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인민적 시책에 비낀 위인일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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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교사가 일떠서기까지

풍치아름다운 평양의 대동강기슭에는 나라의 과학기술인재양성기지인 김책공업종합대학의 새 교사가 번듯하게 솟아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있다.

김책공업종합대학에 훌륭한 새 교사가 일떠서게 된데도 나라의 교육사업에 언제나 깊은 관심을 돌리시는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크나큰 사랑과 은정이 깃들어있다.

주체78(1989)년 5월 중순 어느날 평양시를 감돌아흐르는 대동강의 양각도에 새로 일떠선 평양국제영화회관을 돌아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 일군으로부터 그 대안에 자리잡고있는 김책공업종합대학의 형편을 구체적으로 료해하시였다.

그러시고는 그 일군에게 내가 김책공업종합대학 본교사를 현대적으로 멋있게 건설하라고 하였다는것을 총리와 평양시의 책임일군들에게 전하라고 말씀하시였다.

교육사업을 그처럼 중시하시며 크나큰 사랑의 조치를 취해주시는 그이의 이 말씀에 일군은 가슴뜨거움을 금할수 없었다.

사실 그때 나라형편을 보면 여러곳에서 큰 건설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있었기때문에 강재와 세멘트를 비롯한 건설용자재들이 전에 없이 긴장하였다.

평양시에서만도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계기로 광복거리와 청춘거리의 체육촌, 5월1일경기장, 동평양대극장건설이 진행되고있었다.

이런 조건에서 방대한 규모의 김책공업종합대학의 중축공사를 또 시작한다는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였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라의 과학기술인재양성사업을 위하여 이런 결심을 내리시였던것이다.

다음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시 그 일군을 부르시여 김책공업종합대학 중축공사를 위한 조직사업정형을 구체적으로 알아보시고 공사완공날자까지 몸소 정해주시였다.

그러시고도 건설력량이 부족하면 건설력량을, 자재가 모자라면 요긴하게 쓰려고 저축해두었던 예비물자까지 풀어주시였으며 지어는 색유리와 마감자재구입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도 해결해주시였다.

그리하여 3년 남짓한 사이에 9만여㎡의 연건축면적을 가진 교사와 기숙사, 식당이 완공되여 자기의 자태를 드러내놓았다.

주체82(1993)년 1월 하순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에 대하여 보고받으시고 더없이 만족해하시며 《김책공업종합대학》이라는 명판까지 몸소 써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로부터 몇달후인 5월 8일에는 몸소 김책공업종합대학에 나오시여 새 교사를 돌아보시면서 강의실과 강좌실, 실험실을 비롯한 여러개의 방들과 강당, 문화후생시설들의 시공정형을 알아보시고 새 교사가 훌륭히 건설된데 대하여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시였다.

새 교사를 돌아보신 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학의 일군들을 집무실로 부르시여 이번에 당에서 새로 건설하여준 교사가 아주 현대적이고 훌륭하다고, 새로 건설한 기숙사와 식당도 멋있다고 하시면서 현실발전의 요구에 맞게 교육사업을 끊임없이 개선강화하여 재능있는 과학기술인재를 많이 키워낼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리고 대학에 필요한 현대적인 실험설비들을 해결해줄데 대한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이처럼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크나큰 사랑과 세심한 보살피심에 의하여 김책공업종합대학은 번듯한 새 교사에 현대적인 실험실습설비들까지 그쯘하게 갖춘 나라의 과학기술인재양성의 원종장으로 자기의 면모를 더욱 일신하게 되였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