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회고록으로 보는 세상이야기』 중에서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사생결단하여 구원한 한봉선의 생명


   
경강증에 걸린 인간군상들  

아무리 강심장의 인간이라 하더라도 극도의 공포분위기속에 갇히게 되면 사소한 일에도 불신을 하고 의심을 하게 된다. 이런 인간군상들이 모인 사회를 《경강증에 걸린 사회》라고 한다.

해방후 이런 증상이 가장 대표적으로 나타난것이 마을 공동우물에 누가 약을 쳤다는 소문이였을것이다. 그 당시를 살았던 지금의 60대이상은 이런 소문을 한두번은 들었을것이다.

그럼 누가 우물에 약을 쳤는가? 이때에 경강증에 걸린 사람들은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

《민생단》공포에 질려 극도의 심리적인 불안상태에 있던 동만조선인부락에 례의 이런 희생자가 하나 생겼다.

김일성사령관의 유격부대가 가야허라는 곳에 주둔해있을 때의 일이다. 도문부근에서 끌고온 소를 잡아 군인들과 마을사람들에게 먹인적이 있는데 그 소고기를 먹고 많은 사람들이 설사에 걸려 고생하였다. 김일성사령관의 숙소로 사람들이 몰려와 《민생단》이 우물에 독약을 쳐서 전부 중독되였는데 무리죽음을 하게 되였다고 야단법석이였다. 사실이라면 부대전원이 전멸될수도 있는 상황이였다.

김일성주석은 그때 일을 이렇게 회고하고있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아무리 시간이 경과하여도 내자신은 전혀 배가 아파나지 않는것이였다. 응당 있게 되리라고 예측했던 적의 출동도 없었다.

얼마후 마을을 순찰하던 소대장이 우물에 독약을 친 <민생단>을 찾아냈다고 하면서 키가 장총기장만큼 되는 아이를 나한테로 데려왔다. 그 아이가 바로 문제의 박창길이였다.(4 3738페지)

소대장이 하는 말이 그가 마을사람들앞에서 자기 죄를 솔직히 인정했다는것이였다.

《나는 창길이와 몇시간동안 담화를 하였다. 창길이는 내앞에서도 자기의 <>를 인정하였다. 그러나 나중에는 울면서 그것을 부정하였다. 그가 처음에 마을사람들앞에서 자기 <>를 시인한것은 자기에게 독약을 쳤다는 험턱을 억지로 들씌우는 마을아낙네들에 대한 반발이였다.(4 38페지)

진정한 《울음》과 《웃음》은 그 구조가 같은것이다. 우리 말은 이와 같이 역설을 표현하기 알맞는 구조를 가지고있다. 울음이 없는 웃음은 진정한 웃음이 아니다.

김일성사령관은 이렇게 선언한다.

《이애는 약을 치지 않았다. 그러면 누가 약을 쳤는가? 여러분들가운데는 약을 친 사람이 하나도 없다. 약을 먹은 사람도 없다. 있다면 설사를 만나서 하루이틀 고생한 사람들이 있을뿐이다. 배앓이를 한것은 오래간만에 소고기를 너무 많이 먹은탓이다. 그러니 여기에 <민생단>문제라는것은 있지도 않거니와 있을수도 없다. 나는 오늘 이자리에서 당신들이 <민생단>이라고 몰아주던 창길이를 유격대에 받아들인다는것을 선포한다.(4 3839페지)

마을사람들은 모두 김일성사령관의 연설을 듣고 울음바다가 되였다. 박창길이를 《민생단》으로 몰아주던 녀자들까지도 다 흐느껴울었다. 이와 같이 김일성사령관의 주체료법은 집단적인 효과를 내여 그동안 《민생단》공포에 사로잡혀 경강증에 걸려있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내면의 세계를 스스로 들여다보고 통곡을 하였다.

《박창길은 그후 유격대에 입대하여 소왕청방위전투에서 영용하게 싸웠다.김일성주석은 회고하고있다.

경강증이 변하면 그것이 령혼의 정화작용(카타르시스)이 된다. 위대한 령혼의 치유자야말로 진정한 종교인이다. 주체료법이란 궁극적으로 인간령혼의 정화작업을 하여 주대인간으로 살아갈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료법이라 할수 있다.

김일성주석은 이와 같이 정치인이기 이전에 한 인간의 상처난 령혼을 치유하는 치료자였다.

 

너는 의미있는 존재, 사랑받기 위해 태여난 존재

 

우리 인간들은 자기자신자체를 모르는 존재이기때문에 자기의 슬픔이나 기쁨 그자체를 모른다. 바로 그것자체를 아는것을 두고 《의미》를 안다고 하는것이다. 불안이나 공포 그자체가 병이 아니라 그것의 의미를 모르는것이 병이고 그 의미를 아는 순간 병은 해소된다는것이 의미치료의 기법이다. 《아는것을 다시 아는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때에 다시 아는것은 처음 아는것과는 정반대일수 있다. 례를 들면 인생의 쓴맛의 의미를 파악하면 쓴것이 아니고 단맛이라는것을 알게 되는것과도 같다. 그래서 의미치료를 일명 《역설알기》라고도 한다. 프랭클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가 당하는 고통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해서 자살까지 한다는 사실을 알고 역설알기치료기법을 통해 인생의 새 삶을 살게 하였던것이다.

의미치료법은 그래서 《역설적의도》라고 한다. 사실 이런 역설적의도는 죽음의 수용소라든지 《민생단》감옥같은 극한상황을 경험한 곳에서만 가능해진다. 《극즉반(極卽反)》이란 역의 론리도 여기서 나온것이다.

앞에서 다뤘던 장포리와 박창길 량자의 공통점은 《나는 <민생단>이다.》라고 자백한 점이라고 할수 있다. 만약에 이 두사람이 《나는 <민생단>이 아니다.》라고 했더라면 김일성사령관이 이들을 살리기가 더 어려워졌을것이다. 다시말해 김일성사령관이 립회한 동만특위 간부들을 설득시키기가 아주 어려워졌을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이 《민생단》이 아니라는 증명을 해내야 할 과제가 남기때문이다. 그러나 이 두사람이 현명하게도 자신이 《민생단》원이라고 말해버린것은 자포자기에서 나온 말일수도 있겠지만 《민생단》이라고 가정할 때에 오히려 그것을 뒤집기가 더 쉽기때문이다.

그리고 장포리와 박창길에게는 너는 귀중한 존재라는 《의미》를 부각시킨것이다. 너는 조국의 부름받은 자랑스런 항일유격대원, 100명이나 왜놈들을 답새긴 명포수, 너는 우리가운데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라는 의미를 발견하게 만든것이다. 그 의미를 발견하는 순간 가슴깊은 곳에서 북받치는 울음이 터져나온것이다. 온 인민이 이런 감격속에 산다면 그런 인민은 행복하다.

 

한봉선에 주효한 세번의 주체료법

 

어느날 모간부가 김일성사령관을 찾아와 동만당 조직부장이 보내는 편지를 하나 전해주었다. 편지를 뜯어보니 한봉선이라는 대원이 《민생단》노릇을 크게 해 김일성사령관까지 해치려 하였는데 죄상으로 보아 마땅히 체포하여야 할 대상이니 당장 잡아내야 한다는 내용이였다.

김일성사령관자신이 한번 《민생단》혐의자를 처단하는것을 보자고 음모를 꾸민것이다.

그러나 좌경분자들의 이러한 속셈마저 읽어버린것이 김일성사령관의 남과 다른 점이다. 지도자는 항상 이러한 간신배나 모략군들의 속셈에 넘어가지 말아야 하고 속셈의 속셈을 읽을줄 알아야 한다.

김일성사령관은 한봉선의 《죄상》은 엄청난것이였으나 편지를 읽어보니 어째서인지 거기에 씌여진 사연들에 믿음이 잘 가지 않았다.

《우선 그가 <민생단>책동을 크게 벌린다는 사실이 몹시 허황해보이였다. 지금껏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움을 잘해온 한봉선이 무슨 망녕이 들어 <민생단>에 가담한단 말인가.

인격상으로 보더라도 그는 자기 상관을 모함하거나 살해하는것과 같은 악행을 할수 있는 포악한 성격의 사나이가 아니였다. 오히려 남들이 시샘을 하리만치 선량하고 례절이 밝은 미남자였다. 평상시 나와의 친분도 이만저만 두텁지 않았다. 이런 사람이 자기를 그토록 사랑해준 상관을 해치려고 한다는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였다.

그렇다고 하여 편지에 씌여진 사연들을 무턱대고 부정할수도 없었다. 조직부장이 아무려면 나에게 그런 거짓말을 꾸며내겠는가. 내 심중은 이래저래 불쾌해졌다.(4 4041페지)

김일성사령관은 편지를 가지고온 간부에게 자기가 직접 더 검열해보고 처리할테니 안심하고 돌아가라고 한다. 주위사람들은 한봉선이 언제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마당에 그를 당장 잡아 처리해야 한다고 야단이다.

이 시각 김일성사령관의 뇌리에서는 복잡한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한봉선이 정말로 나를 죽이려고 했을가? 그가 무엇때문에 나를 죽이자고 할가? 나를 해칠 건덕지가 없지 않는가. 그를 특위에 보내지 않은것은 잘한 일이다. 그러나 그를 둬두었다가 정말로 후환이 생기면 야단이 아닌가.(4 41페지)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김일성사령관은 생각한 끝에 한봉선을 검열해볼 결심을 한다.

칠후 한봉선이 부름을 받고 지휘부에 나타난다. 그러나 한봉선은 여느때나 다름없이 싱글벙글 웃으면서 김일성사령관에게 물었다. 이때 오고간 대화를 여기에 옮겨적자.

《대장동지, 무슨 일로 저를 불렀습니까? 혹시 적구공작에 내보내자고 그러시는게 아닙니까?

《맞혔소. 오늘 당장 삼차구에 가서 밀정 한놈을 붙잡아와야겠소. 동문 참 후각이 예민한 사람이구만.

《후각이고 뭐고가 있습니까. 지난밤 꿈에 도문구경을 좀 했는데 우리 중대 친구들이 해몽하기를 적구공작에 나갈 징조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 친구들이 해몽을 멋있게 해낸셈이지요.

《그럼 내가 호신용권총을 한자루 줄테니 그걸 가지고 떠나도록 하오.

《총은 거치장스러워서 두고 가겠습니다. 입으로 구슬려서 데리고올테니 념려마십시오.

《그럼 총은 묻어두었다가 돌아올 때 가지고오시오.

한봉선은 김일성사령관이 시킨대로 싸창 한자루를 중도에 묻어두고 삼차구시내에 들어가서 김일성사령관이 지명한 밀정을 만났다. 그 밀정을 구슬려서 유격구에 데리고 들어왔다.

김일성사령관은 밀정이 돌아갈 때에도 한봉선을 불러 그를 삼차구까지 데려다주라고 하였다.

물론 한봉선은 그 임무도 훌륭히 집행하였다.

이런 일이 있은 다음 김일성사령관은 동만특위의 간부들을 질책하였다.

《한봉선을 검열해보느라고 총을 주었는데 이 사람이 뛰지 않았다. 일본놈 개를 잡아오라고 했는데 개도 잡아왔다. 총과 탄알을 다 주었으니 나를 해치려면 얼마든지 해칠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짓은 하지 않았다. 이런 사람이 과연 <민생단>이겠는가?(4 42페지)

이에 대한 동만당 간부들의 대답은 기가 막힌다. 동만당의 간부들은 《<민생단>도 그런 흉내는 낼수 있다. 그가 총을 가지고서도 도망치거나 당신을 해치지 않은것은 간부들의 신용을 얻어가지고 대렬에 더 깊이 침투하여 <민생단>작용을 큼직하게 해보자는것이다. 그러니 그를 믿을수 없다.》고 하였다. 정말 찍해도 짹해도 죽이기로 작정한것이 이 대화속에 여실히 나타나있다.

그래서 김일성사령관은 한봉선에게 두번째 과업을 준다. 동만당 간부들의 완고한 마음을 다시한번 돌려보기 위해서이다. 그것은 도가선철길에 가서 폭발물을 묻고 오라는것이다. 한봉선은 이번에도 싱글벙글 웃으면서 서슴지 않고 공작지로 떠나갔다. 그는 모험심이 너무 강한것이 탈이였다. 김일성사령관이 잡히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였더니 그는 잡히면 잡히고 까짓것, 그런건 꿈만 합니다, 잡혀도 변절은 하지 않을테니 나를 믿어주십시오, 기껏해서 총살을 당하는것밖에 더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그는 이 일도 잘하고 돌아왔다. 그러나 아직도 동만간부들은 트집을 건다.

세번째 검증은 한봉선을 돌격조에 망라시키는것이다. 만약에 한봉선이 《민생단》이라면 동만당 간부의 말대로 이번만은 속일수 없을것이였다. 김일성사령관부대는 그때 왕청주변의 어느 집단부락을 습격하였는데 그 전투가 아주 치렬했다. 돌격조를 책임진 한봉선은 선두에서 포대를 들이치다가 불행하게도 그만 한쪽손을 잃고말았다.

김일성사령관은 이렇게 세차례의 검열을 통하여 한봉선이 《민생단》이 아니고 혁명에 충실한 사람이라는것을 보여주었다.

그때 김일성사령관이 한봉선을 검열해보지 않고 그들에게 보냈더라면 그는 영낙없이 반동분자의 감투를 쓰고 처단되였을것이다.

실로 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김일성사령관은 신변의 위험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기를 하지 않을수 없었다. 조선이 일본에 먹히는것은 당연하다는 발언을 한 주일공사 스티븐스를 저격한 전명운렬사의 법정통역을 부탁받자 리승만은 그가 테로범이라는 리유로 외면하고말았다. 알량한 그리스도교신앙을 내세워 전명운렬사를 살인자로 몰기까지 했다.

 

다홍왜로 갈 준비는 끝났다

 

김일성사령관이 좌경분자들의 주장을 물리치고 한봉선을 구원해준것은 사실 생사를 건 아슬아슬한 모험이나 다름없었다.

김일성주석은 《만일 그때 한봉선이 총을 가지고 어느 간부를 살해했거나 적구로 달아났더라면 나는 그를 신임한 책임에서 벗어날수 없었을것이다.(4 43페지)라고 아슬아슬했던 순간을 회고하고있다.

그러고보면 김일성사령관자신도 자신을 내던지면서 한봉선구출작전에 나섰던것이다.

이것은 장포리와 박창길에 이어 세번째 모험이였다고 말할수 있다. 이런 모험은 그후에도 계속되였다. 한마디의 명령이나 한번의 손짓에 따라 수십수백 인간의 운명이 결정되는 험악한 《계급투쟁》의 마당에서 혁명가의 랭철한 리성과 분별력은 고사하고 초보적인 인정이나 의리마저 저버린 목석같은 인간들의 도전을 순간마다 당하면서도 그 어떤 압력에도 굽어들지 않고 자기 신념에 따라 끝까지 정정당당하게 행동할수 있었던것은 김일성사령관의 깨끗한 경력과 유격대지휘관으로서의 전투성과와 리론적뒤받침의 덕이라고 할수 있다.

이와 같이 김일성사령관은 일본제국주의늑대들과도 싸우는 마당에 내부의 《적》들과는 더 어려운 싸움을 해내지 않으면 안될 이중삼중의 난관을 헤쳐나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19331935년사이에 왕청을 중심으로 한 동만땅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은 나라를 세운 후 내우외환속에서도 인민들을 이끌어갈수 있는 좋은 자산이 되였다.

나는 주체사상의 기원을 정치적으로만 찾는것에 찬성하지 않는다. 나는 주로 《민생단》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김일성사령관이 보여준 철학, 그속에 심리치료료법 같은것도 있고 론리학과 같은것도 있다고 본다. 이런 다양성속에서도 한가지 공통된것은 《주체》를 세우는것이라고 나는 보고싶다.

이제 생사를 각오하고 다홍왜로 가야 할 결단의 시각이 앞에 다가섰다.

김일성사령관이 동만당 간부들에게 사면초가같이 포위되여 내뿜는 열변은 《민생단》으로 몰려 사지에 있는 동족들을 구하기 위한 불같은 정열 그자체였다.

 

극좌좌경론리를 꺾은 김일성해학 

 

《님이여 강을 건느지 마시라》

 

반《민생단》투쟁의 사나운 회오리가 동만의 유격구들을 한창 휩쓸고있을 때인 1934년말∼1935년초는 일성사령관이 병석에서 앓고있을 때였다. 1935 2월 일명 《동만당단특위련석대회》라고도 하고 《다홍왜회의》라고도 하는 회의가 소집되였다. 《민생단》문제가 주안건이였다. 만주성당 파견원 위증민을 비롯하여 왕윤성, 주수동, 조아범, 왕덕태, 종자운 등 거물급 동만당특위 간부 20여명이 대거 참석한 력사적인 회의였다.

다홍왜는 왕청부근의 지명으로 연길 북쪽에 위치한 곳으로서 뻐스로 가면 약 2시간 반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다. 그 당시에 교통편도 없는 마당에 아픈 몸으로 그곳에 간다는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였다.

김일성사령관은 다홍왜로 떠날 차비를 하였다.

김일성주석은 이때를 이렇게 회고한다.

《수십일간이나 내처 앓던 몸이여서 회의에 참가할만 한 기력은 없었으나 내가 요구한 회의이니 반드시 가야 하였다. 그런데 4중대장과 정치지도원을 비롯한 군대내의 많은 동무들이 내가 다홍왜로 떠나는것을 한사코 반대하였다.(444페지)

4중대 정치지도원이 김일성사령관에게 《대장동지, 만주성당에서도 파견원이 오고 공청만주성위에서도 파견원이 왔다는데 어쩐지 심상치 않습니다. 진리가 아무리 대장동지편에 있다고 해도 어쨌든 대장동지는 혼자이고 그들이 다수를 차지하고있지 않습니까.》라고 극구 참가를 반대한다. 20 대 1, 그야말로 사면초가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극좌좌경분자들과 정면대결하려는 김일성사령관의 앞길을 막지 못하였다.

이러한 정황에 대해 김일성주석은 회고록에 이렇게 썼다.

《다홍왜회의가 우리에게 미소를 보내고 축복의 인사를 보내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나를 고무해주는 락천가는 단 한명도 없었다.

그들이 나의 출발을 앞두고 그처럼 불안해한것은 무리가 아니였다.(4 45페지)

1935 2, 그때 동만일대의 험악한 분위기를 두고 김일성주석은 이렇게 회고하고있다.

《… 만주성당이 동만 각급 당부와 전체 당원들에게 전당을 볼쉐비크화하기 위하여 숙반공작과 좌우경을 반대하는 량조전선의 투쟁을 강하게 전개하여 당내에 침입한 반혁명분자들을 모두 제거하고 파쟁주의, 민족주의, 사회개량주의를 청산구축할데 대한 비밀지령을 하달한 뒤였다. 이 지령이 하달된 후 동만 각급 당조직들에서는 반<민생단>투쟁이 더욱 극좌적으로 무자비하게 전개되였다.(4 45페지)

김일성사령관과 동지들이 나누는 대화의 장면은 우리 나라 고가사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를 련상케 한다. 공무도하가는 고조선시대의 작품으로 가장 오래된 가사문학가운데 하나이다. 사지를 향해 떠나려는 님을 말리며 녀인이 부른 노래이다. 여기 소개한다.

 

     공무도하가 (公無渡河歌)

 

님아 님아 내 님아 그 물을 건너지 마오

님아 님아 내 님아 그예 물을 건너시네아

  (기어이 물을 건너시나이까)

물에 휩쓸려가시네

아 가신 님을 장차 어찌할고!

 

이 고가사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사지로 가는 영웅남편과 이를 말리는 녀인간의 슬픈 노래와 시는 그리스신화와 중동일대의 신화에서도 나오기때문에 이 가사는 오래된것이기는 하지만 세계적인 특징을 가지고있다. 백수광부(白首狂夫)로 알려진 남편이 물을 건너 사지로 가는 모습을 보고 그의 안해가 강가에서 부른 노래이다. 이 노래가 하도 슬퍼서 당시의 녀류음악가인 려옥(麗玉)에 의해 《공후인》으로 다시 창작되여 세상에 널리 전해지게 되였으며 사람들이 따라부르게 된것이 지금까지 전해지고있다고 한다.

《민생단》문제와 관련한 김일성사령관과 좌경분자들사이의 론쟁은 그때까지 비공식적인 장소에서 자연발생적인 여러 형태로 있어왔다. 그러나 1935년 당과 군대, 공청의 주요간부들이 다 모이는 다홍왜회의에서 있은 《민생단》과 관련한 론쟁은 공식적인 형태를 띠고 첨예하게 벌어졌다는 점에서 이전에 있은 론쟁들과 다르다.

김일성주석은 이러한 론쟁이 벌어지게 될 다홍왜로 가는것이 얼마나 어렵고 위험천만한 길이였던가에 대해, 그러나 단호히 그 길에 올랐던 때를 감회깊이 회상한다.

《좌경을 반대하는 세력이나 하나라면 나를 반대하는 세력은 10이나 20명도 넘을수 있다. … 나는 좌경의 포위속에서 전체를 향해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할것이다. 론쟁은 나를 단죄하는 성토장으로 되고 회의장은 나를 매장해버리는 재판장으로도 변할수 있다. <민생단>이라고 하면서 나를 정치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매장해버리려는 극단한 시도도 있을 우려가 없지 않았다.(4 45페지)

《전우들은 바로 그 점을 제일 걱정하고있었다. 그들은 <숙반>을 주관하고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인정사정없는 돌심장들인가를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그래서 전우들은 사색이 되여 다홍왜로 가지 말아달라고 애걸하였다.

그러나 나는 단호하게 길을 떠났다.(4 4546페지)

《동무들, 이 길은 죽든지 살든지 떠나지 않으면 안되는 길이다. 내가 만일 다홍왜로 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스스로 자멸을 가져올뿐이다. … 대결은 피할수 없고 흑백은 반드시 갈라져야 한다.(4 46페지)

 

주체를 세우려 기어코 다홍왜로 떠나다

 

김일성사령관은 오대성과 다른 한명의 전령병의 부축을 받으며 회의가 시작된지 이틀만에야 다홍왜에 도착하였다. 인민혁명군대원들의 엄한 경호조치가 실시되고있는 제8구 농민위원회 사무소에서 만주성당 파견원 위증민과 동만당단특위의 간부들이 김일성사령관을 맞아주었다. 이 너렁청한 사무소건물에서 바로 중국사람들이 동만당단특위련석대회라고 규정한 회의가 진행되고있었다. 흔히 《다홍왜회의》라고 부르고있다. 한때 일부 력사가들이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회의라고도 하였다.

다홍왜회의는 약 10일가량 진행되였다. 회의도중 들락날락하는 사람들도 있어 출석자의 수자는 고르지 못하였다. 대부분은 중국사람들이였고 조선족출신으로는 김일성사령관과 송일, 림수산, 조동욱을 비롯한 몇몇 간부들뿐이였다. 조동욱은 회의 전기간 중국말을 잘 모르는 조선족간부들을 위해 통역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김일성사령관은 동만당 특위위원의 자격으로 이 회의에 참가하였다.

론쟁이 열기를 띠기 시작한것은 만주성위 순시원 종자운이 보고에서 동만에 있는 조선사람들의 70, 조선혁명가들의 8090%가 《민생단》이거나 그 혐의자들이며 유격구가 《민생단》의 양성소라는 종래의 견해를 되풀이한 순간부터였다.

회의분위기는 종자운의 보고를 지지하는데로 기울어졌다.

어떤 사람들은 《숙반공작위원회》를 강화해야겠다는 발언을 하였고 어떤 사람들은 《민생단》숙청은 혁명으로 대내의 반혁명을 포위섬멸하는 특수전이라는 미사려구를 늘어놓았으며 어떤 사람들은 《민생단》이 뿌려놓은 씨종자들을 보다 철저히 무자비하게 뿌리채 뽑아내야겠다고 하였다.

김일성사령관은 이들의 론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질문을 던진다. 여기서 질문에 대하여 질문으로 대응하는 론법이 동원된다. 질문에 답을 하면 반드시 그 답에 대한 반론이 나올수 있기때문에 김일성사령관은 상대방의 질문자체에 질문을 던져 그 질문자체가 답이 되도록 하는것이다. 상대방이 주장하는 론법이 스스로 자기모순에 부닥치게 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동만에서 활동하는 조선혁명가들의 대부분이 <민생단>이라면 이 회의에 참석하고있는 나와 기타 조선동지들도 다 <민생단>으로 된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당신들은 지금 <민생단>과 마주앉아 회의를 하는가? 우리가 <민생단>이라면 무엇때문에 감옥에 가두거나 죽이지 않고 여기에 불러다놓고 정치를 상론하는가?(4 47페지)

 

김일성해학(諧謔)은 세기적

 

종자운의 론리대로라면 《민생단》 아닐 사람이 없으며 여기 당신들과 자리를 같이하고있는 사람들도 《민생단》이고 그러면 《민생단》과 같이 앉아서 회의를 하고있는 꼴이라는것이다. 이 얼마나 멋진 론리인가?

김일성사령관은 종자운의 론리자체가 자기모순에 빠지도록 말을 이끌어간다. 이것은 그의 여유있는 인성에서 자연히 나온것이다.

《민생단》과 마주앉아 《민생단》을 규탄한다는것은 웃음거리라는것이다.

김일성사령관은 유모아의 명수였고 그의 이런 론법이 그로 하여금 평생 락천가로 살게 한것이며 항일혁명 20년을 이끈 비결이라고 나는 보고싶다.

얼마나 김일성사령관의 말이 종자운일당들의 자기 리탈을 일으키고있는지를 보자.

《동무들이 찍어놓은 그 수자속에는 싸움터에서 전사한 혁명가들도 포함되는가? 만일 포함된다고 가정하면 그들이 항일전쟁에서 목숨을 바친것을 무엇이라고 설명할수 있겠는가? 그러면 일본놈들이 자기편 사람들을 수없이 죽인것으로 되는데 그들이 모처럼 키워놓은 <민생단>원들을 그렇게 죽일 필요가 있었겠는가?

이 회의장을 호위하고있는 1중대의 8090%도 <민생단>으로 보는가?(4 4748페지)

《이 질문으로 하여 술렁거리던 회의장안에서는 갑자기 우리자신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수 없는 차거운 정적이 깃들었다. 사람들은 아무 대답도 못하고 집행석에 앉아있는 위증민의 얼굴만 쳐다보았다.(4 48페지)

 사실은 차거운 정적이지만 으스스 자기 의식을 하면서 일어나는 내면의 웃음인것이다.

김일성사령관의 해학은 거침없이 이어진다.

《다 알다싶이 어떤 물질이든지 본래의 구성요소와 다른 요소가 8090%이상을 차지하게 되면 그 물질은 다른 물질로 변하게 된다. 이것은 과학이다.

동만에 사는 조선사람의 70%가 <민생단>이라는것은 로인들과 아녀자들을 제외한 조선족청장년들 전부가 <민생단>이라는 말과 같은데 그렇다면 동만에서는 <민생단>이 혁명을 하고있으며 <민생단>이 자기 상전을 반대하는 혈전을 벌리고있단 말인가?

《어떤 사람들은 동만에서 활동하고있는 조선공산주의자들의 대부분이 <민생단>이라고 공공연히 말하는데 이것 역시 리치에 맞지 않는 소리이다. 그들이 만일 <민생단>이라면 무엇때문에 3년동안이나 만성적인 봉쇄상태에 놓여있는 유격구들에서 엄동설한에 집도 없이 입을것도 입지 못하고 먹을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적들과 힘에 겨운 싸움을 하여왔겠는가.

《조선혁명가들의 8090%는 고사하고 그 십분의 일인 89%만 <민생단>이라고 하여도 우리는 이자리에서 마음놓고 회의를 할수 없을것이다. 왜냐하면 이 회의장주변에서는 지금 조선사람들로 편성된 1중대가 완전무장을 하고 우리들에 대한 경위임무를 수행하고있기때문이다. 이자리에는 몇해째 적들이 소멸하지 못해 애를 쓰는 동만지방의 이름난 혁명가들과 지도핵심들이 다 모여있다. 당신들의 주장이 옳다고 한다면 1중대 성원들도 거의나 <민생단>이겠는데 그들이 좋은 총기를 가지고있으면서도 우리를 습격하여 일망타진하지 않는것이 이상하지 않는가?(4 4849페지)

모두가 《민생단》이라는 생억지의 제창자들은 이 물음에도 역시 함구무언이였다.

《보고에서는 유격구를 <민생단>의 양성소라고 하고 당, 단조직도 <민생단>조직이라고 하면서 리용국은 <민생단> 왕청현당 책임자, 김명균은 <민생단> 왕청현 조직 및 군사책임자, 리상묵은 <민생단> 동만당 조직책, 주진은 인민혁명군 1 <민생단> 책임자, 박춘은 인민혁명 <민생단> 참모장이라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동만당이나 왕청현당이나 인민혁명군 1를 모두 <민생단>조직으로 보아도 되겠는가? 동만당 간부들을 <민생단>의 조종자, 지도자들이라고 보아도 무방하겠는가?(4 49페지)

김일성사령관의 론리는 동만 온 바닥이 전부 《민생단》이라면 지금 다홍왜회의자체도 성립할수 없다고 한다. 다시말해서 《민생단》분자들이 포위한 상태에서 회의를 하고있다는것이다.

이것은 자가당착이다. 웃음거리이다. 이러한 론리앞에 할 말을 잊을수밖에 없다.

지금도 북의 지도자들이 전개하고있는 론리는 자세히 분석해보면 모두 다홍왜에서 김일성사령관이 전개한 론리에서 과히 멀지 않다. 다시말해 상대방의 말자체가 자어상위에 걸리도록 만들어버린다는것이다.

이런 론리를 펴자면 이렇게 말하는 자신이 자어상위에 걸리지 않아야 하는데 그것은 화자자신의 도덕적청렴성에 의해서만 가능해진다.

도덕의 기원은 바로 이런 역설적상황에 있다.

청중은 이 물음에도 침묵으로 대답하였다. 탁월한 론리로 동만당지도부의 론리가 억지임을 단숨에 보여준것이다.

성당파견원으로서 이 투쟁을 객관적으로 정확히 종합분석하고 평가할 사명을 걸머진 위증민은 당, 단조직자체를 《민생단》조직으로 보는것은 착오이며 부분과 전체는 반드시 구별해보아야 한다는 견해를 발표하여 장내에 조성된 긴장도를 약간 늦추어놓았다.

김일성사령관은 동만인민의 대부분을 《민생단》이라고 락인찍는것은 조선사람들에 대한 모독이며 이 견해는 이번회의에서 당장 시정되여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였다.

그런데 이 주장은 즉석에서 조아범의 반격을 받았다.

《당신은 무턱대고 <민생단>이 없다고만 하는데 그것은 주관이다. 감옥들에는 지금 수백명의 <민생단>혐의자들이 갇혀있다. 그들이 자기 입으로 <민생단>에 들었다고 자백하고있고 자기 손으로 자백서까지 쓰고있는데 그 자백과 자백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래 당신은 이런 증거자료들을 인정하지 않는단 말인가?

이에 대하여 김일성사령관은 《당신들이 <민생단>이라고 몰아대는 혐의자들의 대다수는 <>의 집행자들에 의해 가해지는 육체적고통에 견디지 못해 가짜자백을 한 사람들이다.

당신들은 지금 <민생단> 아닌 <민생단>을 마구 만들어내고있다.(4 50페지)고 반격을 가한다.

 

자기 인민을 지키지 못하는 손금없는 지도자는 가라

 

이상이 다홍왜회의에서 김일성사령관이 론박한 내용의 요약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김일성저작집》의 다홍왜회의 연설문을 참고하면 될것이다. 다홍왜회의에서 김일성사령관이 보여준 태도는 강한 동족애의 발로라는 범위를 초월하며 조선공산당도 사라진 마당에 남의 집 안방에서, 동만간부들앞에서 과감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쳐보였다는 점이다. 특히 종자운은 만주성위 순시원으로서 사실상 최고실력자라고 할수 있는 존재이다.

 12 19일 《대선》을 앞두고 력대 《대통령》후보들이 미국 눈치보고 미국을 찾아가 검증절차를 먼저 통과하려 앞을 다투었다.

최근 유력후보는 뒤구멍통로로 부쉬를 만나러 가려다가 불발탄이 된적이 있다. 어느 후보는 상승일로에 있다가 미국을 갔다온 후 지지률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후보시절이나 당선이후에라도 손금이 다 닳도록 빌고 조아려야 《대통령》이 될수 있다는 생각이 유전인자가 되여있을 정도이다. 우리는 《대선》후보들의 손금을 한번 검증해보아야 한다. 관상보다 더 중요한것은 손금이다. 손금이 다 닳아없어진 후보를 지도자로 뽑는 국민들은 자기들자신도 손금이 다 닳아없어졌기때문이다.

후위의 가경흥(賈景興)은 늘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내가 너를 저버리지 않았느니, 그것은 내가 고관에게 절하지 않았기때문이다.》라고 했다.

요즘은 의자생활을 해 무릎굽혀 절할 기회는 없지만 대신에 량손을 하도 비벼대며 힘있는자에게 아첨을 하여 《손금이 없다.》로 바뀐것 같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사대아부굴종 그자체가 사라진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