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위인과 음악』 중에서

  

 7. 우리 민족끼리 장단맞춰 통일조국의 래일을 향하여

 

 □ 통일의 노래안고 분렬의 장벽넘어

 

외세에 의해 민족이 갈라져 장장 60여년.

그 기나긴 세월 북과 남으로 갈라져 우리 겨레가 겪은 민족분렬의 고통과 아픔은 정녕 그 얼마였던가.

외세가 이 땅에 쌓아놓은 민족분렬의 장벽으로 하여 갈라져사는 부모처자들의 생사여부도 알길 없이 수십년세월을 흘러보내면서 겨레의 가슴에 쌓이고쌓인것은 통일에 대한 갈망이였다.

민족분렬의 그 아픔과 갈망을 그 누구보다 뼈저리게 절감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지난 세기에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기치밑에 하루빨리 분렬의 비극을 끝장내고 조국통일의 새 아침을 맞이하기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이끌어나가시였다.

그 나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음악예술의 힘으로 민족화합의 새로운 장을 펼치시는 조국통일사에 일찌기 없었던 경이적인 사변을 안아오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1980년대에 우리 민족의 조국통일사에서 처음으로 통일의 노래안고 분렬의 장벽을 넘어 북과 남의 예술사절들이 서로 오가게 함으로써 민족의 화목과 단합을 이룩하고 조국통일의 새로운 활로를 열어나가도록 하시였다.

1984년 남조선수재민들에 대한 공화국의 동포애적인 구호조치가 실현된것을 계기로 여러 갈래의 북남회담과 접촉이 실현되였지만 이렇다할 결실이 없이 공회전만 거듭하고있었다.

이러한 실태를 료해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국해방 40돐을 계기로 북과 남사이에 예술단교환공연문제를 제기하도록 하시였다.

이것은 음악예술의 힘으로 통일의 길을 개척하시려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의지의 발현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북과 남이 예술단을 교환하여 민족적내용을 주제로 한 종목들을 가지고 공연하게 되면 민족적단합과 통일의 분위기를 마련하는데도 유리한 작용을 하게 될것이라고 하시면서 예술단교환에서 제기될수 있는 문제들을 동포애의 정으로 해결할 방도까지 밝혀주시였다.

그리하여 1985년 5월에 진행된 제8차 적십자회담에서는 공화국이 제기한 예술단교환공연문제에 대하여 북과 남이 합의를 보게 되였으며 마침내 그해 9월 민족이 분렬되여 40년만에 처음으로 북과 남의 수많은 예술인들이 고향방문자들과 함께 분계선을 넘어 서로 오가며 끊어졌던 민족의 혈맥을 이어놓는 민족사적사변이 펼쳐지게 되였다.

따뜻한 동포애의 정을 주고받으며 진행된 예술단교환공연은 조국통일을 절절히 바라는 민족의 뜨거운 열망과 우리 겨레는 하나의 민족이라는것을 뚜렷이 보여준 계기로 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1980년대에 이어 1990년대에도 민족분렬의 장벽을 넘어 북남사이에 통일음악행사들이 성대히 진행되도록 하시였다.

1990년 10월에 평양에서는 북과 남, 해외동포음악가들이 함께 출연하는 범민족통일음악회가 열렸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통일음악회에 범민족적인 성격과 의의를 부여하기 위하여 그 명칭도 《범민족통일음악회》로 하도록 하시고 통일음악회의 성격과 목적에 맞게 공연종목을 북과 남, 해외에서 창작된 조국통일주제의 작품들을 위주로 하면서 조국애와 민족애를 담은 작품들, 조선민요와 해방전 대중가요들을 가지고 출연하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범민족통일음악회무대에 올릴 예술인들의 공연종목과 범민족통일음악회 개페막행사에 이르기까지 그 준비사업에서 나서는 문제들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그리하여 분렬사상 처음으로 진행된 북과 남, 해외의 예술인들이 참가하는 범민족통일음악회는 명실공히 북남사이의 오해와 불신을 가시고 통일의 돌파구를 열어나가는 통일음악축전으로 되였다.

범민족통일음악회에서 이채를 띤 행사의 하나는 백두산천지의 물과 한나산 백록담의 물을 합치는 합수식이였다.

백두산천지의 물과 한나산 백록담의 물이 하나로 합수되고 참가자들모두가 터치는 통일만세의 함성속에 민족의 통일의지와 열기가 담긴 《통일축배가》의 선률이 울려나왔다.

 

축배 축배 축배를 들자 통일의 축배를

갈라져살수 없는 우리의 소원담아

천지의 맑은 물과 백록담 맑은 물을

한잔에 부어 함께 드니 마음도 하나일세

 

축배 축배 축배를 들자 통일의 축배를

만남이 뜨거우면 장벽도 녹이리

 

백두산의 물과 백록담의 물이 합쳐져 대하가 되여 흐른다면 통일의 축배를 들 그날은 반드시 오고야말것이라는 신심을 안고 범민족통일음악회에 참가한 북과 남, 해외동포들은 민족도 음악도 하나이며 온 겨레의 통일념원과 의지는 그 무엇으로써도 막을수 없다는것을 예술적화폭으로 펼쳐보였다.

《보고싶은 조국산천》, 《조국으로 가는 길》, 《고향의 봄》, 《모란봉》, 《조선은 하나다》, 《통일의 봄노래》, 《통일자장가》 등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문화를 창조하여온 조선민족에 대한 끝없는 자랑과 긍지, 자부심, 온 겨레의 통일념원과 의지를 담은 노래와 무용, 기악 등 다채로운 종목들이 무대에 펼쳐지자 온 장내는 통일열망으로 끓어번졌다.

범민족통일음악회 합동공연은 조국통일을 이룩하려는 민족의 한결같은 열망을 온 세계에 힘있게 과시한 민족회합의 무대, 통일의 무대였다.

범민족통일음악회에 참가하였던 윤이상선생은 《지금까지 북남은 지척이면서도 천리로 되여있었으나 이번에 서로 만나 리해하고 동포애의 정을 나눔으로써 천리가 아니라 정말로 지척으로 되였다. 나는 우리 조국이 하루빨리 통일되여 끝없이 번창하고 더욱 위대해지기를 바란다.》고 말하였다.

참으로 경애하는 장군님의 세심한 지도와 보살피심속에서 진행된 범민족통일음악회는 민족음악예술이 조국통일의 튼튼한 디딤돌로 되여야 한다는것을 확인한 축전으로서 끊어진 민족의 얼을 다시 잇고 조국통일의 새로운 장을 펼쳐놓았다.

남조선에서 진행된 90송년통일전통음악회 역시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로 민족적전통을 훌륭히 계승한 공화국의 아름답고 우아한 음악예술의 참모습을 보여주며 남녘동포들에게 통일의 뜨거운 열기를 부어준 중요한 계기로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90송년통일전통음악회의 성격과 내용에 맞게 몸소 이름지어주신 평양민족음악단은 주체79(1990)년 12월 8일 분렬의 장벽을 넘어 서울에 도착하였다.

평양민족음악단의 공연은 첫시작부터 공연관람자들의 심금을 뜨겁게 울려주었다.

첫 노래 《아리랑》으로 공연의 막을 올린 평양민족음악단은 《신고산타령》, 《바다의 노래》, 《평북녕변가》, 《옹헤야》 등 민족의 정서가 넘치는 민요곡들을 불러 관람자들의 대절찬을 받았다.

공연은 한종목에만도 평균 2∼3회의 재청을 받았고 노래가 끝나면 오랜 박수갈채속에 파묻히군 하였다.

공연종목이 시작되고 바뀔 때마다 공연장소가 깨여져나갈듯이 우뢰치는 박수소리가 터져올랐다.

민족분렬의 아픔이 일시에 가셔지는듯, 민족화합의 서사시적인 대화폭이런듯 무대를 향한 관객들도, 관객을 향한 배우들도 격정의 눈물을 감추지 못하였다.

배우들과 관중들이 통일의 노래를 부르며 함께 흘린 눈물, 그것은 단순한 눈물이 아니라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에 대한 절절한 념원과 통일을 위해 모든것을 바쳐가려는 굳은 신념과 의지의 분출이였다.

평양민족음악단의 공연에 대하여 남조선의 한 기자는 《온 서울바닥에 지진을 일으키고 남녘땅에 해일을 몰아온 통일의 대축제》였다고 말하였으며 공연을 관람한 한 서울시민은 《공연에서 서울과 평양의 음악가들이 통일에 대한 노래를 합창하였는데 남북의 음악가들은 통일이 다된셈이다.》고 말하였다.

참으로 90송년통일전통음악회는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음악회가 아니라 7천만겨레가 함께 통일의 날을 하루빨리 앞당기는 뜻깊은 통일음악축전이였다. 그것은 또한 대하처럼 굽이치는 민족의 통일열기는 그 무엇으로써도 막을수 없으며 분렬의 장벽은 무너지고 조국통일의 날은 기어이 오고야만다는것을 내외에 엄숙히 보여준 력사적인 대음악축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