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3)중에서 


 


 

 력사에 류례없이 간고하고 준엄한 선군혁명사는 부강번영하는 인민의 락원을 보지 못하고 자기의 청춘을 아낌없이 바친 수많은 혁명전사들을 기록하고있다. 그들속에는 단두대에서 혁명의 사령부를 결사옹위하여 스스로 생을 마친 투사들도, 적과의 전투에서 희생된 투사들도 있다.

이들의 대부분이 사진 한장 남기지 못하고 항일전에 선혈을 뿌렸으며 조국의 자유와 인민의 해방을 위한 성스러운 투쟁에 한목숨 기꺼이 바치였다.

그러나 이들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의 혁명적의리에 의하여 대성산혁명렬사릉의 높은 언덕에서 그날의 모습으로 영생하고있으며 오늘도 선군혁명대오의 힘찬 발걸음을 추동하고있다.

대성산에 혁명렬사릉이 건설된것은 1970년대였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뜨거운 사랑과 숭고한 혁명적의리를 지니시고 곁을 떠난 전사들을 위하여 할수 있는 모든것을 다해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61(1972)년 4월 어느날 대성산의 높고낮은 봉우리들을 오랜 시간에 걸쳐 오르내리시며 몸소 주작봉마루에 혁명렬사릉의 터전을 잡아주시였다. 그리고 그후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에서 대성산에 혁명렬사릉을 건설할데 대한 문제를 제기하시고 곁을 떠난 혁명전사들의 반신조각상을 만들어 세울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이렇게 되여 대성산에 혁명렬사릉을 꾸리는 공사가 벌어지게 되였다.

공사가 한창 진행되던 주체62(1973)년 8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몸소 혁명렬사릉건설장을 찾으시여 렬사릉에 안치할 투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시였다.

그후 렬사들의 반신조각상제작이 시작되자 수령님께서는 한장의 사진마저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혁명렬사들의 모습을 진실하게 형상하도록 손수 그들의 얼굴생김과 성격상특징들을 기록하신 자료까지 보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러시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시여 일군들에게 어느 동무는 지금의 누구와 비슷하고 또 어느 동무는 그의 딸모습과 같으며 어느 동무에 대해서는 누가 더 잘 회상할수 있다고 일일이 가르쳐주시였다.

주체63(1974)년 9월 3일이였다.

이날 대성산혁명렬사릉건설장을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시범적으로 세운 5상의 반신조각상을 보아주시였다.

종합비문 왼쪽길을 따라 동상앞에 이르신 수령님께서는 혁명전우들을 감회깊이 추억하고계시는듯 깊은 생각에 잠기시여 한없이 자애로운 사랑의 눈길로 반신상들을 주의깊게 살펴보시였다.

《이건 류경수동무, 이건 강건동무로구만!》

사랑하는 전사들의 모습을 알아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살아있는 혁명전우들을 만나신듯 무척 반가와하시며 렬사들의 이름을 부르시였다.

다음반신상에 이르신 수령님께서는 한참이나 살펴보시다가 누구인가고 물으시였다.

일군들이 안길동지라고 말씀올리자 수령님께서는 얼굴에 그늘을 지으시며 서운한 목소리로 말씀하시였다.

《어디 안길동무 같습니까?》

하시더니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아쉬우신듯 이렇게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안길동무의 동상은 입술이 너무 두텁고 전혀 안길동무 같지 않습니다.》

옛 전사의 모습을 그리시듯 한동안 말씀이 없으시던 수령님께서는 안길동무는 원래 위가 나빠 몸이 좋지 못했다고 말씀하시면서 동상의 잘못된 부분을 하나하나 일깨워주시였다.

그러시고는 다시 몇걸음 옮기시여 다섯번째 반신상을 바라보시던 수령님께서는 김경석동지라는 말을 들으시고 김경석동무 같지 않다고 하시면서 모색에서 특징적인 점들을 일일이 지적해주시였다.

《혁명렬사들의 반신상을 잘 만들어 세워야 하겠습니다. 동상의 얼굴모습이 실지인물과 달라서는 안됩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64(1975)년 2월 어느날에도 렬사들의 반신조각상제작현장을 찾으시여 그들의 용모에 대하여 자세히 말씀해주시였다.

세월과 망각은 정비례하는 법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사람의 기억력도 희미해지는것은 어쩔수 없는 생리현상이다.

그러나 수령님의 마음속에는 전사들의 모습이 조금도 변함이 없이 간직되여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대성산혁명렬사릉에 안치하는 모든 항일혁명투사들의 생김새며 출생날자, 희생된 날자와 장소까지 모두 회고하여 가르쳐주시였다.

이것을 어찌 단순히 기억력으로만 설명할수 있겠는가.

그것은 수령님의 천재적인 비상한 기억력과 함께 희생된 전우들을 잊지 못해 한평생 가슴속에 간직하고계시는 고결한 혁명적의리의 산물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어버이수령님의 이 고결한 혁명적의리에 떠받들려 투사들의 조각상은 옛 모습그대로 재현되고 대성산혁명렬사릉은 마침내 주체64(1975)년에 완공되게 되였다.

1980년대에 들어와 혁명렬사릉은 개건확장되였다.

대성산혁명렬사릉이 완공된 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명절날이나 지방현지지도의 길에서 돌아오시는 날을 비롯하여 자주 혁명렬사릉에 들리군 하시였는데 그때마다 아쉽게 생각되시는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여서 마음이 가볍지 못하시였다. 종합비문이 분묘들의 앞을 가리워 반신조각상들이 시원하게 잘 보이지 않았으며 렬사릉으로 통하는 길도 번듯하지 못하고 릉이 비좁아보이시였다.

세월이 흘러도 먼저 간 전사들을 잊지 못하시고 그들을 내세워주시려 마음쓰시는 수령님이시였다.

함박눈이 소리없이 내리던 어느 겨울날의 깊은 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과 전화대화를 나누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함박눈이 쏟아지니 산에서 싸우던 때가 생각난다고 하시면서 항일무장투쟁의 나날 적후공작에 나갔던 전사들이 돌아오지 않아 밀영밖에서 눈을 맞으며 그들을 기다리던 일을 감회깊이 추억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그때를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모두가 잠에 든 이밤에 누구에게 전화를 하겠는가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경애하는 장군님과 전화로 항일의 나날들을 회고하시며 한시간나마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이 력사의 밤과 더불어 먼저 간 전사들을 잊지 못하시여 수많은 날과 날을 새우시며 대성산혁명렬사릉을 혁명전사들에 대한 당과 수령의 위대한 사랑의 기념비로,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의 상징으로 더욱 의의있고 품위있게 완성하실 구상을 무르익혀오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71(1982)년 10월 대성산혁명렬사릉을 개건확장할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러시고는 그해도 다 저물어가던 12월 30일 혁명렬사릉개작사판을 친히 보아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금의 혁명렬사릉은 종심이 깊지 못하여 협소한감이 나고 혁명렬사들의 반신상들도 앞뒤간격이 좁아 대렬을 세워놓은것처럼 답답한감이 난다고 하시면서 지대를 대폭 정리하여 교양마당과 반신상구역을 더 확장하며 릉대문을 조선식으로 잘 세우고 릉으로 올라가는 길도 넓혀야 한다고 하나하나 가르치시였다. 그리고 릉대문의 높이를 가까이에서 보는 효과만 타산하지 말고 먼곳에서 볼 때 릉이 가리우지 않겠는가를 잘 토론해보고 정하여야 한다고 일깨워주시면서 혁명렬사릉을 고칠바에는 잘 고쳐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기대와 관심속에 조선로동당창건 40돐을 앞두고 개건확장공사가 본격적으로 추진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러차례에 걸쳐 혁명렬사릉에 안치할 혁명렬사들을 한사람한사람 꼽아보기도 하시고 그들의 이름을 고증해주기도 하시면서 혁명렬사릉을 최상의 수준에서 꾸리도록 끊임없는 심혈을 기울이시였으며 공사가 마감단계에 들어선 주체74(1985)년 9월에는 몸소 친필비문을 써주시였다.

《항일혁명렬사들의 숭고한 혁명정신은 우리 당과 인민들의 심장속에 영원히 살아있을것이다.

                                                   김일성 1985. 10. 10.》

동지애로 개척되고 전진해온 조선혁명, 고결한 혁명적의리에 떠받들려 승리해온 조선혁명의 어제와 오늘, 래일을 하나의 명맥으로 이어주는 불멸의 친필이였다.

혁명렬사들을 영생의 모습으로 빛내여주시려는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숭고한 뜻과 정력적인 령도에 의하여 마침내 대성산혁명렬사릉이 수령님의 친필비와 더불어 시대의 기념비로 최상의 수준에서 숭엄하게 꾸려지게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대성산혁명렬사릉 개작공사를 하자면 품이 많이 들것이라고, 그렇지만 대성산혁명렬사릉 개작공사는 우리 대에 반드시 해놓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수령님의 의도에 맞게 공사가 진척될수 있도록 모든것을 다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친필비와 민족적형식의 크고 넓은 릉대문이며 헌시비, 공화국영웅메달을 부각한 화환진정대와 조각군상들, 생전의 모습그대로 세워진 혁명렬사들의 동상과 그 배경에 휘날리는 붉은 기발 등 혁명렬사릉의 모든것에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고결한 혁명적의리와 충정이 깃들어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의 념원이 실현된것이 너무도 기쁘시여 주체74(1985)년 9월 29일과 10월 4일 새로 개건확장된 대성산혁명렬사릉을 찾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혁명투쟁력사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화강석조각군상들과 추모군상들, 공화국영웅메달을 부각한 화환진정대, 항일혁명렬사들의 동반신상들을 하나하나 돌아보시며 시종 만족을 금치 못해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렬사들의 반신상을 동으로 만들기를 잘하였다고 하시면서 동이 많이 들었다고 해도 아까울것이 없다,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 혁명이 승리할수 있었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반신상구역의 제일 웃단에 오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붉은 돌로 세차게 휘날리는 붉은 기발을 형상한 혁명렬사릉의 배경을 바라보시며 아주 멋있다고, 김정일동지가 혁명렬사들이 푸른 소나무에 안장되여있게 하는것보다 붉은 기폭에 싸여있게 하는것이 더 좋다고 하면서 붉은 기발을 만들어 세우도록 한것은 아주 잘한 일이라고 하시며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붉은기앞에 계시는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사의 반신상앞에서 뜻깊은 기념사진을 찍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에도 혁명렬사들이 그리울 때마다 주작봉마루에 오르시였고 금수산의사당 집무실에 포대경을 놓으시고 대성산혁명렬사릉의 혁명전사들을 한사람한사람 바라보시며 끝없는 심중의 대화를 나누시였다.

주체혁명위업, 선군혁명위업의 개척기와 항일전의 불길속에서 수령결사옹위의 자랑찬 전통을 창조한 혁명선렬들은 붉은기에 휩싸안겨 대성산혁명렬사릉에서 오늘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영생의 모습으로 계시는 금수산기념궁전을 호위하듯 성벽을 이루고있다.

희생된 나이와 고장은 서로 달라도 돌아와 안긴 품은 하나인 대성산혁명렬사릉, 이것은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항일혁명렬사들에게 돌려주신 크나큰 신임의 표시이고 한없는 은정의 선물이며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충실히 싸운 그들의 투쟁업적에 대한 높은 평가의 상징이다.

혁명의 붉은 기폭에 항일혁명의 전위투사들을 정히 감싸안고 오늘도 천만군민의 가슴마다에 수령결사옹위의 진리를 삶의 참뜻으로 새겨주는 기념비-대성산혁명렬사릉, 바로 여기에서 세상사람들은 선군혁명의 자랑찬 력사와 그 승리의 찬란한 미래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