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회고록으로 보는 세상이야기』 중에서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룡비어천가와 명비어천가

 

《룡이 하늘에서 내리샤》가 룡비어천가의 첫 구절인것은 누구나 다 안다. 《룡비어천가》는 리성계의 건국을 하늘에서 룡이 내린것에 비유하여 나라의 정통성을 확고히 굳히기 위하여 세종대에 쓰인것이다. 그래도 3대나 지나서 나온 글이다.

그러나 리명박《대통령》의 당선과 동시에 《명비어천가》란 신조어가 나돌았다. 《좌파정권청산》 그리고 《잃어버린 10년》을 다시 찾은 기분이였으니 가히 당선과 동시에 룡비어천가를 쓰는 기분이였을것은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남《한》의 력대 《대통령》들은 리명박뿐만아니라 당선이 되기가 바쁘게 자기자신으로부터 나라가 새로 건국되는듯이 룡비어천가를 쓰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룡비어천가를 쓰네》라는 류행어까지 나돌 정도이다. 우에서 좌로 바뀔 때 김대중《대통령》은 《제2의 건국》이라고까지 했으니 말이다.

이를 두고 강준만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는 《원조경쟁》이라 하면서 《<한국>사회의 독특한 풍경이라 할 치렬한 <원조(元祖)>경쟁은 비단 음식점들사이에서만 벌어지는건 아니다. 지도자들사이에서도 벌어진다. 자신이 새시대를 여는 원조로 기록되고싶어하는 지도자들의 야망경쟁은 <한국정치>의 익숙한 모습이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실용정부>라는 딱지가 바로 그런 야망을 웅변해준다.(《한국일보》 2008 2 20일부)고 하였다

이어지는 글에서 강교수는 지도자의 이런 심리상태를 《원조콤플렉스》라 한. 《우리 지도자들의 <원조콤플렉스>는 과거와 단절의 자세를 취함으로써 이전 정부들의 경험에서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으면서 모든걸 <정치화>하려는 특성이 있다. 바로 이게 성공을 어렵게 만드는 주요리유다. 뭐든지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의욕은 과거를 부정하면서 기존질서를 때려부시는걸로 시작한다.(같은 글)

《원조콤플렉스》란 외래어를 쓸 필요없이 《원조병(元祖病)》 혹은 《원조걸신병(乞神病)》이라고 하면 된다. 그러고보면 원조병은 보수뿐만아니라 진보에도 다 걸린 병이다. 진보와 보수간 정권이 바뀌는것을 한 나라안의 정권차원의 변화가 아니고 나라정체성이 완전히 바뀌는 정도라고까지 생각하는것 같다. 누군가 권력만 잡으면 스스로 단군이나 되는것처럼 자처해 건국의 아버지가 되려 한다. 진보든 보수든 이런 증상을 비슷하게 보인다는것은 어딘가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기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강교수의 글은 이 근본적인 원인을 진단해내는데는 실패했다고 본다.

즉 강교수는 《어떤 정부가 들어서느냐에 따라 자신의 인생과 가문의 영광이 좌우되는, 수천에서 수만에 이르는 엘리트가 사는 나라》가 《한국》이고 이런 나라이고보면 서로 자기가 원조라고 할 수밖에 없다는것이다. 강교수는 원조병을 지도자의 권력야망에 돌리기까지 한다. 즉 《원조콤플렉스》가 나쁜건 아니다. 야망이 없었다면 어찌 지도자의 자리에 오를수 있었겠는가. 중요한것은 야망을 옳은 방향으로 발휘하는 지혜이지 야망자체는 탓할게 못된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한국》의 원조병은 지도자 개인의 권력욕이나 인생과 나아가 가문의 영광이상의 심각한 문제가 있으며 이는 나라가 성립하는 건국의 단서와도 관계가 있는, 그래서 이 원조병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론리적인 분석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다시말해 원조병은 《콤플렉스》라는 한갖 개인적심리증상이상이라는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원조병의 원인이 건국이라는 론리에 있다는데서 다음과 같이 진단해보려 한다.

 

다산의 《원정》과 알랭 바디우의 집합론

 

정다산은 《원정(原政)》에서 조선조 말같은 삼정의 문란, 관료들의 가렴주구 등 같은 현상을 바로 보고 한 나라가 어쩌면 이렇게 될수도 있을가 회의하면서 도대체 나라가 어떻게 밑바닥에서 성립하는가를 보기 위해 《원정》을 썼다. 지금 읽어도 왕조시대에 어떻게 이런 글을 쓸수 있었는지 실로 대담한 글이라 아니할수 없다.

다산에 의하면 자고로 한 나라란 임금부터 있고 나라부터 있어 생긴것이 아니고, 인간들이 흩어져살다 모여 촌락을 만들고 촌락을 운영하는데 불편한것이 생기니 촌장을 뽑고, 범죄자가 생기니 그 촌장이 나서서 시비를 가리다보니 법이 생겨 이렇게 연장되여 나라가 되였다는것이다. 《원정》의 기본정신은 백성으로부터 백성이 주인이 되여 백성에 의한것이 나라가 세워지는 리유라는데 있다.

우리는 일제에 의하여 이런 《조선》이라는 나라가 완전히 없어지고 그것을 다시 찾아 건국을 하려고 했을 때는 사실상 다산의 이러한 《원정》의 정신에 의하여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나라다운 나라를 세울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을것이다. 대승적으로 보았을 때 이를 두고 위기는 곧 기회라 하는것이다. 봉건잔재를 청산하고, 수천년 때묻은 계급을 타파하고, 외세의 간섭없이 우리 힘으로 자주적인 나라를 세웠더라면 이것이 진정한 건국이지 않았을가 한다.

우리 한번 다산의 이러한 국가관을 현대프랑스정치철학자 알랭 바디우의 수학적존재론에 립각하여 재검토해보자.

알랭 바디우는 수학의 집합론을 리용하여 백성들을 구성요원 혹은 《요소(element)》로 보았을 때에 이런 구성요소들은 집합에 《귀속(belonging)》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1차적인 요소들의 귀속에 의하여 만들어진것을 《상황(situation)》이라고 한다. 학생이라는 구성요소들은 《학급》을 만들고 이때에 학급은 요소가 아니고 《부분(part)》이라고 한다. 그런데 부분은 학교라는 집합에 귀속한다고 하지 않고 《포함(inclusion)》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 부분들이 포함되는것은 상황에 대해 《상황의 상태(state of situation)》라고 한다. 이런 몇가지 중학생정도의 집합론적용어만으로도 우리는 그의 정치관을 충분히 리해할수 있다.

결론부터 먼저 말해두면 현대의 국가는 상황이 아니고 상황의 상태라는것이다. 국가의 지도자는 상황의 구성요원들 즉 국민들에 의해 선출되지만 국가가 경영하는것은 부분들이지 요소가 아니다. 아니, 국가는 자기를 선출해준 구성요원들을 억압하고 구속하는 존재로 돌변한다. 여기에 상황과 상황의 상태사이에 긴장관계가 발생하고 상황의 요원들인 인민, 국민, 민중들이 볼 때 국가는 더이상 친근한 존재가 아니다. 요소들로부터 권력이 나오는데 요소들이 오히려 착취와 억압을 당하는 이러한 《국가》와 개인의 관계는, 그것은 모두 집합론상의 론리적구조에서 불가피하다는것이 바디우의 주장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요소와 부분 그리고 귀속과 포함을 구분하는것, 그리고 나아가 그들간의 관계를 파악하는것은 너무도 중요하고 국가라는 개념을 만드는데 신기원을 만들수 있을것이다. 이러한 구분을 하는데서 바디우의 정치철학이 각광을 받고 주목을 받는 리유가 있다.

아직 살아있는 프랑스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2008년 남쪽에서 열리는 세계철학자대회(7 30일∼8 5)에 주제강연자로 되여있다. 그는 지금 탈현대이후 서양철학의 대안으로 떠오르는 인물이다. 그가 영미분석철학과 현상학 그리고 탈현대의 제 철학을 모두 종합할수 있는 대안의 철학자로 부상하는 리유는 그가 단단한 수학적기반우에 철학을 전개하고있기때문이다.

그는 한때 마오이스트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그도 초기사상에서는 상황의 상태를 억압구조로 보고 이를 제거의 대상으로 겨냥, 마오이스트가 되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그러면 왜? 《원정》에서 보는바와 같이 상황으로 되돌아가 건국을 하려는 이 정치적본능, 이것이 맑스주의국가관이였으나 바디우는 상황과 상황의 상태는 불가분리적이며 그래서 긴장관계라 보고 맑스주의같이 상황에서 상황의 상태를 분리시키는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것이다. 그가 맑스주의와 결별하는 리유이다.

 

일반선거와 당원선거를 분리하는 리유

 

우선 해방이후 《건국》이라는 화두에 이 집합론의 간단한 개념들을 적용해보고 원조걸신병의 원인을 진단해내자. 서양에서 《국가(nation 혹은 state)》라는것이 처음 생긴것은 프랑스혁명이후부터라는데는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럼 왜 하필이면 프랑스혁명후부터인가? 이것은 수학적인 질문이다. 다시말해 집합론적질문이다.

그 리유는 프랑스혁명이후에 처음으로 시민사회가 생겼고 이 시민사회란 혁명이전에는 구성요소로 있던 개인들이 하나의 집합을 만들어 시민단체가 생겨났고 이것이 발전하여 정당이 된다는것, 이는 집합론적으로 보아 요소가 모여 부분이 되였다는것을 의미하며 그리고 국가는 다름아닌 이런 《부분들의 집합(set of parts)》이라는것이다. 그래서 현대의 국가는 정당을 전제하고 정당의 대표에 의한 의회정치를 전제한다. 이런 국가관이 지금까지 유효한것이다.

다시 정리하면 봉건시대의 개인이란 구성요소가 집합을 만들었으며 이는 곧 더이상 요소가 아니고 《부분》이다. 정당이다, 단체다 하는것이 바로 이런 부분에 해당한다는것이다. 여기서 《리념 (Idea)》이라는것이 부분을 만드는데 중심역할을 한다. 다시말해 혈연 그리고 지연에 의한 봉건시대의 집합은 리념에 의해 모인 집합이 아니기때문에 이런 혈연, 지연에 의한 부분들의 집합을 두고 《국가》라 할수 없다는것이다.

이는 공동체와 사회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다시말해서 리념에 의하여 개인이 재구성되여 부분이 만들어지면 이 부분의 집합이 바로 《국가》라는것이다. 프랑스혁명이후에 비로소 리념에 의한 부분이 만들어졌다는것이다. 집에서 개인아이가 학교에 들어가 처음으로 학급에 편승되였을 때 그리고 교복을 입었을 때의 기분같은것을 프랑스인들은 혁명이후 경험할수 있었다. 몇학년 몇반의 구성요원들이 교복이란 유니폼을 입고 부분으로서 학교에 포함되는것을 느끼게 되는것과도 같은 의식변화말이다.

개인이 요소에서 부분이 된다는것은 엄청난 의식의 변화이다. 귀속하는 존재가 아니고 포함되는 존재라는것을 의식하는 순간 그 개인은 국가를 위해 죽을수도 있다는 각오까지 하게 된다. 자기의 주검이 있는 관우에 국기가 덮이고 애국가가 연주되는 순간 《조국을 위해서》란 명예를 자랑스러워한다.

그렇다. 국가란 상황이 아니고 상황의 상태이다. 이것이 현대의 국가개념이다. 그런데 문제는 요소가 부분을 만들고 그 부분이 전체집합에 포함이 된다면 이를 바디우는 《정상(normal)》이라고 한다. 그런데 귀속은 되나 포함이 안되는 경우나 포함은 되나 귀속을 안하는 경우가 생긴다. 여기서 부분과 전체의 관계가 복잡해지고 국가와 개인간의 조화도 갈등도 함께 증폭된다.

현대국가에서 상황과 상황의 상태간의 긴장관계는 지난번 《대통령선거》에서 후보를 경선하는 과정에서 여실히 나타났다. 여당과 야당이 모두 당원대의원투표와 일반국민투표를 동시에 하였다. 박근혜같은 경우 당원대의원선거에서는 이기고 일반선거에선 패배했다. 손학규는 그 반대였다. 그럼 왜 이 두가지 방법을 같이 병행해야 하는가이다. 그 리유는 현대국가란 상황과 상황의 상태란 이중구조로 되여있기때문이다. 다시말해서 국가의 지도자가 상황의 요소들로부터(일반선거)와 상황의 상태(정당대의원)의 두곳에서 동시에 표를 얻어야 진정한 대표성을 갖기때문이라는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선과정의 선거제도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있다는것은 상황과 상황의 상태의 긴장관계가 단순하지 않다는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것이다. 지금 미국대통령예비선거에서도 당원대의원선거와 일반선거를 동시에 치르고있는것은 잘 알려져있다. 그리고 본선에서도 직접선거와 선거인단선거를 병행한다. 현대국가개념에선 불가피한 현상이다. 상황과 상황의 상태의 관계를 한눈에 일별해 리해하기 위해 례를 든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정치공부하기 앞서 론리학과 수학을 공부해야 할 리유가 있다. 《한국》에 온 빌 게이츠가 미국의 미래는 수학과 과학교육에 달려있다고 하는 말에 귀기울여 들어야 하는 리유가 여기에 있다.

국가는 상황의 상태의 부분들을 포함하기때문에 상황속에 있는 개인 하나하나에 대하여 공권력의 이름으로 억압을 하고 통제수단으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개인들은 자기들의 국가의 권력은 자기들로부터 나온다고 한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국가에 대하여 주장하려 한다. 영국의 경험주의철학자 대비드 흄은 《힘은 언제나 피지배자인 민중에게 있지만 민중은 지배자에 종속한다.》고 했다. 민중들이 투표를 해 지도자를 선출하지만 지도자는 언제나 민중을 탄압한다.

이에 대하여 촘스키는 《지배받기를 거부하고 정의롭지 못한 행위를 비난하는 민중과 그들을 부당하게 지배하려는 세력간의 갈등이 인류의 력사이다.》라고 했다.(촘스키, 129) 맑스주의가 그렇게 국가를 타도의 대상으로 본 리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촘스키도 맑스주의도 수학에 무지했다.

레닌과 모택동도 림종순간까지 국가가 사라지지 않는데 대하여 그 비밀을 알지 못하고 궁금해하였다. 공산주의와 아나키스트가 다른 점은 후자는 상황의 상태를 전적으로 부정하는데 있다면 전자는 국가대신에 당으로 이를 대치하려는데 있다. 부분이 당이며 그이상은 구차한 혹같은 돌출적인것에 불과하다는것이다. 그러나 혹떼려다 혹붙인다. 그 리유는 상황의 상태는 제거의 대상이 아닌 불가피한것이라는것이 바디우의 답이다. 그럼 해방후 우리 나라의 건국은 《정상적》으로 되였는가?

 

원조병의 원조는 리승만이다

 

이런 리론적배경은 남북의 건국과정과 왜 남에서 원조걸신병이 생기는지 그 리유를 잘 설명해낼수 있다. 답은 간단하다. 남은 상황없이 상황의 상태로만 나라를 세웠다. 이 말은 인민이든, 국민이든, 백성이든 개개 구성원들의 의지도 힘도 반영 안된 리승만이 미국에 앉아 사귄 친구들과의 외교적활동을 통해 끌어들인 유엔, 궁극적으로는 미국의 힘으로 상황의 상태에서부터 건국을 한것이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이라는것이다. 나라의 구성조건의 두가지, 즉 상황과 상황의 상태가운데 전자가 전적으로 결여된 건국을 하였다는것이다. 바디우는 이런 상황이 없는 상황의 상태를 《돌출(excrescence)》이라고 했다.

물론 정당도 있었고 단체도 있었고 선거도 있었고 그것이 지금도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모두 상황에 귀속한것으로 된 부분으로 된것이 아니고, 아니 이것이 전적으로 배제된 상황의 상태에서 나라가 세워졌다는것이다. 건물로 말하면 기초가 없는 기둥과 지붕으로만 집이 만들어진 격이다. 그래서 남《한》은 폴 틸리히란 신학자의 말대로 《흔들리는 터전(shaking foundation)》이다. 리승만의 방식은 일본에 의하여 잘 교육받은 인재들을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전분야에서 풀가동하였고 이들 관료들의 공급을 받아 건국하는것이였다.

다시말해 상황의 상태의 전문《정객들(statesman)》이 세운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이들 《정객들》은 말그대로 상황의 인간들이 아니고 상황의 상태의 인간들이란 뜻이다. 이런 정객들은 최고통치자가 되는 순간 결여돼있는 상황으로 가 나라를 세우려는 콤플렉스에 걸리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콤플렉스로 끝나고만다. 그렇게 하기에는 이미 외세와 기득권자들의 장벽이 너무 크기때문이다. 혹같은 돌출이 이젠 몸의 한 부분이 되여버렸기때문이다. 이것이 원조병의 원인이고 그 원조병의 원조는 결국 리승만이다.

그러나 우리도 프랑스같이 상황의 요원들에 의해 부분이 만들어지고 상황의 상태에 의한 나라를 세울수 있었던 기회가 없었던것은 아니다. 그 기회가 바로 동학농민혁명이였다. 이 혁명은 전국에 포접을 만들고 집강소를 두어 당이나 시민단체형태의 부분을 만들어 나갈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기회를 놓치고말았다.

해방이후 《한국》정치인들이 걸린 원조병은 다름아닌 동학혁명이 놓친 상황으로 되돌아가 나라를 세우려는 무의식의 발로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전봉준같이 피를 흘려야 하고 정치지도자자신이 그 변혁의 한가운데 서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그렇게 할만 한 용기도 의지도 없다. 원정을 동경은 하면서도 실현할만 한 능력은 없었다.

그래서 《원조병》이란 다산이 말하는 《원정허증세(原政虛症勢)》라고 할수 있다. 상황의 받침이 없는, 그래서 항상 그것에로 재귀하려는, 그러나 그렇게 할 능력이 없는 정치인들이 걸리는 전형적인 병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정치적원조병은 일종의 성병과 같은 《발기부전증(impotence)》에 해당하는 심각한 병증세이다. 이런 병증상의 원조가 바로 리승만이다. 원조병의 원조자체가 리승만이란 뜻이다. 이런 원조병은 우리 정치현실에 하나의 원죄와 같이 대를 이어 유전되고있다.

그러나 문제는 상황의 요원격들인 인민대중 혹은 민중들은 자기들로부터 유리된 상황의 상태에 저항하고 청산의 대상으로 삼는다. 여기에 근본적인 남《한》사회의 갈등의 구조가 있는것이다. 그리고 리승만이후 그것이 좌파든 우파든 자기가 상황에서부터 시작한 원조라고 자처하려 한다. 결국 리승만이 끼운 첫 단추에서부터 원조콤플렉스가 시작된것이다. 그러나 어떤 《대통령》도 자기들자신들이 민중속에, 인민속에 들어와있지 않기때문에 콤플렉스는 콤플렉스로 끝나고만다.

근본적인 원인을 모르기때문에 좌파는 우파에, 우파는 좌파에 실패의 원인을 책임전가한다. 《문민》, 《참여》, 《실용》 등 아무리 이름을 붙인다고 하더라도 이름은 이름일뿐이다. 이름은 상황에 가닿을 때에 그 진정성을 갖는데 이를 바디우는 《충실성(fidelity)》이라고 한다. 상황과 상황의 상태의 련계성은 충실성으로 가능해진다는것이다.

 

지역감정과 철새가 생기는 리유

 

이렇게 《원정허증》으로서의 원조병의 후유증은 심각하다. 서구식민주주의를 도입한지도 반세기가 넘는다. 그러나 정당정치도 의회정치도 제대로 안되고있다. 지역감정만 독버섯같이 번지고 이 정당에서 저 정당으로 오락가락하는 철새정치인들만 량산되고있다.

그 리유는 간단하다. 상황에서 리념을 같이하는 인간들이 모여 정당이란 부분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것이 안되기때문이다. 안되는 리유는 바로 그 리념이란것으로 상황의 구성원들을 법적으로 구속해 놓고있기때문이다. 즉 《반공》이란 틀을 전제해놓고 그속에 그리고 그 한계내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리념이 생길수 없기때문에 정당도 있을수 없다. 정당이 없는 곳에 지역감정에 의한 사이비집단이 부분의 역할을 대신하고있다.

이렇게 변태적이고 비정상적인 부분들이 자생적으로 생길수밖에 없다. 소위 의회민주주의 그리고 자유민주주의란 이름으로 반세기이상 지나오고있지만 한걸음도 정치가 발전하지 못하는 리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당이 성립하지 않으니 정치인들이 있을수 없고 나라는 자기 생존을 위해 철따라 날아다니는 철새의 서식처가 되여버렸다.

이러한 분석과 함께 원조병의 기원과 리유와 유래는 분명해졌다. 바로 상황이 결여된 《대한민국》에서는 누구든지 《대통령》이 되는 순간 자기들의 무의식속에 리승만이 생략한 상황에 구성요원들이 귀속되는 그리고 자기가 거기에 귀속하는 그러한 나라를 세우고싶어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인민과 대중의 지지를 받는 지도자가 바로 자기자신이라는 확신을 갖고싶어한다. 바로 이것이 원조병의 기원이라는것이다.

 

그럼 김구였다면?

 

그럼 리승만이 아닌 김구가 건국을 했더라면 하고 가정을 세워보자.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사정은 별차이가 없었을것이다. 리승만이 미국에 앉아서 상황의 상태에서부터 나라구상을 했다면 김구는 상해에서 독립군을 양성하고 무장소조를 통해 리봉창, 강우규 등 렬사들을 통해 일제의 요인암살같은 테로의 방법으로 투쟁하였다.

그러나 그는 인민대중들을 묶어내여 현대국가의 전제가 되는 부분들을 조직화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독립군들은 일제말기가 가까워오자 대중적기반이 없어서 존속기반마저 어렵게 되였다. 식량과 무기가 거의 바닥이 날 지경이였다. 그의 투쟁은 한번도 국내에 총성을 울리지 못하였다. 그는 국민들의 추앙은 받았지만 인민대중속에 깊은 뿌리를 내리지는 못하였다. 그렇다고 그는 리승만같이 전승국인 미국과의 외교적연줄도 맺지 못하였다. 즉 그는 상황도 상황의 상태도 갖추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가 지금 화페의 인물도안으로 추천받을만큼 국민의 숭앙을 안고있는것은 무시할수 없다. 그는 상황의 유리한 고지를 가지고있었지만 상황의 상태를 장악하고있는 리승만에게 그것은 차단될수밖에 없었다. 즉 그의 대중적기반은 그 강한 의지와 열정에도 불구하고 조직화되여 정당으로 발전하여 힘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김구가 나라를 세웠더라면 지금과 같이 원조병이 심각하지는 않았을것은 분명하다.

 

김일성주석이 세운 나라 DPRK?

 

이렇게 건국의 론리적배경을 말하고나면 답은 간단하다. 다시말해서 《나라를 어떻게 상황과 상황의 상태가 하나로 일관성있게 련관이 되는 방법으로 건국할수 있겠느냐.》이다. 우리는 이러한 론리적배경과 함께 회고록 전권을 통해 상황과 상황의 상태라는 상관관계적립장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이 어떻게 건국되는지 고찰해보는것이 여러가지로 남과 비교가 되는것을 발견할수 있다. 혈연과 지연에 의한 공동체라는 부류를 타승하고 새로운 리념(설령 그것이 사회주의리념이라도)에 의한 부분집합이 만들어져가는 과정을 상세하게 회고록을 통해 볼것이다.

1917년 김형직선생에 의한 《조선국민회》-1926년의 《타도제국주의동맹》-1927년 공청-1932년 항일무장유격대 창건-1936년 조국광복회 창건-1946 8 29일 북조선로동당 창설-드디여 19489 9 DPRK 창건 혹은 건국.

김일성주석은 맑스와 같이 국가없는 공산주의를 생각하지 않았다. 바디우와 같이 상황의 상태는 불가피한것으로 생각하였다. 개인이 평등한 세상과 개인은 사회화되여 집단적이 되여야 한다고 생각하여 우와 같이 끊임없이 조직을 만들어나갔다. 그것은 현대국가가 성립하기 위한 불가피한것이기때문이다. 공산주의와 민족과 국가는 얼마든지 병행할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조국광복회10대강령속에는 바로 상황과 상황의 상태의 련계성을 지적해놓고있으며 단위국가는 국제관계도 잘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항일혁명 20년을 이끌어올수 있었던것이 바로 인민대중들속에서 즉 상황속에서 《고난의 행군》을 하였기때문이다.

해방과 함께 살아 같이 돌아온 유격대원들이 로동당요직과 최고인민회의 대표가 되여 상황의 상태를 만들었다. 상황에서 상황의 상태로 이어지는것은 바디우의 말을 빌리면 《자연적》이였다. 이것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의 론리적구조이다.

주체헌법 63조의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고 할 때에 이 조항에는 분명히 집합론적개념을 그대로 표현하고있다. 상황과 상황의 상태의 련관성은 건국을 위해 필요한 조건인 동시에 국가를 경영하는 기술이기도 하다. 이 말은 끊임없이 상황과 상황의 상태는 련결고리를 만들어야 한다는것을 의미한다. 충실성만이 그렇게 한다. 이를 회고록에서는 지도자와 인민들사이에 반드시 있어야 할 신뢰와 사랑이라고 했다. 프랑스혁명의 자유, 평등, 박애같은것도 혁명이후 사건이 만들어져가기 위한 충실성이다.

그러나 바디우는 경고한다. 하나와 전체사이의 귀속과 포함의 문제 그리고 요소와 부분의 관계성은 항상 우리를 비결정, 불완전, 무작위성으로 내몰고있다고. 《혁명은 한번 하는것보다 그것을 계속 진행형으로 해나가는것이 더 어려운 리유는 바로 전체와 부분사이에서 항상 이런것들이 기다리고있기때문이다.》라고. 그러나 《인민과 지도자사이에 사랑과 신뢰가 있는 한 혁명은 영원할것이다.》라고.

결국 원조병이란 지도자와 인민대중사이에 신뢰와 사랑의 고리가 없을 때에 지도자는 항상 상황에서 원조를 확인하려 하지만 그렇게 할수 있는 능력이 없는데서 생기는 발기부전증과 같은 병이라 할수 있다. 그러나 치료제가 없는것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주체를 세우는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새 지도자가 리승만과 같이 《외교》로만 모든것을 풀려고 하는것은 상황의 상태에서만 문제해결을 하려고 하는 또 다른 부전증이라 할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