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회고록으로 보는 세상이야기』 중에서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랭소주의를 랭소한 조선의 별들

  

어떤 거짓도 거절했던 1974년 겨울

 

《어느날, 나는 감방벽에 기대앉아있었어요. 한없는 괴로움에 시달리고있었어요. 끝없는 분노에 몸을 떨고있었어요.

 

내 피를 부른다

거절하라고

그 어떤 거짓도 거절하라고

 

거절하라고? 그래요. 거절이죠. 어둠속에 감추어진 진실을 빛속에 드러내라고? 거절하라고? 그래요. 휄드린의 시에 있어서의 그 빛의 수수께끼, 그것이 바로 이 거절이였어요. 정말 그래요.

 

우의 글은 시인 김지하가 옥중에서 쓴 저 유명한 《고행, 1974년》의 한구절이다. 34년이 지난 2007 12월에 그의 글을 다시 읽는 기분은 감회가 새롭다고 해야 마땅할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전혀 그렇지 않다. 아무리 BBK 진실이 대낮의 해보다 명명백백해도 거짓을 거부하기는커녕 그 후보의 지지률은 고공행진을 하고있다. 김지하시인의 글이 전혀 뇌수를 치지 못하고있다. 어떤 거짓도 거절하라는 휄드린의 시도 넉두리같이 들리기만 한다. 도무지 어찌된 영문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휄드린과 같은 도이췰란드의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와 그의 출세작 《랭소적리성비판》(1983)에 있다. 그는 《우리 시대는 랭소의 시대가 됐다.》고 했다.

랭소주의란 어떤것이 옳지 못하고 거짓임을 알면서도 그것을 용인하고 심지어는 행하는자의 태도를 가리킨다. 랭소주의, cynical》이란 말은 고대그리스철학 학파가운데 견유학파, Cynicism》에서 유래한다.

견유학파란 이름은 《개와 같은 생활》때문에 유래한것이라고 한다. 견유학파는 원래 외적조건에 좌우되지 않는 생활을 하며 강인한 의지로 욕망을 억제하는것에 의하여 달성될수 있다고 주장하는것이 이 학파의 가르침이다. 이 학파는 후에 스토아학파에 영향을 주었다.

오늘날 랭소주의를 의미하는 《시니시즘(cynicism)》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세론, 습속, 통상적인 도덕 등을 무시하는 생활태도를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랭소주의자들은 진실에 대해 쓴웃음을 짓는 태도를 취하는자들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자신도 모르게 이런 랭소주의자들이 되여있다는것이다.

2007 12월 《대통령선거》는 우리 시대의 이러한 랭소주의를 가장 잘 반영하는 《선거》가 되였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 시대정신에 장단과 박자를 맞추며 가고있는것인가? 이젠 김지하의 《오적》도 《타는 목마름》도 더이상 우리의 시적상상력을 자극할수도 사생취의(捨生取義)적도덕감각에 충격을 줄수도 없다.

B. C. 6세기경 크레타섬 사람들이 온통 나라가 전부 거짓말쟁이가 되여버려 주위나라 사람들로부터 《모든 크레타사람들은 거짓말쟁이》로 불리워지게 되였으며 하여 이 격구가 지금 전지구적인것으로 남았다.

그래서 지금 철학을 하지 않는 사람도 이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만약에 12 19일 그 후보가 당선이 되는 날 세계언론들은 《모든 코리언들은 거짓말쟁이》라는 세기적신격구를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떤 언론들은 남쪽사람들은 랭소주의시대에 살아가고있는 대표적인 세계인들로 보도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 랭소주의에 마싸지당하고있다

 

랭소주의시대에선 악이 무엇인지 선이 무엇인지 당황하게 된다. 2004년 이라크 아부그라이브교도소에서 자행된 미군의 만행이 내부고발자에 의해 적라라한 사진들과 함께 외부에 공개되자 세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그해 9월 만행의 중심인물 칩 프레더릭하사를 만난 필립 짐바르도 스탠퍼드대학 심리학과 교수는 당시 37살의 칩이 지극히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랐고 2주일에 한번씩은 꼬박꼬박 남부 보수 침례교회에 나갔으며 스스로를 도덕적이고 령적인 사람이라 생각하고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심리학자들은 그가 자신의 근무환경에서 아무런 죄의식없이 학대행위를 저지를수 있는 정신병적성향의 증거를 전혀 찾을수 없었다. 정신분렬증, 우울증, 히스테리를 비롯해 주요심리학적병리학과 관련해 그는 《정상적이고 건강한 범위》에 속했다.

이렇게 랭소주의는 인간을 랭혹하게 만드는것이다. 남쪽사람들중 40대가 지금 그 후보에게 기만당하고있는 리유가 분명해졌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질가?

우리는 지금 랭소주의에 마싸지당하고있기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이 병이라는 증상을 모르고있는것이다. 아는것을 알지 못하는 이것이 병이다. 지금 남쪽사람들중 절반이 이런 증상에 걸린 상태에서 선거를 치르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고있다.

칩 같은 인간상은 미국의 대표적인 인간상이다. 소위 청교도정신으로 무장된 평범한 인간이기는 하나 자기가 하는 일을 자기가 모르는 랭소주의자이다. 그리고 이들은 남을 학대하는 랭소주의자들이다. 나는 미국이, 대통령을 비롯한 3억 인구들이 이 가학적랭소주의란 병에 걸려있다고 믿어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1930년대 동만땅 극좌좌경분자들도 가학적랭소주의자들이다.

 

랭소주의는 아편보다 무서운 독

 

《대통령선거》를 앞둔 《한국》사회의 풍경에서 이 《랭소적리성》을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다. 시종 둘러대고 잡아떼고 모른체 하는 행태에 사법기관이 나서서 결백의 성의를 입혀주는것이 랭소주의의 한 모습이라면, 사법기관의 그런 행위에 문제가 있음을 알면서도 그렇게 면죄부를 받은 후보를 눈 딱 감고 지지하는것이 랭소주의의 다른 모습이다. 슬로터다이크는 이 랭소주의를 《현대의 불행한 의식》이라고 칭하면서 이 불행한 의식이 파시즘의 터전이 됐다고 말한다. 2008년은 《한국》파시즘 원년이 될것인가?

 

1930년대 랭소주의지식인들과 친일행각

 

랭소주의는 랭소주의 그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무서운 이차적증상으로 변하는데 더 큰 문제가 있다. 그 하나는 남을 학대하는 가학증-사디즘으로 변하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학증-마조히즘으로 변한다. 전자의 경우가 바로 동만일대에 등장한 반《민생단》투쟁이다.

자학적랭소주의가 조선의 지식인들을 엄습한것은 주로 1930년대말이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조선의 배웠다 하는 식자들은 이젠 일본천하가 다되였다고 자포자기하고 술집과 기생집을 돌아다니면서 랭소주의에 빠진다. 최남선, 최린, 리광수, 윤치호 등 3. 1독립선언문을 기안작성할만큼 반일을 외우던 지식인들이 하루아침에 돌변한다. 최남선은 일본의 발흥은 아시아의 신기운이라 했고, 최린은 《내선일체》로 국민적적성을 발휘하자 했고, 윤치호는 조선과 일본은 같은 배를 탔다고 했다.

이 당시 자학적랭소주의를 대변하는 노래가 《희망가》이다. 나는 어릴 때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저녁식사만 잡수시고는 사랑채에 누워 이 노래를 불렀기때문에 지금도 가사와 곡을 다 생생히 기억하고있다.

그런데 《희망가》인 이 노래는 제목이 《희망가》란것 이외에 가사내용속에는 희망이 전혀 없는 노래여서 항상 이상히 여겼다.

그렇다. 바로 그렇기때문에 이 노래는 그자체가 랭소주의이다. 비웃음과 쓴웃음을 겸한것이 바로 《랭소(冷笑)》이기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나라잃은 한을 승화시키지 않고는 못견디겠기때문에 당시 그리고 지금까지도 널리 불리우는 노래가 되였을것이다.

 

《희망가》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가/ 푸른 하늘 밝은 달아래/ 곰곰히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중에 또다시 꿈같도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가/ 담소화락에 엄벙덤벙/ 주색잡기에 침몰하야/ 세상만사를 잊었으면 희망이 족할가

 

2절 끝에 세상만사를 잊는것이 어찌 희망인지 도저히 리해가 안간다. 정말 저절로 랭소가 나올 정도이다. 최남선 등은 랭소주의란 병에 걸려 이 나라 젊은이들을 《대동아전쟁》으로 내몰았다.

2007 12 19, 그날이 끝나면 이 땅의 지식인들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는 자못 궁금하다. 《희망가》나 다시 꺼내부르며 주색잡기에 침몰할것인가? 새 《대통령》, 경제《대통령》이 만들어주는 행복속에 부귀영화나 누릴건가?

12 19일은 음력으로 동지달 열흘이 되는 날이다. 아직 보름은 아니지만 달은 제법 커있을것이다. 푸른 하늘 밝은 달아래 곰곰히 앉아 무엇을 생각할것인가? 가학적랭소주의자가 될것인가, 자학적랭소주의자가 될것인가?

 

조선의 밤하늘에 새별이 솟아

 

1930 6 30일 카륜의 진명학교, 주변에는 작은 강이 하나 흐르고있었다. 여기에 나라잃고 절망과 시름을 달래며 그래도 잃은 조국 다시 찾고 모든 인간들이 평등하게 잘사는 새세상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모였다.

카륜회합이후 김일성사령관은 첫 당조직과 조선혁명군을 결성했다.

이것은 희망없는 시대에 진정한 희망을 창조하려는 이 나라 청춘의 피가 분출할수 있는 오직 한길이였다. 1930년대에 혁명과 조국해방의 이 한길이 랭소주의를 극복하는 유일한 길이였을것이다. 가학도 자학도 모두 극복한 이 한길이 바로 주체의 길이였다는것이다. 지금 이 나라 젊은이들이 랭소주의라는 병을 치유하는데 참고가 될 경험이라고 할수 있다.

이보다 앞서 김일성사령관은 화성의숙 재학시절인 1926 10 17일 이미 《타도제국주의동맹》 즉 《ㅌ. ㄷ》를 결성했다. 그후 김혁, 차광수들과 함께 밤이 이슥해져가는 들에서 들려오는 개구리울음소리 들으며 새벽이 오는줄도 모르게 이야기꽃을 피운다. 드디여 먼 동틀무렵 조선의 밤하늘에 새별이 솟는것을 바라보고 부둥켜안고 감격하며 눈물을 흘린다. 김혁은 즉석 작사작곡을 한다. 《아리랑》공연의 앞부분 장면에 나오는 《조선의 별》장면의 세 젊은이들이 바로 이들이다. 이들은 랭소주의마저 랭소해버림으로써 랭소주의를 극복했다.

 

조선의 밤하늘에 새별이 솟아

삼천리강산을 밝게도 비치네

짓밟힌 조선에 동은 트리라

2천만 우리 동포 새별을 보네

 

캄캄한 밤하늘 바라다보니

신음하는 조국산천 어리여오네

변치 말자 혁명에 다진 그 마음

2천만 우리 동포 새별을 보네

 

간악한 강도 일제 쳐물리치고

삼천리에 새별이 더욱 빛날제

조선아 자유의 노래 부르자

2천만 우리 동포 새별을 보네

 

서구식민주주의, 이젠 끝

 

서양에서 도입한 민주주의는 지금 이 민족, 이 겨레의 가슴속에 큰 상처를 남기고있다. 오손도손 수천년 살아오던 마을공동체가 이 당, 저 당 하면서 아들과 아버지가 원쑤가 되고 이웃사촌끼리도 칼부림하는 선거판이 되였다. 손바닥만 한 땅덩어리가 갈가리 찢기여 한뽐도 안되는 섬진강폭이 천리만리같이 되여버렸다.

이런따위 민주주의를 더이상 하다간 정말 희망없다. 희망없는 《희망가》를 다시 부를것이다. 세상만사를 다 잊고 주색잡기에 침몰하며 사느냐, 아니면 저 만주벌판으로 달려가느냐. 어떻게 사는 길이 남은 선택의 길이냐. 이 길도 저 길도 다 가기 어려운것이 조선땅에 태여난 운명이냐 저주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