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김일성주석 통일일화』 중에서

 

3. 통일의 앞길을 밝혀주시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놓으시고 변함없이 견지하신 조국통일로선은 나라와 민족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실현하기 위한 철저한 민족자주의 로선이며 통일조국의 부강발전과 전민족의 륭성번영을 위한 참다운 애국애족의 로선이다.》

김 정 일

 

  경쟁이 아니라 합작을

 

력사적인 7. 4북남공동성명이 발표된 후인 주체61(1972)년 11월초 남조선대표들은 제2차 공동위원장회의에 참가하기 위하여 또다시 평양으로 왔다.

그때 회담에서 중요하게 토의해야 할 안건은 북과 남사이의 합작을 실현할데 대한 문제였다.

그러나 남조선대표들이 합작을 위한 회담의 진전을 로골적으로 방해해나선것으로 하여 회담을 계속하느냐, 아니면 중도에서 그만두느냐 하는 난관이 조성되였다.

그러던 때인 주체61(1972)년 11월 3일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회담앞에 가로놓인 난관을 타개하시기 위하여 남조선대표들을 친히 만나주시였다.

남조선대표들의 인사를 일일이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조선대표들을 다시 만나게 된데 대하여 기쁘게 생각한다고 하시면서 북과 남사이에 이와 같은 접촉이 잦게 되면 조국의 통일문제를 해결하는데서 커다란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북과 남의 대표들을 둘러보시며 지난날에는 우리 민족이 남북으로 갈라져서 서로 만나지조차 못하던것이 오늘은 대표들이 오고가며 만나고있으니 이자체가 벌써 하나의 전진인것이라고, 북과 남의 대표들이 서로 오고가며 자주 만나 면목도 익히고 의견도 나누면 조국통일을 위하여 나서는 문제들을 많이 풀수 있을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에 남조선대표들은 모두가 긍정적인 태도를 표명하였다.

그이께서는 화제를 본론에로 이끌어가시면서 우리는 절대로 민족의 분렬을 허용하여서는 안되며 반드시 조국을 통일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계속하시여 그이께서는 조국통일에 대한 념원은 북반부동포들이나 남반부동포들이나 다 같은것이라고 하시면서 당신들도 조국통일을 념원하기때문에 이렇게 우리를 찾아왔다고 본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을 둘러보시며 남조선언론계에서는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다음에도 《대화있는 대결》이요, 《대화있는 경쟁》이요 하는 말들이 나오고있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다른 나라나 다른 민족과 경쟁을 한다면 몰라도 같은 민족끼리 대결하고 경쟁하여서는 안됩니다. 같은 민족끼리 대결하고 경쟁하면 민족의 단합을 이룩할수 없으며 조국의 통일을 실현할수 없습니다.

북과 남은 대결하고 경쟁할것이 아니라 합작하여야 합니다. 합작이란 힘을 합쳐 공동으로 일한다는것을 의미합니다. 북과 남사이의 대화는 이미 시작되였으므로 이제는 합작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봅니다. 북과 남은 대화를 하는데 머무를것이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서 합작을 실현하여야 합니다.》

그러시면서 북과 남이 합작하면 그 과정에 민족의 힘이 더욱 커지고 조국통일의 기초가 튼튼히 닦아질것이라고, 민족최대의 숙원인 조국통일위업을 앞당길수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북과 남사이에 정치, 경제,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의 합작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 남조선대표들은 약간 의아해하는 기색이였다. 북과 남에 서로 다른 제도가 존재하는데 정치분야에서의 합작이 가능하겠는가 하는 표정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의 심정을 꿰뚫어보시고 정치분야에서 합작의 중요성과 그 합작이 가능하다는데 대하여 차근차근 일깨워주시면서 경제합작과 문화적합작은 마땅히 정치적합작으로 발전하여야 한다고, 정치적으로 합작하여야 경제분야에서의 합작도 할수 있고 문화분야에서의 합작도 잘할수 있다고, 북과 남사이의 정치적합작을 실현하는데서 남북련방제를 실시하는것이 합리적이라고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잠시 말씀을 멈추시고 남조선대표들을 둘러보시였다.

이때 남조선대표 한사람이 일어나 정중한 자세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합작방침에 대하여 다른 의견이 없다고 말씀올렸다.

그의 대답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렇다면 그것을 빨리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북과 남사이의 합작을 실현하는데서 나서는 중요한 문제들도 하나하나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가 북과 남사이의 문을 열고 일단 일을 시작한바에는 솜씨를 보여 조선민족의 영예를 온 세계에 떨쳐야 한다고, 우리모두가 공동으로 노력하여 조국통일을 하루빨리 실현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한 녀류작가의 탄복

 

주체69(1980)년 4월 28일 도이췰란드의 저명한 녀류작가 루이저 린저가 조선에 첫발을 디디였다.

서방세계에서 《등에》와 같은 존재로 불리우고있는 그는 제2차 세계대전시기 반파쑈운동을 하다가 나치스들에게 체포되여 감옥생활을 하면서 《옥중에서의 수기》를 집필하였고 감옥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제2차 세계대전이후 파쑈를 반대하는 비수같은 글들을 수많이 써냈다.

루이저 린저는 평화를 유린하고 약소민족을 짓밟으며 침략과 파쑈를 일삼는자들에게는 비수와 같이 타협과 두려움을 몰랐으며 제눈으로 모든것을 확인하고 제몸으로 모든것을 느끼기 전에는 절대로 붓을 들지 않는다는 문필가였다. 때문에 사람들은 그의 필봉을 두고 《왕벌의 독침》, 《암사자의 송곳이》와 같다고 평하기도 하였다. 그의 필봉이 얼마나 예리했으면 1976년에 이름있는 한 대학교수의 초청으로 남조선을 방문하고 돌아가 미제의 《두개 조선》조작책동을 폭로한 루이저 린저의 글을 남조선당국자가 읽다가 신경발작을 일으켜 《청와대》에서 큰 소동이 일어났다고까지 했겠는가.

서방에서 문필가로 이름떨치던 그가 자본주의사회와 판이하게 다른 사회주의조선을 찾아온것이였다.

평양방문의 나날을 보내고있던 5월 어느날 루이저 린저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의 접견을 받는 크나큰 영광을 지니게 되였다.

루이저 린저가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곳에 도착하니 그이께서는 몸소 현관까지 나오시여 그를 기다리고계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루이저 린저가 올리는 축원의 인사를 받으시고나서 그의 두손을 뜨겁게 잡아주시며 몸은 건강한가, 가족들은 다 잘 있는가, 생활에서 불편한 점은 없는가, 아직까지 이곳 기후에 적응되지 않았겠는데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친어버이정이 어린 따뜻한 말씀을 하시였다.

그를 따뜻하게 맞아주시고 영광의 기념사진까지 찍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랜 시간에 걸쳐 그와 담화를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우리 나라도 귀국과 같이 분렬되여있다고 하시면서 심중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민족의 분렬은 그 나라 인민에게 있어서 최대의 민족적비극입니다.》

그러시면서 선생이 우리 나라의 통일문제를 해결하는데 깊은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인 지지성원을 주고있는데 대하여서와 애국적민주인사들의 활동에 많은 도움을 주고있는데 대하여 충심으로 감사를 드린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감사와 과분한 평가를 받은 루이저 린저는 송구스러움을 금치 못해하였다.

그이께서는 현 국제정세에 대해서와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를 건설한 경험에 대하여 이야기하시고나서 남조선청년학생들의 애국투쟁과 조국통일문제에로 화제를 돌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모든 물체는 내리누르면 그만큼 반항력이 더 커지는것이 하나의 법칙이며 이것은 물리학이 증명하는 과학적진리라고 말씀하시였다.

사리정연한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에 심취된 루이저 린저는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온 심혼을 모으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시여 조선로동당과 공화국정부의 조국통일방안에 대하여 천명하시면서 말씀을 이으시였다.

《우리는 남북련방제를 실시하여도 북과 남의 두 제도를 그대로 두고 통일정부를 수립하려고 합니다.》

그이의 말씀을 받아안으며 그는 남북련방제만이 조선을 통일할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것을 인식하게 되였다.

하기에 평양방문을 마치고 돌아간 루이저 린저는 자기의 글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 내놓으신 남북련방제는 이 세상 그 누구도, 그 어떤 천재나 위인도 발기할수 없는, 오로지 위대한 인간만이, 열렬한 애국자만이, 민족의 어버이만이, 정치의 영걸만이, 우리 녀성들의 독실한 옹호자만이, 평화의 천사만이 내놓을수 있는 가장 공명정대하고 합리적이고 평화애호적이고 애국애족적인 방안이라고 썼다.

 

크라이스키의 감동

 

주체75(1986)년 9월 어느날 이전 오스트리아수상이였던 크라이스키가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을 만나뵙기 위하여 평양을 방문하였다.

그가 평양에 온것은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그는 그전에 걷지 못하는 병에 걸렸었다. 그리하여 미국, 영국, 프랑스를 비롯한 한다하는 여러 나라 의사들을 초청하여 여러해동안 치료를 받았으나 별로 효과를 보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는 평양의 고려의사들을 초청하였다. 오스트리아주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대사를 통하여 그가 조선의 고려의사들을 초청한다는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유능한 고려의사들을 보내주시였다. 그리하여 고려의사들이 오스트리아에 가서 그의 병을 치료하여주었는데 완전히 회복되여 걸을수 있게 되였다. 조선의사들의 치료를 받고 병을 고친 크라이스키는 이 신세를 어떻게 갚았으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늘 말하군 하였다.

그러다가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 감사의 인사라도 드려야 하겠다고 하면서 수령님을 찾아오게 되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의사들의 치료로 완쾌된 그를 반갑게 맞아주시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담화를 하시였다.

크라이스키는 세계의 많은 나라 의사들이 자기를 치료해주었지만 큰 도움을 받지 못하였다고, 그러나 조선의사들은 자기에게 커다란 도움을 주고있다고 하면서 위대한 수령님께 다함없는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또 드리였다.

그와 국제문제를 비롯한 여러가지 문제들을 이야기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에게 앞으로 조선이 통일되면 중립국가로 되여야 한다는데 대하여 말씀하시자 크라이스키는 그에 대하여 전적으로 찬성하였다. 그는 자기 나라를 중립국가로 만들던 때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중립국가로 만든다는것이 헐치 않다고, 유연한 정책을 쓸줄 아는 사람이 미국대통령으로 당선되면 정세가 좀 달라질수도 있을것이라고 하였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당신네 나라가 중립국으로 된것은 아주 잘한 일이다, 큰 나라들사이에 끼여있는 나라는 중립정책을 쓰는것이 제일 좋다, 앞으로 미국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관계없이 우리는 자체의 힘으로 조국을 통일하고 중립국가를 만들 작정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조국통일을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 조선민족자체의 힘으로 해결하며 통일된 국가는 어떤 국가가 되여야 하는가에 대하여 누구나 알기 쉽게 이야기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에 크라이스키는 감동을 금치 못하였다.

 

사라진 고민거리

 

주체78(1989)년 3월말 남조선의 민주인사 문익환목사가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옵기 위해 유원호, 정경모 등과 함께 평양에 왔을 때의 일이다.

문익환목사로 말한다면 그는 오래전부터 남조선사회의 민주화와 나라의 평화통일을 위해 헌신해온 저명한 민주인사이며 진보적민주단체들의 통일전선체인 《전국민족민주운동련합》(《전민련》) 고문으로 된 재야정치계의 원로였다.

통일운동을 주도해오는 과정에 문익환목사는 《민족통일이란 정부당국의 점유물이 될수 없으며 통일의 주체는 민중이기때문에 이들의 자주적인 참여속에서 통일방안이 모색되여야 한다.》는 《민중통일론》을 주장하면서 재야, 각계각층의 통일론의를 받아들여 나름대로의 통일방식을 모색하여왔다.

그러던중 그는 주체78(1989)년 1월 1일 북과 남의 지도급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여앉아 합리적인 통일방안을 모색할데 대한 제안을 담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의 신년사를 받아안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신년사에서 우리는 남조선의 지도급인사들이 건설적인 통일방안을 가지고 평양을 방문한다면 그들을 환영할것이며 그들이 내놓는 어떠한 제안에 대해서도 함께 허심탄회하게 협의할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문익환목사는 1982년에 이미 남조선정치인대표의 한사람으로 자신도 찍혀있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100인정치인련합회의 소집제안을 전달받은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또다시 위대한 수령님께서 통일방안에 대하여 허심탄회하게 협의하자고 하시며 문익환목사를 비롯한 지도급인사들의 이름을 찍어가며 초청해주시는것이였다.

오래전부터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올 간절한 념원을 품고있던 그는 마침내 통일문제에 관한 수령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싶어 남조선당국의 파쑈폭거를 박차고 단연코 북을 방문할 결심을 굳혔다.

그래서 그후 2월 4일 문익환목사는 백기완선생과 함께 공동기자회견을 가지고 북의 협상안에 지지를 표명한 후 3월말에 드디여 평양길에 오르면서 자기는 38°선을 베고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평양에 가겠다고 한 백범 김구의 그 심정으로 떠난다고 소리높이 말하였다.

3월 27일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문익환목사의 평양방문을 몹시 반가와하시면서 그를 접견해주시였다.

문익환목사는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게 된 커다란 행운에 감격하여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였다.

80고령을 내다보는 위대한 수령님이시지만 환하신 모습과 활달하신 걸음걸이, 우아하고 건장하신 풍채와 젊은이들처럼 우렁우렁하신 음성은 신비의 힘을 가지고 문목사의 온넋을 사로잡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문익환목사에게 조국통일은 어디까지나 민족자체의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온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통일위업을 실현해야 한다고 절절하게 말씀하시였다.

문익환목사는 위대한 수령님이시야말로 조국통일의 가장 옳바른 앞길을 밝혀줄수 있는 민족의 구세주라고 마음속으로 되뇌이면서 《주석님! 조국을 통일하자면 온 민족이 단결하여야 하겠는데 자본가들은 어떻게 하려고 합니까?》라는 물음을 드리였다.

그에게 있어서 이것은 오래동안 해답을 찾을수 없는 골치거리였다. 북의 정권은 로동자, 농민의 정권이라 지주, 자본가들과는 불상용적일것이다, 그러니 남조선의 그 많은 중산층들, 자본가들을 어떻게 대해줄것인가, 이런 생각에 갈피를 잡을수 없었던 그였다.

문익환목사는 오래동안 고심참담한 사람에게서만이 찾아볼수 있는 진지하고 심중한 태도로 그이의 말씀을 기다리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환하신 미소로 미국사람이나 일본사람 같은 외세를 등에 업고 그들을 위하여 복무하는 매판자본가는 반대하여야 하지만 민족적량심을 가지고 민족을 위하여 복무하려 하는 민족자본가는 다 포섭하여야 한다고 명백히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명쾌한 대답을 듣고난 문목사는 흥분에 넘쳐 자기의 심정을 이렇게 토로하였다.

《주석님! 그렇게만 하면 민족의 대단결은 문제없습니다. 민족의 단결이 곧 조국통일의 힘입니다.

그러니 벌써 조국통일은 이루어진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사실 나는 자본가들을 어떻게 하겠는가 하는 문제때문에 주석님을 찾아왔는데 민족자본가들과도 단결할수 있다고 하시니 문제가 다 해결되였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온갖 시름을 덜어버린 사람처럼 고요한 평온이 깃들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끝모르는 기쁨에 겨워 조용히 웃고있는 문목사의 눈빛에서 통일을 위해 바쳐진 그의 고민이 얼마나 깊고 큰것인가를 헤아리시였다.

문목사는 웃음을 거두며 얼굴에 근엄한 표정을 짓고 이렇게 말을 이었다.

《주석님께서 내놓으신 조국통일방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투쟁이 명확한 방안을 가지게 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서울에 돌아가서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을 힘차게 벌려나갈것을 굳게 결심하였다.

 

계산할수 없는 원리

 

주체82(1993)년 3월 11일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평양을 방문한 재미교포들을 친히 만나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 오늘 미국에서 온 선생들과 이렇게 만나게 된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재미교포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에 나라의 정세가 매우 긴장함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자기들을 만나주신데 대하여 대단히 감사하다고 하면서 송구스러움을 금치 못하였다.

그때로 말하면 북과 남이 《북남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협력, 교류에 관한 합의서》와 《조선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합의하여 발표하였으나 미제와 남조선당국자들은 20여만명의 대병력과 현대적인 살인장비들을 동원하여 공화국을 반대하는 모험적인 《팀 스피리트 93》합동군사연습을 벌리고있던 때였다.

이러한 정세속에서도 자기들을 위하여 시간을 내시여 만나주시는 위대한 수령님께 그들은 감사의 말씀을 올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재미교포들의 감사의 인사에 조국통일을 위하여 투쟁하는 선생들을 만나주는것은 응당한 일이라고 하시면서 그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조국통일문제에 대하여 담화를 나누시였다.

그이께서는 오늘 우리 인민앞에 나서고있는 가장 중대한 과업은 민족의 분렬을 끝장내고 조국을 통일하는것이라고 하시면서 조국을 통일하여야 우리 민족은 분렬로 인한 재난과 고통에서 벗어나 통일된 강토에서 행복하게 살수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계속하시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조국을 통일하기 위하여서는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여야 한다고,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여 조국을 통일하는것이 자신의 희망이라고, 민족의 대단결을 실현하기 위하여서는 북과 남, 해외의 모든 동포들이 사상과 제도, 신앙의 차이를 초월하여 조국통일의 기치아래 하나로 굳게 뭉쳐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북과 남, 해외의 모든 동포들이 사상과 제도, 신앙의 차이를 초월하여 민족공동의 리익을 귀중히 여기고 조국통일위업에 모든것을 복종시킨다면 민족의 대단결은 능히 실현할수 있다고 하시면서 뜻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크기가 서로 다른 다섯손가락을 하나로 합치면 주먹이 되듯이 정견과 신앙이 다른 사람들도 하나로 굳게 뭉치면 큰 힘을 발휘할수 있습니다.》

하나에다 하나를 합하면 둘이 된다는것은 누구나 아는 수학적리치이다. 그렇지만 하나에다 열, 백, 천을 합치면 더 큰 하나가 되여 큰 힘을 발휘하게 된다는것은 일반 수학적리치로는 계산할수 없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바로 이 정치원리를 다섯손가락에 비유하여 해학적으로 표현하신것이 바로 민족대단결사상인것이다.

그렇기때문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런 위대한 민족대단합의 사상으로 사상과 정견, 신앙이 다르다고 하여도 통일을 위한 애국의 마음만 가지면 그가 누구든 지난날의 과오를 불문에 붙이고 조국통일의 길에 내세워주시는것이다.

어버이수령님의 접견을 받고서 재미교포들은 그이의 위대한 민족대단결사상에 감동을 금치 못하며 조국통일실현을 위한 투쟁에 자기들도 적극 합류하리라 굳게 마음다지였다.

 

통일의 유일한 출로

 

주체82(1993)년 4월 10일 미국 윌리암 캐리대학 고려연구소 소장인 한 재미교포가 평양을 방문하였다.

그의 갑작스런 평양방문에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바로 한달전 미국땅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9기 제5차회의소집에 관한 공보를 들은 그는 회의소식을 초조히 기다렸다.

그때로 말하면 미국의 《핵》사찰요구에 대응하여 온 나라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하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명령이 하달되고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 탈퇴한다는 공화국정부성명이 발표된 후였다.

이제 공화국은 이 회의를 통해 더 강경한 대응책을 제시할것이다, 이것은 그의 생각이자 세계의 예측이기도 하였다. 외국의 한 통신도 《북조선의 련속적인 타격에 만신창이 된 미국과 불순세력들은 북조선의 최고인민회의소식을 벼락이 칠 때의 개구리처럼 두눈만 굴리며 공포속에 기다린다.》고 평하였다.

그런데 그때로부터 얼마후 발표된 회의소식은 그의 예상, 세계의 예측을 완전히 뒤집어놓았다.

회의에서는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이 제시되였던것이다.

세계가 《깨여져나가던 지구를 맞붙여놓은것과 같은 사변》이라고 한 이 경이적인 소식에 접한 그는 경탄과 격정을 누를길 없어 위대한 수령님을 뵈옵고저 평양에 온것이였다.

소망대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의 접견을 받은 그는 그이께서 발표하신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이 아주 훌륭한 조국통일대강이라고 하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통일련방국가의 대통령이 되셔야 한다고 자기 소견을 말씀올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크게 웃으시며 자신께서는 련방국가 대통령이 될것을 희망하지는 않지만 하루빨리 조국이 통일되기를 바란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현 단계에서 조국통일을 위한 유일한 출로는 전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는것입니다. 조국을 통일하자면 북과 남, 해외에 있는 전체 조선민족이 대단결을 이룩하는것밖에 다른 출로는 없습니다. 전민족이 단결하면 조국을 통일하는데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성과적으로 해결해나갈수 있습니다.》

그러신 다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번에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을 발표하게 된 취지와 항일무장투쟁시기 발표하신 조국광복회10대강령과의 호상관계로부터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의 기본사상과 구체적인 조항별 내용, 그 인식에서 나서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말씀하시였다.

오랜 시간 그이의 가르치심을 받아안으면서 재미교포의 머리속에는 조국광복회10대강령의 발표, 해방후 4월남북련석회의소집, 7. 4북남공동성명의 발표,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의 제시,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의 발표로 이어지는 어버이수령님의 민족대단결사상의 위대한 업적이 하나의 맥락을 이루며 정리되여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민족이 있고서야 계급도 있고 계급의 리익보다 민족공동의 요구와 리익이 더 중요하다는 민족우위, 민족중시사상에 기초하시여 사상과 리념, 제도와 신앙의 차이를 초월하여 온 민족이 단합할데 대한 사상을 밝히시고 그것을 일관하게 구현해오시였으며 마침내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의 발표로써 주체적인 민족단합사상을 최상의 경지에서 정립하신것이였다.

재미교포는 미국으로 돌아간 후 자신의 격동된 심정을 담아 이렇게 격찬하였다.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은 김일성주석께서 조국통일을 위하여 바쳐오신 끝없는 로고와 사색과 탐구에 의하여 마련된 민족단합의 위대한 강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