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김일성주석 통일일화』 중에서

 5. 뜨거운 동포애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민족대단결의 사상과 리념, 수령님께서 지니신 숭고한 인간애와 민족애는 각계각층의 동포들을 민족적단합과 조국통일의 길에 과감히 나서게 한 힘의 원천이였다.》

김 정 일

 

구호물자로 된 전리품

 

민족의 위대한 태양 김일성주석께서 안겨주신 해방의 감격과 기쁨이 온 강산에 차넘치던 해방직후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 일군을 부르시여 일제놈들에게서 빼앗은 전리품들을 다 모아서 잘 보관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그때 일제침략군놈들이 쓰던 창고와 병영, 역전들에는 옷, 천, 모포 등 전리품들이 적지 않게 쌓여있었으나 그것을 처리할 대책을 미처 세우지 못하고있었다.

그이의 가르치심대로 전리품들을 다 모아놓으니 그 량은 정말 대단하였다.

평안남도 도당청사앞에 모아놓은것만 해도 산더미 같았다.

며칠후 전리품들을 다 모았다는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관계부문 일군들을 부르시였다.

그들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곳으로 갔을 때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시던 그이께서는 지금 남조선인민들의 생활이 몹시 어렵다고 하시면서 근심어린 안색을 지으시였다.

해방은 맞았지만 또다시 남조선을 강점한 미제침략자들의 군화발밑에 짓눌려사는 남녘땅형제들의 비참한 모습을 그려보시는듯 한동안 아무 말씀도 없으시던 그이께서는 이 전리품들을 남녘동포들에게 보내주자고 말씀하시였다.

그 순간 일군들은 놀라운 시선으로 서로 얼굴들만 쳐다보았을뿐 아무 말도 할수 없었다.

그때로 말하면 얼마 안되는 산업시설마저 일제놈들이 다 마사놓고 도망친 후여서 아직 북반부인민들에게도 천 한m, 신발 한컬레가 매우 귀중한 때였다.

그러므로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전리품들을 다 모으라는 과업을 받았을 때 일군들은 그이께서 그것들을 생활이 펴이지 못한 북반부인민들에게 나누어주시려고 그러시는줄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녘동포들에게 전리품들을 보내주자고 하시는것이였다.

사실 그이께서는 이 물품들이 남조선의 모든 사람들에게 다 차례질수 없으며 그것을 받은 사람들도 기아와 빈궁에서 완전히 벗어날수 없다는것을 너무나 잘 알고계시였다. 그러나 부모의 슬하를 멀리 떠나 고생하는 자식을 생각하는 어버이마음으로 그이께서는 남녘인민들의 신음소리를 들으시며 이 은혜로운 동포애적조치를 취하시였던것이다.

일군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심려깊으신 말씀 한마디한마디를 심장깊이 새겨넣으면서 그이의 남녘동포들에 대한 깊고깊은 은정과 뜨거운 동포애의 정에 깊이 머리를 숙였다.

그리하여 뜨거운 동포애의 정이 차고넘치는 구호물자들은 곧 남녘땅에 가닿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보내주신 구호물자들을 받아안은 남조선인민들은 저마다 감격의 눈물을 흘리였으며 북녘하늘을 우러러 《김일성장군 만세!》를 목청껏 부르고 또 불렀다.

 

《내 마음은 언제나 남조선동포들에게 가있습니다》
 

주체35(1946)년 1월초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며칠전에 접견하시였던 서울신문사 기자들을 또다시 만나주시였다.

몸소 저택의 문밖에까지 나오시여 그들을 기다리고계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손길에 이끌리여 방안에 들어선 기자들은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깨끗하고 소박하다는외에 달리는 표현할수 없는 방안에는 키낮은 책상, 그옆에 나란히 놓여있는 책장과 신문걸개, 이것이 가구의 전부였기때문이였다.

그이께서는 《방이 추운데 이리 가까이 오시오. 더운데 있던분들이 어디 견딜만 합니까?》라고 하시며 그들을 방 한복판에 놓인 화로곁으로 안내하시였다.

기자들은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자기 집에서처럼 스스럼없이 화로곁에 둘러앉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을 둘러보시며 《기자동무들이 곧 떠난다지요? 돌아가느라고 또 고생하시겠소.》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에게 전날에 발표된 모스크바3상회의결정을 지지하는 북조선 제 정당, 사회단체들의 공동성명을 읽었느냐고 물으시고나서 모스크바3국외상회의결정내용과 그 결정을 지지해야 할 필요성에 대하여 알기 쉽게 말씀해주시였다.

잠시후 점심상이 들어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 우리 점심이나 같이 듭시다. 아무것도 없지만…》 하시며 먼저 자리를 잡으시였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망설이다가 점심을 먹고왔다고 사양하는 그들에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슨 점심을 벌써 먹었겠는가고, 그러지들 말고 같이 들자고 하시며 상앞으로 끌어당기시였다.

그때 기자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검소하신 생활에 머리가 숙어졌고 가슴이 뜨거워났다.

차려들여온 점심상이란 온반 한그릇에 동치미 한보시기씩 놓은외에 아무것도 없었기때문이였다.

《귀한 손님들이 오셨는데 대접이 이래 안됐소. 변변치 못하지만 들어주시오. …우린 그저 이렇게 삽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에 그들은 눈물이 핑 돌았다.

(세상에 둘도 없는분이시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몇번이나 부르짖었다.

위대한 수령님댁에서 보고 느낀 한두가지 사실을 놓고도 그들은 그이께서 인민들에게 베푸시는 뜨거운 사랑과 옳바른 정치를 확신성있게 내다볼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식사를 끝마치신 후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우리들이 비록 서울에는 가지 못하지만 내 마음은 언제나 남조선동포들에게 가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여기서 하는 일은 북조선만을 위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목숨을 걸고 빨찌산투쟁을 할 때도 전조선을 해방하기 위해서였지 결코 북조선만을 위해서가 아니였습니다.

… 우리가 지금 서로 만나지는 못하지만 남조선인민들을 한시도 잊지 않는다는것을 꼭 전해주시오.》

시간이 어느덧 흘러 그들이 떠나갈 시간이 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현관앞까지 나오시여 울먹거리며 작별의 인사를 올리는 그들의 손을 굳게 잡아주시면서 《아무래도 밤에 넘어야 할텐데 조심들 하시오. 요새 날씨도 찬데…》라고 말씀하시며 먼길을 떠나는 자식을 념려하시듯 그들의 몸차림까지 눈여겨보시였다.

남조선기자들은 조국의 통일독립과 무궁한 번영을 위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건강하실것을 축원하면서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렸다.

그날 오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헤여질 때 그들이 입고있던 몸차림이 마음에 걸리시여 털외투와 털신을 보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보내주신 털외투와 털신으로 몸을 감싸고 귀로에 오른 그들은 어버이의 크나큰 은정을 가슴뜨거이 느끼며 38°선을 넘었다.

 

남연백벌에 흘러든 사랑의 생명수

 

주체35(1946)년 봄, 해방된 삼천리 이 땅에 찾아 온 첫봄이였다.

남연백의 넓은 벌에도 봄은 찾아와 논두렁에, 산기슭에 냉이싹이며 풀들이 돋았다. 하건만 벌에는 사람들이 없었다. 물이 없어 농사를 지을수 없게 된것이였다. 남연백벌에 생명수를 대주던 구암저수지와 례의저수지의 물길을 저주로운 38°선이 끊어놓았던것이다.

벌은 남에 있고 저수지는 북에 있고…

미제와 그 주구들은 북에서 절대로 물을 주지 않는다고 하면서 애간장이 타는 농민들의 가슴에 못질을 하였다.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된 농민들의 한숨소리에 종달새마저 지저귐을 멈춘듯 벌은 황량하기만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토지개혁으로 농악소리 높은 북녘땅에서 별안간 물줄기가 사품치며 남연백벌로 흘러들었다.

언제나 남녘겨레들의 처지를 걱정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 구암저수지와 례의저수지의 물을 우선 남녘땅에 보내주도록 하신것이였다.

사랑의 생명수를 마음껏 들이키며 남연백벌이 한창 푸르러가던 1946년 여름, 구암과 례의저수지는 례년에 볼수 없었던 큰비로 뚝이 무너지고 수문이 파괴되는 등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남연백농민들은 무너진 저수지뚝을 바라보면서 한숨으로 나날을 보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연백농민들의 이러한 애타하는 심정을 깊이 헤아리시여 즉시 저수지복구공사를 다그치도록 모든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당시로 말하면 일제가 파괴하고 간 경제와 문화시설도 복구하고 령락된 인민생활도 빨리 안정시켜야 했으므로 자금과 자재, 로력이 매우 귀중한 때였다.

그렇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북반부에서 그 어떤 부담을 치르더라도 저수지를 빨리 복구하여 남연백벌의 농사에 지장이 없도록 해주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 저수지복구에 1 500여만원(구화페)의 방대한 공사비와 900여t의 세멘트 그리고 각종 자재와 2만여공수의 로력을 보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취해주신 적극적인 조치에 의하여 저수지는 다음해 농사철전으로 완전히 복구되였고 그이의 한량없는 사랑과 은정을 담은 구암과 례의저수지물은 또다시 남연백의 넓은 벌을 적시며 계속 흘러갔다.

그 물량은 두 저수지의 전체 물량의 99%에 달하였다.

은혜로운 동포애적조치는 남녘의 민심을 뜨겁게 달구었다.

그러자 미제와 그 주구들은 남조선인민들속에서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다함없는 존경과 흠모의 정이 날로 높아가는것을 몹시 두려워하면서 남연백농민들에게 터무니없이 많은 온갖 가렴잡세를 마구 들씌우는 한편 물을 받지 못하도록 갖은 모략과 방해책동을 다하였다.

그리하여 남녘땅으로 흘러들던 물길은 끊어지고 남연백농민들앞에는 또다시 형언할수 없는 시련이 닥쳐왔다.

(이 마당에서 주저할것이 무엇이냐.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 우리 남연백농민들의 정상을 알려드리고 물을 보내주실것을 청드려야 한다.)

이렇게 결단을 내린 남연백농민대표 800여명은 1948년 5월 초순 목숨을 걸고 38°선을 넘어 북으로 달려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이 올린 편지를 친히 보아주시고 안색을 흐리시였다.

그이께서는 한동안 아무 말씀없이 깊은 생각에 잠겨 남쪽하늘가를 바라보시다가 편지를 가지고온 일군에게 미국놈들이 방해책동을 하고있지만 남연백농민들에게 올해 농사에 지장이 없게 물을 보내주자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그후 그이께서는 북조선인민위원회를 소집하시고 남연백벌농민들에게 물을 보내주는 문제를 상정하시고 몸소 작성하신 결정서를 채택하도록 하시였다.

북조선인민위원회결정 제155호

구암저수지와 례의저수지의 관개용수를 남조선 연백지방에 공급함에 관한 결정서

38이북에 있는 구암저수지와 례의저수지는 38이남 연백지방의 수전 1만 3 600정보에 관개용수를 공급하고있었다.…

북조선인민위원회는 수차에 걸쳐 관개용수공급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미군정과 서한을 교환하였다. 그러나 미군정측은 남조선관개용수공급에 관한 문제를 순조롭게 해결하려 하지 않고 고의적으로 태공하여왔으며 더우기 38이남 농민들이 자진적으로 북조선인민위원회의 대표와 관개용수문제해결을 교섭하려는것까지도 방해하여왔다.

이와 같은 사정은 북조선인민위원회로 하여금 본의는 아니나 부득이 관개용수사용료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구암저수지와 례의저수지로부터 38이남 연백지방에 급수하는것을 당분간 보류하게 하였던것이다.

미군정이 남조선동포들과 남조선농민들의 비참한 처지에 대하여 하등의 관심도 가지지 않고있으며 대책도 취하려 하지 않을뿐만아니라 도리여 남조선동포들의 처지를 악화시킬 목적으로 관개용수조절문제를 고의적으로 태공하며 속한 기일내에 관개용수사용료에 대한 부채를 청산하려 하지 않고있으나 북조선인민위원회는 남조선동포들의 비참한 처지를 구원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결정한다.

미군정측은 관개용수사용료에 관한 문제를 속한 기일내에 해결하려 하지 않고있으나 남조선동포들의 …요청에 의하여 1948년 6월 27일부터 구암저수지와 례의저수지의 관개용수를 38이남 연백지방에 급수할것이다.

1948년 6월 26일

북조선인민위원회

            위원장 김 일 성

 

6월 27일 오후 6시 40분, 드디여 수문이 열리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사랑이 어린 관개용수, 그것은 남연백농민들의 가슴에, 아니 온 남녘땅 인민들의 가슴에 흘러든 사랑의 생명수였다.

그 사랑의 생명수와 더불어 남조선인민들의 가슴마다에는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열화와 같은 흠모심이 더욱더 높아갔다.

 

서울법정학교 학생들이 받아안은 은정

 

주체35(1946)년 8월 어느날 력사적인 북조선로동당창립대회를 지도하고계시던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서울의 법정학교 교원, 학생대표들이 그이를 만나뵙기 위하여 찾아왔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휴식시간에 그들을 친히 만나주시였다.

만면에 환한 웃음을 담으시고 그들에게로 다가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표들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며 38°선을 넘어오느라고 고생이 많았겠다고 하시면서 어데 다친데는 없는가고 다정히 물어도 주시고 날씨가 더워서 매우 힘들었겠다고 말씀하시며 손수 땀에 젖은 학생대표의 웃옷도 벗겨주기까지 하시였다.

법정학교 학생들이 미제의 책동으로 학교를 페쇄당하였을뿐아니라 일체 다른 학교에도 가지 못하도록 봉쇄당하고있는 사실에 대하여, 자기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품속에서 공부하고싶어 하는 500여명 법정학교 학생들의 일치한 열망을 안고 장군님을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주의깊게 들으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조선의 청년학생들이 미제와 그 주구들을 반대하여 희생을 무릅쓰고 용감히 싸우고있는것은 지극히 정당한 일이라고 말씀하시면서 학원에서 쫓겨난 학생들의 장래문제에 대하여 깊이 념려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력사의 흐름을 거역하는 무리들은 정의와 진리를 사랑하고 새것을 지향하는 청년학도들을 두려워하고있다고 하시면서 나라의 기둥감이 될 그들의 슬기로운 머리를 곤봉으로 내리치고 그들의 가슴을 발길로 차는 무리들은 응당한 보복을 받을것이며 반드시 멸망하고야말것이라고 격하신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잠시후 화제를 돌리신 그이께서는 북조선의 방방곡곡에서 벌어지고있는 민주건설의 벅찬 새 소식을 자세히 들려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에 이끌리여 시간가는줄 모르고 듣고있던 대표들은 한 일군이 들어와 그이께 휴식시간이 지난지 오랬다고 말씀을 올릴 때에야 나라일을 돌보시는 그이를 너무 오래 지체시켜드렸다는 송구스러운 마음을 안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그이께서는 모처럼 서울에서 어려운 걸음을 한 동무들을 위하여 늦어졌다면 회의참가자들이 잘 리해해줄것이라고 하시며 그들을 다시 자리에 앉히시고 말씀을 이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북조선에서는 로동자, 농민의 아들딸들이 대학에 우선적으로 다니게 될것이며 대학들에 남조선에서 배움의 길을 잃은 학생들을 받아 공부시키는것은 응당하며 또 그것은 좋은 일이라고 거듭 강조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종합대학이 곧 개교하게 되는데 빨리 서울에 나가서 학생들을 데려오라고 간곡히 당부하시였다.

순간 대표들은 막혔던 물목이 터진듯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고 그만 흐느끼고야말았다.

어느덧 시간이 퍼그나 흘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 일군을 부르시여 이 동무들이 서울에 가서 학생들을 데려올수 있게 필요한 문건을 해주고 려비도 넉넉히 주며 평양역장에게 말하여 서울로 가는데 불편이 없도록 차도 해결해주라고 이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안겨주신 입학을 승인하는 문건과 신임장 그리고 많은 려비를 가슴에 받아안은 학생대표는 북받치는 감격으로 하여 들먹이는 가슴을 안고 단숨에 송악산을 넘어 평양을 떠난지 이틀만에 서울에 들어섰다.

위대한 수령님을 직접 만나뵙고 돌아간 그 학생을 맞이한 법정학교 학생들과 교원들은 격동된 심정을 누를길 없어 서로서로 부둥켜안고 《김일성장군 만세!》를 목청껏 부르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였다.

드디여 법정학교 학생, 교원들이 만난을 뚫고 38°선을 넘어섰다.

그들이 평양까지 오는데 불편이 없도록 친히 자동차까지 보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바쁘신 속에서도 또다시 학생, 교원대표들을 만나주시였다.

그이께서는 모두 건강한가, 도중에서 다른 일은 없었는가, 어떤 학과들을 지망하는가를 하나하나 알아보시고 이들이 과학의 여러 부문을 깊이 연구하여 새 조국건설에 적극 이바지할데 대한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그후 그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과 믿음속에 여러 대학에 입학하여 공부하게 되였으며 새 조선을 떠메고나갈 믿음직한 역군으로 자라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