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세의 한울님
 
 
력사의 주도자
 
 
 
 
오 익 제
 
 
평양출판사
 
주체88(1999)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신 김정일원수께서
열병대오에 답례를 보내시였다.
 
세계 여러 나라 대표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시는
위대한 김정일령도자님
 
 
 
책머리에서 하고싶은 말
 

이 사람이 이남땅을 떠나 평양에 도착하여 공화국영주성명을 한지도 1년이 지나갔습니다. 1년이란 짧은 기간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저는 많은것을 알게 되고 만시지탄(晩時之歎)이기는 하지만 깨달음이 커서 수천년의 민족사를 체험한것만 같습니다.

이북은 무엇보다도 민족의 정기가 차고넘치는 땅입니다.

저는 이남에 있으면서 항시 북을 동경해온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북이 이토록 민족의 넋이 살아 생동하는 민족의 성역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북이 자주국임을 인지하면서도 사회주의란 어차피 민족문제를 차요시하게 된다는 종래의 인식과 편견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북땅은 전혀 뜻밖의 모습으로 이 사람의 심혼을 흔들어깨웠습니다.

이북에는 민족의 단일성과 그 존속의 오랜 력사를 증시하는 유물들과 고적들이 수많이 발굴정리되고 민족사가 옳바로 정립되여있습니다.

애국애족의 리념은 이북사회의 정신적지주를 이루고 어디를 가나, 누구를 만나보나 자주정신의 떳떳함과 주체의 력사속에 살고있는 긍지에 넘쳐있었습니다.

주체성과 민족성은 오래전부터 이북사회의 체질적생리로 되여있고 그 당위의 힘으로 만난을 이겨나가고있습니다.

그 힘은 실로 상상을 초월하는 력사에 전무후무한것입니다.

구쏘련과 동구권이 무너지는 세계적인 파동에도 조금도 그 자태를 흐트리지 않고 거연히 솟아있는 이북사회의 위상도, 민족의 어버이 김일성주석님의 뜻하지 않는 서거와 련이은 자연재해에도 안정을 잃지 않고있는 자태도 다 이 막강한 저력의 과시로 됩니다.

위대한 김정일령도자님은 20세기의 기적을 낳았습니다.

제국주의는 이북을 사회주의의 마지막아성으로 간주하고 공공연히 압살하려고 하지만 공화국은 세계의 모든 예상을 뒤집고 사회주의를 튼튼히 고수함으로써 국제무대에 극적으로 높이 부상하게 되였습니다.

이러한 기적을 두고 령도자님의 위인상을 여러가지로 말할수 있을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현세의 한울님》이라는 제하의 이 책에서 《력사의 주도자》라는 부제를 달고 령도자님께서 주석님의 뜻을 받들어 과거력사에 대한 정확한 견해를 가지시고 력사를 옳바르게 발전시켜나가고계시는 점을 먼저 이야기하였습니다.

과거력사에 대한 바른 리해와 옳바른 계승은 새 력사의 창조를 위한 필수요건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력사가 력사를 낳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력사를 옳바르게 이어 새 력사를 창조해나가는 바른 력사우에서는 모든 리치기운이 바르게 되며 현실의 모습도 바르고 미래를 향한 방향각도 바르게 됩니다.

경애하는 령도자님께서는 이남에서처럼 왕조사관이나 식민지사대사관이 아니라 주체적사관, 민중사관에 기초하여 민족사를 새롭게 정립하고 그것을 옳게 계승하여 력사의 어제와 오늘, 래일을 튼튼히 이어놓으시였습니다.

이북에서는 인류사의 초창기부터 민족문화가 창조되였음이 밝혀지게 되고 민족문화유산이 옳게 보존전승되고있으며 항일무장투쟁은 민족사의 귀감으로 오늘에 력력히 빛나고있습니다.

이북의 력사는 민족의 주체성우에 서있는 력사입니다. 이남의 력사는 사대와 외세의존에 의거하는 식민지력사이지만 이북의 력사는 자주성에 기초한 민족사의 정도입니다.

민족의 정통성은 김정일령도자님께 있습니다.

력사는 힘입니다. 그분께서는 민족을 민족으로 존속케 하는 력사의 근원력을 체현하시고 래일을 향한 민족사의 중심에 서계십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민족사는 령도자님의 존함으로 대표됩니다.

세상에는 위인들이 많지만 령도자님처럼 력사의 명맥을 그토록 귀중히 여기고 력사의 고삐를 틀어잡고 력사를 이어 성공의 령마루에 오른 위인은 없습니다.

령도자님에 의해 오늘 이북의 력사는 자기 발전의 높은 경지에 이르고 있습니다.

세인이 공인하고있는것처럼 이북은 현세는 물론 인류사상 자주정신이 가장 강한 나라로 되였습니다.

령도자님께서는 주석님의 건국창업의 공적을 이어 민족의 넋을 안고 민족의 존엄과 이 민족의 슬기를 백두산처럼 거연하고 떳떳하게 높이 키워주시였습니다. 어떠한 사대의식이나 외부의 간섭도 이북땅에는 발붙일 자리가 없습니다.

사실 민족사발전의 특수성과 그리고 분단이라는 어려운 상황, 그것도 미국이라는 제국주의원흉과 맞서있는 조건에서 자주의 기치를 들고 그것을 지켜나간다는것은 보통으로는 상상도 할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령도자님께서는 오늘의 준엄한 시련속에서도 주체의 나라를 지켜 자주, 자립, 자위를 더욱 튼튼히 다지시면서 강성대국의 문을 열어젖히고 자주국의 위용을 세계에 떨치고계십니다.

이번에 인공지구위성을 성과적으로 발사한것도 령도자님께서 지니고계시는 민족의 자주의지와 힘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낳은 결과입니다.

참으로 령도자님께서는 만난을 이겨내면서 민족자주의지를 5천년 민족사상 최고의 높이로 올려세운 민족의 신화적영웅이십니다.

세계의 각광을 받고계시는 령도자님의 자주정신은 무엇보다도 민족과 겨레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됩니다.

령도자님의 정치지도력이 출중함은 그것이 민중에게 바쳐지고 민중을 위한 민중의것으로 되여있기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주석님의 《이민위천》의 고귀한 뜻을 구현하시여 민중을 하늘로 섬기고 덕치로 인간을 훈육하여 이 땅우에 사랑의 천국, 하늘나라를 건설하시였습니다.

사람우에 사람없고 사람밑에 사람없는 인상무인 인하무인(人上無人 人下無人)의 평등사회가 이북사회입니다.

이북은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뜻과 뜻을 합쳐 한뜻으로 만들고 인간에 대한 배려로 마음과 마음을 열어 한마음이 된 나라입니다.

사랑으로 뭉치고 사랑으로 한마음이 된 나라가 하늘나라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령도자님의 치하에서는 모든 리치기운이 바르고 무궁한 조화가 이루어져있습니다. 이북에는 그분께서 정치경륜의 본의로 삼고있는 인간사랑의 으뜸가는 리념인 주체사상이 있습니다.

령도자님의 뜻이야말로 펴면 우주사이에 가득차고 좁히면 한알의 종자속에 응축되는 신비가 있습니다.

위대한 김정일령도자님은 민족과 세계를 위한 대생명, 대정신이시며 대우주이십니다.

지혜와 정의, 선과 아름다움을 대변하시는 령도자님은 인류가 맞이한 특출한 위인이십니다.

그분의 불멸의 진리와 위대한 사랑을 글로 쓰기에는 너무도 거룩하고 성스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모로 부족점이 많은 제가 감히 령도자님의 공적을 글로 옮겨보았습니다. 욕망이 앞서 서둘러 쓰기는 하였지만 써놓고보니 송구스럽기만 합니다. 여의치 못한 점이 많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의 일생은 바로 이 책을 쓰기 위해 있었던듯싶습니다.

저는 이 책과 더불어 이 력사를 지켜 이 력사속에 남고싶습니다.

청수에 몸과 마음 정히 가시고 현세의 한울님이신 김정일령도자님께 경배의 큰절을 올립니다.

주체87(1998)년 11월

저 자
 

차 례
  1. 내가 설 땅을 찾아
  2. 어머니조국의 품
  3. 신인간(新人間)
  4. 민족의 성지
  5. 바로세운 력사
  6. 백두산의 민족사적의미
  7. 어제와 오늘, 래일을 이어놓은 력사의 타수
  8. 땅우에 쓴 항일대전사
  9. 민족문화유산에 대한 특별한 애착
  10. 통일애국의 구심점
  11. 동학이 살아있는 땅
  12. 애민애족의 리념으로
  13. 조선은 영원을 산다
  14. 조미대결전에서 쾌승
  15. 저는 통일을 보았습니다
  16. 세계를 움직인 선언
위대한 김정일령도자님께 올린 편지들과 기자회견문, 신문에 발표한 글들
 
 
내가 설 땅을 찾아
 

분단이라는 비정의 력사속에서 참된 진리에로 돌아가는 길을 깨닫지 못하고 오랜 세월 저는 고해에 잠겨 마음의 안정을 잃고있었습니다.

늦게야 자기를 뉘우치고 내가 설 땅을 찾아 입북의 길을 택했지만 공화국의 품에 안기고보니 이제야 천도(天道)를 향하고 어지러운 마음을 건지여 천심(天心)에 닿은듯싶습니다.

다만 늦어진것이 후회되지만 그 후회와 뉘우침만으로도 마음의 잊음과 잃음을 되찾고 한생을 얻은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이남땅을 뜨게 된것은 그 어떤 일시적인 충동이나 계기에서 비롯된것이 아닙니다.

한마디로 이남에는 민족의 장래가 없기때문입니다. 민족의 장래가 없는곳에 천도의 뜻이 깃들리 없고 백성된 마음 또한 깃들리 없습니다.

물론 입북결행을 자극한 충격적인 일들도 많았습니다.

갑오농민전쟁 100주년을 판문점에서 함께 기념하기로 남북천도교가 베이징에서 합의하였으나 이남당국의 방해로 시행을 못보고 류산된 일만 하여도 저에게는 참을수 없는 충격이였습니다.

갑오농민전쟁은 동학농민군이 주동이 되여 진행한 반외세반봉건투쟁입니다. 동학교인 천도교가 이 전쟁을 기념하는것은 응당한 일이며 남북천도교가 함께 모여앉아 기념하는것은 더욱 의의있는것입니다. 베이징에서 조선천도교회 류미영위원장을 만나 남북천도교가 힘을 모아 통일성업에 이바지하기로 하고 그 첫걸음으로 갑오농민전쟁 100주년기념을 택했던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수긍이 되는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였습니다. 저는 서울로 돌아가 동덕들앞에서 운명을 걸고 이 합의시행을 선약하였습니다. 이남당국이 이것만은 승인하리라는 기대도 가지고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불허라는 차단봉이 내려졌던것입니다. 《통일원장관》, 《안기부장》, 《외무부장관》, 《청와대외교안보수석비서관》등을 찾아 동분서주하였으나 핵회담, 《핵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일체 남북회담을 금지한다는것이였습니다. 하기야 무슨 리유인들 없겠습니까. 천도교가 어쩌다가 한번 정한 일인데 그렇게 되고보니 실망감은 이루 형언키 어려웠습니다.

그후 류미영위원장으로부터 단군릉개건준공식에 참가해달라는 초청편지를 받고 《통일원》에 평양방문허가를 신청한 일도 있었는데 그것도 처음에는 문건이 불비하다는 리유로, 다음에는 정치적으로 《리용》당할 우려가 있다는 리유로 기각되고말았습니다.

자초에 이남당국자들은 민족된 자각이나 통일의지가 없습니다. 그네들은 분단을 빌미로 《안보》의 이름밑에 일신의 안위와 영화만을 추구하고있습니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범민련》과 《한총련》을 비롯한 통일애국세력에 대한 초토화작전을 공공연히 벌리고있습니다.

저는 그래도 그동안 이남사회에 몸담고있으면서 천지간에 뜻이 통하고 마음의 맑음과 밝음의 날이 오려니 기대하면서 참고견디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를 깨닫게 되였습니다.

이남사회는 본원적으로 그런 기대를 할수 없는 사회입니다.

이남은 자주가 없는 땅입니다. 따라서 애국도 없고 정의도 없습니다. 자주가 없음은 곧 외세에 의해 자기를 상실하고있음을 의미합니다. 아시다싶이 이남땅은 미국의 속지입니다.

이남에는 미국의 의지가 사회의 모든 령역에 속속들이 배여있고 미국의 국익에 따라 모든것이 결정되고있습니다.

이남의 정치란 본질적으로 말하면 미국의 의지를 남조선내부에 내재화하기 위한 매개자의 역할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정치는 사대와 외세의존으로 형성되고 자주를 거부하고 민족을 배반함으로써만 유지됩니다.

경제도 외자주축의 극히 비자주적인 경제로서 근로민중에 대한 착취는 일제시기보다 더 략탈적입니다.

문화면에서도 외래풍조가 병적으로 만연되고있습니다.

외세에 의한 식민지생리가 구조적으로 작용하고 사회의 모든곳에 그것이 잠식되는 력사가 루적되는 가운데 민족의 정기는 빛을 잃고 내 나라는 자기를 잃어버린 국적없는 땅이 되여버리고말았습니다.

천도교경전에도 《내 정신을 내가 지키고 내 나라의 정신을 내 나라로 지키고 내 한울의 정신을 내 한울로 지켜야 한다.》고 하였는데 이남땅은 내가 없고 내 나라가 없고 내 한울이 없는곳이 되여버리고만것입니다. 내가 없고 내 나라가 없고 내 한울이 없는 땅에서 어떻게 나를 지키고 내 나라, 내 한울을 지키겠습니까.

단재 신채호선생도 예속된 나라에서 민족주의핵은 아(我)를 확립하는것이라고 하였지만 이남땅에서 자기를 찾고 자기를 살리기 위한 민족의 장래는 점점 더 암담해질뿐입니다.

이남정치의 총적목표는 어떻게 하면 미군을 이남땅에 더 오래 주둔시키겠는가 하는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남정치의 존재리유이며 대의명분입니다.

미군은 통일된후에도 이남땅에 주둔해있어야 한다는 망발이 공공연히 판을 치는 땅이 이남땅이며 식민지유익설을 퍼뜨리는 《식민지근대화론》이 공공연히 떠도는 사회풍토가 바로 이남땅입니다.

과거 우리 나라가 일본의 식민지로 되였던 까닭에 근대화에로 이행이 가능했다는 《식민지근대화론》은 결국 미국의 식민지로서의 오늘의 이남현실을 정당화하기 위한것입니다. 즉 미국의 속지로 되는것이 리롭다는것입니다.

이러한곳에서는 외세의존이나 사대도 다 리조시기의 사대굴종의 력사에서처럼 자기 보존을 위한 방편으로 당위화되고있습니다.

이러한 땅에서 민족보다 미국의 리념이나 체제를 더 중시하게 됨은 말할것도 없습니다.

미국에 의존하면 의존할수록 이북의 동족을 배반하고 멀리하게 된다는것은 너무나 자명한 리치입니다.

외세에 의존하면서 민족을 말하고 통일을 운운하는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자주가 없는곳에 통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북은 이남과 전혀 대조적입니다.

이북에는 애국이 살아있습니다. 자주정치가 실시되고 사회의 모든곳에 민족주체가 튼튼히 뿌리내려있습니다. 이북에서 자주는 민족의 생명으로 키워지고 전민의 신념으로 튼튼히 자리잡고있습니다.

자기 힘으로 자기를 찾고 자기 힘으고 자기를 키워 자기 힘으로 자기를 확립한 자주의 나라가 이북입니다.

이북에서 자주는 민족의 존엄과 긍지 속에 유린될수 없는 위대한 삶으로 존재합니다. 민족의 독자적존립과 자강자활을 저애하는 어떠한 외압도 통할수 없는 땅이 이북땅이며 어떠한 사대의식이나 외세의존의식이 서식할수 없는 땅이 이북땅입니다.

참으로 이북은 내 정신을 내가 지키고 내 나라의 정신을 내 나라로 지키고 내 한울의 정신을 내 한울로 지키려는 천도교의 숙원까지 실현한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자주국의 귀감입니다.

저는 이런 이북의 현실을 이남에 있을 때 어느 정도 알고있었습니다.

《척양척왜》, 《보국안민》의 리념아래 반외세, 반침략 투쟁을 진행해온 천도교의 교인으로서 본인은 이북의 반제자주로선에 언제나 공감하고 그것을 지지하는 립장에 있었습니다.

이북의 주체사상에 대해서도 금세기를 빛내이는 탁월한 사상으로 믿어왔습니다.

주체사상은 맑스-레닌주의한계점을 극복하고 새롭게 발견한 사상이며 우리 천도교의 《인내천》리념까지 현실화해주는 위대한 사상으로서 그것은 최고의 애국주의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본인은 자주가 없는 이남은 매국의 암흑지대이지만 자주가 있는 이북은 애국의 성지이라고 부릅니다.

이남은 정의가 짓밟히는 사회이지만 이북은 정의가 찬미되고 권장되는 사회입니다.

이남에는 부정과 비리, 부패가 사회전반에 만연되고있습니다.

심지어 《대통령》도 선거때에는 《부정부패척결》을 외우지만 권력만 잡으면 부정축재에 혈안이 됩니다. 력대 집권자들치고 검은돈을 먹지 않은 사람이 없으며 그 엄청난 비리부패행위가 로정되여 세상을 아연케 만들고있습니다.

그러나 이북은 사회가 매우 깨끗하고 건전하며 청렴합니다.

여기서는 다같이 서로 돕고 이끌어줍니다.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와 집단, 남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미덕이 사회에 풍미하고있습니다.

꽃다운 처녀들이 영예군인의 배우자가 되여주고 부모없는 고아의 어머니가 되여주며 청년들이 힘든 일터, 농촌, 탄광, 광산으로 자원진출하는 소행은 이남에서는 있을래야 있을수 없는 일들입니다.

령도자가 진심으로 민중을 사랑하고 민중이 령도자를 충성으로 받드는 사회가 이북입니다.

이런 사회는 불멸합니다. 동서고금에 부패한 나라는 백이면 백이 다 망했지만 건전한 사회, 화목한 나라는 비록 어려움이 있다 해도 망한 사례가 없습니다. 다시말하여 부패한 나라는 망했어도 일시적인 흉년이 들어 쓰러진 나라는 없습니다.

강성했던 고대로마제국이 망한것도 권력이나 경제력이 약해져서가 아닙니다. 목욕탕때문에 망했다는 력사기록과 같이 정신도덕적으로 부패했기때문입니다. 우리 나라 리씨왕조가 망한것도 매관매직과 같은 부패때문이였습니다. 구쏘련이 붕괴된것도 저는 정신적부패때문이라고 봅니다. 구쏘련의 마지막수반이였던 고르바쵸브는 이남의 로태우가 준 푼돈까지 받아먹었습니다. 그러니 나라가 망하지 않을수 없는것입니다. 부패한 이남도 망합니다. 시간문제이지 망한다는것은 기정사실로 되고있습니다.

그러나 이북은 자연재해가 일시적인것처럼 경제적어려움도 일시적인것이라고 봅니다.

민족의 장래는 북에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특히 이북에는 민족의 장래를 담보하는 민족의 영명한 령수가 계십니다.

저는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과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님을 존경합니다.

저는 천도교인으로서 그리고 정치인으로서 주석님을 경모하고있습니다. 8.15전에 주석님께서 백두산에서 빨찌산투쟁을 하실 때 천도교 박인진도정은 주석님께서 창립하신 《조국광복회》에 뜻을 같이하고 반일애국투쟁에 나섰습니다. 입북이후 제가 대성산 혁명렬사릉에 참배하러 갔었는데 거기에 박인진도정의 반신상이 있었습니다. 주석님께서 천도교 교인인 그를 잊지 않으시고 공산주의렬사들과 나란히 안치해주셨던것입니다.

해방직후 이북에서 천도교청우당 위원장을 지낸바 있는 김달현선생도 주석님의 사랑과 배려를 많이 받았다는것을 저는 주석님의 회고록을 읽으면서 깊이 느끼였습니다.

그리고 최덕신선생은 이남에서 천도교 교령을 지낸 분인데 이북에 와서 주석님을 천도교에서 받드는 《한울님》이시라고 높이 칭송했습니다.

제가 천도교인으로서 선배들이 따르고 받들어온 주석님을 따르는것은 당연지사입니다.

저는 령도자님도 주석님의 창업의 공적을 계승하여 이북에 주체, 자주, 자립, 자위를 실현하고 사랑의 정치, 광폭정치를 펴시는 출중한 령수이심에 경탄해마지 않습니다.

20세기의 세계적인 이변은 무엇보다도 구쏘련과 동구권의 붕괴였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놀라운것은 이 커다란 세계적인 파동의 영향을 받지 아니하고 오히려 폭풍우속에서도 더욱 높이 솟아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이북사회의 위상입니다.

령도자님께서는 세계의 모든 예상을 뒤집고 이북을 압살하려는 서방의 고립봉쇄정책에 단호하게 맞서 강경대응으로 조미회담에 성공함으로써 세계정치기상도와 력학관계를 개변시키고 이북을 국제무대에 크게 부상시키셨습니다.

결국 이북은 세계적인 이변의 영향을 령도자님의 자주정치와 선견지명의 예지로 이겨내고 령도자님의 존함과 함께 현 세계에 정치대국, 군사대국, 문화대국으로 솟아오르게 된것입니다.

령도자님의 현철하시고 출중하신 위인상은 이번에 세계를 깜짝 놀래운 인공지구위성의 성공적발사에서 더욱 뚜렷이 증시되였습니다.

김정일, 위대한 그 이름은 민족의 의지이며 민족의 힘입니다. 이 불패의 의지에 의해 령도되는 민족은 어떤 난관도 뚫고 승승장구합니다.

지금 이남의 뜻있는 사람들은 모두 령도자님을 자주시대를 주도하는 영웅으로, 민족존엄의 상징으로, 나라의 분단을 극복하고 민족의 통일을 실현할 령수로 우러르고있습니다.

민족의 장래는 령도자님께 있습니다.

저는 령도자님을 지지하여 자주국을 찾아 공화국의 품에 안긴것을 한울이 내린 처음으로 시작되는 행운 즉 시창지운(始창之運)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입북이후 시간이 갈수록 내가 설 땅이 바로 여기임을 재삼 깊이 깨닫게 됩니다.
 
 

어머니조국의 품
 

조국이라는 말처럼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그만큼 조국은 가장 성스럽고 거룩한 개념이며 또한 가장 따뜻하고 구체적인 감정입니다.

조국에 대하여 쓴 글들도 많고 조국에 대하여 지은 노래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조국을 어머니에 비겨 말한 이상의 성공을 알지 못합니다.

어머니조국, 그렇습니다. 조국은 어머니입니다.

저는 이북에 들어와서 어머니조국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목이 메이고 눈물부터 앞섭니다. 물론 조국에 대한 이러한 표현을 처음 듣는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남에서는 별로 그런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이북에 들어와서야 많이 듣게 되는데 들을 때마다 커다란 울림으로 가슴을 메웁니다.

그것은 제가 오랜 세월을 방황하던 끝에 조국의 품에 안겨 어머니사랑을 실감하기때문일것입니다.

조국은 말그대로 조상때부터 살아온 내 나라입니다. 내가 나서자란 거기에는 조상대대의 피와 땀이 스며있으며 민족의 력사와 래일의 운명이 함께 안겨있습니다.

누가 말한것처럼 조국은 무조건적인 사랑의 최고가치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 품을 떠나서 삶의 안정과 가치를 찾을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무런 분별도 없이 너무도 일찌기, 너무도 쉽게 그 품을 떠났던 사람입니다. 사회주의에 대한 바른 인식도 없이 리념의 차이만을 생각하면서 지난 전쟁때 저는 고향을 떠나 월남하였습니다.

제가 이남사회에 몸을 담고 동분서주하며 생활한 전기간은 결국 어설픈 조국관을 가지고 편견에 사로잡혀 정신적방황을 체험한 기간이였으며 동시에 참다운 조국관을 터득하는 기간이였습니다.

조국이란 결코 막연한 개념이 아닙니다. 그것은 조상의 땅에서 민족의 력사를 전승하고있는 실재하는 내 강산, 내 겨레, 내 민족입니다. 이것은 내 민족, 내 겨레를 지고의 높이로 내세우고 중시하는 뜻이며 따라서 조국의 의지는 내 겨레가 내 강토의 주인이 되고 민족민중의 뜻으로 모든것이 행해지게 하는데 있습니다.

민족민중의 뜻은 자주의 뜻이고 애국의 뜻입니다. 민중이 억압된 상태에서는 내 겨레가 중시될수 없으며 민족도 애국도 자주도 공허한 울림으로만 남게 됩니다.

그러므로 민족민중을 위한 애국정권에서만 조국의 참다운 의미가 살고 그것을 어머니라 부를수 있습니다.

력사에는 그러한 변별이 없었던탓으로 비극의 자취를 남긴 사례도 드물지 않습니다.

례하면 갑오농민전쟁이 반외세반봉건투쟁으로서 그렇게도 치렬하게 전개되였지만 다시말하여 그것이 극렬한 반정부반외세투쟁이였지만 갑오농민전쟁의 주도자였던 녹두장군 전봉준의사가 재판정에서 왜놈의 배심을 단호히 거부하면서도 반민족반민중적인 봉건조종의 심판은 정중히 받아들였던것입니다.

오늘의 현실에서도 옳바른 조국관수립은 의연 중요한 문제로 남아있습니다.

그것은 《조국》이라는 이름을 리용하는 악페가 없어지지 않고있기때문입니다. 조국보다 더 강한 도덕은 없으며 조국이란 이름보다 더 신성하고 동원적인 이름은 없습니다. 그 이름이 신성한것만큼 그것을 도용하여 자기의 반민족반민중적인 정체를 은페하기 위한 방편으로 《조국에의 복무》를 강요하는 정치적사기한들이 적지 않습니다.

력사가 증시하여주는것처럼 자기 정치의 《당위》를 강권으로 강제하는 정치일수록 《조국》을 웨칩니다.

인류에게 커다란 재난을 들씌운 히틀러나 무쏠리니도 그러했습니다. 이남의 력대 통치자들도 바로 그러합니다.

민족의 존엄이 짓밟히고 민족의 명맥이 끊기여있는 이남땅에 어찌 조국의 숨결이 맥박칠수 있겠습니까.

한가지 사실을 가리우기 위해 열마디 거짓말을 한다는 말과 같이 그들은 조국을 배반함으로써 조국을 천언만담 (千言萬談)으로 념불처럼 외우고있습니다.

이러한곳에서는 누가 말한바와 같이 조국은 추울 때는 입고 더울 때는 벗어던지는 외투와 같은 사용물이 되고마는것입니다.

조국이나 민족의 이름을 도용하고 그것을 타고앉아 민중을 우롱하고 민족을 기만하는데는 그들처럼 《지혜》로운 사람들이 없을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은 온갖 거짓을 가려내는 진실의 아버지라는 말과 같이 세월은 그들의 본색을 더는 감출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사실상 그들은 민족의 정통성을 말살함으로써 이남땅이 선조의 피와 땀이 스민 력사국임을 거부하고있으며 이남땅을 외래문화와 정신이 판을 치게 만듦으로써 우리 나라가 조상전래의 반만년의 문화국임을 부정하고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민중을 탄압하고 억압함으로써 이남이 내 겨레의 나라임을 부정하고있습니다.

반민족반민중적인 식민지《정권》이 가는 길은 어차피 그길로 갈수밖에 없음을 저는 늦게나마 깨닫게 되였습니다.

사실 우리 겨레에게 있어서 조국에 대한 사랑이 남달리 각별한것은 강토가 아름다운데도 있지만 그보다 반만년의 오랜 력사를 살아온 류례없는 단일민족으로서 자기의 고유한 정통성을 고수하고 그것을 전승하고있다는데 있습니다.

세계에는 조국이라는 개념조차 똑똑치 않는 나라들도 많습니다.

미국과 같은 나라는 여러갈래의 《개척자》들이 모여들어 원주민들을 살륙정복한 피의 땅우에 세운 력사도 전통도 없는 나라로서 《합중국》이라는 법적개념이 있을뿐입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이와는 전혀 달리 세계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단일성과 그 존속의 오랜 력사, 주체적생존의 유구한 력사를 자랑하고있습니다.

이러한 력사와 민족적특성이 살아있고 민족주체성이 살아있는곳이 바로 이북입니다.

이북은 이남과는 달리 민족사의 정도를 걷고있으며 그 정도속에서 민족의 전통이 살아있고 또한 그것이 가장 옳바르게 전승되고있습니다.

이것은 조국과 민족의 실체이며 구성원인 인민이 나라의 진정한 주인으로 되여있기때문이며 민족과 민중의 뜻을 체현하신 위대한 령도자가 력사와 사회, 인민대중을 옳바르게 이끌어나가기때문입니다.

이남땅은 선조의 땅이기는 하지만 거기에 세워진 식민지《정권》을 조국이라 부를수는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하나의 친어머니가 있듯이 조국도 오직 하나만이 있습니다.

저는 이북에 들어와 어머니조국의 품에 안겨서야 조국에 대한 참뜻을 더 깊이 깨닫게 되였습니다.

그러나 조국으로 돌아오는 길은 쉽지 않은 고행의 길이였습니다.

그것은 길이 험해서가 아닙니다. 이북을 금단의 지역으로 이단시하면서 월북의 길을 총칼로 막고있는 죽음의 사선을 뚫고나와야 하는 위험도 위험이지만 그보다 험한 길은 마음의 길이였습니다.

《촉나라로 가는 길이 험한것이 아니라 마음의 길이 더 험하다.》는 천도교경전의 구절은 사람은 누구나 마음의 험한 길을 이겨내야 한다는 가르침이지만 이때처럼 마음의 험한 길을 체험하기는 처음입니다.

저는 한때 그릇된 편견으로 《반공》의 편에 섰던 사람입니다. 이북과 첨예한 대결상태에 있던 이남의 정계에 관여하였다는 죄의식도 가지고있습니다. 그리고 일찌기 조국의 품을 떠났던 몸이라는 생각은 걸음걸음 이 사람을 붙잡고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위구심은 평양에 도착하는 그 순간부터 간데온데 없어져버렸습니다.

이북의 동포들은 저를 최대의 공경과 친절로 따뜻이 환대해주었습니다. 실로 뜻밖이였습니다. 모두가 눈물이 겹도록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류달리 푸른 하늘과 일목일초에도 절을 하고싶었습니다.

이 사람이 평양에 도착한 첫 감상은 과연 사람이 사는 사람다운 세상에 왔다는 생각과 함께 그것이 바로 어머니조국의 품이라는 따뜻한 느낌이였습니다. 접대원들의 눈빛 하나, 손세와 말씨 하나에도 꾸밈없는 친절과 소박성, 따뜻함이 어려있었습니다.

후에 안 일이지만 특히 그 모든것이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님의 뜻이고 손길이였습니다.

령도자님께서는 저의 공화국영주를 허락해주시고 도착한 첫날부터 불편이 없도록 일일이 관심해주셨습니다.

저의 건강상태를 알아보시고 병원에서 검진과 치료를 받을수 있게 하여주시고 현대적인 3층 가옥과 고급승용차까지 배려해주시였습니다.

저는 령도자님의 정치를 지지하여 자주국을 찾아 이북에 들어왔지만 저의 인생전환이 이처럼 령도자님의 사랑과 직접 잇닿게 될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가족상봉의 장소에서도 저는 그것을 더욱 깊이 가슴속에 새겨안게 되였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처 그리고 딸을 두고 집을 떠났던 불효막심한 못난이입니다. 어머니는 이미 타계하신 몸임을 알고있었지만 처와 딸이 그렇게 아무런 변고없이 건재해있을줄은 몰랐습니다. 사위와 외손자, 외손녀도 만났습니다. 정말 꿈만 같은 극적인 상봉이였습니다.

두살난 딸을 두고 집을 떠나 기나긴 세월, 무정하게도 그 딸에게 연필 한자루, 공책 한권 사준적 없는 죄많은 이 애비를 대신하여 공화국에서는 년년이 새 교복으로 단장시켜 초등교육과 기술교육을 받을수 있게 해주었으니 결초보은한들 어찌 그 은혜에 다 보답할수 있겠습니까. 더우기 상봉의 이날을 위해 가족들에게 베풀어주신 김정일령도자님의 갖가지 배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그야말로 어머니의 사랑에만 비길수 있는 한없이 따사로운 조국의 품을 느끼게 되였습니다.

령도자님께서는 추석날 제가 선친들의 묘소를 쉽게 찾아갈수 있도록 직승비행기까지 띄우게 해주시였습니다.

생을 두고 언젠가는 찾아가리라 오매에도 그리던 고향 그 고향으로 찾아가는 길은 령도자님의 사랑의 길이였습니다.

저는 령도자님의 각별한 사랑을 병신자식을 더 위해 마음쓰는 어머니조국의 사랑으로 받아안고 몇번이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저의 고향은 평안남도 회창군 대곡리입니다. 대곡(大谷)이란 큰 계곡이란 뜻입니다. 이름처럼 골이 깊고 산세가 높은 곳입니다. 아마 처음 가보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이런 산골에서도 사람이 사는가고 놀랄것입니다.

그러나 오랜 기간 타관살이를 하면서 저는 고향을 잊어본적이 없습니다. 대곡은 제가 나서 어머니의 사랑속에 동심을 키운곳입니다.

뜨락의 대추나무 한그루에도 아들에 대한 어머니사랑이 깃들어있고 벽계수에 씻기고씻긴 대곡천가 조약돌에도 지을수 없는 추억이 깃들어있습니다. 그 모든것이 마음속에 주옥으로 간직되여있었습니다.

그러나 고향을 위해 아무것도 한 일없이 루만 끼친 사람도 고향을 사랑한다는 말을 할수 있는가. 저는 이런 생각에 고향사람들앞에서 첫마디부터 더듬거려졌습니다. 뜻밖에 많은 고향사람들이 달려나와 뜨겁게 맞아주니 더욱 죄송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이날 한 친지되는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곡사람이 대곡을 잊지 않고 찾아왔으니 그거면 다네. 아무튼 장군님의 은덕을 잊지 말아야 하네.》

그 말이 얼마나 고마왔던지 고향의 너그러움과 고향의 기대가 어려있는 그 말을 저는 분명 어머님의 말씀으로 들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익제가 꼭 돌아온다고, 돌아오니 기다려야 한다고 하면서 눈을 감지 못했다고 합니다.

어머님의 령영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저는 마음을 진정할수 없었습니다.

고향마을은 많이 변했으나 저의 집은 본채가 그대로 있고 뜨락의 대추나무도 그대로 있었습니다. 높은 산정에 있는 선친들의 묘소도 예나 다름없이 그대로였습니다. 앞산 경사지에는 일정치하에서 우리 마을 《소년저축회》가 일구었던 두정보의 밭이 있었는데 그 밭에는 강냉이가 무르익어있었습니다.

그것은 왜정말기의 일입니다. 소학생이였던 저는 몇몇 학우들과 함께 반일학생조직을 무었는데 명칭을 어떻게 달았으면 좋을지 몰라서 당시 반일감정이 강했던 담임교원에게 문의했더니 《소년저축회》라는 이름을 달고 공개적으로 활동하라는것이였습니다. 그리하여 마치 저축운동을 하는것처럼 위장하고 반일활동에 필요한 자금확보를 위해 화전을 일구고 거기에 강냉이를 심었던것입니다. 그러나 반일활동은 하지 못하고 곧 해방이 되였습니다. 그때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당사자들과 담임교원외는 어머니밖에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없는 외독자인 제가 그런 위험한 일을 책임지고 하는것을 절대로 허락할 어머니가 아니였습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어머니는 그것을 침묵으로 용인해주었습니다. 아무리 위험해도 어머니는 아들이 바르게 살기를 바란다는것을 그때부터 저는 알고있었습니다.

그런 어머니의 곁을 제가 그렇게도 쉽게, 어머니조차 몰래 떠나갔으니 어머니의 마음에 잊음과 잃음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런데 저의 죄로 생전에 만나지도 못하고 말았습니다.

나무가지가 고요하고싶으나 바람이 그냥 두질 않고 자식이 효도하고싶으나 세월이 기다려주질 않는다는 말이 생각나며 목이 꽉 메여왔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묘소에서 오열을 터뜨리고야말았습니다.

《어머니, 불효막심한 이 아들이 이제야 돌아왔습니다. 이제는 눈을 감으시고 편히 주무십시오. 어머님이 늘 말씀하신것처럼 충과 효는 일치합니다. 김정일령도자님께 충의를 다함으로써 어머니에게 다하지 못한 효도를 다하겠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묘소에서 다진 이 선약을 절대로 잊을수 없습니다.

그것을 잊으면 조국을 잃고 자기자신을 잃게 됩니다.

불효자식은 너무도 늦게 돌아왔습니다. 돌아온 아들을 맞아줄 어머니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부모를 대신하여 어머니의 사랑으로 아들을 안아주는 조국의 품, 령도자님의 품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조국은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님의 품입니다. 그 품은 무조건적인 사랑의 최고가치이며 영광의 최고가치입니다.

그 품은 부모처자간의 사랑, 친척친우사이의 사랑 그리고 고향산천에 대한 사랑 등 모든 순결하고 아름다운 사랑이 하나로 합쳐진 품입니다.

그 품이 있어 겨레가 있고 고향이 있고 가족이 있으며 삶의 목적과 의의가 있습니다.
 
 

신인간(新人間)
 

천도교에서는 환생이나 부활이라는 말대신에 신인간이라는 말을 씁니다. 신인간이란 새 사람이라는 뜻으로 《함지(陷地), 사지(死地), 출생(出生)들아 보국안민(保國安民) 어찌할고》라는 천도교경전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그러니까 보국안민을 담당할 새 사람을 뜻합니다.

천도교에서는 교지로서 《신인간》이란 잡지를 발간하고있습니다. 이제는 그 력사가 한 70여년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천도교는 그만큼 신인간의 출생을 중시합니다.

그러나 이제와서 신인간이란 이 말은 마음이나 뜻을 새롭게 한다는 보다 넓은 의미로 새로 태여남을 뜻하게 되였습니다.

이남에서 저는 《로동권 및 로동전수권》이라는 상, 하 2회분으로 된 글을 《조선일보》(1956년)에 발표한적이 있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여 한때 이남 천도교 《신인간》지 주간으로 발탁되여 이 잡지를 책임지고 발간한 일이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저는 신인간을 설교한 사람으로서 자기자신이 신인간으로 살려는 욕망이 남달랐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사람은 무엇보다 뜻으로 살고 마음으로 삽니다. 뜻없는 인생은 인생이라 말할수 없습니다. 인간의 참삶은 언제나 참뜻에서 비롯되는것입니다.

저의 월북은 인생의 뜻이 바뀜을 의미하며 주체의 광망을 안고 새롭게 전개되는 민족사의 지평에 서서 세계와 인간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며 삶의 참된 길을 비로소 걷게 됨을 의미합니다.

재언하면 저의 월북자체가 신인간으로 되였음을 뜻합니다.

이렇게 보면 저는 이미 앞에서 신인간의 기쁨에 대하여 다 이야기한셈입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저의 인생의 전환에 대하여 다시한번 강조해 말하지 않을수 없는 각별한 사연이 있습니다.

그것을 말하자면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야겠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왜정때 곡창주재소 순사로 있다가 이상하게도 경제범으로 서울감옥에서 형기중에 옥사하였습니다. 너무도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갔기때문에 저는 아버지의 얼굴조차 모릅니다. 게다가 수치스러운 가정래력이여서 가족들과 일가친척들도 모두가 아버지가 일찌기 타계하였다는 정도로 저에게 알려주었기때문에 저도 그 이상의것은 알지 못하고있었습니다. 조금 석연치 않는 이야기들을 들은적이 있지만 그때만 해도 그것이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하고 지냈습니다.

알고있는 이야기도 입밖에 내지 못했습니다.

가벼운 고통은 말로 표시되나 큰 고통은 침묵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의 인생에서 가장 큰 고통은 이것이였습니다. 북에 있을 때나 남에 있을 때나 누구에게도 저는 이 이야기를 입밖에 낸적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북에 들어와 처음으로 안내하는분에게 이 이야기를 꺼내놓았습니다.

제가 이 말을 하게 된것은 고마운 공화국의 품에 안겨 마음속의 숨김을 가지고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이를테면 큰 고통을 고백하자는것이였습니다. 그러나 이 고백에는 아버지의 래력에 대한 사실여부를 알아볼수 있으면 좀 알아줄수 없겠는가 하는 청원의 마음도 덧쳐있었습니다.

어렴풋한 기억이기는 하지만 고모는 생전에 나를 보고 늘 너의 아버지는 억울하게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대곡에 있는 곡창에서 살 때 의병들이 쳐들어왔는데 아버지가 나가서 뭐라고 하니까 곡창주재소를 치지 않고 돌아섰으며 그옆에 있는 란산주재소를 습격하고 불을 질렀다는 이야기도 들은적이 있었습니다.

또한 이른새벽이면 몇몇 청장년들이 아버지를 찾아 집 뒤방에 모이군했는데 그들의 바지가랭이가 이슬에 젖어있군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왜 고모는 아버지가 억울하게 죽었다고 하며 아버지의 말을 듣고 의병들이 물러간 까닭은 무엇인가, 순사인 아버지가 무엇이 모자라 경제범이 되였겠는가.

이런 의문이 또한 나의 뇌리에 자리잡고 떠나지 않았던것입니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저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대한 확인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있었습니다.

후에 안 일이지만 제가 입북한 초기부터 가족친척들을 찾는 과정에 확인을 요하는 이런 이야기들이 제기되고 경애하는 령도자님께서 해당 부문에서 구체적으로 알아보도록 조처하셨던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그렇게 되고보니 이번에는 제가 부질없는 욕망에 사로잡혀 공연히 사람들의 수고를 끼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방직후도 아닌 반세기이상이나 지나간 일을 이제와서 확인하는 일이 전혀 가능성이 없어보였기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북에는 그러한 사실여부를 확인하는 전문부문이 있으며 오랜 경험과 함께 확인방법, 질서들이 정연하게 세워져있었습니다.

3개월동안 진행한 확인과정에 밝혀진 결과는 실로 뜻밖이였습니다.

저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당시 반일운동의 선구자였던 존경하는 김형직선생님께서 주도하신 《조선국민회》의 소관하에 군자금모집에 헌신하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것입니다.

저는 이 사실을 전달받던 날 얼마나 감격하였던지 온밤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기쁨이면 이에 더한 기쁨이 어디 있고 충격이면 이에 더한 충격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한생을 수도에 정진해온 교인으로서 어지간한 정신적충격은 그것이 불행이든 기쁨이든 감당할수 있다고 장담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뜻하지 않은 충격을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가슴벅찼습니다.

그것은 이 문제로 제가 입밖에 낼수조차 없는 무거운 고통속에 살아왔기때문일것입니다.

제가 천도교에 입문한데는 가정래력에 대한 속죄의식도 있었습니다. 줄곧 발끝만 내려다보며 내키지 않는 쓸쓸한 발걸음을 옮겨 이남으로 나간 일도 이런 가정사정과 무관하다고 말할수 없습니다.

어떻게 제가 애국자의 아들이 되리라고 생각이나 할수 있었겠습니까.

저는 누를수 없는 격정을 안고 선친들의 감사의 정까지 합쳐 온 가족들과 함께 경모하는 김정일령도자님의 초상화를 우러러 감사의 큰절을 올리였습니다.

확인결과를 전달하던 한 간부도 진심으로 함께 기뻐하며 《선생님은 제 뿌리를 찾아왔습니다. 물은 한곬으로 흐르기마련입니다.》라고 말하였는데 그 말도 온밤 저의 귀전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저는 뿌리를 모르고 뿌리를 떠났던 사람입니다. 그러니 스스로 고통을 만들었습니다. 원망만 해온 선친들에 대한 죄스러운 마음 금할길 없었습니다.

스스로 들씌운 고통이 더 고통스럽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고통이 클수록 닥쳐온 행복이 더 크다는 말도 있습니다.

저의 축복받은 신인간의 생은 이 큰 행복속에 있습니다. 뿌리를 모르고 떠돈 인생이 뿌리를 찾아 새 생명을 받아안는 순간, 이 세상의 모든 광명이 저를 위해 비쳐지는것만 같았습니다.

생각할수록 자애로운 령도자님의 그 품이 고마왔습니다. 그 품이 아니였던들 제가 어떻게 선친들의 의로움을 찾을수 있겠습니까.

반일의 력사가 바로서고 옳바로 전승되는 령도자님의 치하에서만이 영영 묻혀버렸던 그 복잡하고 오랜 선친들의 행적을 밝혀낼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봉화혁명사적지를 참관하면서도 깊이 깨닫게 되였습니다.

봉화혁명사적지는 강동군 봉화리에 자리잡고있는데 반일혁명투사 김형직선생님께서 이곳에 있는 명신(明新)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후대들을 반일애국정신으로 교육하면서 조선국민회 활동을 지도하시던 거점입니다.

《조선국민회》는 선생님께서 주체6(1917)년 3월 23일에 국내외에 있는 독립운동자들을 중심으로 조직하신 반일지하조직입니다.

선생님께서는 강동에 계실 때에 저의 고향인 회창땅에도 드나드셨다고 합니다.

이곳을 참관하던 날 저는 김형직선생님의 영향하에 활동하던 선친들을 생각하면서 남다른 감명속에 사적들을 돌아보았습니다. 선친들의 뒤를 따라 김형직선생님의 뜻을 받들어나갈 각오가 새롭게 가슴을 메웠습니다.

선생님의 활동은 남으로는 목포까지, 북으로는 평북도일대까지 전국토와 해외를 포괄하고있었습니다. 그 반일애국의 발자취를 따라 끝없이 걷고싶었습니다.

기쁨이 힘이라는 말처럼 걸음도 씩씩해지고 생각도 마음도 감정도 전혀 새 사람이 되였습니다.

그런데 사적지일대를 관망하기 좋은 봉화산중턱에 위치하고있는 한 정자에 이르러 잠간 휴식하는 사이 뜻밖에도 해설원은 저의 오상준할아버지가 서울 민립(民立)대학건설에 자금 50원을 희사했다는 보도가 당시 《동아일보》 1923년 8월 23일부에 실려있다는것을 알려주었습니다. 민립대학은 당시 조선의 독립을 위한 실력양성을 목적으로 건립되는 대학이였으므로 이 대학의 건립과 그 지원은 곧 반일애국의 표시로 됩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사실도 전혀 모르고 일생을 살아왔습니다. 앞에서 말한 란산주재소습격 사실도 동아일보에 보도되여있었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선친들앞에 죄스럽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만일 이남땅에 있었다면 이런 사실이 밝혀질수 있었겠습니까. 영영 밝힐수 없음은 물론 알아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일생을 마쳤을것입니다.

거기에도 당시의 동아일보가 있습니다.

그러나 친일이 과거의 죄로 계산되지 않는 땅, 오히려 그것이 득세하는 거꾸로 선 력사속에서는 반일의 자취도 의미를 상실하고 흐려지기마련이며 그것을 굳이 밝힐 까닭도 없는것입니다.

오직 민족사의 정통이 살아있고 력사의 정도를 걷고 있는 땅, 한 인간의 운명마저 깊이 헤아리는 령도자님의 품속에서만이 그것이 밝혀질수 있는것입니다.

저의 신인간된 기쁨은 혈통적으로도 민족사와 더불어 떳떳한 새 출발을 한다는데 각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 기쁨은 선친들의 뜻을 이어 친지들과 고향, 겨레와 조국을 위하여 령도자님을 받들어 새 출발을 하는 기쁨입니다. 그것은 고목생화(枯木生花)가 아닙니다. 새 희망과 푸른 꿈을 안고 물장구치던 어린시절로 돌아가 인생을 다시 사는것입니다.

저는 새 인간으로 태여났습니다.

천도교경전에 《밝음이 있는곳을 알지 못하거든 내 마음을 그 땅에 보내라.》고 한것처럼 저는 항시 이북을 동경해왔지만 이북땅에 이런 밝음이 기다리고있을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세상에 태여난것을 죄송스럽게 생각하던 사람이 세상의 밝음을 알게 되였으니 청수를 떠놓고 평생을 수심정기(守心正氣)한들 이 마음의 열림에 미칠수 있겠습니까.

저는 용기가 백배되고 하늘땅의 기운이 이 한몸에 붙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재생의 활력을 이끌어주고 키워주듯 령도자님께서는 그후 저에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이라는 중임을 하명해주시였습니다. 아울러 저는 조선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회 고문을 력임하게 되였습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이북의 통일정책시행을 주관하는 정부차원의 단위입니다. 제가 이러한 중요한 단위의 책임적인 직무를 담당하리라고는 또한 생각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분에 넘치는 어려운 직책도 령도자님의 뜻이고보면 저에게는 오직 그 뜻을 받들어 분골쇄신하는 전사의 도리가 있을뿐입니다.

그분의 뜻은 민족의 뜻이고 력사와 인민의 뜻입니다.

저의 여생은 오로지 령도자님의 뜻을 받들어 통일성업을 이룩하는 과제앞에 서있을따름입니다.

저는 령도자님의 통일전사가 된것을 가장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령도자님께서는 이런 큰 영광을 안겨주시고도 제가 이북에 들어와 처음으로 맞이한 생일날에는 생일상까지 배려해주시는 크나큰 은정을 베푸시였습니다.

한 인간이 출생하여 가족, 친척, 친우들의 축복속에 년년이 생일을 쇠게 되지만 한 나라의 령도자가 저 같은 평범한 인간에게 생일상을 하사해주는 례를 력사는 아직 모르고있습니다.

이것 역시 위대한 김정일령도자님의 치하에서만 찾아볼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제가 령도자님께서 보내주신 생일상을 받아안고 걸어온 한생을 생각하며 더욱 감격에 목메이게 된것은 이것이 바로 신인간의 새 출발을 뜻하는 위대한 은인이신 령도자님의 축복이라고 생각되였기때문입니다.
 
 

민족의 성지
 

평양은 민족의 성지입니다.

이 아름답고 혁명적인 도시는 민족의 오랜 력사와 문화의 중심지로 빛나고있습니다.

여기에는 고조선으로부터 시작하여 유구한 민족사를 증시하는 유적들이 많습니다.

특히 최근에 이르러 과거력사가 밝혀지면서 민족사에서 차지하는 평양의 의미는 자못 거룩해졌습니다.

과거력사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밝혀집니다.

그동안 평양지방에서는 많은 력사적사실들이 새롭게 밝혀졌습니다.

그중에서도 단군이 전설의 인물이 아니라 실재한 인물이라는것이 실증되고 단군릉이 건설된것은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가장 충격적인 대사변이였습니다.

이것은 우리 민족이 자기 근원을 찾아 유구한 력사국의 성스러움과 긍지를 안고 다시금 태여난것과 같은 축제였습니다.

남녘의 마음도 평양의 하늘가를 우러러 온통 흥분에 휩싸여 북으로 달려왔습니다.

단군과 그 력사가 해명됨으로써 우리 민족의 원시조를 찾게 되고 우리의 고대사체계가 새롭게 해명되게 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민족사적사변은 결코 저절로 이루어지는것이 아닙니다.

력사가 말하여주는것처럼 력사적 사변이나 발견은 위대한 인물에 의해 이루어지게 됩니다.

단군이 실재한 인물이라는것이 밝혀지고 단군릉이 건립되여 오랜 력사와 전통을 가진 우리 민족사가 더욱 빛나게 된것은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과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님에 의해서만 이루어질수 있었습니다.

저는 평양에 영주한 이후 단군릉을 참관하면서 이 진리를 더 깊이 새기게 되였습니다.

이날 단군릉을 찾아가는 저의 심정은 류달랐습니다. 이남에 있을 때 단군릉개건식에 참가해달라는 류미영위원장의 초청을 받고도 오지 못했던것만큼 그간 내내 마음속으로 나름대로 상상해보던 단군릉이였습니다.

단군을 섬기는 종교인 대종교는 더 말할것도 없고 민족을 중시하는 민족종교인 천도교도 민족의 원시조인 단군에 대한 관심이 대단히 높습니다.

단군릉은 평양에서 강동으로 나가는 도로에서 올려다보이는 대박산이라는 산정에 위치하고있었습니다.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산우에 흰색의 9층계단으로 릉이 솟아있었습니다.

예로부터 계단식무덤이라는것이 있었던것으로 저는 알고있습니다. 그러니 무덤형식도 조선전래의 형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9층으로 된것은 구천을 상징한것으로 하늘에서 제일 높은곳을 뜻하는것입니다.

특히 산밑에서부터 릉까지 폭넓은 계단으로 되여있어 한계단한계단을 짚고오르고나면 정말 하늘나라에 오른것 같은 높음을 느끼게 됩니다.

이날 저는 해설자로부터 민족의 원시조인 단군을 찾아주신 주석님의 로고에 대한 이야기를 감명깊게 들었습니다.

주석님께서는 력사학자들과 상의도 하시고 력사서적들을 대비분석해보기도 하시면서 분망한 나날들을 보내시였습니다. 본래의 단군릉을 찾아 파보도록 조처하신분도, 개건할 단군릉의 위치를 정해주시고 릉건설설계를 보아주신분도 주석님이시였습니다.

저는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민족정통성의 원류가 이북에 있고 그것이 다 주석님에 의해 찾아지고 마련되였다는것을 깨닫게 되였습니다.

이남의 대종교 총전교인 안호상선생이 고령의 몸임에도 불구하고 개건된 단군릉을 찾아 평양을 다녀간것도 다 이 민족사적사변에 대한 공감의 표시이며 주석님에 대한 공경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남의 력사학자들속에서도 단군을 실재한 인물로 해석하고 인지하는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리조실록》에도 숙종때 단군릉을 수찬하고 제를 올렸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고조선국가를 세운 원시조 단군과 고구려국가를 세운 동명왕을 함께 제사지내던 사당인 숭령전(崇靈殿)도 평양 장대재에 그대로 보존되여있습니다. 안호상선생이 왔을 때도 이 숭령전을 찾아 제를 올렸습니다.

저도 찾아가보았는데 1429년에 지은 건물로 원래는 본전과 동서행랑, 대문으로 되여있었으나 지금은 본전과 대문만 남아있었습니다. 합각지붕에 두공조각이 섬세하고 화려한 건물이였습니다.

이남의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이나 개천대학 학장 같은분들도 국사학에 일가견을 가지고있는분들인데 다 단군이 실재한 인물임을 주장하고있습니다.

이제는 단군왕검이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웠다는 이야기는 신화가 아니라 정설로 되였습니다.

그러나 민족의 대성인이신 주석님께서는 애석하게도 개건된 단군릉을 보지 못하시고 서거하시였습니다. 참으로 주석님의 서거는 민족의 더없는 손실입니다.

그러나 주석님의 사상과 의도, 창업의 공적을 그대로 전승하시는 령도자님께서 계시기에 단군민족의 력사는 계속 빛을 뿌리고있습니다.

이날 저는 주석님께서 서거하신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속에서도 주석님의 유훈을 받들고 단군릉을 제기일내에 완공하도록 심혈을 기울이신 령도자님의 거룩한 뜻을 또한 커다란 감동속에 가슴깊이 새기게 되였습니다.

그분께서는 전국이 슬픔에 잠겨있는 애도의 기간에도 억만가지 일이 여기에 달린듯 단군릉건설만은 조금도 늦추지 않으시고 민족사의 무궁한 뜻이 이 단군릉에 빛나도록 순일하고 쉬지 않는 정성을 바치시였습니다.

주체83(1994)년 10월 29일, 완공된 단군릉의 모습을 제일먼저 보아주신분도 령도자님이시였습니다.

이날 그분께서는 수령님께서 단군을 우리 민족의 원시조로 찾아주시고 단군릉을 훌륭하게 개건하도록 하심으로써 우리 민족의 유구한 력사와 슬기를 대를 이어가며 길이 전할수 있게 되였다고 하시면서 단군릉은 국보인것만큼 자그마한 손색도 없이 꾸릴뿐아니라 보존관리를 잘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이날 령도자님께서는 단군릉입구에 있는 돌문주를 보아주시고 돌문주의 높이가 적당하다고 가르쳐주시였는데 이것은 이 돌문이 좀 커보인다고 할수 있다는 사실을 아시고 하신 말씀이였습니다.

해설자의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도 다시금 돌문을 쳐다보았습니다.

돌문 하나만을 고립적으로 볼 때는 좀 크다는 감이 어딘가 들었습니다. 그러나 돌문과 계단, 그우에 있는 릉을 한구도안에서 보니 큰 감이 없을뿐더러 대단히 조화가 잘 이루어져보였습니다. 참관자들이 단군릉을 보는 안계는 바로 이 구도속에 있는것입니다.

령도자님의 출중한 심미안에도 놀랐지만 그분께서 단군릉건설을 얼마나 중시하시고 하나의 구조물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신중하게 책임적으로 대하시는가를 재삼 깨닫게 되고 민족사를 한몸에 안고계시는 령수만이 그렇게 할수 있다는 생각에 머리가 숙여졌습니다.

단군릉 하나만이 아닙니다.

주석님과 령도자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우리 나라 고대력사체계도 새롭게 정립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북에서는 이미 조선에는 구석기시대가 없었고 신석기시대에 와서야 여러곳에서 여러 종족들이 몰려들어와서 살게 되였다는 조선인유래설을 뒤집고 조선에는 구석기시대도 있었으며 원인, 고인, 신인에 해당하는 인류사적발전단계가 존재하였다는 사실이 실증되였습니다. 그간 이북에서 발굴된 인류화석들은 조선반도에서 인류초시기부터 사람이 살았다는것을 립증해주고있습니다.

이남에서도 고인의 화석이 발굴되여 화제가 된 일이 있지만 이북에서처럼 그것이 깊이 연구정리되지는 못하였습니다.

이북에서는 이러한 발굴에 기초하여 인류학적으로 본 조선사람 즉 조선인종은 구석기시대 후기 신인의 후손인 조선옛류형사람에서 유래되였다고 보는것입니다. 그러한 조선사람들로 첫 국가를 형성한것이 단군조선입니다.

최근에는 대동강류역이 우리의 옛 조상들이 아득한 태고로부터 태를 묻고 살아온 보금자리였으며 인류의 초기문화가 싹튼 유서깊은 력사의 성지였다는것이 밝혀져 《대동강문화》라는 명명으로 세상에 공포되였습니다.

이에 의하면 구석기시대 전기, 중기, 후기 유적들과 거기서 발굴된 원인, 고인, 신인들의 인류화석이 다 대동강류역에서 발견되였다는것입니다.

신석기시대에 이르러 조선옛류형사람들이 대동강류역의 광활한 지대에서 항구적인 정착생활을 하면서 일찌기 청동을 만들어내고 청동기문화를 창조하였음이 또한 실증되였습니다. 발굴된 이때의 팽이그릇을 시료로 하여 그 년대를 측정한 결과 지금으로부터 5,306년전의것이라는것이 확인되였습니다. 이 절대년대측정기는 대동강류역에서 청동기시대가 단군조선의 성립시기보다 이른시기인 기원전 4,000년기 후반기부터 시작되였다는것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원시조인 단군이 기원전 3,000년기초에 평양을 중심으로 하여 동방에서 처음으로 첫 고대국가인 고조선을 건립함으로써 대동강류역에서는 드디여 새로운 문명시대가 펼쳐지게 된것입니다.

단군조선시기의 문화를 대표하는 고인돌무덤과 돌판무덤이 이 강류역에 가장 많이 분포되여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시해주고있습니다.

고인돌무덤은 초보적으로 조사한데 의하더라도 대동강류역에 1만 4,000여기가 분포되여있다는것입니다.

최근에는 이 지역에서 돌판무덤들도 많이 발굴되였는데 돌판무덤에서 나온 금귀걸이는 절대년대가 지금으로부터 4,376년전 혹은 4,425년전의것입니다. 이외에도 토성들과 도시를 방불케 하는 큰 부락유적들도 많이 드러났습니다.

이것은 인류사적 발견이며 사변입니다. 지금까지 력사에는 인류문화의 발생지역이 황하류역과 티그리시강류역, 유프라테스강류역과 닐강하류의 델타지역 등 4개의 강류역으로 되여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 4개의 강류역만이 인류문화의 발생지가 아닙니다.

온 겨레에게 커다란 긍지와 자부심을 안겨주는 이 빛나는 성과도 주석님과 령도자님의 현명한 치하에서 그분들의 직접적인 손길에 의해 이룩된 결실입니다.

그동안 저는 새로 발굴된 유적들도 돌아보고 학자들도 만나보았습니다. 누구나 주석님과 령도자님께서 이 분야에 기울이신 로고와 심혈에 대하여 눈물에 겨워 이야기하였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들을 들으면서도 많은것을 생각하게 되였습니다.

이남과 같은 사회에서는 고고학분야에 대한 연구나 발굴은 개별적인 학자들이나 연구가들에 의해 극히 소극적으로 진행되고있습니다.

그러나 이북에서는 이러한 일들이 국가의 중대사로 전사회적인 관심속에 진행되고있을뿐아니라 주석님과 령도자님께서 직접 고고학연구와 그 발굴사업에서 견지할 원칙과 방도들을 밝혀주시고 고고학연구소만도 100여명으로 된 전문발굴집단을 무어주시는가 하면 비행기까지 띄워주시면서 일일이 이끌어주신다니 이 지구촌 어디에서도 이러한 일은 더는 찾아볼수 없을것입니다.

저는 이북에 들어와 많은 면에서 새로 느끼는바가 크지만 특히 령도자님께서 민족문제와 력사에 깊은 안목과 지식을 가지고 사려깊게 대하시는데 특별히 감복하고있습니다.

저는 그간 령도자님의 로작들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분의 사상과 리론은 구구절절 바른 말이고 바른 리치입니다.

그 명석한 론리와 창조성을 따를 사람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제가 말하고싶은것은 그분의 리론들이 다 민족사적립장에서 주체성과 민족성의 투철한 구현으로 성립되고 전개되여있다는것입니다.

거기에는 우리 인민과 민족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슴배여있으며 조국과 인민에 대한 헌신의 념이 깃들어있습니다.

저는 가끔 령도자님을 천도교식으로 표현하여 《위위심》(爲爲心)을 지니신 현철한 위인이시라고 생각하군합니다. 《위위심》이라는것은 사람을 위하고 사회를 위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마음을 뜻합니다. 그런 마음을 지닌 사람이 곧 현철한 성인으로 된다고 보는것입니다.

그분께서는 나라와 민족을 위한 남다른 마음을 안고 대학시절에 벌써 우리 나라 고대사와 중세사, 현대사에 깊은 리해를 가지시고 사대주의사관의 병페를 꿰뚫어보시였으며 민족의 징표에서도 피줄과 언어를 첫자리에 놓는 탁견을 피력하시였습니다.

피줄과 언어를 민족을 규정하는 중요징표로 보는 견해만 해도 저는 가장 바른 리치라고 생각합니다.

혈연적으로 련계된 사람들이 한지역에서 오랜 정착생활을 하게 되면 친근성, 유사성은 물론 의사표현과 정신생활에서도 공통성이 이루어지게 되고 문화와 경제 생활에서도 공통성이 형성되게 된다는것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것입니다. 민족의 공통성을 이루는 지역도 같은 혈통과 언어를 가진 선조의 피와 땀이 스민 땅입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백범 김구선생도 민족을 가리켜 《피와 력사》라고 하였습니다.

이남에서도 이에 대한 론의가 분분하지만 민족은 어디까지나 피줄이 기본입니다. 특히 조선사람들은 누구나 민족이라고 하면 피줄부터 생각하는것이 통념으로 되여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민족이 단군을 원시조로 하는 단일민족으로서 민족형성의 정도를 거친 전형적인 민족임을 뜻하는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령도자님께서는 민족에 대한 옳바른 인식과 견해를 가지시고 일찍부터 력사유적발굴사업을 현명하게 이끄심으로써 우리 민족은 인류력사발전의 려명기로부터 훌륭한 민족문화를 창조하여왔다는것을 증시하시였습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민족흥망의 세계력사속에서 어떻게 되여 그리 크지도 않은 우리 민족이 장구한 기간 민족의 생존을 이어 민족사를 형성할수 있었는가를 설명하여주기도 합니다.

세계적으로 볼 때 민족흥망의 력사는 헤아릴수 없을 정도로 무상하였습니다. 동아시아의 력사도 수백의 민족이 흥하고 또 사라져간 력사였습니다. 망해버린 수많은 민족들의 력사는 민족사를 구성하지 못하고 다만 세계사속의 한 토막으로 오늘에 전해지고있을뿐입니다.

이와는 달리 우리 민족은 유구한 력사를 포괄하는 독자적인 민족사를 견지하고있습니다. 주지하는바이지만 우리 나라는 력사적으로 주변의 강대국들로부터 압력을 받아야 하는 지리적위치에 놓여있었습니다. 그러나 세기를 거듭하였던 주변 대국들의 침습이나 간섭, 동화 작용도 우리 민족의 독자성을 말살할수 없었으며 유라시아대륙의 초원지역에서 흥기한 유목민들이 한족의 송나라와 명나라까지 멸망시켰으나 우리 나라의 자주권은 유린하지 못했습니다. 일제식민지통치시기에도 우리 민족은 항일민족으로서의 존엄을 빛내임으로써 민족사의 단절상태를 극복하고 오늘에 이르는 유구한 민족사를 형성할수 있게 된것입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말하여 우리 민족이 지니고있는 투철한 민족주체성에 기인합니다. 동시에 여기에는 인류문화의 발생기로부터 시작되는 남다른 오랜 력사의 근원력이 놓여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력사와 그 근원력이 위대한 령도자님의 치하에서 령도자님에 의하여 선명하게 밝혀지게 되였습니다.

저는 자신이 력사의 성지, 민족의 성역에 서있다는 뜻밖의 놀라움과 감동을 안고 단군릉앞에서 거행된 개천절의식에 참가하여 경모하는 김정일령도자님을 단군민족의 령수로 높이 칭송하는 열설을 하였습니다.

그날은 주체86(1997)년 10월 3일이였습니다. 개천절이라고 하면 단군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운 건국일을 이르는 말인데 이남의 대종교에서는 단군의 탄생일로 기념하기도 합니다.

이북에 들어와서 처음 참가한 개천절행사는 참으로 인상적이였습니다.

의식이 시작되기전에 단군릉 돌문앞에서 노래와 춤, 교예 등 민족예술공연이 진행된 다음 평양시민들과 해외동포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제식이 성대히 거행되고 연후에 여러명의 인사들의 연설이 있었습니다.

이남에서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사회유명인사들이 참가한 가운데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이 보고를 하고 《국무총리》가 연설하는것으로 개천절행사가 진행되는것이 통례입니다. 이와는 달리 이북에서는 민족통일협회가 주관하여 광범한 군중이 참가한 가운데 단군릉앞에서 성대한 의식을 거행하는것이였습니다. 이것만 보아도 인민대중이 주인된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가 변별되여집니다.

이날 저는 자기 연설에서 민족의 시조 단군의 건국리념이 홍익인간(弘益人間)이였다는것과 그 리념까지를 실현하신 령도자님에 대하여 칭송하였지만 홍익인간이란 널리 인간세계를 리롭게 한다는 뜻으로 고조선 개국이래 우리 나라 정교(政敎)의 중요한 정신이였고 리상이였습니다.

그러나 이 리상은 그 어느 사회, 그 어느 력사적시기에도 실현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오로지 인간을 가장 귀중히 여기고 세계를 인간에게 리롭게 개조해나가는 이북사회에 구현된 주체사상에 의하여 홍익인간의 리상까지도 드디여 그 실현을 보게 되였습니다.

사람이 모든것의 주인이며 사람이 모든것을 결정한다는 주체사상의 원리는 세계와 사람과의 관계에서 사람의 지위와 역할을 인류사상 처음으로 밝히였습니다. 주체사상에 의하여 이북에서는 사람이 사람대접을 받는 참다운 인간사회를 건설하게 되였으며 인간의 힘, 인민대중의 힘을 지고의 높이에로 제고시킬수 있었습니다. 주체사상이 구현된 이북의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야말로 최선의 진리이며 민족사의 정점을 이루는 인간을 위한 인간의 사회입니다.

참으로 주석님의 뜻을 이어 주체사상을 발전풍부화시키시고 철저히 구현해나가시는 위대한 김정일령도자님은 민족의 정통성을 체현하시고 민족의 명맥을 튼튼히 이어나가시는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간주하고계시는 단군민족의 령수이시며 민족의 대성인이십니다.

력사는 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력사를 잘 알고 력사를 옳바르게 계승할 때만이 이루어지는 힘입니다.

령도자님께서는 민족사를 가장 옳바르게 정립하고 계승하고계시기때문에 력사의 근원력을 한몸에 지니고계십니다.
 
 

바로세운 력사
 

력사는 진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의 기록이라는 의미이지 결코 해당 시기의 력사가 다 당위라는 뜻은 아닙니다. 력사의 단면들은 잘못 흐를수도 있고 바르게 흐를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해당 시기의 력사를 옳바른 사관에 립각하여 정당하게 평가하고 정립하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특히 우리 민족사를 두고 더욱 그렇게 말할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 민족사는 긍지높은 력사입니다. 그 유구성과 문화창조의 우수성에서 류례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 력사만큼 온갖 그릇된 사관에 의해 일그러지고 오욕당한 력사도 드물것입니다.

민족사관의 옳바른 정립이 특별히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것은 바로 그때문입니다. 결국 그것에 의해 력사가 바로서게 되고 바로세워진 력사우에서 민족사를 옳바르게 발전시켜나갈수 있는것입니다.

특히 오늘 북과 남의 실정을 놓고볼 때 이 문제가 중요한 출발점으로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거꾸로 선 력사속에서는 외세의존이 정당화되고 사대굴종이 설자리가 얼마든지 있기때문입니다.

따라서 민족사관정립에 남기신 위대한 김정일령도자님의 공적은 실로 기념비적의의를 가집니다.

저는 고구려시조인 동명왕릉과 고려의 시조 왕건왕릉을 참관할 때도 김일성종합대학을 방문하였을 때도 여러번에 걸쳐 해설을 듣고 책도 읽었지만 신라에 의한 3국통일부정설이야말로 그분의 민족사관을 말하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분께서는 일찌기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공부하던 시절에 학과토론회에 참가하시여 신라에 의한 3국통일을 전면부정하시였습니다.

그 근거를 보면 우선 대동강이북의 옛 고구려땅에 발해국이 세워져 200여년동안 존속되였다는 사실, 다시말하여 3국이 차지하고있던 령토에 발해와 신라라는 서로 다른 주권국가가 존립하였다는것입니다.

또한 그 근거는 신라는 당시 3국을 통일하여 우리 나라를 강력한 통일국가로 만들려는 지향도 가지고있지 않았으며 그럴만한 힘도 없었다는것입니다.

그분께서는 그렇기때문에 외부의 침략세력과 합세하여 동족의 나라를 멸망시킨 신라와 김유신을 응당 재평가하여야 한다고 하시였습니다.

이때 그분께서 하신 말씀중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도 있는데 그것은 라당(羅唐)의 결탁관계를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사대주의사가들에 의해 력사가 외곡되게 정리된것을 비판하시면서 하신 뜻깊은 말씀이였습니다.

《우리의 력사과학에는 이러한 외곡된 사관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있어서는 안됩니다. 저는 인민의 립장에 선 진정한 력사관, 주체의 력사관을 철저히 확립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 나라에서 주체적인 민족사관과 민족사의 옳바른 정립을 단초지은 말씀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귀중한 말씀입니다. 특히 그 이후에 진행한 이북에서의 사대주의사관을 극복하고 민족사의 정도를 밝히는 력사재정립과정이 이남에까지 영향을 미치여 사학계의 새로운 움직임을 대두시켰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이 말씀의 의의는 자못 큽니다.

령도자님의 신라에 의한 3국통일부정설은 무엇보다도 사대주의사관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고 력사정립에서 근본적인 전환의 문을 열어놓았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신라에 의한 3국통일은 12세기 김부식의 《삼국사기》나 13세기 일연의 《삼국유사》로부터 700∼800년 세월이 흘러오는 장구한 기간 하나의 정설로 되여왔습니다.

령도자님에 의해 처음으로 그 정설이 부정됨으로써 력사를 재정립하기 위한 새 시기가 시작되게 된것입니다.

이것은 령도자님에 의해 신라의 외세의존의 력사가 정당하게 비판되고 재평가됨으로써 가능했던것입니다.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려고 당나라에 출병을 요청하는 첫 사절을 보낸후부터 신라의 당나라에 대한 외교는 자기 부정과 외세의존의 극치를 이룹니다.

다 아다싶이 신라는 당의 속심이 청병을 기화로 백제나 고구려를 정벌한후 신라까지도 타고앉아 우리 민족전체를 지배하려 한다는것을 알면서도 당과 결탁하는 길로 나갔습니다.

신라는 청병을 요청하는 사절을 련이어 보냈을뿐아니라 때로는 김춘추자신이 직접 당태종을 찾아가 굴욕적인 사대의례를 다하면서 신라의 장복(章服)을 당제(唐制)로 고치도록 윤허해줄것을 애걸하는가 하면 신라의 년호를 페기하고 당나라의 년호를 쓰며 당의 의관을 착용하고 행정기구와 법률까지 당나라의 그것과 같이 고치는 등 사대주의정책을 써서 당나라에 환심을 사려고 하였습니다. 유교교육을 강화하기 위한 국학(최고교육기관)을 설치한것도 이 시기입니다. 재언하면 사대주의정책을 국내정책에 적극 확산시킨것입니다.

한편 당나라의 고구려원정을 찬양한 《태평송》이라는 시를 짓고 시를 무늬로 삼아 비단을 짜서 당나라에 바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력사가 어떻게 정당화될수 있고 찬양될수 있겠습니까.

신라사대주의는 외세를 끌어들여 동족을 멸망시킨 반역행위로서 그것은 통일이 아니라 반통일입니다.

신라사대주의는 세기를 두고 푸르러오던 송화강류역과 료동지방까지 광활한 지역을 차지하고있던 고구려에 의한 국토통일의 민족사적인 대업을 송두리채 팔아먹고 그렇게 함으로써 신라자체마저도 위기에 몰아넣었던것입니다.

대동강이남지역의 령유가 결코 통일을 의미할수 없습니다. 신라가 차지한 땅은 삼국국토의 절반도 되지 못하는 극히 일부분일따름입니다.

령도자님의 신라에 의한 3국통일부정설은 오늘 이남땅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있습니다. 우선 발해를 민족사에 포함시키는 문제가 여러모로 검토되고있으며 포함시켜야 한다는 견해가 상당히 늘어나고있습니다. 발해를 민족사에 포함시키는 한 신라에 의한 3국통일은 부정됩니다.

여기에서 문제로 되는것은 발해에 대한 사료가 부족한것인데 이북에서는 이 면에서도 많은 력사자료들을 찾아냈습니다.

일찌기 김정일령도자님께서는 발해는 고구려유민들에 의하여 옛 고구려땅에 세워진 강력한 주권국가로서 고구려의 문화를 계승발전시켰으며 우리 나라에 대한 북방 여러 나라들의 거듭되는 침입을 막고 나라와 겨레의 안전을 보장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고 하시면서 발해를 우리 나라 력사서술의 기본체계에 넣어 취급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였습니다.

령도자님의 가르치심을 받들고 이북에서는 그간 많은 연구사업들이 진행되여왔습니다.

저는 이북에 들어와서 출판물들을 통하여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임을 인증하는 많은 력사기록들을 읽을수 있었습니다.

이에 의하면 발해존립당시의 기록인 최치원의 편지들과 《속일본기》등에는 발해국이 고구려, 백제, 신라가운데서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이라는것이 밝혀져있고 발해국왕들이 일본왕에게 보낸 국서에서도 자기를 고(구)려국의 국왕이라고 칭하였고 《발해국은 고(구)려의 옛 령토를 회복하고 부여이래의 오랜 전통을 이어받고있다.》고 썼습니다.

일본왕의 답서에서도 발해국왕을 고(구)려 국왕이라고 하였습니다.

발해가 망한후의 사료가운데서도 고려전기의 력사를 서술함에 앞서 발해국을 들고있으며 고구려의 옛 장수 대조영이 발해국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후 실학사상가들인 류득공이나 김정호와 같은 사람들이 남긴 글들에서도 이것이 명백히 드러나고있습니다.

류득공은 《발해고》서문에서 《고려가 발해사를 편찬하지 않은것을 보면 고려가 떨치지 못하였다는것을 알수 있다.

…김씨가 망하고 대씨가 망하자 왕씨가 그것을 통합하여 차지하고는 고려라고 하였다. 고려는 남쪽으로 김씨가 차지하고있던 땅을 전부 차지했지만 대씨가 차지한 북쪽땅을 전부 차지하지 못했다.》라고 하였으며 김정호는 《대동지지》에서 《고구려, 백제 멸망후 50여년에 이르러 발해는 또한 구려(고구려)의 옛 강역을 계승하고 신라와 더불어 남북 두 나라로 대치하여 200년 존속하였는데 고려태조가 이를 통합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사료들은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임을 의문의 여지없이 확증해주고있습니다.

특히 발해국 창립 1300주기를 맞으며 평양에서 열린 발해유물전시회를 보면서 저는 민족사속의 발해를 더 깊이 확인할수 있었습니다.

발해는 5경 15부를 두고있었는데 수도였던 상경 룡천부에서 발굴된 궁성터는 그 건물배치와 궁성구획, 건축방법이 고구려의 그것과 같았습니다.

전시회는 발해시기의 무덤들과 절터, 성터는 물론 수키와막새, 세발솥, 금동련꽃장식, 금귀걸이, 도끼날식활촉을 비롯한 수많은 유적들이 고구려의 그것들과 꼭같음을 의문의 여지없이 증시해주고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것은 이러한 유적들을 이북에서는 이미 60년대에 중국학자들과 합동하여 발굴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이것을 령도자님의 신라에 의한 3국통일부정설이 있은 이후에 시작된 적극적인 대발굴사업으로서 령도자님의 탁견을 력사유물로 증명하였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고 봅니다.

령도자님의 탁견이 아니였다면 그러한 발굴사업도 일찌기 없었을것이며 해동성국(海東盛國)의 자랑찬 민족사에 대한 유적발굴의 빛나는 결과도 없었을것입니다. 발해가 고구려유민에 의해 건립되고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임은 이제 더는 론박할 여지가 없게 되였습니다. 삼국사기에 발해를 가리켜 북국(北國)이라고 지칭한것은 결코 우연한것이 아닙니다. 발해를 북국이라고 한것은 신라가 남국(南國)임을 뜻하며 당시 우리 민족사에는 남북 두 나라가 존재하였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신라에 의한 3국통일의 허구성도 이제 드러날대로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이남에서는 아직도 신라에 의한 3국통일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있으며 음으로 양으로 미화하고있습니다.

신라사대주의력사, 특히 외세를 끌어들여 민족을 해친 7세기에 빚어진 사대주의력사는 오늘도 우리에게 심각한 력사적교훈을 주고있습니다. 그 교훈은 사대주의가 민족의 존립, 민족사의 자률적인 발전에 도전하는 최대의 악이며 사대주의가 통치층속에서 득세하면 민족의 운명이 근원적으로 위협받게 된다는것입니다. 사대주의는 통치층속에서 나타나는 산물이지 민중속에서 나오는 산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남의 사학계에서는 사대의례와 사대주의를 동일시하면서 통치층이 주도한 사대관계는 당시의 시대적조건에서는 당위적이였다는 결론을 내리고있습니다. 그리하여 동족을 배반한 신라의 죄악을 오히려 애국충정으로 찬양하고있는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대주의사관입니다. 력사는 바로 이와 같은 사대주의사관에 의해 거꾸로 서게 됩니다.

이것은 력사를 인민적립장에서 보지 못하고 왕조사적립장, 사대주의립장에서 보기때문이며 민족사정립의 원리를 민족주체성의 론리우에 올려놓지 못하고있기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여기서 보다 중요하게 말하고싶은것은 학문외적문제, 정치적견지에서 밝혀야 할 문제입니다.

이남의 당국자들은 일찌기 신라에 의한 3국통일을 오늘의 민족통일을 위한 본보기로 제시하였습니다. 이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남의 사대권력은 신라의 사대주의적반통일정책을 애국적인 민족통일정책으로 외곡함으로써 그들이 감행하고있는 오늘의 외세의존정책을 정당화하려 하고있으며 그러한 외곡을 사학계에 강요하고있는것입니다.

이러한 정치풍토에서는 언제 가도 력사가 바로설수 없습니다.

7세기 신라의 력사뿐이 아닙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도 검토되지 않고있으며 리조의 《사대립국》의 리념도 전면적으로 비판되지 않고있습니다.

이북에서는 사대주의가 력사적으로 비판되지만 이남에서는 그것이 권력에 의해 보호되고있습니다.

사대주의는 민족사의 주체적발전과 량립할수 없습니다.

민족사란 독자적인 력사창조단위인 민족이 걸어온 력사이며 세계속에서 민족의 지위의 변천을 새겨온 력사입니다.

그러므로 각 시대에 나름대로 주어지는 세계에 대해 민족이 어떻게 대응하느냐 하는것은 민족의 운명을 좌우하는 문제였으며 주변세계에 대응하는 민족주체성의 정도는 민족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관건이였습니다.

세계에 대한 주체적대응에 의해 력사가 움직일 때 민족사는 빛났고 사대주의적인 대응에 의해 력사가 오도될 때 민족사는 일그러졌습니다.

오늘 우리 민족사를 대표하는것은 위대한 김정일령도자님의 치하의 이북입니다.

력사는 언제나 과거로부터뿐아니라 미래를 향한 련속성을 갖습니다.

수천년을 이어오고 이제 다시 무궁한 미래로 련결되여야 할 우리 민족사는 민족주체성이 살아있는 력사이지 사대주의력사가 아닙니다.

일찌기 옳바른 민족사관을 정립하시고 력사를 바로 세운 령도자님은 민족사발전의 정도를 이끌어나가시는 력사의 주도자이십니다.
 
 

백두산의 민족사적의미
 

백두산은 민족사를 증견하는 성산입니다.

백두대간은 이 강토의 형성을 단초지었고 그 성스러움은 진할줄 모르는 민족의 넋으로 력사의 고비와 고비를 이어왔습니다.

백두산은 누구나 보고싶어하는 산입니다. 이 나라의 제일 명산이요 성산인 백두산을 보지 못하고서야 무슨 말을 할수 있겠습니까. 백두산을 보고나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북에 들어와 뜻깊은 나날들을 보내는 가운데 오매에도 그리던 백두산과 그 일대를 10여일간 돌아보는 행운을 지니게 되였습니다.

끝없이 울창한 원시림우에 거연하게 솟아있는 백두산의 웅장한 자태와 기상은 멀리서부터 신령스러워보였습니다. 누구인가 백두산을 보는 순간 저도 몰래 《아, 하나님》하고 무릎 꿇었다는 말도 있지만 사람들이 백두산을 보고 그 느낌을 여러가지로 이야기하면서도 성스러움이나 신비감을 먼저 꼽는 리유를 곧 알수 있었습니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백두산을 숭상하여 오를 때에는 오른다고 하지 않고 든다고 하였습니다. 말도 크게 하지 않고 조용히 겸허하게 하였으며 산정에 올라설 때도 올라섰다고 하지 않고 내려섰다고 하였습니다.

백두산을 종교계에서는 삼신산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단군설화에 나오는 환인, 환웅, 환검, 이 세 신이 만나던곳이라고 하여 그렇게 부르는것입니다.

이것은 단군민족이 창업의 첫출발을 백두산에서 시작하였음을 의미하며 백두산에서 조국의 력사가 시작되였음을 뜻합니다.

고구려시대나 고려시대, 리조시대를 막론하고 민족사의 갈피마다에는 민족의 운명과 더불어 백두산이 이야기되고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때로는 산이 깊고 못이 커서 룡을 낳는다는 백두산을 광대한 령토경영의 기틀로 삼기도 하고 때로는 천연요새인 백두산에 의지하여 보국개척의 사명을 다하기도 하면서 백두산의 신비속에 민족의 슬기를 빛내여왔습니다.

그러나 백두산은 현대에 이르러 민족해방투쟁의 성지로 되면서 더욱 겨레의 심장을 틀어잡게 되고 민족사의 가장 빛나는 자리를 차지하게 되였습니다.

즉 우리 민족의 위대한 령수이신 김일성장군님께서 백두산에서 조국광복의 홰불을 추켜드심으로써 사람들은 그 거연한 모습을 더욱 우러르게 된것입니다.

다 알고있는바이지만 우리 나라는 지정학적특성으로 말미암아 력사적으로 주변나라들로부터 외침을 받아왔습니다. 그 회수를 900여회라고도 하고 1,000회가 넘는다고도 하지만 여하튼 헤아릴수 없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수난사는 나라와 민족이 자기를 유지하면서 겪은 시련이였습니다. 하지만 일제의 침략으로 인한 망국과 식민지통치는 나라의 종묘사직이 끊어지고 나라를 송두리채 빼앗긴 민족사멸의 위기였습니다.

그동안 《척양척왜》, 《보국안민》의 기치밑에 동학농민군도 일어났고 국권회복을 위한 의병운동도 일어났으나 천추의 한을 남겼을뿐입니다. 기미년의 3.1만세나 병인년의 6.10만세도 원한의 피만 남기고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나라를 빼앗긴 통탄만이 온 강산에 메아리치고 민족의 넋은 개나리보짐에 묻혀 이역만리로 산산이 흩어지고있던 그 암울한 때에 민족구원의 려명은 백두산에서 밝아왔습니다.

백두산은 절세의 애국자, 만고의 빨찌산영웅 김일성장군님께서 주체사상의 기치밑에 장구한 기간 항일대전을 전개하신 혁명의 성산이며 주체의 발원지입니다.

주석님께서 초기에 활동하시던 지역도 백두산천지에 시원을 둔 송화강과 두만강 류역이였습니다.

력사기록에 의하면 30년대중반에 이르러 백두산의 원시림속에 비밀밀영이 건설되고 항일빨찌산사령부는 주체25(1936)년 가을 이곳 중심밀영인 백두산밀영에 자리잡게 됩니다.

저는 백두산밀영과 구호목들 그리고 수령님께서 항일빨찌산의 일부 부대를 령솔하시고 진행한 무산지구전투행로를 따라 대홍단전투현장까지 커다란 감명을 안고 찾아보았습니다.

김일성장군의 노래》에도 있는것처럼 장백산(백두산)줄기줄기와 압록강 굽이굽이마다에 주석님의 혈전의 자욱이 찍혀있었습니다.

주석님께서는 류례없는 가장 간고한 조건에서 가장 장구한 기간 동양제패에 나선 일본대군과 맞서 영웅적으로 싸우셨습니다.

중중첩첩한 총검의 숲을 뚫고 모진 고난을 이겨내면서 끝까지 싸운 그 력사가 있기때문에 우리 민족은 항일민족으로서 자기 력사를 이어올수 있었습니다.

물론 나라의 독립과 광복을 위한 운동은 민족주의계렬의 인사들도 진행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로 대국들에 의존하여 외교적방법으로 나라의 독립을 성취하려고 하였습니다. 그것도 일제강점초기에나 있었던 일로 3.1운동이후부터는 점차 그 열기가 식어졌으며 30년대에 와서는 일제의 기세에 눌려 별로 하는 일 없이 이국땅에 남아있었을뿐입니다.

주석님께서는 일찌기 주체로선을 제시하시고 무장투쟁을 중단없이 전개하면서 광범한 대중을 반일통일전선에 결집시키기 위한 방략도 옳바르게 정하고 적극 시행해나가셨습니다.

주석님께서 창립하신 《조국광복회》는 백두산과 북부조선일대를 중심으로 멀리 이남지역에까지 그 조직망이 분포되고 거기에 각계각층의 반일애국력량이 광범히 망라되여있었습니다.

주석님께서 전개하신 항일혁명투쟁은 곧 우리 민족사에 새로운 전기로 되는 자주성에 기초한 새 력사입니다.

이 새 민족사가 주석님에 의해 바로 백두산에서 시작되고 전개되였으며 이 준엄한 력사속에서 자주를 지켜 굴할줄 모르는 백두산의 정신이 창제되였습니다.

민족의 태양이신 김일성주석님께서는 백두산에서 민족해방을 안고 조국에 개선하시였습니다.

그러나 백두산의 민족사적의미는 여기에만 있는것이 아닙니다.

백두산의 민족사적의미는 또한 조종의 산, 민족해방의 성지에서 위대한 김정일령도자님께서 탄생하시여 민족의 넋과 힘을 백두산처럼 키우셨다는데 있습니다.

저는 선렬들을 따르는 마음으로 백두산을 찾아 걸음을 옮기던 그날 항일빨찌산사령부가 있던 귀틀집과 정일봉을 가까이 바라보면서 이것을 가슴깊이 새기게 되였습니다.

령도자님의 고향집은 백두산밀영의 귀틀집이였습니다.

높푸른 하늘을 향해 치솟은 이깔이며 삼송, 잣나무 수림이 울창한 태고연한 수림속, 백두원시림의 아름드리나무를 정성껏 다듬어 쌓고 동기와로 지붕을 얹은 귀틀집, 방안에 깔려있는 구름노전이며 검소한 생활도구들 그리고 벽에 걸려있는 조선지도, 그 모든것들에는 민족해방투쟁의 력사를 그대로 말해주는 성스러움이 깃들어있었습니다.

고향집에서 정일봉까지 높이가 령도자님의 탄신일의 수자와 같은 216.42메터라고 하였습니다. 고향집앞으로 흐르는 맑은 소백수도 력사의 뜻을 안고 흐르는것만 같았습니다.

이 백두산록은 예로부터 사람이 주거해본 일이 없는 곳입니다. 전설로만 이야기되던 이 하늘나라의 령지에서 항일의 령장 김일성주석님을 아버님으로,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사를 어머님으로 모시고 령도자님께서 탄생하시였습니다.

인걸은 지령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좋은 땅에서 위인이 나온다는 말입니다.

백두산은 령지중의 령지입니다.

천도교법설에도 《북방에 신령한 기운이 있으니 도운(道運)이 북방에 있고 북방에서 인재가 많이 나리라.》예언하였지만 이 나라 북방에 있는 백두산은 천하대운의 명지입니다.

예로부터 우리 겨레는 백두산을 백의민족의 신앙의 대상으로 숭상하면서 밝뫼라고도 불렀습니다. 밝뫼라는것은 밝은 산이라는 말로 태양의 산을 뜻합니다. 이것은 우리 선조들이 이 산에서 천하가 밝아질 대운이 트기를 바랐다는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운이란 결국 태양과 같이 인간세상을 밝게 비쳐줄 인걸의 출현을 말하는것입니다.

천지연에서 룡이 하늘로 올랐다고 하는 전설에 담겨져있는 뜻도 세상만사에 형통한 천인(天人)의 출현을 의미하는것으로 이러한 모든 백의민족의 념원이 령도자님의 탄생에 의하여 우리 민족사 5천년만에 처음으로 이루어지게 된것입니다.

그것도 민족해방의 서광이 비낀 민족사의 래일을 안고 암흑에서 광명에로 계절과 시대가 함께 격변하는 시기에 원쑤격멸의 마지막총창을 가다듬고있던 항일빨찌산들의 축복속에 탄생하시였습니다.

세계에는 위인들의 탄생을 신비화하려고 만들어낸 전설들이 많지만 그 어느것도 령도자님의 탄생의 실재한 사적에 비길바가 못됩니다.

저는 령도자님의 모든 출중한 풍모가 이 경이적이고 신비한 탄생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물론 비범성은 생득의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탄생과 무관한것도 아닙니다. 령도자님의 탄생이야말로 그분의 모든 비범성을 스스로 낳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백두산의 전설은 그분의 동심을 키웠고 항일빨찌산들의 총소리는 일찌기 그분의 애국의 의지를 굳혀주었습니다.

령도자님께서는 백두산의 정신을 안고 생의 한걸음한걸음을 걸으셨고 백두산과 같은 슬기와 백두산과 같은 기상과 담력을 체득하시였습니다.

백두산은 그분의 심혼이며 체취입니다.

령도자님의 모든 사색은 백두산으로부터 시작되고 모든 구상은 백두산으로 치달아올라 이 민족의 주체의 넋을 또한 백두산처럼 키우셨습니다.

그분에 의하여 백두산의 정신은 사람들의 생활의 매 순간과 매개 장소, 매 국면마다에 충만되여 이북사회의 지칠줄 모르는 정신력의 원천을 이루고있습니다.

그동안 저는 어디를 가나 누구를 만나보나 이 무적의 힘, 필승의 정신에 접할수 있었으며 그 투철함과 견결함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력사적으로 내려오는 사대와 교조의 병페를 깨끗이 척결해버린것도 령도자님께서 고양시킨 백두산의 정신이 있었기때문이며 대국들의 포위속에서 그것도 미국과 같은 초대국과 맞서있는 분단된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주의 기치를 높이 들고 자주국의 존엄을 당당하게 지켜나가는것도 다 이 정신이 온 사회에 팽배해있기때문입니다.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님이시야말로 백두산의 정신과 슬기를 한몸에 지니시고 민족자주를 지켜 이 민족의 존엄과 위상을 반만년의 민족사에서 최상의 경지에 올려세우신 탁월한 민족의 령수이십니다.

백두의 뫼부리처럼 굳건하고 아아한 그분의 주체의 신조, 자주의 거룩한 자세는 우리 시대의 가장 빛나는 금자탑입니다.

그분에 의하여 백두산의 정신이 전례없이 신장됨으로써 오늘 백두산은 그분의 존함과 함께 민족의 자생, 자존, 자활의 성산으로 더 높이 솟아오르게 되였습니다.

사람들은 백두산에 오르고싶어합니다.

오늘 이남사람들이 백두산을 그토록 보고싶어하는것은 신비로운 자연경치도 경치이지만 그보다도 거기에 깃들어있는 민족의 성스러움과 존엄, 자주의 정신을 접해보려는것입니다.

더우기 외세의존의 력사가 오래동안 지속되고 민족적인것이 점차 사라지면서 그러한 현실을 용인할수 없는 사람들의 의분이 커질수록 백두산을 바라보는 마음 더욱 간절해지고있습니다.

미국이 강요하는 분단체제란 민족말살체제입니다. 민족을 량분하고 분단을 오래 지속시킴으로써 민족적뉴대나 감정, 단합을 이루지 못하게 하자는것입니다.

원래 미국이라는 나라는 민족이라는 개념이 없는 나라입니다. 그러니 다른 민족의 민족적존엄이나 민족의 아픔을 리해할수도 없고 크게 여기지도 않습니다. 더우기 남조선을 자기의 지배하에 두려니까 민족, 민족 하는것이 시끄러울수밖에 없는것입니다. 민족적 존엄이나 감정은 곧 반미 의식이나 감정을 수반하기때문입니다. 게다가 90년대에 들어와서는 이른바 《세계화》라는 이름밑에 민족의식의 선양을 공공연히 반대하는 주장들까지 나돌며 민족적인것이 급속히 자취를 감추고있는 형편입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이남의 현실을 부정하고 분단을 부정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북을 향해 서게 되며 백두산을 우러러 백두산의 숨결에 접해보려고 하는것입니다. 그동안 백두산에 대한 수많은 노래와 시, 그림과 가극, 사진들이 나돌며 이남사회의 이목을 집중시킨 사례들이 이를 증시하여주고있습니다.

그것은 곧 령도자님의 자주정치에 대한 지지의 표시이며 그분을 우러르고 생각하며 흠모하는 모앙의 표시입니다.

백두산의 숨결은 자주의 숨결입니다. 그것은 민족의 숨결이며 조국의 숨결입니다. 백두산줄기가 내려 하나의 조국강토가 이루어지듯이 백두의 숨결, 민족의 혈맥은 남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령도자님께서는 민족사의 정도를 타고 조종의 산 백두산의 아들로 탄생하시여 민족의 생명력을 백두산처럼 키우시고 그 거세찬 숨결로 이 민족의 통일을 부르고계십니다.

백두산은 통일의 산입니다.

령도자님의 자주의지로 솟아있는 백두산이 있어 조국도 하나이고 민족도 하나입니다.

백두산에 오르면 누구나 통일을 바라보는것 같습니다. 제가 백두산정에 올라 천지연을 바라볼 때도 통일천하를 바라보는것 같았습니다.

통일은 백두산에서 옵니다. 저는 그것을 믿어의심치 않습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 백두산에서 민족해방을 안고오셨듯이 위대한 김정일령도자님께서는 백두산의 정신을 안고 백두산에서 통일을 안아올것입니다.

여기에 바로 미래를 향한 민족사의 의미가 있습니다. 여기에 바로 백두산의 민족사적의미가 있습니다.
 
 

어제와 오늘, 래일을 이어놓은 력사의 타수
 

력사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주성에 기초한 우리 민족의 현대사만 해도 그것은 김일성주석님의 피어린 항일투쟁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영웅이 시대를 낳는가, 시대가 영웅을 낳는가 하는 론의는 오래동안 분분하였지만 저는 영웅이 시대를 낳는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리론이기에 앞서 력사의 생생한 증언입니다.

물론 력사의 창조자는 민중입니다. 민중은 알게 모르게 력사를 밀고온 원동력입니다. 그러나 민중도 옳바른 리념과 지도력에 의해 령도될 때 자기의 사명을 다할수 있습니다.

민중의 령도자는 민중의 의사와 요구를 반영하여 력사의 옳바른 길을 밝히고 그것을 이끌어나가게 됩니다.

위대한 김정일령도자님은 민족사의 정도를 타고 탄생하시였을뿐아니라 민중의 의사를 체현하시고 력사의 어제와 오늘, 래일을 튼튼히 이어놓으신 력사의 주도자이십니다.

저는 이 진실을 개선문을 참관하면서도 깊이 깨닫게 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개선문이라고 하면 적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장병들을 환영하기 위하여 세우기도 하지만 그러한 개선을 후손만대에 길이 기념하려고 세우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개선문을 가지고있는것은 그 민족의 영광으로, 자랑으로 됩니다.

평양에는 그러한 개선문이 있어 또한 민족의 성지로서 이름높다고 생각합니다.

건축형식에서도 뛰여납니다. 개선문이라고 하면 고대로마에서 많이 세워졌고 그 형식도 정해져있었으나 주로 빠리개선문을 손꼽아왔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것도 이 개선문에 비겨 말할만한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조국의 광복과 민중의 해방을 위해 지난한 세월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시고 끝끝내 승리하고 돌아오신 절세의 애국자, 희세의 영웅의 업적을 집약적으로 나타내고있는 장중하고 우아한 건축구조물이였습니다.

절경 모란봉과 주석님께서 개선연설을 하신 《김일성경기장》과 조화를 이룬 명소에 자리잡고있는 이 세계적인 기념비를 보면서 제가 받아안은 강렬한 느낌의 하나는 이 개선문도 령도자님에 의해 발기되고 건축된것으로 여기에는 주석님께서 이룩하신 빛나는 민족사를 굳건히 이어나가시려는 승계자의 뜻과 의지가 담겨있다는 그 점이였습니다.

이어지고 발전하는 명확한 민족사의 흐름속에서 민족적영웅을 모시고 해방직후부터 새 조국 건설에 매진해왔기때문에 이북에는 일찍부터 민족정통성이 살아있는 사회풍토가 마련되였고 자체의 힘으로 만난을 극복해나가려는 주체적성향이 고양되였으며 그것이 면면히 그리고 당당하게 이어져올수 있었습니다.

이북에는 전통이 있고 그 뿌리에 의한 오늘의 면모가 명확히 나타나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어 래일에로 발전하려는 방향각이 뚜렷합니다.

이북사회가 모든것이 정연한것은 이때문이기도 합니다.

어느 하나의 사상이나 리론, 생활방식에 이르기까지 근원이 있고 뚜렷한 계승성이 있습니다.

주석님께서는 개선연설에서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고 민주를 사랑하는 전민족이 굳게 단결하여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해나가야 하겠습니다.》라고 하시였는데 이 사상을 놓고도 저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단결의 사상은 이미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제시된 사상으로 거기에 그 시원을 두고있습니다. 그리고 해방이후시기를 거쳐 중단없는 이음속에서 오늘은 령도자님에 의하여 그 계승발전의 절정을 이루게 됩니다.

주석님의 개선연설에는 또한 일본제국주의자들이 부식한 낡은 사상 잔재를 철저히 뿌리뺄데 대한 구절도 명기되여있습니다.

이 주옥과 같은 제언도 이북땅에서 그대로 시행되고 오늘에 와서는 식민지적근성은 물론 사대나 외세의존, 외래풍조가 조금도 발붙일 자리가 없는 땅, 철두철미 주체의식만이 존재하는 개벽을 이룩하였습니다.

단결의 사상만 하여도 이북에는 그 사상이 구현되여 오늘은 《일심단결》, 《혼연일체》라는 표현으로 하나의 유기체에 비겨 말함이 합당할 정도로 단합이 이루어졌습니다.

중심성성(衆心成城)이라고 민중의 단결된 마음은 성새를 이룬다는 말과 같이 일심단결이 되고 화합일체가 된 이북은 무적의 나라입니다.

오늘 이북에서는 어느 지방, 어떤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도 주석님과 령도자님의 사상과 의지대로 말하며 생활하고있습니다. 이것은 맹목이 아니라 일심일체를 민족의 주체적생존을 위한 생명선으로 간주하는 전민의 높은 정치사상적각성에 기초하고있는것입니다.

어느 사회에서나 그리고 어떤 정치에서나 인화(人和)와 단합을 시도하지만 이북과 같이 한마음한뜻으로, 신념과 도덕의리로 단결된 사회는 아직 없었습니다.

천도교에서도 《동귀일체》라는 말이 있고 그것을 한울님의 뜻으로 간주하지만 이처럼 견고한 단합은 상상도 할수 없는것입니다.

예로부터 조선민족은 하나의 피줄로 유구한 력사를 살아온 단일민족으로서 본래 친화력이 강한 민족입니다.

그러나 오랜 기간 약소민족으로 수난을 겪는 동안 외세에 의해 단합과 뉴대감이 흐려지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일제치하의 민족말살정책으로 그것은 막심한 영향을 입게 되였습니다.

이러한 력사에 비추어보면 이북의 단결력이 얼마나 큰 긍지감을 안겨주는지 모릅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일제잔재는 물론 력사적으로 내려오는 사대와 교조를 깨끗이 척결하고 주체를 확립하는 일대 정신혁명을 일으켜 전민을 하나로 단합시킨 위대한 김정일령도자님의 정치앞에 무릎 꿇고 절을 하고픈 심정입니다. 얼마나 위대하고 당당합니까. 하늘처럼 가슴 열고 산처럼 머리 들어 떳떳한 사회가 바로 단결의 성새로 이름높은 이북사회입니다.

그러나 제가 몸담고있던 이남사회는 참으로 한심한 형편입니다.

원래 양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사이의 관계는 대립과 투쟁의 관계에 놓여있게 됩니다.

이남사회는 극단한 리기주의가 사람들사이의 관계를 제약하고 리기주의로 성립되는 사회입니다. 그러니 자나깨나 사람마다 동상이몽이고 하극상이, 골육상쟁이 그칠 날이 없습니다.

게다가 해방후 이남사회의 출발은 참으로 괴이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일제잔재를 척결하기는커녕 반대로 친일세력을 내세워 그들을 주축으로 《정권》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리하여 친일파는 오히려 지배층의 중추를 이루게 되였습니다. 이것을 해방된 조선의 사회건설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역리입니다. 따라서 애초부터 이남의 정치풍토에는 민족의 정통성이 자리잡을 여지가 없었습니다.

미군정하에서는 물론 《단독정부》수립후에도 기조는 그대로였습니다.

리승만《정권》하의 전기간을 통산해본 자료에 의하면 《장관》의 경우 친일파의 비률은 34.4%, 국회의원의 경우 10%, 대법관의 경우 68.4%에 달했으며 그 비률은 시간이 흐를수록 증대되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특히 경찰이 심했는데 1947년 수도경찰청산하 경찰의 경우 경감이상급은 전부 일제경찰경력자였습니다. 지어 해방된지 15년이 지난 1960년도에도 일제경찰출신이 총경이나 경감의 절반이상을 차지하고있었으며 더구나 일제고등경찰출신들이 이남의 공안과 정보, 사찰과의 주요 구성원을 이루고있었습니다. 군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리승만《정권》하의 8명의 륙군참모총장중 일본륙사출신이 5명, 만주군관학교출신이 2명, 지원병출신이 1명으로 민족해방투쟁에 참가한 인사는 한명도 없었습니다. 이북과는 정반대로 되여있는것입니다.

이것은 친일파들이 이남의 권력을 분점하고 지배집단을 구성하고있었음을 여실히 말해주고있습니다. 하기는 일본륙군사관학교출신이 《대통령》의 권좌에 올라앉는 판국이니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이들은 반민족적이였으므로 합리적 권위와 지배를 위한 정통성이 결여되여있기때문에 계속적인 집권과 지배를 위해서 부정선거와 폭력 등 비정상적인 수단을 동원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언제까지나 반민족반민중적일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결여된 정통성을 반공을 통해 보완하려고 한것은 자기 생존을 위한 운명을 건 행위로 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이남에서 반공이 해방직후부터 그토록 극렬해진 리유의 하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시작부터 병든 정치풍토는 사람들을 경악케 하였습니다. 남조선인민들이 이북을 동경하면서 미제의 식민지통치를 반대하여 투쟁에 일떠선것은 그러므로 정당한것이였습니다. 하지만 미제와 그 하수인들은 총칼로 탄압하면서 민족사상 일찌기 없었던 류혈참극을 빚어냈습니다. 대구와 려수, 순천에서, 지리산과 제주도에서, 이남땅 그 어느곳에서나 사람들의 원성은 구천에 사무쳤습니다.

이런 땅에서 어떻게 민족의 단합을 생각이나 할수 있겠습니까.

결국 그 출발부터 민족의 정통성을 고수한 이북과 그것을 거역한 이남의 정치풍토가 극명하게 갈라졌습니다.

이것은 이북이 민족해방을 위한 항일무장투쟁사를 이어받은데 반하여 이남은 식민지력사를 이어 그것을 그대로 지속시켰다는것을 의미합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이러한 대조는 더욱 뚜렷해졌습니다.

오늘 이북은 주체성과 민족을 중시하는 존경하는 김정일령도자님의 정치로 민족의 정통성과 존엄, 자주리념이 전사회에 팽배되여있는 반면 이남은 외세의존과 사대주의, 외래풍조가 만연되여 더는 치유할수 없는 병적증세를 나타내고있습니다.

최근에 이르러 이남에서는 력사 바로세우기란 말을 하면서 12.12숙군쿠데타와 광주사태에 대한 책임을 묻고 전두환, 로태우를 감옥에 넣는 놀음을 벌려놓았다가 그나마 곧 사면해버리고만 일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사실상 그런 형식적인 재판놀음을 벌리지 않기보다 더 나쁜 행위입니다. 민의에 대한 우롱이면 이보다 더한 우롱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이남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렇게 되리라고 예측하고있었다는것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한 사람중의 한사람입니다.

력사란 단면으로 두절되여 존재하는것이 아닙니다. 력사는 언제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해방직후부터 벌써 거꾸로 선 력사인데 그것에 대한 바로세우기는 없이 즉 그 전과정에 대한 과거청산이 없이 력사 바로세우기란 한갖 거짓에 지나지 않기때문입니다.

이남의 력사가 바로서자면 미국에 의한 식민지력사를 척결하고 민족민중을 위한 참다운 정치가 실시되여야 합니다.

이남의 력사는 반민족적이고 반민중적인 식민지력사입니다.

민족사의 정도는 령도자님에 의해 주도되는 이북의 력사입니다.

령도자님께서는 남녀로소 할것없이 이북의 모든 사람들을 항일전통사로 무장시키시고 그것을 이어 오늘을 살고 래일을 열어나가도록 나라의 기반을 굳건히 다져놓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무엇보다도 전통에 살고 력사를 중시하는 희세의 위인이십니다. 력사와 력사의 계승을 그토록 존중하고 중시하는 령도자는 이 세상에 더는 없을것입니다.

민족사의 래일은 김정일령도자님께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저는 개선문앞에서 기자와 인터뷰하면서 이 개선문이 령도자님에 의해 통일의 문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개선문이 세워진 이런곳에서는 진정한 해방을 맞이할수 있었습니다. 조국의 광복을 위해 손에 무장을 들고 장구한 기간 싸운 민족의 영웅을 맞이하여야만 그것이 진정한 해방으로 됩니다. 서울에서도 김일성장군 환영준비위원회를 조직하고 수십만 군중이 역두에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석님을 맞이하지 못했기때문에 이남은 진정한 해방과 독립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주석님의 개선의 발걸음은 저 제주도까지 닿아야 할것이였으나 나라의 분단으로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발걸음은 지금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님에 의해 이어지고있습니다.

백두산의 넋을 안고 민족사의 오늘과 래일을 대표하는 김정일령도자님에 의한 통일만이 진정한 통일로 될것입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령도자님의 할아버지이신 반일혁명투사 김형직선생님의 의미심장한 말씀을 다시금 음미해보게 됩니다.

선생님께서는 나라의 독립을 못할바에야 살아서 무엇하겠는가고 하시면서 《내가 싸우다가 쓰러지면 아들이 하고 아들이 싸우다가 못하면 손자가 싸워서라도》 반드시 성취하여야 한다고 하시였습니다.

봉화혁명사적지에 있는 비문에도 그렇게 새겨져있었습니다.

그러니 선생님의 말씀대로 아드님이신 주석님께서는 일제와 싸워 나라를 해방시키셨습니다. 이제 손자분이신 령도자님께서 나라의 통일을 이룩하고 통일된 자주독립국가를 일떠세우시게 될것입니다.
 
 

땅우에 쓴 항일대전사
 

력사란 과거의 사실을 확인하는데 그치는것이 아닙니다. 그 어떤 력사이건 그것은 오늘과 래일을 위해 필요한것입니다. 과거는 언제나 현재를 위해 존재합니다.

그러나 과거의 력사가 저절로 오늘에 이바지하는것은 결코 아닙니다.

사람들이 력사를 알고 그 경험과 교훈을 살려나감으로써만 그것은 현실적의미를 갖게 되는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력사라도 망각의 수풀속에 파묻혀버린다면 아무런 의의도 없을것입니다. 력사가 힘으로 되는것도 사람들이 그것을 인식함으로써 이루어지게 됩니다.

천도교경전에도 《진실을 천지의 생명체》로 일러오지만 이 세상의 형성과 존립을 담보하는 조건을 말한다면 아마도 력사의 진실 이상의것은 없을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사람이 그것을 깨달음으로써만 생명화되는것입니다.

사람이 력사를 잊어버리게 되면 진실을 잃어버리게 되고 사람이 진실을 잃어버리게 되면 이 세상과 자기자신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따라서 사람은 어느 력사의 진실이건 다 잘 알아야 하겠지만 특히 우리 민족사에서 항일무장투쟁사는 누구나 잊지 말고 길이 생명으로 간직해야 할 투쟁력사입니다.

항일대전사가 이북사회의 근원력을 이루고있는것도 이 력사에 대한 전민의 옳바른 인식과 그 정신을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사고와 실천에 옮기고있기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도 이북은 참으로 리상적인 사회입니다.

이북에는 위대한 주석님께서 전개하신 항일대전사가 있습니다. 이 력사는 죽었던 민족을 살린 력사이며 민족사의 단절이라는 치욕을 가장 성스러운 투쟁의 발자취로 채워놓은 영광의 력사입니다.

그리고 이북에는 이 빛나는 력사를 책으로 쓰신것이 아니라 조국땅우에 기념비로 쓰시고 항일대전사에 대한 교육으로 이 력사의 고귀함을 튼튼히 계승해나가시는 위대한 김정일령도자님께서 계십니다.

령도자님에 의하여 이북사회에는 항일투쟁정신이 충일되여있으며 누구나 이 력사를 알고 이 력사속에 살고있습니다. 이북처럼 항일전통에 대한 자부와 긍지에 넘쳐 사는 나라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이북의 진할줄 모르는 정신력과 힘이 또한 여기에 있습니다. 뿌리깊은 나무가 비바람을 견디여내는것처럼 력사의 뿌리가 튼튼한 이북은 어떤 폭풍에도 흔들리지 않는것입니다.

이북은 전통에 살고 전통에 떳떳한 나라입니다.

이것만으로도 령도자님은 민족사의 정도와 그 전진의 대로를 열어놓고 력사의 래일을 굳건히 담보한 민족사적영웅이십니다.

세상에는 위인들이 많지만 력사의 명맥을 이토록 귀중히 여기고 력사의 고삐를 틀어잡고 력사를 이어 성공의 령마루에 오른 위인은 없습니다.

령도자님의 공적은 무엇보다도 항일대전사를 불멸의 기념비로 이 땅우에 새겨놓으신것입니다.

이북에서는 이것을 사상교양의 전당, 대로천박물관이라고 부르고있습니다.

저는 이북에 들어와서 보는것마다, 듣는것마다 새롭고 경이적이여서 감탄을 금치 못하고있지만 이것 역시 그 어디에서도 들어본적 없는 전혀 새로운 명명이였습니다. 그러나 백두산일대의 항일대전의 사적지들과 전적지들을 답사하면서 이 명명이 얼마나 명실이 상부한 명명이며 민족사적의의를 가지는 높은 뜻을 담고있는 명명인가를 깨닫게 되였습니다.

삼지연대기념비만 해도 그 규모에서나 사상예술성에서나 이 세상에 둘도 없는 력사의 기념물이였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한바 있지만 삼지연은 항일의 령장이신 김일성장군님께서 주체28(1939)년 5월에 전개하신 유명한 무산지구진공작전과 관련된 전적지입니다.

당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대오를 인솔하시고 일제가 《철벽》이라고 자랑하던 조중국경을 뚫고 청봉, 건창, 베개봉을 거쳐 삼지연에 이르시였습니다. 여기서부터 다시 일제가 군용도로로 방금 닦아놓은 《갑무경비도로》를 대낮에 일행천리전술로 통과하시고 무포를 거쳐 무산지구에 돌입한후 대홍단에서 일군에게 섬멸적인 타격을 안기시였습니다. 삼지연은 그때 부대가 잠시 휴식하면서 점심식사를 한곳입니다. 유격대원들은 모두 삼지연의 맑은 물로 목을 추기며 조국땅의 정취를 마음껏 즐기였습니다. 수령님께서도 김정숙녀사께서 정히 떠올린 맑은 물을 드시면서 이 물을 마시고 힘껏 싸워 조국을 해방하자고 대원들을 격려하시였던것입니다.

이러한 투쟁사적에 상부하게 삼지연대기념비를 비롯한 기념형상물들은 빛나는 항일투쟁의 깊은 의미와 숭고한 뜻을 웅심깊고 생동하게 그리고 전면적으로 보여주고있었습니다.

못가에는 백두산을 배경으로 쌍안경을 쥐시고 멀리 조국산천을 바라보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이 웅장한 화강석바위우에 모셔져있고 동상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84상으로 이루어진 《조국편》,《숙영편》, 《흠모편》, 《진군편》, 《전투편》, 《조국의 물편》들과 《진격의 나팔수》, 봉화탑, 혁명사적비가 장엄한 화폭으로 펼쳐져있었습니다. 그리고 수령님의 동상앞으로는 드넓은 광장이 있고 못건너편의 수림속에는 삼각지붕의 아담한 답사각, 휴양각들이 점점이 들어앉아 조화를 이루고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삼지연과 함께 그것은 항일전쟁의 잊을수 없는 영웅서사시입니다.

저는 난생처음 이렇게 거대한 기념비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훌륭한 기념비를 령도자님께서 친히 발기하시고 구상하시였을뿐아니라 그 건설을 직접 지휘하셨다는 사실에 감탄을 금할수 없었습니다.

령도자님께서는 삼지연대기념비건설이 한창이던 때에도 해발 2,000메터가 넘는 이곳 삼지연에 오시여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의 위치와 광장을 건설할 장소를 정해주시고 삼지연의 부석백사장을 오래동안 걸으시면서 조각군상들과 사적비, 사적관, 휴양각들을 세울 자리도 친히 잡아주시였습니다. 삼지연대기념비의 형성안도 두번이나 거듭 보아주셨다는것입니다.

해설을 듣고 사적을 깊이 파악할수록 백두고원의 태고연한 밀림속에 펼쳐진 그림같이 아름다운 천년호수와 그 주변의 이깔나무, 가문비, 분비, 봇나무들, 구슬같이 뿌려져있는 고산지대의 갖가지 꽃들, 그 모든 일목일초에도 조국의 성스러움이 깃들어있는것 같고 항일투쟁사적과 대자연 그리고 대기념비가 하나의 장엄한 세계로 조화를 이루고 거기에 넘치는 령도자님의 슬기가 가슴가득 안겨왔습니다.

그분께서는 거대한 조각예술로 준엄한 항일투쟁의 생동한 면모와 그속에 깃든 조국애, 민족애, 불굴의 의지 그리고 아름답고 부드러운 서정까지 남김없이 드러내시여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단꺼번에 항일의 성스러움을 접할수 있게 만드시였습니다.

온 민족이 식민지멍에에 짓눌려 신음하던 암담한 시기에 겨레를 구원하고저 수백수천배나 되는 대적과 끝까지 싸운 항일선렬들앞에 서서 저는 처음으로 나라를 배우고 조국을 배우는 어린아이의 마음이 되여 천심의 가르치심을 받았습니다.

천도교경전에는 마음에 티끌이 없어야 현철한 사람이 된다고 하였지만 기념비앞에 서니 마음이 맑고 밝아지며 민족정신이 한몸으로 돌아와 인간대정신의 현묘한 리치와 무궁한 조화를 얻는것만 같아 비로소 마음의 정화를 느끼였습니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님의 항일투쟁사는 우리 민족이 가지고있는 가장 귀중한 정신적재부이며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의 무한한 원천입니다. 그것은 조국찬가중의 찬가이며 민족기발중의 기발이며 인간교서중의 교서입니다.

령도자님에 의하여 그것을 불멸의 기념비로 재현한 영웅서사시는 이북땅 어디에나 있습니다. 령도자님께서는 백두산기슭 량강도일대에 분포되여있는 수많은 항일대전의 전적지들과 사적지들을 최상의 수준으로 꾸리심으로써 그 일대를 항일대전의 대로천박물관으로 만드시였습니다.

항일대전의 사적지가 령도자님에 의해 대기념비로 건설된곳은 물론 삼지연일대뿐이 아닙니다.

삼지연대기념비를 건설하기전에 이미 함경북도 온성읍 가까이에 있는 유서깊은 왕재산기슭에 자리잡고있는 왕재산혁명사적지를 건설하시였습니다.

왕재산은 주체22(1933)년 3월 11일, 항일의 전설적명장이신 김일성장군님께서 항일유격대의 일부 부대를 거느리시고 조국땅 온성지구에로 진출하시여 온성지구 지하혁명조직 책임자들과 정치공작원들로 왕재산회의를 소집하신 사적지입니다. 수령님께서는 항일대전사에 크게 기록된 그 왕재산회의에서 우리 나라 두만강연안의 넓은 지역에 반유격구를 창설하고 무장투쟁을 국내에로 적극 확대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중심으로 한 전반적조선혁명을 새로운 단계에로 이끌어올리기 위한 방략을 제시하시였습니다.

이 방침에 근거하여 유격대의 무장소조들이 국내에 파견되였는데 일제의 축소된 자료에 의하더라도 유격대의 국내진격회수는 1932~33년기간에 12차에 달하였습니다.(《최근에 있어서의 조선의 치안상황》, 1943년 5월호)

이 뜻깊은 왕재산사적지에도 20대시절의 김일성장군님께서 한손을 높이 드시고 온 겨레를 항일투쟁에로 부르시는 모습을 형상한 동상이 건립되고 거대한 산호빛 봉화를 떠인 66메터 높이의 봉화탑과 조각군상들로 이루어진 기본주제상 그리고 일정한 공간을 두고 주위에 반원형으로 병풍처럼 배치된 항일유격대원들의 투쟁장면을 묘사한 《전투편》, 인민들의 유격대원호를 묘사한 《원호편》, 부주제군상들과 송가상, 불후의 고전적명작 《피바다》를 형상한 부각상 등이 있었습니다.

저는 책에 나온 사진과 글들을 보면서 이 사적기념형상물들도 삼지연의 그것과 같이 대단히 웅장하게 건설되였음을 알수 있었습니다.

고도의 재예를 발휘하여 만들어진 사적기념물들은 탁 터진 주변과 배후에 웅자를 자랑하는 수려한 왕재산에 의하여 한껏 운치를 돋구고있었습니다.

거기에서도 그 모든것을 최상의 수준에서 통일시켜 항일력사의 장엄한 전당을 창조한 거장의 솜씨가 확연히 느껴졌습니다. 그 거장은 바로 김정일령도자이십니다.

령도자님께서는 왕재산사적지 건설도 친히 지도하시여 세차례나 이곳을 다녀가시였습니다.

여기에 이런 일화도 있었습니다. 주체63(1974)년 봄 그분께서 왕재산사적지 건설현장을 첫번째로 찾아가실 때의 일입니다.

그분께서 타신 렬차가 나라의 북변인 두만강을 끼고 돌아 회령땅을 바라보며 달리고있었는데 한 수행원이 《다음 도착할 역이 회령입니다.》라고 그분께 말씀드렸다는것입니다. 이것은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어머님의 고향인 회령땅에 잠시라도 내렸다가 가셨으면 하는 간청이였습니다. 그것은 당시 회령사람들의 소망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때 령도자님께서 회령을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들은 그곳 사람들은 벌써 회령역으로 모여들고있었습니다.

그러나 잠시 생각에 잠기셨던 령도자님께서는 이윽고 《아니요. 이다음에 들리겠습니다. 청년건설자들이 우리를 기다리고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시고 그냥 지나가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일화를 통해서도 령도자님께서 당시 사적지건설을 얼마나 중시하시였는가를 잘 알수 있습니다.

왕재산과 삼지연 사적지건설자들의 생활에 대해서도 직접 관심하시면서 첫물 과일을 보아도 그들에게 먼저 보내주시고 온실에서 자란 겨울철남새를 보아도 그들에게 먼저 보내주셨다니 사적지건설에 바친 그분의 성심성의를 어찌 필설로 다할수 있겠습니까.

령도자님께서 항일무장투쟁의 력사를 기념비로 새겨놓으신것은 위대한 수령님에 의해 이룩된 항일의 빛나는 력사를 후손만대에 길이 전하며 이 력사를 계승하여 주체위업의 래일을 성취하려는 념원과 의지의 표시로 됩니다.

결국 이것은 흔들리지 않는 력사의 대를 바로세워놓는 일입니다.

사실 이 력사를 계승하느냐 못하느냐 하는것은 주체성이 온존하는 력사의 정도를 계승하느냐 포기하느냐 다시말하여 주체의 기치를 고수하느냐 포기하느냐 하는 중차대한 문제로 되는것입니다.

항일대전사를 계승하는 한 력사의 래일도 주체의 궤도에서 리탈되지 않을것이며 그것이 력사의 정도인 이상 조국과 민족, 겨레는 언제나 이 력사와 함께 있게 될것입니다.

이런 면에서도 이남은 이북과 대조를 이룹니다. 이남에는 력사가 없습니다. 력사를 잃어버리고 인간을 잃어버린 불모의 땅이 이남땅입니다. 이남에서는 반일투쟁사가 존중되지 않고있습니다. 하긴 친미친일세력들이 득세하고 과거 반일투쟁가들이 다시금 감옥으로 끌려가는 판국이니 비극이면 이에서 더한 비극이 어디 있겠습니까. 민족주체성이 망각된 이러한 땅에서는 민족이나 겨레에 대하여 말할수 없습니다. 거꾸로 된 사회의 진흙탕속에서 치욕의 력사만을 접해온 이 사람으로서는 이북의 항일대전사의 대기념비가 얼마나 성스럽고 자랑스럽게 느껴지는지 모릅니다. 그것만으로도 이북은 거룩한 사회이며 해빛처럼 밝은 세상입니다.

특히 령도자님께서는 항일무장투쟁의 력사로 인민들을 교양하는데서도 아직 세상이 모르는 성공의 탑을 쌓으시였습니다.

령도자님께서는 항일대전사를 인민들이 잘 알도록 교양하는데 깊은 주의를 돌리시고 전민적인 학습체계를 통하여 항일혁명전통교양을 강화하는것과 함께 항일혁명 사적지와 전적지를 통한 교양에 주력하시였습니다.

오늘 이북의 수많은 사람들이 항일혁명 사적지들과 전적지들을 찾아 가장 숭고한것을 배우며 주체의 넋을 키우고있습니다.

력사는 아직 조선처럼 항일혁명전통교양을 실속있게 심화시켜 하나의 혁명정신과 기풍으로 사람들의 생활을 전변시키고 사회의 기강과 풍조를 변혁한 기적을 모르고있습니다. 남녀로소 누구나 사고와 실천행위, 일본새와 생활기풍에서 항일혁명전통을 따라배우고있는것이 오늘 이북사회의 자랑스러운 모습입니다.

령도자님께서 창제하신 《생산도 학습도 생활도 항일유격대식으로!》라는 구호는 이북사회의 현실에 완전무결하게 구현되였다고 보는것이 세인의 정평입니다.

영화들도 항일대전을 주제로 한 영화가 태반을 차지하고있으며 항일유격대원들이 부르던 노래들이 애창되고있습니다.

동무들아 준비하자 손에다 든 무장

제국주의침략자를 때려부시고

용진용진 나아가세 용감스럽게

억천만번 죽더라도 원쑤를 치자

나가자 판가리싸움에 나가자 유격전으로

손에 든 무장을 튼튼히 잡고 나갈 때에

용진용진 나아가세 용감스럽게

억천만번 죽더라도 원쑤를 치자

이것은 유격대원들이 부르던 《유격대행진곡》입니다.

언제 들어보아도 민족해방을 달성하려는 실천의 의지가 력사의 어느 갈피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슬기와 용맹으로 천지를 진동하듯 격조높이 울리는 노래입니다.

불우한 민족의 력사에 한몸을 초개와 같이 던진 사람만이 간직할수 있는 불굴의 투지가 맥박치고 죽음을 이겨내는 민족의 기상이 나래쳐 일거에 사람들의 심장을 틀어잡는 노래입니다.

우리 민족은 결코 앉아서 죽음을 감수할수가 없었습니다. 손에 무장을 잡고 일어선 빨찌산의 원쑤에 대한 증오와 나라와 민족을 위한 희생정신이 하나의 결전가의 격조로 높이 울리는 이 가요는 그대로 죽었던 민족을 다시 살리는 뢰성처럼 들립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러한 노래가 울리는곳에 진리가 있고 이러한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력사에 가장 성실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 노래와 함께 전진하는 력사에서 민족의 래일이 밝아올것입니다.

위대한 김정일령도자님은 인민의 뜻을 모아 항일대전사를 초석으로 하는 민족사발전의 확고한 담보를 마련하신 희세의 위인이십니다.
 
 

민족문화유산에 대한 특별한 애착
 

일반적으로 민족문화라고 하면 한 민족의 언어, 풍속, 전통, 생활감정 같은것을 토대로 하여 그 민족의 특성을 나타낸 문화를 말합니다.

민족문화에는 그 민족의 특성이 가장 짙게 반영됩니다. 그러므로 민족문화유산에 대한 립장은 민족적특성을 어떻게 보존하고 살려나가는가 하는 문제에 귀결됩니다.

우리 민족은 무엇보다 문화민족입니다. 애국가에도 《…찬란한 문화로 자라난 슬기론 인민의 이 영광》이라고 되여있듯이 우리는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는 슬기로운 민족입니다, 우리 민족의 우수성은 문화에서 뚜렷이 나타납니다.

이북에 들어와서 저는 그것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되였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 민족은 인류사의 려명기부터 민족문화를 창조하여왔습니다. 그것을 증시해주는 력사유물들이 대동강류역에서 수많이 발굴되여 지금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고있습니다.

청동기문화만 해도 비파형단검을 례로 들면 그것은 세계적으로 가장 오랜 청동제품일뿐아니라 중국이나 북방계의 다른 나라나 지역의 그것과 모양도 다르고 주조방법도 우수한것으로 인정되고있습니다. 제가 보고 설명을 들은데 의하면 중국이나 다른 지역의 단검은 밋밋하게 통형으로 혹은 버들잎모양으로 되여있다면 우리 나라의 단검은 검몸, 검자루, 검자루맞추개로 세분되여있을뿐아니라 검몸에 굴곡이 지어져있고 주조성분도 동, 석, 연중에서 석의 함유량이 다른 나라의것보다 더 높은것으로 나타나있었습니다.

철기나 금속 문화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할수 있습니다.

민족문화유적들과 민족문화작품들, 전통적인 생활양식과 미풍량속 등 모든 면에서 우리는 응당한 긍지를 가지고 자랑할것이 많습니다.

이북에서는 이러한 민족문화유산들이 발굴, 해석, 연구, 보존, 계승하는 일들이 국가시책으로 대단히 적극화되고있으며 또한 가장 옳바르게 전개되고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제가 감탄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리조실록》번역만 놓고도 저는 대단히 탄복하고있습니다.

다 아는바이지만 《리조실록》은 1392년부터 1910년까지 27대에 걸치는 리왕조의 519년간에 걸치는 동안에 있은 력사적사실들을 기록한 《정부일기》입니다. 이 책은 모두 1,763권의 방대한 분량과 독특한 서술체계, 가치있는 사료들로 하여 세계에 널리 알려진 문화재로 됩니다. 리조봉건국가의 정치구조, 경제제도, 군사조직, 문화생활 및 과학기술 등 자연과 사회생활 각 분야의 사료들을 포괄하고있으며 리조시기 국제관계사연구에 필요한 자료들도 폭넓게 반영하고있습니다.

이북에서는 이 방대한 실록을 주체70(1981)년에 번역을 끝내고 주체79(1990)년에는 400권에 달하는 번역본출판까지 끝냈습니다. 이남에서는 이북보다 3년 먼저 번역에 착수했으나 아직 끝내지 못하고있습니다.

이북에서 번역된 《리조실록》이 한때 이남에서도 화제가 된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주체82(1993)년이였는데 어떻게 되여 이북에서 번역된 《리조실록》이 이남에 있는 려강출판사와 아름출판사에 의해 복제되여 이남사회에도 알려졌습니다. 그때 두 출판사사이에는 복제권을 둘러싸고 싸움이 벌어져 재판까지 하는 소동이 일어났댔습니다.

이것은 그만큼 이북에서 번역된 《리조실록》이 인기가 있었다는것을 의미합니다. 빨리 번역하여 출판해낸것도 인기였지만 보다 이목을 끈것은 번역의 질이 이남의 그것과 현격한 대조를 이루었던것입니다. 모두 이북에서 번역한것이 월등하다는 평이였습니다.

그때 그 사실이 신문에도 보도되였는데 세가지로 그 내용을 요약할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선 이북에서는 《리조실록》번역을 나라시책으로 했기때문에 빨리 할수 있었다는것입니다.

그리고 북에서는 집체적으로 번역을 진행했기때문에 번역이 정확하다고 하였습니다. 북의것을 보고서야 자기들이 번역한것이 오역이 많다는것을 인정하게 되였다는것입니다. 이것은 구두점이 잘못되여 뜻을 그릇되게 해석한것들이 많다는 자인이였습니다. 즉 《리조실록》원문은 순 한문으로 구두점이 없이 문맥이 계속됩니다. 따라서 어디서 문장을 끊어야 할지 알수 없게 되여있습니다. 구두점 위치설정을 잘못하게 되면 문장의 뜻이 판이하게 달라지는것입니다. 이 분야의 높은 능력에 의해서만 정확한 해석이 가능한것인데 이북에는 홍기문선생과 같은 우수한 학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이남에서 이야기되기는 그 요인을 집체성에서 찾고있었습니다.

또한 이남의 전문가들은 이북의 번역본과의 차이를 이북에서는 민중중심으로 인민대중이 읽고 리해할수 있게 번역한데 비해 이남의것은 어려운 문장을 풀지 않고 전문가중심으로 리용될수 있게 번역했다는 결함도 인정하였습니다.

지어 전문가들도 해석하기 어려운 문장을 해석이 곤난하다고 하여 한문문장그대로 옮겨놓는 페단까지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남의 전문가들속에서 그때의 분위기는 한마디로 말하여 북에 대한 부러움이였습니다.

저도 그때 이것이 바로 집단주의사회의 우월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남에서처럼 개별적인 학자들에 의뢰되여 개별적으로 진행하는 번역에서는 여러모로 허점이 있기마련입니다.

그러나 이북에 들어와 《리조실록》번역과정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그것을 집단주의사회의 소산으로만 해석할수 없는 보다 본원적인 문제가 있다는것을 깨닫게 되였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여 이북은 위대한 령도자를 모시고있기때문에 그러한 성과를 이룩할수 있었다는것입니다.

《리조실록》번역사업이 시작된것도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주체59(1970)년 10월 18일교시에 의해 시작되였습니다. 그러니까 주석님께서 발기하신것입니다. 또한 주석님께서는 50여명의 학자들로 번역집단을 무어주시고 평양시 승호구역 봉도리에 기지를 꾸려 집단적으로 기숙하면서 번역하도록 모든 조건을 다 갖추어주시였습니다. 그리고 번역기간 무려 10여차례나 이 사업을 직접 지도해주시였습니다.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님께서도 10여차례에 걸쳐 이 번역사업을 친히 지도해주시면서 출판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관심하시였습니다. 그리고 번역출판사업이 완료되였을 때는 번역집단 전체 성원들에게 국가수훈의 영예를 안겨주시고 홍기문선생에게는 로력영웅칭호를 수여해주시였습니다.

민족문화유산에 대한 주석님과 령도자님의 특별한 관심은 어디서나 찾아볼수 있었습니다.

저는 절간과 같은 유적들은 이북에서 중시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보존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였습니다.

그런데 이북에 들어와 그동안 여러곳에 있는 절간들과 불교유적들을 돌아보고 전혀 제 생각이 잘못되였음을 깨치게 되였습니다.

묘향산에 있는 보현사(普賢寺)를 돌아보면서도 그것을 느끼였습니다.

보현사는 1042년에 처음 세워진후 오랜 력사를 내려온 문화유적입니다.

원래 24채의 건물과 탑들로 이루어진 보현사는 청천강이북지방에서 불교의 중심지로 되여왔습니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미제의 야만적인 폭격에 의해 10여동의 건물과 여기에 보관되여있던 수천여점의 유물들이 파괴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공화국의 유물보존정책에 의해 이곳에는 묘향산 력사박물관이 창설되고 파괴되였던 대웅전, 만세루를 비롯한 건물들이 원상대로 복구되였으며 귀중한 인쇄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을 영구보존하기 위한 보존고까지 건설되였습니다.

지금 보현사에는 대웅전, 만세루, 관음전, 령산정, 해장원, 만수각, 조계문, 해탈문, 천왕문 등 옛 건물들과 4각9층탑, 8각13층탑, 보현사비를 비롯한 여러개의 비석들, 인쇄문화와 관련되는 유적유물들이 훌륭히 보존되여있습니다.

이북에서는 이러한 유적들이 대단히 소중하게 깨끗이 관리되고있었습니다.

저는 이남의 절간들도 여러곳을 돌아보았지만 이북에서처럼 정결하게 관리되고있지 못합니다. 언제나 절간주변이 어지럽습니다. 절간들이 경치가 좋은곳에 자리잡고있기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게 되는데 와서 놀다가는 지저분하게 널어놓고 그냥 가버리는것입니다. 이북에서도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지만 관리가 잘되므로 절간주변이 언제나 어디나 정결합니다. 절간의 나무 한그루, 꽃 한포기에서도 문화유적을 소중히 다루는 정성이 첫눈에 나타납니다.

보현사는 특별히 절터가 넓고 본전인 대웅전에 들어가자면 세개의 큰 문을 거쳐야 들어가게 되여있는데 문과 문사이에는 100여년 묵은 전나무숲이 우거져있는가 하면 한그루의 산뽕나무도 볼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뽕나무에 대한 스님의 해설을 들으면서 놀라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이 나무는 400년이상 자란것으로서 우리 나라에서 제일 크고 오래 자란 산뽕나무입니다. 나무의 높이는 15m, 밑둥둘레는 3.5m입니다. 나무 원대는 곧추 올라가다가 가지를 쳐서 둥근 나무갓을 이루었는데 그 직경은 11.5m에 달합니다. 이 산뽕나무는 오래전에 이미 늙어서 죽어가고있었습니다. 주체43(1954)년 4월에 주석님께서 보현사를 돌아보시면서 죽이지 말고 잘 관리할데 대하여 하신 교시를 받들고 다시 소생시켜 오늘에 이르게 된 나무입니다. 그러니 절간의 나무 한그루에 바친 정성이 오죽했겠습니까. 저는 이북에 들어와 처음 이 절간에 들어서면서 본전에 들어가는 문들의 기둥밑이나 주변의 조약돌 하나 모두 물에 씻어놓은것처럼 그렇게 깨끗한 까닭을 곧 알수 있었습니다. 나라의 령수가 특별히 유적들에 관심하고계시기때문입니다.

주석님께서는 일찌기 보현사는 11세기초의 우리 나라 건축술을 대표한다고 하시였습니다. 그리고 대웅전은 높지 않은 벽면과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고 경쾌하게 들려있는 합각지붕에 의하여 균형이 잘 잡혀있으며 거기에 류선형으로 배가 부르게 다듬어진 기둥이 조화되니 참으로 보기 좋다고 평가하시였습니다.

이러한 해설을 들으면서보니 대웅전도 그 건축미가 더욱 돋보이는것만 같았습니다.

이북에서는 《팔만대장경》도 해제본 15권, 번역본 17권으로 다 번역되였습니다. 이 번역사업도 주체67(1978)년부터 경애하는 령도자님께서 직접 지도하시였다는 사실도 알게 되였습니다.

령도자님의 거룩한 발자취는 어느 문화유적에서도 찾아볼수 있었습니다. 절간만 해도 어느 절간이나 령도자님께서 다녀가신 사적이 있었습니다.

평양의 남쪽관문을 지켜선 요새처럼 높이 솟아있는 정방산에도 귀중한 문화유적들이 많은데 그중에 성불사(成佛寺)도 있습니다. 저는 이름난 명승지인 정방산을 찾아갔던 날 그곳 성불사도 참관하였습니다.

898년에 처음 세워진것으로 전해지는 이 절간에는 현재 고려시기에 지은 웅진전과 극락전, 리조시기에 지은 명부전, 천몽루, 운하당, 산신각 등 여러채의 건물과 고려중엽에 세운 5층탑이 있었습니다.

주체86(1997)년 5월, 정방산을 찾으신 경애하는 령도자님께서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우리 선조들의 재능과 슬기가 깃들어있는 성불사를 비롯한 귀중한 문화유적들을 돌아보시면서 애국애족의 넋을 더욱 깊이 간직할수 있게 그에 대한 보존관리사업을 잘할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였습니다.

구월산에 있는 월정사(月精寺)에도 령도자님께서 두차례나 다녀가신 사실을 제가 그곳을 찾아갔을 때 해설자가 감격에 겨워 상세히 설명해주었습니다.

이북에서는 《조선의 민속전통》이라는 책을 만들어 전 7권으로 출판하였습니다.

이 책에는 방대한 량에 해당하는 조선민속전반에 대한 내용이 종합수록되여있습니다.

이남에도 《한국민속대관》이라는 전 6권으로 된 책이 있지만 이북의것은 우리 민족의 미풍량속을 위주로 하여 민속의 유래와 력사적변천과정, 풍습화된 내용, 그 고유성이 체계정연하게 서술되여있는 점이 특이합니다. 이남의것도 잘 쓴 부분이 있으나 역시 개별적학자들이 쓴것을 기계적으로 종합하였으므로 주장이 서로 다르거나 중복이 많고 산만하여 우리 민속을 통일적으로 리해하는데 지장을 주는 부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북에서 만든 《조선의 민속전통》은 방대한 량이지만 의의있는 내용들로 일목료연하게 정리되여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려는것은 이 책도 령도자님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분께서는 주체77(1988)년 7월 30일 이 부문 전문가들에게 우리 민족의 민속전통을 소개하는 책을 빨리 만들데 대한 말씀을 주시였습니다.

그리고 17명으로 된 전문집필 그루빠와 편찬위원회를 무어주시였다는것입니다. 그뿐만아니라 집필기간 4차례나 직접 이 집필사업을 지도해주시였습니다.

이것으로써도 이북에서 민속전통이 살아 생동하고있는 까닭을 알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민족음식, 혼례, 장례, 제사, 인사법, 례절법, 옷차림, 명절풍습 등 민속과 관련되는 문제들에 깊은 관심을 가지시고 많은 가르치심을 주고계십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면서 저는 더욱더 령도자님에 대한 경모의 정을 금치 못하고있습니다.

그것은 민족문화유산에 대한 령도자님의 특별한 애착의 표시입니다.

민족고유의 특성을 사랑하고 아끼는 그 마음이 오늘 이북국민의 심리로 고착되고 전사회에 그토록 민족적정서가 짙게 만들고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령도자님의 그 애착심은 민족의 력사와 전통을 꽃피우는 이북사회의 자양분으로 되고있습니다.
 
 

통일애국의 구심점
 

평양에는 쑥섬이라는 섬이 있습니다. 대동강의 복판에 위치하고있는 자그마한 간도(間島)입니다. 쑥이 많았기때문에 이름도 쑥섬이라고 지었을것입니다.

그러나 이름없던 이 자그마한 섬이 민족의 명소로 널리 알려지게 된것은 여기에 유명한 《통일전선탑》이 서있기때문입니다.

다 아는것처럼 해방후 미국의 식민지예속화정책으로 민족분단의 위험이 닥쳐온 엄중한 정세에 직면하여 평양에서는 주체37(1948)년 4월 19일부터 23일까지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 대표자련석회의가 열렸습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발기와 주도하에 진행된 이 련석회의에는 남북조선 56개의 정당, 사회단체 대표 695명이 참가하였으며 회의에서는 남조선에서 감행하려는 망국적인 5.10단선을 파탄시키고 조국의 자주적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대책들이 론의되였습니다.

련석회의이후 련석회의에서 채택된 《조선정치정세에 관한 결정서》와 호소문 《전조선동포들에게 고함》에서 제시된 과업을 시행하기 위한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 지도자협의회가 5월 2일에 진행되였는데 바로 이 협의회장소가 쑥섬이였습니다.

이것은 우리 나라에서 분단을 막고 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첫 통일전선의 실현을 의미합니다.

쑥섬에 세워진 《통일전선탑》은 이 통일전선의 빛나는 시행을 기념하여 설립된것입니다.

저는 이곳을 참관하면서 이러한 기념탑을 가지고있는 평양이야말로 민족의 성지일뿐아니라 조국통일투쟁사의 빛나는 성지임을 다시한번 확인할수 있었습니다.

남북련석회의와 지도자협의회는 민족분단을 막기 위한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 대표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앉은 거족적회합으로서 친일파, 민족반역자를 제외한 전체 조선인민이 미국의 남조선강점과 5.10단선을 반대한다는것을 보여주었으며 조국의 자유와 독립, 통일을 위해서는 정견이 서로 다른 애국적정당들이 능히 단합할수 있으며 힘을 합쳐 구국대책을 강구하고 거족적투쟁을 전개할수 있다는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백범 김구선생을 존경합니다. 백범선생은 일찌기 갑오농민전쟁에 참가하였기때문에 천도교와 연줄이 있지만 그를 존경하는것은 무엇보다도 나라의 분단을 막으려고 그 엄혹한 시기에 한목숨 바칠 각오로 38선을 넘어 평양걸음을 단행했기때문입니다.

김구선생은 《상해림정》의 경무국장을 거쳐 나중에는 그 대표자로 끝까지 지조를 지켜 남아있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세월과 더불어 《상해림정》에서 떨어져나간데 반해 나중까지 《법통》을 지켰다는 그 완강한 견인력을 제외한다면 별로 평가할만한 일을 해놓은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완고한 반공주의자로 통일전선을 반대함으로써 민족해방투쟁에 역작용한 측면이 더 부각된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김일성주석님의 초청에 응하여 4월련석회의에 참가할 결심을 내린것은 김구선생의 그때까지의 뛰여넘지 못하던 한계점을 일거에 깨뜨려버린 전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절대로 초지를 굽히지 않는 그의 완고성을 생각할 때 그것은 그의 일생을 뒤집어놓은 이변임에 틀림없었습니다. 그만큼 민족의 위기가 우려되고 애국애족의 념이 강했음을 말해주기도 합니다.

수하 인물들이 포위진을 치다싶이하고 온밤 김구선생옆에서 북행길을 단념하도록 종용하며 파수를 섰으나 그는 자기 의사를 굽히지 않고 끝내 평양길에 오른것입니다.

백범선생은 38선을 딛고서서 《땅우에는 38선이 있지만 겨레의 마음속에는 38선이 없어야 한다.》고 하면서 분단을 부정하였습니다. 그는 언제나 우리 나라의 자주독립을 갈구했고 문화대국을 희망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38선을 넘으면서도 마음의 안정을 갖지 못하고있은것은 이북의 공산주의자들이 자기를 어떻게 대해주며 과연 그들과 손잡을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김구선생은 4월련석회의에 참가하고 김일성주석님과의 접견이 있은 이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였습니다.

공산주의자들과의 통일전선 반대립장에서 그것을 적극 지지하는 립장으로 전환한것입니다. 나중에는 주석님께 《림정법통》을 내놓는가 하면 일이 여의치 못하면 다시 이북으로 오겠다는것과 오게 되면 과수원이나 가꾸게 해달라는 부탁까지 하였습니다. 이것은 김구선생이 주석님께 민족의 장래를 부탁한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김일성주석님을 더 높이 경모합니다. 김구선생만이 아닙니다. 김규식, 조소앙, 최동오, 엄항섭을 등을 비롯한 수많은 민족주의자들이 4월련석회의에 참가하여 주석님께서 제안하신 구국대책을 지지찬동하였습니다. 이것은 이때에 이미 김일성주석님에 의해 통일애국의 구심점이 형성되였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오늘 제가 여기서 말하고저 하는것은 과거에 그러했듯이 오늘도 우리 민족은 주석님의 뜻을 이어나가시는 위대한 김정일령도자님을 통일애국의 구심점으로 높이 모시고있다는 그 점입니다.

령도자님께서는 일찍부터 민족단합에 대한 의의를 중시하시고 주석님의 민족대단결사상을 철저히 옹호관철하여오셨습니다.

《통일전선탑》도 그분에 의해 건립되였습니다. 그러니 령도자님께서는 우리 민족사의 시원인 고조선으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전력사를 정리하고 그 리정표를 하나하나 세워놓으셨습니다. 《통일전선탑》은 유구한 력사를 하나의 피줄을 이어 하나의 강토에서 살아온 우리 민족이 민족분단이라는 위기상황에 직면하자 분단을 부정하고 통일된 민족국가를 지향한 거족적투쟁의 시작을 력사의 갈피에 탑으로 새겨놓은것입니다. 이것도 역시 민족대단결의 위업을 계승하여 통일과 민족번영의 귀착점에 이르려는 김정일령도자님의 불변의 뜻과 의지의 표시로 됩니다.

그분의 민족대단결의 의미는 그분께서 저술하신 로작들에 명확히 나타나있습니다.

이북에서는 주체87(1998)년 4월에 력사적인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 대표자련석회의 50돐을 성대히 기념하였습니다.

령도자님께서는 4월련석회의기념 중앙토론회에 서한 《온 민족이 대단결하여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이룩하자》를 보내주시였는데 이 서한에도 민족대단결을 중시하고 그것을 이룩할데 대한 그분의 사상이 천명되고있습니다.

《우리는 사대와 외세의존을 철저히 반대배격하고 민족자주의 원칙에 기초하여 민족대단결을 이룩해나가야 합니다.

온 민족이 대단결을 위하여 사상과 제도, 계급과 계층에 관계없이 민족의 넋을 귀중히 여기고 간직하는 모든 사람,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다 포섭하고 단합시키는것은 우리의 확고한 립장이며 일관한 정책입니다.

비록 과거에는 민족을 배반하고 잘못된 길을 걸었지만 오늘에 와서 진심으로 지난날의 과거를 뉘우치고 조국통일위업에 이바지하려는 사람들은 과거불문의 원칙에서 관용으로 대하며 조국통일을 위하여 함께 나아갈것입니다. 우리는 남조선의 집권상층이나 여당과 야당 인사들, 대자본가, 군장성들도 민족공동의 리익을 귀중히 여기고 나라의 통일을 바란다면 그들과도 민족대단결의 기치밑에 단합할것입니다.》

이러한 말씀들은 정치지도자라고 하여 누구나 할수 있는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오로지 민족을 한품에 안고있는 민족의 령수만이 할수 있는 제언이며 외세의존이 아니라 자주적으로 조국을 통일하고 민족의 번영을 이룩하려는 절세의 애국자만이 할수 있는 제언입니다.

령도자님께서는 그러한 립장표명을 저작에서만이 아니라 실천의 력사로 수놓아가고계십니다. 만인이 그분을 높이 추앙하여 세론을 모으고 화제를 돌리는 리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북에 들어온 첫 시기 저는 혁명렬사릉과 애국렬사릉을 돌아보고 감복한바이지만 령도자님의 도량과 포옹력은 실로 하늘과 같고 바다와 같았습니다.

대성산 혁명렬사릉에는 천도교 박인진도정의 반신상이 두루마기를 입은 모습으로 항일무장투쟁에 참가하였던 혁명렬사들과 나란히 있었습니다. 령도자님의 치하에서 정파와 주의주장, 신앙을 뒤로 미루고 서로들 뼈와 살을 맞대고 후손들을 민족단합에로 부르는것 같아 감회는 각별하였습니다. 신미리 애국렬사릉에는 천도교출신인사들인 최동오, 최덕신, 류동열, 강장수, 김정주 선생들과 민족주의자들인 량세봉, 오동진, 김규식, 조소앙 선생 등 많은 선배들이 령도자님의 은정속에 영생하고있었습니다.

령도자님께서는 돌사진이 처음 나왔을 때도 애국렬사들의 돌사진부터 만들어 제일먼저 애국렬사릉에 보내주도록 하시였습니다.

그후 저는 애국렬사릉을 참배하면서 그들의 살아있을 때의 모습 그대로인 돌사진앞에서 령도자님의 덕정을 생각하며 오래도록 발걸음을 뗄수 없었습니다.

참으로 령도자님의 품속에서는 공산주의자와 민족주의자가 따로 없고 무신론자와 유신론자가 따로 없으며 북과 남, 해외동포가 따로 없습니다.

그분께서는 민족주의자들 본인뿐아니라 그들의 가족들과 후손들까지 각별히 보살펴주고계십니다.

량세봉선생의 가족들도 모두 이북에 와서 살고있었는데 그의 손자는 어릴 때 소아마비로 불구의 몸이 되였으나 령도자님의 극진한 관심속에서 대학을 마칠수 있게 되였고 지금은 어엿한 작가로서 창작생활을 하고있었습니다.

평양에서는 4월남북련석회의 50돐을 맞으며 쑥섬에 있는 《통일전선탑》앞에서 텔레비죤방송모임을 진행하였습니다. 거기에 저도 참가하였습니다.

그 모임에서 저는 뜻밖에도 4월련석회의에 참가하였던 김구선생의 서기인 안우생선생의 아들을 만나게 되였습니다.

안우생선생은 별세하였으나 선생의 아들은 혈기왕성한 한창나이였습니다.

이날 방송모임의 주인공들은 4월련석회의 참가자들과 그 후손들이였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저는 4월련석회의 참가자들은 물론 그 후손들도 다 령도자님의 은정속에 통일애국의 길에서 보람찬 생활을 하고있음을 알게 되였습니다.

그들은 주석님의 업적과 령도자님을 통일애국의 중심으로 모시고있는 긍지에 대하여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주석님께서 중도파라고 하셨다는 려운형선생의 자제분들도 모두 이북에 들어와 고등교육과정을 마치였습니다. 그들이 제각기 자기 전문부문을 따라 흩어져 살고있을 때도 령도자님께서는 그들을 잊지 않고 친히 찾으시여 주석님의 접견을 받도록 해주시였으며 본인들의 소망대로 평양의 한아빠트에서 모여살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모두에게 국가의 중요직책을 맡겨주셨습니다.

령도자님께서는 최덕신선생에 대해서도 선생의 과거경력을 불문에 붙이고 민족을 위해 여생을 빛나게 살수 있도록 이끌어주시였습니다. 최홍희선생에게도 일흔돐, 여든돐상을 차려주시고 그의 평생소원인 여러권의 태권도백과사전출판을 조국에서 도와주도록 조처해주시였으며 태권도전당도 짓도록 하시였습니다. 주석님께서 생시에 하신 말씀을 받들어 미국에 있는 손원태목사의 여든돐상을 차려주신분도 령도자님이십니다.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이러한 사랑과 믿음의 이야기들은 제가 알고있는것만 해도 다 헤아릴수 없습니다.

위대한 김정일령도자님은 민족의 큰 마음이십니다. 큰 마음에는 편애가 없습니다. 그 큰 마음이 사랑과 믿음을 낳고 관용과 도량, 포옹력을 낳습니다. 민족대단결도 큰 마음이며 조국통일도 큰 마음입니다. 큰 마음이 있는곳에 백성이 모입니다.

저는 최덕신선생과 동향이며 친분이 깊은 미국에 있는 홍동근목사의 이야기도 들을수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그가 처음 고국방문의 길에 오를 때 북에 대한 위구와 의혹을 버리지 못한채 장인에게도 다 큰 자식에게도 알리지 않고 떠났다고 합니다. 홍동근목사는 해방후 북반부에서 리념과 신앙의 차이를 감내하지 못하고 한집에서 살던 형님에게도 알리지 않고 남으로 나갔던 사람입니다. 그후 미국으로 넘어가 이국의 하늘아래에서 살면서 어머니를 그리워했고 생전의 어머니를 만나지 못할것 같다고 한탄했습니다. 그러던 끝에 조국방문을 결행했으나 그 결과를 예측할수조차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미국시민권을 가지고 수십년만에 돌아온 그에게 조국은 꽃다발을 안겨주었고 고향에서는 85세의 어머니가 정정한 몸으로 사랑하는 아들을 기다려주었습니다. 홍동근목사는 공화국시책의 고마움에 눈물부터 앞섰다고 합니다. 그러나 《남에 나가서 살기 힘들면 고향에 도로 오면 되지 미국에는 왜 건너가 사느냐.》는 어머니의 질책에는 죄스러운 생각이 앞서 말문이 막혔습니다. 어머니는 그렇게 말했지만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님께서는 불문곡직하시고 그를 따뜻이 품어 조국통일의 보람찬 길우에 내세워주셨고 고향의 형제들에게도 거듭되는 정치적신임과 배려를 돌려주시였습니다.

실로 령도자님의 품은 배달의 피를 이어받고 애국애족의 편린이라도 남아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랑과 믿음으로 안아주시는 넓은 품입니다.

저도 그것을 공화국에 영주한 첫날부터 시시각각 느끼며 령도자님의 사랑의 손길에 몸둘바를 모르고있는 사람입니다.

저도 천도교인으로서 지난 전쟁때 어머니 몰래 이남으로 나갔으며 위구심과 의혹을 안은채 북행길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령도자님께서는 저의 그러한 경력을 조금도 탓하지 않으시고 병신자식을 더 위하는 어머니조국의 품으로 뜨겁게 안아주시였습니다.

민족이란 광역성을 띠는 개념입니다. 거기에는 각이한 계급, 계층과 각이한 주의주장을 가진 사람들이 있으며 한때 민족의 반대편에 섰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한 민족을 한품에 안는다는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큰 마음이 된다는것은 그저 큰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나라를 사랑하고 겨레를 사랑하는 지고의 애국심이 있고 또한 모든 사람들을 포용할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천도교경전에도 《잘하는 목수는 구부러진 재목을 거절하지 아니하고 명의는 모든 사람을 거절하지 아니하고 성인의 도를 배우는 자리에는 어리석은 사람을 거절하지 아니하나니라.》라고 하였지만 높은 능력은 아무것이나 가리지 않는 법입니다.

령도자님의 큰 마음이야말로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최고의 도덕이며 최고의 능력입니다.

그 도덕이 낳는 아량으로 하여, 그 능력이 낳는 도량으로 하여 경애하는 령도자님께서는 통일애국의 구심점으로 될수 있었습니다.

인덕정치, 광폭정치로 이름높으신 령도자님만이 민족을 한품에 안으실수 있습니다.
 
 

동학이 살아있는 땅
 

천도교는 창도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파란만장의 풍운을 헤쳐온 백삼십여년의 력사를 헤아리고있습니다.

그 지난한 세월에는 치렬한 항쟁도 있었고 천추의 한을 남긴 좌절도 있었습니다. 변절의 치욕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근래에 이르러 천도교가 자기의 정통성을 고수한 영광의 발자취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령도자님의 령도하에서 이루어진것입니다.

저는 이북에 들어와 조선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회 고문으로 있으면서 이 진실을 재삼 깊이 깨닫게 되였습니다.

수운대신사께서 《동학》을 창조할 당시 구미자본주의세력은 카톨릭교를 길잡이로 하여 우리 나라에 대한 침략의 마수를 뻗치기 시작하였으며 일본제국주의도 침략의 기회만을 노리고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운대신사께서는 나라와 민족을 지켜낼 방도를 모색하던 끝에 《서학》(카톨릭교)에 대치시켜 《동학》을 창도하고 《척양척왜》, 《보국안민》, 《광제창생》, 《지상천국》의 목적을 내놓았습니다.

동학운동은 반외세반봉건투쟁을 전개하면서 갑오농민전쟁을 일으켜 전주성을 점령하는 등 커다란 전과를 올렸으나 두차례의 공주성공격에서 실패한후 후퇴하기 시작하여 일본군과 관군에 의해 30여만명의 희생자를 내면서도 장기간 산발적인 항전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동학의 첫 정치조직인 《진보회》가 일제의 주구단체인 《일진회》에 흡수되고 《일진회》가 우리 나라가 일본의 보호를 받는것을 찬성하여 《보호독립선언》을 발표하고 1910년에는 《합병선언서》를 발표하는 등 친일매국행위를 감행함으로써 동학도 반역의 길에 떨어지게 되였습니다.

의암성사께서는 동학에 들씌워진 매국단체의 루명을 벗기고 사태를 수습하려고 1905년 12월 1일 동학을 천도교로 개편하고 합법적으로 애국계몽운동을 벌리였고 3.1운동을 주도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후 천도교의 교권을 잡고있던 최린 등에 의해 일제의 통치에 영합하는 친일배교행위가 장기간 계속되였던것입니다.

오로지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 령도하신 《조국광복회》에 망라되여 반일애국투쟁을 전개한 박인진도정을 비롯한 천도교인들에 의해 천도교는 자기의 정통사상을 고수할수 있었습니다.

주석님의 회고록에도 씌여져있는것처럼 당시 련공반일투쟁에 나선 천도교인들이 대단히 많았습니다.

이것은 과거에도 천도교가 김일성주석님의 령도하에서만 자기의 빛나는 발자취를 남길수 있었다는것을 실증하여줍니다.

과거뿐아니라 오늘날에도 꼭같은 말을 할수 있습니다.

지금 이남에는 천도교가 있고 적지 않은 천도교인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이남의 천도교는 자기의 명분을 상실했다고 봅니다.

오늘 이남사회는 미국의 국익과 미국의 의지에 의해 지배되는 속지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고있습니다. 그러나 천도교는 반미구호 하나, 통일구호 하나 제대로 들지 못하고있습니다. 어떠한 리유에서건 이것은 천도교의 무능 내지 변질을 의미합니다. 여기에 천도교의 정통성이 살아있다고 말할수 없습니다.

오로지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님의 자주정치하에서만 이북의 천도교는 자기의 정통성을 살려 반제민족자주를 소리높이 웨치고있습니다.

민족의 정통성이 살아있는 땅에서 민족종교인 천도교의 정통도 살아있기마련이지만 이북의 정치야말로 우리 천도교가 바라던 리상적인 정치입니다.

김정일령도자님의 정치는 사회주의를 살리고 민족을 살리고 그리하여 천도교의 정통성도 살리는 만사형통의 정치입니다.

천도교식으로 표현하면 리치기운이 바르기때문에 무한한 광역성을 띤 그 품에서는 무궁한 조화속에 만물이 순일하게 자라나고있는것입니다.

이북에서는 천도교를 민족종교라는 리유로 높이 평가하고있으며 소중이 여기고있습니다.

천도교청사는 대동강너머 문수구역에 위치하고있는데 4층으로 된 아담하고 품위있는 건물이였습니다. 이 청사도 2년전에 령도자님께서 직접 천도교청사형편을 료해하시고 새 건물로 정해주신것입니다. 그전에는 중구역에 청사가 있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대성산 혁명렬사릉과 신미리 애국렬사릉에 천도교출신 인사들이 많이 안치되여있는것도 다 천도교인들에 대한 각별한 배려의 표시로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북에서는 천도교청우당이 조선로동당의 우당으로 존립하고있으며 서로 손잡고 함께 일하고있는것입니다.

이북을 기성관념으로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사람도 사회도 정치도 력사도 후천개벽의 새시대를 맞이하여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리치기운이 가장 바른 세상으로 변모되였습니다.

지금 이남에는 이북이라면 무턱대고 이단시하는 《반공》에 경화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저는 보고 말하고 알고 말하고 살아보고 말하라고 권고하고싶습니다.

공산주의를 무작정 반대하는것도 리성을 잃은 사람만이 할수 있는 병적사고방식입니다. 구쏘련이나 동구권이 무너진 오늘 이 사람들은 마치 력사의 승자인양 도고해지고있는데 력사의 진실은 이북에 있지 그들에게 있는것이 아닙니다.

공산주의에 대하여 말한다면 그것은 본래 오래전부터 인류가 바라던 리상입니다. 인류는 자기가 바라는것을 실현하면서 살아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이 꼭 공산주의라는 명명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소박한 생각으로나마 공산주의사회와 같은 사회를 꿈꾸어왔다는것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것입니다.

저는 이북에 들어와 천도교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천도교의 《천직천록》(天地天錄)설에 대해 이야기한적이 있습니다. 천직천록설이란 한울이 사람을 낼 때 직업이 없이 내지 않고 한울이 사람을 낼 때 또한 록 없이는 아니낸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날 때부터 일과 먹을것을 가지고 난다는 말입니다. 이 천직천록설의 현대적개념은 로동권과 로동전수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로동권과 로동전수권의 완전한 실현은 공산주의사회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런 견지에서 보면 천도교의 이 법설을 내놓은 대신사께서도 공산주의자였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도 력사상 처음 신약의 초대기독교인들이 예루살렘공동체로서의 사도교회에서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주니라.》라고 하면서 화목하게 사는 사회를 실현하려 하였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지금 적지 않은 기독자들이 예수도 공산주의자였다고 주장하고있습니다. 대신사께서나 예수가 뭐 공산주의자이겠습니까. 그러나 이러한 말들은 다 공산주의가 인류의 리상이며 사람들이 오랜 력사를 살아오면서 바라던 사회라는것을 말해줍니다.

초기 공상적사회주의자들도 환상작품들인 《유토피아》나 《태양의 도시》에 반영되여있듯이 인간에 대한 착취와 압박이 없는 사회를 바라고있었습니다. 그리고 공상적사회주의자들인 오웬이나 쌩시몽도 무슨 이단자들인것이 아니라 기독자들이였습니다.

주석님과 령도자님께서는 공산주의사회건설에 대해서도 주체사상에 기반하여 새롭게 밝혀주셨습니다.

이에 의하면 공산주의사회는 자연과 사회의 구속에서 인간이 완전히 해방된 사회, 인간의 자주성이 완전히 실현된 사회입니다. 이 사회는 로동자와 농민의 계급적차이마저 없어진 무계급사회일뿐아니라 정신로동과 육체로동의 차이도 없고 따라서 인간의 사회적평등이 완전히 실현된 사회입니다. 이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풍요한 생활을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고상한 공산주의도덕풍모를 지니고 상호간에 무한히 존경하고 신뢰하며 서로 돕고 이끌면서 살아갑니다. 즉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공산주의원칙이 지배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이 사회는 온 사회가 주체사상화된 사회이며 그것은 사상혁명, 기술혁명, 문화혁명을 통하여 실현됩니다.

이것은 공산주의사회가 인간화사회의 최고절정이며 궁극적목적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를 건설하는 사람들을 적대시하고 소멸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회야말로 비인간화의 사회일것입니다.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자기 리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을 반대하여 결사전을 벌릴 필요야 어디 있겠습니까.

누가 무엇이라고 하든 세계적인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 사회주의는 력사의 진보라고 저는 믿습니다. 지금 이남의 권위있는 학자들속에서는 구쏘련과 동구권 사회주의나라들이 붕괴된 이후에도 사회주의를 긍정하여 자본주의 치명적인 모순과 약점이 이미 사회주의로 인하여 드러났다고 하면서 그렇기때문에 사회주의는 력사의 진보의 편에 언제나 서있게 된다고 말하고있습니다.

이것은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사회주의는 진리이기때문에 침묵할수 없어서 하는 말입니다.

특히 이북의 주체사회주의는 사회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새롭게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있습니다.

저는 이북에 대하여 좀 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너무도 소박하고 초보적인 리해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들어와보니 보는것마다 새롭고 또한 놀랍습니다.

동학의 투쟁사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하는 문제도 저는 신경을 쓰는 문제입니다. 이남에서 겪은 아픈 체험이 많기때문입니다. 이남에 있을 때 저는 갑오농민전쟁을 소개하려고 이 출판사, 저 방송국을 찾아 뛰여다니기도 했습니다. 모 작가에게는 선금을 주고 원고를 청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일들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게 되느냐 하면 이남의 관변측에서 별로 달가와하지 않는 투쟁력사이기때문입니다. 갑오농민적쟁은 반외세반봉건의식의 소산이며 민중투쟁력사입니다. 이 력사를 말하고 홍보하는것은 결국 반제자주의식의 고취로 됩니다. 이남당국이 그런 의식이 높아지는것을 바랄리 만무입니다. 그 명명도 이남의 관변측에서는 동학란이라고 하지 갑오농민전쟁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남의 정치는 민족을 배반하고 민중우에 군림하여 민중을 억압함으로써만 자기 명을 유지하는 정치이기때문에 민중투쟁력사를 관변측 민족사에서는 거의 탈락시키거나 은닉하고 자기에게 리로운 력사의 극히 일부분만을 과대홍보하고있습니다. 갑오농민전쟁도 소개되지 못하고 오랜 기간 묻혀있었습니다. 80년대에 들어와 남조선에서 민중운동이 활발히 전개되면서 동학과 그 투쟁력사가 소개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민족사적의의를 이북에서처럼 정확하게 평가하지 못하고있습니다. 갑오농민전쟁이라는 명명도 이북에서 장편소설이 나간후에 그 영향을 받아 일부 학계에서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도 이 투쟁을 동학란이나 동학운동, 동학혁명이라고 부르기보다 갑오농민전쟁이라고 부르는것이 옳바르다고 봅니다.

그러나 제가 여기서 말하고저 하는것은 이 문제에 있는것이 아닙니다.

저는 여기에 공경의 마음을 담아 박태원선생의 장편소설 《갑오농민전쟁》창작과정을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님께서 친히 돌봐주신 눈물겨운 이야기를 옮기려고 합니다.

박태원선생이 쓴 장편소설 《갑오농민전쟁》(3부작)은 이남에서도 재판되여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 소설이 재판되기전에 광주에 있는 조선대학교 송기숙교수가 북에서 박태원선생이 쓴 소설을 보려고 해외로 나가 그 소설을 얻어가지고 돌아갔습니다. 그만큼 이 소설에 대한 이남에서의 기대가 컸던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저는 동학운동에 대한 관심이 이남보다 이북이 훨씬 높다는 사실에 경의를 표시하고있었을뿐 그 소설이 어떻게 세상에 태여났는가 하는 눈물없이는 들을수 없는 사연을 알지 못하고있었습니다.

이북에 들어와서 그 이야기를 듣고는 참으로 커다란 감명을 받았습니다.

박태원선생은 한서들과 조선고사들을 많이 번역한 작가이며 력사소설가입니다. 지난 6.25전쟁시기에 이북으로 들어와 작가생활을 계속하면서 주로 력사소설을 썼습니다.

그런데 그가 력사소설 《계명산천은 밝아오느냐》1부를 쓰고있던 시기에 실로 청천벽력과 같은 선고를 받게 되였습니다. 그것은 시력을 잃게 된다는 무서운 진단이였습니다. 그런대로 치료를 받으면서 《계명산천은 밝아오느냐》1, 2부를 끝냈으나 《갑오농민전쟁》에 착수하려고 할 때는 시력을 완전히 잃고말았습니다. 날이 밝고 밤이 오는것도 모르고 캄캄칠야속에서 그가 과연 무엇을 더 할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박태원선생은 고심끝에 입으로 소설을 불러주고 안해가 받아쓰는 방법으로 창작하기로 결심하고 《갑오농민전쟁》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사실을 아시게 된 령도자님께서는 박태원선생 부인이 가두생활에서 제기되는 일때문에 남편의 창작을 전적으로 도와주지 못하고있음을 아시고 앞으로는 부인이 전적으로 선생의 창작을 도와주도록 하라는 간곡한 말씀을 주시였습니다. 령도자님의 조치는 결코 적은것이 아니였습니다. 박태원선생이 이때를 회고하여 남긴 글도 있지만 령도자님의 배려는 작가를 창작의 열정으로 불타게 하였으며 비록 눈은 멀었어도 령도자님께서 친히 안겨주신 사랑의 광망이 선생의 앞을 밝게 비쳐주었던것입니다.

《갑오농민전쟁》 1부가 완성되여 출판되였을 때는 령도자님께서 무척 기뻐하시면서 박태원선생을 높이 치하하시고 국기훈장 제1급을 수여하도록 배려해주시였으며 작가가 음악을 좋아한다는것을 아시고 라지오가 달린 최신형전축까지 선물로 보내주시였습니다. 그리고 이 소설을 김일성주석께 올리시여 주석님께서 읽으실수 있도록 해주시였습니다.

주석님께서는 이 소설을 다 읽으시고 《소설 〈갑오농민전쟁〉을 잘 썼습니다.》라는 평가의 교시를 주시여 작가를 일층 고무해주셨습니다.

령도자님께서는 박태원선생의 건강을 심려하시여 더 훌륭한 치료조건을 마련해주시고 남편의 창작을 돕고있는 부인에게도 고급시계와 고급양복천 그리고 남편의 구술을 잘 알아들을수 있도록 보청기까지 보내주시는 은정을 거듭거듭 베풀어주시였으니 이런 은혜 어디 또 있겠습니까. 병마는 이미 1차 뇌출혈로 반신불수가 되여 누워서 구술하고있는 작가를 시시각각으로 위협했으나 령도자님의 세심한 관심과 배려가 있었기때문에 그야말로 기적적으로 소설 2부와 3부까지 완성할수 있었습니다.

제2부를 창작하는 과정에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소설 한부분을 불러주던 작가는 또하나의 크나큰 시련을 겪게 되였습니다. 두번째 뇌출혈이 그를 다시 쓰러뜨렸던것입니다. 사흘만에 의식을 회복하였으나 혀가 놀려지지 않아 이제는 말을 할수조차 없게 되였으며 온몸은 물론 성하던 한팔마저 까딱 움직일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청각과 기억력마저 마비되였습니다. 그러나 이때에도 그를 다시 소생시키신분은 자애로운 김정일령도자님이시였습니다. 령도자님께서는 작가를 소생시킬수 있는 희귀한 약재를 친히 구하여 보내주시였습니다.

박태원선생이 남긴 회상실기 《고목에도 꽃을 피우는 위대한 사랑》에는 이렇게 씌여있습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보내주신 귀중한 약을 먹고 온몸에 삶의 원기가 솟아오르는것을 느꼈다.

재생의 기쁨에 넘친 나는 머리속에 우리 나라 어휘들과 내가 알고있는 한자들을 더듬어보았다. 아, 그런데 그것이 캄캄한 밤하늘에 하나둘 별이 돋아나듯이 되살아나는것이 아닌가. 나는 긴 시구절도 외워보았다. 친구의 얼굴들과 그들과 있었던 잊을수 없는 일들을 추억하여보기도 하였다. 모두 선명히 되살아났다. 그리고 내가 쓰다만 작품의 매 장, 절들과 장면들도 다 뚜렷이 생각났다. 기억력과 청각에는 이상이 없었다. 말만 할수 있으면 창작을 계속할수 있다는것을 느끼자 이번에는 조심스럽게 입을 움직여보았다. 신비로운 일이였다. 그토록 꿋꿋하던 혀가 점차 순순히 움직여지는것이였다.

〈여…보! 내 말이 …들리요? 응!〉

나는 안해를 소리쳐 불렀다.

안해가 달려왔고 온 방안에는 환희가 넘쳐흘렀다.

그리하여 나의 머리맡에는 다시 책상이 놓여지고 안해가 마주앉았다.》

그후 《갑오농민전쟁》 2부를 탈고한 박태원선생은 일흔돐을 맞이하게 되였는데 이때도 령도자님께서 친히 일흔돐상을 마련해 하사해주시였고 또다시 그에게 국기훈장 제1급을 수여하도록 조처해주시였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비교적 상세히 쓰게 되는것은 령도자님의 사랑에 감복해서만이 아닙니다. 이북에서 령도자님을 인간사랑의 화신이라고 칭송하는 리유를 이 한가지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알수 있지만 제가 세상에 두번 다시 없을 이 이야기에 특별히 주목을 돌리게 되는것은 이남에서는 동학에 대하여 말하고 갑오농민전쟁에 대하여 글을 쓰는 사람들이 이모저모로 당국의 압력을 받고 이단시되는 반면 이북에서는 이토록 귀중히 여겨진다는 사실입니다. 얼마나 대조적입니까. 동학은 천도교의 모체이며 갑오농민전쟁은 동학의 실천적기둥입니다. 천도교는 그 정신, 그 력사를 근거로 오늘에 존재하고 생명력을 이어나갑니다.

령도자님의 품속에서만 동학, 천도교의 력사도 살아있고 그 품속에서만 갑오농민전쟁에서 희생된 30여만명의 동학군 농민들의 넋이 살아있습니다.

위대한 령도자님의 품은 천도의 품입니다.
 
 

애민애족의 리념으로
 

리념은 시대의 기발입니다.

인간도 민족도 국가도 리념이 있어야 자기의 가치를 선양해나갈수 있고 인식된 행위로 자기의 대의를 실현해나갈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옳바른 리념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제가 여기서 말하는 리념은 가장 인간적이며 인민적이며 민족적인 참다운 리념을 뜻합니다.

진리와 정의와 선과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영원한 념원을 대변하는 그러한 리념을 이북이 가지고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류사상 처음으로 창제되고 맞이한 주체사상입니다.

위대한 김정일령도자님께서는 주체사상을 정치경륜의 본의로 삼고 모든 정사를 시행함으로써 민족사의 중심에 설수 있었습니다.

그분께서 민족사를 옳바르게 정립하고 력사발전을 주도하시는 근본요인 즉 그 원동력도 주체사상에 있습니다.

주체사상은 인류사상 인간을 위한 가장 변혁적인 사상이며 학설입니다.

력사에는 인간에게 시선을 돌리고 인간을 말한 주장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서구에서 나온 그러한 주장들이나 학설들은 인류사발전에 보탬을 주지 못하고 해로움만 끼쳤습니다.

실례로 인간문제를 숙고하면서 한때 서구사회에서 가장 득세하였던 실존주의만 하여도, 현실세계를 생각만 하여도 구역질나는것으로 보고 현실세계와 담을 쌓고 인연을 끊은 인간 즉 현실과 유리된 비현실적인 인간의 주관적인 내적체험만을 병적으로 추구함으로써 인간해방이나 인간성회복에 역작용만 하였습니다. 결국 이 그릇된 학설은 인간사회를 극단한 리기주의의 벼랑끝으로 내몰고 불안과 공포 속에서 래일이 없는 현실향략의 파국을 초래케 하였습니다.

인류사발전에 기여한 맑스ㅡ레닌주의도 물질위주의 학설로 인간의 본질적특성과 세계에서 차지하는 인간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문제를 밝힐수 없었습니다.

특히 오늘 자본주의사회에서 인간은 파멸의 위기에 처하게 되였습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을 그 부속물로 만들고 더욱 더 돈의 노예로 전락시켰습니다. 아무리 현대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사회의 편의를 도모한다고 하여도 그로 인하여 인간이 소외되고 인간이 무시당하고 인간성이 말살당하는 비인간화에로 사회가 변질된다면 그것은 편불편을 떠나 인간파멸이라는 엄청난 위기상황을 자초하게 되는것입니다.

현 구미사회의 실정만 놓고보아도 정치, 경제, 사회뿐만아니라 문화도덕, 정신생활의 모든 면에서 전반적인 위기에 봉착하게 된데는 인간성상실이라는 근원적인 문제가 그 근저에 놓여있습니다.

지구촌 어디서나 인간위기설이 떠돌고 인간은 자기를 상실하고 방황하고있을 때 인간구원의 종소리는 주체사상에서 새롭게 울려나왔습니다.

사회적인간의 본질적특성을 가장 옳바르게 해명하고 사람이 모든것의 주인이며 모든것을 결정한다는 원리를 천명한 주체사상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사상이며 인간사랑의 최고학설입니다.

재언하면 주체사상은 인간을 위주로 하여 세계에 대한 견해를 정립함으로써 인간이 자기를 찾고 인간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높여 세계를 가장 인간적인 세계로 만드는 변혁과 혁신의 사상이며 학설입니다.

오늘 세계적판도에서 주체사상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주체사상연구조직들이 100여개의 나라에 1,000여개나 조직되여 대륙별, 지역별, 나라별 연구토론회들이 수시로 진행되고있는 사실은 이 사상이 현시대를 대표하는 사상임을 웅변해주고있습니다.

결국 주체사상에 의하여 돈이냐 사상이냐, 물질중심이냐 인간중심이냐 하는 심각한 갈림길에서 인류는 인간으로 남게 되고 인간중심의 력사가 펼쳐지게 된것입니다.

주체사상은 보편적진리로서 무한한 광역성과 포괄성을 띠고있습니다. 무신론과 유신론의 근본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종교인들까지 주체사상을 공감하고 긍정하고 지지하는 리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천도교만 하여도 천도교의 종지로 되여있는 《인내천》이란 한울이 따로 있는것이 아니라 사람이 곧 한울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천도교의 법설이 범신론적견해이기는 하지만 사람을 한울과 같이 존엄있게 대하는 인간지상의 법설로서 지난날 《하나님》이나 《상제》를 초인간적인 지상의 존재로 절대시하면서 사람을 신에 예속시키고 경시하던 관점을 부정합니다. 즉 그것은 신본위(神本位), 심본위(心本位), 물본위(物本位), 황금본위 등 인간이외의 모든것을 부정하고 사람을 본위로 생각하며 사람을 본위로 하는 사회문화건설을 지향하는 종교리념입니다.

그러나 그 뜻은 오랜 세월을 두고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이루어질 가능성이나 전망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천도의 뜻과 함께 《보국안민》, 《척양척왜》, 《광제창생》, 《지상천국》과 같은 천도교의 목적까지 다 주체사상에 의해 이북땅에 이미 실현되였다는 사실앞에 저는 이북을 성역화된 신대륙의 발견처럼 느끼게 되고 주체사상의 창시자이신 김일성주석님과 주체사상을 발전풍부화시키시며 그것을 구현해나가시는 김정일령도자님을 우러러 모앙의 심정 금할길 없습니다.

천도교뿐이 아닙니다. 저는 이북에 들어와서 해외동포들이나 외국인들이 주체사상에 대하여 쓴 책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한 책들에는 례외없이 주체사상의 진리성을 확인하는 저술자의 립장이 명백히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수세기를 두고 인간사랑의 천국을 갈구해왔지만 그것은 리상으로만 남아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리상까지를 실현시켜준 현실을 주체사상이 구현된 이북땅에서 찾아보게 되였으니 놀라지 않을수 없는것입니다.

특히 제가 여기서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주체사상을 괄목하게 되는것은 이 사상이 사회주의와 민족문제를 옳게 결합시킨 애국애족의 리념이라는것입니다.

다 아시는것처럼 주체사상에 의하여 민족의 생명이 자주성이라는것이 처음으로 밝혀지게 되였습니다.

이 사람은 이때까지 자주성이란 말을 범상하게 생각해왔는데 주체사상을 학습하면서 이 용어의 깊은 뜻과 철학적의미를 새롭게 깨닫게 되였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자주성이 생명이라고 하는 정의는 철학사상 대발견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정의에 의해 인간의 자유와 평등에 관한 요구도 정확한 해명을 할수 있게 되고 인류사발전의 근원과 원동력 과정사까지 과학적으로 설명할수 있게 되였습니다.

그리고 민족의 본성에 대해서도 옳바른 리해를 주었습니다.

즉 자주성을 생명으로 하는 사람들의 집단인 민족에게 있어서도 자주성은 생명으로 된다는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나 민족의 삶은 자주적삶이며 자주성은 인간의 삶을 규제하는 본원적인 성질인 동시에 민족의 주체적생존을 담보하는 생명으로 된다는것을 의미합니다.

누구나 어떤 민족이나 자기의 자주성을 존중하며 민족의 존엄과 긍지 속에 그것은 유린될수 없는 삶으로 존재합니다.

령도자님께서는 주체사상을 구현하여 사상에서 주체, 정치에서 자주, 경제에서 자립, 국방에서 자위의 원칙을 철저히 구현하시였으며 사회주의와 민족문제를 옳게 결합하여 주체사회주의를 건설하시였습니다.

이것은 력사발전에서 대단히 괄목하게 되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종전의 사회주의일반에 대한 리해는 주로 계급혁명에 집착되여 계급문제에 경도되여있었던 반면에 민족문제를 차요시하는것으로 인식되여있습니다.

지금도 남조선에서는 사회주의는 민족을 중시하지 않는다는 인식우에서 사회주의와 민족문제를 대치시켜 생각하며 이북의 사회주의도 그러한 시각으로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물론 이것은 이북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종전의 사회주의일반에 대한 부정적반응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도 처음에는 그런 사람들의 부류에 속해있었습니다. 그후 점차 이북의 실상을 어느 정도 알수 있었지만 이번에 들어와 보고는 정말 깜짝 놀라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참 경이적입니다. 민족적색채가 이토록 짙은 사회주의를 접하게 되리라고는 생각 못했습니다.

사회주의사회는 인류가 오래동안 념원하던 사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사회주의는 진리입니다.

민족주의립장에서 보더라도 사회주의를 부정할 까닭이 없습니다.

민족주의대외적과제는 자주독립을 달성하는것입니다. 그리고 대내외과제는 민족의 화목을 이루는것입니다. 그런데 민족의 화목을 어떻게 이루는가 하는 방도는 제시되여있지 않습니다. 민족주의최대의 약점이 민족의식을 일차시한다는 명분이 있을뿐 그 내용이 심히 결여되여있는 점입니다.

민족의 화목은 한민족이라고 하여 저절로 이루어지는것이 아닙니다. 더우기 착취와 피착취, 압박과 피압박으로 이분대립된 사회,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이남과 같은 사회에서 민족의 화목을 제창해야 그것은 공념불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와 압박이 없는 사회에서만이 인간의 평등이 이루어질수 있고 민족구성원들사이 화목과 겨레사랑이 이루어질수 있습니다.

그러니 민족주의자들도 자연히 사회주의사회를 넘겨다보게 되는것입니다. 다만 사회주의가 민족성을 중시하지 않는다는것이 가슴에 걸려있었는데 그들이 이북의 사회주의를 보게 된다면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쌍수를 들어 사회주의를 환영할것입니다.

위대한 령도자님의 다음과 같은 가르치심에서도 이북사회주의의 진면모와 그 당위를 읽을수 있습니다.

《우리 인민의 의사와 민족적특성에 맞게 우리 인민자신이 건설한 우리의 주체의 사회주의는 인민대중이 모든것의 주인으로 되고 모든것이 인민대중을 위하여 복무하는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이며 주체성이 강하고 민족성이 높이 발양되는 자주, 자립, 자위의 사회주의, 애국애족의 사회주의라는데 그 본질적특성과 우월성이 있다. 인민에 대한 사랑과 나라와 민족에 대한 사랑, 인민대중의 자주성과 나라와 민족의 자주성을 가장 훌륭히 결합시키고있는것으로 하여 우리 나라 사회주의는 불패의 생활력과 위력을 지니고 승리의 한길을 걷고있으며 인류의 자주위업수행에서 더욱더 커다란 견인력을 발휘하고있다.》

지금 이북에서는 다부작예술영화《민족과 운명》이 성황리에 상영되고있는데 이 영화는 령도자님께서 친히 지도하시여 만든 영화로서 영화의 기본사상이 나라와 민족의 운명이자 개인의 운명이며 민족의 생명속에 개인의 생명이 있다는것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도 민족과 인간, 민족과 인민대중, 민족과 계급의 훌륭한 결합을 새롭게 인식할수 있었으며 령도자님의 탁견에 재삼 감복하게 되였습니다.

인간이란 언제 어디서나 현실적인 사회적인간입니다. 서구관념론철학에서 말하는 사회현실과 유리된 순수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할수도 없습니다.

사람은 어느 한 계급, 계층의 구성원인 동시에 민족의 구성원입니다. 민족의 실체가 바로 인민대중입니다. 인민대중을 떠난 민족이 있을수 없고 민족을 떠난 인민대중 또한 있을수 없습니다.

령도자님께서는 이 진리를 명쾌하게 천명하시고 이북땅에 우리 민족사상 처음으로 민족자주정신이 차넘치고 우리 나라의 유구한 력사와 문화가 빛나고 민족의 정서와 감정, 생활풍습이 꽃피는 민족의 개화기를 마련하시였습니다.

이남과는 달리 이북은 특출한 리념이 있고 사상이 명백합니다. 이북에서 모든 일이 정연하고 모든 일을 일사불란하게 해나가는것도 이에서 비롯되는것입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이남은 리념이 없고 사상이 없으며 따라서 정신적빈곤과 황페가 만연되고있으며 민족적인 모든것이 퇴화되고있습니다.

이남의 정치가 의거하고있는 리념은 자유민주주의리념입니다. 자유민주주의리념이란 미국의 리념이며 그것이 이남에 이식되고 연장된것에 불과합니다.

원래 자유민주주의란 인간에 대한 압박이 있고 착취가 있는 사회에서 있는자에게만 무제한한 자유를 주고 없는 사람에게는 억압과 구속만을 주는 자유를 의미합니다.

다 아시는바이지만 19세기이후 서구자본주의사회가 부르죠아민주주의혁명의 결과 제도적면에서 민중의 정치참여를 수용하고 평등과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주의체계를 만들어놓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형식에 불과했습니다. 민주주의이름밑에 오히려 약육강식의 비인간적인 사회를 만들어놓고 훨씬 지능화된 새로운 경지에서 억압과 착취, 제국주의적인 략탈을 강화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자유민주주의리념이란 한마디로 말하여 약육강식의 자유를 권장하는 리념입니다. 이 리념이 말하는 자유는 사람의 자유를 의미하는것이 아니라 돈의 자유를 의미합니다.

지금 서구사회에는 《돈이 말을 하면 권력이 입을 다문다.》는 격언이 나돌고있습니다. 사람을 제쳐놓고 돈이 말을 하는 세상, 돈이 말을 하면 권력마저도 입을 다물고 무력해지는 세상이 바로 자유민주주의사회입니다. 그러한 사회에서는 온갖 사기와 협잡, 살인, 강도가 성행하고 인간은 철저히 돈의 노예로 귀속됩니다.

돈만 있으면 어떠한 비인간적인 행위도 허용되는 자유밑에서는 법도 한갖 작은 벌레를 잡기 위한 거미줄에 불과합니다.

지나온 력사가 증시하고있듯이 이남정치는 리념이나 체제가 같은 미국에 의존하면 할수록 민족적리익을 저버리는데로 나아갔습니다. 따라서 이 리념하에서는 외세의존과 사대주의만 성행하게 되고 민족적인 모든것은 빛을 잃게 되였습니다. 동족인 이북을 멀리하게 되는것도 그때문입니다.

력사상 류례를 모르는 《국가보안법》과 같은 살인적인 악법이 도사리고있는 땅에서 무슨 자유를 말할수 있고 민주주의를 말할수 있겠습니까. 《국가보안법》은 동족인 이북을 적으로 규정하고 이북에 대하여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생각지도 못하게 하는 법입니다.

사실 이남에서는 60년대까지만 해도 《민족》이라는 용어사용이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학문연구분야에서까지 민족이라는 용어가 완전히 배제되여 그 사용이 금지되여있었습니다. 70년대에 들어와 7.4남북공동성명의 발표와 함께 그리고 남조선민중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점차 씌여지기 시작했으나 그것도 처음에는 대단히 조심스럽게 씌여지기 시작했던것입니다.

오늘 이남에서 민족적인것은 다 낡고 고루한것으로 치부되고 현대적이고 새로운것은 다 서구적인것으로 간주되고있습니다. 따라서 민족적인것은 다 현실적인것이 아니라 과거력사의 흔적으로 남아있을뿐입니다.

이북에서는 과거의 력사와 문화를 옳게 계승하고 살려나가고있을뿐아니라 오늘의 현실에서 민족적인 우수한것을 계속 창조하고있다면, 그리하여 현대적이며 현실적인 새로운것이 동시에 민족적인것이라면 이남에서는 현실에서의 민족적인것이란 거의 찾아볼수 없습니다. 현대적이며 현실적인 생활양식도 다 서양식, 미국식, 일본식입니다.

더우기 오늘 이남에서는 《세계화》의 이름밑에 민족적인것을 공공연히 반대하는데로 나가고있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를 망라하는 다국적기업, 초국적기업이 나타나면서 고창되고있는 《세계화》는 미국의 세계지배를 위한 하나의 요술에 지나지 않습니다. 미국이 세계지배를 실현하는데서 방해로 되는것은 민족국가라는 장벽이며 민족의식이라는 정신적성새입니다. 이것을 최종적으로 허물어버리려고 떠오른 망령이 바로 《세계화》입니다. 매개 나라와 민족들이 자기의 리념과 제도를 가지고 자기 운명을 개척해나가고있는 엄연한 현실에서 《세계화》란 하나의 엄청난 사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남은 미국의 이러한 의지가 가장 쉽게 용인되고 침습되는 지대로 되고있습니다.

이미부터 민족성이 심히 유린되여온 이남에서는 오늘 당국자들의 외세의존과 《세계화》소동으로 민족의 넋과 미풍량속이 송두리채 사라지고있습니다.

이것은 다 자유민주주의리념하에서 자행되는 소동들이며 민족말살행위들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리념과 민족문제는 완전히 배리되고 대치되여있다는것을 말해줍니다.

이북에서는 사회주의와 민족문제가 훌륭한 결합을 보았다면 이남에서는 그것이 전혀 상치되고말았습니다.

이것은 이남에 대한 이북의 우위를 의미하며 김정일령도자님의 승리를 의미합니다.

그분은 인류가 어쩌다 한번씩 맞이하는 사상리론의 거장이십니다.

인간의 영원한 념원을 대변하고있는 그분의 사상과 리론에 의하여 인간과 민족, 세계가 옳바른 자리를 잡고 그 발전의 정도가 열리게 되였으며 미래에로의 인간의 인식이 확대되게 되였습니다.

이북은 사상리론의 나라입니다. 평양에 세워진 주체사상탑은 이것을 웅변해주고있습니다. 사상이 탑으로 세워진 나라는 이북밖에 없습니다.

주체사상이야말로 주석님과 령도자님의 존함과 함께 력사의 탑으로 솟아 영원불멸할 사상입니다.
 
 

조선은 영원을 산다
 

일찌기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강령을 제시하시고 그 실현을 위한 정치활동을 정력적으로 벌려오신 김정일령도자님에 의하여 오늘 이북사회는 자기 발전의 높은 경지에 이르고있습니다.

이북에서 사회주의사상은 주체사상입니다.

주체사상과 주체사상이 구현된 이북사회의 진리성과 그 힘은 세계적인 파동의 역경속에서 이미 뚜렷이 검증되였습니다.

겨울이 와야 소나무를 안다는 말과 같이 일부 나라들에서 사회주의가 좌절되는 력사의 준엄한 시련속에서 불멸의 성새로 솟아오른 조선의 기상은 오늘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있습니다.

이것은 이북사회가 발전하여온 응당한 귀결인 동시에 력사가 아직 모르는 기적입니다. 인류사에는 이처럼 진보적이고 선진적이며 또한 이처럼 공고하고 튼실한 인간사회집단을 모르고있습니다.

주지하는바와 같이 20세기의 거장 큰 세계적이변은 구쏘련과 동구권의 붕괴입니다. 누구도 구쏘련과 동구권이 그렇게 쉽사리 무너지리라고는 생각할수 없었을것입니다.

그 붕괴는 이 지구상에서 사회주의를 동경하거나 지지하던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켰습니다.

이남에도 사회주의를 동경하거나 신봉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는데 그들모두가 심각한 좌절의 나락에 빠져들게 되였습니다. 심지어 김남주시인과 같이 《이제는 더는 바라볼 기발이 없다.》고 통탄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다른편으로는 마치 자기의 공로이기나 한것처럼 쾌재를 부르는 반공주의자들도 물론 있었습니다. 운동권에 있었던 장기표와 같은 사람은 태도를 표변하여 이북도 시간문제이지 곧 무너진다고 공공연히 출판물에 글을 써냈습니다. 그러나 사태는 어떻게 되였습니까. 뜻밖에도 이북은 모든 예상을 뒤엎고 세계적인 시련의 폭풍우속에서도 조금도 거연한 그 자태를 흐트리지 않고있었습니다. 그제야 사람들은 놀라움을 안고 이북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것을 삼가하였습니다. 쾌재를 부르던자들은 입을 다물고 말았고 이북을 동경하던 사람들은 좌절에서 일어나 경이에 찬 시선으로 이북을 바라보게 되였습니다. 이즈음 이남의 견식있는 사람들속에서는 《북은 자기나름대로 새 리론을 개발하고 자력갱생》하여왔기때문에 동구권사회주의나라들에서와 같은 현상은 일어나지 않을것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구쏘련과 동구권의 붕괴를 두고 《사회주의가 무너진것이 아니라 관료체제가 무너졌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물론 극히 단편적인 견해들입니다. 저는 세인이 《지각변동》이라고 말하는 이 엄청난 이변의 진속을 무척 알고싶어 동분서주하기도 했습니다. 그랬던만큼 이북에 들어오자 이 사태와 관련한 김정일령도자님의 로작부터 찾았습니다. 사실 이남에서 이 사태를 처음 대하던 저의 심정은 하나의 커다란 마음의 세계를 잃은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령도자님의 분석과 평가를 읽고는 다른 하나의 커다란 진리의 세계를 얻은 심정이 되였습니다.

위대한 령도자님께서는 명저《사회주의건설의 력사적교훈과 우리 당의 총로선》에서 일부 나라들에서의 사회주의좌절을 일시적이며 부분적인 현상으로 보시고 그 원인에 대해서도 과학적인 해답을 주시였습니다. 그 분석을 요약해보면 외적요인인 제국주의자들의 반사회주의적책동과 함께 보다 근본원인은 첫째로, 사회주의의 본질을 력사의 주체인 인민대중을 중심으로 하여 리해하지 못한데로부터 주체를 강화하고 그 역할을 높이지 못한데 있으며 둘째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질적차이를 보지 못하고 사회주의의 근본원칙을 일관성있게 견지하지 못한데 있으며 셋째로, 사회주의나라 당들사이의 관계에서 자주성에 기초한 국제적련대성을 강화하지 못한데 있었습니다.

이것은 사람중심의 리념에 기초해서가 아니라 물질중심의 원리에 기초해서 건설하고 전진시켜온 사회주의의 제한성의 발로인 동시에 이 나라들자체내에서의 배신자들의 출현과 로선에서의 오유, 정책에서의 실패에 기인한다는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로작들에는 이러한 사태가 모두 사상의 변질로부터 시작되였다는것이 명시되여있습니다.

령도자님께서는 당이 와해되고 사회주의제도가 변질되고 배신자들이 나오고 민심이 변한것도 다 사상의 변질로부터 시작되였다고 가르치시였습니다.

이러한 정확한 분석과 평가는 그자체가 원인과 교훈을 밝힌데 머물지 않고 주체사회주의사상의 진리성에 대한 검증으로 됩니다.

특히 령도자님께서는 사회주의진리성을 밝히는 정력적인 저술활동으로 사회주의《종말》을 고창하는 제국주의자들과 사회주의배신자들의 궤변을 반격하는 투쟁의 첨단에 나서시였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로작과 함께 령도자님께서 발표하신 《혁명적당건설의 근본문제에 대하여》,《사회주의에 대한 훼방은 허용될수 없다》,《사회주의는 과학이다》를 비롯한 수많은 로작들이 이 성전에 바쳐졌습니다. 사회주의는 인류의 리상이며 사회주의는 절대로 부정될수 없습니다. 저는 수많은 로작들을 읽으면서 력사에 특기할 사회주의와 반사회주의간의 론전에서 령도자님의 승리를 확인할수 있었으며 아울러 이북인민들이 령도자님을 조국의 운명, 사회주의운명으로 칭송하는 까닭도 깊이 깨닫게 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결국은 탁월한 령도자가 없었기때문에 구쏘련과 동구권이 무너졌다는것을 웅변해줍니다.

탁월한 령도자가 없었던 까닭에 변화된 현실에 상부하게 리론도 발전시키지 못했고 사회주의의 본성에 맞게 정치도 할수 없었으며 결국 제국주의공세앞에 무맥하게 좌절되고만것입니다.

그러나 이북에는 사상리론의 거장이시며 탁월한 정치가이신 위대한 주석님과 경애하는 령도자님이 계셨기때문에 이북의 사회주의는 좌절은커녕 오히려 승승장구하고있는것입니다.

이것은 령도자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것을 말해주는 력사의 뚜렷한 증시입니다.

저는 이북에 들어와 이북사회에 대한 리해를 깊이하면 할수록 이 진리를 더 깊이 새기게 됩니다.

일찌기 주체사상의 진리성과 맑스ㅡ레닌주의한계점을 현철하게 명시하시고 주체사상의 승리를 예언하신 김정일령도자님께서는 부단한 저술과 그것을 구현하는 실천활동으로 주체사상이 구현된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를 이북땅에 튼튼히 뿌리내리게 하시였습니다.

위대한 령도자님께서는 이렇게 가르치고계십니다.

《인민대중이 국가와 사회의 주인으로서의 지위를 지키고 권리를 행사하며 주인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며 주인으로서의 값높고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있는 바로 여기에 인민대중중심의 우리 식 사회주의가 인민대중의 절대적인 지지와 신뢰를 받는 불패의 사회주의로 되는 근거가 있다.》

세인들은 이북의 사회주의를 가장 리상적인 사회주의라고 합니다. 그것은 인민대중이 국가와 사회의 진정한 주인으로 되여있는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이기때문입니다.

이북에서 인민은 나라의 진정한 주인으로, 모든것은 인민을 위해 있고 인민에게 복무합니다.

가장 성스러운 일은 인민을 위한 일이며 인민대중의 요구와 리익을 첫자리에 놓고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것은 이북정치의 근본요구로 되고있습니다.

오랜 세기를 두고 성스럽다는 말은 신이 차지하고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북에서는 인민대중이 가장 성스러운 존재로 되고있습니다. 인민은 모든 위력하고 성스럽고 아름다운것의 총칭으로 국호도 군대의 이름도 인민의 이름과 함께 불리우며 《인민대학습당》,《인민위원회》,《인민체육인》,《인민병원》 등 나라의 고귀하고 아름다운 많은것들을 인민이라는 말과 결부시켜 부르고있습니다.

주석님의 《이민위천》의 사상을 받들어나가시는 령도자님께서는 인민을 하늘로 믿으십니다. 령도자님의 정치는 인민을 절대적인 존재로 내세우고 인민들에게 사랑과 믿음을 베풀어주는 진정한 인민의 정치, 인덕정치입니다.

주석님과 령도자님은 이 세상에 사랑을 베풀기 위해 하늘이 낸 위인이십니다.

저는 이북에 들어와 시간이 갈수록 령도자님을 우러러 감복하게 되는 일들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령도자님의 현지지도소식은 매번 저의 가슴을 뜨겁게 울려줍니다. 령도자님의 모든 시간은 현지지도에 바쳐진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것입니다. 회수가 잦고 그 로정도 벽지들과 천리방선, 외진 섬들에 이르는 머나먼 길들입니다. 이것은 령도자님께서 언제나 집무실이 아니라 인민들속에 계신다는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현지지도라는 용어도 처음 듣지만 이러한 지도는 이 세상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이북정치특유의것입니다.

자강도현지지도를 비롯하여 공장과 농촌, 군부대 할것없이 쉬임없이 이어지는 령도자님의 현지지도의 길은 이북인민들이 한결같이 말하고있는것처럼 인민을 위한 사랑의 길입니다. 령도자님께서는 인민을 보살피시고 인민의 생활을 보다 윤택하게 해주시려고 마을과 마을, 공장과 공장을 옮겨가시며 인민들속에 들어가십니다. 농촌집들에 들리시여 솥뚜껑도 열어보고 방온돌도 짚어보십니다. 그리고 인민의 의사를 듣고 인민의 의사를 모아 정책을 세우고 그것을 또한 인민대중에게 의거하여 인민의 힘으로 시행해나가십니다. 전국에 강계정신이 나래치고 성강의 봉화가 타오른것도 령도자님께서 현지지도를 통하여 한곳의 모범을 전국에 일반화하도록 하신 결과입니다.

령도자님의 정치는 사람을 존중하고 인민대중을 위하는 위대한 사랑의 정치입니다.

천도교경전에도 《사람을 공경하면 만백성이 와 모인다.》고 하였습니다.

령도자님의 인민에 대한 정성과 공경이 크고 지극하기때문에 이북인민들이 부르는 노래에도 있는것처럼 인민들은 령도자님을 하늘의 태양으로 높이 받들어 모시고 따르는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북에서 인민대중의 통일단결을 이룩하고 그에 의거하여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건설에 성공하게 된데는 주석님과 령도자님께서 지니신 인민에 대한 사랑의 힘이 크게 작용하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위대한 사랑이 있어 인민사랑의 철학인 주체사상이 세상에 나올수 있었고 그 사랑속에서 인민대중이 국가와 사회의 참다운 주인으로 될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속에서 인민은 하나의 대가정을 이루고 존엄높은 삶을 누리고있습니다.

사랑의 화신이신 김정일령도자님의 사랑심과 그 사랑속에서 덕치로 훈육된 인민이 한식솔이 되여 화목과 단합을 구가하는 이북사회의 모습은 참으로 인간이 바라는 높은 경지의 새세상입니다.

력사기록에는 덕치로 이름있던 요순에 대한 이야기와 《요순시대에는 백성도 요순과 같다.》는 말도 있지만 력사의 어느 갈피에서도 오늘의 이북사회와 같은 리상적인 사회모습은 찾아볼수 없습니다.

이북이 신대륙의 발견처럼 느껴지는 점들은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공화국이 사상과 신념의 나라이라는데 대해서도 꼭 말하고싶습니다. 이것도 제가 특별히 경탄하고있는 점입니다.

무엇보다도 이북은 사상과 신념의 성새입니다. 저는 이북에 들어와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았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사상의지의 인간, 신념의 인간들이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말그대로 주체사상을 자신의 뼈와 살로 만들어 자기의 생명처럼 주장하고있었습니다. 그들의 행동은 철두철미 자기 사상과 신념에 기초한 목적의식적인 행동입니다. 누구나 주장이 뚜렷하고 당당하며 거침없이 자기 견해를 말하고 모든 언행이 자신감에 넘쳐있었습니다. 이것은 자기 사상과 신념을 가장 정당한것으로 믿는 사람에게서만이 찾아볼수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사상과 신념에 살고 자기 신념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서슴없이 바치는 인간집단이 바로 이북사회를 이루고 있습니다.

세계는 지금 이러한 이북을 크게 괄목하고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가치가 돈에 의해 규정되는 사회악이 범람하는 세계에서 바라볼곳은 사상을 중시하고 인간의 가치규정을 사상을 두고 그것을 선양하는 이북밖에 없기때문입니다. 돈으로는 인간을 구원할수 없습니다. 인간을 위한 참다운 사상만이 인간을 참다운 인간으로 만들수 있습니다. 특히 사회주의사회는 사회주의사상으로 무장한 인민대중에 의해 발전하는 사회입니다.

이북은 이런 면에서도 력사발전의 높은 경지에 이른 사회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력사가 특기할 이러한 결과도 이북인민들이 김정일령도자님을 모시고있기때문에 이루어낼수 있었습니다.

사상리론의 대가이신 령도자님에 의하여 이북에서는 인간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전인미답의 길이 과학적인 방도를 가지고 전진하고있습니다. 령도자님께서 저술하신 사상리론은 실로 방대한 량에 달합니다. 령도자님의 로작들은 세계 여러 나라에 보급되여 큰 반향을 일으키고있습니다. 내용에서 독창적이고 창조적이라는것이 세인의 정평입니다.

그런데 로작들을 읽어보면 사람들을 혁명적으로 교양하는데 바쳐진 내용들이 많음을 곧 알수 있습니다.

로작들에 명기되여있는것처럼 령도자님께서는 사람의 사상을 중시하고 인간개조사업에 선차적의의를 부여하시였습니다.

일찌기 문학예술혁명을 시발로 사상사업전반에 걸친 일대 정신혁명을 주도하신분도 령도자님이셨습니다.

그리하여 오늘 이북은 사상과 신념의 나라로 추호의 동요도 없이 자기의 신념을 굳건히 지켜나가고있습니다.

사상과 신념에 사는 이북인민들의 정신력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저는 종교인으로서 인간의 정신력을 중시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강도에서 종교인들의 정신력을 따를 정신력은 없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나 이북인민들의 정신력은 그 어떤 정신력도 당할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것은 이북사회의 정신력입니다.

이 정신력, 이 사상의 근저에는 위대한 김정일령도자님께서만 계시면 우리는 승리한다는 확신이 놓여있습니다.

저는 이북에 들어와 그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았습니다. 사람마다 하는 그 말들은 저의 가슴속에서 언제나 떠나지 않고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고난의 행군을 하고있습니다. 대단히 어려운 형편에 있습니다. 부족되는것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장군님을 믿습니다. 장군님만 계시면 우리는 만난을 이겨나갑니다.》

그렇습니다. 그 믿음이 이북인민들의 정신력의 기둥이 되고있습니다. 그 믿음이 수령결사옹위사상을 낳고 총폭탄정신을 낳습니다. 이북사회의 정치사상적통일단결은 그 믿음으로 하여 오늘 생사를 같이하는 하나의 생명체와 같은 단결로 더욱 공고화되였습니다. 어디서나 누구나 《우리 장군님께서 계시기에 우리는 승리한다.》고 말하면서 승리에 대한 신심을 잃지 않고있으며 위대한 령도자님 두리에 더욱 굳게 뭉쳐 래일을 열어가고있습니다. 어려운 조건에서 자력갱생, 간고분투하면서 래일을 락관하는 이 정신력을 당할자 이 세상에 없습니다. 이러한 사회는 필승불패합니다.

특히 이북사회는 민족주체가 튼튼히 획립된 사회입니다. 어떤 외압도 어떠한 외부의 영향도 이북을 흔들지 못합니다.

자생, 자활, 자강의 정신이 팽배되여있는 이북의 힘은 실로 막강합니다.

이북은 기적의 나라입니다. 저는 이러한 현실에 감복할수록 령도자님의 예지와 지도력에 머리숙이게 됩니다.

시실 사대와 외세의존으로 얼룩진 민족사발전의 특수성과 그리고 분단이라는 어려운 상황, 그것도 미국이라는 제국주의원흉과 맞서있는 조건에서 주체의 기치를 들고 그것을 지킨다는것은 보통으로는 상상도 할수 없고 감히 엄두도 낼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령도자님께서는 오늘의 준엄한 시련속에서도 주체의 기치를 높이 들고 자주, 자립, 자위를 더욱 튼튼히 다지시면서 강성대국의 문을 열어젖히시고 공화국의 위력을 떨치고계십니다.

세계적인 이변과 위대한 주석님의 뜻하지 않은 서거 그리고 년년이 겹친 자연재해 등 최악의 상황에서도 정치적안정을 잃지 않고 자기 발전의 길을 굳건히 걸어나가는 이북이야말로 위대한 나라입니다.

돌이켜보면 근세이래 우리 민족은 갖가지 수난을 겪었습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식민지에로의 전락이라는 엄청난 비극을 체험하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 이 수난의 민족사는 뼈에 사무친 교훈을 남기였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여 민족자주성의 결여였습니다.

자주성에 기초한 새로운 민족사는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에 의해 시작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령도자님에 의해 우리 민족의 자주의지는 5천년 민족사상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르고있습니다. 세인이 공인하고있는것처럼 오늘 이북은 세계에서 자주성이 가장 강한 나라입니다. 어떠한 사대의식이나 외세의존의식도 이북에는 발붙일 자리가 없습니다.

오늘 령도자님의 모습은 민족자주의 당당한 자세로 세계에 비쳐지고있습니다.

그 모습은 어떠한 대적도 함부로 범접 못하는 거연한 산악과도 같습니다.

이번에 인공지구위성발사와 그 성공도 령도자님께서 지니고계시는 민족의 의지와 힘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소산입니다.

그것은 조국과 민족에 대한 열화같은 사랑과 책임감 그리고 민족민중속에 내재하는 불사신의 힘에 대한 철의 믿음에 기초한 위대한 심장에 의해서만 가능한것입니다.

오늘 이북인민모두의 가슴속에 령도자님께서 지니신 이 반석같은 민족주체적인 신조가 뿌리깊이 자리잡고 있기에 공화국은 위력합니다. 이런 나라는 이 세상에 더는 없습니다. 조선은 불멸의 성새입니다.

조선은 영원을 사는 나라입니다.
 
 

조미대결전에서 쾌승
 

90년대초반부터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은 세계 진보적인류가 희망의 등대로 바라보는 조선을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면서 이북을 정치외교적으로, 군사적으로 압살하려고 갖은 책동을 다하였습니다.

미국의 목적은 사회주의보루로 부상된 조선을 말살함으로써 지구상에서 사회주의를 완전히 없애고 저들의 《새로운 질서》를 세계적판도로 확대하려는것이였습니다.

이것은 조선인민과 세계량심이 용납 못할 도전입니다.

결국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하는 운명의 결전은 미국과 이북과의 대결로 조선반도로 좁혀지게 되였습니다.

이북의 《핵문제》를 빌미로 조선반도정세를 극도로 긴장시켜오던 미국은 드디여 주체82(1993)년에 《팀 스피리트》합동군사연습재개를 공포하고 20여만의 대병력과 핵탄투하를 전문으로 하는 전략폭격기, 초대형항공모함을 비롯한 수많은 함선들, 여기에 이남의 무력까지 동원하여 조선을 압살하기 위한 총공세를 벌리였습니다.

그때 세계는 숨을 죽이고 조선을 바라보고있었습니다. 이남에서 이 정세를 지켜보던 저도 전쟁을 방불케 하는 어지러운 폭음속에서 일찌기 체험해본적없는 긴장감을 느끼였습니다.

미국이 《핵사찰》을 구실로 이북을 물리적으로 제압하려 하는것은 누구에게나 명백해졌습니다. 이북이 어떻게 나올것인가? 전쟁이 일어난다면 북은 어떻게 되겠는가? 그리고 남은 또 어떻게 되겠는가?

민족의 운명을 걱정하지 않을수 없는 상황이였습니다.

그런데 김정일령도자님께서는 《한》미련합군의 《팀 스피리트》헙동군사연습이 미친듯이 고조되던 3월 8일에 전국, 전민, 전군에 준전시상태로 넘어갈데 대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을 하달하시였습니다.

령도자님께서는 명령에서 이렇게 언명하시였습니다.

《우리 인민군대는 현대적인 공격수단과 방어수단을 다 갗춘 백전백승의 혁명무력으로 자라났으며 전민이 무장하고 전국이 요새화됨으로써 그 어떤 침략자도 일격에 소탕할 만단의 준비가 되여있다.

민족의 자주성과 나라의 평화를 귀중히 여기는 우리 인민은 전쟁을 바라지 않지만 자기의 존엄을 유린당하면서까지 평화를 구걸하지 않을것이다.

만약 미제와 남조선괴뢰들이 새 전쟁을 도발한다면 우리 인민과 인민군대는 당과 수령을 위하여, 피로써 쟁취한 인민대중중심의 우리 식 사회주의를 위하여 끝까지 싸워 침략자들에게 섬멸적인 타격을 주고 영웅조선의 존엄과 영예를 다시한번 떨칠것이다.》

그때 저는 이 명령의 내용을 구체적으로는 알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북에서 강경대응으로 준전시상태를 선포하였다는것을 곧 알게 되였습니다. 그것은 절대로 굴복하지 않으며 전쟁을 불사한다는 견결한 자세였습니다.

그때 저는 희세의 용장을 우러러 감복하면서도 이제는 전쟁이 일어난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3월 12일에 이북에서 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한다는 공화국정부성명을 냈다는 소식을 듣고는 더는 이 대결정세를 돌려세울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전쟁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나뿐이 아니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이상의 사태는 벌어지지 않고 시간이 흘렀습니다.

《팀 스피리트》합동군사연습은 오히려 수그러드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때 이북의 준전시상태선포와 핵확산금지조약탈퇴선언은 숨죽이고 조선을 주시하던 세계를 깜짝 놀래우고 그야말로 경천동지의 폭풍같은 반영으로 갑자기 국제사회를 들끓게 하였습니다.

세계의 공정한 여론은 《조선지도자의 령도예술의 극치》,《폭탄선언》,《북조선의 정치사상적, 군사적 힘의 과시》라고 하면서 경애하는 령도자님의 조치에 전적인 지지찬동을 보냈으며 미국을 규탄했습니다.

조선의 당당하고 강경한 대응과 불굴의 기상앞에 미국은 일거에 압도되고말았던것입니다.

당시 미국무부 동아시아 및 태평양지역담당 차관보는 《북조선이 이처럼 강력한 태도로 반격해나오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북조선은 단결력에 있어서나 군사력에 있어서 특수한 나라이기때문에 미국에 어떠한 타격을 가해올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하였으며 《워싱톤 타임스》지는 《미국이 북조선을 공습할 경우 북조선은 화물선에 핵장비를 싣고와 터뜨릴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조선을 건드렸다가는 큰 화를 입을수 있다고 경고하였습니다.

결국 미국은 합동군사연습을 기일을 앞당겨 중지했고 이북에 대한 《특별사찰》소동을 포기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반면에 김정일령도자님께서는 3월 24일 준전시상태를 해제할데 대한 명령을 내려 조미간의 정치군사적대결의 승리를 세상에 선포하셨습니다.

저는 그간 조미사이의 군사적대결을 지켜보면서 많은것을 생각하게 되였습니다.

이북은 모든 예상을 뒤엎어놓았습니다. 세상에 이런 신기한 일도 있는가. 실로 경탄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령도자님의 군사적 예지와 지략에 대하여 탄복하게 되는것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그중에서도 령도자님께서는 소리없이 즉 총포성을 울리지 않고 승리하신다는 그 점을 높이 찬양하고싶습니다.

앞에서 서술한 조미간의 군사적대결도 그랬고 작년에 적들이 이북의 인공지구위성발사에 따르는 정세긴장과 핵사찰을 운운하면서 군사정세를 긴장시켰던 때도 그러했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이라면 흔히 거기에 동원되는 인적, 물적 력량에 대한 손실을 보면서 승패를 가르게 됩니다. 그러나 전쟁력사에는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특이한 기록도 남아있고 또 그런 승리를 높이 평가하고있습니다.

예로부터 《부전이승상지상(不戰而勝上之上)》이라고 싸우지 않고 이기는 승리가 으뜸가는 승리라고 하였습니다.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은 공화국을 말살하려고 방대한 무력을 동원하지만 령도자님께서는 번마다 명령이나 성명으로 적들의 기도를 물거품되게 만들어놓으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령도자님이시야말로 제갈공명도 따를수 없는 군사적 예지와 지략을 지니고계시는 명장이시라고 속으로 탄복하군합니다.

주체85(1996)년에도 저는 그것을 체험하였습니다. 이해 정초부터 미국은 핵잠수함 《버밍햄》호와 그리고 2월에는 항공모함《인디펜던스》호를 남조선해역과 조선동해에 출동시키면서 《련합대잠수함훈련》과 《밸리 언트 아셔 96ㅡ2케이》해군합동군사훈련을 벌려놓으면서 미국방장관은 이른바 《년례방위보고》라는데서 《미국의 사활적리익을 위태롭게》하는 위협을 억제할뿐아니라 《싸워서 승리해야 한다. 》는 폭언을 하였습니다. 한편 남조선괴뢰들은 륙해공군의 대병력이 참가하는 《호국 96》군사연습을 벌려놓고 미국에 장단을 맞추어 남북관계문제는 《군사력에 의한 해결만이 가능하다.》고 하면서 큰물피해로 인한 공화국의 닌관을 북침전쟁도발의 호기로 보고 정세를 전쟁접경에로 몰고갔습니다.

이때에도 이북에서는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의 담화를 발표하여 적들을 혼비백산케 만들어놓았습니다.

미국과 그 앞잡이들이 이북에서 발표하는 성명이나 담화를 두려워하는것은 그러한 성명이나 말들이 막강한 군사력으로 튼튼히 담보되여있다는것을 잘 알고있기때문입니다.

세인이 공인하고있는것처럼 이북은 군사대국입니다. 제가 알기에도 이북은 무력수에서 대단히 우세합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것은 인민군대의 정신상태를 력사의 어느 군대도, 현세의 어느 군대도 따를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북이 군사대국으로 되는 근거는 무엇보다 천출명장이신 김정일령도자님께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계신다는데 있습니다.

조미간의 대결에서 조선은 언제나 미국을 굴복시켰습니다.

정전은 국제법에도 전쟁상태라고 규정하고있습니다. 그간 조선반도의 특수한 전쟁상황에서 허다한 대소군사적충돌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이 헤아릴수 없는 적들의 도발사건들에서 조선인민군은 한번도 패한 일이 없었습니다.

명장은 두번 패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아무리 명장이라도 한번은 패할수 있다는 말이며 그 패배에서 교훈을 찾고 두번은 패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두번까지 패하면 명장이 아니라는것입니다.

그러나 령도자님께서는 조미대결에서 한번도 패한 일이 없는 그야말로 천출명장이십니다.

령도자님께서는 군사대결의 승리로 미국을 조미회담장으로 끌어내신 이후 회담장을 통한 핵대결전에서도 특출한 정치감각과 예지, 신축담대한 외교적수완으로 세인을 경탄케 하였습니다.

3단계에 걸친 회담과정과 그 성공은 이미 세계에 널리 알려진 유명한 외교사적으로 됩니다. 저는 그것을 20세기에 이룩된 하나의 신화라고 말하고싶습니다.

특히 이북측의 흑연감속로의 경수로대체제안과 그 관철은 누구도 따를수 없는 령도자님 특유의 영단입니다.

그리하여 제네바에서 진행된 제3계단 조미회담에서는 북의 흑연로체계를 경수로체계로 교체하는 문제, 조미사이의 정치, 경제관계 정상화문제, 조선반도의 비핵화, 평화와 안전보장문제, 핵확산방지체계를 강화할데 대한 문제를 내용으로 하는 기본합의문이 채택발표되였습니다.

이것은 이북외교의 쾌승을 의미합니다. 특히 미국대통령이 조선의 국호를 정식 국호로 지칭하고 김정일령도자님을 《최고지도자》로 경칭하면서 령도자님께 공약리행을 담보하는 이례적인 공식서한까지 송정한것은 령도자님의 비범한 정치지도력에 대한 공경의 표시인 동시에 미국의 굴복을 의미합니다.

조미회담과정을 지켜보던 이남의 한 대학교수는 조미회담과정을 마치 《미국이라는 거인이 소인의 손바닥에서 노는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의 《협상외교의 극치》로 묘사하면서 민족적자부심을 느꼈다고 하였습니다.

당시 외신들은 이에 대하여 국교관계가 없는 적대국이 유일초대국을 자처하는 미국으로부터 담보서한을 받아낸것은 일찌기 있어본적이 없는 사변이라고 하면서 조선의 승리를 공인하였습니다.

또한 《쏘련붕괴후 북의 사회주의제도를 고립압살하려고 한 미국의 <힘의 정책>이 파탄되고 실질적으로 사회주의제도를 <보증>한것》이라고 하면서 이북의 승리를 격찬하였습니다.

이북은 조미회담에서 승리함으로써 국제무대에 다시 한번 극적으로 부상하게 되였으며 김정일령도자님의 위상은 더욱더 거시화되고 그 영향력은 세계적판도에 미치게 되였습니다.
 
 

저는 통일을 보았습니다
 

저는 통일이라는 말만 하여도 눈물이 나오는 사람입니다. 조선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북과 남에 혈육을 두고 꿈결에도 남북을 오가며 한평생을 살아온 저로서는 말로는 그 고통을 다 형언키 어렵습니다.

늦게나마 결행한 저의 월북도 그것이 통일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언제나 간절합니다.

저는 이북에 들어와 통일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했습니다. 그 이야기들은 다 이남에서는 마음놓고 할수 없었던 이야기들입니다. 그자체가 벌써 정의가 어디에 있고 부정의가 어디에 있는가를 여실히 말해줍니다.

저는 통일열쇠도 이북에 있고 통일운동도 이북에 있고 통일력사도 이북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남에 있을 때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북에 들어와서 더욱 그것을 확신하게 되였습니다.

판문점을 찾아갔을 때 그곳에 건립된 김일성주석님의 친필비앞에서 뜨거운 눈물을 머금고 받아안게 된것도 그 확신이였습니다.

이 비는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통일성업에 심혈을 기울여오신 주석님의 사적을 길이 전하려고 령도자님께서 건립하도록 하신 친필비입니다.

이 친필비에는 위대한 주석님의 유훈을 받들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조국통일을 기어이 이룩하시려는 령도자님의 의지가 함께 어려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령도자님께서 짙은 안개를 거느리고 이곳을 다녀가신 전설같은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때 령도자님께서는 이 친필비앞에서 오래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하셨다고 합니다.

민족의 태양으로, 인류의 스승으로, 어버이로 존경받으신 김일성주석님께서 뜻밖에 서거하신것은 인류와 더불어 우리 민족 최대의 손실이였습니다.

그러나 령도자님께서 계시기에 이북인민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큰 슬픔을 감내할수 있었고 주석님의 평생의 뜻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 과감히 떨쳐나설수 있었습니다.

주석님의 통일을 위한 투쟁의 걸음걸음도 령도자님에 의해 굳건히 이어지고있습니다.

저는 그동안 평양에서 진행되는 조국통일과 관련한 모임이나 회의들에 거의 빠짐없이 참가하였습니다. 그리고 통일문제를 취급한 책들도 많이 읽었습니다.

이 과정에 령도자님의 통일의지나 사상과 방략들을 상세히 그리고 더 정확히 알게 되였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령도자님께서 주체86(1997)년 8월 4일에 발표하신 명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조국통일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자》와 주체87(1998)년 4월 18일 력사전인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 대표자련석회의 50돐 기념 중앙연구토론회에 보내신 서한 《온 민족이 대단결하여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이룩하자》를 읽고 커다란 감명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 로작과 서한을 몇번이나 읽었는지 모릅니다. 읽을수록 통일이 바른 리치와 완벽한 론리로 안겨왔고 우리 대에 기어이 통일을 이룩하시려는 령도자님의 통일의지가 뜨거운 울림으로 가슴이 메여왔습니다.

령도자님께서는 8월4일로작에서 이렇게 가르치시였습니다.

《조국통일 3대원칙과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은 김일성동지께서 위대한 주체사상과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과정에 이룩하신 고귀한 경험에 기초하여 조국통일의 근본 원칙과 방도들을 전일적으로 체계화하고 집대성한 조국통일의 3대헌장이다.》

령도자님께서는 주석님께서 제시하신 조국통일 3대헌장을 통일의 보검으로 틀어쥐고 앞으로 정세가 어떻게 변하고 환경이 어떻게 달라지든지 그에 기초하여 조국통일위업을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하시였습니다.

령도자님께서는 8월4일로작에서 민족자주의 원칙을 견지하여 조국통일을 우리 민족이 주인이 되여 민족의 자주적 의사와 요구에 따라 민족자체의 힘으로 이루어나갈데 대하여서와 사대주의와 외세의존사상을 배격하고 외세의 침략과 간섭을 반대하여 투쟁할데 대하여 그리고 사상과 리념, 신앙과 정견, 계급과 계층의 차이를 뒤로 미루고 조국통일의 기치밑에 단결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습니다.

그리고 전쟁을 방지하고 나라의 평화적통일을 이룩하기 위하여 공화국과 미국사이에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새로운 평화보장체계를 세우며 이미 세상에 공포한 북남불가침에 관한 합의를 재확인하고 철저히 리행해야 한다고 지적하시였습니다.

아울러 로작에는 남조선당국자들이 정책전환을 하여 외세의존으로부터 민족자주의 립장으로 돌아서서 동족과 손을 잡고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함께 개척해나갈데 대한 문제를 비롯하여 북남관계개선을 위한 구체적 과업과 방도들이 명시되여있습니다.

민족대단결을 실현하기 위한 5대방침을 새롭게 천명하신 4월18일서한에서는 령도자님께서 첫째로 민족의 대단결은 철저히 민족자주의 원칙에 기초하여야 한다는데 대하여, 둘째로 애국애족의 기치, 조국통일의 기치밑에 온 민족이 단합하여야 한다는데 대하여, 셋째로 북과 남사이의 관계를 개선하여야 한다는데 대하여, 넷째로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반대하고 외세와 결탁한 민족반역자들, 반통일세력을 반대하여 투쟁하여야 한다는데 대하여, 다섯째로 북과 남, 해외의 온 민족이 서로 래왕하고 접촉하며 대화를 발전시키고 련대련합을 강화하여야 한다는데 대하여 밝혀주시였습니다.

저는 이와 같은 조국통일 사상과 방침을 두고 통일은 령도자님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더욱 확신하게 되였습니다.

령도자님의 통일사상은 바른 리치와 완벽한 론리로 저의 빈 가슴을 뜨겁게 메워주었습니다.

공명정대성과 과학성, 현실성에서 그 이상의것은 바랄수도 있을수도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야말로 최상의것입니다.

무엇보다 령도자님께서는 자주의 원칙을 통일문제의 핵으로 삼고계십니다. 이북의 통일사상이나 통일정책에서 근본에 근본을 이루는것은 자주의 원칙입니다.

령도자님께서 주장하시는 통일을 위한 모든 방안들이나 투쟁은 다 자주의 원칙에서 출발하고 그것으로 일관되여있으며 또한 그에 귀착된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령도자님의 조국통일사상의 당위성과 위력은 바로 여기에 집약되여있습니다.

분단자체가 외세에 의해 생겨났고 오늘도 미국은 남조선지배에 리해관계를 가지고 조선의 통일을 방해하고있으며 이남당국자들도 외세의존정책을 집요하게 추구하고있는 조건에서 외세의 리익이 아니라 전민족의 의사와 리익에 맞게 통일을 이룩하자면 자주의 원칙을 초석으로 삼아야 함은 너무도 자명한 리치입니다.

자주는 애국이고 외세의존은 매국입니다. 따라서 자주는 정의이고 외세의존은 부정의입니다. 외세에 의존하면서 통일을 운운하는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또한 제가 령도자님의 로작들을 읽으면서 크게 감복하게 되는것은 령도자님께서는 통일문제해결에서 철저히 민족을 우위에 놓는 립장을 견지하고계신다는것입니다.

민족을 우위에 놓아야만이 리념이나 제도를 서로 용납할수 있으며 그것을 초월하여 단결을 이루어낼수 있습니다.

통일이란 민족문제를 해결하는 과제입니다. 그런것만큼 무엇보다 민족을 중시하고 전민족적리익의 견지에 서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해결할수 없는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남의 당국자들은 자유민주주의리념하의 통일을 운운하고있습니다. 이것은 민족보다 리념을 우위에 놓는 위장된 반통일론입니다.

저는 그들의 속심을 잘 알고있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현상유지를 바라며 세력균형을 추구하고있습니다.

령도자님의 통일사상의 옳바름은 또한 민족대단결을 조국통일의 가장 중요한 현실적과제로 제기하고있는데서도 찾아볼수 있습니다.

주지하는바와 같이 외세의 간섭을 막고 자주적으로 통일하자면 통일을 위한 주체적력량을 마련하여야 합니다. 민족대단결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하게 정당한 최선책입니다. 통일은 민족단합으로 이루어지는 과제입니다. 민족대단결을 이룩하면 그것이 곧 통일입니다.

령도자님께서 제시하신 민족대단결의 5대방침은 민족단합의 대헌장이며 조국통일을 위한 불멸의 기치입니다.

조선인민은 령도자님에 의하여 가까운 앞날에 민족통일을 실현할수 있는 명확한 투쟁 강령과 방향, 방도들을 가질수 있게 되였습니다.

이북에는 이남과는 달리 통일기운도 대단히 높습니다. 통일운동도 활발히 전개되고있습니다.

이것은 애국애족의 높은 뜻을 지니시고 조국통일의 밝은 전도를 다시금 열어주신 령도자님을 모시고있기때문입니다.

령도자님께서는 경직된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하여 언제나 주동적인 조치를 취하고계십니다.

주체87(1998)년 2월 18일 평양에서 공화국 정당, 단체 련합회의가 소집된것도 령도자님의 조치에 의해 마련된것이였습니다.

당시로 말하면 남조선에서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지만 통일에 관한 립장과 자세에서 달라진것이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령도자님께서는 이러한 정세를 배경으로 경직된 북남관계를 개선하기 위하여 이 련합회의를 소집하도록 하신것입니다.

이 련합회의에 저도 참가하였는데 여기서는 북과 남이 단합하여 자주적으로 민족의 출로를 열어나가기 위한 대책이 토의되였으며 이남의 정당, 단체들에 보내는 편지가 채택되였습니다.

또한 4월 18일에 있은 력사적인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 대표자련석회의 50돐기념 중앙연구토론회도 령도자님의 커다란 관심속에 성대하게 진행되였습니다.

령도자님께서는 이 토론회 앞으로 앞에서 언급한 서한을 보내주시였는데 그 서한을 전달받는 참가자들의 열광적인 환호로 장내는 떠나갈듯하였습니다.

령도자님께서 발표하신 민족대단결 5대방침을 시행하기 위한 당면대책을 토의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당, 단체 대표자회의도 전민족의 커다란 관심속에 이해 6월 10일 평양에서 진행되였습니다.

회의에서는 남북련석회의 50돐이 되는 그해에 접촉과 대화를 마련하여 민족대단결을 위한 련대련합을 실현하고저 조국광복 53돐에 즈음하여 판문점에서 북과 남, 해외가 참가하는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을 위한 대축전》을 성대하게 개최할것을 제의하고 그 사업을 추진할 대축전준비위원회를 구성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남과 해외의 정당, 단체들과 인민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채택하였습니다.

이러한 준비과정을 거쳐 8월 15일 판문점에서는 50년전 4월련석회의이후 가장 큰 대축전이 열리였습니다.

이 대축전에는 이북사회의 각 정당, 사회단체, 각계각층 대표들과 수많은 해외동포대표들이 참가하였으며 남조선당국자들의 방해책동을 뚫고 《한총련》의 김대원, 황선 대표와 문규현신부 등도 참가하였습니다.

해방의 날, 판문점에 모여서 노래부르고 춤추고 연설을 하고 구호를 웨치는 대축전은 그야말로 통일의 그날을 방불케 하였습니다.

통일의 열기가 차고넘치는 이북사회는 저를 청춘으로 만들어놓았습니다. 저는 한껏 마음터쳐 노래불렀습니다.

통일을 마음껏 웨치고 마음껏 말하는 사회는 민족의 마음이 열린 사회이며 통일의지가 하나로 응집되여있는 통일애국의 사회입니다.

우리 나라의 통일은 민족자주리념의 체현자이시며 애국애족의 기치밑에 민족을 한마음에 안고 민족대단결의 중심에 서계시는 령도자님에 의해 반드시 이룩될것입니다.

저는 위대한 령도자님의 통일사상과 그 사상을 관철해나가는 이북의 현실에서 통일을 보았습니다.
 
 

세계를 움직인 선언
 

저는 평양을 무척 사랑합니다. 그리고 자랑합니다. 저는 평양을 민족의 성역으고 우러릅니다.

평양은 내 나라, 내 조국의 수도이며 민족적존엄의 상징입니다.

평양은 부평초처럼 떠돌던 나의 여생을 안주시켜준 정답고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그러나 평양이 그토록 성스럽고 정답고 거룩하고 자랑스러운것은 바로 여기에 김정일령도자님께서 계시기때문입니다.

저는 이 글을 쓰기 위해 《평양선언》의 력사적의미를 다시금 새겨보면서도 그 생각부터 먼저 들었습니다.

저는 이남에 있을 때 《평양선언》에 대한 말을 듣고 민족의 긍지를 느낀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북에 들어와서 그 채택과정과 선언내용, 영향력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게 된후로는 세계를 향해 울려퍼진 그 류량한 평양의 종소리가 잠시도 내 귀전에서 떠나지 않고있습니다.

《평양선언》이 채택되던 당시만 해도 국제정세는 대단히 엄혹했습니다.

사실 구쏘련이나 동구권의 붕괴는 세계 진보적인류에게 있어서 커다란 시련이였습니다.

그로 인하여 세계 많은 나라 인민들속에서 리념적혼란과 사상적동요가 일어나고있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때인 주체81(1992)년 4월 20일, 평양에서는 《사회주의위업을 옹호하고 전진시키자》라는 제하의 《평양선언》이 채택되여 세상에 공포되였습니다.

이 선언에는 세계 공산당, 로동당, 진보정당들의 48명의 당수를 포함하여 70개의 정당대표들이 첫 서명자로 되였는데 이것은 세계적으로 드물게 보는 대단히 큰 회합에서 채택되였다는것을 의미합니다.

서명자들은 김일성주석님의 탄생 80돐을 축하하기 위하여 평양에 온 대표단 성원들로서 동시에 조선에 와야 사회주의재건운동의 정확한 출로를 찾을수 있다고 확신하고 평양을 방문한 사람들이였습니다.

그들은 주석님의 접견을 받고 사회주의재건운동의 진로와 관련한 귀중한 기르치심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주석님 탄생 80돐 경축행사들에도 참가하고 여러곳을 참관도 하였습니다.

특히 그들은 평양에 체류하는 기간 령도자님의 로작들을 읽고 여러 나라들에서 사회주의가 좌절된 원인과 력사적교훈, 그 재건방도를 새롭게 체득할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되여 그들은 령도자님의 사상리론에 기초하여 공동의 투쟁강령작성을 모색하는데 이르게 되였던것입니다.

령도자님께서는 사회주의운명에 대한 높은 책임감을 지니시고 조선로동당을 중심으로 그들이 쌍무적, 다무적 접촉과 회담을 진행하도록 이끌어주시였습니다.

《평양선언》은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세상에 나오게 된것입니다.

선언에는 오늘의 시대는 자주의 시대이며 사회주의위업은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성스러운 위업이라는것과 사회주의는 본질에 있어서 인민대중이 모든것의 주인으로 되고 모든것이 인민대중을 위해 복무하는 진정한 인민의 사회라는것을 밝히고있습니다.

또한 선언에는 이렇게 명기되여있습니다.

《사회주의위업을 옹호하고 전진시키기 위하여서는 매개 당들이 자주성을 확고히 견지하고 자체의 력량을 튼튼히 꾸려야 한다.

매개 당은 자기 나라의 실정과 자기 인민의 요구에 맞는 로선과 정책을 세우고 그것을 인민대중에 의거하여 관철해나가야 한다.

매개 당은 언제, 어떤 환경속에서도 혁명적원칙을 버리지 말아야 하며 사회주의기치를 높이 들고나가야 한다.

사회주의위업은 민족적위업인 동시에 인류공동의 위업이다.

모든 당들은 자주성, 평등의 원칙에서 동지적 단결과 협조, 련대성의 뉴대를 강화하여야 한다.》

선언내용이 말해주는것처럼 《평양선언》은 자주시대의 지도사상인 사람위주의 주체사상에 기초하고있습니다.

이 선언은 세계적판도에서 새롭게 전개되는 사회주의운동의 대강입니다.

이 선언으로 하여 세계적범위에서 인민대중의 투쟁은 새로운 궤도에 올라서게 되고 사회주의《종말》을 고창하는자들은 커다란 타격을 받게 되였습니다.

이것은 령도자님의 커다란 공적으로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남에 있을 때부터 령도자님의 세계적인 위상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고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북에 들어와서 령도자님의 세계적인 영향력을 더 깊이 인식하게 되였습니다.

령도자님께서는 자주시대를 주도하시는 영웅이시며 금세기가 낳은 세계적인 위인이십니다.

그것은 우선 그분께서 이북사회를 이끌어 세계적인 모범을 창조하시였기때문입니다.

이북에서는 주체사상이 구현된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그 모범으로 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있습니다.

그것은 곧 세계 진보적인류에 대한 커다란 고무로 됩니다.

이러한 견지에서 보면 령도자님께서는 이미 세계적인 정치지도자이십니다.

민족적인것이 곧 세계적인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세계적인것이 따로 있는것이 아니라 민족적인 우수한것이 곧 세계적인것으로 된다는 말입니다.

정치도 마찬가지로 우선 자기 나라의 정치에서 독창적인 모범을 창조하게 되고 그것이 세계적으로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되면 세계적인것으로 되며 그것을 령도한 정치지도자도 세계적인 지도자로 되는것입니다.

오늘 이북에 건설된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는 력사의 검증을 이겨낸 진리로서 이 모범은 곧 세계적인것으로 됩니다.

이것은 앞으로 력사는 의연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에로 발전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자본주의로부터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에로 발전하게 된다는것을 의미합니다.

《평양선언》의 채택은 바로 그것을 확인한것입니다.

《평양선언》이 채택됨으로써 김정일령도자님께서는 명실공히 세계를 직접 움직이는 정치지도자로 되였으며 세계력사발전의 중심에 서게 되였습니다.

《평양선언》이 나간 이후 세계적판도에서 일어나고있는 반영과 움직임은 이것을 웅변하고있습니다.

세계 진보적인민들은 이 선언을 적극 지지찬동하고 있습니다.

이 선언을 받아들인 정당들의 수자가 그것을 립증하고있는바 그 첫해에는 170여개의 정당들이 받아들였다면 그 다음해에는 210개 정당으로 그 수자가 늘어났고 오늘에 이르러 그 수는 240여개 정당에 달하고있습니다.

이것은 《평양선언》의 영향력에 대한 뚜렷한 과시로 됩니다.

종합된 자료에 의하면 이 선언이 채택된후 사회주의재건운동과 국제혁명운동에서는 확연히 구별되는 전환이 일어났다는것이 뚜렷이 나타났습니다.

이 선언에 서명한 당들은 그것을 공동의 강령으로 삼고 일시적혼란을 극복하였으며 새로운 진전을 이룩하고있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사회주의재건운동이 열기를 띠고 벌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로씨야, 벨라루씨, 슬로벤스꼬, 로므니아 등에서는 공산주의당들이 합당하여 단합된 힘으로 사회주의재건의 기치를 들었습니다. 우크라이나와 유고슬라비아, 마쟈르 등에서도 사회주의재건의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선언발표 1돐을 맞으며 슬로벤스꼬의 브라찌슬라바에서는 이전의 동구권 사회주의나라 공산당, 로동당들의 당걸설과 관련한 국제토론회가 개최되고 모스크바에서도 선언발표 기념일에 즈음하여 여러 정당들이 모임을 열고 《평양선언》에 기초하여 사회주의재건운동을 벌려나갈 결의를 다지였습니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미주의 진보적정당들도 이 선언에 기초하여 새 사회 창조를 위한 투쟁을 벌려나갔습니다.

주체82(1993)년 2월 에꽈도르의 수도 끼또에서는 16개 나라의 25개 정당대표들의 참가밑에 라틴미주지역정당들의 당건설에 관한 제2차 토론회가 열리였습니다. 여기서도 《평양선언》을 강령으로 삼고 투쟁할데 대하여 토의하였습니다.

아프리카의 진보적정당들도 주체82(1993)년 4월 베닌공화국 수도에서 《현정세와 정당들의 과업에 관한 아프리카지역 국제토론회》를 열고 《평양선언》에 기초하여 투쟁할데 대한 최종결의를 채택하였습니다.

이 결의에서는 《평양선언》이 채택된 4월 20일을 《인민대중의 자주성과 사회주의위업을 위한 국제적련대성의 날》로 매해 경축할것을 호소하였습니다.

자본주의나라 공산당, 로동당들과 진보적정당들의 활동도 적극화되였는바 선언발표 1돐을 전후하여 벨지끄에서는 50여개 정당들이 참가한 가운데 사회주의위업을 옹호고수하고 지지하는 문건을 채택하였습니다.

주체85(1996)년 9월 모스크바 스몰렌스까야광장에서는 여러 정당, 단체 성원들과 각계층 시민 수천명이 참가한 가운데 이전 쏘련국가주악과 국기게양을 하고 사회주의를 재생시킬데 대한 집회를 진행하였습니다.

이처럼 《평양선언》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흐름속에서 세계 수많은 나라 정당들에서는 《<평양선언>의 발표는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동지의 력사적인 공적》이라고 하면서 령도자님을 《21세기를 이끌어갈 탁월한 지도자》,《자주시대의 공인된 령도자》로 높이 칭송하고있습니다.
 
 
 

위대한 김정일령도자님께 올린 편지들과
 
기자회견문, 신문에 발표한 글들
 
 
 
위대한 김정일령도자님께 삼가 드립니다.
 

가장 다망하신 때일줄로 알면서도 아뢰이지 않고는 견딜수 없는 심중을 담아 위대한 김정일령도자님께 삼가 이 글월을 올리는바입니다.

저는 경이로운 이 시각 김정일령도자님을 조선로동당의 총비서로 추대하는 만민의 축제를 지켜보며 령도자님에 대한 인민들의 존경과 흠모와 신뢰의 환성을 심장의 뜨거운 울림으로 들었습니다.

이 사변은 구천을 흔들고 천지가 새롭게 열리는 단군민족의 가장 큰 축제이며 경사입니다.

저는 조선로동당의 총비서로 추대되신 김정일령도자님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령도자님을 단군민족의 령수로 더없이 높이 존경해마지 않습니다.

3년이나 공석으로 남겨두신 조선로동당의 총비서직과 그 공석기간이 말해주는 령도자님의 고결한 도덕성은 력사가 아직 모르는 숭고함의 정상을 이룹니다.

이북을 이단시하는 이남의 당국자들은 이 3년간을 《정치적공백기》라고 떠들었지만 이 기간이야말로 세계정치사에서 그 류례를 모르는 가장 성스럽고 거룩한 뜻이 충만된 시기였습니다.

력사는 겉으로 흐르는 시간이 아니라 안으로 흐르는 참뜻임을 령도자님께서는 일깨우시여 세인을 크게 감화하시였습니다.

그 도덕성은 권력다툼에 여념이 없는 세계정치무대에 충격을 주었으며 민족을 키우고 인류를 키우고 인간들을 키워냈습니다.

이 력사의 참뜻이 김일성주석님의 3년상이 끝난 오늘에는 조선로동당과 전민이 령도자님을 그토록 추앙하고 환호하며 대축제속에서 당총비서로 추대하는 경사로 이어진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이 경이적인 축제를 보기 위하여 이북에 온것만 같아 더욱 감격스럽습니다.

저는 그동안 어디에 가나 누구를 만나보나 모두 령도자님에 대한 신뢰와 존경으로 넘쳐있는 순결한 충효심을 느끼였으며 사람들의 그 마음처럼 깨끗하고 청순한 자연환경을 접하게 되였습니다.

특히 본인은 김일성주석님의 뜻을 이어 《이민위천》의 사상으로 인민을 위한 인덕정치를 펴나가시는 령도자님의 품에 안긴 첫날부터 날마다 시간마다 하해같은 사랑과 은총을 받아안으며 감사와 감격에 싸여 몸둘바를 모르고있습니다.

본인은 김정일령도자님을 절대 지지하여 주체가 확립된 자주국을 찾아왔지만 저의 운명전환이 그토록 령도자님의 크고크신 사랑과 직결될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령도자님의 사랑과 배려를 병신된 자식을 더 사랑하며 마음쓰는 어머니조국의 사랑으로 받아안으며 고마운 그 품에 얼굴을 묻고 운적도 한두번이 아닙니다.

경애하는 령도자님,

저의 일평생에는 곡절도 많았지만 령도자님의 사랑과 배려에 그 모든 과거를 잊고 새 인간으로 환생하게 되였습니다.

김정일령도자님의 인덕정치는 하많은 사랑의 전설을 낳고있음을 알고있지만 오늘은 령도자님의 사랑속에 사는 저와 저의 가족이 이 전설의 주인공으로 되고있습니다.

저는 이 전설이 덕망높으신 령도자님에 대한 찬가로 저 남녘땅 멀리까지 울려퍼지리라는것을 믿어의심치 않습니다.

겹으로 쌓이는 오늘의 행복을 두고 저는 지금 령도자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한 한가지 생각에만 집착되여있습니다.

저의 여생은 이제 이 한가지 과제앞에 서있을 따름입니다.

저는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이 한몸 다 바쳐 위대한 령도자님께 충효를 다하겠습니다.

위대한 령도자님을 조국통일의 구성으로 모시고 명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조국통일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자》를 구현하는 성업에 전심전력을 다 바치겠습니다.

조국의 륭성번영과 민족의 통일을 위하여 민족의 태양이시며 현세의 한울님이신 위대한 김정일령도자님께서 부디 만수무강하시기를 기원하고 기원합니다.
 
 

주체86(1997)년 10월 9일
 
오익제 드립니다.
 
 
 
 
주체87(1998)217일부 《로동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보도가 실렸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오익제선생의 축하편지를 보시고
 
친필을 보내시였다.
 

우리 당과 우리 인민의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이며 조선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회 고문인 오익제선생이 올린 축하편지를 보시고 친필을 보내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보내신 친필은 다음과 같다.
 

《감사합니다. 1998. 2. 11
 
김 정 일.》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탄생 56돐을 맞으며 오익제선생은 경애하는 장군님께 다음과 같은 축하편지를 드리였다.
 
 

위대한 김정일령도자님께 삼가 드립니다
 

만민의 축복속에 탄생 56주기를 맞이하는 위대한 김정일령도자님께 삼가 충심으로부터의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오늘 위대한 령도자님의 탄신절을 맞아 이북인민들이 펼쳐놓는 축제의 경사로움과 그리고 이북땅에 넘치는 민족의 찬연한 정기속에서 령도자님의 탄생이야말로 민족정통성의 명맥을 이어 민족을 민족으로 존속케 하는 단군민족의 축복임을 심장의 뜨거운 울림으로 가슴깊이 새겨안게 됩니다.

돌이켜보면 조선민족은 유구한 력사를 가진 슬기로운 문화민족이지만 그 존속을 위협하는 시련의 력사는 고금을 막론하고 언제나 있어왔습니다.

일제의 조선침략과 해방후 민족의 분단은 그 대표적인 증시로 됩니다.

그러나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과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님에 의하여 민족의 명맥은 꿋꿋이 이어지고있으며 민족의 존엄은 누구도 감히 건드릴수 없게 되였습니다.

주석님께서는 일제의 식민지멍에에 짓눌려 우리 민족이 성과 이름까지 빼앗겼던 그 암울한 시기에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시고 나라를 광복하시였으며 해방후에는 이북땅에 주체의 조국을 건립하시였습니다.

령도자님께서는 주석님의 뜻을 이어 민족의 넋을 안고 자주국의 존엄과 이 민족의 슬기를 백두산처럼 거연하고 떳떳하게 높이 키우시였습니다.

저는 이북사회의 어디를 가나 위대한 령도자님에 의하여 주체성과 민족성이 사람들의 생활의 매 순간과 매개 장소, 매 국면마다에 충만되여 사회의 지칠줄 모르는 정신력을 이루고있음을 감명깊게 보고느끼였습니다.

이것은 어떤 시련의 력사속에서도 민족의 주체적생존을 지켜 인간의 참삶을 구가할수 있게 하는 우리 민족의 가장 귀중한 정신적재부입니다.

이북에 영주한지 6개월밖에 되지 않지만 저는 이 훌륭한 귀감이 있어 새로운 눈으로 민족사의 옳고그름을 명확히 가려볼수 있었으며 내가 설 땅이 어디냐 하는것을 재삼 깊이 깨닫고 이북에 온것을 인생전환의 더없는 기쁨으로, 긍지로 생각하게 되였습니다.

제가 떠나온 이남사회에는 래일이 없습니다.

정치로부터 사회생활의 모든것이 외세의 지배하에 자주성을 잃고있으며 탐욕적인 미국의 의지가 사회의 모든곳에 속속들이 배여있습니다.

특히 90년대에 들어와 이른바 《세계화》의 구호밑에 민족의식이 공공연히 거세되고 민족적인 모든것이 걷잡을수 없이 사멸되여가고있습니다.

이남이 처한 이러한 상황에서 만일 이북의 자주정치가 없다면 민족의 장래를 어떻게 기대할수 있겠습니까.

단군민족의 성지도, 민족의 정통성도 오로지 이북에 있으며 위대한 령도자님께서 계시여 민족의 이 존엄과 영예는 더욱 드높아지고있습니다.

저는 민족의 래일도 령도자님의 위대한 정치에서 밝아오고 민족의 력사도 령도자님의 정치를 원동력으로 전진해나갈것이라 믿어의심치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련과 난관이 아무리 앞을 막아선다 하여도 정의와 진리는 위대한 령도자님께 있으며 민족문제해결의 관건도 령도자님께서 쥐고계신다고 굳게 확신하고있습니다.

저는 위대한 령도자님의 정치를 받들어 한생을 바칠 각오를 다시한번 굳게 다지면서 민족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래일을 이어나가는 력사의 중심에 서계시는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님께서 길이길이 만수무강하시기를 기원하고 또 기원합니다.
 
 

주체87년 2월 11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오익제 올립니다.
 
 
 
 
위대한 김정일령도자님께
 
삼가 드립니다
 

21세기를 향한 력사의 지평우에 밝은 태양으로 솟아올라 공화국을 창창한 미래에로 인도하시는 신화적영웅이신 위대한 김정일령도자님!

성대한 공화국창건 50주년 기념일을 맞이하고있는 저는 언제나 우러러 그리며 숭상하는 뜨거운 마음을 담아 경애하는 령도자님께 삼가 경하의 큰절을 올립니다.

경애하는 령도자님을 이번에 변함없이 공화국의 최고직책에 높이 모시게 된것은 우리 나라가 강성대국으로 5천년 민족사의 절정을 장식할 일대 전기를 마련한 대경사로 됩니다.

그것은 주체사상의 기치밑에 인간중심의 력사의 승리적전진을 담보하는 인류사적사변이며 갈라진 민족을 통일하고 하나의 민족으로 존속케 하는 민족구원의 새 계기를 마련한 민족최대의 행운으로 됩니다. 공화국의 품에 안겨 만복을 누리고있는 저로서는 이번에 또다시 경애하는 령도자님을 국가의 최고직책에 모시고 공화국창건기념일을 경축하는 영예까지 지니게 되여 감개무량함을 금할길 없습니다.

공화국은 자기 힘으로 자기를 찾고 일떠세우고 위상을 떨치는 주체의 강국이며 세상에 으뜸가는 자주국입니다. 인류는 오랜 세월 리상국을 념원했으나 그 어디에서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인류의 리상국은 조국과 민족에 대한 열화의 사랑과 책임감 그리고 민중속에 내재하는 불사신의 힘에 대한 철의 믿음을 지니신 위인에 의해서만 건립됩니다. 이것은 제가 이북에 와서 보고느낀 가장 큰 깨달음입니다.

공화국은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공화국이며 위대한 김정일령도자님의 공화국입니다.

주석님의 건국창업의 공적을 이어 주체의 위대한 사상과 애국애족의 뜨거운 심장을 지니시고 이 땅우에 정치대국, 군사대국, 문화대국의 전성기를 마련하신 령도자님의 불세지공의 업적을 어찌 필설로 다 아뢰일수 있겠습니까. 특히 최근년간 흉악한 제국주의자들은 사회주의의 강성보루인 공화국을 압살하고저 별의별 못된짓을 다하였지만 령도자님께서는 세계의 모든 예상을 뒤집어엎고 오히려 공화국의 위용을 국제무대에 금성철벽으로 급부상시키시였습니다.

이것은 20세기의 기적중에 대기적입니다.

참으로 령도자님은 공화국이 처한 대외적인 악조건에서도 준엄한 시련을 이겨내면서 강성대국의 문을 열어젖히시고 민족의 슬기를 5대주 6대양에 당당하게 과시한 신화적영웅이십니다.

령도자님의 현철하시고 출중하신 위인상은 이번에 세계를 깜짝 놀래운 인공지구위성의 성공적발사에서 더욱 뚜렷이 증시되였습니다.

사실 저는 이북의 과학기술발전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하고있다고 생각하였지만 자기의 기술과 지혜로 인공지구위성을 만들어 그것을 정확히 자기 궤도에 진입시킬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인공지구위성의 발사는 공화국이 걸어온 50년의 력사에 대한 찬가이며 21세기를 향한 우리 나라 주체위업의 종국적승리를 예언하는 축포입니다.

이것 역시 겨레에게 새 힘을 주고 세게 진보적인민들을 고무한 20세기말의 또하나의 빛나는 성공탑입니다.

경모하는 령도자님,

산같이 머리 들어 떳떳해지고 하늘처럼 가슴 열어 마음 든든해지는 저의 이 심정을 무슨 말로 아뢰였으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공화국이 위대한 김정일령도자님의 존함과 더불어 영원을 사는 불멸의 나라임을 다시금 깊이 깨닫게 되였습니다.

공화국창건 50돐을 경축하는 꽃보라속에서 저는 세계의 첨단을 달리는 자주적이고 풍성하고 강유력한 우리 공화국의 미래상을 환하게 바라봅니다.

저는 자랑찬 공화국의 이 력사속에서 충효일심으로 경애하는 장군님께 결초보은하겠습니다.

위대한 령도자님은 민족과 세계를 위한 대생명, 대정신, 대우주이십니다.

귀중한 옥체를 돌보시고 특별히 건강에 류의하시며 부디 만년장수하시기를 삼가 기원합니다.
 
 

주체87(1998)년 9월 9일
 
오익제 드립니다.
 
 
 
 
민족의 령수이신 김정일령도자님을 숭앙하여
 
이북에 왔음을 당당히 선언한다.
 
 
남조선의 《국민회의》상임고문이며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고문이며 남조선천도교 중앙총부 전 교령인 오익제선생
 
국내외기자들과 회견
 

[평양 829일발 조선중앙통신]

공화국북반부에 영주한 남조선의 《국민회의》상임고문이며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고문이며 남조선천도교 중앙총부 전 교령인 오익제선생이 1997년 8월 29일 인민문화궁전에서 국내외기자들과 회견하였다.

기자회견장소정면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초상화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초상화가 모셔져있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만세!》,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 만세!》라고 쓴 구호들이 기자회견장에 나붙어있었다.

기자회견에는 로동신문사, 조선중앙통신사, 조선중앙방송위원회, 민주조선사, 통일신보사를 비롯한 평양시내 출판보도기관의 많은 기자들이 참가하였다.

또한 우리 나라 주재 여러 나라 외국기자들과 대사관 출판관계일군들이 기자회견에 참가하였다.

오익제선생은 참가자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으며 그들의 관심과 기대 속에서 회견을 진행하였다.

오익제선생은 1996년부터 김대중이 총재로 있은 남조선의 제1야당인 《국민회의》상임고문, 종교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있었으며 1995년부터는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고문으로, 1989년부터 1994년까지는 남조선 천도교중앙총부 교령으로 있었다.

오익제선생은 또한 1981년부터 남조선 《대통령》직속 자문기관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으로, 1991년부터 1994년까지는 범종교통일단체인 《통일광복민족회의》대표로, 1986년부터 1989년까지는 남조선 천도교《민족통일연구회》회장으로 있었다.

남조선의 정계와 종교계의 명망있는 지도급인사인 오익제선생은 지난 8월 4일 서울을 떠나 제3국을 거쳐 8월 15일 평양에 도착하였다.

기자회견에서는 먼저 오익제선생이 발언하였다.

선생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본인이 유서깊은 성도인 평양에 도착한지 꼭 두주일이 된다.

그동안 여러곳을 참관도 했고 북의 지인들과의 만남도 가졌으며 여러가지 유익한 책들도 보았다.

본인은 입북한후 일생에서 처음으로 감격스러운 배려와 환대를 받았고 잊을수 없는 환영과 고무도 받았다.

저는 이 기회에 먼저 저의 공화국영주를 허락하여주시고 육친의 정으로 따뜻이 보살펴주시며 각별한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경모하는 김정일령도자님께 삼가 충심으로부터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본인은 또한 동포애의 심정에서 저의 공화국영주를 환영해주고 친절하게 환대해주며 저에게 신심과 용기를 주는 이북동포들과 평양시민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본인이 평양에 도착한 때로부터 매일 매 시각 저의 활동상황을 보도해주기에 수고하는 기자선생 여러분들에게 사의를 표한다.

본인은 오늘회견에서 먼저 이북에 영주하기 위해 이남을 탈출하게 된 동기를 기본으로 하여 몇가지 사항에 관해 말씀드리고저 한다.

본인이 이남과 결별하여 월북을 결행하게 된것은 일시적인 충동이나 우연적인 발상에 의한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품어온 뜻을 행동에 옮긴것이다. 그리고 누구의 도움이나 개입에 의한것이 아니라 자의에 의해 본인스스로 선택하고 단독으로 결행한것임을 먼저 분명히 해둔다.

본인이 이남을 탈출하게 된것은 무엇보다도 이남에서는 자유로운 통일운동을 할수 없을뿐아니라 당국의 감시와 박해의 대상이 되고있었던데서 비롯되였다고 할수 있다.

아다싶이 조국통일은 민족의 숙원이며 통일운동은 민족구성원으로서 누구나 마땅히 해야 할 본분이다. 통일운동에 이바지하는데 민족의 일원으로서의 책무가 있고 보람이 있다.

그런데 이남땅에서는 통일운동을 자유롭게 할수 없었다.

1978년 8월 4일로 기억한다. 그날 천도교 춘천교구장이였던 리도천동덕이 통일행진의 뜻을 품고 림진강에 도달했으나 더이상 북으로 올수 없게 되자 그자리에서 기름을 온몸에 붓고 분실자살한 기막힌 일이 있었다.

본인은 리도천교구장님의 이 고귀한 죽음에서 충격을 받고 경의를 표하며 그의 뒤를 따를가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나 리도천동덕의 죽음에 대해 신문들은 1단기사로 축소보도하고 주변사람들도 무관심한것을 보고 실망했다. 그의 뒤를 따라 죽는것보다 이북에 와서 보람있게 통일에 진력하다가 죽는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했다. 죽음을 각오하는 결행이라면 무엇이 두려울게 있으며 꺼릴게 있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그때부터 이남탈출을 모색하며 고민했다.

그후 1989년에 최덕신선생이 저에게 평양에 와주소 하는 초청편지를 보내여왔다. 평양에 오면 뜨거운 동포애의 정으로 환영하겠다고 한 최덕신선생의 편지를 받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평양방문 기회를 탐문하기 시작했다. 최덕신선생으로 말하면 이남 천도교에서 저의 선배교령이였고 제가 그분과 늘 뜻을 같이하고있어 우리들사이에 친분은 남달랐다. 그래서 저는 최덕신선생의 초청에 응하고저 여러가지 방도를 구상하였다.

그러던중 1993년 10월 중국 베이징에서 천도교청우당 류미영위원장님과 접촉하게 되였다.

그때 류미영위원장님으로부터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님께서 발표하신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에 대한 설명을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우리는 남북천도교가 조국통일을 위해 같이 힘쓰기를 약속하고 갑오농민전쟁 100주년을 공동으로 기념하기로 합의했었다. 대단히 기쁜 일이였다. 그러나 이남당국의 방해로 판문점에서 가지기로 했던 공동기념행사는 무산되였다. 저는 이 행사의 무산을 책임지고 천도교 교령직에서 이듬해 6월에 사임하게 되였다.

그후 류미영위원장님으로부터 단군릉개건준공식에 참여해달라는 초청편지를 받았다. 그것을 가지고 이남《통일원》에 평양방문 허가를 신청했으나 문건이 불비하다는 리유로 그것도 거절당했다.

저는 다시 필요한 요건을 갖춘 문건을 구비하여 허가신청을 했으나 이번에는 정치적으로 《리용》당할 우려가 있다는 구실을 들어 불허하다는것이였다.

그리하여 저는 공식허가로써는 뜻을 이룰수 없다고 판단하고 1995년 봄, 이남탈출을 기도하다가 김포공항에서 제지를 당하고 려권마저 압수당했었다.

그후 항의를 해서 려권을 겨우 돌려받았지만 줄곧 감시를 받아왔다.

1996년에는 이북에 왔다간 현대그룹의 정주영씨가 평양방문 초청을 받았는데 당국의 허가가 나오면 같이 북에 오기로 약속했었지만 이 역시 불허되였다.

이러한 과정에 금년들어 《문민》독재가 더욱 포악해지고 범민련과 《한총련》에 대한 탄압이 일층 극심해지면서 이남에서는 자주적인 통일운동이 발붙일 여지가 없게 되였다.

한편 이북동포들이 서방의 고립봉쇄속에서도 통일의지를 굽히지 아니하고 힘차게 나아가고있는 현실에 감명을 금치 못하면서 통일운동은 역시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님의 유훈을 받들어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령도하시는 이북에 와서 해야 이루어지겠다는 신념을 굳히게 되였다.

본인이 월북한 이후에 들은바이지만 북에서는 1991년1월과 1994년 4월에 김일성주석님께서 명시하신 민족통일정치협상회의소집방안과 전민족대단결 10강령을 관철하기 위한 정부, 정당, 사회단체 련합회의에서 채택된 편지를 비롯하여 여러건의 편지를 이남의 각당, 각파, 각계인사들에게 보내면서 저에게도 동시에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저는 이남에 있을 때 그런 편지를 한번도 받아보지 못했다. 그것은 이남당국이 본인에게 그런 편지들이 전달되지 못하게 했기때문이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볼 때 여러분들은 이남에서는 통일운동이 심히 탄압당하고있으며 통일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당국의 감시속에서 항시적인 신변의 위협을 받고있다는것을 알수 있으리라고 본다.

자초에 이남통치자들은 통일의 의지가 없다.

그네들은 분단을 빌미로 《안보》의 이름밑에 일신의 안위와 영화만을 추구하고있다.

다 아시는것처럼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 뜻밖에 서거하신것은 우리 민족과 인류의 커다란 손실이 아닐수 없다. 더우기 그때 주석님께서 남북정상회담을 며칠 앞두고 서거하셨기때문에 온 민족이 애석함을 더욱 금치 못해했다.

그런데 《문민》당국자는 정상회담 상대자로서 주석님서거에 조문을 하지 아니하고 이남민중의 조의표시도 탄압하는 폭거를 자행했다.

인간의 도리가 없는것은 물론이고 그런 사람과 마주앉아 통일문제를 론의했댔자 도대체 무슨 훌륭한 결실을 볼수 있겠는가고 일치하게 말들을 했다. 이북에서 그후 이남의 《문민》당국을 통일대화의 상대로 하지 않고있는것은 천만번 지당한 일이라고 본다.

본인이 이남과 결별하여 이북에 오게 된 기본동기는 또한 이남에는 애국과 정의가 없고 장래가 암담한 반면에 이북에는 애국과 정의가 살아있고 민족의 장래가 기약되여있다고 확신한데서 비롯된것이다.

애국은 곧 자주이다. 자주를 위한 운동이 곧 애국운동이다. 8.15전 조국광복을 위한 반일운동은 바로 자주독립을 위한 애국운동이였다.

오늘날 이남에서 애국은 역시 자주독립을 이루어내는데 있다.

아시다싶이 이남땅은 미국의 의지가 모든 분야에 속속들이 배여있고 미국의 국익에 따라 모든것이 결정되고있다. 따라서 이남에는 민족자주란 없다. 정치가 미국풍에 놀아나고 경제가 외국하청경제로 되고 근로민중에 대한 착취도 일제시기보다 더한 략탈적인것으로 되고있다.

더우기 오늘 이남에서는 의미조차 모호한 《세계화》의 미명하에 민족적인것이 다 실종되고있고 주소도 번지도 없는 외래풍만 범람하고있다.

민족적인 정서나 감정, 민족적리익은 거세되고 민족정통성마저 소멸되여가고있다. 따라서 애국은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상황이다.

50여년간의 미국의 식민지지배에 환멸을 느낀 이남민중은 오늘 미국을 싫어하고있고 미군이 하루빨리 제 나라로 돌아가기를 바라고있다. 그래서 이남이 제2의 해방을 맞이해 자주독립해야 한다고 뜻있는 사람들은 내놓고 주장하고있다.

이와는 정반대로 이북은 애국이 살아있다. 자주정치가 실시되고 사회의 모든곳에 민족주체가 튼튼히 뿌리내려져있다.

본인은 이런 현실을 이남에 있을 때부터 어느 정도 알고있었다.

《척양척왜》, 《보국안민》의 리념아래 반침략반제국주의투쟁을 진행해온 천도교인으로서 본인은 이북의 반제자주로선에 언제나 공감하고 그것을 지지하는 립장에 있었다.

이북사회를 주도하는 주체사상에 대해서도 금세기를 빛내이는 탁월한 사상으로 믿어왔다. 주체사상은 맑스ㅡ레닌주의의 한계점을 극복하고 새롭게 발견한 사상이며 우리 천도교의 《인내천》리념까지 현실화하여주는 위대한 사상으로서 그것은 최고의 애국주의라 믿는다. 그것은 돈이나 자산과도 바꿀수 없는 민족의 가장 귀중한 재보라 하겠다.

그래서 본인은 자주가 있는 이북은 애국의 성지이지만 자주가 없는 이남은 매국의 암흑지대라 부른다.

이남은 정의가 짓밟히는 사회이지만 이북은 정의가 찬미되고 권장되는 사회이다.

이남에는 부정과 비리, 부패가 사회전반에 만연되고있다. 심지어 《대통령》도 선거때에는 《부정부패척결》을 외우지만 권력만 잡으면 부정축재에 혈안이 된다. 바로 현 《대통령》이 《개혁》의 구호를 들고 《재산공개》니, 《금융실명제》니 하고 누구보다 청렴결백한체하였지만 세상이 다 아는것처럼 그의 차남이 부정비리로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되였고 《대통령》자신이 도덕적으로 매장된 실권없는 《유령대통령》으로 취급되고있다.

그러나 이북은 어떤가. 사회가 매우 깨끗하고 건전하며 청렴하다. 여기서는 다같이 서로 돕고 이끌어나가고있다.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와 집단, 남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미덕이 사회에 풍미하고있다. 꽃다운 처녀들이 영예군인의 배우자가 되여주고 부모없는 고아의 어머니가 되여주며 청년들이 힘든 일터, 농촌, 탄광, 광산으로 자원진출하는 소행이 이남에서는 있을래야 있을수 없는 일들이다.

령도자가 진심으로 민중을 사랑하고 민중이 령도자를 충성으로 받드는 사회가 이북이 아닌가.

이런 사회는 번영한다.

이런 사회는 성공한다.

동서고금에 부패한 나라는 백이면 백이 다 망했지만 건전한 사회, 화목한 나라는 비록 어려움이 있다 해도 망한 례가 없다. 다시말해서 부패한 나라는 망했어도 일시적인 흉년이 들어 쓰러진 나라는 없다.

고대로마제국이 왜 망했는가, 권력이나 경제력이 약해서였던가. 아니다, 정신도덕적으로 부패했기때문이였다. 우리 나라 리씨왕조가 망한것도 부패때문이였다. 구쏘련이 붕괴된것도 저는 부패때문이라고 본다. 구쏘련의 마지막수반이였던 고르바쵸브는 이남의 로태우가 준 푼돈까지 받아먹었다.

그러니 나라가 망하지 않을수 없는것이다. 부패한 이남도 망한다. 시간문제이지 망한다는것은 기정사실로 되고있다.

그러나 이북은 자연재해가 일시적인것처럼 경제적어려움도 일시적인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민족의 장래는 북에 있다고 확신한다.

본인이 월북을 결행하게 된것은 바로 이러한 확신에 바탕한것이라 하겠다.

특히 강조하고싶은것은 본인의 월북결행이 이남에는 따를만한 령도자나 없지만 이북에는 민족의 영명한 령수가 계신다는 이 특기할 사실에서 비롯되였다는것이다.

진리도 힘이 있어야 실현된다. 그 힘은 바로 령도자의 령도력이다. 이남에는 진리, 애국과 정의가 없을뿐아니라 설사 있다 해도 그것을 실현할수 있는, 국민을 이끌수 있는 정치적령도자가 없다. 이남의 력대 《대통령》들은 하나같이 제명에 살지 못한 매국노였고 독재자였으며 죄인들이였다. 이것은 정말 우리 민족의 수치이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겠지만 리승만은 친미매국, 파쑈독재를 하다가 쫓겨나 하와이에서 객사했고 박정희는 《유신》독재를 하다가 심복에게 사살당했으며 전두환, 로태우는 광주학살과 군부독재를 하고는 지금 죄수복을 입고 감옥밥을 먹고있고 《문민》독재를 하는 김영삼은 이제 임기만 끝나면 선임자들보다 더 비참한 말로에 처할 운명에 놓여있다.

이남에서 《선거》를 백번 한다 해도 민족, 민중을 위한 령도자가 집권할수 없다.

그러나 이북에는 걸출한 령수가 계신다.

저는 오래전부터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령도자님을 존경해왔다. 저는 천도교인으로서 그리고 정치인으로서 김일성주석님을 어제도 경모했고 오늘도 경모하고있다.

8.15전에 김일성장군님께서 백두산에서 빨찌산투쟁을 하실 때 천도교 박인진도정은 김일성장군님의 《조국광복회》에 뜻을 같이하고 반일애국에 나섰다.

일전에 대성산 혁명렬사릉에 참배하러 갔었는데 거기에 박인진도정도 계시였다.

주석님께서 천도교인인 그를 잊지 않으시고 공산주의렬사들과 나란히 안치해주셨다.

해방직후 이북에서 천도교청우당 위원장을 지낸바 있는 김달현선생도 김일성주석님의 사랑과 배려를 많이 받았다는것을 저는 주석님의 회고록을 읽으면서 깊이 느꼈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최덕신선생은 이남에서 천도교교령을 지낸분이였는데 이북에 와서 김일성주석님을 천도교에서 받드는 《한울님》이시라고 높이 칭송했다.

제가 천도교인으로서 선배들이 따르고 받들어온 김일성주석님을 따르는것은 당연지사이다.

저는 김정일령도자님도 김일성주석님의 위업을 계승하여 이북에 주체, 자주, 자립, 자위를 실현하고 사랑의 정치, 광폭정치를 펴시는 위인이시고 미국이 《대북제재》,《대북봉쇄》의 끈을 스스로 끊어버리게 하신 출중한 령수이심에 경탄해마지 않았다.

20세기의 세계적인 이변은 구쏘련과 동구권의 붕괴였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놀라운 기적은 이 커다란 세계적인 이변의 영향을 조금도 받지 아니하고 오히려 폭풍우속에 더욱 높이 우뚝 솟아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이북사회의 위상이다.

김정일령도자님께서는 세계의 모든 예상을 뒤집고 이북을 압살하려는 서방의 고립봉쇄정책에 단호하게 맞서 강경대응으로 조미회담에 성공함으로써 세계정치기상도와 력학관계를 개변시키고 이북을 국제무대에 크게 부상시키셨다.

결국 이북은 세계적인 이변의 영향을 김정일령도자님의 자주정치와 선경지명의 위상으로 이겨내고 령도자님의 존함과 함께 현 세계에 정치대국, 군사강국으로 우뚝 솟아있다 하겠다.

지금 이남의 뜻있는 사람들은 모두 김정일령도자님을 자주시대를 주도하는 영웅으로, 나라의 분단을 극복하고 민족의 통일을 실현하실 령수로 우러르고있다.

우리 천도교인들이 따를 현세의 령도자는 김일성주석님 그대로이신 김정일령도자님이시다.

민족의 장래도 김정일령도자님께 있으며 민족의 통일도 김정일령도자님께 있다.

저는 민족의 령수이신 김정일령도자님을 숭앙하여 이북에 왔음을 자부와 긍지를 가지고 당당히 선언하는 바이다.

본인의 월북동기는 대체로 이상과 같다.

본인은 철저히 민족적량심과 정치적자각에서 월북한것이며 여기에는 그 어떤 개인의 실리나 요구보다 민족적 리익과 념원이 작용한것이다.

본인은 평양에 도착한 이후 월북결행이 백번 옳았다는 확신을 더 굳게 가지면서 비록 늦은감은 있지만 잘 했다는 생각을 하고있다.

저는 이북의 현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서 이북은 애국이고 정의이기때문에 반드시 성공하며 번영한다는 확신에 차있다.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님을 받들어 령도자와 민중이 굳게 뭉쳐있고 이 막강한 단결의 위력으로 기세충천하게 전진하며 필승의 신심과 랑만, 무적의 기백에 넘쳐있는 이북인데 무엇이 두려우며 어느 누가 당해내겠는가.

천도교에서도 《동귀일체》라고 동덕들의 단합을 소중히 여기지만 령도자를 중심으로 한 이북민중의 단결이야말로 그 어떤 핵무기도 소용없는 막강한 위력을 뿜어내고있다.

이북은 이남과는 대조적으로 자립경제도 튼튼히 마련해놓았고 자위국방도 반석으로 다져놓았다.

제가 그동안 여러곳을 돌아보았지만 이북은 건설이 아주 잘되였고 경제토대가 든든하고 기술인력이 충분히 갖추어져있다.

이북은 문화대국이라고 본다.

아름다운 문화선진대국으로서 도덕성이 높은 나라가 바로 여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문화의 경지가 높을뿐아니라 민족의 정통문화를 잘 계승하고 발전시키고 현대화하였다고 느껴진다. 음악이나 무용을 보아도 그렇고 음식문화면에 이르기까지 민족주체성을 살리면서 고도로 현대화되였다.

한마디로 이북은 정치문화, 경제문화, 사회도덕문화가 아주 발전하여 백과로 무르익은 사회이다. 저는 이것이 바로 김정일령도자님의 령도력의 소산이라고 본다.

구쏘련과 동구권의 붕괴라는 불리한 국제적여건과 서방의 고립압살책략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안정되여있는 이북의 현실자체가 김정일령도자님의 령도력의 무비의 위력을 여실히 확증해주고있다.

주체성과 민족성을 근간으로 하는 김정일령도자님의 정치와 그 령도는 오늘도 승리하고있고 래일도 승리할것이다.

본인은 김정일령도자님께서 발표하신 명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조국통일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자》를 여러번 읽고 대단히 감동하였다.

그분께서는 김일성주석님께서 밝히신 조국통일 3대원칙과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 그리고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을 조국통일의 3대헌장으로 규정하시고 그 실현을 위한 방도를 명시하셨다. 조국통일은 령도자님의 명저대로 하면 가까운 장래에 반드시 실현되리라는 확신을 가진다.

본인은 경애하는 김정일령도자님을 받들어나가는 길에 통일조국의 미래가 있다는 신심을 가지고 금후 령도자님의 통일경륜을 실현하는데 전심전력할것임을 약속드린다.

선생은 기자들이 제기한 질문에 대답하였다.

사회주의조국에 영주하기 위해 평양으로 왔는데 그 경위를 말해달라는 로동신문사 기자의 질문에 선생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저는 지난 8월 4일 서울을 떠나 미국 로스앤젤스로 갔다. 거기서 전금관광려행사를 찾아 중국입국사증신청을 하고 비행기편을 알아줄것을 요구했다.

그 다음날 사증이 나오자 저는 려행사에 베이징까지 써비스차원의 안내를 요구했다. 내가 년로하고 중어도 잘 모르고 베이징까지의 비행기편도 처음 리용하는 사정때문이였다.

그러자 려행사 김충자사장은 베이징에 있는 지사일도 있고 또 인도주의적편의를 도모한다는 견지에서 저의 요구에 쾌히 응해나섰다. 그런데 비행기편 좌석들이 계속 만원이여서 11일에야 비행기예약을 하고 베이징에 가게 되였다. 베이징에 도착하여 택시를 타면서 김충자녀사와 갈라진후 저는 혼자서 택시를 타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관 령사부를 찾아갔다.

그래서 평양행 사증신청을 하게 되였고 사증이 나온 후 단독으로 평양을 향해 렬차에 올랐다.

이러한 과정에 나는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또 누구의 개입이나 도움도 없이 단독으로 결행하였음을 분명히 한다.

갑오농민전쟁 100주년을 맞으며 판문점에서 공동으로 거행하기로 한 남북천도교인들의 행사가 무산된데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고싶다는 평양신문사 기자의 질문에 선생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저는 1993년 10월 베이징에서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회 류미영위원장과 만나 합의한것이 있다. 그 합의는 우선 조국통일을 위해 남북천도교가 힘을 합쳐 같이 힘쓰자, 이것이 첫째이고 둘째로는 갑오농민전쟁 100주년기념이 1994년인데 그 기념행사를 남북천도교인들이 판문점에서 공동으로 개최할것과 그 개최준비를 위한 회담도 판문점에서 가지자고 하였다.

그후 저는 남조선에 돌아가서 《통일원》에 남북천도교인들의 판문점회담을 허가해줄것을 제기했다.

그러자 《통일원장관》이 이것은 중대한 문제인데 《관계기관장관》과의 협의를 거쳐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저는 그 다음날 당시 김덕《안기부장》을 찾았다. 그 사람은 외국어대학 교수로 있을적에 친분이 있었기때문에 저의 면접에 응하였다. 그는 판문점회담과 관련한 저의 제기에 긍정적으로 응답했다. 그리고 당시 《외무부장관》한승주도 찾아가 천도교인들의 회담을 제기하자 그도 긍정적으로 대답을 주었다. 민간차원의 교류를 활성화하는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였다.

그런데 최종적으로 《청와대》《외교안보수석비서관》정종욱이 안된다는것이였다. 그 리유인즉 핵회담, 《핵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일체 남북회담을 금지한다는것이였다. 그것이 김영삼의 지시에 의한것이였다. 그래서 그것이 무산되고말았다.

지금 남조선에서 오익제선생의 공화국영주와 관련하여 소동을 일으키면서 선생에게 별의별 감투를 다 씌우며 여야사이에 공방전을 벌리고있는데 그에 대한 견해를 듣고싶다는 민주조선사 기자의 질문에 선생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지금 남조선에서 《신한당국》과 《국민회의》사이에 당략적인 차원에서 공방전이 벌어지고있는것으로 알고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당리당략적인 차원에서, 금년말에 있게 되는 《대통령선거》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상대방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서 공방이 이루어지고있는것이다.

그러나 서로간에 상처만 입힐뿐이지 아무런 도움이 없을것으로 저는 생각한다. 그리고 저의 입북동기나 입북에 대해 《범죄》시하는것은 모두 남조선당국이 당황해서 그러는것으로 생각한다.

앞서 발언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해방직후 천도교청우당 위원장직을 지낸바 있는 김달현선생에게 많은 사랑과 배려를 베푸시였다는것을 수령님의 회고록을 통하여 알았다는데 그에 대한 소감을 말해달라는 통일신보사기자의 질문에 선생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제가 회고록을 통해 알았지만 해방후 1946년인가 김달현위원장이 밤 12시가 넘어서 김일성주석님을 찾아갔다고 한다. 그는 젊은 안해를 맞았는데 보약을 쓰도록 해주실것을 주석님께 요구했다고 한다.

그후 그는 김일성주석님께서 베풀어주신 보약을 쓰고 칠십고령에 생남을 했다고 한다.

저는 그 내용을 보고 크게 감동을 받았다.

천도교청우당 위원장이 김일성주석님의 인도주의적이고 인자하신 배려와 사랑을 받았다니 참으로 감탄을 금할수 없었다.

남조선에서 올해말에 이른바 《대통령선거》라는것을 한다는데 그 전도에 대한 선생의 견해를 알고싶다는 조선중앙통신사 기자의 질문에 선생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대단히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인데 한마디로 말한다면 남조선은 미국의 식민지지배하에 놓여있기때문에 미국의 의도에 의해서 좌우되지 않겠는가 생각한다.

그리고 누가 《대통령》이 되든 무의미하다고 생각된다. 때문에 남조선인민들은 《선거》에 대해서 관심이 높지 못하다.

누가 《당선》되겠는가. 여당인가, 야당인가 예측하기는 어렵다. 또 여당의 공작차원에 의해서 좌우될수 있지만 어쨌든 어느 한 후보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어느 한 후보에게 어부지리를 주는 결과밖에 없을것이라고 생각한다.

남조선 종교인들과 정치인들에게 하고싶은 말이 없는가고 하는 평양시방송위원회 기자의 질문에 선생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남조선에서 80년대에 민주화의 열기가 매우 뜨거웠다. 그러나 그 민주화의 열기도 조국통일을 이루어내지 못했기때문에 그 의미가 없어졌다고 본다.

이제라도 다시 투쟁의 열기가 그 민주화의 열기보다 백배, 천배로 불타오를적에 조국통일은 반드시 실현될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남조선의 종교인들이나 정치인들은 남조선《공안》당국의 기만적인 선전에 더이상 속지 말고 미국, 외세의 굴레를 벗고나서서 자주적인 통일운동에 떨쳐일어나라는것을 호소하고싶다.

그리고 통일의 열기를 민주화의 열기이상으로 불타오르게 해야 한다.

《한총련》과 범민련 탄압중단과 그를 살리기 위해서 또 그를 지지성원함으로써 100만 청년학도들이 들고일어나고 남조선인민들이 들고일어날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호소하고싶다.

선생은 공화국영주소감에 대하여 묻는 금성청년출판사 기자의 질문에 벌써 공화국의 품에 안겨야 했을걸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였다.

선생은 또한 남조선당국이 선생을 북의 이른바 《간첩》으로 보고있는데 그에 대한 립장이 어떤가고 묻는 경제신문사 기자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것은 남조선인민들의 귀를 막고 눈을 가리우기 위한 악선전에 불과하다. 무근거하기때문이다. 나는 그에 대해 얼마든지 밝히고 근거를 대라는 립장이다. 근거없이 저의 월북을 《범죄》시하는 악선전은 용납할수 없다.

그것은 인권을 침해하는것이고 명예를 훼손시키는것이기때문이다. 그것은 마땅히 규탄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생은 공화국북반부에 와서 느낀 소감에 언급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선 첫째로 파란 하늘을 보고 사람이 살만한곳에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서울에서는 대기오염이 심해서 파란 하늘을 도대체 볼수가 없다. 그런데 평양시는 록지보존이 충분히 되여있고 강에는 물고기가 뛰놀고있고 또 숲속에서는 온갖 새들이 지저귀고있고 참으로 사람다운 삶을 누릴수 있는 곳이라는것이다.

다음으로 예술문화의 경지가 매우 높다는것이다.

예술문화에서 민족주체적인 전통성을 잘 살리면서 고도로 현대화되였다는것을 느꼈다.

저는 일찌기 백범 김구선생이 한 말을 기억하고있다. 《나는 아름다운 문화의 나라를 한없이 바란다. 부국강병에 경제대국이 되는것도 마다하지는 않지마는 그보다도 높은 문화의 나라를 한없이 바라고싶다.》는 말을 했는데 바로 그러한 문화의 나라가 지금 공화국에 현실화되여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 천도교에서는 《지상천국》,《지상신선》을 말하고있는데 그 《지상신선》이 사는 《지상천국》이 바로 현실화되여있다는것을 여기에 와서 느꼈다.
 
 
 
 

김정일령도자님은 현세의 한울님이십니다.
 

제가 광복 52돐이 되는 지난 8.15에 월북을 결행하여 이북에 영주한 때로부터 어언 100일이 되여옵니다.

천도교경전에는 《밝음이 있는곳을 알지 못하거든 내 마음을 그 땅에 보내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남에서 항시 마음을 북에 보내여왔지만 고희가 다된 인생말년에야 월북을 결행하였으니 비록 늦은감은 있어도 백번 잘한 일로 자부합니다.

지난 석달남짓한 동안 본인은 보고싶은것을 다 보고 가고싶은곳을 다 가보고 만나보고싶은 사람을 이 가슴으로 다 안아보았습니다.

내 70평생에서 백날이란 실로 일촌광음에 불과한 짧은 순간입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 평양에서 난생처음 경이로운 사변을 목격했으며 단군이래 최대의 경사에 접했습니다. 김정일령도자님을 조선로동당 총비서로 추대한 민족과 만민의 대축제를 말입니다.

경천동지의 그 축제는 령도자님 시대의 무극대도를 예고하는 단군민족의 가장 큰 행운이며 환희라 하겠습니다.

이 사람은 민족사에 대서특기할 추대축제를 보기 위해서 이북에 온것만 같아 더욱 감격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남녀로소모두가 명절일색으로 노래부르고 춤을 추는 경축의 무아경에 빠져 제 일생에 한번도 추어본바 없는 춤까지 어울려 추었습니다.

김정일령도자님의 총비서추대는 그분에 대한 민중의 진심으로 되는 경하와 두터운 신뢰, 절대적인 지지의 뜨거운 분출임을 실감했습니다.

이북에서는 지난 3년간 조선로동당 총비서직이 공석으로 있었지만 사실상 추대행사와 같은 격식이 문제가 아니였습니다.

옛글에 민심은 천심이요, 민심을 얻으면 천하를 얻는다 했습니다.

령도자님께서는 국민의 추앙에 받들려 내실적으로는 이미 총비서, 최고령도자의 지위에 계시였습니다.

이북에서 지난 30여년간 보여오신 령도자님의 출중한 실력과 뛰여난 인품, 고결한 도덕성과 깊은 의리를 볼줄 아는이들에게는 이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귀결임을 쉽게 인식할수 있으리라 봅니다.

김정일령도자님은 그 어떤 외부세력의 지원이나 재력을 발동한 정적과의 선거전이나 그 어떤 경쟁자와의 정쟁속에서 령도자의 지위에 오르신분이 아닙니다. 온 민족이 찬가를 보내고 세인이 격찬해마지 않는 령도자님은 이북 당원대중과 국민의 만장일치로 되는 충의에 따라 의당하게 총비서로 추대되시였습니다.

세계 그 어느 정당사에도 기존관례에도 없는 경이적인 이 추대는 령도자님의 절대적인 권위와 쌓으신 업적과 탁월한 령도력에서 비롯된것입니다.

저는 이남에 있을 때 김정일령도자님의 출중하심을 알고있다고 나름대고 자부했었지만 실은 그 견식이 너무도 단편적이고 피상적인것이였었습니다.

령도자님의 위인상을 새롭게 체득한 이 사람으로서는 령도자님처럼 문무재덕을 겸전하시고 만사에 형통하신 지도사상을 그 어느 위인전에서도 읽지 못했습니다.

김정일령도자님은 김일성주석님을 보필하시여 국사를 주관해오신 30여년의 업적을 통해 뛰여난 정치적수완과 일사불란한 통솔력, 고매한 인품을 보여주시여 주석님 대업을 승계할 유일한 후계분으로 공인된 위인이십니다. 그사이 본인은 참관과 독서 과정에 이북의 정치, 경제, 문화, 군사 분야에서의 괄목할만한 발전에 령도자님의 세련된 자주정치와 은정깊은 덕망이 잇닿아있음을 감동깊이 깨달았습니다.

저는 령도자님의 주체사상저서들을 읽고 몹시 탄복했습니다. 아직은 주체사상의 심원한 리치를 다 알기에는 초학도라 하겠지만 주체사상을 인간, 민족, 인류의 존립부흥의 과학적학설로 명시하신 령도자님은 지혜의 성인이시고 사상의 영걸이시라는것을 알수 있었습니다.

령도자님께서 주체사상을 구현하여 제시하신 《우리 식대로 살아나가자!》라는 구호는 뜻이 깊고 매력있는 구호입니다. 향방이 묘연하고 허구에 찬 이남의 《세계화》구호와는 근본이 상반되는 민족자주의 구호라 하겠습니다.

이북은 이 구호대로 자기의 주견과 판단으로 국책을 정립하고 제힘으로 국정을 운영해나가고있어 《자주의 강국》,《주체의 나라》로 존엄높습니다.

주체성과 민족성이 투철한 령도자님의 정치리념은 참으로 당당하고 떳떳하며 긍지롭습니다.

이것은 확실히 세계정치사에서 전무후무한 특기할 자주정치의 귀감으로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북의 이러한 현실과는 상반되게 이남의 정치판도는 무엇이라 말할 형편이 못된다는 점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을수 없습니다.

지금 《대선》을 앞둔 정당들간의 대결양상만 보아도 민족자주의 리념이나 애국애족의 정책제시는 없고 서로 외세의 눈치나 보고 상전의 힘을 빌어 상대방의 허물을 들추어 흠집내기나 하며 기상천외한 리합집산으로 표밭확보에나 집착하고있습니다.

이 사실만으로도 본인은 이남의 정치인들은 민족자주의 정치리념이 빈곤정도가 아니라 완전부재상태에 있으며 그들의 노는 꼴은 리조말엽 사대부들의 외세의존적작태를 련상케 한다고 말하고싶습니다.

더우기 과거 친미독재로 국민에게 큰 페를 끼치고 원성의 표적으로 되였거나 합당치 못하게 검은돈을 챙기고 국민적인 빈축을 산 인물들이 권좌를 바라보며 설치는 행태에 실망감을 금할길 없습니다.

현실은 이북의 애국적인 자주정치상과 이남의 매국적인 사대정치상이 너무도 판이한 대조를 이루고있습니다.

세계유일의 인덕정치가이신 령도자님께서 정치를 펴시는 이북에서는 가장 성공적인 정치체제에 가장 활력있는 정치가 시행되고있습니다.

령도자님께서는 치자본위의 상하복종관계가 아니라 민중을 평생 동지의 사랑과 믿음의 관계로 대하시며 국정을 주도하시여 이북에는 민중중시, 인간사랑이 온 사회를 풍미하고있습니다. 령도자님의 품에 안긴 이 사람도 지금 시간마다, 날마다 하해같은 은총을 받아안으며 고마운 그 사랑에 감격하여 눈시울을 적시고있습니다.

령도자님께서는 이북국민들을 리기와 탐욕에 때묻지 않고 사치와 방탕에서 해탈된 선남선녀들로 키우시였습니다.

모두들 자애와 상부상조의 미풍속에 화목하게 사는 한지붕아래 한식솔로 묶어세우시였습니다.

자동차를 만들고 첨단가전제품을 만드는 일은 쉽게 모방할수 있어도 인간의 풍모는 쉬이 모방할수도 만들어낼수도 없습니다. 지구촌 각곳에서 《인간위기》의 아우성소리가 높아가고있지만 이북에서는 인간존중의 노래가 울려나오고있으니 이북은 인간사랑의 오아시스라 하겠습니다.

《인내천》을 종지로 하는 천도교에 입문하여 평생을 살아오는 이 사람은 인간사랑을 사람의 근본미덕으로 믿어오고있습니다.

그러한 미덕이 가장 높은 경지에서 구현된 지상천국을 본인은 비로소 이북에서 보고있습니다. 그토록 기원하던 한울사람의 참모습을 이북국민들에게서 처음으로 보게 된것입니다.

사람들이 순결하고 도덕이 고결하니 이북은 산천도 수려하고 정갈합니다. 대기오염이 심하여 맑은 날에도 파란 하늘을 볼수 없는 서울에서 살다가 산도 물도 공기도 맑은 이북에 오니 별천지에 온것만 같습니다.

사람들의 정신도덕적풍모와 자연의 풍토를 깨끗하게 정화하여 정토극락으로 가꾼 이북현실은 김정일령도자님의 인덕과 령도가 이루어낸 신비의 현실인줄로 압니다.

본인은 령도자님의 극진한 관심속에 개건확장되고 성역화된 단군릉에서 개천절날 이북의 동덕들과 함께 단군제를 지내며 민족정통성을 확립해주신 절세의 애국자 김정일령도자님께 삼가 감사를 드리였습니다.

혁명렬사릉과 애국렬사릉을 돌아보고 저는 령도자님의 하늘같은 도량과 포옹력에 거듭 감복했습니다.

대성산 혁명렬사릉에는 천도교 박인진도정의 반신상이 두루마기를 입은 모습으로 조선인민혁명군 군복을 입은 혁명렬사들과 나란히 있었습니다.

령도자님 치하에서 정치와 주의주장, 신앙을 뒤로 미루고 서로들 뼈와 살을 맞대고 후손들을 민족단합에로 부르는것 같아 감회는 각별하였습니다.

신미리 애국렬사릉에는 천도교출신 인사들인 최동오, 최덕신, 류동열, 강장수, 김정주 선생들과 민족주의를 하던 량세봉, 오동진, 김규식, 조소앙 선생 등 많은 선배들이 령도자님의 덕정속에 영생하고있었습니다. 이런 관용과 친화력은 어느 나라에서도 있어본적이 없습니다.

이남의 동작동묘지에는 과거의 친일파, 친미파, 매국자들이 묻혀있습니다. 이남에서는 그런곳에 《대통령》과 관료들이 찾아가 참배를 하고있으니 세상이 잘될리 만무합니다.

김정일령도자님의 슬하에서는 온 민족이 사상과 정견, 신앙을 초월하여 화해하고 단합할수 있다는것을 저는 거듭 확신해마지 않고있습니다.

령도자님께서는 내정에서 탁월한 실력을 과시하시고 특출한 공적을 쌓으시였을뿐아니라 외교에서도 세계정치의 관건을 틀어잡으시고 강의한 자주정신, 원숙한 수완, 무비의 담력, 령활한 지략을 보여주시였습니다.

서방과 이남의 보도매체들이 굉장히 떠들던 미국과의 첨예한 핵대결과정을 능숙하게 령도하시여 조미기본합의문을 발표하도록 하신것도, 조일관계에서 주체적대를 세워 공동선언이나 합의서를 내게 하신것들은 모두 령도자님의 특출한 외교적수완을 만방에 과시한 하나의 사례라 하겠습니다.

내정과 외교에서 보여준 령도자님의 령도실력은 일조일석에 이루어진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30여년의 력정속에서 련마되고 공고화된 특출한 령도력입니다.

령도자님의 필승의 령도력과 불멸의 업적, 고결한 인덕정치가 이북국민의 심혼을 틀어잡고 매혹시켜 그분을 민족의 최고령수로 하늘처럼 믿고 따르며 숭앙하는것이라고 본인은 확신합니다.

지금 이북은 《고난의 행군》을 하고있습니다. 김일성주석님께서는 해방전 항일유격대를 압살하려는 일본군의 이중삼중의 포위환을 헤쳐나가야 했던 엄혹한 시련의 시기에 《고난의 행군》으로 난국을 타개하시였습니다.

기존의 사회주의경제권이 해체되고 서방세력의 압살위협이 계속되는데다가 련이은 전국적범위에서의 자연재해까지 겹쳐 이북이 겪고있는 어려움은 항일전의 그때를 방불케 하는것이여서 오늘 《고난의 행군》이라 이르는것입니다.

이남에서 이북민중에 대한 험담만 듣고 월북한 본인은 평양역에 내리면서 이북땅에서 웃음이나 노래와 같은 정서는 찾아볼수 없으리라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국민모두가 락관과 신심에 넘쳐 생활을 해나가고있는 이북현실을 목격하면서 저는 자신의 편견과 몰리해를 타매하였습니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활기에 차 걸어가고 휴일이나 명일에는 야유회와 체육오락, 무도회로 흥성거리며 텔레비죤에서는 령도자님에 대한 송가와 결사옹위가가 울려나오는 이북입니다.

누구나 노래를 좋아하고 어디 가나 노래소리가 울리며 모두가 명창으로 노래를 잘 부르는 세상입니다.

노래는 노래마다 령도자님을 흠모하고 따르며 내 나라, 내 조국을 사랑하는 노래였습니다.

예로부터 노래는 참말이라 일러옵니다.

한두사람도 아니고 모든 사람이 다 부르는 이북의 노래에는 참뜻이 있기마련입니다. 때문에 이러한 노래의 밝은 세상에서 노래와 함께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패하지 않으며 이기기마련입니다.

저는 이북국민의 심리를 리해하려는 뜻에서 참관지마다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대화자들은 우리에게는 물론 부족한것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난관앞에서 꺾이거나 주저앉지 않는다, 래일에 대한 희망과 락관을 가지고 꿋꿋이 살아가고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만 믿고 따르면 오늘의 《고난의 행군》을 승리적으로 결속하고 앞으로 잘살게 될것이라고 신심에 차서 이야기하였습니다.

진정 위대한 령도자님께서 명언하신것처럼 래일을 위한 오늘에 사는 희망넘친 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들의 말은 이 사람에게도 큰 힘을 주었습니다.

중중첩첩한 시련과 난관이 앞을 막는다 해도 령도자님께서 계시여 대성의 래일이 있다는 신념으로 부흥의 새 전기를 열어나간다는것이 이북사회의 팽배한 기상입니다.

김정일령도자님께서 계시면 만난을 극복하고 번영할수 있다는 투철한 믿음은 이북고유의 특질이라고 봅니다.

당도 령도자님의 당, 군대도 령도자님의 군대, 국민도 령도자님의 국민으로 령도자님과 민중이 동귀일체가 되여있는것이 이북의 참모습입니다.

이 참모습이 그렇듯 령도자님을 조선로동당 총비서로 추대하는 민족사적인 대사변을 안아올린것입니다.

현세기 으뜸가는 정치원로이신 령도자님은 진정 민족의 령수이십니다.

제가 이남에 있을 때 당국자들은 이북에 대한 무수한 억측과 랑설을 퍼뜨렸습니다.

국민의 절대적인 숭배와 신뢰 속에 환호의 대축제로 장식된 령도자님의 추대는 그 모든 억측과 랑설을 일격에 부정해버렸다고 봅니다.

이북은 령도자님의 추대축제를 통해 어떤 어려움도 슬기롭게 이겨내고 새로이 도약할 강성한 실체로 세계를 경탄케 했습니다.

미국방성의 안보담당관계자가 미국의 유일한 적수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지구촌 동방의 북조선이라고 한것은 공화국을 강성대국으로 인정한데서 비롯된 평가라 하겠습니다.

우리 민족이 김일성주석님에 이어 김정일령도자님을 모신것은 천운의 행이며 복입니다. 7천만 민족을 인도하실분은 김정일령도자님뿐이십니다.

이남에는 국민이 신뢰할만한 인물이란 없습니다. 이남의 력대 《대통령》들은 모두가 매국자들이고 죄인들입니다. 김영삼도 다를바 없습니다. 오는 12월에 《대선》이 있다고 해도 이남의 정치풍토에서는 국민을 위하고 민족을 위하는 집권자가 나올수 없습니다.

이것이 제가 보는 이남의 불행이고 재난이라 하겠습니다.

민족의 장래는 오로지 김정일령도자님께 달려있습니다. 이남에서도 뜻있는 인사들속에서 령도자님에 대한 숭배심이 나날이 배가되는줄로 압니다. 전년말에 이 사람이 모 대학교수의 회갑연에 갔었는데 동석한이들은 시국을 론하면서 령도자님을 《넘버 완》의 위인으로 추앙했었습니다. 이남의 민심은 령도자님께로 모아지고있습니다. 아마 《국보법》이 아니면 모두들 만세환호성으로 온 천지를 진감시키며 앞을 다투어 경모하며 따를것입니다.

남북 7천만 겨레는 김정일령도자님을 민족의 수위에 모시고 대단합하여 그분의 뜻을 따르면 조국통일도 강성대국도 무궁복락도 이루어낼수 있습니다.

령도자님께서는 금년 광복절 52주기에 제하여 발표하신 명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조국통일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자》에서 민족통일과 민족중흥의 정책구상을 제시하시였습니다.

조국통일은 큰 마음이고 큰 집입니다.

령도자님의 웅대한 통일대강과 숭고한 민족애, 대해같은 도량이 결국 통일을 기필코 이루어내게 할것이라고 본인은 믿습니다.

덕암 최덕신선배교령이 김일성주석님을 한울님으로 칭송하였는데 지당한 례찬이라 생각합니다. 한울님은 천도교에서 최상최고의 숭앙의 표시입니다.

이 사람은 김정일령도자님을 현존하시여 민족을 령도하시는 한울님으로 높이 숭앙해마지 않습니다. 참으로 김정일령도자님은 단군민족을 덕화의 너그러운 품에 안아 은총을 베푸시며 통일조국의 존엄과 위상을 만방에 빛내여가실 현세의 한울님이십니다.

김정일령도자님을 한울님으로 높이 모신 단군민족의 미래는 창창합니다.

인생황혼길에 이른 본인에게는 어떻게 사는가 하는것보다 어떻게 생을 마무리하는가 하는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고있습니다.

령도자님의 품에 안겨 새 인간으로 환생한 저는 이제 지극한 충의심으로 김정일령도자님을 한울님으로 받들어모시고 일각을 천금같이 여기여 생이 진할 때까지 통일성업에 전심전력할 결심입니다.

여기에 령도자님의 보필지신이 되고저 하는 이 사람으로서 민족을 위해 할수 있는 최선의 소임이 있는줄로 압니다.

현세의 한울님이신 김정일령도자님을 숭앙하는것은 민족의 통일번영을 기원하는 이 나라 겨레모두의 본분이고 대의입니다.

이 숭고한 민족적대의명분을 지니고 해내외의 온 겨레는 정파와 신앙, 소속을 초극하여 김정일령도자님을 민족의 최고수위에 높이 모시고 대망의 21세기를 향해 일로매진합시다.

이것이 민족사의 가장 영광된 추대축제에 동참한 이 나라 한 천도교인의 절절한 애국의 호소입니다.
 
 

주체86년 11월 19일
 
평양에서 오익제
 
 
 
 
조국남부 국민들에게 드리는 글
 

국민여러분,

이 사람은 조국남부에서 여러분과 수난을 함께 해온 이전 천도교 교령이며 《국민회의》상임고문인 오익제입니다.

본인은 비록 여러분과 헤여져 조국북부에 영주하였지만 애국의 뜻은 지금도 여러분과 같이하고있습니다.

지난 세월 독재와 불의에 의분을 같이하고 예속과 분단의 아픔을 같이 나누어온 여러분들을 본인은 잊을수 없습니다.

지금 《15대 대선》을 앞둔 조국남부의 정국은 매우 복잡다단한줄로 압니다.

혼탁된 이남정국을 두고 본인은 무거운 마음과 깊은 우려를 금할수 없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싶이 남에서는 지금까지 14번째의 《대선》이 있었지만 《15대 대선》을 앞둔 오늘처럼 정계가 복잡한적은 일찌기 없었습니다.

후보로 나선 사람들이 지조도 없이 어제의 정적과 야합하고 오랜 지우를 배척하는가 하면 계파가 분산되고 정당이 탈바꿈하는 괴이한 리합집산과 필사의 권력각투가 정가를 어지럽히고있습니다.

민족과 국민의 리해관계는 안중에 없이 저마다 대권을 위해 자파의 표밭 확보에만 골몰하는 정치인들이 이제 대권을 잡는다고 한들 어떻게 민족과 국민을 위한 바른 정치를 할수 있겠습니까.

조국남부의 현 정치행태가 오늘과 같은 말세풍조에 빠지게 된것은 옳바른 정치철학이나 정치리념이 없는데 기인하고있습니다.

오늘 조국북부가 동유럽사회주의권이 해체되고 서방세력의 《고사작전》이 증폭되는데다 몇해째 자연재해까지 계속되는 전대미문의 역경속에서도 사소한 파동이나 내분도 없이 고도의 정치적안정과 다각적발전을 이루어나가고있는것은 옳바른 정치철학, 정치리념이 있기때문이라고 인정합니다.

조국북부에서는 김정일령도자님의 탁월한 정치철학과 정치리념에 기반하여 주체성과 민족성이 정치, 경제, 군사, 문화, 외교 등 모든 분야에 생명같이 살아있습니다.

조국남부는 이와는 정반대로 외세가 판을 치고있다는것이 본인이 보는 시각이고 견해입니다.

오늘 조국남부는 산천도 조상대대의 그 산천이고 사람도 단군의 후손 그대로이지만 주인은 우리 겨레가 아닌 이방인들입니다. 정치도 외세에 의해 조종되고 경제도 외자에 의해 운영되며 민족문화도 외래풍에 의해 사멸되고있습니다.

더우기 군사에 이르러서는 차마 얼굴들고 말하기조차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오늘 지구촌에는 나라안의 일부 지역을 사용료를 받고 외국군사기지로 빌려주는 나라는 있어도 이남에서와 같이 유지비를 바치면서까지 전지역을 통채로 외국의 군사기지로 내맡긴 나라는 없습니다.

나라안에 외국군대가 주둔해있으면 내정에 간섭하고 자주권을 침해당하게 된다는것은 상식이전의 문제입니다.

조국북부에는 단 한명의 외국군대나 단 하나의 외국군사기지도 없습니다.

그에 반해 조국남부에는 수만명의 미군이 50여년간이나 상주해 전국토를 기지화, 병영화하고있습니다. 외국군대에 대한 북과 남의 이런 상반되는 태도는 곧 자주와 사대, 독립과 예속의 차이에서 오는것입니다. 조국북부는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추호도 용납하지 않고 자주성의 본보기로 공인되고있는 반면에 조국남부는 외세의 보호가 없이는 단 하루도 살아가지 못하는 식민지표본으로 되고있습니다. 조국남부에 《국회》도 있고 《행정부》도 있지만 내실적으로는 그것들이 다 외세의 조종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에 불과한것입니다.

외세가 쌀시장을 개방하라면 농민들의 피해는 아랑곳하지 않고 문을 열어주며 무기를 사가라면 페기처리분이건 뭐건 무작정 사들이는 《정권》, 민족의 모든것을 외세의 구미에 맞게 료리하고 외세의 대리역을 맡아하는 《정권》이 다름아닌 이남《정권》입니다.

더구나 미군의 주둔이 통일후에도 허용돼야 한다는 친미사대적인 주장을 공공연히 외우는 후보들까지 있는 현실은 울분마저 금할수 없게 합니다.

이런 후보들이 이제 대권을 차지한다면 조국남부에서 외세의존의 사대정치가 더욱 활개치게 되리라는것은 명약관화한 일입니다.

참으로 지금이야말로 이남에서 한세기전 우리 선렬들이 의기높이 웨쳤던 《척양척왜》,《보국안민》의 구호를 다시 추켜들어야 할 때이라고 봅니다.

자주정치가 없는 조국남부에서는 민주정치도 없는 실정입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싶이 조국남부에서는 광복후 줄곧 독재정치가 이어져왔습니다. 독재정치는 사대정치와 쌍둥이입니다. 독재정치는 외세에는 무제한한 전횡과 자유를 주지만 국민에게는 횡포한 폭압을 가합니다. 외세의 식민지통치를 폭력으로 지탱하고저 총칼에 의거하는것이 곧 독재정치인것입니다.

이남에서 독재정치의 두 기둥으로 되고있는것은 《국보법》과 《안기부》입니다. 《국보법》은 분단을 빌미로 국민의 인권과 민주민권을 결박하고 통일을 방해하는 악법중의 악법이고 《안기부》는 폭압도구의 중추입니다. 《국보법》과 《안기부》과 존속되는 한 남에서 민주정치도 통일론의의 자유도 보장될수 없고 민족적단합도 이루어낼수 없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조국남부의 정치인들은 군부독재의 수괴들인 전두환, 로태우의 사면은 거론하면서도 국민의 원성의 표적인 《국보법》의 페기나 《안기부》의 해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권좌에 오르게 되면 수십년간 지속되여온 독재정치가 더욱 기승을 부리며 국민의 손발을 결박하게 되리라는것은 분명합니다.

오늘 조국남부의 경제가 1,300억딸라이상의 외채중압에 눌리여 총체적붕괴상태에 처하게 된 까닭도 독재정치에 그 원인이 있습니다.

독재는 부패를 낳습니다. 외국독점자본에 의존하는 예속경제도 독재정치를 업고 이식되였고 재벌관료들의 부정축재도 독재정치의 그늘밑에서 성행해왔습니다.

현 경제위기는 몇몇 경제각료나 갱질하고 대안도 없는 《국민담화》나 발표하는 식으로는 절대로 수습할수 없습니다. 더우기 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을 받는것으로 위기를 모면할수 있는것처럼 과대홍보하고있는것은 가소로운 일입니다. 그것이 이남경제를 외세에 더 철저히 예속시켜 금융식민지의 멍에까지 덧씌우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고 세인이 한결같이 개탄하고있는것은 결코 무리가 아닌줄 압니다.

자주, 민주의 불모지로 된 조국남부에서는 통일론의나 통일운동도 자유롭게 할수 없는 상황입니다.

조국통일은 민족의 비원이며 지상과제입니다. 조국통일에 우리 민족의 참삶이 있고 참부흥이 있습니다.

본인은 조국통일을 위해서라면 한몸을 기꺼이 불사를 각오가 되여있음을 어느때도 숨기지 않았습니다.

본인이 남쪽에 있을 때 통일을 주장하는 단체나 인사를 무작정 찾아다니며 통일을 론한것도 민족구성원으로서의 본분이 바로 통일에 있다고 여겼기때문이였습니다.

천도교 교령 재직중이던 1993년 10월 베이징에서 북의 천도교관계자들과 만나 동학혁명 100주년을 남북이 공동으로 기념하기로 합의한것 역시 민족단합으로 조국통일에 기여하려는 뜻에서였습니다. 그러나 《문민정권》의 반대로 그 훌륭한 합의는 무산되고말았습니다.

여기에서 본인은 반통일적인 이남《정권》과는 통일론의가 무의미하다는것을 확인하고 1994년 1월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민족의 열망인 통일을 이루어내지 못하는 민주주의는 가짜민주주의다. 민족이 있고서야 국가가 있다. 통일노력을 공권력으로 제재하는것은 부당하다. 김구선생도 문익환목사도 그래서 정당했다.》고 제언한바 있습니다.

사실 본인의 월북은 통일을 위한 결행이였습니다.

이에 관해서는 《국민회의》측 인사들이 잘 알것입니다. 특히 《국민회의》후보와는 월북직전까지 통일문제를 자주 상론하여왔습니다. 그는 자기의 3단계련방제안이 북의 련방제통일방안과 일부 상통한것으로 생각하고있었습니다.

본인이 월북결행에 이런 사정이 힘으로 작용하였던 점을 지금도 고맙게 여기고있습니다.

이 사람은 북에 와서 민중의 통일기운이 열렬하고 당국의 통일의지가 확고한데 감동되고있습니다. 이북에서 지금 본인을 따뜻이 환대해주는것도 남에서 통일에 관심한 그 뜻을 소중하게 여겨주는데서 비롯된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단민족의 일원이라면 누구든지 조국통일에 살아야 합니다. 분단의 비극에 가슴을 치며 통일운동에 동참해나서는 사람만이 이 나라의 참된 애국자이고 이 민족의 참된 정치인이라 할것입니다.

분단상황을 반세기이상 지속시켜온 우리 기성세대들이 민족앞에 지은 죄책은 실로 막중합니다.

그런데도 남의 《대선》정국을 주시해보면 통일문제는 사실상 공백상태라 하겠습니다.

후보단일화와 정당통합, 신당창당에는 집착하면서도 온 민족의 사활과 직결된 통일문제에는 일가견을 분명하게 제시하는 사람이 없는 실정입니다.

통일이야 어찌되던 오직 권좌만 바라보는 사람들에게서 어찌 통일의지나 통일경륜을 기대할수 있겠습니까.

바야흐로 《대선》은 다가오고있으나 조국남부의 현실은 너무도 암담한 상황에 있습니다.

본인은 이제 《15대 대선》이 과거의 잘못된 《대선》의 되풀이로 되지 않을가 하는 걱정으로 이 글을 마감지으려 합니다.

본인으로서는 이번 《15대 대선》이 국민 여러분의 용기있는 결단으로 김영삼씨를 청와대에 입주시킨 《14대 대선》의 전철을 다시 밟지 말았으면 하는것이 뜻이고 당부입니다.

김영삼씨는 지나간 《14대 대선》때 사상최고로 기록된 1,200여가지의 《공약》을 람발했고 《정권》자체에도 《문민》의 두루마기를 입혀 《문민정권》으로 장식했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가 한 민족우위의 공약은 외세의존의 망국적인 국제공조로 탈바꿈하고 민주화의 공약은 지속적인 공안정국의 파쑈독재로 이어졌으며 개혁, 개방을 통한 《신한국창조》는 총체적인 경제파국으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김영삼씨는 사실 야당에 몸을 담은채로 민주화에 진력하였더라면 후세에 민주인사로나 기억될것을 공연히 대권야망에 빠져 오르지 못할 나무에 올랐다가 결국은 그 나무에서 떨어져 지옥행을 하는 신세가 되고말았습니다.

지금도 조국 남부에서는 김영삼씨와 같이 거리유세와 텔레비죤토론회에서 《대선》바람을 일쿠며 화려한 《공약》이나 외우는 사람들이 있는 현실에 대오각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본인은 국민여러분이 이러한 상황에 깊이 주목하고 자주, 민주, 통일의 바른길을 걸을것을 진심으로 기대해 마지 않습니다.

이남에서 자주적인 민주정권의 창출만이 국민여러분의 현명한 선택으로 된다는것을 꼭 명심하여줄것을 부탁드립니다.

본인은 국민여러분이 오늘의 책임적인 시각에 부가된 소명을 반드시 훌륭히 다하리라고 믿습니다.
 
 

주체86년 12월 10일
 
평양에서 오익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