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인민적 시책에 비낀 위인일화』 중에서

4. 누구나 안정된 생활을 누리도록

(1)

점심시간도 뒤로 미루시고
 
 

조국해방전쟁이 한창이던 주체40(1951)년 9월 하순 어느날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량정사업을 전시조건에 맞게 개선하기 위하여 일군들을 부르시였다.

그때 나라의 식량사정은 매우 긴장하였다.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적들이 많은 량곡을 략탈해간데다가 수십년래의 큰 장마로 올곡식이 제대로 여물지 못하였고 적들의 폭격으로 량곡가공시설들이 파괴되여 있는 량곡마저 제때에 찧지 못해 식량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내각 량정국(당시)의 한 일군으로부터 나라의 식량보관정형과 공급정형을 료해하시고 량정사업을 개선하기 위한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시간은 퍼그나 흘러 벽시계는 어느덧 오후 3시를 가리키고있었다.

점심시간이 훨씬 지났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히려 일군들을 더 걱정하시며 동무들이 시장하겠지만 조금만 더 참으라고, 농민들의 식량문제를 마저 토의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그마한 수첩을 꺼내시여 펼쳐놓으시더니 거기에 적힌 수자들을 읽으시고나서 지금 전쟁피해를 입은 빈농민들과 올해 조기작물에 수해를 입은 빈농민들의 생활이 좀 어려운 형편에 있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올해 현물세를 받아들일 때까지 국가식량수급이 긴장하기는 하지만 수해로 인하여 농작물에 피해를 입은 농민들과 도시에서 농촌에 새로 나간 근로자들 그리고 전쟁피해를 입은 령세빈농민들의 생활을 돌보아주어야 합니다.》

사실 이때로 말하면 전쟁으로 하여 많은 농민들이 피해를 입은데다가 도시전재민들이 농촌에 나가게 된 관계로 농민들의 식량사정이 긴장한 때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러한 사정을 헤아리시여 농민들에게 이미 수많은 식량을 보내주시고 조기작물현물세를 면제해주는 조치까지 취해주시고도 부족하여 또다시 이처럼 뜨거운 은정을 베풀어주시는것이였다.

전선의 수요와 국가식량공급대상자들의 수요를 보장하는것도 아름찬 일이였는데 농민들의 식량문제까지 국가식량으로 풀어주시겠다는 말씀에 일군들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의 이러한 마음을 헤아리시고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아무리 국가식량사정이 어렵다 하더라도 농민들의 부족되는 식량을 우리가 해결하여주어야 합니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있는 량곡을 가지고 햇곡식을 거두어들일 때까지 살림살이를 잘해나갈데 대한 방도도 하나하나 가르쳐주시고 농민들의 식량을 국가가 책임지고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도 세워주시였다.

전쟁으로 령락된 농민들의 식량문제를 풀어주시기 위하여 점심식사도 뒤로 미루시며 사업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르는 일군들은 북받치는 감동을 금할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