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회고록으로 보는 세상이야기』 중에서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배움의 천리길, 책속에 길이 있다

 

두 장로《대통령》의 나라망친 추억

 

일본의 저명한 학자가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는 세가지 관건을 제시한적이 있다.

첫째 부동산문제, 둘째 남북문제, 셋째 그리스도교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이 세가지 문제에 다 깊이 관련이 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였다.

이 학자는 이 세가지가 잘못 풀리면 구한말의 위기를 다시 맞을것이라 경고까지 하고있다. 일본인학자이지만 《한국》의 현실을 투명하게 바라보고있는것 같다.

벌써 들먹이는 부동산값 폭등, 그는 소망교회 장로, 인수위 구성주요인맥이 거의 같은 교회교인들, 뉴 라이트 같은 그리스도교 정치단체의 지원, 미국 그리스도교 보수강경파에 적극 후원을 받아 경색될 남북관계, 어쩌면 일본학자의 지적은 오늘의 《한국》을 두고 한 예언 같아보인다.

우리는 3명의 그리스도교 장로출신《대통령》을 갖게 되였다. 리승만, 김영삼 그리고 리명박이다. 력대 《대통령》가운데 리승만과 김영삼은 최악의 《대통령》이였다. 리승만은 정치를, 김영삼은 경제를 망친것이 망국의 수준에 이르도록 망쳤다. 5년후 리명박은? 우리가 그리스도교를 경계하는 리유는 간단하지 않다. 과연 소망교회에 소망이 있을가?

이 학자는 말하기를 이 세가지 문제를 잘 해결하지 않으면 구한말과 같은 위기를 맞을것이라 했다. 남북문제 하나만 보면 리회창보다는 최악의 선택은 아닌것 같지만 이 세가지를 모두 고려하면 리명박은 최악의 선택인지 모른다. 적어도 리회창에겐 나머지 두가지 우려는 덜수 있었기때문이다.

 

분하고 억울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개표후 열흘이 지나가고있지만 우린 지금 정신적공황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있다. 다른 선거때와는 달리 몇가지 생각들이 번갈아 가며 우리의 뇌리를 짓누르고있기때문이다.

원통하다. 거짓말앞에 진실이 여름철 얼음고물보다 더 쉽게, 허무하게 녹아내린것이 원통하다. 세조의 잘못을 알고도 그것을 바로잡지 못하고 죽은 사륙신의 원통함같은것이 가슴속을 쓸어내린다.

분하다. 친일매국노들에 뿌리를 둔 수구세력들에게 《정권》을 다시 내준것이 분하다. 나라잃고 비분강개 자살한 민영환의 분함같은것이 머리끝까지 치민다.

한스럽다. , , , 리 소위 범여권 주자들이 끝까지 단일화하지 못한것은 두고두고 한으로 남을것이다. 그래서 이 4인에 대한 국민들의 원망은 갈수록 쌓일것이다.

억울하다. 진보도 아니고 좌파도 아닌 로《정권》이 저질러놓은 잘못을 다 덤터기로 뒤집어쓰고 말 한마디 변명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진보가 주저앉는것이 억울하다. 이건 완전히 루명을 뒤집어쓰고 꺾인것이다.

 

로무현을 위한 변명?

 

《한나라당》은 마치 훈련소에서 사격술을 배울 때에 목표물을 정조준하기 전에 가상목표물(가늠쇠)을 먼저 겨냥하는 조준선정렬을 하는 론리를 기가 막히게 구사하였다.

가상목표물이란 무엇인가?

그것이 《좌파정권》 그리고 《잃어버린 10년》 등 구호였다. 로무현《정부》가 좌파라고? 이건 허구로 만들어놓은 가공물이다. 그러나 이 가공물이 과녁을 겨누는데 리용된것이다.

로무현《정부》는 《한국》정치사에 기이한 존재로 기록될것이다. 선거패인을 놓고 진보진영에서는 《신자유주의정책으로 인해 로무현<정부>의 실패는 예정된 결과》라고 평가한다. 반면, 보수진영은 《로무현<정부>의 반시장적규제가 경제파탄을 초래했다.》고 주장한다. 《실패》라는 결과는 한목소린데, 원인진단은 역설적으로 일치한다.

적의 적마저 적인 기이한 현상을 로무현《정부》가 만들었으며 이를 두고 이중구속적이라고 한다. 다시말해서 적군으로부터도 적이고 우군으로부터도 적인 이런 기가 막힌 상황속에서 진보진영은 《선거》를 치른것이다. 이런 증상을 아마 사가들은 《로무현증상(Roh's Syndrome)》으로 기록할지 모른다.

나는 이 증상을 《어중이떠중이증상》이라고 재정의하고싶으며 《대통령》이 이 지경까지 될수밖에 없는 원인을 꼭 로무현자신에게서만 찾고싶지 않다.

아무리 반미자주외교를 하고싶어도 할수 없는것이 《한국》의 운명이다.

이라크파병 그리고 《한》미FTA 등 《한국》의 《대통령》이 자의로 결정할수 있는 권한이란 극히 제한적이다. 우리의 자주권이 없기때문이다. 이것이 로무현을 위한 변명 아닌 변명이다.

리명박은 아예 이 자주권포기를 전제로 하고있기에 이런 문제로 《어중이떠중이증상》은 나타나지 않을것이다. 계속 미일예속관계만을 유지해도 그는 얼마든지 할 말이 있기때문이다. 그러나 로무현은 대미문제를 두고 후보자시절과 그 전후가 서로 상반되였기때문에 이런 증상이 나타난것이다. 패인을 두고 이런 대미자주권의 시각에서 바라보지 않는 우리의 시각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학도가》를 다시 부르자

 

그럼, 변속기에로 어떻게 발을 옮길수 있는가? 진보에게 길도 있고 방법도 있다. 지금 총선출마차비를 할것이 아니다. 지금 나가면 공멸을 하고 회복불가능상태에 직면하고말것이다. 안된다. 다시 분렬의 분렬만 자초할뿐이다. 내공을 길러야 한다. 그것은 다시 손에 책을 드는것이다. 공부를 하고 배우는것이다.

좀 진부해보이는 제안일지는 몰라도 책을 읽는 길만이 희망이라는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소개한다. 책을 읽는 길만이 지금 원통하고 분하고 억울한 가슴을 위로할수 있을것이다. 지금 보수가 제일 무서워하는것이 진보가 다시 공부하는것이다. 80년대 보수가 독재권력에 젖어 골이 비여있을 때에 진보는 책을 읽었던것이다. 그 힘으로 10년을 이끌어왔다.

《빼앗긴 10년》을 다시 찾자면 가속기를 다시 밟아서는 안된다.

변속기로 발을 옮겨 기틀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 이렇게 할 때에 우리 진보는 다시 성공할수 있을것이다. 책을 읽어 내공을 길러라. 이 길만이 다시 살길이다.

시골에서 밭갈이를 하면서 친환경적생활태도를 몸에 익히고 밤이면 주경야독하는 심경으로 책을 읽어야 한다. 김인식(金仁湜)이 작사작곡한 《학도가》를 다시 부를 때이다. 《학도가》는 1905 평양서문밖 소학교에서 련합운동회를 열 때 발표되였다.

 

《학도가》

 

학도야 학도야 청년학도야/ 벽상의 계종을 들어보아라/ 소년이로(少年易老)에 학난성(學難成)하니/ 일촌광음(一寸光陰)도 불가경(不可輕)일세/ 청산속에 묻힌 옥도 갈아야만 광채나고/ 락락장송(落落長松) 큰 나무도/ 깎아야만 동량(棟粱)되네/ 공부하는 청년들아/ 너의 기쁨 잊지 마라/ 새벽달은 넘어가고/ 동천조일(東天朝日) 비쳐온다

 

북의 《책읽기운동》에 공감하며

 

《통일뉴스》에 실린 북의 책읽기운동을 소개한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학습에서 기본은 책을 많이 읽는것이라 강조하였다. 책읽기가 학습에서 기본으로 되는 세가지 리유를 북의 《로동신문》은 11 9일호에서 소개하면서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지식수준을 빨리 높이자면 누구나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책을 많이 읽는것이 왜 학습에서 기본으로 되는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세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책읽기가 폭넓고 깊은 지식을 습득할수 있게 하는 가장 훌륭한 학습방법이기때문이라는것이다. 폭넓고 깊이있는 지식은 끊임없는 탐구와 독서를 통하여서만 습득할수 있는데 책에는 인류가 오랜 세월 이룩해놓은 방대한 정신문화적재부들이 기록되여있다는것이다. 력사에 이름을 남긴 위인들과 유명한 과학자, 발명가들은 례외없이 책을 많이 읽은 정열적인 독서가들이였다고 강조했다.

둘째, 책읽기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높은 지식의 탑을 쌓을수 있게 하는 대중적인 학습방법이기때문이라는것이다. 즉 글을 아는 사람이라면 유치원어린이로부터 늙은이까지, 남자이건 녀성이건, 그가 학생이건 군인이건 로동자, 농민, 사무원이건 관계없이 책은 다 읽을수 있기에 책을 많이 읽고 정력적으로 탐구하면 누구나 현대과학기술의 요새를 점령할수 있다는것이다.

셋째, 책읽기가 시간과 장소의 제한을 크게 받지 않는 합리적인 학습방법이기때문이라는것이다. 일생동안 시간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리용하여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열심히 읽는다면 참으로 많은 지식을 쌓을수 있다는것이다. (통일뉴스 2007.11.10)

 

평생 책을 사랑한 지도자와 《배움의 천리길》

 

일제는 학령기에 접어든 우리 청소년들에게서 배움의 기회를 앗아가고말았다. 어린시절의 김일성주석도 례외는 아니였다. 조선을 알아야 애국자가 된다고 아버지 김형직선생은 12살 된 김일성주석을 혈혈단신으로 천리길, 팔도구에서 만경대로 돌려보낸다. 1923년 봄 창덕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투옥소식을 듣고 눈보라천리길을 다시 걸어 팔도구로 되돌아온다. 이를 두고 《배움의 천리길》, 《광복의 천리길》이라고 한다.

그러나 배움의 길은 또 단절되고만다. 1926 6월 아버지가 고문후유증으로 서거하자 1926년 여름∼가을사이에 화성의숙에서 수학한다. 화성의숙에 실망, 다시 1927년 길림육문중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끝내 졸업은 하지 못하였다.

김일성사령관은 유격활동 내내 틈만 나면 책을 읽었다. 화성의숙시절엔 김시우선생의 서가에서 리념서적들을, 육문중학교시절엔 상월선생의 서가에서 문학서적들을 빌려다 거의다 읽었다고 한다.

회고록에 딱 한번 꿈얘기가 나온다. 1940년대 대일작전회의에 참가하러 모스크바에 갔을 때 김정숙녀사가 큰방에 책을 가득 가져다놓고 김일성주석에게 이 책들을 마음대로 골라보십시오, 이만한 책이면 사령관동지께서 일생동안 보아도 다 못 보실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꿈이였다. 이 꿈이야기를 김정숙녀사에게 들려주니 녀사가 웃으면서 좋은 꿈이라고 하였다고 한다.(8 174175페지)

김일성사령관의 독서는 후날 나라를 세운 다음 큰 재산이 되였다.

김일성사령관은 주체사상을 창시하였으며 직접 《피바다》연극대본을 쓰기도 했다. 그리고 대원들에게는 직접 전투후 쉬는 틈을 타 글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이것이 오늘 북의 전주민 독서운동으로 련결되는것이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지금 저 새로 등장하는 보수세력들이 가장 무서워하는것이 독서이다. 바로 이것을 해야 우리가 저들을 이길수 있다. 독서를 하면 리명박의 허구가 눈에 보일것이다. 그리고 내공을 기르는데는 책만큼 첩경은 없다.

 

 

부동산, 그리스도교, 남북문제를 하나로 묶어 연구하라

 

거듭 강조해 책속에 살길있고, 책속에 희망이 있다. 안중근의사의 마지막유언도 《조선사람아 배우라》이였다. 무덤의 비석에 가면 망자 이름앞에 모두 《학생》이 씌여있다. 무덤속에서도 배우라는 뜻일것이다. 신년에 우리가 할 제일 처음과제는 책을 읽는것이다. 아는것이 힘, 배워야 산다. 책속에서 원통함도 분함도 억울함도 한꺼번에 씻어낼수 있다.

1980년대와 같이 편향된 지식의 섭취는 차라리 안하느니만 못하다.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이란 말그대로 인문, 자연, 사회과학을 망라한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 그래야 평등파니 자주파니 하는 시대에 뒤진 넉두리가 사라질것이다. 우리의 독서는 먼저 우리의 력사를 바로 알고 나아가 세계력사를 아는것으로 시작하여 리명박의 공약을 하나하나 점검하고 비판해나가는것이여야 한다. 그에게 두번다시 속지 않자면 책을 읽어야 한다.

앞으로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같은 연구단체가 많이 나와 리명박의 부동산, 그리스도교 그리고 남북관계정책을 하나로 련결하여 파고들어 비판적인 대안을 제시해나가야 할것이다. 그 길만이 승리를 담보하는 첩경이다. 이 배움의 길로 나갈 때에 승리의 순간은 생각보다 훨씬 빨리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