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회고록으로 보는 세상이야기』 중에서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2. 19, 우리의 최대약점을 로출시킨 날

 

일본이 MD를 날리던 날, 우리는?

 

2007 12 18일 일본은 MD(미싸일방어)미싸일을 하늘에 날렸다. 그런데 바로 그날 우리 《대선》주자들은 자기 밭에 표갈이만 열중하고있었다. 하늘에는 독수리가 날고있는데 땅을 파는 두더지 같아보였다.

우리자신들은 자기가 지금 무엇을 하는지를 전혀 모르고있는것 같았다. 강토는 마치 보초병없이 곤한 잠에 든 군영같았다. 순간 외적이 쳐들어오면 속수무책일것 같았다. 《경제만 살린다면》, 이 구호아래 모든것이 매몰되고마는 정지점과 같은 순간이였다.

1933 9월 동녕현성전투직후 유격대원들이 어느 산간집에서 쉬고있을 때 일제《토벌군》이 공격하여 거의 희생당한 악몽이 되살아났다. 그때 방안에서는 일부 지휘관들이 극단한 《군사민주주의》에 발을 묶이워 전부대원들의 완전합의가 이루어져 투표로 결판이 난 다음에야 전투를 할수 있다고 고집하였다. 결과는 불보듯 하지 않았는가?

이는 은유적으로 보아 밖에서는 우리의 적국인 일본이 미싸일을 쏘아올리고있는데 안에서는 서구식민주주의란 국민직접선거에 란장판이 되여있는것과 무엇이 다른가? 미국마저 이젠 자기들이 만든 선거제도에 대해 회의적이다. 지난번 고어는 일반투표에서는 이기고도 대법원판결에선 졌다. 이를 두고 부쉬는 선출된것이 아니고 선택되였다고 했다. 과연 우리 당선자도 검찰에 의해 선택된자라고 말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12 19일은 리완용이 나타나도 경제살리기만 약속한다면 《대통령》이 될수 있는 우리의 자화상을 온 세상에 로출시켰다. 《뉴욕 타임스》마저 이번 《선거》를 두고 《한국》사람들이 경제를 택할것인가 륜리를 택할것인가를 고민하는 《선거》라고 했다. 우리는 전자를 택하고말았다.

나는 이 선택이 우리의 약점을 그대로 최대한 로출시킨 선택이라고 평가하고싶다. 그렇다. 우리 주변국가들에게 《한국》인들은 경제적동물이고 이 나라는 《잘살게》만 해주면 무엇이든 통하는 나라라고 알리게 되였다. 그러면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만약에 주변국가들이 우리의 이런 약점을 잡고 흥정을 하려고 할 때라든지, 급소를 찌르는 경우 우리는 그자리에서 급살을 당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당한것이 바로 IMF 위기였다. 경제가 나쁠수록 우리는 륜리를 선택했었어야 쟝글의 법칙에서 위기를 모면할수 있었을것이다.

리명박당선자가 만들어놓은 《경제살리기》라는 무대우에 모든 후보들이 다 기여올라가 서로 자기가 경제1인자라고 22일동안 목청을 높였다. 나중에는 리명박당선자가 하는 몸짓까지 따라하면서 다른 후보들이 흉내를 낼 지경이였다.

나는 오늘 북을 지탱하는 힘이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력에 있다고 본다. 강한 《주체》의 힘말이다. 이것을 보지 못하고있는 자본주의경제동물들은 마치 북이 금방이라도 무너질것 같이 예단 아닌 예단을 한다.

지구상에서 사라진 민족과 나라들은 정신력의 붕괴때문이지 경제력때문이 아니였다. 로마도 부귀영화를 누릴 때에 망하고말았다. 이 엄연한 력사의 법칙을 우리 국민들은 외면하고말았다. 그래서 지금이 위기가운데 위기라고 나는 판단한다.

 

우린 가난한 쏘크라테스가 아닌 살찐 돼지가 되길 선택했는가?

 

《매트릭스》란 영화는 쏘크라테스의 이야기를 개작한것이라는데 이의가 없다. 윌리엄 어윈이 지적한 말이다.(어윈, 2003, 27) 궤변론자들이 퍼뜨린 거짓이 아테네사회를 엄습하고있을 때에 쏘크라테스는 대낮에 초불을 들고 진실을 찾아 방황하였다. 사기군 정치인들, 장사군들, 심지어 곡학아세하는 지식인들마저 쏘크라테스의 이런 행동에 량심의 가책을 받아 그가 눈에 가시같이 여겨졌다.

거짓말로 사람들을 속이는 궤변론자들의 눈에 가장 거슬리는 쏘크라테스의 말은 《너 자신을 알라.》 그리고 《나는 알지 못하는것을 안다.(known unknown)》였다.

영화 《매트릭스》가 쏘크라테스의 삶을 재조명한 리유는 바로 이 두 말때문이다.

영화의 주인공 네오는 거짓에 대해 진실을 추구하는 쏘크라테스의 화신으로 자처한다. 쏘크라테스는 대다수 사람들의 찬성속에 잡혀 사형을 당하고말았다. 도덕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쏘크라테스가 되는것이 낫다.》고 했다. 매트릭스는 쏘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의 철학도 원용한다. 매트릭스란 동굴이다. 인간들은 동굴속에 갇혀 전혀 밖에 참다운 세계가 있다는것을 모른다. 동굴벽에 비친 그림자를 통해 밖을 알수 있을뿐이다.

불교는 이를 꿈에 비유하여 인간은 꿈속에선 그것이 꿈이라는것을 모른다고 했다.

현대판으로 말하면 인간이 싸이버세계속에선 현실세계를 모른다는 뜻이다. 그래서 참인지 거짓인지를 전혀 분별하지 못하고만다는것이다. 혹시 이번 《대선》을 우리 국민모두 이런 동굴속에서 혹은 꿈속에서 치른것은 아닌지? 쏘크라테스는 바로 아테네시민들이 이 꿈에서 깨여나기를 바랐던것이다. 말로써 안되여 그는 죽음으로 대신하였다.

 

2007 12 19, 포스트모던의 원년?

 

폴 쟁크스는 1972 7 15일 오후 3 32분에 정확하게 포스트모던이 시작하였다고 했다. 이날에 모더니티를 상징하는 푸르트 아이고 주거단지 건물들이 해체폭파되였기때문이라는것이다.(웨버먼, 2003, 261) 나는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에서 포스트모던이 시작된 날은 2007 12 19일 오후 6시라고 본다.

아마도 력사는 나의 말에 동의하여 그렇게 기록할것이다. 그 리유는 다음과 같다.

반리명박후보들은 유세기간 내내 이번 《대선》을 《진실》과 《거짓》의 싸움이라고 했다. 다른 후보들도 리명박후보의 비도덕성을 닉슨과 비교하기도 하고 엔론사사장을 비교하기도 했지만 먹혀들지 않았다.

왜 도덕과 륜리가 쟁점화되지 못했을가?

그 리유는 이렇다. 서양사상사는 동양과 달리 류달리 쏘크라테스이후 《진리란 무엇이란》 질문을 던져왔다. 그러나 1932년 괴델은 수학에서마저 참이란 증명될수 없다는것을 증명하였다. 그 이후부턴 진실게임을 더이상 수학에서 벌리지 않았다.

남는것은 불확실성과 비결정성뿐이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 후보는 리명박후보였다고 나는 본다. 이런 점에서 그는 이 시대가 어느 시대란걸 알고 그렇게도 자기가 자기를 두고도 거짓말을 할수 있었던것이다. 자기가 한 말을 두고도 자기가 한 말이 아니라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국민들은 이것을 개의치 않았다. 포스트모더니티, 바로 이것이 그렇게 만든 리유이다.

우리 동양고전에는 진위(眞僞)란 말이 거의 없다. 주역 64괘가운데 진괘도 위괘도 없고, 선괘도 악괘도 없다. 그래서 서양은 동양을 보고 진위, 선악에 무디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인간의 본성을 너무 모른 판단이다. 거짓말도 3천번만 하면 참말이 된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거짓말이 참말로 변해버리는 리유이다. 리명박은 이런 점에서 이런 인간의 본성을 잘도 파악하였다. 자꾸 거짓말해라, 그러면 끝내 사람들이 믿게 될것이다. 참이란 생각자체는 참이 아니다. 도가도, 비상도(道可道,非常道)를 주문같이 암기하라. 그러면 참이 거짓이 되고 거짓이 참이 된다.

엘리엇 애런슨은 《거짓말의 진화》(2007, 추수밭)에서 부정직한자들, 악인들, 위선자들이 어떻게 살아갈수 있는가? 질문을 던진다. 거짓말이 참말이 되고 참말이 거짓말이 되는 과정이 겹겹이 뒤섞여가면서 거짓말은 진화의 진화를 한다. 우리는 지금 《대선》을 치르면서 거짓말이 대진화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해야 할것이다. 앞으로 거짓말은 진화하여 더 큰 거짓말이 생겨날것이다.

쉐익스피어는 《잘못을 변명하면 그 변명때문에 또 다른 잘못을 범하게 된다. 한가지 과실을 범한 사람이 또 다른 거짓말을 하게 되는것은 그때문이다. 현실을 현실그대로 받아들이고 처리하는것이 가장 유익하다.》고 했다.

2008년초부터 특검이 시작될것이다. 리명박당선자가 국민들앞에 쉐익스피어의 이 말을 그대로 수용할지는 의문이다. 이젠 당선자신분이기때문에 그의 거짓말이 우리모두의 거짓말이 될것이다. 그의 거짓말이 지금은 《대통령》이란 선물을 안겨다주어 그는 길하였다. 그러나 그의 거짓말이 특검에서도 이어져버린다면 그것이 우리모두에게 엄청난 불행 즉 흉을 안겨다줄것이다.

지금 이 시대는 포스트모던의 시대, 일차적인 참과 거짓을 묻지 않는 시대이다. 싸이버와 현실이 상호 되먹임을 하면서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큰 혼돈속에 빠진 시대에 우리가 살고있다. 거듭 말해 리명박후보는 이 시대정신을 가장 잘 알았고 이를 활용하여 지금 《대통령》당선자가 되였다.

그러면 그의 부도덕성은 이런 탈현대란 시대정신과 함께 합리화될수 있는가? 그렇다. 단 그의 거짓말이 만인에게 흉보다 길을 안겨다준다면. 미국사람들은 거짓말이 더 진화하기 전에 닉슨의 거짓말을 초장에 차단하고말았다. 그럼 우리도 초장에는 실패했지만 특검에선 가능할지?

 

독재자의 동굴속에 다시 기여든 코리언들

 

매트릭스안에 갇혀있는 주인공은 자기가 자신을 알지 못한다. 동굴안에 갇혀있으면서도 자기가 동굴안에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있다. 싸이버중독에 빠지면 싸이버세계를 실제세계라고 생각해버린다. 마음의 감옥에 갇혀있으면 그러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므로 당연히 그 감옥으로부터 탈출하고저 하는 충동조차 느끼지 못한다. 그러한 사람이 어떻게 자신이 자유로운지 아닌지 자각할수 있는가?

개인으로는 이를 두고 자페증이라 한다. 자페증환자는 《앉으라》하면 말을 따라서 《앉으라》 하지 행동으로 앉지를 못한다. 말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기때문이다. 자기가 자기 의식에서 차단당해있기때문이다. 지금 우린 무엇을 선택했는지 자체를 의식하지 못하고있다.

고대그리스사람들은 이와 같은 동굴속에 갇혀살면서 자기들을 아무리 거짓말로 조작을 해도 조작을 당한다는 사실조차도 몰랐다. 2007년 《한국》사회가 바로 이런 동굴과 같은 사회로 보아 한점 틀림이 없다고 나는 본다. 아무리 진실과 거짓을 비교해도 그 비교를 할수 있는 의식자체를 상실하고있기때문이다. 앞으로 특검이 남아있지만 이런 의식을 가진 인간군상속에서 큰 기대를 할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우리는 40여년간 독재의 동굴 매트릭스속에 살다가 나와 겨우 10년간 자유를 맛보고 다시 이 프롬이 말하는 《자유로부터 도피 (escape from freedom)》를 감행하였다. 다시 그 동굴속으로 들어가기로 결행을 한것이다. 이것이 2007년의 선택이다. 독재자가 만들어내는 인공프로그람의 행복한 무지속에서 사는것이 더 좋다고 동굴속으로 다시 들어간것이다.

매트릭스영화에서 네오는 모피어스 등의 도움으로 이 동굴로부터 탈출한다. 그러나 매트릭스속에서 무지의 행복속에 살 때와는 상상도 못할 고통을 겪어야 한다. 자유를 향유한다는 대가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안 네오는 동굴속으로 되돌아갈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렇게 고민을 하는것을 본 모피어스는 한때 그를 구출한것을 후회하기도 한다.

네오보다 먼저 탈출한 사이퍼는 끝내 동굴밖의 자유세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동굴로 되돌아가고만다. 사이퍼의 모습이 오늘 우리의 자화상이 아닌가. 자기를 매트릭스속에 가둔 그 독재세력에 다시 무릎을 꿇고만것이다. 동굴안에서 네오가 참이라고 믿었던것이 밖에서는 모두 거짓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일수 없다. 쏘크라테스의 너자신을 알라, 그리고 모른다는 사실을 알라는 말은 바로 이런 네오나 사이퍼같이 동굴속에서 나온 사람들을 바깥자유세계에 잡아두려는 몸부림이다.

그러나 자신을 아는 순간 닥쳐오는 고통을 견딜수 없어서 자기를 구출해준자를 원망한다. 그래서 아테네사람들은 쏘크라테스를 극형에 처하는데 동의한다.

 

파란 알약을 선택한 코리언들

 

영화에서 이런 자기가 갇힌 이 구조속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주인공에게 알려주는자는 네오이다. 빨간 알약과 파란 알약을 주면서 네오가 할 임무는 아는것을 알지 못하는 무의식속에 갇혀있는 인간을 해방시키는것이다. 그래서 네오는 쏘크라테스의 화신으로 등장한다.

쏘크라테스는 《변명》이란 글에서 사람들이 자신들이 누구라는것을 알도록 하기 위해 《하루종일 멈추지 않고 사람들사이를 옮겨다니며 그들을 찔러 행동하게 하고 그들 각각을 설득하는 말파리같이 되고싶다.》고 했다. 쏘크라테스는 사람들에게 성가신 질문을 고의적으로 던져 귀찮게 구는 말파리같이 행동하더라도 사람들의 의식을 일깨우려 했다. 물질적인 향락에 안주하여 쾌락에 빠진 삶이 결코 지복이 아니라고 일깨운다.

영화에서 빨간 알약을 집으면 자신이 모르는것을 알고 자기자신을 의식하게 된다. 파란 알약은 그 반대이다.

새로 당선된 《대통령》은 지금 우리 손에 무슨 색의 알약을 쥐여주었는가? 의식을 일깨워 거짓과 참을 구별할수 있게 하는 약인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미국의 부쉬와 그의 정부는 미국사람들에게 파란 알약을 먹이였다. 그래서 그의 거짓말을 전혀 구별할수 없게 만들어 두번이나 대통령에 당선되였다. 그러나 미국사람들은 네오같이 자기 의식을 회복하고 부쉬의 정체를 알아차리기 시작하여 금년선거에서 부쉬에게 패배를 안겨다주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데는 7년이 걸렸다. 부쉬가 자기들을 속였다는것을 아는데 그만한 시간이 걸린것이다.

다시 빨간 알약을 집어들기까지 7년이 걸렸다. 우리 국민들은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아마 동굴속의 무지의 행복의 잠에서 깨여나지 못하면 영원히 동굴속에 갇혀버릴지도 모른다. 사실 매트릭스에 갇혀있는 사람들은 수십억이였지만 겨우 깨여 밖으로 나온자는 네오와 사이퍼 등 소수이고 그중 사이퍼는 다시 되돌아가고말았다. 《국민성공시대 100만명 일자리 창출》이 기다리고있는 동굴속으로 다시 들어가고만것이다. 동굴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아무 상관이 없다는것이다.

 

주체를 세우지 않으면 아무 일도 안된다

 

장황한 말들의 잔치가 남긴 결론은 주체의 문제이다. 거짓은 진화를 거듭하기때문에 관념을 끝없이 만들어내는 머리속으로는 참, 거짓을 분간할수 없다. 수학자들도 철학자들도 당연히 도달할수밖에 없는 종착역이다. 불확실성이란 종착역이다.

여기서 주체의 개입없이는 결국 거짓말은 끝없이 진화할수밖에 없고 거짓은 불행 즉 흉으로 갈수밖에 없다. 여기서 길을 선택하느냐 흉을 선택하느냐는것은 주체의 문제라는것이다.

김일성항일유격대는 그 어느 시기, 그 어느 장소에서도 없었던 참이 거짓이 되고 거짓이 참이 되는것을 경험하였다. 특히 하루아침에 《민생단》원으로 몰려 죽는것을 보고 진실과 거짓은 이미 객관적으로 있는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몸으로 체험한것이다.

반《민생단》투쟁을 체험하면서 김일성사령관은 주체를 더욱 철저히 세워야 한다는 결심을 굳게 다진다.

주체를 세우는것이 사람중심이며 경험에도 관념에도 사로잡히지 말고 그것을 함께 담지한 인간이 중심이 된다는것이다.

사람을 중심으로 보았을 때에 량세봉 같은 극우와도 손을 잡을수 있었고 도문지주한테서도 도움을 받을수 있었던것이다. 그러나 극좌들은 관념에 사로잡혀 객관적인데 기준을 두고 민족주의와 지주들을 맹목적으로 배격했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