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김일성주석 통일일화』 중에서

 

4. 통일애국의 한길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라가 분렬된 첫날부터 조국통일의 기치밑에 민족의 대단결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령도하시여 조국통일운동을 전민족적인 운동으로 확대발전시켜나가시였습니다.》

김 정 일

 

 

 

두번다시 태여난 최홍희

 

화창한 봄빛이 무르녹던 주체68(1979)년 4월 어느날, 《배달신보》 발행인인 국제태권도련맹 총재 최홍희선생이 평양을 방문하였다.

당시 그의 조국방문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도 그럴것이 그의 지나온 경력은 《반공》의 자욱으로 얼룩져있었던것이다.

최홍희선생으로 말하면 지난날 남조선에서 오래동안 남조선군고위상층에 있은 사람이였다. 전쟁시기에는 사단을 끌고 38°선을 넘어섰었고 그 이후에는 군단장으로 군부의 《권좌》에 앉아있은 사람이였다.

《5. 16군사정변》이후 남조선당국자의 극악한 파쑈적전횡과 더러운 장기집권야욕에 환멸을 느낀 그는 해외로 망명하여 퇴역장성들과 함께 《배달군인회》를 뭇고 《자유민주주의》의 회복을 요구하여나섰다.

이국땅에서의 쓰라린 망명생활과정에 그는 점차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놓고 깊이 생각하게 되였으며 국제태권도련맹을 조직하고 태권도를 수단으로 하여 민족통일에 이바지하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이러한 애족의 마음과 통일지향을 귀중히 여기시고 민족대단결의 숭고한 리념으로부터 출발하시여 그에게 조국방문의 넓은 길을 열어주시였던것이다.

주체68(1979)년 5월 12일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최홍희선생을 몸소 만나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멀리 해외에서 사회주의조국을 찾아온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며 열렬히 환영한다고 하시면서 그의 두손을 뜨겁게 잡아주시였다. 그러시고는 그를 다정히 옆에 끼시고 기념사진을 찍어주신 다음 건강은 어떤가, 조국에 있는 친척들은 다 만나보았는가고 따뜻이 물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최홍희선생과의 담화석상에서 나라의 통일문제와 관련하여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조국을 통일하는데서 중요한것은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3대원칙을 철저히 지키는것이라고 하시면서 조국통일3대원칙의 내용과 정당성, 7. 4북남공동성명을 발표하게 된 력사적경위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해주시였다.

계속하시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조선당국자들이 7. 4북남공동성명에서 합의한 조국통일3대원칙을 전부 뒤집어엎고 우리가 제기한 대화와 합작에 대하여 이핑게저핑게 대면서 질질 끌어오다가 갑자기 북으로부터의 《남침위협》이 있다는 허황한 구실을 내대고 《비상계엄령》을 공포한 배신적이며 매국적인 행위에 대하여 준렬히 규탄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그이께서는 민족대단결을 반대하는것은 소수의 매국노들뿐이고 절대다수의 인민들은 다 지지하기때문에 얼마든지 민족대단결을 이룩할수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시여 민족대단결문제는 우리가 혁명을 시작하던 초기부터 내놓은것이고 항일무장투쟁시기와 해방후에도 제기한것으로서 이 구호는 과거뿐아니라 지금도 필요하다고 하시면서 오늘 나라의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말씀을 멈추시고 최홍희선생을 바라보시다가 해외의 민주인사들이 조국통일3대원칙을 고수하기 위한 투쟁에서 지침으로 삼아야 할 문제들에 대하여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이께서는 미국사람들에게 우리 나라가 통일되여도 그 어떤 나라의 위성국으로 되지 않을것이며 영원히 엄정한 중립국가, 쁠럭불가담국가로 남아있을것이라는것 그리고 통일된 후 미국자본가들이 투자한 재산을 몰수하지 않을뿐아니라 미국사람들과 경제관계를 발전시키려 한다는것을 말해줌으로써 그들이 우리에 대한 옳은 인식을 가지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통일전선을 실현할데 대하여서도 가르치심을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모든 해외동포들은 물론이고 남조선에서 자본가요, 인테리요 하는 사람들도 지난날 무엇을 하였던지 그것을 문제로 삼지 말고 민족대단결의 구호를 들고 통일전선을 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온갖 초목을 한품에 안아 키워주는 대지와 같은 넓은 도량에 최홍희선생은 감개무량하여 그이를 한없이 우러러보았다.

그이께서는 최홍희선생을 바라보시며 어떻게 해서라도 민족대단결을 이룩하여 우리 나라가 《두개 조선》으로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애국적민주인사들이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사업을 더 잘하여 모든 해외동포들이 다같이 손잡고 나라의 통일을 앞당겨나가도록 해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통일문제와 관련하여나서는 중요한 문제들에 대하여 오랜 시간에 걸쳐 가르치심을 주시고나서 오찬까지 베풀어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최홍희선생에게 손수 음식도 권해주시고 따뜻한 말씀도 해주시였다.

육친의 정을 온몸에 느끼며 수저를 드는 최홍희선생은 행복에 취해있었다.

이날 무려 3시간 반동안이나 귀중한 시간을 내시여 최홍희선생을 만나주신 그이께서는 친히 문밖에까지 나오시여 그를 뜨겁게 배웅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민족애와 한없이 넓은 도량, 고매한 덕망에 깊이 감동된 최홍희선생은 자신은 오늘 참다운 애국의 넋을 받아안고 새롭게 태여났다고 하면서 격정어린 어조로 이렇게 말하였다.

김일성주석님은 정말 세상에서 제일 위대하신분이십니다. 불초소생은 오늘 그이의 위대한 품에서 참인간으로 이 세상에 두번다시 태여났습니다.

주석님을 뵈오러 갈 때 저는 옷은 비록 먼지 하나 묻지 않은 새옷을 입고갔지만 인생의 세파에 부대낀 어지러운 사상의 먼지는 털어버리지 못한채 갔었습니다.

그런데 주석님께서는 그 모든 사상정신적먼지를 주체의 맑은 물로 깨끗이 가셔주시였습니다.

오늘부터 저는 과거의 최홍희가 아니라 새로운 최홍희입니다.》

 

민족의 귀중한 재산, 재간둥이라고 하시며

 

주체76(1987)년 10월 5일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만수대예술극장에 나오시여 윤이상선생이 작곡한 새 교성곡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의 첫 공연을 친히 보아주시였다.

윤이상선생이 새로 창작한 교성곡을 조국에서 첫 공연을 하게 된데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주체73(1984)년 9월 11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윤이상선생을 접견하신 자리에서 그에게 지난날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최상의 애국이 조국의 광복을 위한 투쟁이였다면 오늘 우리 민족의 최상의 애국은 조국통일위업에 한몸바치는데 있다고 하시며 해외동포들도 자기가 처한 환경에 맞게 나라의 통일을 위해 특색있게 이바지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윤이상선생은 위대한 수령님의 이 말씀을 삶의 지침으로 받아안고 애국애족의 큰걸음을 내짚을 결심을 품고 60여일간의 고심어린 사색끝에 자신의 통일열망을 담은 새 교성곡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를 완성하였던것이다.

새 교성곡의 첫 공연을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진행하는 윤이상선생의 기쁨은 그 무엇에도 비길데 없었다.

공연이 끝나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제일먼저 박수를 쳐주시고 몸소 작곡가의 손을 높이 들어주시였으며 교성곡이 가사도 좋고 곡도 좋다고, 모든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러일으킬수 있는 아주 훌륭한 노래라고 평가해주시였다.

그러시고는 그를 접견하신 석상에서 작품을 오페라식으로 아주 잘 썼다고 거듭 치하해주시였다.

윤이상선생은 작곡가의 창작적의도와 작품의 특성을 그처럼 속속들이 헤아려보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예지에 감탄을 금할수 없었다.

사실 그가 이 작품을 창작하는 과정은 합창형식으로 된 교성곡이라는 그릇에 어떻게 하면 오페라식으로 심오하고 폭넓은 음악형상을 담겠는가를 깊이 탐구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자기의 소원이 성취되고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그처럼 높은 평가의 말씀까지 받게 된 윤이상선생은 70평생 처음으로 커다란 감격과 환희에 휩싸였다.

그날 저녁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내가 윤이상선생을 아껴야 한다고 하는것은 음악계에서 그런 재간있는 사람을 찾아보기 드물기때문이라고, 그는 우리 민족의 귀중한 재산이고 재간둥이라고 말씀하시였다.

통일열망을 안고 그가 창작한 자그마한 성과도 크게 보시고 높이 평가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에 접하자 윤이상선생은 뜨거운것을 삼켰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런 크나큰 믿음이 있어 윤이상선생은 조국통일을 위한 한길을 꿋꿋이 걸어왔으며 그길에서 인생의 참다운 삶을 빛내였다.

 

조선사람은 조선을 위한 애국을 하여야 한다고 하시며

 

주체81(1992)년 10월 27일, 조국산천에 단풍이 붉게 물든 마가을날이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국제고려인통일련합회 위원장사업을 하던 강일선생을 만나주시였다.

식민지망국민의 후손으로 원동에서 태여난 강일선생은 이전 쏘련시기에 우즈베끼스딴공화국 건설관리국 기사장, 쏘련내각직속 중앙아시아농업 및 처녀지개간성 제1부상으로 비교적 높은 관직에서 30여년 일해오다가 늦게나마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통일애국위업에 나선 해외교포였다.

세월의 온갖 고생이란 고생을 다 겪으시며 빼앗겼던 조국을 찾아주시고 주체사상의 기치밑에 자주, 자립, 자위의 강국으로 전변시켜주신 위대한 수령님.

일찌기 쓰딸린도 《동방의 영웅 김일성장군》이라고 존경을 표시하였고 세계가 《세계정치의 대원로》로 칭송하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전 쏘련과 동유럽사회주의나라들을 방문하시던 력사적인 나날에 만민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으시는 광경을 TV화면으로 보면서 자기도 주석님을 한번 만나뵈왔으면 하는 소망을 품고있던 그였다.

그의 가슴속에 간직된 절절한 그 소원을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헤아리시여 접견의 영광을 마련해주신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구면친지를 맞이하듯 강일선생을 반겨맞아주시였다. 그이의 환한 영상과 따뜻한 미소, 너그러운 인품, 구수하게 하시는 말씀은 얼음장을 녹이는 봄빛과도 같이 따사로왔다.

그이께서는 그날 그에게 이역땅에서 살고있는 동포들을 묶어세워 조국통일운동을 벌려나가는것은 좋은 일이라고, 조선사람은 조선을 위한 애국을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조선사람은 조선을 위한 애국을 하여야 한다!

그이의 말씀에 접하는 순간 오래동안 민족과 동떨어져 생활해오던 자기를 늦게나마 민족의 구성원임을 잊지 말고 통일애국의 한길에 내세워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에 그는 통일성업에 모든것을 다하리라 굳게 결의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