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 - 사랑의 정치』 중에서

 

 3. 선군 ― 민족에 대한 사랑의 정치

 2) 민족의 단합과 통일을 위한 선군령도

 □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밑에 

2000년 력사적인 평양상봉과 6.15북남공동선언발표후 북남관계는 명실공히 우리 민족끼리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자주통일시대, 화해협력시대에 들어섰다.

그러나 조선의 통일을 바라지 않는 내외의 반통일세력은 6.15북남공동선언의 기치밑에 전진하는 민족의 자주통일운동과 북남관계발전을 가로막으려고 갖은 책동을 다하였다.

2001년 새로 등장한 미국의 부쉬2세행정부는 공화국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핵선제공격대상명단》에 올려놓았으며 클린톤행정부시기 진행하여오던 공화국과의 모든 대화와 협상을 중단해버리고 반공화국고립압살책동에 열을 올리였다.

미국은 6.15북남공동선언의 리행을 가로막으려고 남조선당국에 《속도조절》을 강요하기도 하고 《엄격한 상호주의》와 《검증》을 떠들며 경제협력사업에 쐐기도 치고 남조선인민들의 북행길을 가로막는 등 별의별 방해책동을 다하였다. 지어 미제와 남조선《군부》는 대규모의 침략전쟁연습들을 벌려놓으면서 조선반도의 정세를 초긴장상태에로 몰아가고있었으며 남조선의 반통일세력은 이에 편승하여 민족의 통일운동에 장애를 조성하고있었다.

이러한 사태앞에서 일부 사람들은 6.15북남공동선언이 과연 제대로 리행될수 있을가 하는 위구심을 가지고있었다.

지난 시기 북남사이에 대화와 협상이 벌어지다가도 미국의 반공화국책동때문에 중단되고 량자사이에 합의를 보았던 문제들도 백지화된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조성된 정세는 6.15북남공동선언을 철저히 리행하여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높이 민족공조로 외세의 전쟁책동을 단호히 짓부셔버리며 조국통일운동을 힘있게 벌려나갈것을 요구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애국애족의 보검인 선군의 기치높이 밖으로는 외세의 간섭과 도발로부터 온 민족의 운명과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굳건히 수호하시였으며 안으로는 겨레의 화해와 협력, 통일지향을 적극 고무격려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89(2000)년 9월에만도 두차례에 걸쳐 일군들을 남쪽에 파견하시여 공동선언을 끝까지 고수리행해나갈 공화국의 립장을 다시금 천명하도록 하시고 선언리행을 위한 군사적담보를 마련하는 문제를 비롯하여 모든 문제를 원만히 풀어나가도록 적극적인 조치들을 취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정력적인 선군혁명령도에 의해 6.15북남공동선언리행에서 큰 전진이 이룩됨으로써 평양상봉이후 북남관계는 새로운 궤도우에 올라서고 일찌기 없었던 사변들이 련이어 일어나게 되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선군정치에 기초한 우리의 조국통일정책과 민족공동의 노력에 의하여 6.15북남공동선언과 10.4선언이 채택공포됨으로써 조국통일의 전환적국면이 열리게 되였습니다. 북과 남, 해외에서 온 민족의 자주통일기운이 전례없이 높아졌으며 조국통일운동은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따라 거족적인 운동으로 확대발전되고있습니다.》

1971년부터 력사적인 평양상봉이 이루어진 2000년까지 지난 29년간 346회의 회담에서 북과 남은 35건의 합의를 이루어냈지만 6.15북남공동선언발표이후부터 2007년 7월까지 북남당국사이에는 21차의 상급회담과 13차의 경제협력추진위원회회의 그리고 8차의 적십자회담과 6차의 장령급군사회담을 비롯하여 무려 140여차의 회담과 접촉이 진행되였으며 매번 합의문건이 채택되였다. 또한 북과 남사이의 대화는 지난날 소수 당국자들사이에서만 진행되여오던 구태의연한 낡은 틀에서 벗어나 로동자, 농민, 청년학생, 녀성, 예술인, 지식인, 종교인을 비롯한 각계각층과 각당, 각파가 모두 참가하는 우리 민족끼리의 대화로 확고히 전환되였다. 그리하여 북과 남은 6.15북남공동선언발표 1돐을 기념하는 민족통일대토론회와 민족통일대축전, 평화와 통일을 위한 3.1민족대회, 8.15민족통일대회 등 통일축전들을 진행하였으며 북남로동자5.1절통일대회, 북남농민통일대회, 6.15공동선언관철과 민족의 미래를 위한 북, 남, 해외청년학생통일대회, 북남교육자통일대회, 민족작가대회, 개천절기념 민족공동행사 등 수많은 민간급대화들이 진행되였다.

경이적인 사변들은 이에만 그치지 않았다.

2000년 9월 63명의 비전향장기수들이 조국의 품에 안기는 민족사적사변이 일어났으며 흩어진 가족, 친척들의 상봉이 마련되였다.

그뿐만아니라 제14차 부산아시아경기대회에서 북과 남 선수들의 공동입장, 부산과 대구에서의 통일열풍, 제주도민족통일평화체육문화축전, 북측 국립교향악단과 남측 《KBS》교향악단, 《MBC》공연단의 서울과 평양에서의 공연을 비롯하여 북남예술인들의 합동공연, 합동연주회들은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이 안아온 자랑찬 결실로서 피줄과 언어, 력사와 문화도 하나이며 통일애국의 마음과 뜻도 하나인 우리 민족의 단합된 힘을 온 세상에 힘있게 과시하였다. 또한 북남단청자료전시 및 학술토론회, 일제의 조선인강제련행의 범죄성에 대한 북남공동학술토론회와 공동자료전시회, 국호영문표기를 바로잡기 위한 북남토론회, 북남방송인토론회, 국내외동포들의 평양의학과학토론회, 단군 및 고조선에 관한 공동학술토론회, 《우끼시마마루》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평양토론회 등 수많은 문화, 학술교류들이 진행되였다. 일제에 의해 강탈당하였던 북관대첩비가 온 겨레의 커다란 관심속에 100년만에 다시 함경북도 김책시 림명리에 있는 자기 자리에 세워진것도 온 겨레가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를 들고 나아가는 길에 얻은 결실이였다.

6.15북남공동선언은 나라를 북과 남으로 두동강낸 분렬의 장벽을 뚫고 끊어진 철도와 도로를 잇는 경이적인 사변도 가져왔다.

2002년 9월 내외의 관심속에 착공식을 가진 동해선과 신의주-서울사이의 철도 및 도로련결공사가 힘있게 추진되여 2007년 5월 17일에는 북남철도련결구간 렬차시험운행이 동서해선에서 각각 북측 금강산청년역에서 남측 제진역까지, 남측 문산역에서 북측 개성역까지 진행되였다.

2003년 2월에는 동서해선 철도 및 도로련결사업의 일환으로서 군사분계선 10m너비의 2.4km 구간에 걸쳐 동해선 림시도로와 서해선 림시도로를 완공함으로써 금강산륙로관광의 시험답사, 개성공업지구건설을 위한 현지답사를 실현하였다.

외세의 방해책동속에서도 북남사이에 개성공업지구건설이 다그쳐져 2004년 12월 개성공업지구현지에서 《개성공업지구 첫 제품생산기념식》이 진행되였다. 경제협력을 위하여 북을 방문하는 남녘동포들의 수가 계속 늘어나고 북남경제협력사업은 농업, 공업, 임가공 등 여러 부문과 지역으로 확대되였으며 북과 남은 경제협력사업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북과 남사이의 민족적뉴대를 더욱 두터이 하는데 이바지하였다.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높이 힘차게 전진하는 과정에 북과 남은 2007년에는 6.15북남공동선언의 실천강령인 10.4선언을 채택하여 자주통일, 평화번영의 리정표를 마련하였다.

이러한 사변들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선군총대로 미국의 도전을 짓부셔버리며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높이 6.15북남공동선언리행을 위한 사업을 줄기차게 밀고나가시였기에 마련된 자랑찬 현실이다.

지난날 반쪽행사로 치르어지던 통일행사들이 평양과 서울, 금강산과 인천 등 여러곳에서 북과 남, 해외가 함께 하는 옹근잔치로 진행된것도, 반세기이상 굳게 닫겼던 장벽에 파렬구가 뚫리고 하늘길, 배길, 땅길이 열려 그 길로 동포들이 오가는 희한한 사변들이 펼쳐진것도 온 민족에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끝없는 사랑을 떠나서 생각할수 없다.

이것은 뜨거운 민족애가 구현된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야말로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를 하나로 더욱 굳게 단합시키고 자주통일, 평화번영의 새 력사를 개척하기 위한 가장 위대한 기치라는것을 보여주고있다.

6.15자주통일시대와 더불어 활력있게 전진하던 조국통일운동은 오늘 리명박역적패당의 악랄한 반통일책동으로 하여 엄중한 도전에 부딪치고있다.

민족에 대한 사랑은 정의이다. 정의가 불의를 이기고 반드시 승리한다는것은 력사의 법칙이다.

이 정의의 보검인 선군정치가 있어 민족의 념원을 짓밟고 고통을 안겨주는 매국역적들을 력사의 쓰레기통에 처박을 그날은 하루하루 다가오고있으며 이 땅우에 번영하는 통일강성대국을 일떠세울 날은 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