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위인과 음악』 중에서
 


 

지심깊이 뻗어내린 뿌리를 떼여놓고 푸르러 설레이는 소나무의 억센 기상에 대하여 결코 생각할수 없듯이 위인의 걸출한 천품도 그를 키워낸 가문을 떠나서 말할수 없다.

남달리 음악을 사랑하시고 뛰여난 음악적자질을 지니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음악적천품은 만경대와 백두산혁명가문에 그 뿌리를 두고있다.

애국의 혈통을 꿋꿋이 이어온 경애하는 장군님의 위인가문은 대대로 음악을 각별히 사랑하고 음악과 함께 애국의 고귀한 생애를 빛내인 훌륭한 가문이다.

만경대일가분들과 백두산위인들중 누구도 전문적인 음악교육을 받으신분은 없었지만 모두가 다 깊은 음악적조예와 재능, 풍부한 정서를 지니고계시였다.

위인들이 품으셨던 열렬한 음악사랑, 그것은 음악에 대한 단순한 취미나 평범한 애착이 아니라 그 누구도 따를수 없는 뜨거운 애국심의 발현으로서 이 세상 가장 정의롭고 강의하며 열정적인 인간들만이 할수 있었던 참다운 사랑이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할아버님이신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지원》의 높은 뜻을 품으시고 조선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한몸을 다 바치신 열렬한 애국자이시였을뿐아니라 음악을 무척 사랑하시고 시가창작에 조예가 깊으신 다정다감한분이시였다.

돌이켜보면 망국의 설음이 하늘땅에 사무쳤던 20세기초 일제에게 송두리채 빼앗긴 나라와 백성의 참담한 운명을 두고 얼마나 많은 유명무명의 사람들이 가슴을 쥐여뜯으며 울분의 시를 토로했고 탄식의 곡조를 쏟아내였던가.

하지만 울분과 탄식만으로는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을수 없었다.

통분의 몸부림이 아니라 민족의 넋을 불러일으키고 기어이 삼천리강산에 독립만세를 불러와야 한다는 철석의 신념을 지니신 김형직선생님이시였기에 남들이 비분의 운률을 붓끝에 담을 때 애국정신과 결사독립의 의지가 담겨진 《남산의 푸른 소나무》와 같은 노래를 지으실수 있었다.
 

           남산의 저 푸른 소나무가

   눈서리에 파묻혀서

      천신만고 괴롬받다가

                  양춘을 다시 만나 소생할줄을

동무야 알겠느냐

           이 한몸 싸우다 쓰러지면

    대를 이어 싸워서도

   금수강산 삼천리에

                 양춘을 찾아올제 독립만세를

조선아 불러다오
 

모진 광풍에도 끄떡없이 굳세게 서있는 소나무, 눈서리에 파묻혀서도 청청한 빛을 뿌리면서 새봄을 맞이하는 소나무의 꿋꿋한 기상은 정녕 김형직선생님의 불굴의 투쟁정신과 필승의 신념의 상징이였다. 《남산의 푸른 소나무》야말로 김형직선생님의 《지원》의 높은 뜻이 절절하게 담겨진 노래이다.

한번 다진 맹세를 끝까지 변치 않는 애국자의 지조와 절개, 대를 이어 싸워서라도 끝까지 큰뜻을 이루어야 한다는 계승의 의지가 력력히 맥박치는 신념과 의지의 노래인것으로 하여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도 이 노래를 사랑하시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생애에 《남산의 푸른 소나무》뿐아니라 여러편의 군중계몽과 반일애국주제의 노래들을 친히 창작보급하시여 겨레의 가슴마다에 투쟁의 불씨를 심어주시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 명신학교에서 교편을 잡으시고 후대교육사업을 하시면서 몸소 창작하시여 청년들에게 배워주신 《명신학교 교가》와 조국의 장래를 떠메고나갈 조선의 청년들이 힘과 지혜를 키우고 하나로 뭉친 거대한 힘으로 일제를 몰아내고 용감하게 나아가자고 호소한 《전진가》, 《일어나라 동포야》…

참으로 깊은 뜻을 담은 가사와 박력에 넘친 선률로 인민들에게 반일투쟁열의를 불러일으킨 그 한편한편의 노래들마다에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력사의 새벽길을 헤쳐오신 선생님의 숭고한 애국의 정신세계와 뛰여난 음악적자질이 력력히 깃들어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할머님이신 강반석녀사께서도 일찍부터 열렬한 애국주의사상과 고결하고 아름다운 품성을 지니시고 노래를 무척 사랑하시였다.

강반석녀사께서는 할머님의 물레질소리가 유정하게 울리던 밤이면 어리신 수령님을 들메나무그네에 태우시고 김형직선생님께서 지으신 노래 《자장가》를 자주 불러주시군 하시였다.
 

 아가야 자장 자장 어서 자거라

 아가야 자장 자장 잘두 자누나

       친척에는 화목동 부모님껜 효자동

   사랑있다 장중보옥 능할하 자장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강반석녀사께서 불러주시는 노래를 함께 따라부르시면서 어려서부터 노래를 사랑하시였으며 다감하고 락천적인 품성을 지니시였다.

강반석녀사께서 부르시는 노래소리는 한가정의 울타리에만 머문것이 결코 아니였다.

강반석녀사께서는 이역의 무송과 안도 등에서 광범한 녀성들을 계급적으로 각성시켜 반일애국투쟁에 한결같이 떨쳐나서도록 그들에게 《녀성해방가》도 배워주시고 연예공연에도 자주 참석하시여 노래로써 투쟁의 진리를 깊이 새겨주시며 나라를 찾는 애국의 길에서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시였다.

오늘도 김형직선생님과 강반석녀사께서 지니시였던 투철한 애국의 의지와 열렬한 애족애민의 헌신성은 사연깊은 노래들과 함께 영원히 빛나고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아버님이신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전생애는 노래와 함께 민족의 자주와 번영을 위한 수만리길을 헤쳐오시며 승리와 영광만을 아로새겨오신 장엄한 영웅서사시이다.

김형직선생님께서 또다시 일제경찰에 체포되시였다는 뜻밖의 소식에 접하시고 《광복의 천리길》에 나서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나라찾을 굳은 맹세를 그 누군가가 지은 《압록강의 노래》에 담아부르시며 눈보라치는 압록강을 건느시였다.

그때의 심정에 대해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회고록에서 나는 그 노래를 부르면서 내가 언제 다시 이 땅을 밟을수 있을가, 내가 자라나고 선조의 무덤이 있는 이 땅에 다시 돌아올 날은 과연 언제일가 하고 생각하였다, 이런 생각을 하니 어린 마음에도 비감을 금할수 없었다, 나는 그때 조국의 비참한 현실을 눈앞에 그려보며 조선이 독립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비장한 맹세를 다지였다고 쓰시였다.

그날에 부르신 《압록강의 노래》는 어버이수령님께 있어서 내 나라를 기어이 찾고서야 고향땅에 돌아갈 맹세의 노래로 되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초기혁명활동시기로부터 시작하여 항일무장투쟁의 전기간에 《조선의 노래》, 《꽃파는 처녀》, 《반일전가》, 《조선인민혁명군》, 《조국광복회10대강령가》를 비롯하여 여러편의 혁명가요들을 창작보급하시여 투사들과 인민들에게 열렬한 조국애와 조국해방의 굳은 신념을 심어주시였다.

주체24(1935)년 1월 하순 눈보라 사나운 천교령에서 조선혁명이 사느냐 죽느냐를 판가름하는 력사의 그 시각, 어버이수령님께서 불사신의 의지로 지어부르신 《반일전가》.

여기서 그대로 주저앉으면 조선인민이 일제의 영원한 노예가 되겠기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촉한으로 흐려지는 의식을 가다듬으시며 노래의 가사를 한자한자 부르시였다.
 

  일어나라 단결하라 로력대중아

    굳은 결심 변치 말고 싸워나가자

     붉은기아래 백색테로 뒤엎어놓고

승리의 개가높이 만세 부르자
 

《반일전가》, 그것은 노래이기 전에 절세의 애국자, 항일의 전설적영웅의 신념의 선언이였고 조국과 인민에 대한 그이의 열렬한 사랑과 헌신의 불같은 토로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간고한 항일전의 나날 몸소 창작하신 불후의 고전적명작들은 주체음악예술의 고귀한 전통으로 영원히 계승발전시켜야 할 귀중한 사상문화적재부로서 오늘도 울려퍼지고있다.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신 그날로부터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 근 반세기에 이르는 위대한 혁명령도사의 갈피갈피마다에도 음악과 함께 창조와 건설, 승리와 영광으로 빛나는 어버이수령님의 거룩한 자욱이 깊이 아로새겨져있다.

한곡의 노래에도 민족의 넋이 깃들고 인민대중의 지향이 맥박치도록 세심히 이끌어주신 어버이수령님이시였다.

《애국가》만 놓고보아도 그렇다.

나라가 해방된 이듬해인 주체35(1946)년 9월초 어느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애국가》창작을 조직할데 대한 귀중한 말씀을 주시고 9월말에는 창작가들을 부르시여 《애국가》의 창작방향과 그 방도들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창작가들에게 우리 나라는 참으로 아름다운 나라이라고, 세면이 바다로 둘러싸여있고 산들은 기세차고 장엄하며 전원에는 오곡백과가 무르익는다고 하시면서 우리 나라에는 지하자원과 금은보화도 무진장하고 우리 인민은 반만년의 오랜 력사를 가진 인민이며 찬란한 문화를 가진 슬기로운 인민이라고 긍지높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말씀은 그대로 가사였고 선률이였다.

그후 창작가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그대로 가사에 반영한 두편의 노래를 선정하여 《애국가》의 후보작품으로 그이께 보고드리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주체36(1947)년 6월 어느날 친히 《애국가》를 결정하기 위한 시청회를 마련해주시고 두곡이 다 좋다고 하시면서 곡의 선률이 장중한 맛이 있고 무게가 있는 첫번째 노래를 《애국가》로 정해주시였으며 두번째 노래는 제목만 바꾸어 그대로 부르는것이 좋겠다고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애국가》에서 《찬란한 문화로 자라난》 시행부터 그아래는 반복하여 부르는것이 좋겠다고, 우리 나라는 찬란한 문화로 자라난 유구한 력사를 가진 나라인데 어떻게 한번만 부를수 있겠는가고 하시였다.

이처럼 위대한 수령님의 빛나는 예지와 세심한 지도에 의해 민족의 유구성과 자주정신을 노래하는 《애국가》가 태여나게 되였다.

음악을 극진히 사랑하신분이시였기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가렬한 조국해방전쟁과 전후복구건설, 사회주의건설을 승리에로 이끄시는 과정에 부닥치는 모진 시련과 난관도 노래와 함께 이겨내시고 인민을 위한 거룩한 한생의 기쁨과 행복도 노래와 함께 누리시였다.

나날이 커만 가는 인민의 행복에서 자신의 제일 큰 기쁨과 행복을 찾으시며 황금나락 설레이는 풍요한 농장벌을 바라보실 때에도, 먼바다 어장에서 전해오는 풍어의 기쁜 소식을 받으시였을 때에도 그리도 만족하시여 노래를 부르시였다는 격정의 이야기들은 어버이수령님의 다감한 음악적정서의 세계를 뜨겁게 전하고있다.

하기에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시기에 지나온 뜻깊은 년대들을 감회깊이 돌이켜보시며 손수 박자를 치시면서 《사향가》를 부르시던 어버이수령님의 그날의 그 음성, 태양의 그 모습은 음악과 더불어 빛나는 천출위인의 거룩한 한생이 다 담겨진 불멸의 화폭으로 겨레의 심장속에 영원히 새겨져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어머님이신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사의 한생도 노래로 이어져있다.

주체25(1936)년 만강의 그 봄날, 조국과 민족, 고향과 부모형제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정을 담아 어버이수령님과 《사향가》를 부르시며 민족의 태양이신 위대한 수령님을 결사옹위할 맹세를 굳게 다지신 김정숙어머님이시였다.

항일대전의 나날 사령부의 안녕을 목숨으로 지키는 친위전사가 되시여 헤쳐가신 사선의 천만리길에서도, 장군님께서 주신 명령관철을 위해 밤새워 재봉기를 돌리시던 밀영의 긴긴밤에도 백두산녀장군께서는 혁명의 노래, 투쟁의 노래를 부르시였다.

해방후 《김일성장군의 노래》가 불멸의 혁명송가로 창작된것도 김정숙어머님을 떠나 생각할수 없다.

어머님께서는 항일혁명투쟁의 체험이 없는 시인으로서 위대한 수령님에 대하여 노래하자니 어려울것이라고 하시며 100여편의 혁명가요가 들어있는 수첩까지 보내주시며 창작가를 고무하여주시였다.

어느날 노래창작이 제대로 되지 않아 모대기고있는 시인을 만나주신 김정숙어머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항일무장투쟁을 할 때 겪으시였던 이야기들을 들려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오로지 나라의 독립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한평생을 바쳐오시는 장군님의 거룩하신 발자취는 우리 나라 그 어디에나 깃들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그 발자취는 백두산의 험한 줄기들과 압록강과 두만강의 굽이굽이에도 어리여있습니다. 또 해방을 맞이한 이 나라의 꽃동산에도 깃들어있습니다.》

김정숙어머님께서는 만주광야의 찬바람을 헤치면서도 그리고 밀영의 우등불가에서 긴긴밤을 그대로 지새우면서도 조국과 인민앞에 바치시는 장군님의 위대한 사랑을 꼭 옛말삼아 이야기할 때가 올것이라고 굳게 믿고있었다고 하시면서 감동에 젖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을 이으시였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이룩하신 불멸의 혁명업적은 장군님의 존귀하신 성함과 더불어 우리 인민의 마음속에서 영원히 빛을 뿌릴것입니다.》

백두산녀장군께서 하신 그날의 말씀이 그대로 가사가 되여 만민이 칭송하는 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가 온 세상에 울려퍼지게 되였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어머님의 커다란 관심속에 새 조국건설시기에 창작된 수령숭배의 첫 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는 백두산녀장군이 지니신 수령결사옹위정신을 전하며 선군조선의 하늘가에 오늘도 높이 울려퍼지고있다.

이렇듯 애국적이며 혁명적인 만경대일가분들과 백두산위인들은 노래를 사랑하시였다.

이것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남다른 음악적천품이 대대로 노래를 사랑해온 만경대와 백두산혁명가문에 그 뿌리를 두고있으며 이 위인가문이야말로 경애하는 장군님으로 하여금 노래철학을 내놓으시고 음악정치를 펼치게 하신 터전으로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