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이 준엄한 전쟁의 불구름에 휩싸여있던 주체40(1951)년 1월 어느날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어느 한 공장을 찾으시였다.

공장일군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서 공장을 돌아보자고 하시며 갱안으로 들어가시였다.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의 시련을 이겨내고 돌아온지 얼마 안되던 때여서 공장은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현장을 다 돌아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과 마주앉으시여 공장실태를 료해하시였다.

하루빨리 공장을 복구하고 생산을 시작해야겠으나 난관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건설자재도 기계설비도 부족하고 로력도 모자랐으며 기능공들과 기술자들도 부족하였다.

그래서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일군들은 막연해하고있었다.

이런 실태를 헤아리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공장에서는 자체로 관리간부들과 기술자, 기능공들을 양성해야 한다고, 앞으로 로동계급의 큰 집단이 되겠는데 이들중에서 전망성있는 좋은 동무들을 선발하여 관리간부들과 기술자들을 키워내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실지로 당장 공장을 전개하고 생산을 하자고 해도 그렇고 앞으로 생산을 정상화하고 규모를 확대하자고 해도 그것을 맡아할 관리간부들과 기술자, 기능공들이 부족한것이 문제였다. 그렇다고 당장 어디서 그 많은 일군들을 데려올수도 없는 형편이였다.

그러면 전시환경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것인가.

공장의 일군들은 막연한 심정으로 한숨만 쉬고있었다.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확고한 어조로 전쟁형편에서는 관리간부들과 기술자, 기능공들도 공장자체로 양성해내는 길밖에 없다고 하시면서 그 방도는 공장에 공장대학을 내오는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말씀을 들으며 공장의 일군들은 못내 걱정스러웠다.

한명의 로력이 긴장한 때에 대학을 내온다는것이 무슨 말씀인지…

아직은 뭐가뭔지 몰라 어리둥절해있는 공장일군들에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로동자들이 낮에는 공장에서 무기를 만들고 밤에는 학교에서 얼마든지 공부할수 있다고, 이렇게 하면 생산에서 리탈함이 없이 누구나 다 배울수 있고 훌륭한 기술자로 될수 있다고 알기 쉽게 설명해주시였다.

그제서야 비로소 수령님의 깊은 뜻을 깨닫게 된 일군들속에서는 환성이 터져나왔다.

지금까지 공부는 응당 대학에 가서야 하는것으로만 생각해왔던 일군들은 정말 그렇게 하면 꿩먹고 알먹는 격이라고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물론 전쟁을 하고있는 어려운 형편에서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우리는 지금부터 관리간부들과 기술인재들을 길러내야 전쟁의 종국적승리를 앞당길수 있으며 전쟁이 끝난 다음 파괴된 경제를 빨리 복구할수 있다고 강조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앞으로 전선에서 전투원들을 일부 소환하여 대학들에 보내려고 하는데 이 공장에서 일하던 동무들도 보내주겠다고 하시면서 당장은 평양공업대학(오늘의 김책공업종합대학) 분교형식으로 일하면서 배울수 있는 대학을 내와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일군들은 눈앞이 환해지며 마음이 든든해졌다. 불구름이 쏟아지고 포성이 울부짖고있었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승리한 조국의 래일을 내다보시며 민족간부들과 기술인재들을 잘 키워서 조국을 보란듯이 일떠세울 원대한 구상을 무르익히고계시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 또다시 공장을 찾으시여 공장대학창설준비사업을 구체적으로 지도해주시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깊은 관심과 세심한 지도에 의하여 주체40(1951)년 7월 15일 마침내 공장대학이 문을 열게 되였다.

조국과 인민의 운명이 판가름되는 전쟁의 불길속에서 태여난 첫 공장대학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