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위인과 음악』 중에서

 

  6. 노래소리드높이 강성대국건설에로

 

□ 주체음악예술의 창창한 미래를 위해

 

태양의 따뜻한 빛과 열을 떠나 드넓은 대지에 만발한 꽃들에 대하여 생각할수 없듯이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따뜻한 손길을 떠나 주체예술의 찬란한 미래에 대하여 생각할수 없다.

주체음악예술이 년대와 년대를 이어 눈부신 성과와 발전을 이룩할수 있은것은 음악예술인후비육성에 언제나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주체음악예술의 튼튼한 토대를 마련하여주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현명한 령도의 결과이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1960년대에 벌써 음악예술인재들을 키워내는 사업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후비육성사업을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나라의 믿음직한 음악예술인후비양성기지로 훌륭히 전변된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의 발전력사가 그것을 잘 말해주고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찌기 앞으로 음악대학에서는 교육에서 주체를 튼튼히 세워 모든 학생들을 음악예술의 대를 이어갈 후비대로 튼튼히 키워야 하겠다고, 세계를 들었다놓는 재능있는 독주가, 성악가수도 바로 음악대학에서 나와야 한다고 하시며 대학교육이 나아갈 앞길을 환히 밝혀주시였다.

음악무용대학을 예술인후비를 키워내는 《원종장》, 예술발전의 후방기지라고 하시며 자신께서 애용하시던 피아노까지 보내주신분도 경애하는 장군님이시였다.

그 나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선로동당 제5차대회 행사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 음악무용대학(당시) 녀성기악중주단의 형상수준을 높이도록 세심히 지도해주시였으며 예술인후비들을 위한 일은 나라의 장래예술발전과 직접 관련되는 중요한 문제이며 그들을 위해서는 그 무엇도 아까와해서는 안된다고 하시며 음악무용대학에 보내줄 악기수량까지 지적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나라가 허리띠를 조이고있던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에도 재능있는 음악예술인들을 많이 키우는것을 주체음악발전의 장래와 관련되는 근본문제의 하나로 틀어쥐시고 음악예술의 창창한 미래를 키워내는 대학의 교육사업을 개선하기 위하여 각별한 관심과 마음을 쓰시였다.

우수한 인재를 키워내는데서는 천성적인 소질과 교육의 비중을 옳게 정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교육을 보다 체계화하고 정규화하여 음악예술인재양성에서 전환을 가져오도록 하신 경애하는 장군님이시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주체83(1994)년부터 주체94(2005)년까지만 하여도 이 대학의 교육사업과 관련하여 주신 말씀은 수십여차, 학생들의 노래형상을 지도해주신것은 10여회, 지도해주신 작품들은 근 40편에 달한다.

그 나날 대학교육과 관련하여 학생들을 선발하는 문제, 개별교수에 의한 전공교육을 강화할데 대한 문제 등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재능있는 음악예술인들을 키워내기 위하여 기울이신 심혈은 또 얼마인지 모른다.

선군혁명령도의 길을 끊임없이 이어가시는 속에서도 새 음악대학을 일떠세울 웅대한 구상을 무르익히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주체92(2003)년 5월 음악대학을 새로 훌륭히 건설할것을 몸소 발기하시였다.

이것은 음악예술발전의 백년대계를 위한 결단이였다.

새로 건설될 음악대학의 설계를 맡은 설계집단에 대학의 규모와 수용능력에 대하여 일일이 가르쳐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여러차례에 걸쳐 음악대학을 잘 건설하여야 한다고, 당에서 음악대학을 멋있게 건설하여 교직원, 학생들에게 선물로 주자고 하는것만큼 최상의 수준에서 현대적으로 잘 짓도록 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구체적인 갖춤새와 건설방향에 대하여 세심한 지도를 주시였다.

그리고 그후에는 몸소 음악대학설계안을 보아주시고 음향적특성과 요구를 고려하여 음악대학형성설계를 최상의 수준에서 완성하도록 하시였으며 음악대학건설을 군인건설자들에게 맡겨주시여 짧은 기간에 끝내도록 이끌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전선시찰의 길에서도 자주 음악대학건설정형을 알아보시고 공사의 질을 최상의 수준에서 보장할데 대한 문제, 건설을 빨리 끝내며 시공을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할데 대한 문제를 비롯하여 대학건설과 관련한 구체적인 과업을 주시였을뿐만아니라 악기들과 콤퓨터설비들을 비롯한 교구비품들도 동시에 갖추는 립체전을 펼치도록 하시였다.

이렇듯 주체음악예술의 앞날을 떠메고나갈 후대들에게 베풀어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다심하신 사랑과 은정속에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은 예술교육의 전당으로 훌륭히 건설되게 되였다.

주체95(2006)년 5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훌륭하게 완공된 평양음악대학을 현지지도하시였다.

새 세기맛이 나게 정결하면서도 시원하게 꾸려진 대학의 전경을 부감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중앙현관홀과 전공학과의 개별수업실, 여러 강당들과 식당, 기숙사 등 오랜 시간에 걸쳐 대학의 곳곳을 돌아보시며 음악대학이 천지개벽되였다고, 음악예술의 전당으로서의 체모를 훌륭히 갖춘 현대적인 대학으로 되였다고 대단히 만족해하시였다.

대학을 돌아보시면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음악예술의 앞날을 떠메고나갈 교직원, 학생들의 학습과 생활을 두고 깊이 마음쓰시며 교실의 교구비품으로부터 전공학교사와 음악당의 랭온풍능력과 시설은 물론 대학의 난방문제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헤아려주시며 은정깊은 사랑을 베풀어주시였다.

알루미니움으로 된 출입문은 겨울에 랭기를 받아 실내온도가 낮아질수 있으니 나무로 바꾸어주고 식당창문도 얼른거리지 않는 맑은 유리로 바꾸어주자고, 800석음악당에 들리시였을 때에는 연주용대형피아노를 놓아주어 마음껏 연주하도록 해주자고 뜨겁게 말씀하실 때 일군들은 후대들을 위하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다심한 사랑에 눈굽을 적시였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교육사업은 인재를 키우는 중요한 사업이다, 우리가 교육사업에 아끼는것이 없이 투자하는것은 돈벌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후대들을 잘 키우기 위해서이다, 후대들을 위해서는 그 무엇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시며 예술인후비육성에 주실수 있는 모든것을 다 베풀어주시였다.

참으로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은 후대들에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의 결정체이며 선군음악예술의 창창한 미래를 담보하는 원종장이다.

음악예술후비육성을 위하여 바쳐가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렇듯 정력적인 령도와 뜨거운 사랑속에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을 비롯한 전국각지의 예술교육기지들에서 수많은 예술인후비들이 자기의 재능을 마음껏 활짝 꽃피우고있으며 국내는 물론 국제무대에 나가서도 눈부신 성과를 거두고있다.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에서는 주체84(1995)년부터 주체94(2005)년까지의 기간에만도 백수십여명의 교원, 학생들이 《2. 16예술상》개인경연에 입상하였고 2백수십여명의 학생들이 청소년개인경연에 입상하였을뿐아니라 많은 졸업생들이 공훈국가합창단을 비롯한 이름있는 예술단체들에서 선창가수들로 명성을 떨치고있다.

제11차 《쥬세뻬 디 스떼파노》국제콩클최우수상 수상자인 독창가수 리향숙과 카네기국제바이올린콩클수상자 문경진을 비롯하여 최근년간 국제콩클에 나가 높은 예술적기량으로 선군조선의 존엄을 떨친 유명한 음악예술인들이 다 이 대학에서 배출한 전도양양한 새 세대 예술인들이다.

정녕 희세의 음악정치가이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을 높이 모시여 주체음악예술의 미래는 창창하며 선군의 내 나라, 내 조국의 하늘가에는 창조와 전진, 영광과 행복의 선률이 끝없이 울려퍼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