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위인과 음악』 중에서

  

 7. 우리 민족끼리 장단맞춰 통일조국의 래일을 향하여 


□ 계몽기가요를 귀중한 민족음악유산으로

 

슬기롭고 강의한 우리 민족이 유구한 력사적과정에 창조한 수많은 민족가요유산들가운데는 조선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즐겨부르는 계몽기가요도 있다.

일제식민지통치시기에  나라없고 돈없고 부모처자를 잃은 눈물겨운 처지를 한탄하며 우리 민족이 설음에 겨워 처량하게 불렀던 계몽기가요가 오늘날에는 민족의 귀중한 음악유산으로 그 가치가 평가되여 주체성과 민족성을 고취하고 우리 인민의 문화정서생활을 풍부히 하는데 널리 이바지하고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우리 민족이 력사적으로 이룩해놓은 민족문화유산을 귀중히 여기고 옳게 살려나가는것은 우리 당의 시종일관한 문예정책의 하나입니다.》

일찍부터 민족의 문화유산을 옳게 계승발전시키는데 언제나 깊은 관심을 돌려오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사람들이 계몽기가요에 대한 옳바른 인식을 가지고 그것을 널리 부르도록 하심으로써 계몽기가요가 민족의 귀중한 음악유산으로 빛을 뿌리게 하시였다.

민족의 귀중한 음악유산인 계몽기가요를 어떻게 리해하고 취급하는가 하는것은 민족문화유산계승과 관련되는 심중한 문제이다.

지난 시기 계몽기가요는 일부 사람들과 음악전문가들의 허무주의적인 태도로 하여 력사주의적원칙에서 옳게 고찰되고 평가되지 못하고있었다.

이러한 실태를 료해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여러 기회에 계몽기가요에 대한 인식을 바로가질데 대하여 간곡히 가르쳐주시였다.

특히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주체96(2007)년 3월에 발표하신 불후의 고전적로작 《계몽기가요는 우리 민족의 귀중한 음악유산이다》는 계몽기가요에 대한 옳바른 인식을 확립하고 그것을 시대의 요구에 맞게 옳게 계승발전시켜나가는데서 결정적의의를 가진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로작에서 계몽기가요는 우리 민족의 귀중한 유산이라는데 대하여 밝혀주시였다.

계몽기가요에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 명철한 해명에는 우리 민족이 이룩하여놓은 자그마한 문화유산도 더없이 소중히 여기시고 후손만대에 길이 빛내여주시려는 그이의 열렬한 민족애가 뜨겁게 어려있으며 북과 남이 통일되기 전에도, 통일된 후에도 함께 부를 노래를 마련하여주시려 마음쓰시는 민족의 어버이의 다심한 사랑과 은정이 뜨겁게 어려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계몽기가요는 1920년대부터 해방전까지의 시기에 나온 진보적인 노래들이라고, 계몽기가요는 나라를 빼앗긴 우리 인민들의 눈물겨운 처지와 민족적울분을 반영한 노래이며 일제침략자들에 대한 항거의 감정을 반영한 노래라고 계몽기가요의 본질적의미에 대하여 명철하게 밝혀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또한 계몽기가요는 가사가 서정적이고 생활적이며 곡이 전통적인 조선민요의 형식을 많이 계승하여 부르기 쉽게 되여있다고 하시면서 우리 인민들이 부르기 쉬운 서정적이며 생활적인 노래라는데 계몽기가요의 특징이 있다고 지적하시였다.

계몽기가요는 가사내용에서 당대 인민들의 생활감정과 념원을 사실주의적으로 반영함으로써 그들의 반일애국의식을 높이는데 일정하게 기여하였다.

《고향의 봄》, 《고향하늘》, 《타향살이》, 《황성옛터》와 같은 노래들에는 빼앗긴 조국과 떠나온 고향에 대한 당대 인민들의 사랑과 그리움의 감정이 잘 반영되여있다.

허물어진 고려왕조의 옛 성터에 비추어 망국의 설음과 조국애를 노래한 계몽기가요 《황성옛터》만 놓고보아도 1920년대말에 이 노래가 창작되여 무대에 올랐을 때 노래를 부르던 가수도 울고 청중들도 울음을 터뜨리며 울분을 토하다가 의자까지 들부시는 소동이 일어났다고 한다.

이것은 망국의 설음과 조국애의 감정을 담은 노래가 청중을 격동시키고 그들에게 반일의 불씨를 지펴주었다는것을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계몽기가요들에 반영된 고향과 조국에 대한 그리움의 감정속에는 나라를 강탈하고 짓밟은 침략자들에 대한 원한과 항거의 감정도 깔려있다고 볼수 있다고 하시면서 바로 여기에 이 노래들이 가지는 계몽적의의가 있고 진보성이 있다고 지적하시였다.

그것은 조국의 아름다운 산천경개나 명승고적과 결부시켜 조국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노래한 《조선타령》, 《조선팔경가》, 《조선찬가》 그리고 조국해방에 대한 념원과 확신을 담은 《봉선화》, 《눈물젖은 두만강》, 《감격시대》, 《락화류수》, 일제를 쳐부시고 빼앗긴 조국을 기어이 찾고야말리라는 굳센 의지를 그대로 표현한 《압록강의 노래》를 비롯하여 많은 계몽기가요들에서 잘 찾아볼수 있는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또한 계몽기가요는 음악형식에서 전통적인 민족선률을 바탕으로 한 현대적인 가요음악의 종류와 형식을 새롭게 창조함으로써 우리 나라 가요예술을 한계단 발전시키는데도 기여하였다는데 대하여 밝혀주시였다.

계몽기가요들의 매개 종류들은 자기에게 고유한 특성들을 가지면서도 총체적으로는 민족적특성과 현대성을 밀접히 결합한 민족가요로서의 면모를 갖추고있다.

특히 계몽기가요들은 조선민요의 고유한 특성을 살리면서 인류음악이 달성한 우수한 성과들을 적극 받아들여 민족성과 현대성이 잘 결합된 선률형상을 창조하였다.

조식 하나만 놓고보아도 조선민요의 전통적인 5음계조식들을 잘 살려쓰면서 대조, 소조체계에 기초한 7음계조식을 적극 받아들여 우리 인민의 비위와 정서에 맞는 새로운 음악형식을 창조하였던것이다.

가요음악의 새로운 종류를 개척하는데서 이룩한 이러한 성과로 하여 계몽기가요는 일제식민지통치의 엄혹한 환경속에서도 우리 나라 가요예술을 현대적으로 발전시키는데 기여하였을뿐아니라 해방후 가요음악의 다양한 발전을 가져올수 있게 한 밑천으로 되였다.

바로 여기에 계몽기가요가 가지는 유산적가치와 진보성의 또 하나의 측면이 있는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로작에서 일제식민지통치시기의 특수한 사회적환경속에서 나온 계몽기가요가 가지고있는 제한성에 대해서도 명백히 밝혀주시였다.

계몽기가요는 주제사상적내용에서 인민들을 반일민족해방투쟁에로 불러일으키는것을 비롯하여 당시 우리 민족앞에 절박하게 나섰던 사회정치적문제들을 적극적으로 취급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음악적으로 양상이 다양하지 못하고 서정적인데 많이 치우치거나 슬픈 양상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계몽기가요는 이러한 일정한 제한성을 가지고있지만 민족의 귀중한 음악유산이다.

그런데 지난 시기 일부 사람들은 계몽기가요의 진보적측면은 보지 않고 그것을 류행가라고 하면서 무턱대고 부르지 못하게 하였던것이다.

류행가라는 말은 우리 나라에서 1920년대에 레코드를 통하여 노래가 사람들속에 널리 보급되면서부터 쓰이기 시작하였다.

당시 창작가들은 자기의 노래가 예로부터 전해오는 구전민요들보다 사람들속에서 많이 불리워진다는 뜻에서 류행가라는 이름을 붙이군 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류행가라고 하는 노래들을 보면 가사에 해당 시기 인민들의 사상감정과 지향, 생활정서가 잘 반영되여있고 선률이 인민들의 구미와 정서에 맞게 통속적으로 되여있다.

이런 류행가가 사람들에게 나쁜 인상을 주게 된것은 당시 우리 인민들의 조국애와 날로 높아가는 인민들의 반일감정을 담은 계몽기가요들이 대대적으로 류포되는것을 막기 위하여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인민들의 사상감정을 외곡, 모독하는 퇴페적인 노래들을 비호하면서 일명 《류행가》라는 이름으로 범람하게 한데 있었다.

때문에 일부 사람들속에서는 이런 퇴페적인 류행가와 그 시기에 류행가라고도 불리워왔던 계몽기가요를 엄격히 갈라보지 못하고 배격하였던것이다.

만일 계몽기가요를 류행가라고 하면서 부정한다면 우리 나라 음악사에서 1920년대, 1930년대 음악을 잃어버리게 되며 특히 계몽기가요가 많이 확대보급된 《카프》시기부터 해방전까지 사이에 공백이 생기게 된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로작에서 계몽기가요에 대한 리해에서 나타난 편향을 바로잡고 계몽기가요를 다시 찾은것은 우리 나라 음악사에서 하나의 큰 사변과 같은것이며 주체성과 민족성을 살리고 력사주의원칙에서 민족음악유산을 계승하는데서 이룩한 귀중한 성과이라는데 대하여 지적하시였다.

참으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전면적이며 과학적인 해명으로 계몽기가요에 대한 가장 옳바른 인식을 정립하신것은 민족의 귀중한 음악유산을 옳게 계승발전시켜나가기 위한 지침을 마련하여준 력사적의의를 가진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계몽기가요에 대한 옳바른 인식을 확립할뿐아니라 그것을 널리 보급하여 인민들속에서 즐겨불리워지도록 각별히 마음을 써오시였다.

돌이켜보면 지난 시기 경애하는 장군님의 지도속에서 많은 계몽기가요들이 다양한 형식으로 불리워져 인민들의 정서생활에 적극 이바지하였다.

주체80(1991)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노래 《내 나라 제일로 좋아》를 가지고 다부작예술영화를 만들데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영화에 이 노래와 함께 1930년대에 많이 불리운 계몽기가요와 류행가를 배합하여 쓰면 특색있는 영화로 될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리하여 《락화류수》, 《동무생각》, 《고향하늘》을 비롯한 계몽기가요들을 다부작예술영화 《민족과 운명》의 장면에 맞게 많이 리용하였으며 《카프》작가편에서는 계몽기가요창작가의 한사람인 홍란파에 대하여서와 그가 작곡한 《봉선화》가 취급되게 되였다.

민족의 자랑이고 더없는 재보인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에서도 《눈물젖은 두만강》, 《타향살이》와 같은 계몽기가요들을 통해 당시 나라를 빼앗긴 민족적설음과 조국해방의 날을 간절히 바라던 우리 인민들의 절절한 념원을 훌륭히 형상한것으로 하여 사람들속에 커다란 감명을 불러일으키고있다.

최근에는 다양한 주제의 계몽기가요들을 현시대의 미감에 맞게 새롭게 재형상한 보천보전자악단의 음악이 TV와 소리방송에서 울려나와 깊은 정서적감흥을 불러일으키며 사람들의 문화정서생활을 보다 풍부히 해주고있다.

더우기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현명한 령도로 계몽기가요는 민족적화해와 단합을 도모하고 민족최대의 숙원인 조국통일을 이룩하는데서도 좋은 작용을 하고있다.

민족성을 고수하고 적극 살려나가며 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산과 풍습을 귀중히 여기는것은 북과 남, 해외에 사는 모든 조선사람들의 일치한 감정이다.

강토도 같고 언어와 풍습도 같으며 피줄도 같은 우리 민족은 노래도 같은 노래를 불러왔다.

우리 민족이 북과 남으로 갈라져있지만 단일민족으로서 같은 민족적정서와 미감을 가진것으로 하여 계몽기가요는 조선민족모두가 즐겨하는 노래로 널리 불리우고있다.

민족의 귀중한 음악유산인 계몽기가요는 북과 남, 해외에서 사는 모든 조선사람들을 사상과 정견의 차이에 관계없이 애국애족의 리념아래 서로 단합시키고 조국통일위업실현에 떨쳐나서도록 하는데서 커다란 감화력을 가지고있다.

지난 1990년에 진행된 범민족통일음악회와 90송년통일전통음악회, 고베에서 진행된 음악회 등 통일음악회들에서 부른 계몽기가요들은 민족분렬의 아픔과 함께 조국통일의 사명감을 깊이 새겨준것으로 하여 참가자들의 심금을 틀어잡았다.

6. 15자주통일의 새시대에 와서도 북남사이에 진행된 통일행사장들에서 계몽기가요들이 많이 불리워져 겨레의 가슴마다에 끊을래야 끊을수 없는 민족적감정을 북돋아주고 통일애국열의를 더욱 뜨겁게 해주었다.

이렇듯 지난날 수난많던 민족의 운명과 더불어 빛을 잃었던 계몽기가요가 자기의 옛 모습을 되찾고 조국통일에 참답게 이바지하게 된것은 민족의 유산을 귀중히 여기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탁월한 령도의 빛나는 결실이다.

북과 남, 해외에서 사는 모든 조선사람들을 사상과 정견의 차이에 관계없이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아래 서로 굳게 단합시키고 조국통일위업실현에 떨쳐나서도록 하는데서 큰 감화력을 발휘하고있는 계몽기가요는 6. 15시대와 더불어 민족의 유산으로 더욱 빛나게 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