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회고록으로 보는 세상이야기』 중에서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락천가가 세운 나라 락관한다 

 

1940년 봄》과 《2007년 여름》

 

지난해 북이 40여년만에 맞은 큰물피해속에서도 《아리랑》공연은 그대로 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건 좀 객기가 아닌가 하고 남《한》사람들은 생각했을것이다. 지난번 수해때에 로무현《대통령》이 외유를 했다가 호된 여론의 화살을 받은것을 기억할것이다. 이런 론리로 북을 보면 서로 북남은 반대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있는 렬차와 같아보인다. 수해는 비극 그리고 공연은 사치라고 생각하는 남의 론리식대로라면 북을 도저히 리해하지 못할것이다. 그러나 김일성항일유격대원들은 가장 어려울 때에 아니, 그럴 때일수록 항상 연예공연을 했다. 이렇게 역발상을 해야 북의 《아리랑》공연강행을 바로 리해할수 있을것이다. 북의 이러한 남과는 다른 발상법을 우리는 《세기와 더불어》(계승본) 8 22 2《미래에 대한 락관》에서 읽을수 있을것이다.

1940년 봄, 김일성주석은 회고록에서 《말이 났으니 말이지 그해 봄에 우리는 참으로 어려운 시련을 겪었습니다.(8 20페지)라고 술회하고있다. 회고록에서 이런 표현을 쓰는것은 례외라고 할수 있다. 여간 어려워도 어렵다 소리 안하는것이 김일성주석의 생활태도이고보면 그해 봄은 여간 어렵지 않았던것 같다. 그해 봄, 김일성사령관과 유격대원들이 백두산동북부일대, 안도와 화룡부근에서 유격활동을 벌리고있을 때이다. 제일 어려운것은 일제의 《파도식토벌》이였다.

수백명 혹은 수천명이 무리를 지어 마치 바다의 파도같이 사방에서 덤벼드는 《토벌》방법을 두고 하는 말이다. 《토벌대장》은 노조에였으며 그는 여러차례 전투에서 김일성항일유격대의 타격을 입고 약이 오를대로 올라있었다. 김일성주석은 그가 봉천과 통화에서 증원군을 긁어모아 쏘련국경의 국경수비대까지 합세시켜 항일유격대에 대한 복수의 칼을 빼들고 덤벼들 때여서 정신을 차리지 못할 지경이였다고 회고하고있다.

2007년 큰물피해속에서도 《아리랑》공연을 강행하는 북을 리해하기 위해서는 양초구란 마을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해보아야 할것이다. 하도 배가 고파서 산과 들판에 나가 산나물을 뜯어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강위룡소대장에게 전령병들이라도 데리고나가 나물을 뜯어오라고 하였다. 강위룡은 전령병 전문섭, 리을설 그리고 한창봉을 데리고 산나물을 뜯으러 나갔다가 저녁늦게야 돌아왔다.

그런데 이게 웬 말인가?

이들 네명은 하루종일 나물을 한바구니도 채 못뜯어왔다. 그런데 그 사연이 이러하다. 전문섭과 리을설은 당시 나이어린 소년병들이였다. 책임을 추궁당하자 이 어린 전령병들은 천진란만하게도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고 꽃향기가 진동하는데다가 폭신폭신한 잔디밭을 보니 고향생각이 절로 나고 봄동산에서 즐겁게 뛰놀던 어릴적 생각이 나서 저도모르게 씨름으로 한나절을 보내게 되였다는것이였습니다.(8 23페지)라고 김일성주석은 회고한다.

전문섭과 한창봉은 나이도 비슷하고 힘도 비슷하여 씨름을 하다보니 승부가 나지 않아 하루해를 다 보내게 되였다는것이다.

부대의 식량이 어려울 때에 산나물해오라고 보낸 대원들이 씨름으로 시간을 다 보냈다고 하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였다. 물론 임무를 소홀히 한 이들 네 부하들에게 면피는 줄수 없었다. 평소에 남달리 임무수행을 철저히 해온 이들이 오늘따라 상상밖의 행동을 한데 대하여 김일성사령관은 엄히 꾸중을 하였다.

그러나 그날 밤 김일성사령관은 잠자리에 누워 네사람들의 얼굴들과 나물바구니를 생각하며 《… 이 험한 판국에서도 우리 대원들이 비관을 모르고 배포유하게 씨름까지 해가며 락천적으로 살아가는구나 하는 깊은 생각을 하게 되고 흐뭇한 웃음이 저절로 피여오르는것이였습니다.(8 24페지)라고 그때를 회고하고있다.

이들은 해방후 김일성주석과 함께 돌아와 해방정국 북의 건국, 건군에서 핵심이 되였다. 지금은 80고령이 되였을 그들의 당시 나이는 10대 초반이였다.

 

비관주의만큼 무서운 적은 없다; 혁명가의 3대특질은?

 

1937년 중일전쟁이후 국내외를 막론하고 이제는 동양천지는 모두 일제의 마수에 다 삼키운다고 애국지사들, 심지어는 열혈동지들마저 자포자기하고 비관주의에 빠진다. 국내의 최남선과 윤치호같은 지사문인들이 변절한것도 바로 이무렵이다. 김일성주석주변의 《ㅌ. ㄷ》의 동지들중, 심지어는 카륜회의에서 피로 맺은 동지들속에서도 배신자, 변절자가 나왔다. 특히 림수산같은 인물이 투항하여 《토벌대》의 앞잡이로 돌아다니면서 유격대의 위치를 찾아내주고있는 실정이였다. 이것은 식량난보다 유격대를 더 어렵게 하는것이였다. 간도에서는 조선인들로 된 《토벌대》를 만들었으며 남에서 《국방군》창군의 핵심인물인 김석원 등이 《토벌대》의 선봉장으로 설치고있었다.

1941 12월 일본의 진주만공격으로 전쟁이 남양군도까지 확산되고 일본이 후방으로부터 군수물자조달 등 전선확대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있을 때가 1940년대초이다. 일제가 단말마적으로 동북아의 항일유격대에 달려들 때이다. 이를 보고 비관주의자들은 이젠 일본세상이 다되였다고 생각하고 유격대를 리탈하기 시작한다.

김일성주석은 《우리 대오에서 도주한자들을 보면 례외없이 미래에 대한 신념을 잃어버린 비관주의자들이였습니다.(8 30페지), 그래서 1940년대는 우리 대오에서 혁명적랑만과 락관주의가 무엇보다도 소중한 때였습니다.라며 항일유격대원의 3대특질은 신념, 의지, 락관이라고 정의한다.

평양을 방문한 외신기자들이 언제인가 김일성주석께서 80 50대의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장수의 비결은 락천적으로 사는데 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우리는 북이 생존하는 비결이 바로 이 말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사실을 알았으면 《용공》하는자들도 북의 이 특질을 알고 《용공》을 할것이며 《반공》하는자들도 이 특질을 알고 《반공》을 해야 할것이다. 북의 근본이 무엇인가를 알고나 찬성도 반대도 하라는것이다. 외부에서 볼 때 북을 그저 《빈곤국가》로, 《불행한 나라》로 단정하지 말고 정말 그런지는 안으로 들어가서 보아야 진실을 알게 될것이다.

김일성주석은 평소에 이렇게 자신을 타고난 락천가라고 했지만 이 말을 두고 그것이 개인성품으로만 리해한다면 큰 오산이다.

김주석의 락천주의는 리성적판단에 근거한것이란 사실을 알아야 할것이다. 일본은 반드시 망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있었던것은 물론이다. 이런 신념이 없었더라면 초기유격대활동기간의 라자구등판우에서 꿈을 접고말았을것이다. 이제 남은 대원들은 수십명에 불과, 촉한으로 신음하며 눈덮인 설령을 넘을 때 그들의 창자속에는 풀뿌리, 나무껍질 하나 없었다. 그때에도 김주석과 동지들은 일본은 반드시 망한다는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1937년 중일전쟁을 두고도 김일성주석은 일본이 망하는 전주곡을 보았지 최남선 등과 같이 일본세상이 되는것으로 판단하지 않았었다. 일본이 왜 망하는가? 일본이 이렇게 전선을 확대할 때에 후방으로부터 보급물자가 조달이 안될것이고 이러한 수순은 도이췰란드가 쏘련을 침공할 때에도 세계전쟁사 어디서도 쉽게 찾아볼수 있는 사례들이다. 과연 이러한 락관론은 그대로 적중, 중일전쟁후 10년이 채 못되여 일본은 망하고말았다. 리광수와 최남선의 비관론이 틀린것이였다. 적보다 우리안의 비관주의자들을 경계해야 할 리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 비관주의는 지독한 리기주의 혹은 편의주의와 련관이 되여있기때문에 언제나 대렬에서 리탈할 우려가 있는것이다

김일성주석은 일본이 승승장구하는 순간이 바로 일본이 스스로 족쇄를 차는 순간으로 사리판단을 한다. 이런 사리판단을 하는 주인공이 락관주의자가 되는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김주석의 락관주의는 타고나기도 타고났지만 현명한 상황판단에 근거한 과학적인것이였다. 이는 김일성주석자신이 그렇게 자신의 락관주의를 설명한것이다. 회고록에서 그렇게 증언하고있다. 얼간이같은 배웠다는 당시 지식인분자들의 배신과 배반은 모두 사리판단을 제대로 못한데 근거한것이다. 이런 지식은 무지보다 더 해악적인것이다.

사회주의건설 반세기가 지나가는 지금 사회주의는 실패했다고 비관하는자들도 있다. 그러나 반세기전과 똑같이 지금 북은 자본주의가 갈데까지 다 갔다고,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사회주의가 성공할 날이 다가왔다고 락관한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여 승승장구 바그다드를 점령할 때에 이제 세계가 미국의 단극체제로 가는것이 아닌가 우려했었다. 그러나 이카루스같이 고공비행을 하던 미국의 《다크호스》미싸일은 지금 사방에서 날개가 꺾이고있다. 미국은 망한다, 반드시 망한다고 보는것이 지금 락관주의자들이 보는 견해이다.

 

락천주의는 문예활동이 지탱시켜준다

 

이런 락천주의를 지탱시켜주는것은 문과 예 즉 《문예(文藝)》라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2007 대수해에도 불구하고 《아리랑》공연을 진행하는 진정한 리유를 발견하게 된다. 이런 재난의 시기에 공연같은것을 하다니가 아니고 그렇기때문에 더욱 해야 한다는것이 북과 남의 다른 론리인것이다. 그것은 객관을 바라보는 락관주의와 인간의 주관적락천주의야말로 인간이 역경을 이길수 있는 길이라고 북은 생각한다는것이다.

회고록은 이렇게 쓰고있다.

《대원들에 대한 신념교양, 락관주의교양에서 중요한 수단으로 된것은 문예활동이였습니다. 혁명적인 문화오락을 떠나서는 항일유격대의 생활을 론할수가 없고 혁명적인 노래와 춤을 떠나서는 조선인민혁명군이 걸어온 승리의 로정에 대해 말할수가 없습니다.(8 33페지)

북을 방문하면 군데군데 《생산도 학습도 생활도 항일유격대식으로!란 구호를 볼수 있다. 여기서 유격대식이란 그것이 결코 전투적인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것이다. 이를 보고 온 남측 사람들이 북의 《호전성》을 흉보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다. 나는 유격대식이란 어느 절박하고 험난한 순간에도 락천성을 잃지 않는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유격대식이라고 정의하고싶다. 악은 반드시 망하고 선은 반드시 승리하고말것이라는 신념과 확신에 근거한 락천주의말이다.

비관주의는 결국 인간력사의 선이 승리할것이라는 확신의 부족에서 나오는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치치하의 안나의 일기 마지막구절 《나는 인간의 선함을 믿는다.》야말로 락천의 정의이다. 《락천(樂天)》이란 말그대로 하늘의 선함을 믿는 확신에서 나온 즐거움이다. 이런 락천은 오랜 고난의 경험을 통해 얻을수 있는 선물이다.

《피바다》김일성사령관이 행군도중 쉬는 시간을 리용해 직접 쓴것이다. 김주석은 길림육문중학교에 다닐 때에 상월선생으로부터 문학을 배웠으며 그의 서가에 있던 문학서적들을 거의 빌려 읽었다고 한다. 그리고 세월만 잘 만났으면 문학을 공부했을것이라고 술회하고있다. 문학에 대한 조예와 관심은 생의 마지막날까지 이어진다. 김일성사령관이 《피바다》를 쓴 동기가운데 하나가 리광수의 《혁명가의 안해》를 읽고 이는 혁명에 대한 모독이요, 인간의 본성을 비관주의로 바라보는 잘못된 소설이라 보았기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대하여 남《한》문인들은 순수문학 운운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김일성사령관의 이러한 문예에 대한 조예는 끊임없는 독서에서 나온것이다.

1940 5. 1절을 개구리고기로 끼니를 이어도 김일성사령관은 독립이 되면 평양에 가서 숭어국도 먹고 랭면도 한그릇씩 먹고 모란봉에 올라가 대동강구경을 하자고 부하동지들의 아픈 마음을 달랜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대부분의 부하들은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말았다. 그중 박길송은 최후의 순간 《조국이여! 나는 그대를 자랑한다. … 공산주의! 이것은 바로 세계의 청춘이다. … 조국의 광명한 미래를 키워내는 요람이다. 우리는 이것을 너무나 똑똑히 알고있기때문에 이처럼 웃으면서 죽는다.》고 하였다. 그들은 영원한 청춘을 살다 갔으며 그들은 죽음마저 락천적으로 받아들였다.

일제는 최희숙녀성유격대원의 두눈을 뽑아버렸다. 그러나 그녀는 《혁명의 승리가 보인다.》고 했다. 리계순은 단두대에 올라서면서 《조국의 광복은 멀지 않아 온다.》고 락관적인 미래를 바라보았다. 특히 리제순은 서대문형무소에서 면회온 안해에게 세계지도를 가져다달라고 하였다. 사형수가 세계지도공부를 하다니. 아니다, 그는 해방된 조국의 세계적판도를 그려보기 위해서였다. 스피노자는 《래일 세계의 종말이 와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경구를 남겼고 해월 최시형은 수배자신세로 피해다니면서도 가는 곳마다 과일나무를 심었다.

 

《아침은 빛나라》 영원까지

 

회고록에는 이러한 구절이 있다.

《세계에 이름난 군대도 많고 빨찌산도 많았지만 조선인민혁명군만큼 혁명적랑만과 열정으로 약동하는 생기발랄하고 전도가 양양한 군대는 없었을것입니다. 역경을 웃음으로 다스리고 화를 복으로 전환시키는 사람들, 이 세상이 통채로 꺼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믿는 락천가들의 집단이 바로 조선인민혁명군이였습니다.(8 2425페지)

김일성사령관은 사람됨됨을 그가 끝까지 싸움을 해나갈 인물인지 아닌지를, 성격이 락천적인지 아닌지로 판가름했다는것이다. 전문섭도 외형을 보면 조용하고 얌전해보이지만 실상은 락천가라고 하였다. 안길을 특별히 총애한 리유도 그의 타고난 락천성때문이라고 한다.

요즘 환경론자들은 인류와 지구의 미래를 너무 비관적으로 그려내며 유토피아에 대하여 《디스토피아(DISTOPIA)》라고 한다. 결코 이들이 진정한 환경주의자들이 될것이라 믿지 않는다. 환경단체들이 재벌이 집어주는 황금에 쉬이 넘어가는것도 그들의 비관주의때문이다. 회고록은 도주자들, 변절자들을 보면 한결같이 상승할 때 그 기류를 타고 우연히 혁명대오에 뛰여들다가 고난이 중첩되고 정세가 불리해지자 옛다, 모르겠다, 혁명이고 뭐고 나만이라도 살고보자 하고 달아나버린 의지박약자들이였다고 쓰고있다.

김일성주석과 주석이 세운 나라의 사람들은 리념을 론하기 전에 락천가들이였다는 사실부터 알아야 한다. 김주석으로부터 배운 락천성, 이것은 북의 힘의 원천이다. 이는 마치 삼손의 머리털과 같다. 북의 힘은 미싸일도 핵도 아니요, 강고한 락천주의라는 사실을 알라. 큰물피해속에서도 《아리랑》을 공연하는 락천성말이다.

《혁명이란 사상의지나 규률만을 가지고 하는것이 아닙니다. 사상의지, 도덕의리와 함께 랑만적인 감정정서를 가지고 하는것이 혁명입니다.(8 37페지)

회고록의 문구이다.

생산도 학습도 생활도 항일유격대식으로 하는 한 그들은 절망하지 않을것이며 이런 나라의 미래는 락관해도 좋을것이다. 우리는 회고록을 통하여 한가지 역설을 공부하게 되였다. 인간이 역경일 때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락관적이 될수 있다고. 내가 2004년 개천절행사차 동명왕릉을 방문하고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앞에 도착했을 때에 시간은 저녁 5시경, 어디선가 울려퍼지는 브라스 밴드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욱…》, 《고난의 행군》을 이 한구절처럼 잘 그려낼수도 있을가? 젊은 항일투사들은 역경속에서도 미래를 락관하여 《아침은 빛나라 이 강산 은금에 자원도 가득한 삼천리 아름다운 내 조국》을 노래부를 그날을 그리며 웃으면서 영원으로 사라졌다. 이 순간 역설은 차라리 숭고하기까지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