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3)중에서 


 

  

 

 주체58(1969)년 4월 15일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의 탄생 57돐이 되는 뜻깊은 날이였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만민이 경사스러운 명절로 경축하는 이날에도 집무실에서 일을 보시다가 점심시간이 퍽 지나서야 저택에들어서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축원의 인사를 드리려고 찾아온 몇몇 일군들과 함께 소박한 점심식사를 나누실 때였다.

잠시 옆방에 나갔던 민족보위성(당시)의 책임일군이 들어오더니 수령님께 영용한 인민군비행대가 미제의 대형정찰기 《EC-121》을 격추하여 동해바다에 수장시켜버렸다는 보고를 드리는것이였다.

이 통쾌한 소식에 일군들은 속이 다 시원해지는것 같았다. 그도 그럴것이 당시 미제는 그 전해에 있은 《푸에블로》호사건에서 교훈을 찾을 대신 새해벽두부터 《종합연습》이요, 《상륙훈련》이요 하는 전쟁연습을 련이어 벌려놓으면서 정세를 더욱 긴장시켰으며 동해상공과 최전연일대에서 공화국에 대한 공중정탐행위를 더욱 로골적으로 감행하고있었던것이다.

여기서 《주역》을 노는것이 바로 정찰기 《EC-121》이였다.

《EC-121》기로 말하면 전파탐지기들과 각종 수신기, 자료송신기 등 현대적인 전자정탐설비들을 종합적으로 갖추고있는 미제의 대형정찰기로서 조종사들외에 기재조종과 정탐자료의 종합분석, 자료전송 등 정탐활동에 종사하는 탑승인원이 30여명이나 되는 전문간첩비행기였다. 일본에 기지를 두고있는 이 간첩비행기는 조선동해상에서 정탐비행을 하면서 공화국의 령공을 침범하는 범죄행위를 무시로 감행하군 하였다.

그래서 벼르고있었는데 뜻깊은 날에 인민군비행대가 통쾌한 명중타격으로 단숨에 소멸해버렸던것이다. 최신전자기술을 믿고 정탐행위를 일삼고있던 미제의 대형정찰기를 즉시 포착하고 단숨에 격추소멸한것은 참으로 가슴후련한 쾌거였다.

한동안 기쁨에 넘쳐 흥성이던 일군들은 문득 《푸에블로》호사건의 여파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벌어진 간첩비행기격추사건으로 또다시 첨예화될 정세로 하여 마음이 저도 모르게 긴장해졌다.

그때였다. 수령님께서 방안이 쩌렁쩌렁 울리는 음성으로 왜 갑자기 말들이 없는가, 제 집에 들어온 도적을 때려잡는것은 너무나도 응당한 자위적조치인데 놀라울것이 있는가, 내가 전에도 여러번 말했지만 우리는 한평생 맞받아나가는 전술을 써왔다고 하시면서 미친개에게는 몽둥이찜질이 제일이다, 침략자들에게는 불벼락을 안겨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시는것이였다.

미친개에게는 몽둥이찜질이 제일!

침략자들에게는 불벼락을!

무비의 담력과 불같은 복수의 선언에 천하가 드르릉 울리는듯 하였다.

일군들은 수령님께서 지니신 철석의 신념과 무비의 담력에 다시금 경탄을 금치 못하였다.

수령님의 철석의 신념과 무비의 담력은 대형정찰기를 단방에 쏴떨군 인민군장병들에게 보내주신 축하문에도 력력히 어려있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축하문에서 신성한 우리 조국의 령공에 침입한 도발자들을 단호히 징벌한 인민군군인들의 영웅적위훈을 높이 평가하시면서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나는 동무들이 앞으로도 원쑤들의 그 어떠한 침략책동과 도발행동에 대하여서도 무자비하게 짓부심으로써 우리의 사회주의제도와 혁명의 전취물을 믿음직하게 수호하며 자기들에게 맡겨진 혁명임무를 영예롭게 수행하리라는것을 굳게 믿는다.》

구절구절마다 백두령장의 기상과 담력이 뜨겁게 맥박치는 축하문이였다.

미제의 대형정찰기를 쏴떨군 비행사에게는 공화국공민의 최고영예인 공화국영웅칭호가 수여되였다.

거듭되는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사랑과 믿음, 뜨거운 은정을 받아안은 인민군군인들의 가슴은 미제와의 또 한차례의 대결전을 승리에로 이끄신 수령님에 대한 경모의 정으로 차넘치였다.

사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미전부터 공화국의 자주권을 심히 유린하며 오만하게도 정탐행위를 일삼고있는 미제의 대형간첩비행기 《EC-121》을 단호히 징벌할것을 결심하고계시였다.

그러던 주체58(1969)년 3월 어느날 수령님께서는 조선인민군 총참모부의 한 일군에게 미제의 대형간첩비행기를 격추할데 대한 명령을 주시였다.

《EC-121》대형간첩비행기를 비행기로 잡을데 대한 방도를 밝혀주신 수령님께서는 작전전술적방침과 전투계획까지 구체적으로 세워주시였다.

그이의 명령을 받은 인민군비행기들은 만단의 전투태세를 갖추고 적의 정찰비행기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1969년 4월 15일 인민군대가 명절기분에 해이되여있으리라고 타산한 미제는 이날 점심때를 리용하여 대형간첩비행기 《EC-121》을 공화국령공에 침입시켜 정탐행위를 감행하게 하였다.

출격태세에 있던 인민군비행사들은 즉시에 리륙하여 오후 1시 40분에 적기를 포착하였다. 영용한 인민군비행사들은 수령님께서 가르쳐주신 전법대로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였다. 오만무례하게 날뛰던 미제의 대형간첩비행기 《EC-121》은 단방에 박산났으며 거기에 타고있던 30여명의 간첩들은 황천객이 되였다. 이것은 현대공중전에서 우리 식 공중전법의 위대한 승리였으며 선군으로 다져진 인민군대의 위력을 과시한 통쾌한 승리였다.

이처럼 미제의 대형정찰비행기를 단방에 쏴떨굴수 있은것은 전적으로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와 세심한 지도가 있었기때문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령님께서는 그 공로와 영예를 고스란히 인민군군인들에게 돌려주신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사랑과 믿음에 고무된 인민군비행사들을 비롯한 전체 인민군군인들은 그이께서 가르쳐주신대로 원쑤들의 그 어떠한 침략책동과 도발행동에 대하여서도 무자비하게 짓부셔버릴 결의에 충만되였다.

미제의 대형정찰기 《EC-121》이 격추되였다는 소식에 세계는 죽가마 끓어번지듯 하였다. 세계의 통신보도수단들은 《조선중앙통신 미군대형정찰기격추에 관해 보도하면서 미제침략자들은 조선인민군의 경고가 빈말이 아니라는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언명》, 《날아가는 <푸에블로>호가 격추되였다.》고 하면서 앞을 다투어 전파를 날렸으며 AFP통신은 《미해군정보수집선 <푸에블로>호가 북조선에 나포된지 불과 15개월만에 미대형정찰기 1대가 북조선의 포화에 격추되였다고 알려져 닉슨행정부는 중대한 사건에 직면하게 되였다.》고 보도하였다.

세계면전에서 또다시 참패를 당한 미제는 늘 써오던 상투적수법대로 저들의 간첩비행기가 《공해상》에서 《합법적인 정찰활동》에 종사하다가 격추당하였다고 하면서 오히려 도적이 매를 드는 격으로 인민군대의 자위적조치를 두고 《침략행위》라고 떠들어댔다.

미국의 전쟁광신자들은 미국본토에 있는 륙해공군과 극동에 있는 저들의 침략무력에 《경계태세》를 갖출것을 명령하였으며 남조선주둔 미제침략군과 남조선괴뢰군 전체 부대들에 《비상경계령》을 내리였다. 또한 미제7함대소속 항공모함들과 숱한 함선들로 《기동함대》를 편성하여 조선동해에 들이밀었다.

조선반도의 정세는 극도로 긴장해졌다. 전쟁의 위험이 더욱더 짙어가는 가운데 또다시 세계의 이목은 조선으로 집중되였다.

《EC-121》기격추사건이 있은 다음날인 주체58(1969)년 4월 16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중앙위원회, 내각, 조선인민군 책임일군들에게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는 미제침략자들을 철저히 섬멸할것이라고 단호히 언명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미제의 광란적인 전쟁소동에 대처하여 군사지휘관회의를 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에 참가한 인민군대의 지휘성원들에게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미제국주의자들의 그 어떤 침략책동이나 위협공갈에도 절대로 무릎을 꿇을수 없습니다. 사람이란 태여날 때부터 자유를 가지는데 무엇때문에 우리가 적들의 위협공갈앞에 무릎을 꿇겠습니까. 우리는 미제침략자들에게 절대로 굴복하지 않을뿐아니라 적들이 위협공갈하는것을 보고 가만히 있지 않을것입니다. 만일 적들이 우리를 건드리며 접어든다면 우리는 용감히 맞받아나가 싸울것입니다. 우리를 치러 오는 적과는 싸우는 길밖에 없습니다. 적들의 《보복》에는 보복으로,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 대답하여야 합니다.

계속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쟁에서 승리할수 있는 요인을 천명하고나시여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동무들은 조국을 위하여, 인민을 위하여, 당을 위하여, 위대하고도 성스러운 혁명위업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 싸울 각오를 굳게 가져야 하겠습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은 회의참가자들로 하여금 드높은 투쟁결의로 피가 끓게 하였다.

회의참가자들은 모두 자리를 차고 일어나 《싸우겠습니다!》라는 웨침과 장내가 떠나갈듯 한 만세의 환호로 수령님의 말씀에 화답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기세충천한 군사지휘관들의 결의에 매우 만족해하시면서 적들이 덤벼들면 단매에 쳐부실수 있도록 전투준비를 빈틈없이 갖출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한편 공화국정부는 성명을 발표하여 전쟁소동에 매달리는 미제의 침략성을 세계앞에 고발하고 조선인민의 철저한 반미립장을 엄숙히 선언하였다.

전체 군대와 인민은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관철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섰다. 부대, 구분대들에서는 모든 군인들이 미제와 결사전을 벌릴 만단의 전투태세를 갖추었으며 로동자, 농민, 청년학생들을 비롯한 온 나라 전체 인민이 한손에는 낫과 마치, 펜을, 다른 한손에는 총을 들고 산악처럼 일떠섰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미제의 정치외교적공세도 단호히 짓부셔버리시였다.

이 시기 미제는 어느 한 나라에 우리 공화국이 《사과》를 하도록 압력을 가하며 격추된 저들 비행기의 수색작전에 협조해줄것을 요구하였다.

그리하여 미제의 사촉을 받은 이 나라의 고위인물이 우리 나라에 찾아와 위대한 수령님께 자기 나라 주재 미국대사관에서 보내는 편지를 내놓으면서 미국의 요구를 들어줄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수령님께서는 즉석에서 이 황당한 요구를 일축해버리시고 만약 미제침략자들이 대형간첩비행기 《EC-121》사건을 구실로 《보복》으로 나오거나 전쟁을 일으키면 우리도 《보복》에는 보복으로, 전쟁에는 전쟁으로 대답할것이라고 엄숙히 언명하시였다.

그 어떤 군사적위협이나 정치외교적공세앞에서도 눈섭하나 까딱하지 않으시는 수령님의 강인담대한 기상과 드센 배짱, 그이의 선군령도따라 한사람같이 일떠선 천만군민의 기상앞에 미제는 전률하였다.

결국 앞으로의 사태발전은 우리 공화국의 《반응여하》에 달려있다느니 뭐니 하면서 우리를 위협하던 미제는 슬그머니 저들의 침략무력을 걷어가지고 꽁무니를 빼고말았다.

이렇듯 대형간첩비행기 《EC-121》격추사건을 계기로 《강대국》으로 자처하던 미제의 취약성은 여지없이 드러났다.

미제는 여기에서 응당한 교훈을 찾아야 하겠으나 《EC-121》기격추사건이후인 1969년 8월에도 군용비행기 《OH-23G》를 군사분계선너머 우리측 지역에 침입시키는 등 군사적도발을 계속 감행하였다.

하지만 도발자들의 운명이 달리는 될수 없었다.

선군령장의 슬하에서 무적의 일당백용사들로 자라난 인민군군인들이 도발자들에게 강력한 타격을 안기였던것이다.

그 타격은 가장 무자비하고도 단호한 그리고 가장 철저한 타격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