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인민적 시책에 비낀 위인일화』 중에서

1. 가장 우월한 교육제도를 마련해주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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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끼고 아껴오시던 자리

주체62(1973)년 10월 어느날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모란봉에 오르시여 수도의 전경을 부감하시다가 동행한 일군들에게 물으시였다.

《저기에 무슨 건물을 앉혔으면 좋겠습니까?》

그이께서는 남산재를 가리키고계셨다.

일군들은 선뜻 대답을 드리지 못했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 잘 알고있기에 더 망설여졌다.

평양시복구건설계획도를 작성할 때 남산재를 수도의 중심부로 정하고 그곳을 축으로 도시를 형성하도록 방향을 제시해주시면서도 그 남산재만은 굳이 빈터로 남겨두게 하신 수령님이시였다. 앞을 바라보면 대동강의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고 한옆으로 돌아서면 모란봉의 전경과 문수벌일대가 한눈에 안겨오는 남산재는 참으로 멋있는 자리였다.

세월이 흘러 그 주변에 크고작은 건물이 많이 일떠섰으나 남산재는 여전히 공지로 남아있었다.

어느해인가 한 설계일군이 그 좋은 자리가 그냥 비여있는것이 아쉽게 생각되여 거기에 다른 나라들처럼 정부청사를 무게있게 들여앉힐 설계를 만들어올린적이 있었는데 그때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설계안을 대번에 밀어놓으시였다. 무엇때문에 그 좋은 곳에 정부청사를 앉히겠는가, 도시중심에는 정부청사가 아니라 인민들이 많이 쓰는 공공건물을 두어야 한다, 이것이 그이의 뜻이였다.

이처럼 남산재는 위대한 수령님의 깊은 관심속에 있는 자리인지라 일군들이 인츰 대답을 올리지 못하자 수령님께서는 원래 중심광장에는 박물관이나 회관, 도서관, 문화궁전과 같은 인민을 위한 건물을 놓아야 한다고 나직이 말씀하시였다.

그때로부터 두달후인 그해 12월 중순 몸소 남산재에 오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제는 이곳을 정리할 때가 되였다고 하시면서 평양에는 이미 문화궁전도 있고 학생소년궁전도 있으니 여기에다는 도서관을 하나 크게 짓자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렇게 되면 학생소년궁전에서는 아이들이 공부하고 여기서는 어른들이 공부하게 될것이라고 하시면서 말씀을 이으시였다.

《여기 남산재에 도서관을 앉히면 인민들이 좋아할것입니다.》

이렇게 되여 김일성주석께서 수십년을 두고 아끼고아껴오시던 남산재에 그이께서 손수 지어주신 《인민대학습당》이라는 뜻깊은 이름을 달고 전민학습의 대전당이 웅장화려한 조선식건물로 일떠서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