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회고록으로 보는 세상이야기』 중에서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망국론 5대리유 일깨운 회고록

  

왜 이렇게도 그리스도교와 《탈북자》들은 궁합이 잘 맞을가? 넘어왔다 하면 《탈북자》들은 그리스도교인이 되고 심지어는 목사까지 된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상투적구호가 하나 있다. 《남은 잘살고 북은 굶어죽는다.》라는. 《탈북》하여 그리스도교인이 되는것도 있지만 오늘 남쪽의 교회는 선순환고리를 만들어 북주민들의 《탈북》을 알선, 유도하고있다.

이렇게 량자간의 선순환고리 혹은 궁합에는 그럴만 한 교리적리유도 있을법 하다. 즉 북을 생지옥같은 죽음의 세계 그리고 그리스도교는 그 지옥에서 생명을 구하는 구원자, 이 관계는 마치 세상과 예수의 관계와도 같다는것이다. 이 정도면 그리스도교인들은 순교를 각오할만 하다.

지난번 아프가니스탄인질사태에서 샘물교회가 보여준 태도를 보면 이런 도식은 결코 무리한 발상이 아니다. 살아돌아온 인질교인들이 지금 해외순방을 하면서 자기들의 신앙무용담을 간증하며 돌아다닌다고 한다. 왜 이들이 국내에서는 떳떳하게 활동을 못하면서 숨어서 이럴가.

그러나 이런 《탈북자》들과 그리스도교사이의 궁합의 엉터리론리를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 만약 그렇다면 1970년대이전까진 북이 더 잘살았는데 그때는 하나님이 북을 축복했는가. 그리고 1998 IMF는 장로《대통령》이 초래했는데 그때는 하나님이 어디 있었는가? 이런 치졸한 론리를 구사하기때문에 리처드 도킨스는 그리스도교의 신을 《조작된 신》이라고 한것이 아닐가.

 

《한반도》에선 문명사의 시계바늘이 반대로 돌고있는가?

 

막상 그리스도교가 발생한 서구세계 방방곡곡을 돌아다녀보라. 도시의 가장 중심가 명당자리에는 교회가 들어서있다. 얼마나 큰지 한번 들어가 그안에서 길을 잃을 지경이다. 그리고 주일 낮례배시간에 가보면 수천명 좌석에 많아야 3040, 그것도 뒤에서 보면 백사장같다. 그래서 목사의 역할은 주로 병원심방 혹은 장례식 치러주는것이 주된 업무이다.

이렇게 지금 서양에서는 그리스도교가 썰물같이 퇴조하고있다. 그러나 같은 자리에 밀물같이 밀려들어오는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한국》이민교회이다. 어떤 곳에는 한 장소에 교회가 두개 동시에 례배보는 곳도 있다. 물론 꼴불견일것은 불문가지이다. 한주일 한번 례배보는데 한달 월세는 2천불(2백만원정도)이다.

다른 한편 《한국》안을 보자. 《고소령》가운데 하나인 《소망교회》는 오늘날 《한국》그리스도교의 상징언어가 되였다. 대형교회에는 수천명 앉는 좌석에 주일례배의 경우는 적어 3부례배이다. 거두는 헌금은 평균 한주 2억이다.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해 지난주 광화문에 있는 한 대형교회에서 주보를 입수하여 조사해보았다. 경제론리로는 리해할수 없다. 그리고는 세금 한푼 안내는 곳이 교회이고보면 목사직업은 이제 선망 1호가 되였다. 지금 《한국》교회는 리명박《대통령》따라하기 새벽기도가 류행이라고 한다. 이 장로가 성공한 비결은 새벽기도때문이라고 그런 교회에는 새벽도 아닌 밤중 2시에 가도 자리잡기 힘들 정도이다.

그 리유야 어떻든 지금 종교에 있어서 《한국》만은 지구촌의 시계바늘의 반대방향으로 돌고있는것이 분명하다. 그리스도교는 2005년 《통계청자료》에 따르면 개신교와 카톨릭을 합쳐 국내에 1천 400만명이 넘는 신자가 있다. 이처럼 다수의 신자를 가진 《한국》교회는 전세계적으로 교회가 사라지는것을 두고 종말이 가까워온 징조이고 이제 희망은 《한국》밖에 없고 《한국》민은 하나님의 선민이며 《한국》은 《하나님의 새 이스라엘(God's New Israel)》이라 설교한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마귀의 시험에 들지 말라고 교인들을 교육하고있다.

그러나 정말 그럴가. 아니라고 본다. 지구촌의 시계가 변하고있고 종교도 낡은것이 물러가고 새것이 오는것을 기다리는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는》 시대인것을 모르는 착각증상이 지금 《한국》의 현주소가 아닐가.

 

반그련(www.antichrist.or.kr)을 아십니까

 

며칠전에 어떤 목사가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한국》교회를 고발한다는 책을 썼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잘못 건드렸다가 맞아죽을수 있는 대상은 조직깡패이상으로 무서운것이 《한국》교회이다. 나 역시 1985년 《한국》굴지의 교단 신학교에 교수로 들어갔다가 여러가지 리유가운데 하나가 그리스도교와 그 신학교출신 33인가운데 변절자들의 이름을 거론했다가 임용 1년만에 재임용에 탈락한 경험이 있다. 어디 나 하나뿐이 아니다. 《한국》교회의 비리를 폭로했다가 몰매당한 신문, 방송은 우리가 지금 보고있기때문에 더 여기서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한국》의 젊은이들은 그리스도교를 두고 《개독교》, 《먹사》, 《똥경》이라고 비하하면서 인터네트를 중심으로 이른바 《안티그리스도교》운동을 펼치고있다.

안티그리스도교운동의 중심에 있는 반그리스도교시민운동련합〔반그련(www.antichrist.or.kr)〕이 2003년 출범할 때 내건 창립선언문은 《이 사회에서 그리스도교가 더이상 패악질을 일삼지 못하도록 그리스도교를 박멸하겠다.》고 밝히고있다. 안티그리스도교운동을 하는 네티즌들사이에 그리스도교는 마치 모기나 바퀴벌레처럼 우리 사회에서 박멸해야 할 해충처럼 여겨지고있는것이다.

《한국교회언론회》가 개최한 안티그리스도교관련 토론회에서  반그련회장은 《신의 정의를 부르짖고 공의의 하나님을 이야기하면서 신의 심판을 설교하는 종교엘리트의 부패가 그들보다 더 교육기회가 없었던 신도들보다 더 치졸하고 야비하다.》면서 《우리는 그리스도교가 자정능력이 아예 없거나 상실했다고 판단한다.》고 안티그리스도교운동의 배경을 밝혔다. 회장은 《물질적축복과 기복을 파는 종교업자들이 수많은 선량한 사람들을 <예수천당 불신지옥>으로 협박하고, 공룡화된 교회는 거대한 기업처럼 돌아간다면서》, 《천민자본주의가 판을 치고 교회의 외적성장과 신도의 량적팽창이 목사의 성공으로 치부되는 현실에서 신도들은 결국 현금지급기노릇만 죽어라고 하고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리스도교가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교리로 다른 문화와 다른 종교에 대한 멸시와 폄훼를 일삼는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면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사망사건을 순교로 미화하는 현실은 문화의 상대성과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그리스도교의 모순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그는 불상과 단군상을 부시고 장승을 훼손하며 수만의 신도가 모여 모든 사찰이 무너지라고 롱성기도를 했던 사례 등 타종교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배타성을 지적하면서 《존중받기를 원하면 먼저 존중하라.》고 주장했다.

2002년 월드컵대회때 개신교계는 《붉은 악마》를 사탄의 무리로 단정, 반대캠페인을 벌렸다. 이것이 안티그리스도교가 등장한 직접적인 리유라고 진단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패악은 이것 이외에 더 있다. 나는 그것을 그리스도교망국론 5대리유라 한다.

 

그리스도교망국론 5대리유

 

나는 5대 그리스도교망국론을 1980년대초부터 글로, 말로 펴왔다. 19805 27일 새벽(미국시간) 광주가 무너지는 순간 미국에 대한 증오와 내가 미국에 속아 그리스도교인이 되였고 신학을 전공하였고 미국이 좋아 미국까지 왔다고 자탄을 하였다. 광주에 보낼 피를 헌혈받으러 10일간 로스안젤스 적십자병원에서 밤잠을 못 자던 그날 새벽, 그래서 미국공수부대가 광주를 구해줄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허망했던 신념이 무너지면서 나는 그리스도교망국론을 5가지로 정리하였다. 5대리유는 우에서 소개한 안티그리스도교의 창립취지문에 일부 나타나있지만 내 직장과 바꾸면서라도 포기할수 없는 나의 지론이다.

1. 우리 민족에게는 전래 고유한 민족종교의 전통이 있었다. 이를 신채호는 《선교》, 《신교》 혹은 《랑교》라고 했다. 그우에 차례로 불교, 유교 그리고 그리스도교라는 외래종교가 들어왔다. 그런데 불교의 경우는 고유종교에 접목을 가장 잘한 종교가운데 하나이다. 불교의 대웅전이 원래는 환웅전이였다고 한다. 지금 환웅전은 삼성각과 같은 형식으로 웃자리에 밀려났지만 지금 《한국》불교사찰경내에 엄연히 존재하고있다.

유교의 경우는 《공자를 높이고 중국을 훼손하지 말라.》는 원칙에 의해 단군이 요순보다 먼저일수는 없는 사대주의사관을 유지하기는 했어도 각 지방에는 부군이라는것을 두어 관리가 지방에 내려가면 이곳을 먼저 들렸고 하늘에 천제지내는 풍습을 지켜왔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 문화전통을 뿌리채 도려내려 하고있다. 《한국》그리스도교는 《우리는 아브라함자손이다. 곰자손 물러가라》고 현수막을 교회밖에 내걸고 단군목을 치고있다.

불교는 신라와 고려 1 500여년의 우리 력사를 지켜온 우리의 저력이다. 유교도 500년 조선조를 지켰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가 우리 땅에 들어온(1884) 20년이 채 못되여 우린 나라를 잃고말았다. 오비이락일가. 나라망한 원인과 그리스도교가 상관관계가 있는것일가? 나는 있다고 본다. 나라를 나무에 비교할 때에 그 뿌리가 잘린 나무가 성할리가 없을것이기때문이다. 다시말해서 그리스도교가 우리 문화전통의 뿌리를 뽑은것이 우리의 힘을 상실하게 했고 이것이 망국의 원인이 된다는것이다.

2. 《한국》에 그리스도교를 소개한 미국선교사들은 청교도들의 후예들로서 극단적인 개인구원과 종말론에 집착하였다.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란 구호는 모두 선교사들의 입김때문이다. 1907년 1월 장대현교회에서의 대부흥회는 실로 초대교회의 오순절운동을 방불케 했다. 2007년 《한국》교회는 장대현교회의 부흥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한국》교회가 재부흥의 도약을 하자고 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부정적이다.

그런데 보라. 장대현교회의 부흥을 주도했던 인물들이 거의 일제에 굴복, 신사참배를 하였다. 실로 《한국》교회에 이름났다는 지도자치고 신사참배 안한 사람 나와봐라. 과연 몇이나 되나. 장대현교회부흥때 그렇게도 열광적이던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도 신사참배를 하게 되였는지 리해가 가지 않는다. 3. 1운동지도자 33인가운데 그리스도교인들이 15명이나 되지만 거의다 변절하고말았다. 내가 처음 부임한 신학교의 동문들도 5명이나 33인에 들어있었지만 다 변절했다. 바로 이 점을 지적했다고 내가 해임당하고말았다. 그리고 내 연구실에 단군초상화가 걸려있다고 구체적인 빌미를 잡아 목을 치고말았다.

33인가운데 한사람 그리고 장대현교회부흥의 주인공인 길선주목사는 독립선언문에 서명은 하고 3월 1일 그날 양평에서 부흥회를 인도하고있었다. 나라 구하는 일보다는 개인령혼 구하는 일이 더 중요하고 국가보다 교회가 더 중요하다는것이 그의 불참의 변이다. 이렇게 선교사들이 우리 몸에 놓은 주사는 아편주사였다. 이런 아편쟁이들이 국가관과 력사관을 바로가지고있을것이라 생각하는것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것이나 마찬가지일것이다. 나중에 해방신학자들은 이런 아편주사를 《위로주의(pacification)》 그리고 이런 신앙의 개인화를 《사물화(privatization)》라고 했다. 이런 그리스도교가 나라 망하게 하는데 일조를 하지 않았다고 누가 장담할수 있겠는가? 여기에 《고소령》은 속물주의를 하나 더 첨가하고있다.

3. 그리스도교의 종말론은 원래 인간이 자기 과오를 회개하지 않으면 신의 심판이 내리는것은 마치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인것과 같이 시간문제라는데서 유래한다. 교만은 그 인간의 종말이라는것이 종말사관의 본뜻이다. 그러나 후대그리스도교는 가만히 앉아 하늘에서 예수가 올라간 모양그대로 다시 올것이라는것으로 변질시키고말았다.

만약 종말론이 이렇게 해석된다면 그 패악은 이루 말로 다할수 없다. 세상의 종말이 곧 오는데 독립운동은 해 무엇하고 세상나라는 다 없어지고 신의 나라가 곧 건설되는데 해방은 되여 무엇하느냐 말이다. 얼마전 《휴거》라는것이 얼마나 사회병페를 조장했는가는 그리스도교의 종말론이 끼친 나쁜 영향이다. 선교사들은 독립운동에 참가하는 《한국》청년들에게 이렇게 신국을 기다리라고 타일렀다. 불교의 승병(僧兵) 그리고 유교의 의병(義兵)같은것이 그리스도교에 없었던 리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교회안에서는 《십자가군병들아, 주 위해 일어나라.》고 목청을 높이면서 말이다.

4. 선교사들이 심어준 사대주의, 이것은 또 다른 망국의 원인이다. 불교도 유교도 경전과 사상이 먼저 들어왔다. 그리스도교선교사같은 포교자들이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곧 사라지고만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선교사들은 무슨 카나다선교부, 오스트랄리아선교부, 남감리교선교부, 남침례교선교부 하면서 미국에 있는 선교본부의 복사판같은것들을 《한국》에 설치하고는 이 좁은 나라를 갈가리 찢어 자기들 선교봉토로 삼았다. 그리고 서울의 가장 명소에 그들의 선교본부건물을 지어놓았으며 그들이 사는 주거지는 그야말로 호화별장같았다. 과연 이들이 우리 민족과 고통을 함께 나누러 들어온 사람들일가. 그들 집에서 일하던 하우스 보이들은 영어를 남보다 잘해 선교사들의 주선으로 류학을 가 출세를 해 돌아와 우리 문화를 말살하고 우리 언어를 압살시키는데 하수인노릇을 하였다.

실로 그리스도교사대주의는 유교사대주의를 뺨칠 정도였다. 이런 선교사앞잡이 목사들은 신사참배선봉장들이였으며 나중에는 친일매국노들과 결탁하여 언제나 독재자의 최대지원세력이 되였다. 지금은 뉴라이트란 이름으로 우리 력사까지 제 입맛대로 외곡, 반민족적 그리고 반통일적 최대세력이 되였다. 그 뿌리는 모두 《한국》초대그리스도교 그자체에 있었다.

5. 미국을 《동맹국》이라고 하는 신화를 만드는 장본인이 《한국》그리스도교이다. 《셔먼》호를 타고 대동강에 처음 당도한 토마스목사를 강의할 때엔 《한국》교회사 교수는 강의실에서 눈물을 줄줄 흘린다. 그러나 토마스는 엄연히 완전무장을 한 군인이였다. 그 무엇보다 그가 군함속에서 장사군들과 군인들과 한배를 탔다는 그자체가 정당하지 못하다. 그리스도교가 이런 식으로 전세계를 복음화하려 했기때문에 백인선교사들은 지금 제3세계 그 어디도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있다.

그 오유의 전철을 지금 《한국》교회가 밟고있다. 진정으로 아프가니스탄을 복음화하고싶을진대 《한국군》파병과 때를 맞추지 말았어야 할것이다. 그 정당하지 못한 전쟁에 선교사는 선교사가 아닌 전교사일것이다. 미국은 1905년 일본과 뒤거래를 하면서 《한일합방》을 허락하고 자기들은 필리핀을 삼켰다. 그러면서 선교사들을 시켜 우리앞에서는 일본압제자와 우리를 위해 싸우는양 하였다. 그리고 《해방군》으로 1945년에 들어와 《중앙청》에 자기들 성조기를 올리고 영원히 지배하려 했다. 그리고 우리 국토를 자대 하나로 그어 갈라놓고말았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자기들 경제적리익을 위해 신무기거래판매처로 만들어놓고 우리 민족의 통일을 끝까지 방해하고있다. 이런 나라가 동맹국일수 없다. 그런데 이런 민족의 최대가해자를 천사로 둔갑시키고 우리가 바른 판단을 못하도록 하는것이 바로 《한국》그리스도교이고 《고소령》의 가운데글자이다. 이 땅의 피끓는 젊은이들이 《개독교》라고 하는 리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교회 《종교의 자유》 말할 자격 있나?

 

수순으로 보아 미국과 이 나라 정부는 《핵》, 《인권》문제에 이어 앞으로 《종교의 자유》문제를 들고나오면서 북을 압박할것이다. 《종교의 자유》란 모든 종교가 아니라 그리스도교라는 특정종교를 두고 하는 말일것이다.

회고록 제1권에는 김일성주석과 그리스도교의 관계를 비교적 자세하게 기술하고있다. 1 1 6절의 《나의 어머니》제목의 절에서 우리는 우리의 관심인 김일성주석과 그리스도교의 관계를 상세히 읽을수 있다.

회고록에서 그대로 읽으면 다음과 같다.

《어느 일요일날 나는 할머니가 달여준 콩엿을 먹으면서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오늘은 례배당에 안 갈래요. 례배를 구경하는게 재미없어요.>

아버지는 아직 철부지라고 할수밖에 없는 나어린 나를 앉혀놓고 이런 말씀을 하였다.

<가고 안 가는거야 네 마음대로지. 사실상 례배당이라는데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안 가도 좋다. 너는 예수보다도 자기 나라를 더 믿고 자기 나라 사람들을 더 믿어야 한다. 그리구 나라를 위해서 큰일을 할 생각을 해야 한다.>

이런 말씀을 들은 다음부터 나는 례배당에 잘 다니지 않았다. 칠골에서 학교를 다닐 때에도 례배당에 다니지 않는 학생들을 통제하였지만 한번도 가지 않았다. 나는 예수의 복음이 우리 인민이 겪고있는 비극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였다. 예수의 교리가운데 인도주의적인것도 많았으나 민족의 운명을 두고 깊은 고뇌에 빠져있던 나에게는 구국에로 부르는 력사의 웨침소리가 그보다 더 절박하게 들리였다.

사상으로 보면 아버지도 무신론자였다. 그러나 신학을 가르치던 숭실중학교출신이였기때문에 아버지의 주위에는 교인들이 많았고 따라서 나도 교인들과의 접촉을 많이 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성장과정에 기독교적인 영향을 많이 받지 않았는가고 묻는데 나는 종교적영향은 받지 않았지만 기독교신자들에게서 인간적으로 도움은 많이 받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사상적영향도 주었다.

온 세상 사람들이 평화롭고 화목하게 살기를 바라는 기독교적정신과 인간의 자주적인 삶을 주장하는 나의 사상은 모순되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1 103104페지)

김일성주석은 회고록 여러곳에서 자신과 그리스도교 그리고 특히 천도교의 관계에 대하여 많은 언급을 하고있다. 결론은 이러하다. 애국애족이 앞서지 않는 그 어떤 가치도 그것을 릉가하거나 앞설수 없다는것, 종교이든 사상이든 이 나라를 사랑하고 이 민족을 위한다면 자기는 반대하지 않는다는것, 그래서 김주석은 해방후 《조선그리스도교련맹》을 설립했으며 애국애족의 정신과 그리스도교신앙을 겸비한 인물들을 모두 건국에 참가케 했다는것이다. 이를 두고 남에서는 어용이니 운운하지만 그것은 자기들의 친일이라 쓴 모자를 돌려쓰고 하는 말에 불과하다.

1980년대에 해외로부터 전 숭실대총장이였던 김성락목사가 김일성주석을 방문했을 때에 김목사에게 식사기도를 부탁한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아마 공산주의혁명가가운데 김일성주석만큼 그리스도교에 관대한 인물도 없을것이다. 그런데 북이 교회를 파괴하고 교인들을 다 죽였다고 남《한》교회는 선전하고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김일성주석은 그리스도교인이냐 아니냐가 결코 기준이 아니였다. 애국애족만이 오직 기준이였다. 어떤 그리스도교인도 그가 이 기준만 가지고있다면 친구가 될수 있다고 했다. 문익환목사와의 만남이 바로 그 한 례이다. 오늘 《한국》교회는 분명히 알라. 북에 진정으로 선교하고싶으면 우에서 지적한 5대망국리유를 청산하고 애국애족의 선봉에 서라. 너희 교회를 포기할 때에 그 순간 교회가 살것이란 사실을 명심하라.

 

신천대학살의 주범은? 자기 선교사들이 세운 교회를 다 폭격한 미국

 

어제날의 그리스도교가 어린 김주석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 리유가 바로 오늘날 《한국》그리스도교가 젊은 세대를 포섭하지 못하고 그들로부터 《개독교》소리를 듣는 진정한 리유이다. 삐까쏘의 게르니까와 함께 그가 미군의 신천량민학살소식을 듣고 그린 작품은 전세계 유명화랑에 다 걸려있다. 신천주민 3 5천여명을 미군이 그 지역 반동들과 합작해 자행한 황해도 신천대학살사건은 단위장소에서 일어난 최대의 사건이다. 삐까쏘는 이 소식을 듣고 손에 붓을 들고 떨었다고 한다. 필자도 2004년 신천을 방문하였을 때 구월산밑 이 작은 마을은 미제를 용서하지 않을것이라 확신하였다.

북엔 전쟁전에는 엄연히 교회가 있었다. 그러나 미군은 하나 성한 곳없이 교회를 폭격했으며 이북전역을 쥐구멍까지 모조리 황무지로 만들 지경이였다. 오늘 북에서 미국과 교회를 증오하는 원인제공을 한 장본인은 바로 이 땅에 복음을 전했다고 하는 미국자신이라는 사실을 바로 알아야 할것이다. 미국이 그렇게 잔인하게 주민을 학살하지 않고 교회를 파괴하지만 않았어도 북이 그렇게 그리스도교에 대하여 태도를 취할 아무런 리유가 없다. 다른 공산주의국가들이 교회를 박해하고 말살하는 그런 정책을 김일성주석은 하지 않았다. 북은 천주교와 개신교회를 각각 세워 례배를 보고있다

김주석은 언제나 리념의 자대로 판단하지 말고 사람나름대로 판단하라고 했다. 지주라도 사람나름대로 애국애족할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지금 남쪽의 교회목사들은 바리새인들같이 률법과 리념으로 판단하고있다. 그래서 공산주의를 도매가격으로 매도하고있다.

생명의 은인이다싶이 한 손정도목사, 김주석의 아버지가 다닌 숭실중학교 그리고 어머니가 다니던 교회를 김주석이 반대할 아무런 리유가 없었다고 본다. 그리고 교회가 조금이라도 애국애족하는 태도를 보였더라도 김주석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을것이다. 김주석이 지금 생존해있는 손정도목사가족들에게 보여준 따뜻한 애정 하나만으로도 나의 주장이 옳다는것을 립증하고도 남을것이다.

김주석의 가슴속에 자리잡은 그리스도교와 그리스도교인들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이런 김주석의 나라에 종교의 자유 운운하는것은 몰라도 너무 모른 소리이다.

지금 평양을 방문하면 《셔먼》호가 침몰한 흔적을 그대로 볼수 있다. 과연 그리스도교가 이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들어올 때에 어떤 손짓을 했는지, 그리고 그때 그 몸짓을, 아니 그 버릇을 아직 버리지 못하고있는지 《한국》그리스도교는 곰곰히 생각이나 하고 북을 향해 종교자유 운운해야 할것이다. 개도 웃을짓을 하고, 말을 하고, 북의 《인권》이니 《종교의 자유》 운운하기때문에 그리스도교는 《개독교》대접밖에 못 받고있는것이 아닐가.

 

그리스도교는 《안티》정도가 아닌 국법으로 금해야 할지도

 

일본인학자가 《한국》이 일본을 앞서는 3대조건을 제시한적이 있다. 부동산, 남북문제 그리고 그리스도교이다. 그의 생각으로는 이 셋을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문제거리로 본것 같고 남북은 통일을 그리고 부동산은 안정을 그리고 그리스도교는 우의 5대망국적요소를 청산해야 한다는 의견이라고 본다. 그런데 새로 선출된 장로《대통령》은 이 세가지에 대해 기대했던 방향으로 나가지 못할것 같다. 그렇다면 《한》반도는 일본에 뒤지게 되고 말고 어쩌면 구한말같은 꼴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교는 《안티》정도의 대상이 아니라 국법으로 금해야 할 종교일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장로《대통령》을 셋이나 선출하였다. 리승만, 김영삼, 리명박이다. 앞의 둘은 모두 불행한 행적을 남기고 갔다. 벌써부터 리명박《대통령》에게 달라붙어 따라다니는 《강부자》, 아니 인젠 《청부자》 그리고 《고소령》모두 이 땅의 그리스도교의 앞날을 어둡게만 하고있다. 날이 갈수록 속물화되여가는 《한국》교회, 속물들은 잘 속는게 특징. 이런 속물들에게 투표권을 맡겨놓는다는것은 망국을 스스로 자초하는 첩경이다.

리완용이 나와도 뉴타운 공약하면 표 안준다는 보장이 없는것이 오늘 남의 현실이다. 이런 속물화를 그리스도교자체가 지금 조장하고있다.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교를 망국적종교라고 단언할수 있게 되였다. 일본과 손잡고 북을 치겠다고 내놓고 설교하는 목사들, 이들을 국법으로 안 다스려도 된단 말인가? 오늘날 남《한》의 그리스도교는 예수의 정신을 포기한지 오래다. 1907년 대부흥이란 민족이 어려울 때 그 약점을 파고든 가장 위험한 마취제역할 그이상도 이하도 아니였다. 2008년현재 《마라난타》, 이 민족의 통일을 선도해나가고 《한》반도의 평화를 념원하는 참예수의 정신을 구현할 메시아가 나타나기를 기원한다.

초대교회도 리상적으로 실현하려다 실패한, 같이 일하고 같이 나누어먹는 평등한 세상을 북은 근 반세기이상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있다. 자본주의패권국가들의 눈에 북은 가시같을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북의 대문을 밖에서 빗장을 치고는 한푼도 그 세계로 들어가지 못하게 만들어놓고 이 리상향을 추구하는 국가를 고사시키려 한다. 그러나 북은 항일유격대의 그 강한 사랑과 신뢰의 힘으로 버티여내고있다. 나는 이런 세상이 인류지구촌이 구현해내야 할 하나님의 나라라는것을 믿어의심치 않는다. 강한자가 약한자의 골수까지 등쳐먹는 이런 세상이 곧 종식될것도 믿어의심치 않는다. 가난하나 인간답게 살고 《내가 그리스도에게 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내 민족을 위하는바》라고 고백한 바울같은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참크리스천을 이젠 평양에 가서야 만날수 있다고 확신하는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