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 - 사랑의 정치』 중에서

 

 3. 선군 ― 민족에 대한 사랑의 정치

2) 민족의 단합과 통일을 위한 선군령도

 □ 민족자주, 북남관계발전과 평화번영선언 채택

 1990년대말에 이르러 조국통일을 위한 우리 민족의 투쟁과 공화국의 대외관계에서는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고있었다.

전민족적인 조국통일운동이 활발히 벌어지는 가운데 99통일대축전 10차 범민족대회를 계기로 북과 남, 해외의 3자련대가 실현됨으로써 통일을 지향하는 애국세력과 반통일세력사이의 력량구도는 조국통일에 유리하게 전변되고있었다.

대외관계에서는 미국의 클린톤행정부가 조미핵대결에서 끝내 굴복하고 조선을 주권국가로 인정하는 《체제유지론》에 매달려 늦게나마 조미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방향전환을 시작하였다.

일본도 미국을 좇아 공화국과의 관계개선의 길에 나섰다.

이러한 정세변화에 불안초조해난것은 미국의 반공화국핵소동의 돌격대로 나서서 동족을 모해하고 해치는데 열을 올려오던 남조선당국이였다.

남조선당국은 외토리신세가 되여가고있는데다가 심각한 정치적위기에 처하게 되였다.

남조선에서는 대세의 흐름에 편승하여 보수적인 정치인들과 집권상층까지도 북남관계개선과 나라의 통일문제를 《정권》유지의 명분으로 내세우지 않으면 안되였다.

눈앞에 박두한 2000년 4월의 《국회의원선거》에서 우익보수세력에게 패배하면 《국민의 정부》의 정치적장래가 우려를 넘어 비참한 결말로 이어지리라는것은 불보듯 뻔했다.

더우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펼쳐가시는 선군의 위력앞에 미국과 일본이 공화국과의 관계개선의 문을 두드리고있어 자기들만 소외되고있다는 조바심이 남조선당국자들을 불안하게 하고있었다.

하여 남조선당국자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자기를 평양에 불러주실것을 여러 통로를 통하여 요청해왔으며 2000년 3월에는 《베를린선언》이라는것을 발표하고 북남관계개선에 대한 저들의 《립장》을 표시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가 《베를린선언》에서 《우리의 당면목표는 통일보다는 랭전종식과 평화정착》이라고 한것은 사실상 군사적대결로는 북을 당할수 없다는데 대한 인정을 전제로 한것이며 평양방문요청은 바로 선군의 위력앞에 달리할수 없는 선택이였다.

변천되는 대세의 흐름을 통찰하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유훈을 받들어 최고위급회담을 열데 대한 구상을 무르익히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뜨거운 민족애와 원대한 구상과 통일의지, 담대한 결단에 의하여 주체89(2000)년 4월 8일 북남수뇌분들의 평양상봉과 북남최고위급회담이 오는 6월 평양에서 진행된다는 북남합의서가 발표되였다.

4.8북남합의서의 발표는 선군이 낳은 민족사적사변이며 자주통일시대의 개막을 예고하는 첫 포성이였다.

북남합의서의 발표는 세상을 들었다놓았다.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는 이 회담이 민족통일에로의 징검다리로 될것을 열망하며 부풀어오르는 격정을 금치 못하였다.

온 겨레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6월 13일부터 15일사이에 평양에서 나라가 분렬되여 55년만에 처음으로 되는 력사적인 평양상봉과 북남최고위급회담이 진행되였다.

6월 13일 예상을 뒤집어엎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평양비행장영접으로부터 시작된 북남수뇌분들의 극적인 상봉이 6.15북남공동선언채택으로 이어졌다.

6.15북남공동선언의 핵으로 되고있는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에는 동족에 대한 믿음과 사랑, 우리 민족이 단합될 때 그 어떤 외세의 간섭도 물리치고 자주적으로 통일조국을 세울수 있다는 진리가 담겨져있다.

6.15북남공동선언은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조국을 통일할것을 엄숙히 선언한 민족자주선언, 자주통일선언이였다. 선언은 또한 북과 남이 대결과 전쟁위협을 끝장내고 동족사이의 신뢰를 도모하고 화합을 이룩해나가게 하는 민족단합선언, 조국통일운동을 목적의식적으로 벌려나가게 한 통일지향선언이였다.

북과 남이 정치, 사상, 군사적으로 가장 첨예하게 대치하고있는 현실속에서 단 한차례의 회담으로 그렇듯 중대한 문건을 채택한것은 전적으로 경애하는 장군님의 비범한 예지와 통찰력, 명철한 결단과 대범한 포옹력, 뜨거운 민족애가 낳은 결실이였다.

당시 남조선의 언론들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력사적합의를 그처럼 빠른 속도로 이끌어낸것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동족애와 저력을 과시하기에 충분하다.》고 하였으며 해외동포들도 이구동성으로 6.15북남공동선언을 장군님의 민족애가 낳은 《옥동자》라고 격찬하였다.

나라가 북과 남으로 갈라져 55년만에 처음으로 력사적인 평양상봉과 북남최고위급회담이 마련되고 6.15북남공동선언이 채택되게 된것은 조국통일의 전환적국면을 열어놓은 민족사적사변이였으며 민족에 대한 참다운 사랑의 정치인 선군정치의 위대한 승리였다.

하기에 6.15북남공동선언이 발표된 후 미국 하와이 동서방연구쎈터 수석연구원은 자기의 글에서 《6.15공동선언은 바로 선군정치의 산물이다. 북의 선군총대의 위세로 평양상봉이 마련된것이다. 군력으로 밑받침된 북의 자주통일로선이 있기에 조선민족끼리 손잡고 통일할것을 확약한 력사적인 자주통일선언이 나오게 되였다.》고 썼다.

남조선잡지 《말》 2002년 8월호는 6.15공동선언의 바탕에는 1990년대 조미대결전의 결과가 놓여있다고 하면서 《조미대결전에서 조선이 승리하지 못했다면 평양상봉자체가 이루어지지 못했을것이기때문입니다. …조선이 미제국주의의 전쟁책동을 분쇄한 힘은 바로 김정일국방위원장을 중심으로 뭉친 당과 군대, 민중의 일심단결과 주체사상, 대륙간탄도미싸일로 무장한 군사력입니다. …조미공동콤뮤니케와 6.15공동선언에는 1990년대 조미대결전의 성과와 조선로동당의 통일정책이 집약되여있습니다.》라고 썼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애국애족애민의 선군정치와 통일의지의 빛나는 결정체인 6.15북남공동선언은 격동적인 민족자주통일의 시대를 펼치였으며 북남관계와 조국통일운동이 새로운 활력을 안고 발전해나갈수 있게 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6.15북남공동선언의 기치높이 민족의 자주통일운동이 힘있게 벌어지고있던 주체96(2007)년에 또다시 북남수뇌자들의 평양상봉을 마련하시여 북남관계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지침을 마련해주시였다.

6.15북남공동선언의 기본사상인 《우리 민족끼리》의 구호를 높이 들고 북남관계를 발전시키고 민족의 번영을 이룩하시려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투철한 민족애에 의하여 주체96(2007)년 8월 남조선당국자의 평양방문에 관한 북남합의서가 발표되였으며 10월에는 북남수뇌상봉이 진행되게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10월 2일 평양을 방문한 남측당국자를 따뜻이 마중해주시였으며 10월 4일에는 그와 회담하시고 《북남관계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에 서명하시였다.

선언문은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통일성업을 이룩하고 부강조국을 건설하려는 온 겨레의 지향과 념원을 반영한것으로서 2007년 북남수뇌상봉과 최고위급회담이 낳은 귀중한 결실이다.

10.4선언은 민족의 자주적발전과 통일을 추동하는 고무적기치이며 6.15북남공동선언을 전면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실천강령이다.

10.4선언의 기본사상은 력사적인 6.15북남공동선언이 밝혀준 《우리 민족끼리》이며 선언의 모든 조항은 이 리념을 실현하기 위한것으로 일관되여있다. 나라의 평화와 통일도, 민족공동의 번영도 《우리 민족끼리》리념에 맞게 그것을 철저히 구현하는 원칙에서 실현하여야 한다는것이 10.4선언의 전반을 관통하고있는 기본사상이다.

10.4선언에는 6.15북남공동선언의 정신에 맞게 북남관계를 발전시키고 나라의 평화와 민족공동의 번영을 이룩하기 위한 문제들이 다 밝혀져있다.

하기에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는 북남관계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10.4선언을 자주통일, 평화번영에로의 길을 밝혀주는 애국애족의 선언으로 적극 지지찬동하면서 그 실현투쟁에 과감히 떨쳐나섰다.

6.15북남공동선언에 이어 그 실천강령인 10.4선언이 마련된것은 민족자주, 민족단합의 힘으로 조국통일위업을 이룩하고 부강조국을 건설하려는 온 겨레의 지향과 념원의 반영으로서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따라 전진하는 자주통일운동을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 발전시킬수 있게 한 의의있는 사변으로 되였다.

열화와 같은 민족애로 일관된 위대한 선군정치의 산아인 6.15북남공동선언과 10.4선언은 민족자주의 선언, 민족공동의 통일대강이며 실천강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