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3)중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의 선군길은 동지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믿음, 헌신의 자욱으로 수놓아진 길이였다.

이 나날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 백두산시절의 혁명전우들인 항일혁명투사들에게 베푸신 사랑과 믿음은 각별한것이였다.

주체52(1963)년 8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과 함께 백두산에 오르시였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이 조종의 산으로 일러온 백두산, 그 웅장함과 장엄함으로 하여 보는 사람마다 숭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백두산은 항일혁명의 영웅적인 기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혁명의 성산이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백두산의 주봉인 장군봉에 오르시여 소백산, 포태산, 베개봉을 비롯하여 백두산주변일대를 부감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일제와의 혈전을 벌리시던 나날들과 백두산시절의 전우들을 감회깊이 추억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잊지 못하시는 백두산시절의 전우들, 그들은 항일전의 나날 주체의 선군혁명위업을 총대로 받들어온 총대동지들이였다.

하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전의 그때처럼 변함없이 선군혁명대오의 맨 앞장에 서있는 항일혁명투사들을 더없이 아끼고 사랑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혁명투사들을 자신의 오랜 혁명전우로 내세우시며 그들에게 크나큰 사랑과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주체50(1961)년 11월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외국대표단 성원들과 함께 어느 한 공군부대를 돌아보시였다.

어느덧 시간이 퍼그나 흘러 수령님을 모신 일행이 점심식사를 위해 식당에 이르렀을 때였다.

그때 수령님을 식당에 안내해드린 공군사령관은 식당안으로 들어가시는 그이께 방해될가봐 슬그머니 한쪽옆으로 물러섰다.

그런데 식당안으로 들어가시려던 수령님께서 뒤에 서있는 그에게 다정하신 음성으로 《공군사령관동무는 다른데 가지 말고 우리와 함께 식사합시다.》라고 말씀하시는것이였다. 그러시고는 머뭇거리는 그를 어서 들어가자고 하시며 따뜻이 손잡아 이끄시였다.

외국손님들의 눈길은 한결같이 수령님의 손길에 이끌려 식당안으로 들어서는 그에게로 집중되였다.

수령님께서는 외국손님들에게 그를 가리키시며 《공군사령관동무는 오래전부터 우리와 함께 싸운 혁명전우입니다.》라고 감회깊은 어조로 소개하시였다.

오래전부터 함께 싸운 혁명전우!

순간 그 군사지휘관은 항일혁명투사들에 대한 수령님의 믿음과 사랑이 얼마나 크고 뜨거운가를 새삼스럽게 느끼였다.

돌이켜보면 망국노의 아들로 이역땅에서 태여난 그가 처음 혁명의 길에 나섰을 때 그는 혁명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고 지어 총을 쏘면 총알이 깍지채로 나가는것으로 알 정도였다.

수령님께서는 그러한 그에게 혁명의 원리와 필승의 신념을 심어주시고 기묘한 전법과 전술도 하나하나 배워주시여 그를 견결한 혁명가로, 유능한 군사지휘관으로 키워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이렇게 성장한 그에게 해방후 보안간부훈련소의 책임적인 사업을, 조국해방전쟁시기에는 조선인민군 사단장, 군단장의 중임을 맡겨주시였다. 또 전후에는 어느 한 군사학교의 교장, 공군사령관의 중요한 직책도 맡아 수행하도록 크나큰 믿음을 주시였다. 이처럼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가장 아끼고 사랑하시던 무관들중의 한사람이였다.

이러한 투사였기에 그는 항일전의 자세그대로 혁명의 군복을 입고 나라의 군력강화를 위한 사업에 자신의 티없이 맑고 깨끗한 마음을 바쳐오고있었다.

그럴수록 전사들에 대한 수령님의 사랑과 믿음은 더해만졌다.

수령님께서는 이날도 사랑하는 전사를 더욱 내세우고 위해주고싶으시여 모처럼 마련된 점심식사시간에 그렇듯 뜨거운 사랑과 믿음을 또다시 부어주시는것이였다.

크나큰 격정에 휩싸여 몸둘바를 모르고 서있는 투사를 자신의 옆자리에 앉혀주신 수령님께서는 둘러앉는 외국손님들에게 그가 항일무장투쟁시기나 조국해방전쟁시기에는 물론 전후에도 계속 군대에서 일하다보니 언제 한번 마음놓고 식사하지 못하였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참으로 웅심깊으신 그이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져있는 말씀이였다.

사실 한평생을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모든것을 바쳐오신 수령님께서는 어느 하루도 편히 쉬신적이 없으시였으며 때식마저 잊고 일하신적이 수없이 많으시였다. 하건만 그이께서는 오히려 투사의 사업과 생활에서 있을수 있는 사소한 문제에 대해서까지 념려하시면서 점심식사라도 함께 나누시려 마음쓰시는것이였다.

수령님께서는 밥상우의 맛있는 음식들을 손수 골라집으시여 앞그릇에 놓아주시면서 《오늘은 사양하지 말고 많이 드시오.》라고 사랑넘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한없이 자애롭고 따사로운 사랑에 수많은 격전장을 헤쳐오며 산전수전 다 겪은 투사는 감격에 목이 메였고 그자리에 참석한 외국손님들은 한동안 음식을 들지 못한채 눈앞에 벌어진 광경을 감동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손님들은 그날 자기들이 목격한것이 투사들이 받아안은 사랑과 믿음을 보여주는 하많은 사실들중의 하나에 불과한것이라고는 알지 못하였다.

이날 수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믿음을 받아안은 그 투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투사의 사업과 생활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들을 극진히 보살펴주시였으며 그가 한생을 군복을 입고 조국과 민족을 위한 성스러운 길을 변함없이 걸어나가도록 따뜻이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그리하여 그는 생의 마지막까지 인민군대의 책임적인 위치에서 사업하면서 값높은 삶을 누릴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혁명투사들의 건강에 대해서도 친어버이심정으로 따뜻이 보살펴주시였다.

주체52(1963)년 8월 어느날 민족보위성(당시)의 책임적인 위치에서 일하던 한 항일혁명투사는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였다.

수령님을 만나뵈올 때마다 주로 군사사업과 관련된 말씀을 받군 하던 그는 이날도 그이께서 인민군대의 전투준비와 전투력강화에서 급히 풀어야 할 무슨 중요한 문제를 가르쳐주시기 위해 찾으실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수령님께서는 이날 전연에서 만나보신 한 지휘관의 건강상태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그의 건강문제를 두고 몹시 걱정하시는것이였다.

수령님의 뜻밖의 말씀에 책임일군은 몸둘바를 몰랐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토록 걱정하시는 그 지휘관으로 말하면 어제날 수령님을 따라서 백두의 험산준령을 넘어왔고 전쟁시기에는 련합부대를 이끌고 미제를 무찌르는 싸움에서 위훈을 세워 수령님으로부터 당과 혁명에 충실한 동무라는 높은 평가를 받은 항일투사였다.

그러한 그가 건강때문에 애를 먹고있다는것은 책임일군도 모르는바가 아니였지만 군의국에만 방임하다보니 그의 건강을 잘 돌보지 못하였었다.

그런데 수령님께서는 전연부대를 현지지도하시는 과정에 그를 잠간 만나보시고도 그의 건강이 좋지 못하다는것을 대뜸 헤아리시고 이처럼 걱정하시는것이였다.

수령님께서는 자책감에 잠겨있는 일군에게 항일무장투쟁에 참가하였던 사람들가운데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이 적지 않은것 같다고 하시면서 항일투사들의 건강상태에 대해 일상적으로 알아보고 건강관리를 잘하도록 통제도 하고 해당한 대책도 세울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잠시 무엇인가 생각하시는듯 말씀을 멈추시고 그를 바라보시던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그 지휘관의 건강이 원만하지 못한것만큼 그를 기본부대에 그냥 있게 하면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기 힘들것 같다고 하시면서 그를 평양에 있는 군관학교 교장으로 올려오는것이 좋겠다고, 그러면 자신께서도 자주 나가볼수 있고 그가 치료받기에도 편리할수 있지 않겠는가고 말씀하시였다.

동지에 대한 한없이 고결하고 뜨거운 사랑이 어린 수령님의 말씀을 받아안으면서 일군은 그이의 품속에 안겨 혁명하는 전사된 긍지와 행복을 다시한번 뜨겁게 절감하였다.

이렇게 되여 전연에서 사업하던 그 투사는 평양으로 올라오게 되였으며 수령님의 다심하신 보살피심속에 병치료를 받게 되였다.

그이께서는 여러차례에 걸쳐 건강관리를 잘할데 대하여 말씀을 주시였을뿐아니라 경치좋은 휴양소들에도 그를 매해 선참으로 보내주시였다.

투사의 건강은 점차 좋아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투사는 병이 갑자기 악화되여 생사기로에 놓이게 되였다. 세월따라 더해만 가는 수령님의 뜨거운 사랑에 보답하고저 일에 무리하다보니 호전되여가던 병세가 심해졌던것이다.

이 사실을 보고받으신 수령님께서는 선뜻 믿어지지 않으시여 다시한번 그의 병상태를 물으시고 한동안 아무 말씀도 없으시다가 갈리신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밤알처럼 딴딴하고 팔팔하던 동무가 어떻게 되여 그렇게 허약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2∼3년전에도 그 동무의 건강이 념려되여 휴식하라고 하였는데 그는 그냥 일을 하다가 그렇게 된것 같습니다.

그러시면서 수령님께서는 국가적으로 유능한 의사들을 불러 치료대를 뭇고 그 동무를 꼭 살려내야 한다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곧 그를 소생시키기 위한 전투가 낮과 밤이 따로없이 계속되였다.

치료전투가 벌어지던 나날 수령님께서는 하루에도 몇번씩 병원에 전화를 거시여 환자의 치료정형을 료해하시고 그를 어떻게 해서든지 꼭 살려낼데 대하여 거듭 당부하시였다.

그 사랑, 그 은정속에 치료전투의 나날이 흘러 열하루되는 날 아침 환자는 드디여 의식을 회복하였다.

생사기로에서 헤매이던 그가 다시 소생하여 새날의 아침해빛을 받게 된것은 결코 현대의학이 가져다준 혜택이 아니였다.

그것은 한 전사의 생명을 위해 국가적인 조치를 취해주시고 끊임없이 보살펴주신 수령님의 열화와 같은 사랑이 그대로 불사약이 되여 가져온 기적이였다.

수령님께서 투사의 건강을 위해 베푸신 사랑은 이뿐이 아니였다. 그이께서는 그의 건강회복을 위해 귀중한 약재도 보내주시였으며 치료사업을 더 잘해서 하루빨리 그를 본래의 상태대로 회복시킬데 대하여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실로 그이의 사랑은 한량없는것이였다.

수령님께서는 그후에도 투사의 건강을 수시로 알아보시고 아직도 후유증이 남아있는 그의 건강을 념려하여 집중치료를 진행하게 하시고는 그 경과가 좋아진데 대하여 기뻐하시면서 치료사업을 절대로 소홀히 하지 말데 대하여 거듭 당부하시였다.

그리고 그의 제대문제가 상정되였을 때에는 비록 그가 몸이 불편하지만 쉽게 군복을 벗지 않을것이라고, 그는 우리가 그처럼 념원하는 조국통일위업도 수행하지 못하고 군복을 벗으려 하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본인의 제의대로 군복을 벗기지 말고 병치료를 계속하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하여 그는 70고령의 나이에까지 군복을 입고 영광스러운 선군혁명의 한길을 변함없이 걸어갈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베푸신 이 사랑은 비단 그만이 아닌 항일혁명투사모두가 받아안은 사랑이였으며 믿음이였다.

정녕 그 사랑, 그 믿음은 항일혁명투사들로 하여금 위대한 수령님의 선군혁명동지의 영원한 모습으로 억세게 서있게 한 힘의 원천이고 자양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