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 - 사랑의 정치』 중에서

 3. 선군 ― 민족에 대한 사랑의 정치

3) 민족의 은혜로운 태양 선군령장
 
□ 언제나 남녘동포들을 잊지 않으시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지니고계시는 뜨거운 동포애는 우리 민족성원전체에 대한 숭고한 사랑이다.

주체89(2000)년 력사적인 평양상봉이후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추석명절을 맞는 남녘의 각계층 인사들에게 보내주신 칠보산송이버섯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민족에 대한 그이의 사랑이 얼마나 뜨겁고 자애로운 사랑인가를 돌이켜보게 한다.

칠보산송이버섯은 예로부터 그 맛과 향기가 아주 독특한것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력사적인 평양상봉때 김대중과의 오찬석상에서 올가을 송이버섯을 선물로 보내주겠다고 하시고 이어 제2차 북남상급회담 대표로 평양에 왔던 《통일부》 장관에게도 추석때 수뇌회담수행원들과 언론사대표들에게 송이버섯을 선물하겠다고 약속하시였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남측성원들과 하신 이 약속에는 단순히 그들에게 칠보산송이버섯을 맛보이게 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송이버섯을 통하여 남녘겨레의 마음속에 민족의 향취를 심어주어 그들이 나라의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애국운동에서 조선민족된 도리를 다하게 하시려는 숭고한 뜻이 어려있었다.

인민군군인들이 칠보산에서 첫물 송이버섯을 땄다는 보고를 받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평양상봉의 나날에 남측성원들과 한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평양에 왔던 남측수행원들과 언론사대표단 성원들, 《현대그룹》 정주영명예회장일행 등을 포함한 모두 267명에게 1인당 10kg의 칠보산송이버섯을 선물로 보내주시였다.

이외에도 평양에 와보지 못한 64명의 각계 인사들에게도 똑같이 송이버섯을 기념으로 보내주시였다.

그리하여 2000년 9월 11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를 대표하는 한 일군이 송이버섯을 싣고 남쪽을 향해 가게 되였고 서울의 신라호텔 영빈관에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송이버섯전달식이 남측 각계 인사들의 참가밑에 정중히 진행되였다.

추석을 맞으며 민족의 향취그윽한 송이버섯을 받아안은 남조선의 각계 인사들은 그 송이버섯마다에 슴배여있는 장군님의 고결한 인정미와 대해같은 민족사랑의 정에 고마움을 금치 못해하였다.

그들은 친지들과 함께 송이버섯을 나누어 맛보면서 경애하는 장군님의 통이 큰 도량에 감동되였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였다.

남조선언론들은 《맛있다, 칠보산송이버섯》 등의 제목으로 송이버섯에 깃든 뜨거운 사연을 대서특필하였다.

남조선의 어느 한 신문에는 상상조차 할수 없었던 일이여서 정말 무엇이라고 말할수 없다, 나라와 민족, 조국통일을 위해서 아무것도 한것이 없는 언론사사장들을 질책할 대신 지난 8월에는 우리들을 평양으로 초청해 직접 접견해주시더니 이번에는 추석선물까지 보내주시니 경애하는 장군님의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넓은 덕망에  머리가  숙어지고 감사한 마음 그 무엇이라 표현할수 없다, 정일국방위원장님의 선물은 우리 남녘의 모든 동포들에게 보내시는 커다란 은정이다, 여기에는 온 겨레를 한품에 안아 통일된 조국에서 화목하고 행복하게 살게 하시려는 그이의 원대한 뜻과 의지가 담겨져있다고 생각한다는 내용의 글이 실리였다.

한편 추석을 앞둔 어느날 남조선의 한 신문사사장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송이버섯을 받아안은 자기를 축하해주는 친구들에게 장군님의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넓은 덕망에 머리가 숙어지고 감사의 마음 그 무엇이라고 표현할수 없다고 하였다.

송이버섯을 전달받은 정몽헌회장은 2000년 9월 30일 금강산관광지구를 현지지도하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을 만나뵙는 자리에서 그이께 추석을 맞는 자기들에게 송이버섯을 보내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렸다.

정몽헌회장이 올리는 감사의 인사를 받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송이버섯이 남쪽에 가는 기간에 선도가 떨어지지 않았는가고 걱정어린 어조로 물으시였다.

정몽헌회장과 일행은 그이께 선도가 기가 막히게 좋았다고, 향기가 그대로 있었다고, 송이버섯상자를 보니 역시 칠보산의 송이버섯이였다고 기쁨에 넘쳐 말씀올리였다.

그들가운데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송이버섯을 자기 혼자만 먹을수 없어 그것을 은박지에 싸서 《현대아산》 직원들에게 다 나누어준 사람도 있었다.

한없이 겸허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들이 올리는 한결같은 감사의 인사를 굳이 사양하시였다.

친부모도 주지 못한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모습을 우러르며 《현대아산》의 일행은 그만 뜨거운것을 삼키였다.

이렇게 되여  송이버섯을 전달받은 당사자들은 물론 그 친지들도 경애하는 장군님의 따뜻한 사랑과 각별한 은정을 가슴 쩌릿하게 느낄수 있게 되였다.

그후 남조선에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민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전하는 칠보산송이버섯전설이 생겨나 널리 전해지게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따사로운 손길은 일본에서 활동하고있는 한 남조선녀가수 김련자에게도 뜨겁게 미치였다.

김련자는 어려운 가정에서 태여나 음악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지 못하였지만 자체로 이악하게 노력하여 일본땅에서 조선사람의 이름을 떨치고있었다.

온 민족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90(2001)년 그를 제19차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에 불러주시는 뜨거운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김련자가 준비해가지고온 공연종목들도 일일이 알아보시고 그가 단독공연도 하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였으며 현지지도의 바쁘신 길에서 그의 공연을 몸소 보아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마련해주신 영광넘친 사랑의 무대에 나선 김련자는 부풀어오르는 커다란 흥분으로 좀처럼 마음을 진정할수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일본땅에 살면서 지금까지 수많은 무대에 올라서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나 내 민족을 위해 마음껏 노래부르고싶은 마음속 충동을 안고산 그였기때문이다.

그런데 자기의 이 마음속 소원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풀어주셨으니 김련자가수의 마음은 민족의 어버이에 대한 다함없는 경모와 존경심으로 꽉 차넘치였다.

이윽고 그는 경애하는 장군님에 대한 끝없는 감사의 정을 안고 준비한 노래를 열정에 넘쳐 부르고 또 불렀다.

공연이 끝나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의 공연성과를 축하하여 꽃바구니를 전하시고 김련자가수일행을 접견해주시였다.

노래를 마지막까지 다 들어주신것만 해도 황송하기 그지없을진대 이번에는 민족을 위해 별로 한 일도 없는 자기들을 몸가까이 불러주시니 김련자가수일행의 기쁨은 이루 헤아릴수 없었다.

만면에 환한 미소를 담으시고 가수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의 지나온 생활에 대하여 일일이 알아보시고 그가 조선사람으로서 일본땅에서 이름을 떨치고있다는 과분한 치하도 안겨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가수에게 앞으로 아무때나 다시 평양을 방문하여 공연을 하라고, 다음에 와서는 큰 극장들에서 공연을 많이 하여야 하겠다고 고무해주시면서 북쪽의 인민들도 같은 동포이니 노래로 서로 사귀도록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 말씀에는 그의 노래가 북과 남사이의 화해와 협력, 통일의 뉴대를 증진시키는 하나의 무지개다리로 되기를 바라시는 크나큰 기대와 믿음이 어려있었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김련자일행을 자신의 옆에 나란히 세우시고 영광의 기념사진도 찍으시고 그들을 위하여 은정어린 만찬도 베풀어주시였다.

녀가수에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은정은 이에만 그치지 않았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91(2002)년 4월 김련자가 또다시 공화국을 방문하였을 때에는 그가 공연할 극장들과 숙식조건에 대하여서까지 일일이 념려하여주시였고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도 관람하도록 크나큰 사랑을 돌려주시였다.

진정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은 시집간 딸을 생각하는 친정어머니의 다심한 손길 그대로였다.

그는 제20차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참가기간 민족적정서가 넘쳐나고 조국통일을 열망하는 노래들을 잘 불러 관중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기였다.

이런 가운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귀중한 시간을 내시여 김련자일행을 또다시 접견해주시고 따뜻한 담화를 나누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의 공연활동을 치하해주시고나서 그가 《우리는 하나》를 비롯한 좋은 노래들을 잘 불러 우리 인민들을 기쁘게 해준데 대하여 만족해하시며 앞으로 일본과 남조선에 《우리는 하나》노래를 널리 보급할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여기에는 통일의 노래로 온 민족의 마음을 하나로 잇고 통일의 노래를 온 겨레가 함께 부르며 조국통일운동에 떨쳐나서게 하시려는 깊은 뜻이 어려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녀가수의 공연을 보아주시고 노래로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성업에 이바지하도록 고무해주신 감격적인 소식은 커다란 충격을 일으켰으며 7천만겨레의 가슴속에 통일의 열망을 불러일으켰다.

민족에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뜨거운 사랑은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남녘동포들도 관람하도록 하시여 《아리랑》이 《우리 민족끼리》시대를 구가하는 노래, 민족이 함께 부르는 《통일아리랑》으로 되도록 하신데도 깃들어있다.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은 일제시기 조선인민이 망국노의 피눈물을 뿌리며 부르던 민요 《아리랑》과 조선인민이 승리자의 신심드높이 부르고있는 노래 《강성부흥아리랑》을 넣어 조선민족의 어제와 오늘, 희망찬 래일에 대하여 사상예술적으로 훌륭히 형상함으로써 탁월한 수령을 모셔야 슬픔의 《아리랑》이 기쁨과 행복의 《아리랑》으로 된다는 심오한 철학을 담고있다. 하기에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은 파란만장의 백년민족사를 통하여 수령의 위대성과 그에 따른 민족의 운명문제를 력사적으로, 철학적으로 훌륭히 보여주고있다.

2005년 가을 평양에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이 성황리에 열리였다.

조선로동당창건 60돐과 조국해방 60돐을 맞으며 또다시 개막된 《아리랑》공연은 날이 갈수록 더욱 고조되였다.

수도시민들뿐아니라 나라의 방방곡곡에서 남녀로소를 막론하고 《아리랑》공연을 보려고 기차와 뻐스, 자동차를 타고 평양으로 달려왔다.

아시아와 유럽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와 지역들에서도 수많은 관람객들이 앞을 다투어 찾아왔다.

풍치수려한 대동강의 한복판에 자리잡고있는 5월1일경기장은 《아리랑》공연관람객들로 련일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바로 이러한 때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남녘동포들도 《아리랑》공연을 관람하게 하기 위해 마음쓰고계시였다.

전선시찰의 길을 끊임없이 이어가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느날 해당 부문의 한 일군을 전화로 찾으시여 남녘동포들에게 《아리랑》공연을 보여줄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이번에 제16차 북남상급회담에 참가하기 위해 평양에 왔던 남측당국대표단 성원들이 《아리랑》공연을 다 보고 갔고 남측 《통일부》 장관도 《아리랑》공연을 보는것을 허락하겠다고 한것만큼 조직사업을 잘하여 다 데려다 보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순간 그 일군은 커다란 흥분과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일군이 흥분으로 설레이는 마음을 다잡고있는데 장군님께서는 《그들이 오면 우리가 대우를 잘해주면서 구경을 시켜주고 하루밤 재워서 보내면 다 좋아할것입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6.15자주통일시대가 열린 때로부터 적지 않은 남녘동포들이 평양을 다녀갔지만 짧은 기간에 수많은 사람들을 받아들인 례는 일찌기 없었다. 더우기 공연관람을 위해 대규모집단이 들어온 일은 더욱 없었다.

이것은 《아리랑》공연을 보고싶어하는 남녘인민들의 절절한 소망을 헤아려보신 민족의 어버이의 한없이 뜨거운 사랑이였으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만이 구상하실수 있는 민족사적인 사변이였다.

남녘동포들의 《아리랑》관람길을 열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 사업이 성과적으로 진행되도록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남녘동포들의 《아리랑》공연관람단을 《평양참관단》으로 부르도록 해주시고 그들을 받아들이는 통로와 체류기일, 참관장소도 확정해주시였으며 초청영접안내에서 나서는 크고작은 문제들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관람하기 위해 평양에 오는 남녘동포들을 숙식시키기로 했던 양각도국제호텔에 조선로동당창건 60돐 경축행사에 참가하게 될 국내대표들을 들이는 문제가 제기되였을 때였다.

해당 부문의 일군들은 남측관람자들을 초청하는 사업을 주관하던 남측의 여러 단체들에 숙소관계로 10월 5일경부터 12일까지는 《아리랑》공연관람이 어려울것 같으므로 평양참관단일정을 조절해줄것을 통지했다.

하지만 남조선사람들은 막무가내였다. 남측성원들은 당창건 60돐 경축행사기간에 평양에 오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특히 많다고 하면서 양각도국제호텔 1개 방에 4명이나 6명이 들어도 좋고 복도를 침실로 해서 한개 층에 수십명씩 숙식하거나 5월1일경기장에서 천막을 치고 자도 좋다고 하면서 평양참관을 계속하도록 해달라고 거듭 간청하였다.

이 사실을 보고받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양각도국제호텔에 들기로 예정되였던 조선로동당창건 60돐 경축행사 국내대표들을 모두 다른 려관에 옮기고 양각도국제호텔뿐아니라 다른 호텔도 통채로 남측참관단이 리용하도록 은정깊은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언제나 남녘겨레들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아끼지 않으시는 그이의 뜨거운 동포애에 일군들은 물론 남녘동포들도 감동을 금할수 없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세심한 관심과 은정어린 조치에 의해서 남녘동포들의 《아리랑》관람조직사업이 성과적으로 추진되였으며 2005년 9월 26일부터 하루에 수백명의 남녘동포들이 평양에 와서 1박2일간에 걸쳐 《아리랑》공연을 관람하고 여러곳을 참관하게 되였다.

《아리랑》공연이 진행되는 5월1일경기장은 그야말로 뜨거운 동포애와 통일열기로 끓어번졌다.

북녘의 인민들이 《우리는-》 하고 구호를 웨치면 남녘동포들은 《하나다!》라고 화답하고 뒤이어 또다시 《조국-》 하면 《통일》 하고 화답해나섰다.

서로 손을 흔들어주고 울며 웃으며 손을 맞잡는 광경은 우리 민족의 통일념원이 얼마나 강렬한가를 온 세상에 과시하는 격동적인 모습들이였다.

남녘동포들은 공연에 매혹되여 저도 모르게 일어나 박수를 치면서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거대한 금강석》, 《민족의 저력과 미래에 대한 상징》이라고 감탄을 금치 못해하였다.

《아리랑》공연을 관람한 남조선 경남대학교의 한 교수는 자기의 글에서 이렇게 썼다.

김정일령수님께서는 〈아리랑〉공연을 펼치시여 지난날 눈물의 〈아리랑〉을 부르며 흩어져갔던 동포들이 〈강성부흥아리랑〉을 부르며 그리운 조국으로 모여오게 하는 민족의 〈대잔치〉를 차려주시였다.

우리들은 공연을 보며 겨레의 가슴에 대대로 간직된 〈아리랑〉의 노래로 민족의 넋을 정화시켜주시고 민족분렬의 비애를 민족통일의 열망으로 승화시켜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태양의 품에 온넋을 맡기고 심장의 박동을 맞추었다.

온 겨레가 흠모하며 따르고 인류가 칭송해마지 않는 21세기의 태양 김정일령수님을 모시여 태양민족의 존엄과 영예는 온 세상에 더욱 높이 떨쳐질것이다.》

이것이 어찌 이 한사람의 격정이라고만 하겠는가.

그것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몸소 열어주신 《아리랑》관람길을 따라 평양에 들어온 참관단성원전체가, 아니 온 남녘겨레가 터치는 심장의 웨침이였다.

2005년 10월 《아리랑》축전기간에는 평양산원에서 분렬 60년이래 처음으로 남녘아기가 태여나는 반갑고도 희한한 일이 생겨나 온 겨레를 기쁘게 하였다.

10월 10일 저녁 범청학련 남측본부 《한총련》대표로 1998년에 평양을 방문한바 있는 남조선의 황선(《통일련대》대변인)녀성은 《아리랑》공연을 관람하던 도중 갑자기 오는 진통으로 하여 평양산원에 입원하게 되였다.

원래 그는 해산예정일이 이미 지난 몸이였다. 그랬음에도 그는 시어머니와 함께 《아리랑》공연관람길에 올랐다.

그는 입원한지 1시간도 못되여 밤 10시에 귀여운 옥동녀를 순산하였다.

이렇게 그는 남녘인민들만이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평양산원에서 통일동이를 낳게 되였다.

황선녀성은 입원해있는 기간 무상치료제혜택으로 산후치료는 물론 종합적인 치료와 함께 모든 산모들과 꼭같이 산꿀과 귀중한 보약제, 영양제들을 공급받았다.

그리하여 산모의 건강상태와 아기의 발육상태는 대단히 좋아졌다.

황선녀성이 건강을 회복하고 퇴원하게 되였을 때였다.

그가 비행기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보고받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갓난애기가 비행기동음에 놀랄수도 있고 여러가지로 불편할수 있으므로 판문점을 통해 륙로로 가게 하되 차를 천천히 몰아 산모와 애기가 불편해하지 않도록 하라고 사려깊은 사랑을 베풀어주시였다.

해당 일군으로부터 장군님의 육친적인 사랑의 소식을 전달받은 황선녀성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친부모의 사랑인들 이보다 더 다심할수 있으랴!

그는 평양산원 의료일군들의 뜨거운 환송속에 산원문을 나섰으며 복받은 옥동녀를 안고 판문점으로 당당히 나갔다.

그후 황선부부는 우리 겨레는 하나라는 뜻에서 아기에게 《윤겨레》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으며 그가 평양에서 아기를 낳은 소식은 남조선에서 큰 화제가 되였다. 평시에 《아리랑》공연에 대해 침묵을 지키던 남조선의 보수언론들까지도 《평양에서 출산한 최초의 남〈한〉녀성》, 《황씨가 통일동이를 낳게 되였다.》고 크게 보도하였다.

이처럼 남녘동포들에게 돌려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과 은정은 어느 특정한 개별적인 인물이나 계층에 한정된것이 아니라 남녘겨레모두에게 베풀어지는 사랑과 은정이다.

그 사랑, 그 은정속에 오늘도 이 땅에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크나큰 민족사랑, 겨레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이 꽃펴나고있으며 장군님을 민족대단결의 중심으로 끝없이 흠모하고 따르고있다.

참으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은 민족사랑의 정치로 남녘겨레모두의 운명도 미래도 책임지고 보살펴주시는 민족의 위대한 어버이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