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 (3권)중에서

 

 제13장 선군혁명위업의 계승완성을 위하여

 2. 선군조선의 신념과 의지 과시

미제의 핵소동을 초강경으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선군으로 다져진 나라의 방위력에 의거하여 공화국을 압살하려는 미국과 그 추종세력의 광란적인 핵소동을 짓부시고 사회주의조국을 굳건히 수호하기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이끄시였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제는 여러 나라들에서 사회주의가 좌절된것을 기화로 사회주의의 보루인 공화국을 기어이 고립압살하며 남조선에 저들의 핵무기와 침략군대를 그대로 둘 구실을 만들어내기 위해 핵소동을 일으켰다. 조선반도의 핵문제는 사실상 미제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의 산물로서 미국이 남조선에 핵무기를 끌어들임으로써 발생한 문제였다. 미제는 정전후 남조선에 대한 핵무기배비를 정책화하고 1958년부터 1990년초까지 무려 1 720여개나 되는 각종 전술핵무기를 남조선에 끌어들였다. 그리하여 남조선에 배비된 핵무기는 1990년에 나토지역의 4배, 그 폭발력에서 일본의 히로시마에 투하된 핵폭탄의 1 000배이상에 달하였으며 남조선은 100㎢당 1개이상의 핵무기가 전개된 세계 제1위의 핵기지로 전변되였다.

공화국정부는 남조선에서 미국의 핵무기를 철수시키며 조선에 대한 미국의 핵위협을 제거하고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할 목적으로부터 주체74(1985)년 12월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 가입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핵위협이 계속되는 조건에서 조약가입후 1년 6개월내에 국제원자력기구와 체결하게 되여있는 핵담보협정에 서명할수 없었다.

그후 공화국정부의 적극적인 투쟁에 의하여 남조선당국의 《핵무기부재선언》이 발표되고 이어 미국이 핵무기로 공화국을 위협하지 않으며 《팀 스피리트》합동군사연습도 중지하겠다고 한 조건에서 공화국정부는 주체81(1992)년 1월 국제원자력기구와 핵담보협정을 체결하고 핵시설에 대한 사찰을 허용하였다.

여러차례에 걸친 핵사찰과정에 공화국의 핵시설이 핵무기개발과는 인연이 없으며 평화적목적에만 리용되고있다는것이 명확히 확증되였다.

그러나 미제는 국제원자력기구의 일부 계층들을 사촉하여 우리가 제출한 핵물질재고량초기보고서내용과 사찰시 측정결과사이에 《불일치》가 있다고 하면서 2개의 일반군사대상에 대한 《특별사찰》을 강요하여나섰으며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 경우 제재를 가하겠다고 위협공갈하였다. 그들이 《특별사찰》을 요구하는 검은 속심은 공화국의 핵활동을 사찰한다는것을 구실로 군사비밀을 내탐하려는데 있었다.

이것은 이라크실태가 여실히 보여주고있었다. 미제의 압력에 굴복하여 1990년대초까지 52차례에 걸쳐 《특별사찰》을 받은 이라크는 그 결과 5 000t의 화약, 7만발의 화학탄, 20여개의 화학공장, 800여기의 미싸일을 파괴당하였다. 이것은 원쑤들에게 한걸음 양보하면 열, 백걸음을 양보하게 된다는 피의 교훈을 남기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미제의 위협공갈의 검은 속심을 예리하게 꿰뚫어보시고 공화국정부로 하여금 군사대상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의 《특별사찰》요구를 단호히 거부해버리도록 하시였다.

이렇게 되자 미제와 남조선괴뢰도당은 1993년 1월 이미 중지하였던 《팀 스피리트》합동군사연습의 재개를 공포하고 여기에 20여만의 침략무력과 방대한 핵타격수단들을 동원하였다. 지어 핵무기사용시의 지휘체계까지 발동하면서 군사적위협을 가해나섰다.

만전쟁의 결과로 오만해질대로 오만해진 미제가 공화국에 대한 사실상의 선전포고를 해온것이다. 그리하여 조선반도에는 임의의 시각에 전쟁이 터질수 있는 일촉즉발의 정세가 조성되고 국가의 최고리익이 엄중한 위협을 받게 되였다.

그러나 미제는 공화국을 잘못 보았다. 령토가 비록 작고 군사비와 병력수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하여 그것이 군사적대결에서 승패를 결정하는 기본조건이 아니라는것을 미제는 모르고있었다.

세계는 대결이냐 타협이냐 이렇게 문제를 세우고 공화국이 과연 어느쪽을 선택할것인가를 주시하고있었다.

바로 이러한 때 조선에서 백두의 뢰성이 울려퍼졌다. 위대한 수령님의 선군령도밑에 불패로 다져진 공화국의 군력이 경고망동하는 침략자들에게 드센 철추를 내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성된 정세에 대처하여 사회주의조국의 안전과 자주권을 지키기 위하여 단호한 자위적조치를 취하도록 하시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의 뜻을 받드시여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주체82(1993)년 3월 8일 《전국, 전민, 전군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함에 대하여》라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 제0034호를 하달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명령에서 미제와 남조선괴뢰들이 새 전쟁을 도발한다면 우리 인민과 인민군대는 당과 수령을 위하여, 피로써 쟁취한 인민대중중심의 우리 식 사회주의를 위하여 끝까지 싸워 침략자들에게 섬멸적인 타격을 주고 영웅조선의 존엄과 영예를 다시한번 떨칠것이라고 선언하시면서 원쑤들은 우리 공화국의 한치의 땅, 한포기의 풀도 함부로 건드릴수 없다는것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고 경고하시였다.

전국, 전민, 전군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할데 대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을 받들어 전체 군대와 인민이 원쑤들을 무자비하게 격멸하기 위하여 산악같이 일떠섰다.

적들의 《팀 스피리트93》합동군사연습이 실동단계에 들어간데 대처하여 조선인민군의 일부 땅크, 장갑차, 포병부대들이 기동하고 강력한 타격집단들의 기동훈련이 맞받아 진행되였다. 이것은 적들이 감히 우리의 한치의 땅, 한포기의 풀이라도 건드린다면 강력한 선군의 위력으로 짓뭉개버리고야말겠다는 군사적대응조치였다.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이 하달된 후 10일남짓한 기간에 전국적으로 150만여명의 청년학생들과 제대군인, 전쟁로병들이 인민군대입대와 복대를 탄원하여나섰다. 평양시에서만도 20만여명의 로농청년들과 42만여명의 청년학생들이 당과 수령을 위하여,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청춘도 생명도 다 바쳐 싸울 불타는 신념을 안고 조선인민군대입대를 탄원하였다.

전군, 전민이 이렇듯 산악같이 일떠선 현실앞에 원쑤들은 전률하였다. 미제와 그 추종세력이 눈앞에 벌어지는 현실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있을 때 예상도 못하였던 더 강력한 타격이 가해졌다.

주체82(1993)년 3월 12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 탈퇴한다는 정부성명이 발표되였던것이다.

준전시상태의 선포와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의 탈퇴조치는 언제나 맞받아나가는 전술로 역경을 순경으로 전환시키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변함없는 원칙적립장, 무비의 담력과 배짱, 의지의 발현이였으며 강위력한 군사적대응이였다.

이것은 공화국에 대한 미국의 핵공갈책동과 국제원자력기구의 부당한 《특별사찰》강요에 대처하여 민족의 자주권과 나라의 최고리익을 수호하기 위한 응당한 자위적조치였다.

준전시상태의 선포에 뒤이은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의 탈퇴선언은 세계를 들었다놓았다. 그야말로 수백수천의 Mt급에 대비조차 할수 없는 강위력한 《핵탄》, 《폭탄선언》이였다.

이에 대하여 오스트리아의 한 방송은 《이날은 지구가 깨여지기 시작한 날》이라고 평하였으며 세계는 《지구상의 핵폭탄을 다 터쳐도 북조선의 이번 성명보다 위력하지 못하다.》, 《북조선의 정치사상적, 군사적힘의 과시》, 《조선의 결정은 미행정부를 쇼크상태에 빠지게 하였다.》고 하면서 미국이 어떠한 제재방법도 가지고있지 못한데 대하여 야유하였다.

공화국의 《폭탄선언》에 강타를 받은 미국은 아연실색하였다.

하여 미국은 《팀 스피리트93》합동군사연습을 기일을 앞당겨 중지한다는것을 공포하였으며 국제원자력기구는 《특별사찰》소동을 포기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것은 백두의 선군령장들이신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무비의 담력과 철의 의지, 세련된 선군혁명령도에 의하여 이룩된 미제와의 정치군사적대결전에서의 승리였다.

그러나 미제의 침략적본성이 변한것은 아니였다. 공화국의 선군의 위력앞에 겁을 먹은 미제는 교활하게도 조선반도의 핵문제를 《국제화》하려고 꾀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강력한 군사력에 의거하여 미국을 회담장에 끌어내여 조미핵대결전을 벌림으로써 미제의 핵소동을 짓부셔버리게 하시였다.

주체82(1993)년 4월 5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브라질10월8일혁명운동대표단과 하신 담화석상에서 《핵문제》를 가지고 공화국을 걸고드는 미국의 책동의 본질을 밝히시면서 미국사람들이 압력의 방법으로 우리를 굴복시키려고 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교인들처럼 한쪽뺨을 때리면 다른쪽 뺨을 마저 때리라고 내대지 않을것이다, 우리는 미국이 우리 나라를 폭격하면 즉시에 강력한 대응타격을 가할것이다, 적들이 때리면 맞받아 때리는것이 우리의 변함없는 원칙적립장이라고 천명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뜻을 받들어 이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교부는 성명을 통하여 미국의 핵소동을 폭로규탄하고 조선에서의 핵문제를 실제적으로 해결할수 있는 최선의 방도는 조미회담을 통하여 평화적으로 해결하는데 있으며 우리에 대한 그 어떤 《제재》도 《선전포고》로 간주하고 강한 자위적조치를 취하겠다는 단호한 립장을 표명하였다.

공화국의 단호한 립장앞에, 강력한 선군의 위력앞에 굴복하여 조미회담장에 끌려나오기는 했어도 미국은 공화국을 압살하려는 기도를 조금도 버리지 않았으며 외교적방법으로 그것을 기어이 실현해보려고 하였다. 미국은 의연히 저들의 음흉한 목적을 버리지 않고 회담장에서까지 우리가 조약탈퇴를 취소하고 전면사찰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면서 난관을 조성하여 다음단계의 회담을 의도적으로 결렬시킨 후 국제원자력기구의 불순세력들을 발동하여 반공화국압살소동을 더욱 격화시켰다.

이러한 정세속에서 진행되는 조미회담은 순수 말씨름이나 하는 마당이 아니라 그야말로 누가 누구를 하는 총포성없는 치렬한 결전장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미제의 이러한 압력소동에 초강경으로 단호히 맞서나가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미회담에 참가하는 우리 대표단을 여러차례 만나시여 회담진행에서 나서는 원칙적문제들에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였으며 인민군대의 전투력을 백방으로 강화하도록 이끄시여 회담을 군사적으로 적극 뒤받침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82(1993)년 11월 3일 인민무력부 부부장의 담화를 통하여 대화에는 대화로, 전쟁에는 전쟁으로 대답하는것이 우리의 립장이며 우리는 대화에도 전쟁에도 다 준비되여있다는것을 천명하고 선불질을 하는자들은 불벼락을 맞기마련이며 남을 해치고 자기는 살아남을수 있다고 타산한다면 그보다 더 어리석은짓은 없을것이라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굳센 신념과 의지를 다시한번 강조하도록 하시여 미제를 수세에 몰아넣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특히 1994년 6월 10일 국제원자력기구가 미국에 추종하여 우리 나라에 대한 《기구협조를 중단》한다는 부당한 《제재결의》를 채택한것과 관련하여 6월 13일 외교부 대변인성명으로 우리 나라가 국제원자력기구에서 즉시 탈퇴한다는 단호한 조치를 취하게 하시였다.

이어 조선인민군과 해당 기관들은 공화국에 대한 그 어떤 《제재》이든 그것을 선전포고로 받아들이고 우리의 자주권을 해치는자들은 지구상의 어디에 있건 단호히 대응한다는것, 《제재》는 곧 전쟁을 의미하며 전쟁에는 자비가 없다는것, 불을 즐기는자들은 불속에서 타죽고말것이라는 선군조선의 군대와 인민의 강경한 의지와 립장을 반영한 성명, 담화들을 련속 발표하였다.

우리 공화국의 강경한 대응태세로 하여 일대 혼란과 수세에 빠진 미국은 그 출로를 찾으려고 전 미국대통령 지미 카터를 우리 나라에 보내여 조미사이관계문제, 핵문제를 둘러싼 교착상태를 타개해보려고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83(1994)년 6월 16일과 17일 평양을 찾아온 카터일행을 두차례나 접견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첫날 카터에게 미국이 들고나오는 《핵의혹》문제의 주요한 원인과 《핵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수 있는 기본방도를 명철하게 밝혀주시였다.

이튿날 카터는 미국대통령과 전화련계를 가진 다음 위대한 수령님께 미국이 북조선에 대하여 제재조치를 취하자고 하던것을 취소시키기로 하였다고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제재조치를 취소시키겠다고 한다니 감사하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이 제재조치를 취소시켜도 좋고 안시켜도 좋다, 우리가 미국을 반대하는것은 당신들

의탓이지 우리탓이 아니다, 당신들이 우리를 신뢰하지 않기때문에 우리도 당신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당신들이 우리 나라에 대하여 자꾸 못살게 구는데 아무리 압력을 가하고 못살게 놀아도 우리는 얼마든지 살아나갈수 있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시였다.

그리하여 전쟁도 제재도 할수 없게 된 미국은 1994년 8월에 제3단계 1차조미회담에 나오게 되였다. 그리고 1994년 9월 23일부터 10월 21일까지 진행된 조미회담에서는 조미기본합의문이 채택되였으며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 미국대통령 클린톤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지도자》라는 존칭까지 정중히 붙여 조미기본합의문의 리행을 담보하는 서한을 보내여왔다.

이것은 미국과의 총포성없는 전쟁에서 공화국이 거둔 성과였으며 강력한 군사력에 의하여 그 승리가 철저히 담보된 외교공방전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과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지니신 강철의 신념과 의지, 무비의 담력과 지략 그리고 무적필승의 군력에 의하여 극도에 달하였던 미제의 광란적인 핵소동과 고립압살책동은 좌절되고 공화국은 사회주의의 강력한 보루로 높이 솟아오르게 되였으며 세계 혁명적인민들에게 커다란 고무적힘을 안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