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김정일장군 통일일화』 중에서

 

1. 견결한 통일의지를 지니시고

  

 

《우리는 수령님의 념원과 의지대로 조국을 반드시 통일하여야 합니다. 수령님께서는 일찌기 자신의 대에 조국통일위업을 실현하지 못하면 나의 대에는 꼭 조국통일위업을 완성하여야 한다고 교시하시였습니다. 나는 수령님의 유훈대로 우리 시대에 반드시 조국을 통일하려고 합니다.》

 

                          김 정 일   

 


《우리 세대가 조국을 통일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습니까》

주체69(1980)년 4월 어느날이였다.

라와 민족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시고 어느 하루도 편히 쉬지 못하시고 일하시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날 일군들에게 오랜 시간에 걸쳐 조국통일과 관련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고나서 잠시 생각에 잠기시더니 머리도 쉴겸 평양시내를 한번 돌아보자고 하시며 그들을 데리고 나서시였다.

일군들은 여간만 기쁘지 않았다.

경애하는 장군님을 모시고 거리를 돌아보게 된 무상의 영광은 말할것도 없고 그이께서 거리를 돌아보시며 차안에서라도 잠시 휴식을 하실수 있게 되였기때문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을 모신 승용차는 봄기운이 짙어가는 수도의 거리를 경쾌히 달리였다.

온갖 꽃들이 활짝 피여난 모란봉과 살구꽃이 만발한 수도의 거리…

하지만 그이께서는 달리는 차안에서도 인민들의 옷차림과 수도의 건설정형을 비롯한 인민들의 생활형편을 료해하시며 줄곧 인민생활문제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황혼의 장미노을이 붉게 물든 수도의 거리로 경애하는 장군님을 모시고 귀로에 오른 일군들은 뜨거운것이 하염없이 괴여오름을 누를길 없었다.

남녘겨레들의 모습을 생각하시는지 차창밖에 한동안 눈길을 두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하루빨리 조국을 통일해야 합니다.

날이 가고 시간이 흐를수록 민족분렬의 참화는 더 커지고 조국통일은 어려워집니다. 때문에 우리는 력사앞에서, 민족앞에서 책임지고 나라와 민족의 통일을 이룩해야 합니다.

달리는 차안을 가득 채우며 힘있게 울리는 그이의 말씀은 일군들의 심장을 뜨겁게 달구었다.

민족분렬의 비극을 하루속히 끝장내기 위하여 그리도 마음쓰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후 어느 한 기회에 일군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리가 조국통일문제를 후대들에게 넘겨준다면 그것은 력사와 민족앞에 큰 죄악을 범하게 됩니다. …

나라와 민족이 분렬되는 민족적비극을 직접 당하고 민족분렬의 모진 불행과 고통을 뼈에 사무치도록 체험한 우리 세대가 조국을 통일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습니까.

조국을 통일하지 못하면 우리는 조선혁명을 했다고 말할수 없습니다.

참으로 깊은 의미를 새겨주는 말씀이였다.

일군들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말씀을 가슴속에 새기며 조국통일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하겠다는 철석의 신념과 의지를 가다듬었다.

 

 

통일에 대한 생각  

 

주체69(1980)년 여름 동해안일대를 현지지도하시던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어느날 한 일군과 함께 바다가로 나가시였다.

마침 그날따라 바람 한점 없는 맑게 개인 날씨였다.

푸른 물결이 늠실대는 장쾌한 바다를 한동안 바라보시던 그이께서는 천천히 백사장을 거닐기 시작하시였다.

매일같이 사업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필경 오래간만에 바다구경을 하며 휴식하시게 되였다고 생각한 일군은 기쁜 마음으로 그이를 조용히 따랐다.

그런데 깊은 사색에 잠겨 거니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문득 일군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언제나 통일을 생각하며 일하는것이 중요합니다.

아침에 깨여나도 통일에 대한 생각을 해야 하고 저녁에 잠들 때에도 통일을 위한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제서야 그 일군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이 시각 바다가의 장쾌한 경치를 부감하시는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열정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우리의 모든 생각은 통일과 잇닿아있어야 합니다.

공장을 하나 건설해도 통일에 보탬을 줄 생각을 해야 하고 만풍년을 마련해도 통일의 밑천을 굳건히 할 생각을 해야 합니다.

바다가를 걸으시는 그 짧은 시간마저도 그이께서는 이렇듯 조국의 통일을 두고 마음쓰시였다.

주체74(1985)년 9월 어느날에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조국통일은 우리의 가장 성스러운 사명이며 우리에게 맡겨진 중요한 임무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리 세대에 조국을 통일하려면 모든 일군들이 언제나 조국통일에 대하여 생각하며 일해야 합니다. 새벽에 일어나 창문을 열 때에도 조국통일을 생각하고 밤에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울 때에도 조국통일을 생각하여야 하며 꿈을 꾸어도 조국통일에 대한 꿈을 꾸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생각은 조국통일과 잇닿아있어야 하고 우리의 모든 사업은 조국통일에로 지향시켜 진행하여야 합니다.》

이렇듯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 어디에 가시여도 언제나 조국통일에 대해 생각하시였다.

 

 

묘향산에 오르시여

 

주체70(1981)년 5월 어느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일군들과 함께 묘향산을 찾으시였다.

높은 산, 깊은 계곡에 신록이 짙어가고 온갖 새들이 즐겁게 지저귀는 즐거운 봄날이였다.

이날 절세의 위인을 맞이한 묘향산은 오랜 세월 감추어두었던 자기의 신비한 모습을 아낌없이 펼쳐놓은듯싶었다.

《야!-》, 《히야!-》

묘향산의 아름다운 산천경개에 넋을 잃은 일군들은 연방 탄성을 터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도 두손을 허리에 얹으신채 묘향산의 수려한 절경을 부감하시며 감탄을 금치 못하시였다.

수령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묘향산에 와보니 정말 아름답습니다. 묘향산은 조선의 명산이며 자랑입니다.

묘향산의 경치는 미의 절정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절경을 이윽토록 바라보시다가 깊은 생각에 잠기신채 묵묵히 걸음을 옮기시였다.

(무슨 생각을 하고계실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괴로우시고 안타까우실 때면 무거운 걸음을 옮겨놓으신다는것을 알고있는 일군들의 생각은 착잡하였다.

이윽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국을 빨리 통일하여 아름다운 조국강산을 마음대로 보도록 해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시며 저 멀리 구름속에 잠긴 남쪽하늘가를 오래도록 바라보시였다.

잠시 생각에 잠겨계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침중하신 표정으로 이렇게 말씀을 이으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탄생 70돐은 민족최대의 경사입니다. 한 민족이 세계적인 수령을 70년이나 모시고있었다는것은 최상의 행운입니다.》

그러시면서 그이께서는 수령님께서는 우리 인민들에게 통일을 선물하시겠다고 그토록 심려하시지만 우리 전사들이 수령님께 통일을 선물로 올려야 한다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70고령의 늙으신 몸으로 조국통일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시며 안타까운 말씀을 하실 때 자신께서는 더없이 괴롭다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일군들의 심장은 세찬 박동으로 높뛰였다.

이윽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격정어린 음성으로 일군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조국통일문제때문에 수령님의 머리에 흰서리가 많이 내렸습니다.

수령님께서 젊어지시게 하자면 조국통일을 빨리 성취하여 수령님께 기쁨을 드려야 합니다.》

그이의 말씀은 일군들의 량어깨를 천근의 무게로 내리눌렀다.

묘향산답사의 길에서까지 잠시나마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 못하시고 조국통일문제때문에 그토록 마음쓰시는 그이를 우러르며 일군들은 뜨거운 눈물이 솟구쳐오르는것을 금할수 없었다.

천길벼랑으로 떨어지는 폭포도 장쾌한 소리를 잠시 죽이고 그이의 말씀을 듣는듯싶었고 푸른 하늘로 점점이 날아가던 흰구름도 잠시 멈춰 그이의 절절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것만 같았다.

진정 조국통일위업에 바치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색과 열정은 그 깊이를 헤아릴수 없었다.

  

 

동지죽을 함께 드시며

 

주체70(1981)년 12월 22일 저녁이였다.

이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여러명의 일군들을 가까이 부르시였다.

일군들은 여러명의 일군들을 함께 부르시는것으로 보아 필경 긴급히 제기되는 문제가 있으리라 생각하며 서둘러 그이께로 달려갔다.

그런데 일군들이 안내된 곳은 뜻밖에도 검소하게 꾸린 식당이였다.

일군들은 그때까지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시간이 지체될것 같아 자기들에게 저녁식사를 하도록 하시는것이라고만 생각하고있었다.

일군들이 후더운 생각에 잠겨있는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언제나와 같이 만면에 환한 미소를 담으시고 방안으로 들어서시였다.

그이께서는 일군들의 인사를 반갑게 받아주신 후 웃음지으시며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는가고 물으시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날은 국가적명절도 아니고 또 그 어떤 기념일도 아니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얼떠름해하는 일군들을 자애로운 눈길로 바라보시며 말씀하시였다.

《오늘이 동지날입니다.》

그이의 말씀은 정말 뜻밖이였다.

그날이 동지날이라는것은 일군들의 생각밖에 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동지날에 팥죽을 먹는것은 하나의 풍습인데 오늘은 함께 동지팥죽을 한그릇씩 나누자고 다정히 말씀하시였다.

일군들은 가슴이 뭉클하였다.

그처럼 바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동지팥죽을 함께 나누시려고 자기들을 불러주실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감격을 금치 못해하며 선뜻 자리에 앉지 못하는 일군들에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들을 일일이 자리에 앉도록 권해주신 다음 동지팥죽을 별식으로 알고 많이 들라고, 모두가 자기 나이만큼 오그랑이를 들어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한량없는 사랑이 어린 동지팥죽을 달게 들고있는 일군들을 다정한 눈길로 바라보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근엄하신 어조로 나라와 민족이 분렬된채 또 한해가 저물어간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동무들, 조국통일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이의 말씀은 조용히 울렸으나 그 말씀속에는 조국을 통일하지 못하고 또 한해를 보내게 되는 괴로우심이 무겁게 어려있었다.

잠시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국을 통일하고 남녘동포들과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앉아 동지죽을 나누게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하시며 그날을 하루속히 앞당겨야 한다고 간곡히 이르시였다.

동지날 팥죽 한그릇을 앞에 놓으시고도 분렬된 조국과 남녘겨레들을 생각하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이시였다.

실로 이날에 하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말씀은 일군들의 가슴을 한없는 격정으로 설레이게 하였다.

잊지 못할 그 동지날, 일군들은 뜻깊은 동지팥죽을 정말 별미로 맛있게 들며 겨레에 대한 사랑을 천품으로 지니시고 조국통일을 하루빨리 앞당기시려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철석의 신념과 의지를 뜨겁게 받아안았다. 

 

 

중대조치

 

위대한 수령님께서 뜻밖에 서거하시였다는 중대보도가 나간 주체83(1994)년 7월 9일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북남최고위급회담과 관련된 중대한 조치를 취하시였다.

당시 관계부문 일군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서거하심으로써 북남최고위급회담은 자연히 무산되는것으로 생각하고있었다.

그러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을 잃은 크나큰 상실의 아픔속에서도 북남최고위급회담의 운명과 전도를 두고 생각하시였다. 그이의 심중에는 그토록 환희에 휩싸여 기대와 희망을 안고 기다려온 북남최고위급회담문제를 놓고 겨레가 받게 될 좌절감과 실망감이 가슴아프게 안겨왔다.

위대한 수령님의 념원과 민족의 소망을 헤아리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뒤를 이어 자신께서 민족의 운명, 조국통일문제해결의 결정적국면을 열어놓으실 의지밑에 북남최고위급회담과 관련한 중대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북남최고위급회담준비를 전면중단하고 손맥을 놓고있는 관계부문 일군들에게 북남최고위급회담을 일단 연기할데 대한 전화통지문을 남조선당국에 보낼데 대해 지시하시였다. 그러시면서 7월 9일과 10일은 토요일과 일요일이므로 11일에 전화통지문을 보내라고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뜻을 받들어 해당 부문에서는  최고인민회의 통일정책위원회 위원장의 명의로 주체83(1994)년 7월 11일 오전 10시 사정에 의하여 북남최고위급회담을 일단 연기한다는것을 남측에 전화통지문으로 공식통고하였다.

북남최고위급회담의 연기조치, 이것은 최고위급회담의 유효성을 천명하는 애국애족적이며 통일지향적인 중대조치였다.

이 중대조치는 어버이수령님의 숭고한 뜻과 념원을 받들어 조국통일성업을 반드시 이룩하시려는 결사의 의지를 지니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만이 내리실수 있는 대결단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