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위원장은
통일혁명의 영도자


6.15공동선언은
조국통일의 이정표

    제7호          주체91(2002)년 6월 16일(일)                                                                                   백두산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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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위원장의 명언

참된 애국은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속에 있다


김일성주석의 회고록에서

≪지원≫의 사상 (2)

실화로 본 김정일위원장

영화주제가 ≪새별≫이 태어나기까지


오늘의 새 소식

구국의 소리

통일 태양따라 6.15선언 기어이 실현하자
    (6/13-14)

통일로에 수놓아진 자랑찬 행보 (6/13-14)

평양상봉일화 (6/13-14)

조선중앙통신

이회창의 반민족적, 반통일적 죄행
    - 조평통 서기국 고발장 (6/14)

6.15북남공동선언 철저히 이행해 나갈 것
    - 조선중앙통신 논평 (6/14)

오늘의 주요 기사

미 장갑차 희생자 관련 미2사단장 면담결렬
    (민중의소리, 6/15)

미군전차에 짓밟힌 여중생의 꿈
    (통일뉴스, 6/15)

6·13 지방선거의 교훈을 찾자
    (고대서창 총학, 6/14)

여성 노동자 50여명 집단 단식 5일째
    (시그네틱스 노조, 6/15)


백산칼럼

공간패스


조선중앙방송 6/1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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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 초점

우리는 하나!


6.15 민족통일대축전 행사가 금강산에서 진행된다. 반통일세력의 방해가 아무리 집요해도 조국통일을 향한 민족의 의지를 꺽을 수는 없다. 행사를 계기로 민족적 단결을 힘있게 과시하고 반통일세력에게 철추를 내리자.
 

6.15민족통일대축전 막 올라
   (통일뉴스, 6/14)

6.15선언 2돐기념 민족통일대축전 개막
   (조선중앙통신, 6/14)

북 준비위, 행사참가 ≪선별제한≫ 규탄
   (조선중앙통신, 6/14)

해외동포대표단, ≪선별불허≫ 비난
   (조선중앙통신, 6/14)

금강산에서 어우러진 민족 한마당
   (통일뉴스, 6/15)

부문별 회담, 청년학생 여성 등 남북합의
   (통일뉴스, 6/15)

통일연대, 자주통일결의대회 열어
   (통일뉴스, 6/15)

7천만 겨레에게 보내는 호소문
   (민족통일대축전 참가자 일동, 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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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의 사상 (2)

≪세기와 더불어≫ 제1권 1장 2절

≪나라를 독립시키지 못할 바에야 살아서 무엇하겠습니까. 내몸이 찢기여 가루가 될지언정 일본놈들과 싸워이겨야 하겠습니다. 내가 싸우다 쓰러지면 아들이 하고 아들이 싸우다 못하면 손자가 싸워서라도 우리는 반드시 나라의 독립을 성취하여야 합니다.≫
   후날 삼사년이면 끝장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항일무장투쟁이 장기전으로 넘어갈 때 나는 아버지의 말씀을 다시 상기했고 해방후에는 북과 남으로 갈라져 상반되는 길을 걷고 있은 민족분렬의 장구한 비극을 체험하면서 그 말씀에 담겨있는 깊은 뜻에 새삼스럽게 숙연한 생각을 금치 못하였다.
   바로 그 말씀이 우리 아버지가 품고계시던 ≪지원≫의 사상과 신념, 조국광복에 대한 사상과 지향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영화주제가 ≪새별≫이 태어나기까지

김정일위원장연구1≫(주체91, 백두청년회)

조선예술영화촬영소에서 ≪새별≫이라는 예술영화를 만든 적이 있었다.
   다른 영화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도 주제가가 있었다.
   그런데 영화를 잘 만들지 못하여 이 영화는 몇 번 상영되고는 흔적을 감추고 말았다. 영화와 함께 주제가도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그 주제가는 창고에 보관된 영화화면에만 녹음되어 있을 뿐 ≪영화주제가집≫에도, ≪600곡집≫에도, 작곡가의 이름으로 출판된 ≪작곡집≫에도 오르지 않았고 심지어는 작곡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창작목록에조차 기록해두지 않았다.
   결국 이 노래는 세상에 생겨나지 않았던 듯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로부터 근 20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일꾼들과 자리를 같이한 김정일위원장은 예술영화촬영소를 지도하던 옛일을 감회깊이 회고하였다.
   김정일위원장은 그때 예술영화촬영소에서 만든 영화들 가운데 ≪새별≫이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김일성주석에게 영화를 올리기 위하여 작업필름을 딱 한번 본 생각이 난다고 하며 영화내용은 신통치 않았으나 영화주제가는 인상적이었다고 지적하였다.
   그 자리에는 문화예술부문사업을 맡아보는 일꾼들도 있었고 여러 명의 작가, 작곡가들도 있었다.
   그러나 20년전에 잠깐 나왔다가 자취를 감춘 그 노래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 그 노래를 아는 사람이 없단 말입니까.≫
   김정일위원장은 저으기 유감스러워 하더니 자신이 조용히 노래를 불렀다.

   저 하늘에 별들이 많고 많아도
   마음속에 빛나는 새별은 하나
   별이여 비쳐다오 등대와 같이
   우리 앞길 찬란히 비치어다오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환성을 올렸다.
   모두들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는데 김정일위원장은 노래 ≪새별≫은 잘 지은 노래라고 하면서 이 노래를 주제가로 하여 대본을 다시 써서 영화도 살리고 노래도 살릴 데 대하여 지적하였다.
   김정일위원장의 지도를 받은 일꾼들과 창작가들은 곧 노래 ≪새별≫을 지은 작곡가를 찾아갔다.
   영화를 다시 만들자면 주제가의 정확한 악보가 있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작곡가 자신도 그런 노래를 썼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을 뿐 노래의 가사는 물론 선율의 첫 소절조차도 제대로 떼지 못하였다.
   김정일위원장은 이렇게 작곡가 자신도 까맣게 잊어버린 노래의 가사와 선율을 생생히 기억하여 되찾아 주었으며 후에 다시 만들어진 예술영화 ≪새별≫은 국제영화축전에서 축전상을 받았고 주제가 ≪새별≫은 이북민중들이 즐겨 부르는 서정가요의 하나로 널리 보급되게 되었다.

 

통일의 태양따라 6.15공동선언을 기어이 실현하자

91/06/13-14 ≪구국의 소리≫ 평양상봉 및 6.15공동선언발표 2돌 기념방송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역사의 준엄한 폭풍우를 과감히 헤치며 이 땅의 애국민중은 민족자주의 궤도에서 통일대진군을 힘있게 벌여나가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6월 15일은 자주통일운동사에 새장을 열어놓은 역사의 날입니다.

6.15남북공동선언은 우리 민족의 앞길에 자주통일의 새 시대를 밝힌 등대이며 조국통일의 이정표입니다.

남북공동선언이 있으므로 해 민족분열의 역사로 가슴 아픈 연륜을 새겨온 우리 민족이 자주통일의 새 시대를 맞이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역사적인 남북공동선언에는 세계의 걸출한 정치원로이시며 조국통일운동의 위대한 영도자이신 김정일장군님의 탁월한 영도와 불면불휴의 노고가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은 비상한 예지와 식견으로 통일의 진로를 밝혀주시고 비범한 영도력과 애국애족의 의지로 통일의 돌파구를 열어가시며 위인의 풍모로 우리 민중을 한품에 안아 통일위업수행에로 이끌어가시는 조국통일의 위대한 태양이십니다.

장군님께서는 6.15공동선언이 발표된 후에도 뜨거운 동포애의 정으로 통일위업에 기여한 이 땅의 한 기업가의 영전에 친히 화환을 보내주셨고 여러 인사들에게 민족의 향취가 넘치는 선물을 보내주셨으며 각계 인사들을 만나주시고 그들을 통일에로 불러주셨습니다.

오늘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은 태양의 모습으로 온 민족의 가슴에 깊이 새겨져 있고 장군님 숭배심은 온 강토에 굽이치고 있습니다.

조국통일은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최대의 민족적 과제입니다.

우리는 만난을 무릎 쓰고 조국을 통일해서 민족분열의 비극의 역사, 치욕의 역사를 끝장내야 합니다.

남북공동선언에는 조국통일의 주춧돌을 마련하신 김일성주석님의 한평생이 어려있고 주석님의 유훈대로 나라의 통일을 실현하시려는 김정일장군님의 철석같은 의지가 맥박치고 있습니다.

통일의 태양이신 김정일장군님의 영도는 조국통일의 필승의 무기입니다.

온 민족이 김정일장군님의 영도를 받들고 남북공동선언을 철저히 관철해 나가는데 조국통일의 확고한 담보가 있습니다.

6.15공동선언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확고한 민족자주의 입장에 서서 외세가 우리 민족의 힘찬 통일진군을 가로막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미국은 이북을 ≪악의 축≫운운하며 핵위협을 가하고 있고 ≪한≫반도에서 끊임없이 긴장상태를 격화시키고 있습니다. 자기의 침략적 목적을 위해서는 남을 희생시키는 일도 예상사로 여기는 것은 미국의 체질화된 파렴치성의 표현이고 치유될 수 없는 악**입니다.

미국의 ≪한≫반도 침략책동이 계속되는 한 6.15공동선언은 이행될 수 없습니다.

우리 민중은 미국의 침략적 기도에 언제나 경각심을 높이고 반미투쟁을 강화해 이 땅에서 미군철수를 반드시 실현해야 합니다.

6.15공동선언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당국이나 특정한 당파나 민족구성원 누구나 할 것없이 통일에 이로운 일만을 해야 합니다.

오늘도 이 땅의 반통일세력은 6.15공동선언정신을 짓밟고 외세의 ****에 매달려 분열을 지속시키고저 온갖 배족적 행동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 민중은 동족도 안중에 없이 집권욕에 광분하고 있는 반민족반통일세력을 반대해 견결히 투쟁해야 합니다.

6.15공동선언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철석같은 통일의지를 갖고 모든 것을 통일에 복종시켜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조국통일의 날을 확신하고 통일운동을 힘차게 전진시켜 시대와 역사앞에 지닌 소임을 다하여 통일의 성공탑을 쌓아가야 합니다.

우리 민족의 통일운동은 언제나 낙관적입니다.

자주의 궤도를 따라 힘차게 달리는 우리 민중의 통일투쟁을 누구도 멈춰세울 수 없습니다. 우리 민중은 통일의 태양이신 김정일장군님의 영도따라 6.15남북공동선언을 기어이 관철해 통일된 조국에서 민족의 존엄과 영예를 온 세상에 떨쳐갈 그날을 앞당겨야 할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통일로에 수놓아진 자랑찬 행보

91/06/13-14 ≪구국의 소리≫ 평양상봉 및 6.15공동선언발표 2돌 기념방송

역사적인 6.15남북공동선언발표이후 지난 2년동안 우리 민족사에는 일찍이 없었던 경이적인 사변들이 일어나서 6.15공동선언의 정당성과 활력을 내외에 힘있게 과시했는데요.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을 힘있게 추동한 이 사변들은 통일로에 세워진 자랑찬 행보였다 하겠죠. 그래서 이 시간에는 이 역사적인 행보에 관해 오일씨 모시고 얘기 나누겠습니다.

사회자 : 안녕하세요.

오  일 : 안녕하세요.

사회자 : 6.15공동선언발표로 단절되었던 남북의 대화의 문이 열리고 당국과 정당, 사회단체, 정치인, 경제인, 언론인, 체육인, 종교인, 문예인, 학자 등 각계층 사이의 광범위한 내왕과 접촉이 이루어졌는데요. 공동선언발표와 더불어 막을 올린 첫 행보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이북의 평양교예단과 학생소년소년예술단의 서울에서의 공연이 아닙니까.

오  일 : 그렇습니다. 6.15남북공동선언 채택이후 평양교예단과 이북의 나어린 학생소년단의 서울에서의 공연은 민족분단이래 처음으로 있은 일이었죠. 이남 시민들은 눈시울을 적시며 아낌없는 찬사와 요란한 박수갈채를 보냈는데요. 학생소년들이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때는 주저없이 일어나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고 공연이 끝나자 관객들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어요. 서로 ******뜨거운 눈물을 ****. 이것은 그저 하나로 되지 못해 몸부림치는 민족숙원, 통일의 절절한 감동 바로 그것이었어요.

사회자 : 그렇죠. 겨레를 울리고 세계를 눈물에 젖게 한 이산가족상봉도 있었는데요. 이산가족상봉은 2000년 8월에 1차, 2001년에 2차와 3차, 그리고 올해 4월에 4차, 지금까지 네차례에 걸쳐 있었어요. 서로서로의 볼을 부비고 가슴마다에 얼굴을 묻으며 상봉의 감격을 눈물과 웃음으로 터뜨리는 가족과 친척들이었죠. 흩어진 가족, 친척들의 고향방문 참으로 갈라져 사는 겨레의 고통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통일의 이정표인 6.15남북공동선언으로 실현된 이산가족의 상봉은 흩어져 사는 혈육들의 한을 달래는 것을 뛰어넘는 민족적인 사변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오  일 : 그렇습니다. 이산가족상봉은 6.15공동선언으로 대립과 분열의 시대를 뒤로 하고 화해와 단결의 시대를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죠. 1985년에 이산가족상봉이 ******진행된 적도 있었지만 이번의 상봉들은 남과 북 가릴 것 없이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진행된 아름다운 상봉장면이었죠. 참다운 남북화해와 단결의 기쁨속에서 남과 북이 하나의 민족임을 다시금 느끼고 서로 하나가 되려는 ****했습니다.

6.15공동선언의 구체적인 첫 실천으로 진행된 이산가족상봉은 이처럼 이산가족뿐만 아니라 이남 동포들에게 6.15공동선언의 당위성을 더욱 깊이 인식하게 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남의 언론사 사장단일행의 평양방문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생각을 합니다.

사회자 : 2000년 8월 이남 언론의 거부들이라고 할 수 있는 58명의 언론사 사장단일행의 평양방문은 분단사상 처음있는 일이었고 특히 오랜 세월 사대와 외세의존사상에 지배되어 분열과 대결, 반공반북의 나팔수역을 해오던 언론의 우두머리들이 평양을 다녀와서 연북통일언론이 된 사실은 실로 놀라운 일이라 하겠어요.

북과 남의 언론기관들과 언론사들은 민족의 단합을 이룩하고 통일을 실현하는데 도움이 되는 언론활동을 적극 벌여나가야 한다고 언명한 남북언론기관들의 공동합의문에 남측을 대표하는 ≪한국신문협회≫ 회장이 북측을 대표해 ≪노동신문≫ 책임주필이 서명했었죠. 언론사 사장단일행의 평양방문과 남북언론기자들의 합의는 6.15공동선언이 통일로에 가져온 또하나의 커다란 행보였습니다.

비전향장기수들의 북송도 6.15공동선언이 가져온 자랑찬 행보였다고 보는데요. 말씀해 주실까요.

오  일 : 2000년 9월 2일 63명의 비전향장기수들이 북으로 송환되었습니다. 분열과 대결의 가장 큰  피해자였던 비전향장기수들의 북송은 남북공동선언을 직접 실천에 옮겨 이룩된 역사적 대사변이었다 하겠어요. 그들은 30내지 40년, 심지어 40년이상 죽음의 고문고초를 겪으면서도 자기의 사상을 버리라는 그런 전향서에 손도장찍기를 거절한 신념과 의지의 통일애국투사들이었어요. 온 국민은 남에서도 북에서도 그들의 북송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이 땅의 경향 각지가 축하의 열기로 끓었고 평양의 **연도가 환영인파로 차넘쳤죠. 사람들은 분단의 가장 큰 피해자들인 비전향장기수들의 북송을 목격하면서 6.15공동선언의 정당성과 활력을 재삼 폐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본인들이 강력히 주장하고 북측의 강경의 요구에도 그러나 그것만은 안된다고 남측이 오랫동안 거절했던 비전향장기수들의 북송은 참으로 분단의 장벽이 허물어지는 하나의 장쾌한 모습을 세계에 보여준 사변중의 사변이었다 하겠어요.

사회자 : 6.15공동선언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격동적인 행보에는 일반 국민들의 교류와 협력도 있었고 정치인들사이의 방문, 접촉들도 있었는데요. 백두-한라교차관광, 제주도민 이북방문, ≪한국미래연합≫창당준비위원장 박근혜여사의 방북에 대해 말씀해주실까요.

오  일 : 백두-한라 교차관광합의에 따라 남측 대표단 관광단 110명이 2000년 9월말 백두산**사, 그리고 평양시내를 관광했고 10월에는 북측 관광단이 한라산을 관광했어요. 백두에서 뿌리내리고 하나의 지맥으로 한라까지 이어진 백두산과 한라산의 관광, 여기에는 하나의 강토에서 하나되어 살려는 우리 겨레의 뜨거운 소망이 담아졌다 하겠어요.

지난 5월중순 역사적인 방북길에 오른 제주도민≪북한≫방문단 255명은 5박 6일동안 평양과 백두산, 묘향산 등을 둘러보고 돌아왔습니다. 이 방문은 6.15이후 제주도민들이 감귤과 당근 2만톤을 북에 보내준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북의 민족화해협력협의회의 공식초청에 따라 이루어졌습니다.

남측의 이름있는 정치인인 박근혜여사가 올해 5월중순께 방북했어요. 김정일장군님께서 박여사를 열렬히 환영하시고 여사를 위하여 만찬을 마련하셨다고 합니다. 박여사는 이번 기회의 방문은 6.15남북공동선언이 있었기에 실현될 수 있었고 6.15공동선언을 이행하여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공동발전을 함께 이룩하자고 얘기했어요. 이것은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정견의 차이를 넘어 서로의 마음을 합쳐 나갈 수 있다는 것을 확연히 보여주었고 6.15공동선언의 의의와 활력을 역력히 보여주었다 하겠어요.

사회자 : 그렇죠. 어떻습니까. 2000년 10월에 함께 한 대축제도 6.15가 낳은 자랑찬 행보였다고 봅니다. 예술축제도, 체육축제도 아닌 북의 정치축제에 참석했으니까요. 남에서 간 14개 정당, 단체인사 42명이 북의 노동당창건 55돌기념에 참석했어요. 이건 6.15이전에는 상상도 못한 일이죠. 북에서 보내온 항공기를 타고 42명의 집단이 평양축제에 참가했으니 이는 민족통일운동사의 새로운 화폭이었고 겨레의 앞날을 축복하는 송가였다 하겠어요. 6.15공동선언이행을 위한 남북의 각계 민중의 상봉모임들도 있었는데요. 이에 대해 정리해주실까요.

오  일 : 2001년 5월부터 7월까지의 사이에 대규모 상봉모임들이 금강산에서 있었습니다. 남측의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소속 노동자 500여명과 북측 노동자대표 500여명이 참가한 5.1절 통일대회, 남측의 40여개 시민단체대표들을 포함하여 남북, 해외 수백명의 대표들이 참가한 민족통일대토론회, 농민들도 노동자들과 함께 조국통일의 당당한 주력군이라는 걸 내외에 과시한 6.15공동선언관철을 위한 남북농민통일대회 등이 있었죠. 참가자들은 일치하게 6.15공동선언의 정신따라 자주통일을 이룩해야 하며 이를 위한 연대연합의 중요성을 강조했어요.

사회자 : 그런데 어떻습니까. 새 세기의 첫 광복절기념일을 계기로 남과 북, 해외의 동포들이 평양에서 성대히 진행한 2001년 8.15민족통일대축전은 민족통일운동사에 커다란 자국을 남긴 자랑찬 행보였다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오  일 : 정말 그렇습니다. 8.15민족통일대축전은 남과 북, 해외의 3자가 한자리에 모여 치른 매우 의의깊은 통일축전이었어요. 특히 남에서 220여개 정당, 단체대표 300여명이 참가함으로써 축전의 거족적 성격을 보여주었습니다. 노동자, 농민, 정치인, 종교인, 문학예술인, 청년학생 등 이남의 각계층을 망라한 대표들이 여기에 참가했습니다. 축전참가자들은 ******* 목청껏 불었어요. 그 아무리 높은 대결의식도 또 아무리 저급한 분열공작도 하나되고자 하는 통일의 이념과 통일을 이루려고 하는 민족앞에서 순간에 허물어져 버린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었다 하겠습니다. 남과 북, 해외 대표들이 분단이후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진행한 통일대축전은 6.15공동선언에 따라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통일하려는 온 겨레의 확고한 의지를 내외에 과시한 거족적인 통일행사였으며 통일로에 커다란 자국을 남긴 자랑찬 민족대단합의 마당이었다 하겠습니다.

사회자 : 6.15공동선언의 정당성과 활력에 관해 말할 때 남북당국의 대화와 접촉에 대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어떻습니까.

오  일 : 그렇습니다. 당국사이의 대화와 협력은 사실상 6.15남북공동선언이행에서 핵을 이룬다 하겠어요. 남과 북사이의 대화와 접촉의 긍정적인 결실만이 공동선언의 내용을 실천에 옮겨놓기 때문이죠. 아시다시피 **는 극한점에 달한 미국의 대북고립압살정책과 그에 추종하는 이회창을 비롯한 이 땅의 반통일세력들의 악랄한 책동으로 ≪한≫반도에 엄중한 정세가 조성되고 남북대화가 중단되었었죠. 7차 남북장관급회담이 열리지 못하고 있었고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는 한차례 만남으로 끝나고 온 겨레가 안타깝게 기다리고 있는 신의주-서울 사이의 철도연결도 지연되고 있었구요. 그러나 지난 4월 5일 발표된 공동보도문의 발표는 6.15공동선언의 활력을 내외에 과시했습니다.

김대중대통령의 특사로 평양을 방문한 임동원청와대특별보좌역과 이북당국사이에 진행된 회담에서도 쌍방은 역사적인 6.15남북공동선언의 기본정신을 존중하고 ≪한≫반도에 긴장상태가 조성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과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풀어나가려는 공동선언의 합의사항에 따라 그동안 일시 동결되었던 남북관계를 원상회복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제4차 이산가족의 상봉도 이 공동보도문이 발표된 이후 이룩된 겁니다. 4월 5일에 남북당국사이의 공동보도문발표는 통일을 학수고대하는 온 겨레를 끝없이 기쁘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공동보도문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그에 추종하는 이회창일당의 매국배족적 행위로 말미암아 6.15공동선언이행이 지체되고 있습니다.

사회자 : 하지만 총제적으로 보면 말이죠, 지난 2년동안 통일운동사를 빛나게 장식한 이 경이로운 행보들은 6.15남북공동선언의 견인력과 정당성, 그 활력을 남김없이 보여준다 하겠습니다.

6.15공동선언을 반대하는 미국과 이 땅의 반통일세력들의 책동으로 해서 지난 2년동안 겨레의 통일운동에는 시련과 난관도 적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 어떤 힘으로도 6.15공동선언의 기치를 높이 치켜든 우리 민족의 자주통일진군을 막을 수 없었으며 조국통일운동은 자주의 궤도따라 힘차게 전진해 왔습니다. 그러나 6.15공동선언실행의 행보는 결코 순탄한 대로가 아닙니다. 문제는 각계 애국민중이 정세의 흐름을 똑바로 인식하고 6.15공동선언을 파기하려고 책동하고 있는 미국과 이회창일당의 온갖 작태에 사상과 이념, 정견의 차이를 뒤로 미루고 단결의 전략으로 맞서야 합니다. 그래야 조국통일의 이정표인 6.15남북공동선언이 자주의 궤도따라 힘차게 전진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오  일 : 감사합니다.

 

평양상봉일화

91/06/13-14 ≪구국의 소리≫ 평양상봉 및 6.15공동선언발표 2돌 기념방송

 안녕하세요. 임현아입니다.

평양상봉은 갖가지 뜻깊은 일화들을 낳았는데요. 잊지 못할 일화들 중 일부를 여러분과 함께 되새겨보겠습니다.

역사적인 평양상봉과 남북정상회담은 자연의 축복속에 막을 열었습니다. 평양상봉이 있기 하루전인 6월 12일 오후 6시 40분쯤 서울 북부, 경기지역 하늘에서 한줄기 시원한 소나기가 내린뒤 칠색 영롱한 쌍무지개가 20분간 비껴 있었죠. 이를 본 서울 시민들은 내일로 다가온 정상회담을 축하하기 위한 것 같다, 회담의 성공을 예고하는 청신호같다고들 입을 모았었는데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김대중대통령과 상봉하시는 날을 앞두고 나타난 서울 상공의 쌍무지개. 결단코 무심히 볼 수 없는 신기한 자연현상이죠.

평양상봉의 2박3일간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우리 민중의 마음속에 통일의 영수로, 친근한 어버이로 장군중의 장군으로 더욱 가까이 다가오셨는데요. 세인의 예상을 깨고 친히 공항에 영접 나오신 김정일장군님께서 김대중대통령과 처음 상봉하시는 장면은 우리 가슴 속에 신선한 충격과 감동, 기쁨을 전해주는 뜻깊은 장면이었죠. 그 역사의 장면은 신문편집에서 전례없는 형식을 낳았습니다.

≪어머 여보 이것좀 봐요.≫

≪뭘 말이야? 오늘자 경향신문왔어. 아니 이게 뭐야 1면이 온통 사진으로 꽉찼네.≫

≪그러게 말이예요. 전례없던 형식이잖아요.≫

≪내 신문기자 15년에 이런 편집방식은 정말 처음이야. 사진설명조차 단 한마디도 없잖아.≫

≪그래도 이 한장의 사진은 수백수천마디 말로도 다 표현할 길 없는 많은 의미를 가장 강렬하게 표현하는게 아닐까요.≫

≪정말 그래. 이 사진을 보니까 감동이 절로 차오르고 낙관이 생기거든. 어제 TV에서도 봤지만 말이야. 김정일국방위원장님은 정말 얼마나 멋진 분이셔.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던 사람들을 저 따뜻한 미소와 굳은 악수로 순간에 감동과 환희의 도가니에 몰아넣으셨잖아.≫

≪네, 정말 민족의 장래운명을 맡길 믿음이 가는 위대한 영수이세요.≫

≪여보, 우리 오늘자 이 경향신문을 잘 보관해두자구.≫

≪네.≫

내외 언론매체들이 앞다투어 평양발 정상회담소식을 전하던 2년전 6월이 감회깊이 떠올려지는 이 시각입니다. 그때 TV화면으로 무척 소탈하시고 거침이 없으시면서도 대단히 예의 밝으신 김정일장군님의 모습을 뵙고 우리 민중은 얼마나 감격했습니까. 김정일장군님의 숭고한 도덕과 깊은 사려를  말해주는 일화 가운데서 이산가족이 된 대통령내외의 얘기 여러분들도 기억하고 계시죠.

6월 14일 목란관에서 있은 일이었습니다. 장내의 폭풍같은 박수갈채속에 김정일장군님께서 김대중대통령과 함께 연회장에 들어서셨는데요. 자리에 앉으신 장군님께서 장내를 둘러보시다가 이희호여사가 **이 아닌 일반석에 앉은 걸 보게 되셨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김대통령에게 이산가족문제를 해결하자고 하면서 왜 대통령자신부터 이산가족을 만드는가고, 그래서 대통령이 이산가족문제에 그다지도 관심이 많은 모양이라고 하시면서 이희호여사를 자신의 곁으로 불러주셨는데요. 장내는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 연회장에 있던 사람들은 웃음과 함께 예절이 바르고 사려 깊으신 김정일장군님의 위대한 인간애에 매혹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김정일장군님은 참 유머가 풍부하세요. 6월 14일 목란관 연회장에는 6.15공동선언의 합의를 알리며 김대통령과 맞잡은 손을 높이 들어 흔드시는 김정일장군님의 존귀하신 모습은 역사의 화폭으로 남아 겨레를 격동시키게 했는데요. 그 역사의 화폭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되새겨보죠.

역시 6월 14일 목란관 연회장에서였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 김대중대통령과 함께 연탁에 나가시어 손을 맞잡아 들어올리시고 남북공동선언이 합의되었음을 알리시자 장내는 떠나갈듯한 박수갈채가 터져올랐습니다. 그러나 이 역사적인 순간을 촬영하지 못한 기자들은 울상이 돼 있었는데요. 마침 남측 보도관계를 책임진 책임관이 김정일장군님께 두분께서 손을 든 장면을 기자들이 찍지 못해 야단났습니다라고 하면서 기자들의 청을 들어주시기를 간절히 말씀드렸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면서 김대중대통령에게 그러면 우리 배우노릇을 한번 더 하자고 말씀하시며 연탁으로 나가셨는데요. 유머로 좌중의 분위기를 시종 화기애애하게 이끄시면서 기자들의 외람된 청도 허물없이 들어주시는 그분의 가식없는 한 풍모를 잘 알수 있는 일화였습니다.

평양상봉이 남긴 일화를 살펴볼수록 김정일장군님의 위인상에 더욱 깊이 끌리는데요. 역사에 기리 남을 뜻깊은 일화들과 더불어 역사적인 평양상봉과 남북정상회담의 나날들을 우리 민중은 결코 잊지 못할 겁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임현아, 함께 해주신 분, 이철, 신은경이었습니다.

 

공간패스

91/06/16 백산칼럼

요즘 축구해설에서 이만큼 자주 나오는 말도 드물다. 압박수비와 함께 공간패스는 현대축구의 상징과도 같다. 공간패스란 같은 편 선수들이 아니라 전방의 빈공간에 찔러주는 패스를 말한다. 그러므로 공간패스는 선수들의 수준이 높고 호흡이 잘 맞아야만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상대골문근처의 빈공간에 찔러준 공, 그 공을 향해 전력질주하는 선수, 이어 작열하는 결정적인 슛... 생각만 해도 호쾌하고 멋있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펠레도 승리는 스타가 아니라 팀웍에서 나온다고 하는데, 조직활동도 축구경기 못지않게 팀플레이가 중요하다. 잘 짜여진 조직일수록 성원들간의 호흡과 배짱이 맞고 매사 치차처럼 잘 맞물려 돌아간다. 성원들 개개인의 기량도 물론 중요하지만 체계나 묘술이 얼마나 뛰어난가에 따라 조직력은 확연히 달라진다. 체계와 묘술이 뛰어날수록 성원들간의 협동작전은 물흐르듯 자연스럽고 성과적이다.

공간패스를 보면서 협동작전도 단계가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선수들을 향해 주는 패스보다 빈공간에 찔러주는 공간패스는 분명 한수 위의 패스다. 이심전심의 호흡과 폭넓은 시야, 그리고 튼튼한 체력과 발빠른 속도가 뒷받침될 때에만 가능한 공간패스. 성공만 하면 결정적인 순간을 만들어내는 위력적인 공간패스. 협동작전도 분명 공간패스와 같은 단계가 있는 것이다.

우리 대오는 얼마전에 청년주체주의자동지들에게 ≪6월 1일 통보≫를 발표하였다. 이 통보에는 ≪2004년 4대 전망목표≫와 ≪주체 91년 청년주체주의대오의 10대 맹약≫에 의거하여 ≪당면 20대 투쟁과제≫가 제출되어 있다. 그러고 보면 이 통보는 조직이 모든 성원들의 앞길에 찔러준 공간패스가 아닌가. ≪6월 1일 통보≫는 우리의 조직력과 협동작전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동지들이 이 공간패스를 받아 멋진 슛을 날릴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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