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길에서는 살아도 죽어도 영광이다

주체 94년 3월 2일

 

김정일영도자님의 이 명언은 사람에게 있어서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혁명의 길에 일생을 바치는 것보다 더 영광된 삶은 없다는 깊은 뜻을 담고 있습니다. 사람은 고립적으로가 아니라 사회와 집단, 민족의 구성원으로 살아나가는 만큼 생활의 가치는 그가 민족과 민중을 위해 얼마나 이바지하는가에 따라서 형성됩니다.

사람의 생활은 민족과 민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해 더 많이 기여할수록 그 만큼 값있는 생활로 되고, 이와 같은 값높은 생활을 하는 사람만이 삶의 참된 보람을 만끽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혁명은 근로민중의 자주성을 옹호하고 실현하기 위한 투쟁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근로민중이 자기의 자주적 지향과 요구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 자연과 사회의 온갖 구속과 예속에서 자기 자신을 해방하기 위한 성스러운 투쟁이 바로 혁명인 것입니다.

그런데 혁명은 결코 탄탄대로가 아닌 것입니다. 낡은 것을 뒤집어엎고 새것을 창조하기 위한 혁명투쟁은 매우 거창하고 복잡성을 띠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탓에 우여곡절도 있을 수 있고 가슴 아픈 희생도 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이 자주성을 위한 가장 성스러운 길이기에 그 길에서 죽어도 여한이 없는 영생의 길로 되는 것입니다. 원래 혁명가는 그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신념에 따라서 변혁운동의 길에 나선 사람들인 만큼 민중의 자주성을 위한 자주위업에 생을 바친다는 기쁨으로 해서 투쟁 속에서 생활의 만족을 느끼는 것이고 그 길에서 참 삶의 행복을 찾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외세인 미국의 식민지 지배의 족쇄에 얽매여 민족의 자주권이 여지없이 유린당하고 있고 문민파쇼독재의 억압하에 민주민권이 무참하게 짓밟히고 있으며 또 여기에 민족분단으로 해서 동족이 남과 북으로 갈라져 사는 비극이 가셔지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민족이 겪고 있는 이런 현실을 외면한 채 자기 일신의 편안한 구석만을 찾고 호화로운 생활만을 추구한다면 이것은 민족 앞에 떳떳할 수 없으며 참인간의 삶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기에 오늘 이 땅의 열혈청년들과 애국민중은 미국의 지배와 억압 밑에 굴욕을 감수하며 사느니보다 자주와 민주, 통일을 위해 싸우다 죽는 것이 몇 배나 더 영광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한 투쟁에 분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혁명의 길에서 운명이 경각에 이른 최후 순간에도 혁명의 지조를 지켜 우리 민중의 기억 속에 영생하는 김종태, 최영도를 비롯한 혁명가들과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해 청춘도 생명도 서슴없이 바친 수많은 열혈청년학도들은 오늘도 우리의 애국민중들과 함께 영광으로 빛나는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혁명의 길에서는 살아도 죽어도 영광이다≫라고 하신 위대한 김정일영도자님의 명언은 한국변혁운동의 전위투사들과 민중에게 혁명가의 삶의 참 뜻을 밝혀주고 그 길로 우리모두를 힘있게 이끌어 주는 고무적 힘으로 되고 있습니다. 우리민중은 김정일영도자님의 이 명언을 심장깊이 새기고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한 투쟁에 동참해서 한국변혁운동의 승리를 위한 길에서 영광된 삶을 향유해야 할 것입니다.

 

 

 현실은 훌륭한 학교이며 인민대중은 선생님이다.

 

위대한 김정일영도자님의 이 명언에는 변혁투쟁을 지도하는 일꾼들은 현실에 깊이 침투해서 민중을 스승으로 섬기면서 그들에 의거해서 사업해야 한다는 심오한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현실은 사회적 운동이 진행되는 마당이며 근로민중은 누구보다도 현실을 잘 알고 슬기로운 지혜와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가장 힘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변혁투쟁을 성공적으로 전진시켜 나가자면은 일꾼들이 민중이 활동하는 현실에 내려가 민중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창조적 힘과 슬기로운 지혜에 의거해서 모든 활동을 전개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현실을 외면하고 민중 위에 군림해서 그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주관주의에 빠져 자신의 의사를 마구 내려먹인다면은 변혁투쟁은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없음은 물론 변혁투쟁 자체를 파국에로 몰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흘러간 역사의 교훈이고 준엄한 현 시국이 인류 앞에 보여주는 엄연한 현실입니다. 때문에 위대한 김정일영도자님께서는 일찍이 근로민중을 위대한 스승으로 숭배하신다고, 근로민중의 사랑을 받는 아들이 되기 위해 한평생 머리를 숙이고 민중으로부터 배울 결심이라고 하시면서 이 숭고한 뜻을 자신의 좌우명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위대한 영도자님께서 바로 이러한 정치철학을 지니셨기에 늘 근로민중이 있는 현실에 내려가시어 민심을 헤아리시고 민중을 위한 참다운 시책을 펴 나가셨던 것입니다.

1964년말 몹시 추운 어느날에 있은 일입니다. 평양시 교통문제에 깊이 관심 하시던 위대한 영도자님께서는 한 일군을 부르시어 시민들의 교통문제를 원만히 풀어 줄 방도가 없는가고 물으셨습니다. 그런데 대책을 연구해서 한주일 내에 제기하겠다는 그 일군의 얘기를 들으시자 그분께서는 한시가 새로운 문제인데 미룰 수 없다고 하시면서 저녁에 자신과 함께 조언을 받으러 선생님들을 찾아가자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선생님이라는 말씀에 그 일군은 그분께서 여객운송문제를 전공하는 학교의 선생님을 부르시어 방도를 의논하시려는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여객운송을 담당한 노동자들에게로 가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 날 김정일영도자님께서는 그 군꾼을 데리고 평양 대성지구의 한 버스 주차장으로 가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가시는 도중에 버스 안에서 승객들이 주고받는 말도 헤아려 보시고 주차장에 이르러서는 버스 운전기사들과 수리공들 속에서 오가는 진심에 넘치는 얘기도 들으시며 교통문제를 보다 원만히 풀 수 있는 방도를 찾으셨던 것입니다.

밤늦게 집무실에 돌아오신 그분께서는 다음날 새벽녘까지 여객운송문제를 풀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안을 작성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꾼을 부르시어 스승의 생각을 그대로 글필에 옮겼을 따름이라고 말씀하시며 그것을 일군에게 보여주셨다고 합니다. '스승이라?'일꾼이 영문을 몰라 하자 그분께서는 어젯밤에 만났던 분들이 바로 자신께서 가장 숭배하는 스승이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일군은 그제야 그분께서 조언을 받겠다고 하시던 선생님들이 머리흰 노교수나 학자가 아니라 어디서나 흔히 만날 수 있는 소박하고 현명한 근로자들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한없는 격정에 휩싸였다고 합니다. 정말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한평생을 민중행 열차를 타시고 민중을 위해 헌신하신 김일성주석님의 풍모를 그대로 이어받으신 김정일영도자님이신데요.

우리 한민전의 모든 성원들과 한국 변혁운동의 전위투사들은 현실은 훌륭한 학교이며 인민대중은 선생이라고 하신 위대한 영도자님의 명언을 가슴속 깊이 새기고 자주, 민주, 통일의 험로역경을 과감히 헤쳐 나감으로써 그 성공을 앞당겨 점령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