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 - 사랑의 정치』 중에서

 3. 선군 ― 민족에 대한 사랑의 정치

 3) 민족의 은혜로운 태양 선군령장

 □ 변함없는 믿음과 의리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새기신 선군혁명령도의 자욱마다에는 가슴뜨거운 동포애의 화폭들이 펼쳐져있다. 민족을 위하고 통일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과거를 묻지 않고 한품에 안아 통일의 길에 세워주시고 변함없는 믿음과 의리로 민족앞에 내세워주시는분이 장군님이시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뜨거운 민족애와 동포애에 매혹되여 수많은 남조선인민들이 평양을 찾아왔고 장군님의 접견을 받는 영광을 지녔으며 민족을 위한 길에 나서게 되였다.

그들가운데는 남조선의 《현대그룹》 명예회장이였던 정주영선생도 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한없이 넓은 도량과 포옹력으로 남조선 대재벌의 한사람인 그를 따뜻이 품어주시고 애국애족의 길로 이끌어주시였다.

정주영명예회장으로 말하면 남조선의 《일등재벌》로 불리우던 《현대그룹》의 창업주로서 한때는 정계에 진출하여 《대통령》후보로까지 나섰던 사람이다.

그의 한생은 자본의 축적과 기업의 확대, 치부를 위한데 바쳐졌다고 말할수 있다.

그러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대자본가로서의 그의 사회계급적처지나 지나온 생애보다 민족적량심을 소중히 여기시고 공화국북반부를 방문할수 있는 길도 열어주시고 그에게 뜨거운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그리하여 1998년 6월 남조선 《현대그룹》일행이 얼어붙은 분렬의 장벽을 넘어 평양으로 들어오게 되였다.

정주영선생이 북행길에 오르게 된것은 해방후 애국에 뜻을 둔 수많은 남조선사람들이 힘있는 사람은 힘으로,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으로, 돈있는 사람은 돈으로 새 조국건설에 이바지할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뜻을 받들어 평양길에 오른것처럼 인생말년에나마 조국통일과 민족단합을 위해 무엇인가 조금이라도 기여를 하려는 생각에서였다.

정주영선생의 이러한 속생각까지 깊이 헤아리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공화국체류기간 그가 고향인 통천에도 가보고 친척들과도 상봉할수 있도록 하여주시고 풍치수려한 묘향산, 금강산에서 즐거운 휴식의 한때도 보내도록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렇듯 다심하고도 따뜻한 보살피심속에 정주영선생은 참으로 꿈과 같은 나날을 보낼수 있었다.

체류일정이 끝나가면서 그는 은정어린 공화국방문의 길을 열어주시고 고향방문의 길도 마련하여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에 대한 존경과 흠모심을 금치 못했으며 장군님을 단 한번이라도 만나뵙고싶은 간절한 마음속 충동을 억제할수 없었다.

그 나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여러 부문에 대한 현지지도의 바쁘신 길에서 정주영일행의 평양방문정형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아보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번에 공화국북반부를 방문한 정주영일행을 만나주지 못해 안됐다고, 너무 할 일이 많아 좀처럼 짬을 낼수 없었다고 하시며 앞으로 한번 다시 오면 그때는 자신께서 꼭 만나주겠다는 크나큰 믿음과 사랑을 안겨주시였다.

정주영선생과 그 일행이 공화국을 방문하였다는 소식은 남조선의 정계, 재계, 사회계, 출판보도계의 파문을 일으켰다.

남조선잡지 《주간조선》에는 《현대그룹》 정주영명예회장이 공화국북반부를 방문하고 돌아가 쓴 글이 특집으로 실리였다.

그는 자기의 글에서 평양에 머무르는 동안 만경대고향집과 주체사상탑, 국제친선전람관, 묘향산, 금강산 등을 참관하고 고향 통천에도 가보았으며 친척들을 만나고 공화국의 일군들과 사업문제를 토의한 내용 등을 구체적으로 소개하였다.

또한 경애하는 장군님을 만나뵙지 못한 아쉬움을 금치 못해하면서 장군님께서 이번에 왔던분들을 오는 9월에 한분도 빠짐없이 다 초청하라고 말씀하시였다고 크게 강조하며 장군님에 대한 열렬한 흠모와 경모심을 표시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6월에 하신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주체87(1998)년 10월 북에 다시 들어온 정주영명예회장을 친히 만나주시였다.

위대한 선군정치로 겹쌓이는 준엄한 시련을 헤쳐나가시는 그 바쁘신 가운데서도 귀중한 시간을 내시여 몸소 그의 숙소를 찾아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인자하신 음성으로 고령에 있는분이 나를 찾아오게 해서야 되겠는가, 내가 가서 만나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현지지도도중에 평양에 오다나니 이렇게 밤이 늦어서 정주영선생을 만나게 되였는데 이에 대하여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겸허하게 말씀하시며 그와 친혈육의 정 넘치는 따뜻한 담화를 나누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접견을 받는 영광을 지닌 정주영선생은 《장군님을 만나뵈왔으니 이젠 100살을 더 살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주 오겠습니다.》라고 격정에 넘쳐 말하였다.

담화가 깊어갈수록 경애하는 장군님의 고매한 인품에 더욱더 끌려든 일행은 황홀경에 잠겨 시간가는줄을 몰랐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시종일관 정주영선생을 명예회장선생이라고 불러주시였다.

그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위인적풍모에 감동되여 마음속으로 우러나오는 진정을 담아 그이를 《장군》이라고 존칭하였다.

놀라운것은 83살의 고령으로 다른 사람들의 말을 거의나 알아듣지 못하고 자기의 의사도 아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하군 하던 정주영선생이 경애하는 장군님을 만나뵙고는 어데서 그런 열정이 솟구쳤는지 옆사람의 도움이 없이 장군님의 귀중한 가르치심을 모두 알아듣고 말도 더듬지 않은것이다.

이에 대하여 《경향신문》은 《귀가 잘 안 들려 평소에 옆의 사람의 도움을 받군 했던 정명예회장은 그토록 바라던 김정일국방위원장을 만난 기쁨으로 대화의욕이 솟구쳤고 다른 사람의 도움없이 대화를 진행하였다.》고 썼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북과 남, 해외의 공동의 관심사로 되고있는 금강산관광개발문제를 비롯하여 정주영명예회장이 제기하는 문제들을 다 풀어주시고 영광의 기념사진까지 찍어주시는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우리가 만난것을 기념하여 기념사진이나 찍자고, 나이많은 정주영선생이 가운데 서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의 손을 꼭 잡으신채 기념사진을 찍으시였다.

출신과 경력, 주의주장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민족적단합으로 민족공동의 번영과 조국통일의 앞길을 열어나가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한없이 넓은 도량과 포옹력을 그대로 펼쳐놓은 력사적화폭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접견을 받은 정주영선생은 감격에 넘쳐 《김정일장군님은 제 나라, 제 동포들부터 생각하시는 덕망높은분이시기에 민족의 통일전망도 밝다. …

김정일장군님께서 나에게 주신 믿음을 영원히 가슴깊이 간직하고 받들겠다.》고 말하였다. 그러면서 경애하는 장군님께 말씀드린대로 민족을 위해 자기가 할수 있는것을 다하겠다고 애국의지를 가다듬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정주영명예회장을 만나주시고 기념사진까지 찍어주시였다는 격동적인 소식은 즉시 내외의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남조선의 거의 모든 신문들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정주영선생을 만나주시는 사진을 1면 상단에 크게 모시고 그 내용을 특보로 전하였다.

서울의 한 기업가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현대그룹》 명예회장 정주영가족일행을 만나주시고 영광의 기념사진까지 찍어주시였다는 소식에 접하고 흥분된 감격과 기쁨을  억제하지  못하며 자기 동료들에게 《김정일령도자님께서는 한때 <반북>으로 민족앞에 죄지은 사람들의 과거도 불문에 붙이시고 한품에 안아 애국자로 내세워주시더니 그날에는 또 한 자본가의 소원을 헤아리시여 그를 따뜻이 만나주시고 그의 소망을 모두 풀어주시였다고 한다. 이 사실을 통해서도 그분의 인덕정치, 광폭정치가 얼마나 위대하고 뜨거운 민족사랑, 겨레사랑의 정치인가를 더욱 절감하게 된다.

우리 기업이 살고 이남경제가 살아갈 길은 바로 김정일령도자님의 품에 안겨 그이의 령도를 받는데 있다.》고 말하였다.

한편 정주영선생은 남조선에 돌아가 가진 기자회견에서 경애하는 장군님을 《장군》이라고 높이 칭송하면서 《김일성주석과 꼭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례의를 갖추어 깍듯이 대해주어 무척 고마웠다.》, 《민족공동의 리익을 그 무엇보다 우위에 놓으시》며  《년로자에  대한  례의를 지키시는 매우 지성적이고 매혹적인 지도자》로 열렬히 흠모하였다.

이에 대하여 남조선의 한 기자가 《북에 몇번 다녀오시더니 변한게 아닙니까? 왜 자꾸 장군님, 장군님 하십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정주영은 《내가 세계를 다니며 장군이란 장군은 다 만나봤어도 진짜 장군다운 장군은 김정일장군님이 처음이다.》라고 하면서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장군》이라고 부르는 그분에 대해 《장군》이라는 호칭말고 어떻게 부르라는가 반문하여 내외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을 처음으로 만나뵈온 직후 남조선을 행각한 미국대통령 클린톤과 미행정부의 대북정책조정관 페리로부터 면담요청이 제기되였을 때에 몸이 불편하다는 핑게로 그들의 요청을 단호히 거절하기도 한 정주영선생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믿음에 의하여 정주영선생과 그 일행은 1999년 한해동안에만도 무려 세차례(2월, 3월, 9월말~10월초)나 공화국을 방문하는 특전을 지니였고 그해 10월초 또다시 장군님의 접견을 받는 영광을 지니였다.

정주영선생과 《현대그룹》은 자기들을 민족앞에 크게 내세워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동포애에 고무되여 북남경제협력사업을 적극 전개해나갔다.

정주영선생은 그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력사적인 6.15북남공동선언을 발표하시여 민족앞에 통일의 리정표를 세워주신데 대해 흥분을 금치 못해하면서 평양으로 달려와 2000년 6월 또다시 장군님을 만나뵙게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들일행을 뜨겁게 환영해주시면서 방북의 길은 정주영명예회장선생이 선참으로 개척하였다고, 명예회장선생의 공적은 앞으로 력사에 큰 장을 차지하게 될것이라고 높이 평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말씀을 받아안은 정주영선생은 《고맙습니다. 장군님!》라고 하면서 크나큰 격정에 휩싸였다.

정주영명예회장은 2001년 3월 21일 로환으로 86살에 사망하였다.

그가 사망하였다는 슬픈 소식을 받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못내 애석해하시며 그 즉시 조의표시를 특별히 잘할데 대하여 가르치심을 주시였으며 3월 22일에는 자신의 이름으로 정주영명예회장의 유가족들에게 조전을 보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러시고도 슬픈 마음을 달래지 못해하시면서 다음날에는 고인을 추모하여 조의대표단까지 파견하도록 은정어린 특별조치도 취해주시였다.

그리하여 3월 24일 오전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조의대표단이 북남직항로를 따라 비행기로 서울을 향해 날아가게 되였다.

어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크나큰 은덕에 의해 정주영명예회장이 판문점을 거쳐 북행길에 올랐고 그가 사망한 오늘에는 또 이렇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파견하신 조의대표단이 고인을 추모하여 분렬의 장벽을 날아넘어가는 이 광경은 정녕 통일애국에 헌신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이든 끝까지 믿고 품어주시는 장군님의 위대하신 덕망과 숭고한 광폭정치를 온 세상에 보여준 또 하나의 력사적화폭이였다.

조의대표단은 고인의 빈소를 찾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화환을 진정하고 장군님께서 보내신 따뜻한 위로의 말씀을 유가족들에게 정중히 전달하였다.

민족의  어버이이신  김정일장군님의 정깊은 말씀을 전달받고 화환에 모셔진 위대하신 존함을 우러르며 유가족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정주영선생에게 조전과 화환, 조의대표단을 보내주신 소식은 남조선전역에서 일대 파문을 일으켰다.

남조선의 신문, 방송들은 이 소식을 일제히 보도하였고 각계층  인사들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숭고한 도량과 고매한 덕망에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이처럼 정주영선생은 인생말년에 경애하는 장군님과 특별한 인연을 맺고 민족의 대단합을 위한 애국의 길에서 참다운 인생을 꽃피울수 있었으며 여생을 민족앞에 떳떳이 빛내일수 있었다.

통일애국에 기여한 정주영명예회장을 생각하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크나큰 믿음과 사랑은 그의 아들인 정몽헌회장에게도 그대로 베풀어졌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89(2000)년 9월 어느날 금강산관광지구를 시찰하시였다.

그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정몽헌회장일행과 함께 고성항을 비롯한 여러곳을 돌아보시면서 시작이 절반이라는 말이 있는데 《현대》에서 시작한 금강산관광을 잘 조직해보는것이 좋겠다고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그러시면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 실현에서 나서는 대책적인 문제들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풀어주시였다.

금강산을 단순히 관광을 위한 금강산이 아니라 북과 남, 해외를 잇는 통일무지개다리로, 온 민족이 만나는 통일오작교로 되게 하시려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크나큰 민족애와 동포애에 정몽헌일행과 관계자들은 머리가 저절로 수그러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들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하면 천하절승 금강산을 남녘겨레가 다 보게 할수 있을것이라고 하면서 흥분된 심정을 감추지 못해하였다.

이처럼 경애하는 장군님의 정력적인 령도가 있어 금강산관광사업은 더욱 힘있게 추진되게 되였다.

그러나 남조선의 극우보수세력들은 금강산관광을 비롯한 북남경제협력이 활발히 진행되자 어떻게 하나 이를 저지시키기 위하여 악랄하게 책동해나섰다.

이러한 분위기속에서 극우보수세력의 책동으로 정몽헌회장이 자결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민족화해협력의 개척자의 한사람인 정몽헌회장이 뜻밖에 사망한데 대해 못내 애석해하시면서 심심한 조의를 표시하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그후에도 《현대그룹》과 정몽헌회장의 유가족들에게 크나큰 사랑과 믿음을 거듭 안겨주시였다.

2003년 10월초 류경정주영체육관 개관식이 진행되게 되였을 때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체육관개관식행사에 깊은 관심을 두시고 개관식에 참가할 정주영, 정몽헌가족일행과 《현대》관계자 등 1 000명의 남측행사단성원들이 서해림시도로를 통해 들어오도록 특혜를 베풀어주시고 체육관개관식을 비롯하여 모든 행사들이 특색있게 진행되도록 필요한 조치를 다 취해주시였다. 또한 남측에서 온 성원들이 혁명의 성지 만경대와 국제친선전람관, 주체사상탑, 개선문, 김일성종합대학, 인민대학습당, 만경대학생소년궁전, 모란봉과 묘향산을 비롯한 공화국의 여러곳을 참관하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개관식행사에 참가한 정주영, 정몽헌가족들과 이 행사에 참가하지 못한 그들의 가족, 친척들, 《현대아산》 사장부부를 포함하여 35명에게 각각 송이버섯선물을 보내주도록 하시였다.

정주영명예회장과 정몽헌회장가족들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베풀어주시는 한량없는 사랑과 믿음에 형언할수 없는 격정에 휩싸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선물을 받아안은 그들은 이번 류경정주영체육관 개관식이 존경하는 김정일국방위원장님의 특별한 관심에 의하여 성대히 진행되였다고 하면서 국방위원장님께서 송이버섯선물을 보내주신데 대해 다시한번 감사를 드린다고, 앞으로 《현대》와 아태사이의 경제협력사업을 더 잘해나갈 의사를 표명하였다.

한번 믿음을 주시면 세월이 흘러도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과 믿음을 안겨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94(2005)년 7월 선군령도의 바쁘신 가운데서도 정몽헌회장의 미망인인 《현대그룹》 회장과 그의 딸 그리고 《현대아산》 부회장을 접견해주시고 정몽헌선생은 정말 아까운분이였다고 추억하시면서 그만 불상사가 생기여 가슴이 아픈 그 심정을 이루 다 말할수 없다고 그들을 위로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현대그룹》 회장에게 사람에게 있어서 첫사랑이 중요하다고, 우리는 북남관계에서 당국보다 훨씬 앞서 《현대》와 첫사랑을 시작하였다고, 정주영명예회장과 정몽헌회장이 열어놓은 북남관계를 가문은 대를 이어가면서 잘해나가야 한다고, 나는 북남관계에서 《현대》가 그 어느 기업보다 모범이 되리라고 믿는다고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그후에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통일애국의 길에 바쳐진 정주영부자의 깨끗한 성의와 노력을 잊지 않으시고 정몽헌회장이 사망한지 1년이 되였을 때에는 그 가족에게 사랑의 위문전문도 보내주시고 금강산에서 진행된 추모행사에 일군들이 참가하도록 하여주시였다.

남조선당국의 악랄한 반통일대결정책으로 말미암아 북남관계가 파국에 처하고 대결과 긴장이 극도로 격화되고있던 주체98(2009)년 8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공화국을 방문한 《현대그룹》 현정은회장과 그의 일행을 또다시 접견하여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현대그룹》의 선임자들에 대하여 감회깊이 추억하시면서 그가 제기하는 문제들을 다 풀어주시고 영광의 기념사진도 찍으시는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정녕 남조선의  한 기업가가정을 민족앞에 떳떳이 내세워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믿음과 사랑은 끝이 없었다.

이것은 단지 정주영명예회장과 그 가정만이 받아안은 사랑이 아니라 온 남녘겨레가 받아안은 친어버이사랑이였다.

민족을 위한 길에서 일단 손을 잡은 사람들과는 조국통일의 길에서뿐만아니라 통일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한 길에서도 힘을 합쳐 나가며 조국통일에 공헌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민족의 이름으로 높이 평가하고 내세워주시는분이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이시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98(2009)년 5월 로무현 남조선 전 《대통령》이 리명박패당의 음모로 하여 정치적타살을 당하였을 때 심심한 애도의 뜻을 담아 조전을 보내시였다.

그리고 그해 8월 김대중 남조선 전 《대통령》이 사망하였을 때에도 북남관계력사상 류례없는 조의를 표시하여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김대중 남조선 전 《대통령》의 사망과 관련하여 그의 미망인과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하시고 그가 민족의 화해와 통일념원을 실현하기 위한 길에 남긴 공적은 민족과 함께 길이 전해질것이라는 뜨거운 사랑이 담긴 조문을 보내시였으며 미제와 반통일세력의 악랄한 전쟁책동으로 하여 북남관계가 파국에 처하고 정세가 그토록 첨예한 속에서도 류례없는 특사조의방문단을 서울에 보내시여 고인을 추모하도록 하시였다.

참으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선군령도사는 통일애국에 뜻을 둔 사람이라면 누구나 믿어주고 이끌어주는 숭고한 믿음의 력사이며 온 민족성원들을 뜨겁게 품어주는 위대한 사랑의 력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