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김일성주석 통일일화』 중에서

 

4. 통일애국의 한길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라가 분렬된 첫날부터 조국통일의 기치밑에 민족의 대단결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령도하시여 조국통일운동을 전민족적인 운동으로 확대발전시켜나가시였습니다.》

김 정 일

 

 

 

민족재생의 유일한 길

 

온 민족의 커다란 관심속에 진행되던 남북련석회의가 성과적으로 끝나고 남조선에서 온 일부 인사들이 평양을 떠나기 시작하던 주체37(1948)년 5월 6일이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몸소 홍명희선생의 숙소를 찾으시고 그에게 조국통일의 밝은 전도에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이께서는 며칠전부터 선생을 한번 찾아보자고 하였는데 오늘에야 겨우 기회를 얻었다고 하시면서 그의 건강과 그동안 북조선의 여러곳을 돌아본 인상에 대해 물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선생이 북조선은 흥왕하는 집같고 남조선은 망하는 집같다고 하였는데 아주 적절한 표현으로 남북조선의 판이한 현실을 대비하였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지금 남조선에서는 백주에 테로와 학살이 횡행하고 악행이 자행되며 인민들은 해방된 민족으로서의 권리를 박탈당하고 기아와 빈궁속에서 허덕이고있습니다. … 참으로 원통한 일입니다. 남조선인민들의 불행한 운명에 대하여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미제가 조선인민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엔림시조선위원단》의 감시하에 남조선에서 《단선》을 기어이 조작하려 하므로 우리 민족은 분렬될 위험에 처하여있다고 하시면서 《우리는 절대로 이것을 수수방관할수 없습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한강토우에서 살아온 단일민족입니다. 유구한 세월 단일민족으로서의 순결성을 지켜온 우리 민족이 어찌 오늘에 와서 분렬될수 있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민족분렬의 엄혹한 형세를 관망만 하고 바로잡지 않는다면 후대들에게 엄중한 죄를 짓는것으로 될것입니다.》라고 근엄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 마디마디에는 한지맥, 한피줄을 이은 나라와 민족의 절반이 외세에 짓밟히우는 참상을 가셔내시려는 뜨거운 애국심이 넘쳐흐르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시여 조국에 조성된 긴박한 정세하에서 우리는 《단선단정》조작책동을 저지파탄시키기 위한 대책을 토의하기 위하여 남북련석회의를 개최할것을 제의하였으며 이 제의에 대하여 애국적민주인사들은 물론 얼마전만 하여도 미국에 환상을 가지고있던 일부 사람들까지도 열렬히 지지하였고 선생을 비롯한 수많은 대표들이 우리의 제의에 호응하여 사선을 넘어 평양으로 달려와 력사적인 남북련석회의가 진행되였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북련석회의는 우리 인민의 투쟁에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회의였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리 민족의 력사에서 정견이 서로 다른 수많은 정당, 사회단체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 조국과 민족의 운명에 대하여 론의하고 견해의 일치를 본 일은 일찌기 없었습니다. 남북련석회의는 우리 민족의 력사에 국토완정과 민족통일의 기치하에 각계각층의 애국적인사들을 묶어세운 위대한 회합으로 영원히 기록될것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북조선의 정당, 사회단체들은 사상과 정견에서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련석회의정신과 민족통일의 리념에 기초하여 더욱 굳게 단결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단결만이 민족재생의 유일한 길입니다. 남북조선의 애국적인 정당, 사회단체들과 전체 인민들이 굳게 단결하여 투쟁한다면 능히 미제의 반동적인 <단선단정>조작책동을 분쇄하고 민주주의원칙에서 통일정부를 수립할수 있습니다.》라고 힘있게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들으며 단결, 단결만이 민족재생의 길이고 민족통일을 안아오는 길이라는 신념이 홍명희선생의 가슴속에 더욱 깊이 자리잡게 되였다.

하기에 그후 그는 북반부에 남아 위대한 수령님의 높으신 뜻을 받들고 북남조선의 각계각층 인민들을 조국통일의 기치밑에 묶어세워 나라의 통일위업을 앞당기기 위한 투쟁에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쳤던것이다.

 

《손잡고 일해봅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을 만나뵈올 날을 안타깝게 기다리던 장권선생은 그이께서 보내주신 남북련석회의초대장을 받고 몇달째 앓고있는 몸이지만 서울을 떠나 평양으로 달려왔다.

그가 벅찬 환희와 감격을 안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방에 들어섰을 때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환한 웃음을 지으시고 마주 걸어나오시며 《장권선생이지요. 반갑습니다. 선생이 편치않으신 몸에 먼길을 오시느라고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라고 하시면서 그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하해같은 사랑에 장권선생은 《장군님!…》 하고는 목이 꽉 메여 뒤말을 잇지 못하였다.

장권선생은 한참만에야 비로소 인사의 말씀을 올렸다.

《장군님!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건져주시기 위해 기나긴 나날 무장항일전을 령도하시기에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그러자 그이께서는 고생이야 선생과 같은이들이 더 많았다고, 나는 장권선생이 해방전에 일제의 탄압과 박해속에서도 민족적량심과 지조를 지켜온데 대하여 이미 들은바 있다고, 해방직후에도 선생은 남조선의 어려운 정세속에서도 미제국주의자들과 리승만도배들의 매국배족적인 책동을 반대하여 잘 싸웠다고, 건강도 좋지 못한데 선생이 정말 고생이 많았겠다고 뜨거운 정을 담아 말씀하시였다.

장권선생은 해방전에 반일운동에도 참가하고 상해와 만주 등 해외로 다니면서 독립의 길을 찾아 헤매기도 하였다. 이러한 그는 그후 한때 서울의 어느 한 청년회관에서 체육간사로 있으면서 거기에 반일감정이 높은 수백명의 청년들을 받아들여 그들로 반일청년단체도 조직하고 유술, 권투선수단도 무었으며 그들을 이끌고 현해탄을 건너가 일본선수단을 타승하는것으로써 민족적자부심과 반일애국사상을 길러주기도 하였다. 이런 일로 하여 그는 일제경찰에 붙잡혀 모진 고문을 받기도 하였다.

장권선생은 8. 15조국해방의 날을 남다른 환희와 감격속에 맞이하였다.

해방직후 서울에는 절세의 애국자이신 김일성장군님께서 그곳으로 개선하신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다. 8월 16일 위대한 수령님께서 서울에 개선하신다는 소문을 듣게 된 서울시민들은 거리를 꽉 메우며 서울역으로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바로 이날 선생은 중병으로 쇠약해진 몸이였으나 수백명의 제자들을 이끌고 서울역으로 달려나갔다. 그는 서울에 오실 위대한 수령님의 신변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질서유지사업에 자진해 나서서 날이 저물도록 활약하였으며 《김일성장군환영준비위원회》의 위원으로 치안유지사업에 분투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자기의 자그마한 애국적소행을 크게 보시고 평가해주시자 그는 조국과 민족앞에 그렇게도 큰 공적을 쌓으시고도 자신을 낮추시며 도리여 자기와 같은 사람을 내세워주시는 그이의 겸허하신 인품에 절로 머리가 숙어졌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너무도 과분한 말씀에 《장군님, 저는 정말 한 일이 없습니다. 다만 민족적량심을 저버릴수 없어 한때 독립의 길을 찾아헤맸을뿐입니다.》라고 대답을 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왜 한 일이 없겠습니까. 장권선생의 그 애국적량심이 귀중합니다. 자기 나라와 자기 민족을 위하여 애국적인 지조와 민족적량심을 지켜왔는데 그것이 얼마나 장한 일입니까.》라고 말씀하시였다.

이윽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장권선생이 38°선을 넘어온 경로와 서울에 두고온 가족들의 형편에 대하여 물으신 다음 미제와 리승만일당의 음흉한 《단선》, 《단정》음모책동으로 하여 우리 민족앞에는 영구분렬의 엄중한 위기가 닥쳐왔다고 하시면서 그 위기를 막기 위한 방도에 대하여 말씀도 하여주시였다.

그이께서는 미제의 분렬책동을 막는 길은 전민족이 단합하여 나라를 통일하는데 있다고 하시면서 이를 위하여서는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당파와 소속, 정견과 신앙의 차이를 가리지 말고 모두가 단결하여 전민족적인 통일전선을 형성해야 한다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아안게 된 선생은 어둡던 눈앞이 환해지고 조선의 앞날이 활짝 열려지는것 같았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장권선생의 나이를 물으시고 쉰한살이라는 그의 대답을 들으시고는 《선생의 년세가 이제 쉰한살이면 지금 한창 일을 하셔야 할 때입니다. 빨리 건강을 회복하고 나라의 자주적인 통일독립과 부강발전을 위하여 우리와 함께 손잡고 일해봅시다.》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베풀어주시는 그 사랑과 믿음을 깊이 간직한 장권선생은 그후 조국통일위업실현에 헌신분투하였다.

 

조선사람의 재산이라고 하시며

 

주체53(1964)년 가을 어느날 한 재일동포상공인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의 접견을 받게 되였다.

꿈같은 영광의 자리에 서고보니 조국을 위해 이렇다하게 해놓은 일이 없는 자신이 민망스러웠고 더우기 위대한 수령님께 꼭 사죄하지 않으면 안될 일도 떠올랐다.

상공인은 그이께 자기가 지난날 정치적으로 암둔하여 남조선으로 드나들면서 거기에 공장을 하나 지어주기로 약속했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잘못이였다고 얼굴을 붉히며 말씀드렸다. 그러면서 조국의 부강발전에 기여하려는 자기의 소망에 어긋나기때문에 남조선에 지으려던 공장을 북반부에 지을 생각이라고 하였다.

그의 말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가볍게 웃으시며 머리를 저으시였다.

그러시고는 인정넘치는 음성으로 남조선도 조선사람의 남조선이니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남조선에 공장이 하나라도 더 서면 조선사람에게 좋으면 좋았지 나쁠것이 없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동포상공인을 자애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시며 앞으로 통일되면 남조선에 세운 공장도 조선사람의 재산일것이고 나라의 장래발전을 위해 유익할것이라고, 그러니 남조선에 공장을 세워주는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숭고한 동포애와 넓으신 도량앞에 상공인은 진정 탄복을 금할수 없었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 큰절을 올리며 자신의 진정을 토로하였다.

《위대하신 수령님, 수령님은 참으로 이 나라 만백성을 굽어살피시는 조선의 하느님이십니다!》

 

지방에서 보내신 편지

 

주체66(1977)년 5월 어느날이였다.

머나먼 현지지도의 길에 계시던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한 일군을 부르시였다.

자정이 지난 깊은 밤 그 일군을 만나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총련편지전달계주단성원들이 언제 떠나는가고 물으시였다.

당시 평양에는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 65돐에 즈음하여 그이께 드리는 편지를 안고 달려온 재일조선청년대표단성원들이 머무르고있었던것이다.

그 일군으로부터 재일조선청년대표단성원들이 래일 일본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보고를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내가 이번에 그 동무들을 꼭 만나주겠다고 하였는데 시간을 낼수 없어 편지를 썼다고, 래일 편지를 가지고가서 그 동무들에게 전달해주라고 이르시였다.

일군은 다음날 아침 총련편지전달계주단성원들에게 위대한 수령님의 편지를 정중히 전달하였다.

《사랑하는 조청원동무들!

나는 동무들이 오래지 않아 조국을 떠나 일본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소식을 듣고 동무들과 한번 꼭 만나려고 하였으나 현지지도사업으로 좀처럼 시간을 낼수 없어 지방에서 글을 써보냅니다.》

일군이 이렇게 위대한 수령님의 편지를 읽어내려가자 여기저기서 애써 울음을 삼키는 조청원들의 흐느낌소리가 들려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편지에서 그들이 사회주의건설에 크게 이바지할 훌륭한 일을 한데 대하여 치하하시면서 조국애를 가지고 사회주의조국을 견결히 옹호할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일군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보내주신 편지의 마감부분을 힘주어 전달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쓰시였다.

《우리 민족은 아직도 둘로 갈라진채 통일되지 못하고있습니다.

조국통일은 우리 민족의 최대의 념원이며 한시도 미룰수 없는 가장 절박한 과업입니다.

동무들은 … 나라의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우리 인민의 력사적위업에 크게 이바지하여야 하겠습니다.》

민족의 분렬을 두고 그토록 마음쓰시며 조국통일은 민족최대의 념원이고 한시도 미룰수 없는 가장 절박한 과업이라고, 재일조선청년들이 나라의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력사적위업에 크게 이바지하여야 한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절절한 당부는 구절구절 대표단성원모두의 심장속에 깊이 새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