 민족통일대축전이 있었죠. 남북의 각계층 민중들이 서로 어울려 손과 손을 뜨겁게 잡고 힘차게 부르는 통일노래는 금강산을 온 겨레의 통일열기로 끓게 했었는데요.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은 누구나 통일이 먼데 있는게 아니라 가까이로 다가오고 있다는걸 느꼈다고 합니다. 6.15공동선언발표이전에는 이런 걸 생각도 할 수 없었는데요. 지난 2년간에 걸친 통일운동의 발전은 6.15공동선언이야말로 조국통일의 이정표라는 걸 재삼 확증해주고 있다 할겁니다. 그럼 이 시간 첫순서로 ≪6.15남북공동선언은 조국통일의 이정표≫, 오일씨 말씀드리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역사적인 6.15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된지 2돌이 지났는데요. 지난 2년동안 남북공동선언의 기치를 높이 들고 전진해온 조국통일운동의 자랑찬 행로는 남북공동선언이야말로 오늘도 내일도 민족자주통일의 이정표라는 걸 뚜렷이 보여주었다 하겠습니다.

남과 북이 합의하고 세상에 선포한 남북공동선언은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을 지향하는데서 온 겨레가 확고히 거머쥐고 나가야 할 조국통일의 이정표입니다.

6.15공동선언은 우선 조국통일의 본질과 해결의 근본원리들을 아주 정확하게 표명했어요.

공동선언의 기본정신은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하는 겁니다. 우리 나라의 통일문제는 이 땅에서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끝장내고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의 자주권을 실현하는 문제이고 남북사이의 불신과 대결을 없애고 민족적 화해와 단합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이 조국통일문제는 어떠한 외세의 간섭도 허용할 수 없는 우리 민족내부의 문제이고 또 우리 민족 자신의 위업입니다. 모든 민족은 자기 운명을 자기가 책임지고 자기의 의사에 따라 자주적으로 개척해나갈 권리가 있어요. 그 누구도 민족의 자주권을 빼앗을 수 없고 침해할 수 없는 겁니다. 우리의 조국통일위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국통일은 우리 민족 자신의 문제이며 민족의 자주권에 관한 문제인 만큼 우리 민족이 주인이 되어 민족의 자주적 의사와 요구에 따라 민족자체의 힘으로 이룩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 민족만이 민족분열의 비극과 불행, 고통을 끝장낼 수 있으며 나라의 통일적 발전과 번영을 이룩할 수 있는 겁니다.

조국통일위업을 수행할 수 있는 힘도 우리 민족에게 있습니다. 그 어떤 외부세력도 조국을 통일하기 위한 우리의 투쟁을 대신할 수 없는 거죠. 6.15남북공동선언이 우리 나라의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갈데 관해 명백히 밝힌 것은 바로 이 때문인 겁니다.

6.15남북공동선언은 또한 통일문제를 가장 빠르고 순조롭게 해결해나갈 수 있는 근본방도를 밝히고 있다 하겠는데요. 남북공동선언에서 남과 북은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방안과 남측의 연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했습니다. 이것은 통일문제해결에서의 역사적인 전진이라 하겠어요.

아시다시피 남과 북에는 서로 다른 사상과 제도가 존재해 있고 또 어느쪽도 자기의 것을 양보하려 하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 이러한 조건에서 어느 한쪽의 제도에 의한 통일을 실현하려고 한다면 통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분열을 심화시키고 민족적 재난까지 초래할 수 있는 겁니다. 이로부터 남과 북에 있는 서로 다른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민족적 통일을 이룩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남과 북 어느쪽에도 피해를 주지 않고 순로롭게 평화적으로 조국통일을 실현할 수 있는 겁니다. 이처럼 우리 나라의 구체적 현실을 반영한 통일방도를 명시한 여기에 6.15남북공동선언이 새 세기 민족자주통일의 이정표로 되는 근거가 있다 하겠습니다.

6.15남북공동선언은 남과 북사이의 제도적 문제들을 풀어나가며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여러 분야에서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활데 관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밝히고 있는데요. 참으로 남과 북이 합의하고 온 민족, 온 세계가 지지하고 있는 6.15공동선언은 오늘도 내일도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을 위하여 온 겨레가 높이 들고 나가야할 민족공동의 통일의 기치이며 조국통일의 이정표입니다.

각계 민중은 민족자주통일의 이정표인 6.15공동선언을 고수하고 그 이행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지금 침략적인 외세와 그에 추종하는 이 땅의 반통일세력은 민족자주통일의 이정표인 6.15공동선언의 기본정신을 부정해 나서면서 민족적 화해와 단합, 통일의 길을 가로막고 대결과 전쟁열을 고취하고 있습니다. 우리 민중은 이를 절대로 용납할 수 없습니다.

지금 ≪6.15남북공동선언을 견결히 지켜 싸우자≫, ≪남북공동선언을 짓밟으려는 반통일세력들에게 역사의 철추를 내리자≫, ≪공동선언을 철저히 이행하여 민족자주통일 이룩하자≫는 각계 애국민중의 외침소리가 경향 각지에서 끊임없이 메아리치고 있는데요. 이 외침에는 오늘도 내일도 조국통일의 이정표인 6.15공동선언을 지켜 과감히 싸워나가려는 우리 겨레의 의지가 그대로 어려있다 하겠습니다.

비록 안팎의 반통일세력들의 준동으로 통일의 앞길은 순탄하지 않지만 6.15공동선언의 기치따라 전진하는 우리의 통일투쟁의 승리는 확정적입니다. 각계 애국민중은 ≪우리 민족끼리 조국을 통일하자≫라는 자주통일의 구호를 더 높이 치켜들고 모든 것을 민족공동의 이익에 복종시키며 사대와 외세의존을 배격하는 통일운동에 다같이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민족자주통일의 이정표인 6.15남북공동선언이 이행되어 7천만 겨레가 갈구하는 통일의 문은 기어이 열리고야 말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6.15공동선언이행에 조국통일이 있음을 명심하고 6.15공동선언을 시비질하는 이회창과 같은 반통일역적들의 책동을 저지파탄시켜야 하겠죠.

 

더이상 지켜볼 수 없다

91/06/24-25 ≪구국의 소리≫ 청년학생들과 함께

지난 18일 시민사회단체소속 회원 200여명이 서울의 용산에서 미군기지고압선피해자 전동록 죽인 주≪한≫미군 응징규탄대회를 진행했는데요. 규탄대회에는 주≪한≫미군의 만행에 분격한 각계 민중의 분노로 절정을 이루었죠. 그럼 우리 함께 서울대학교 학생 이진수씨의 글을 들어봅시다.

미군이 설치한 고압선에 감전되어 팔다리를 절단한해 1년 가까이 투병하던 50대의 노동자 전동록씨가 한맺힌 삶을 마감했다. 새겨보면 미군기지에 설치된 수만볼트의 고압선에 감전된 전씨가 병원에 실려온 그때로부터 근 1년간 우리 청년학생들 그리고 이 땅의 각계층 민중들은 애오라지 그의 소생을 바라며 얼마나 아낌없는 진심을 보여주었는가.

전동록씨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까지 묶고 한편으로는 주≪한≫미군을 상대로 한 피해보상을, 다른 한편으로는 전씨 치료를 위한 모금운동을 벌여온 우리 민중들. 그러나 미군의 범죄로 인한 상처는 약이나 사람들의 동정만으로는 치유될 수 없음을 새겨주려는 듯 전씨는 끝내 눈을 감았다.

춘하추동 계절은 바뀌고 흐르는 세월속에 **은 흘러간다. 하지만 전씨의 죽음이 그렇듯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의 죽음에서 주≪한≫미군으로 인해 겪는 우리 민중의 불행과 치욕의 어제와 오늘을 보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있는한 전씨만이 아닌 우리 모두가 제2, 제3의 전동록이 될 수 있음을 폐부로 느꼈기 때문이다.

반세기이상 이 땅을 불법강점한 그때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장구한 세월 해방자, **의 탈을 쓰고 자행한 미군의 만고대죄를 이 짧은 글에서 어찌 다 열거하랴.

이 땅의 명당자리들에 가시철망을 치고 거만하게 도사리고 있는 수많은 미군기지, 그것은 수난과 불행속에 몸부림치는 식민지 ≪한국≫의 참상을 담고 있는 축도이다.

거기서는 미군이 치외법권을 행사하며 매일 매시각 각종 악을 양산해내고 있다. 우리 민족에게 핵참화와 재난을 덮씌우는 전쟁의 본산지, 살육과 횡포의 발원지가 주≪한≫미군기지이다. 미군에 의해 민중의 존엄과 인권이 무참히 유린되는 사각지대가 주≪한≫미군기지이다.

젖먹이 어린이를 업은 여인을 붙들어놓고 집단적으로 윤간한 끝에 살인한 의정부집단윤간사건, 애어린 구두닦이 소년에게 절도혐의를 씌워 머리를 깎고 페인트칠을 한후 궤짝에 넣어 헬기로 실어다 내다버린 부평소년헬기궤짝사건, 동두천여인삭발사건, 왜관린치사건 등 사람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각종 살인범죄행위들이 주≪한≫미군기지를 둘러싸고 벌어졌다.

전동록씨도 그러한 범죄가 빚어낸 희생양이다. 이 땅에 미군이 없고 주≪한≫미군기지가 없었다면 어찌 그가 수만볼트 고압선에 감전되어 사지를 절단당하고 끝내는 목숨까지 빼앗기는 비참한 운명에 놓이게 되었겠는가.

그런데도 미국은 감전사고의 책임을 전씨의 부주의탓으로 내돌렸다니 분격을 금할 수 없다.

이러한 미군과 어찌 한 땅을 딛고 살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사람들은 투쟁하고 있다.

주≪한≫미군에 의한 범죄를 결단코 용납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안고 통일연대를 비롯한 각계층 운동단체들이 성명을 발표하고 거리시위를 벌이며 전씨의 피값을 받아내자고 호소하고 있다.

우리 청년학생들도 투쟁에 과감히 분기하고 있다. 지난 6일 부경총련은 전씨의 죽음과 관련해 발표한 성명에서 미국은 떠나라, 이제는 더이상 지켜볼 수 없다고 강력히 호소했다.

그렇다. 이제 더이상 지켜볼 수 없다. 연합군이 관리구역을 설치하고 이 땅의 노른자위들에 미군기지들을 더욱 크게 확장하며 우리 민중에 대한 식민지지배를 영구화하려는 미군의 날강도적인 속셈, 이제 더이상 지켜볼 수 없다.

전씨를 죽음에로 몰아가고도 나 몰라라하는 미군의 그 오만과 횡포, 더이상 지켜볼 수 없다. 전진아, 신차금 등 이 땅의 무고한 여성들을 살육하고도 한강물에 독극물을 방류하고도 미국은 자기들에게 책임이 없다며 적반하장격으로 날뛰었다. 그 오만과 횡포뒤에 따른 것은 우리 민중의 불행과 아픔, 전동록씨와 같은 죽음뿐이었다.

전씨의 죽음은 우리들에게 일과성으로 넘길 수 없는 투쟁과제를 남겨주었다. 주≪한≫미군철수투쟁은 계기를 맞고 전개되는 시한적 투쟁도, 주위환경에 따라 고조되는 감상적 운동도 아니다. 전동록씨와 같은 불행을 겪지 않기 위해서도 하루빨리 주≪한≫미군을 몰아내기 위해 온 민중이 떨쳐 일어서야 한다.

전동록씨는 *****. 그러나 그의 죽음은 온 경향을 반미항전으로 불도가니마냥 끓어번지게 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 민중은 윤금이, 서지원 등 미군의 범죄행위를 새겨주는 그 이름들속에 전동록씨도 함께 새겨넣고 반미투쟁의 불길을 더욱 높여 나갈 것이다.

 

난수

91/06/28 백산칼럼

우리는 80년대부터 방송을 들어왔다. 여기서 방송이란 물론 기지방송이다. 혁명기지에서 식민지 지하전사들에게 쏘아보내는 방송, 전위조직의 ≪구국의소리방송≫과 조선노동당의 ≪평양방송≫, ≪중앙방송≫들을 말한다.

처음에는 의례 그렇듯이 ≪구국의소리방송≫에 매료되었다. 지금도 건물옥상에서 그 ≪신비스런≫ 전파를 잡으려고 무진 애를 쓰던 모습들이 눈에 선하다. 잘 알다시피 공안당국의 방해전파는 ≪구국의소리방송≫이 가장 심하다. 그 때 우리의 화제는 늘상 ≪구국의소리방송≫이었다.

방송을 몇년 듣다보니 우리들의 화제가 ≪구국의소리방송≫에서 ≪평양방송≫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기백있는 주체방송화술과 감동적인 혁명가요들도 매력이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좋았던 것은 바로 김일성방송대학강좌였다. 우리들은 김일성방송대학강좌를 청강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런데 진짜 우리가 ≪평양방송≫에서 배운 것은 따로 있었다.

≪평양방송≫은 자정이 지나면 ≪난수≫를 읽어주었다. 혁명기지에서 식민지 지하전사들에게 보내는 암호메세지이다. 그 ≪난수≫소리는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고 생경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보다 기백있는 주체방송화술, 그보다 감동적인 혁명가요가 없었다. 우리는 조선노동당이 남녘의 동지들에게 보내는 암호전문을 들으며 가장 중요한 조선혁명의 진실, ≪하나의 조선≫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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