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회고록으로 보는 세상이야기』 중에서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주체료법(Juche Therapy)》과

장포리를 살린 경우

 단 한목숨이라도 살리려고 

회고록 4권 전반부는 김일성사령관이 《민생단》으로 몰려 죽어가는 동지들의 생명을 살리려고 심신을 다 바치는 장면들로 점철돼있다. 어제까지 같이 싸우던 동지들이 하루아침에 일본밀정으로 몰려 피투성이가 되도록 두들겨맞고는 결국 처형되고마는 장면앞에 《정면대결》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결론하고 행동으로 나선다.

김일성사령관은 1932 10월 어느날 왕청에 체류하는 동안 《민생단》혐의로 구류된 리종진이 무자비하게 구타당하는 현장을 목격하고 당장 중지를 명령한다.

연길, 훈춘일대의 사람들속에서는 《김일성, 그 사람이 무슨 화를 입으려구 그런 참견을 했을가. 물불을 모르는구만.》 하고 걱정하는 사람들, 《아직 왕청맛을 잘 몰라서 그래, 어쨌든 담은 큰 사람이야.》 하고 수군거린다.

결국 좌경분자들은 김일성사령관을 《민생단》으로 볼수 있는 《증거》를 찾으려고 검질기게 애를 썼다. 다름아닌 1933년 겨울 도문지주를 통하여 군복 500벌을 만들수 있는 군복천과 면화를 해결해 그것으로 구국군의 군복을 새로 해입힌것을 두고 지주와 내통했으니 이것은 《민생단》작용이 분명하다는것이다.

김일성주석은 그때를 두고 《구국군과 같은 우군의 협력이 없이 혁명군의 힘만으로 고군독전해서는 유격구를 유지해나가기가 곤난하였다.(4 33페지)고 회고하고있다. 김일성사령관이 이와 같이 지주와 통하면서 반《민생단》투쟁을 잘하지 않기때문에 유격구안에 《민생단》이 많이 있다는것이다.

그러나 김일성사령관은 단 한사람이라도 살릴수 있다면 이런따위의 위협이나 협박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들이 내 이름까지 걸고들며 그 무슨 책임을 운운한것은 사실 동만땅에서 발언권이 있는 조선족출신 간부들을 마지막 한사람까지 다 제거해버리려는 속심으로부터 출발한것이였다.(4 33페지)

김일성사령관은 이렇게 그들의 말귀와 눈치를 다 꿰뚫어보고있었던것이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 강하다 

교회당안에서 《주여! 주여!》 하면서 복달라고 비는것은 종교가 아니다. 력사의 현장에서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분노에서 나온 감정에서 진정한 종교는 시작한다. 에짚트황실에서 황태자같이 자란 모세가 어느날 거리에서 에짚트인이 자기 동족을 구타하는것을 보고 그 에짚트인을 돌로 쳐 모래에 묻고 미디안으로 도망친다. 진정한 의미에서 유태교 유일신신앙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그가 시온산에서 신을 만난것은 력사를 신비화시킨 후 사건에 불과하다.

만약에 주체사상이 종교라면 그 시원은 김일성사령관이 반《민생단》사건에 정면대결하는 분노에서 시작한다고 나는 주장하고싶다. 그렇다면 주체사상에 아무 이상이 없다고 본다.

반《민생단》사건에 정면대결해나선 김일성사령관은 극좌좌경분자들에게 이렇게 추궁한다.

<민생단>을 잡아내려면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똑똑히 잡아낼것이지 하필 왜 이 산속에서 배를 곯으며 혁명을 하느라고 고생하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제껴버리는가. 이것이 이상하지 않는가.(4 34페지)

이에 대한 극좌좌경분자들의 반응은 김일성사령관이 《민생단》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것이였다.

여기에 김일성사령관은 길림으로 공부하러 떠나던 이후 인생의 두번째 모험을 한다. 좋다, 그렇다면 내가 직접 혐의자들을 만나보겠다, 그것도 당신들의 립회하에 그렇게 하겠다고 도전장을 낸다. 이러한 김일성사령관의 제의에 현간부들도 별 이의를 제기할수 없었다. 인간은 견디지 못할 공포앞에서는 그만 질려버리고만다. 동물들도 천적앞에서 충분히 도망을 칠수 있는데도 대부분의 경우 잡혀죽는것은 자기의 공포에 자기자신이 져버리기때문이다.

그래서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호랑이를 잡는데 대부분 그것을 못하고만다. 밀림에서 살아남는 동물들이란 결국 공포자체에 도전하는것들이다. 생사의 기로에 서있는 생명체만이 경험할수 있는 이런 역설적인 도전법을 아는 민족은 지구상에서 그렇게 많지 않다. 외인부대가 철수하면 죽을듯이 비굴한 민족은 이 지구상에 살아남을 자격이 없다.

적과의 정면대결, 그것은 1930년대 김일성사령관이 남긴 위대한 정신적유산이다.  

 

의미치료법 (logo therapy)  

김일성사령관은 자신도 《민생단》밀정은 반대한다.

그러나 밀정이라고 단정하는데는 《과학적인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것이 김일성사령관의 지론이다. 여기서 말하는 과학적근거라고 하는것을 현대심리치료법으로 볼 때에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 유태인학자 빅터 프랭클이 개발한 《의미치료법(logo therapy)》에 해당한다고 본다.

나는 김일성사령관이 과학적근거하에 동지들을 반《민생단》마녀사냥에서 한사람한사람 살려내는 기법을 의미치료라는 관점에서 한번 살펴보려 한다.

2차대전이후 유태인들은 자기들의 력사적인 산경험들을 콘텐츠화하여 노벨상도 타고 그것을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삼고있다. 노벨문학상을 탄 베이유의 《밤(Night)》이란 소설은 나치스수용소의 산 경험을 토대로 한것이다. 그리고 《홀로코스트》는 유태인의 고유문화유산이 되여버렸다. 미국회의사당옆에 있는 유태인 홀로코스트박물관은 가장 관광객이 많은 곳가운데 하나이다.

그 무엇보다 여기서 소개하려고 하는 빅터 프랭클의 의미치료법은 그 심리치료법이 탁월하여 우리 나라에도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고 그의 저서들이 다수 번역소개되였다. 의미치료법은 죽음의 수용소 같은 곳에서 극한경험을 하지 않으면 창안해낼수 없는 창의적인 리론이다. 프랭클자신이 수용소에서 겨우 살아남았기때문에 그의 리론은 한결 생동감을 주고있다.

의미치료의 기법을 한마디로 쉽게 말하면 《역설》을 치료법에 도입하는것이다. 두려워하는 그것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하도록 부추기는 기법이다. 위험은 피해야 하는데 오히려 달려들라는것이다. 다시말해서 고양이목에 방울을 달라 하고 호랑이굴에 들어가라고 권하는 치료기법말이다.

사람들이 반《민생단》투쟁을 말하기조차 두려워할 때에 그것의 부당성을 과감하게 지적하고 나오는것, 드디여 호랑이가 우글거리는 굴속으로 들어가는것을 두고 말하는것이다.

1935년 《민생단》문제로 회의가 열리는 다홍왜에 김일성사령관이 모든 사람들이 만류하는 그곳을 향해가는것이 바로 프랭클이 말하는 의미치료법이다.

지네라는 동물은 여러개의 발을 가지고있는데 천적을 만나 어느 하나의 발에 마비가 오면 그만 나머지 발들이 전부 얼어붙고만다는것이다. 그 다음차례는 죽음이다. 이러한것을 두고 프랭클은 《지레짐작 겁먹기》 혹은 《예비불안(anticipatory anxiety)》이라고 한다. 2차대전전야에 가장 많은 병사들이 자살한것이 이에 해당한다.

《지레짐작 겁먹기》란 몇단계로 발전하는데 (1) 공포의 징후가 생기면 (2) 공포증을 불러일으키고 (3) 공포증은 다시 징후를 유발하고 (4) 이 징후의 재발은 공포증을 강화한다. 무서운 적을 만났을 때에 인간이나 동물이 모두 같이 느끼는 과정이다. 벌레가 새를 만나면 피할수 있는데 질려버리면 그만 잡혀죽고만다. 그래서 현대갈등리론의 최첨단론은 《대결(confrontation)》이다. 이것이 문제를 푸는 첩경이 될수 있다는것이다. 무기에는 무기로, 말에는 말로.

 

장포리의 경우와 《주체료법》  

김일성사령관은 《민생단》으로 몰린 동료부하들을 살리려고 그들을 만나볼 때에 조성된 정황을 피하는것이 아니라 이에 정면대결한다. 장룡산이 우선 심사의 대상이였다. 리수구골안의 《민생단》감옥에 갇혀있던 수감자들중에 《장포리》(본명 장룡산)라는 별명을 가진 중대장이 있었다. 장룡산은 밀가루반죽을 해놓고 밖에 나가서 한꺼번에 노루 8마리를 잡아다가 수제비국을 해먹을 정도로 사격술이 높아 이런 별명이 붙은것이다. 그가 소왕청방위전에서 혼자 쏘아잡은 적만 해도 아마 100명은 넘을것이라 한다.

그는 김일성사령관이 가장 아끼고 사랑해온 지휘관들중의 한사람이였다.

그러나 김일성사령관을 당황하게 만든것은 그에게 《민생단》이 옳은가고 물었을 때에 《그렇다.》라고 대답한데 있다. 이런 대답을 한다는것은 김일성사령관의 립장을 난처하게 만드는것은 물론 생명까지 위협하는것이였다.

《장포리, 똑똑히 대답해보라. 너 정말 <민생단>인가?(435페지)

장포리는 머뭇거리는 기색도 없이 《<민생단>입니다.》 하고 대답을 한다.

대원군은 경복궁을 짓기 위해, 당백전(當百錢)을 모으기 위해 공포분위기를 조성한다. 4대 문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붙들고 새가 《찍하고》 우느냐, 《짹하고》 우느냐 묻고는 앞사람이 《찍》하니 죽이고 그래서 뒤사람은 《짹》하니 그래도 죽였다. 여기서 《찍, 짹》이란 말이 생겨났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걸 무슨 대답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극도의 공포에서 나온 대답일것이다.

의미료법의 기교로 볼 때에 징후가 공포가 되고 다시 공포가 징후가 되여버려 징후가 공포를 재강화한 상태이다. 이 정도가 되면 악순환고리의 반복으로 《이다, 아니다》가 같아져버린다. 이를 두고 프랭클은 《되물림기제(feedback mechanism)》라 한다. 의미료법에서도 이런 기제를 푸는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가운데 하나이다. 여기서 우리는 상담자로서의 김일성사령관의 솜씨를 볼 차례이다.

프랭클은 환자가 두려워하고있는 바로 그 일을 환자가 하도록 한다. 또한 일어나기를 소망하도록 고무하라고 한다. 지레짐작의 겁먹음을 찔러버리라고 권한다. 밤에 잠이 안올 때에 잠자려 하지 말고 잠 안자도 좋다고 해버리라는것이다.

김일성사령관은 《민생단》이란 되물림기제에 걸린 부하동지들을 구해내려 정말 안깐힘을 쓴다. 다시 장포리에게 묻기를 《그럼 <민생단>노릇을 하면서 무엇때문에 왜놈새끼들은 수태 쏴죽였는가?(4 35페지)라고 한다.

장포리의 진술을 들어보려고 감옥까지 따라와 김일성사령관을 모해하려던 좌경분자들은 모두 댕댕한 표정으로 김일성사령관을 지켜보고있었다.

김일성사령관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장포리를 조리있게 타일렀다.

《이것 보라. 장포리, <민생단>이라는거야 일본놈들을 옹호하는것이고 또 일본놈들이 만들어낸 반동조직인데 네가 <민생단>이라면 그놈들을 100명이상이나 쏘아잡았다는게 이상하지 않는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말이야 바른대로 해야 할게 아닌가. 솔직하게 말해보라.(4 35페지)

장포리는 그제야 김일성사령관의 손을 붙들고 오열을 터뜨리면서 목이 꺽꺽 메는 하소연을 하면서 《나야 무슨 까닭으로 <민생단>이 되겠소. 아니라고 대답해도 들어주지 않고 자꾸 두드려패니 다른 수가 없어 <민생단>이라구 했소. 대장얼굴에 먹칠을 해서 죄송스럽소.》 한다. 징후에서 공포에로 그리고 공포가 다시 징후가 되는 4단계의 과정을 역으로 거스르면서 장포리로 하여금 공포에 과감하게 도전하도록 하여 공포에서 해방되도록 한것이다.

김일성사령관은 장포리가 공포에서 해방된것을 확인한 다음 《내 얼굴에 흙칠을 하건 먹칠을 하건 그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네가 주리를 트는 폭군들앞에서는 <민생단>이라고 대답하고 내앞에서는 아니라고 하는 주대없는 인간이라는데 있다. 나에게는 한입으로 두가지 말을 하는 겁쟁이가 필요없다.(4 36페지)라고 선언한다

사실 이것은 김일성사령관이 장포리의 마음을 위로한 후 그가 용기를 다시 회복했다는것을 확인하고 주위사람들이 들으라고 한 말일수 있다.

그때의 분위기에 대해 김일성주석은 이렇게 회고했다.

《내가 얼마나 노기등등해서 <감옥>문을 나섰던지 좌경분자들은 감히 말도 붙이지 못하였다.(4 36페지)

장포리석방에 기선을 잡은 김일성사령관은 《동만특위》의 반《민생단》투쟁을 주도하고있던 동장영을 찾아가 《내 보기에는 당신들의 사업에 문제가 있다. <민생단>투쟁을 그런 식으로 해서는 안된다. 어떻게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을 <민생단>으로 몰아 함부로 잡아가둘수 있는가? <민생단>투쟁은 민주주의적으로 해야 한다. 상층에 있는 몇몇 권력자들의 독단이 아니라 대중의 토의를 거쳐 적아를 정확히 식별해내야 한다. 고문과 위협의 방법으로 없는 <민생단>을 만들어내서는 안된다.(4 36페지)고 한바탕 항의를 한다.

《지금 이 왕청에서 장포리를 <민생단>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당신들밖에 없다. 장포리는 내가 목숨을 걸고 보증하니 당장 석방하는것이 좋겠다.(4 36페지)

그후 김일성사령관은 좌경분자들에게 정치부의 승인이 없이 유격대안에 있는 사람들을 마음대로 다치게 하지 못한다고 선포한 다음 부대에 돌아와 장포리를 《숙반》지휘부에 제멋대로 넘겨준 지휘관을 처벌하였다. 그날 동만특위에서는 김일성사령관의 요구대로 장포리를 석방하였다. 장포리는 그후 녕안현 주지툰이라는 곳에 파견되여 식량공작을 하면서 마지막까지 잘 싸웠다.

 

의미치료와 《주체료법》의 비교  

나는 김일성사령관의 이러한 문제해결방법을 《주체료법(Juche Therapy)》이라고 학명화할것을 제의한다. 김일성사령관은 반《민생단》사건이 발생한 근본원인이 주체를 세우지 못했기때문이라 단정하고있다. 1928년 조선공산당이 해체된 이후 중공당에 기대여 방석이나 하나 차지하려는 출세주의자들의 주대없는 행동에서 반《민생단》이 생겼다고 본것이다.

나라잃고 주권마저 잃은 가련한 겨레의 가슴속에 엄습해오는 공포의 징후를 피하지 말고 도전하는 모습을 장포리를 통해 보여준것이다. 오늘 북조선이 정치, 외교 모든 분야에서 강대국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과감한 태도를 보여주는것도 모두 주체료법과 멀지 않다고 본다. 북의 인민들이 모두 김일성주석의 주체료법에 의해 주대있는 자아관을 가지고있으며 너도나도 앞다투어 고양이목에 먼저 방울을 달겠다고 나선다.

반면 남에는 미군이 나가면 당장 보호자잃은 유아같이 행동하는 인간군상들도 있다. 이들은 지금 모두 치료받아야 할 깊은 중증의 병에 걸려있다. 공포와 그 징후사이에서 되감기를 반복하는것은 분명히 병이다. 우리 사회의 지도급인물들가운데 그 누구도 이를 치료하지 않았다. 아니 지도급인물들이라는 사람들자신이 이 병에서 해방되지 못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