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 - 사랑의 정치』 중에서

 3. 선군 ― 민족에 대한 사랑의 정치

3) 민족의 은혜로운 태양 선군령장

 □ 해외동포들을 한품에 안아

 

가까이에 있는 자식보다 멀리 있는 자식을 더 극진히 생각하는것이 바로 어머니의 사랑이다. 하지만 이러한 어머니의 사랑은 한가정의 울타리를 넘지 못한다.

그러나 민족의 어버이이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따뜻한 사랑의 손길은 한가정의 울타리를 뛰여넘어 멀리 해외에 있는 동포들에게까지 뜨겁게 미치고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해외에 있는 모든 조선동포들의 운명을 지켜주고 보살펴주는것을 숭고한 동포애적의리로 여기시고 그들을 한품에 안아 육친의 정으로 보살펴주고계신다.

우리 민족이 대국상을 당하고 몸부림치고있던 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자신의 건강에는 아랑곳없이 겨레의 아픈 마음을 쓰다듬어주시고 신상을 보살펴주신 사랑의 전설은 오늘도 만사람의 가슴을 격동시키고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의 서거와 관련한 조의행사에 외국대표단과 대표들은 받지 않기로 하였지만 해외동포들은 문제가 다르다고, 그들은 비록 이국에 나가 살고있지만 조국인민들과 똑같은 상제라고 하시며 해외동포들이 조국에 와서 어버이수령님의 령전에 조의를 표시하도록 해주시였다. 그리하여 세계 여러 지역에 있는 해외동포대표단들과 수많은 해외동포들이 조국을 조의방문하게 되였다.

누구보다 크나큰 상실의 아픔을 안고계시는 장군님이시였지만 조국에 온 동포들의 생활에 각별한 관심을 돌리시여 어버이수령님을 잃은 비감에 젖어있는 해외동포들이 슬픔을 딛고 억세게 일어나 애국애족의 한길로 변함없이 걸어나가도록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민족최대의 대국상으로 이 땅에 피눈물의 바다가 흐르고있던 1994년 8월이였다. 커다란 상실의 아픔속에서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의 유훈을 지켜 재미동포 손원태선생에게 생일상을 안겨주시는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손원태선생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옛 길림시절에 인연을 맺으신 손정도목사의 아들이다.

어버이수령님께서 길림에서 헤여지신이래 그와 다시 만나신것은 서거하시기 3년전의 일이였다. 1991년 봄 해외에 살고있는 그를 조국으로 불러주신 수령님께서는 그의 생일을 한번도 차려주지 못한것을 못내 서운해하시면서 80돐생일상만은 형님으로서 성의껏 차려주겠다고 하시며 그때 조국에 와서 생일을 쇠라고 말씀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주체83(1994)년 5월 어느날에도 일군들에게 손원태선생의 80돐생일상을 잘 차려주자고 이르시면서 그의 생일에 선물하실 대형보석화 《송학》을 마련해놓으시였다.

그러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 너무도 갑자기 서거하셨다는 비보를 받고 도저히 믿을수 없었던 손원태선생은 줄곧 흐르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며 조국으로 왔다.

7월 17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의식장에서 그를 맞아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수령님의 령전에서 어깨를 들먹이는 그를 위로해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선생님, 멀리 타향에서 수고로이 와주어 고맙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생전에 선생님의 80돐생일을 크게 쇠드리겠다고 하시였는데 참으로 안되였습니다.

앞으로도 제 집처럼 드나들어야 합니다. 저는 수령님의 친지들을 항상 잊지 않겠습니다.》

실은 자기가 위로해드려야 할 장군님으로부터 도리여 위로의 말씀을 받아안은 손원태선생은 비오듯 흘러내리는 눈물을 걷잡을수 없었다.

어버이수령님을 잃은 슬픔과 비애로 하여 본인도 해당 일군들도 생일문제를 까맣게 잊어버리고있었다. 그런데 장군님께서는 수령님의 은정그대로 자기에게 생일상을 차려주시려는것이 아닌가. 손원태선생은 자기 귀를 의심하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의 생일날이 다가오자 모든 성의를 다해 생일준비를 잘하도록 관심하시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손원태선생은 대국상의 슬픔이 드리워있는 때에 생일잔치를 치른다는것은 도리에도 어긋나므로 생일을 쇠지 않겠다고 거듭 사양하였다.

하지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손원태선생의 80돐생일을 차려주는것은 수령님의 생전의 뜻이였다고 하시며 8월 11일 그의 생일날 이른아침 해당 일군들을 보내시여 자신의 명의로 된 꽃바구니와 대형과일바구니 그리고 그와 부인에게 대를 두고 길이 전할 선물을 전달하고 생일을 축하하는 인사도 전해주게 하시였다.

그날 저녁에는 수령님께서 생전에 손원태선생의 생일에 즈음하여 마련해놓으신 선물인 대형보석화 《송학》을 전달하게 하시고 목란관에서 생일을 축하하는 연회도 차려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계시여 어버이수령님의 생전의 사랑이 그대로 뜨겁게 이어지고있음을 절감한 손원태선생은 생일상을 받고 자기의 심정을 이렇게 터치였다.

《참으로 김정일장군님은  그대로  김일성주석이시며 백의민족의 위대한 태양이십니다.

김일성주석께서는 비록 너무도 애석하게 우리의 곁을 떠나시였지만 우리 7천만 백의민족에게 수령님의 위업을 빛나게 이어가시며 우리모두를 사랑의 한품에 안아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계십니다.》

연회장에 펼쳐진 그 격동적인 광경은 어버이수령님께서 생전에 온 겨레에게 베푸시던 사랑과 은정이 경애하는 장군님에 의하여 뜨겁게 이어지고있음을 감동깊게 보여주는 위대한 사랑과 은정의 대화폭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재미교포녀류기자 문명자녀사도 사랑의 한품에 안아주시고 통일애국의 문필활동을 적극 벌려나가도록 고무해주시였다.

그로 말하면 미국의 백악관출입기자로 활약한 경력도 있고 세계 여러 지역을 밟으면서 예리한 분석과 째인 론리로 자기의 정치적견해를 밝힌것으로 하여 남조선과 해외동포들속에서는 물론 서방세계에도 널리 알려진 녀류문필가이다.

그는  비록  미국국적을  가진  사람이고 미국기자였지만 평양을 방문하여 어버이수령님을 만나뵈온 후부터 민족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다 바칠 굳은 각오를 가다듬고 인생전환의 길, 통일애국의 길에 들어서게 되였다.

어버이수령님의 서거에 관한 청천벽력같은 소식에 접한 길로 평양에 달려온 그는 일체 식사와 음료를 전페하고 비통함을 금치 못해하고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국에 온 그가 위대한 수령님의 서거를 애도하면서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있는데 대하여 헤아리시고 그에게 기록영화 《인민을 위한 길에 언제나 함께 계셨습니다》를 보여주도록 하시였다.

그는 영화를 보고 솟구치는 격정을 금치 못하며 오래전부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위대한 주석님의 사업을 보좌해드린데 대하여 잘 알게 되였다고, 장군님께서 계시기에 주석님께서는 조국의 전도에 대하여 마음을 놓으실것이라고, 이 영화를 보도록 하여주신데 대하여 장군님께 감사를 드린다고 하였다.

1997년  7월  위대한  수령님의 서거 3돐 추모행사때에도 평양을 방문한 그는 경애하는 장군님을 만나뵙고싶은 자기의 간절한 심정을 절절하게 터놓았다.

이에 대한 보고를 받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에게 친히 서한을 보내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서한에서 녀사가 이번에 주석님서거 3돐 추모행사에 참가해준데 대해 매우 고맙게 생각하며 사의를 표한다고 하신 다음 나는 녀사가 이번 조국을 방문한 기회에 시간을 내여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였으나 여러가지 일들이 제기되여 짬을 낼수 없게 된것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지금도 나는 우리 주석님께서 생전에 녀사를 만나시여 정의의 필봉을 들고 해외에서 애국애족의 활동을 널리 벌리고있는 녀사와 같은 저명한 녀류문필가를 가지고있는것은 우리 민족의 자랑이라고 하시던 말씀을 잊지 않고있다고, 녀사가 주석님께서 생존해계실 때나, 우리곁을 떠나신 이후에나 변함없이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조국통일을 위하여 적극 활약하고있는데 대하여 나는 잘 알고있다고, 나는 녀사가 앞으로 조국을 다시 방문하는 기회에 꼭 만나게 되기를 희망하면서 녀사가 건강하여 사업에서 보다 큰 성과가 있기를 바란다고 지적하시였다.

자기 조국과 민족을 위한 의로운 길을 변함없이 꿋꿋이 이어 나가도록 힘을 주고 용기를 주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그 뜻깊은 서한은 재미교포녀류기자의 가슴을 무한히 격동시켰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로부터 몇년후인 주체89(2000)년 6월 30일 평양을 방문하고있는 문명자녀사를 만나주시고 따뜻한 담화를 나누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담화에서 그가 진심으로 올리는 감사의 인사에 내가 다른 외신기자들은 모두 사절해도 문선생만은 부르라고 했다고, 우리 민족으로서 화해와 통일을 위해 정력적인 기자활동을 하고있는데 마땅히 초청해야 하지 않겠는가고 하시며 그가 알고싶어하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유모아를 섞어 납득이 잘되게 오랜 시간 말씀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에게 우리는 이번에 북남력사상 처음으로 북과 남 수뇌들의 상봉을 실현하고 북남공동선언을 채택하였다고, 이것은 북과 남이 서로 리해를 증진시키고 북남관계를 발전시키며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이룩하는데서 사변적의의를 가진다고 하시면서 조국통일을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실현하는데서와 조미관계개선에서 나서는 문제 등 많은 문제들을 명철하게 밝혀주시였으며 조국통일을 위한 의로운 활동을 널리 벌리고있는 그를 고무해주시였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와 여러 시간동안 동포애의 정 넘친 담화를 나누시고 헤여질 때에는 다리가 불편한 그의 손을 몸소 잡아 승용차에 편히 오르도록 보살펴주기까지 하시였다.

문명자녀사가 경애하는 장군님을 만난 시간은 민족에 대한 장군님의 뜨거운 동포애속에 흘러간 시간이였다.

온 민족과 인류의 태양이신 경애하는 장군님을 만나뵙고 그이의 귀중한 말씀까지 받아안은 문명자녀사는 장군님의 위인적풍모와 다방면적인 식견, 한없이 소탈한 풍모와 친절성에 완전히 매혹되였다.

그는 후날 이렇게 썼다.

김정일국방위원장님은 강하면서도 소탈한분이시였고 지난 1992년과 1993년 두차례에 걸쳐 접견해주시였던 위대한 수령님의 모습 그대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토록 뜨거운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이들뿐이 아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뜨거운 은정을 젖줄기로 하여 온 겨레는 대국상의 슬픔을 천백배의 힘과 용기로 바꾸어 부강조국건설과 나라의 통일을 위한 애국의 길을 굳세게 걸어나갔다.

어버이수령님 그대로이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공화국이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하는 그처럼 어려운 속에서도 해외동포들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돌려주시였다.

1995년 1월 17일 새벽 리히터척도로 7.2b의 대지진이 일본의 고베로부터 오사까에 이르는 방대한 지역을 휩쓸었다.

일명 《한신대진재》로 불리우는 이 지진으로 인하여 삽시에 5 500여명의 사망자와 2만 5 000여명의 부상자, 34만명의 피난민이 생기게 되였으며 10만 5 000여동의 건물이 무너지거나 불타버리고 도로, 철도, 항만들이 파괴되였다.

《한신대진재》는 재일조선동포들에게도 헤아릴수 없는 커다란 참화를 들씌웠다.

료해된 자료에 의하면 129명의 동포들이 사망하고 1 500여명의 동포들이 부상을 당하였고 수많은 동포들이 엄동설한에 피난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되였으며   2 225동의 동포들의 집과 점방이 파괴되는 참변이 빚어지게 되였다.

바로 그때 뜻밖의 불행을 당한 동포들에게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구원의 손길을 보내주시였다.

대지진이 일어난 이른아침, 재일동포들이 참변을 당하였다는 뜻밖의 소식에 접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해당 부문 일군들을 급히 찾으시여 우리 동포들이 입은 지진피해정형을 알아보도록 하시였으며 그 다음날인 1월 18일 뜨거운 은정이 어린 사랑의 위문전문을 총련중앙상임위원회 의장앞으로 보내시였다.

《나는 일본의 효고현을 비롯한 깅끼지방에서 대규모의 지진이 일어나 그곳 총련조직들과 동포들이 커다란 피해를 입었다는 뜻하지 않은 소식에 접하였습니다.

나는 이 불행한 소식에 접하여 한덕수의장동지를 비롯한 총련중앙상임위원회와 피해지역 동포들과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위문과 애도의 뜻을 표하는바입니다.

나는 총련의 모든 조직들과 동포들이 더욱 굳게 단합하여 지진피해를 하루빨리 가시고 안착된 생활을 이룩하기를 충심으로 바랍니다.》

불행한 처지에 놓인 자식들을 생각하는 부모의 심정으로 절절한 위문전문을 띄우신 장군님께서는 이날 오후 2시와 6시 그리고 이틀후인 1월 20일에도 새로 확증된 지진피해정형을 상세히 료해하시고 못내 가슴아파하시였다.

그이께서는 1월 22일 해당 부문 일군들에게 총련일군들과 동포들속에서도 인명피해가 적지 않게 난것 같다고, 총련상공인들의 재산이 불에 많이 탔다고 걱정하시며 위문금을 보낼데 대한 은정어린 조치도 취해주시였다.

해당 부문 일군들은 나라의 외화형편이 매우 어려운 사정을 고려하여 얼마간의 위문금을 보내주는것으로 대책안을 세웠다. 그 얼마간의 돈일지라도 동포들에게는 큰 힘이 될것이라고, 그리고 조국의 사정을 잘 아는 그들로서는 모든것을 리해하리라는 타산에서였다.

이 사실을 아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재일동포들이 겪는 불행과 고통을 덜어주는 일인데 하나도 아까와할것이 없다고, 우리가 죽을 먹고 굶는 한이 있더라도 위문금을 보내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지진피해를 입은 동포들에게 위문금을 보내는것과 관련하여 총련중앙상임위원회 한덕수의장에게 다시금 위문전문을 보내시였다.

이 시기 공화국의 형편에서 해외동포들에게 100만US$의 위문금을 보내준다는것은 그야말로 힘겨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지진피해를 입은 일본인민들에게도 20만US$의 위문금을 보내주는 인도주의적조치를 취하도록 하시였다.

이것은 경제가 발전했다고 자처하는 나라들이 일본정부에 보낸 구제금이 기껏하여 50만US$선상에서 왔다갔다한것과 대비해볼 때 엄청난 액수에 달한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먼저 민족이 당하는 불행과 고통을 하루빨리 가셔내는것을 가장 선차적인 문제로 내세우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비록 나라사정이 어려웠지만 재일동포들에게 거액의 위문금을 보내주시였으며 총련산하 동포들뿐아니라 《민단》계동포들도 포함하여 지진피해를 입은 모든 동포들에게 한사람도 빠짐없이 위문금이 가닿도록 은정어린 사랑을 베풀어주시였다.

것은 언제나 민족을 우위에 놓고 민족을 위해 복무하는 애족의 정치, 광폭정치를 펴나가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내리실수 있는 사랑의 조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위문금은 리념과 단체, 소속에 관계없이 그 피해정도에 따라 모든 조선동포들에게 골고루 전달되였다.

친어버이의 보살핌, 혈육의 정이 넘치는 위문금을 전달받은 동포들은 어머니조국의 품, 민족의 어버이이신 김정일장군님의 사랑의 품에 안기듯 그것을 정히 한가슴에 받아안고 조국의 하늘을 우러러 절을 하고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격정을 터뜨렸다.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민족에 대한 따뜻한 사랑의 정이 느껴지는 위문금을 받아안은 《민단》계동포들은 더더욱 감사의 정을 금치 못해하였다.

참으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위문전문과 위문금은 뜻하지 않은 커다란 재난과 불행을 당하고 어쩔바를 몰라하던 재일동포들에게 새로운 힘과 용기를 안겨준 은혜로운 사랑의 빛발이였으며 고귀한 생명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뜨거운 사랑과 보살피심에 의하여 재일동포들은 《한신대진재》로 입은 피해를 가시기 위한 사업을 짧은 기간에 성과적으로 결속할수 있었다.

멀리 해외에 있는 자식들을 소중히 여기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의 손길은 총련의 민족교육을 끊임없이 강화발전시키기 위한 사업에도 뜨겁게 깃들어있다.

총련의 민주주의적민족교육사업을 걸음걸음 이끌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민족최대의 대국상을 당하고 제국주의자들의 고립압살책동이 그 어느때보다 악랄하게 감행되던 시기 민족앞에 가로놓인 시련과 난관을 헤쳐나가시는 그처럼 어려운 속에서도 총련에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는것은 어버이수령님께서 세워주신 제도와 전통이므로 절대로 어길수 없으며 어떤 일이 있어도 그대로 지켜야 한다고, 앞으로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실 때와 꼭같이 보내주어야 한다고 간곡하게 말씀하시였으며 구체적인 대책까지 하나하나 세워주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교육원조비와 장학금문제를 단순한 재정문제가 아니라 어버이수령님의 유훈을 철저히 관철하고 민족의 대를 잇는 중대한 사업으로 여기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처럼 뜨거운 민족애에 떠받들려 해마다 재일동포자녀들에게 많은 액수의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주는 사업이 전통화되게 되였다.

하여 한푼의 외화가 천금맞잡이였던 그 어려운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에도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은 중단없이 재일동포들에게 가닿게 되였으며 2010년 4월 태양절을 맞으며 보내준 교육원조비와 장학금까지 합치면 지금까지 일본돈으로 465억 9 425만 390¥에 달한다.

이것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해외동포들에 대한 무한대한 사랑의 결정체이며 바람세찬 이역땅에 민주주의적민족교육의 대화원을 펼쳐준 은혜로운 사랑의 젖줄기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렇듯 끝없는 사랑과 은정을 받아안으며 총련과 재일동포들은 애국애족운동을 더욱 전진시켜나가기 위한 투쟁을 힘차게 벌려나가게 되였다.

대양도 기슭이 있고 태양의 빛도 가닿지 못하는 그늘진 곳을 남기기마련이지만 경애하는 장군님의 동포애는 우리 겨레가 살고있는 지구의 그 어느곳이나 다 골고루 비쳐주는 가장 위대한 사랑이다. 그 사랑과 은정속에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가 살고있다.

참으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은 우리 민족모두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며 그이의 선군정치야말로 온 민족을 위한 사랑의 정치이다.

조선민족의 존엄을 만방에 떨치고 민족의 자존심을 백배해주고있는 선군정치로 하여 우리 겨레는 긍지높고 위대한 민족으로 되였다. 우리 겨레가 받아안은 이 커다란 행운과 자랑을 되새길 때마다 선군정치야말로 조국과 민족, 인민에 대한 최대의 사랑임을 가슴뜨겁게 절감하게 된다.

사랑에는 보답이 따르기마련이다.

내외의 반통일세력이 민족의 통일대행진을 가로막으려고 악랄하게 책동하고있는 오늘의 현실은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의 존엄을 귀중히 여기며 인민의 리익을 우선시하는 사람이라면 선군정치를 열렬히 지지하고 옹호하며 적극 받들어나갈것을 요구하고있다.

6.15통일시대는 선군정치를 지지하고 옹호하고 받들어나가는 길만이 참다운 애국, 애족, 애민의 길이라는것을 가리키고있다.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가 애국애족애민의 선군정치를 높이 받들어나갈 때 이 땅에는 핵전쟁의 검은구름이 가시여지고 맑고 푸른 하늘만이 펼쳐질것이며 통일되고 부강번영하는 조선민족의 밝은 앞길은 더욱 창창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