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김일성주석 통일일화』 중에서

 5. 뜨거운 동포애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민족대단결의 사상과 리념, 수령님께서 지니신 숭고한 인간애와 민족애는 각계각층의 동포들을 민족적단합과 조국통일의 길에 과감히 나서게 한 힘의 원천이였다.》

김 정 일

 

몸소 정하신 공격개시시간

 

주체39(1950)년 6월 25일 미제국주의자들은 새 조국건설의 노래소리 드높던 이 땅우에 요란한 폭음을 울리며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불의의 무력침공을 개시하였다.

조선인민앞에는 엄혹한 시련의 시기가 닥쳐왔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의 반공격명령을 높이 받들고 용감한 인민군부대들은 38°선이북 1∼2km나 기여든 적들의 침공을 좌절시키고 노도와 같이 남으로 진격하였다.

6월 27일 저녁 적의 주력을 서울지역에 몰아넣은 인민군련합부대들은 적들의 최종방어선인 미아리계선을 일거에 돌파하면서 서울을 공격하는데 유리한 진지들을 차지하였다.

서울해방의 시각은 눈앞에 다가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때 인민군련합부대들의 서울해방을 위한 전투조직과 준비에 빈틈이 없는가를 다시금 알아보시다가 공격개시시간을 두고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기시였다.

인민군지휘성원들은 그이께서 공격시간을 적에 대한 불의의 공격에 유리한 밤중으로 택하실것으로만 생각하고있었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서울에 대한 공격개시시간을 밤중이 아닌 6월 28일 새벽 5시로 정하시였다.

지휘관들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하지가 금방 지난 때여서 5시면 날이 훤히 밝아 불의의 공격을 하기에는 불리했던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공격개시시간을 날이 밝은 새벽 5시로 정하신데는 서울시민들을 아끼고 사랑하시는 그이의 한량없는 은정이 담겨져있음을 얼마후에야 알고 뜨거워지는 마음을 걷잡지 못하였다.

그때 서울에는 많은 인구가 집중되여있었으며 경복궁, 덕수궁, 창경원, 남대문을 비롯한 문화유적들이 적지 않았다. 만일 어두운 밤에 서울을 공격하여 시가전을 벌린다면 시민들의 생명재산과 문화유적들에 막대한 피해가 미칠것이였다.

언제나 인민들의 생명재산을 보호하는데 모든것을 복종시켜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서울시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며 우리 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적들을 아무런 손상이 없이 그대로 보존하기 위하여 총공격을 새날이 밝은 다음에 개시하도록 하신것이였다.

그이의 명령에 끝없이 감격한 인민군전사들은 가렬처절한 전투정황에서도 서울시민들의 생명재산과 귀중한 문화유산을 보호하면서 저항하는 적들을 맹렬히 공격하였다.

서울해방전투는 그날 오전 11시 30분에 끝났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바라시던대로 서울시민들의 생명재산도, 문화유적도 아무런 손상을 입지 않았다.

해방된 서울거리에는 자기들의 은혜로운 보호자, 구원자이신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러 웨치는 《김일성장군 만세!》의 환호성이 높이 울려퍼졌다.

 

설음이 없어진 《경무대》보이라공

 

주체39(1950)년 여름, 해방된 서울거리로 승용차가 달리고있었다. 서대문을 지나 태평로를 거쳐 차는 어느덧 북악산밑 《경무대》에 들어섰다.

차에서 내리시는분은 바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이시였다. 해방된 서울시민들을 만나보고싶으시여 포화를 뚫고 먼길을 몸소 헤쳐오신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차에서 내리시자 근엄하신 눈길로 《경무대》를 바라보시였다.

1920년대에 세워진 후 력대 일제총독들이 들어앉아 우리 민족에게 온갖 불행과 고통을 강요하던 악마의 소굴, 8. 15후에는 미군정장관이 들어앉아 예속과 분렬, 파쑈와 전쟁책동을 일삼았으며 며칠전까지만 하여도 리승만이 틀고앉아있던 복마전이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경무대》안을 돌아보시였다.

그이께서는 이곳에서 일하던 로동자들이 있었겠는데 그들이 다 어디로 갔는가고 물으시였다.

일군들이 다 피난을 갔다고 말씀드리자 그이께서는 로동자들을 빨리 찾아오도록 하라고 이르시였다.

일군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사실 아무리 인간이하의 버림을 받던 로동자들이라 해도 《경무대》에서 복무한 사람들을 어떻게 다시 제자리에서 일하게 하랴싶어 데려올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던것이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모든 남녘인민들의 처지를 깊이 리해하시고 그들을 동정하고계시는것이였다.

일군들은 이튿날 김포비행장근처의 어느 농촌에 가있던 한 보이라공을 데려왔다. 마흔여덟살 되는 그는 20년간이나 보이라를 돌린 로동자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를 반갑게 맞아주시고 가정형편도 알아보시고 《경무대》에서 천대받던 일도 물으시면서 리승만통치하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았겠는가고 따뜻이 위로해주시였다. 그러시고는 이제는 로동자, 농민이 주인이 된 세상에서 자식들도 대학까지 얼마든지 보낼수 있다고 하시면서 주인답게 자기의 권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말씀을 받아안으면서 그는 격동된 심정을 금할수 없었다. 더우기 자기를 동무라고 불러주시며 지난날의 쓰라린 처지를 너그러이 헤아려주시는분이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이시라는것을 알게 되였을 때 그는 솟구쳐오르는 눈물을 억제할수 없었다. 얼음같이 차거운 세상에서 참아오던 설음을 봄날같이 따사로운 은정앞에서 어찌 터치지 않을수 있으랴.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그가 가족이 많아 고생이 많을것이라고 하시면서 그의 집에 쌀을 자동차로 실어보내도록 하시였으며 또 어느날에는 그에게 몸소 통닭도 보내주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보내주신 통닭이 오른 점심상을 받아안고 그는 《장군님!》 하며 감격에 목메여 그만 흐느껴울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경무대》에서 일하던 로동자에게 이처럼 뜨거운 은정을 베풀어주고계실 때 서울시민들과 해방지역의 모든 인민들도 보람찬 새삶을 받아안고 그이의 은덕에 모두들 감격의 눈물을 짓고있었다.

 

설악산의 전설

 

조국해방전쟁이 한창이던 주체39(1950)년 8월초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내각청사 집무실에서 긴급회의를 소집하시였다.

당시 내각 림산국의 한 일군도 전시생산보장을 위해 지방에 출장나가있다가 이 회의에 참가하라는 급한 련락을 받고 평양으로 올라왔다.

위대한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고 모여온 일군들의 얼굴에는 긴장한 빛이 어리여있었다.

모여앉은 일군들을 둘러보시던 그이께서는 이제부터 서울시민들의 땔나무문제를 토의하자고 하시며 회의의정을 선언하시였다.

순간 회의참가자들은 너무도 뜻밖의 일이여서 서로 마주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였다. 적아간에 치렬한 격전이 벌어지고있는 때 더구나 아직은 삼복더위가 한창인데 서울시민들의 겨울철땔나무문제가 론의될줄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였던것이다.

사실 일제때에도 그러하였지만 미제강점하에서 서울시민들의 생활형편은 말이 아니였다. 먹을것도 문제였지만 설사 식량이 있다고 해도 땔나무가 문제였다. 겨울에는 땔것이 없어 농짝이며 빨래방치, 지어는 밥상까지 다 패때고도 모자라 얼어죽는 참상까지 빈번히 빚어지군 하였던것이다.

서울지역 인민들의 이러한 고통을 그 누구보다도 깊이 헤아려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쟁에 대해서가 아니라 서울시민들의 겨울철땔나무문제에 대하여 말씀하시는것이였다.

《우리는 서울시민들이 해방되여 공화국의 품속에 안긴 오늘에 있어서도 그들이 이전과 같이 고통을 당하게 할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하루빨리 안정된 생활을 하도록 여러모로 도와주어야 하며 땔나무문제와 같은것을 예견성있게 풀어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그이께서는 지금 우리가 피흘리며 전쟁하는 목적도 남반부인민들이 행복한 생활을 누리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하시면서 땔것을 해결할 방도까지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서울은 대체로 10월 중순이면 추위가 시작되는데 적들이 패주하면서 철길과 탄광을 다 파괴하였으므로 석탄을 보장하기는 어려울것이니 통나무를 생산해서 보내주는것이 제일 합리적이다. 서울시의 인구와 세대수를 따져보면 겨울나이용으로 40만㎥의 통나무가 있어야 한다. 서울이 가까운 태백산에서 나무를 하면 헐할수는 있으나 거기에서 일을 벌리면 지지리 고생하던 해방지역 인민들이 동원되여야 하겠는데 힘들더라도 북반부인민들의 손으로 나무를 해보내주자. 소나무와 참나무가 많은 설악산에서 나무를 해서 한강을 리용하여 류벌하면 서울까지 헐하게 운반할수 있고 소나무와 참나무는 분한있고 불담이 좋아서 때는 사람들이 좋아할것이다. …

계속하시여 그이께서는 채벌대책도 일일이 세워주시고 내각 림산국 일군을 현지로 파견하시였다.

그리하여 설악산일대에서는 때아닌 때 나무베기가 벌어지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서울시민들의 땔나무를 보장하는 사업이 전선에서 싸움을 하는것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이라고 하시며 인민군대에 탄원한 수백명의 청장년들까지 나무베기장에 보내주시였고 서울시인민위원회에서는 통나무가 도착하면 지체없이 시민들에게 나누어줄수 있도록 공급소들을 미리 조직하도록 빈틈없이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그이의 극진한 관심속에 9월 하순에는 계획한 땔나무전량을 마련하게 되였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설악산에 파견되여있던 림산국의 한 일군에게 장거리전화로 조성된 정세에 대처하여 인민군대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를 조직한데 대하여 알려주시면서 이런 형편에서 베여놓은 나무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고 물으시였다.

적들이 다시 기여들게 된 서울에 한대의 통나무라도 보낼수 없다는 생각을 앞세우면서 나무들을 몽땅 불태워버리겠다는 그 일군의 대답을 들으신 그이께서는 그렇게 하면 적들이 그 나무를 쓰지 못하게 할수는 있겠지만 추위가 당장 시작되겠는데 땔나무가 없어 떨게 될 서울시민들이 걱정된다고 근심어린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전류를 타고 멀리서 울려오는 그이의 심려어린 음성을 듣는 순간 그 일군의 가슴은 뭉클하였다.

조국이 준엄한 시련을 겪고있는 때에 더구나 적들이 서울을 향해 미친듯이 달려들고있는 그 엄혹한 정황속에서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서울시민들의 겨울나이땔나무를 두고 그토록 마음쓰시는것이였다.

이윽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무를 토막내여 강물에 띄워 내려보내주면 인민들이 건져쓸수 있을것이니 이런 방법으로라도 그들을 도와주어야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그 많은 통나무들을 며칠내에 토막치자면 헐치 않겠는데 군인들을 동원시켜주겠다고 말씀하시는것이였다.

그리하여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가 시작될무렵 한강으로는 쪼개여 불때기에 알맞춤하게 자른 통나무토막들이 떠내려오게 되였다.

해마다 겨울이 오면 땔것이 없어 고통을 겪던 서울지역의 인민들은 이런 뜻밖의 《횡재》를 하고 너무 기뻐 어쩔줄 몰라하였다.

그때부터 그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은덕을 잊지 못하여 설악산에 《구세주》가 있어 지지리 천대받던 자기들을 보살펴준것이라고 이 사실을 전설처럼 전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