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태양 김정일장군』  (3권)중에서

 력사적인 평양상봉이후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밑에 통일의 새시대가 열리고있는 가운데 북남사이에 경제협력의 새로운 장이 펼쳐졌다.

북남경제협력은 민족의 화해와 단합, 조국통일의 숭고한 목적을 하루빨리 실현하고 북과 남의 경제를 균형적으로, 합리적으로 발전시켜 민족의 부강번영을 도모할수 있게 하는 중요한 사업이다. 북남경제협력은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을 구현하여 조국통일과 민족공동의 번영을 이룩하기 위한 애국애족사업이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력사적인 로작 《혁명과 건설에서 주체성과 민족성을 고수할데 대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오늘 조선사람에게 있어서는 민족의 분렬로 말미암아 일시적으로 형성된 제도상차이나 사상과 리념, 정견과 신앙의 차이, 계급과 계층의 차이를 초월하여 모두가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조선민족의 한 성원으로서 참답게 살며 민족공동의 목적을 위하여 자기를 바치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조선민족의 피와 넋을 지닌 사람이라면  어떤 사회제도하에서 어느 계급과 계층에 속해있건, 국내에서 살건 해외에서 살건 모두가 자신의 운명을 나라와 민족의 운명과 결합시키고 조국의 자주적통일과 민족의 륭성번영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다 바쳐 투쟁하여야 한다.》

북과 남은 6.15북남공동선언리행을 위한 조치의 하나로서 경제협력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여러 갈래의 회담과 접촉들을 진행하였다.

주체89(2000)년 7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된 4차례의 북남상급회담들에서는 북남사이의 경제협력을 활성화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장치들을 마련하고 북남경제협력추진위원회를 구성운영할데 대한 문제, 남조선어민들에게 우리의 동해어장을 제공하기 위한 북남어업회담을 개최할데 대한 문제 등이 토의되였다. 상급회담들에서 제기된 경제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같은 해 9월 25일과 12월 27일에는 평양과 서울에서 북남경제협력추진위원회가 열리였다.

그리고 주체89(2000)년 12월에 서명된 북남경제협력합의서에 따라 북과 남사이의 투자보장과 2중과세방지, 상사분쟁해결절차, 청산결제를 기본내용으로 하는 4개 경제협력합의서가 판문점을 통해 서로 교환하게 됨으로써 경제협력과 교류가 보다 원만하게 실현될수 있는 조건을 마련할수 있게 되였다.

원래 북과 남사이에는 이미전부터 협력교류에 관한 문제를 합의하고 이 사업들을 추진시켜왔다. 그런데  남조선의 력대 집권자들의 방해책동으로 하여 거의 진척되지 못했다. 남조선당국은 1989년 6월 12일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기본지침》이라는것을 발표하였지만 그것은 사실상 북과 남사이의 경제협력을 억제하고 날로 높아가는 남조선인민들의 통일열기를 식히기 위한것이였다. 남조선당국의 반통일적책동으로 인하여 북과 남 당국간의 경제협력사업은 거의 진행되지 못했으며 우리의 성의에 의하여 남조선의 극히 일부 민간기업인들과의 교류가 이루어졌을뿐이였다.

주체89(2000)년 력사적인 6.15북남공동선언이 발표됨으로써 경제협력과 교류의 길이 열리게 되고 경제협력사업이 활기를 띨수 있게 되였던것이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넓어진 경제협력교류의 길을 따라 찾아오는 남조선의 경제인들을 혈육의 정으로 따뜻이 맞아주게 하시고 선군령도의 바쁘신 속에서도 그들에게 깊은 관심을 돌려주시였다.

그들가운데는 장군님께서 북남경제협력의 개척자로 민족앞에 높이 내세워주신 남조선《현대그룹》의 정주영과 그의 가족들도 있었다.

력사적인 평양상봉이 있은 직후인 주체89(2000)년 6월 29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평양을 찾아온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그의 아들인 정몽헌회장을 몸소 만나주시였다. 정주영명예회장과 그일행은 장군님께서 귀중한 시간을 내시여 자기들을 만나주신데 대하여 뜨거운 감사의 인사를 올리였다.

정주영명예회장이 장군님을 만나뵈옵는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였다. 두해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한없이 넓으신 도량과 포옹력으로 그에게 북남경제협력사업을 위한 래왕의 넓은 길을 열어주시고 선군혁명령도의 바쁘신 속에서도 동포애의 정으로 그를 따뜻이 만나주시고  뜨거운 은정을 베푸시였다.

주체87(1998)년 10월 30일 장군님께서는 현지지도도중에 평양에 돌아오시여 자정이 가까와오는 깊은 밤에 정주영과 그일행이 들어있는  숙소를 찾으시여 오랜 시간에 걸쳐 만나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그들과 따뜻한 이야기를 나누시며 체류기간 불편한 점들은 없었는가, 정주영선생이 다리를 불편하게 쓰는것 같은데 어떻게 되여 그렇게 되였는가, 자신께서는 정주영선생이 한번 하자고 마음먹으면 끝까지 내미는 성미를 가지고있는분으로 알고있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우리 민족이 잘되고 잘살게 하자는 사람들과는 그 누구와도 언제나 손잡고 나갈것입니다.》

장군님께서는 계속하여 공업지대를 창설하는 문제, 평양에 실내체육관을 건설하는 문제, 체육분야에서 북과 남의 교류를 진행할데 대한 문제 등 경제문화분야에서의 협력교류문제를 비롯하여 그들이 제기하는 문제들에 대하여 명철한 대답을 주시였다.

장군님의 따뜻한 동포애적사랑과 세심한 보살피심에 커다란 감동을 받은 정주영명예회장과 그일행은 북남경제협력사업을 잘해나가겠다고 말씀드렸다.

이날 정주영명예회장은 장군님을 잠간만이라도 만나뵙고 자기가 운영하던 《현대》의 기업을 넘겨주게 될 아들을 장군님앞에 내세우고 장군님을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어 가문의 가보로 물려주고싶었던 간절한 소망을 모두 실현하였다.

정주영명예회장은 고향을 둔 북에 자주 오라고 하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다심하고도 고마운 그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주체88(1999)년 한해동안에만도 세차례나 북행길을 다녀갔으며 그때마다 북남경제협력과 관련한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았다.

장군님께서는 이 기간 《현대그룹》에 금강산관광개발권을 비롯한 중요대상들에 대한 우선권, 독점권을 주도록 하시였고 평양과 서울에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략칭 아태)와 《현대》간의 롱구경기를 조직하도록 하심으로써 《현대그룹》의 지위를 더욱 높여주시였다.

정주영명예회장과 《현대그룹》은 자기들을 민족앞에 높이 내세워주시는 장군님의 뜨거운 동포애적사랑에 크나큰 자부심을 가지고 북남경제협력사업을 전개해나가고있었다.

그러한 때 장군님께서 력사적인 6.15북남공동선언을  발표하시여 민족앞에 통일의 휘황한 리정표를 세워주신데 흥분된 정주영명예회장은 또다시 그이를 만나뵙지 않고서는 견딜수가 없어 한달음에 평양에 달려왔던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격정에 휩싸여있는 그들일행을 뜨겁게 환영해주시고 그의 건강상태며 기업형편에 대하여 하나하나 료해하시였다. 그러시고는 개성공업지구건설과 금강산관광사업을 비롯한 경제협력사업에서 제기되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흔연히 모두 풀어주시였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방북의 길은 정주영명예회장선생이 선참으로 개척하였다고, 명예회장선생은 민족이 화해하는 길을 열어놓은 개척자와 다름없다고, 명예회장선생의 공적은 앞으로 력사에 큰 장을 차지하게 될것이라고 높이 평가하시면서 뜨거운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장군님의 말씀을 받아안은 명예회장은 감격에 겨워 《고맙습니다. 장군님!》 이렇게 거듭 인사드리며 그이를 우러렀다. 80고령의 그의 눈가에 뜨거운 이슬이 맺히였다. 그것은 자기의 한생을 장군님의 크나큰 믿음과 은정에 보답하는 길에 바치려는 마음의 표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은 일생을 리기적인 치부를 위해 정신없이 뛰여온 자기의  혼탁한 가슴에 생의 보람을 가득 채워주신 위대한 스승이시고 통일애국의 길로 이끌어주신 은혜로운 사랑의 태양이시였다.

돌이켜보면 그는 수십년세월 《기업으로 민족의 자부심을 높이 세우겠다》는 나름대로의 신조를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 하지만  진정한 애국의 길을 몰랐던탓에 그의 삶은 《재벌》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날수 없었다.

정주영은 남조선의 《일등재벌》로 불리우는 《현대그룹》의 창업주, 명예회장으로서 한때는 정계에 진출하여 《대통령》후보로까지 나섰던 사람이였다. 그러나 그의 한생은 한마디로 말하여 재벌로서의 한생이였다.

더우기 당시 남조선당국자들이 기만적인 《정경분리원칙》에 기초한 《남북경제협력활성화》를 제창하며 우리를 《개혁, 개방》에로 유도하려고 기도하고있던 조건에서 남조선의 손꼽히는 대기업가를 받아들인다는것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였다.

그러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의 긴 과거보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이나마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무엇인가 이바지하려고 나선 그의 결심을 더 소중히 여기시고 일행이 판문점을 통해 북측을 방문할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였다. 그리고 그를 남조선의 애국적경제인으로 내세워주시고 북남경제협력의 길, 민족화해의 길로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시였으며 오늘은 민족화해의 길을 열어놓은 개척자라는 높은 평가의 말씀까지 해주시는것이였다.

불세출의 위인의 은정속에 애국적경제인으로 민족앞에 서게 된 그의 심장은 사그라져가던 삶의 의미를 다시 등불처럼 빛나게 해주신 고마움과 감사의 정으로 하여 금시 터지는듯 싶었다.

참으로 그에게 있어서 장군님은 정신적방랑으로부터의 구원자이시고 참다운 애국의 길로 이끌어주신 위대한 스승이시였다.

장군님께서 거듭 베풀어주시는 크나큰 은정에  매혹된 정주영명예회장은 그이를 만나뵙고 엄지손가락을 내흔들며 《과시 장군중의 장군》이시라고 격정을 터뜨렸으며 《김정일장군은 대담하시고 시원시원하시고 통이 크시다. 장군님을 만나뵙고나니 정말 이제는 통일은 다된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자기의 진정을 터놓았다.

그는 남조선에 돌아가서는 《김정일장군 제일》이라고, 《내가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장군이라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봤어도 장군다운 장군은 김정일장군이 처음이다.》라고 격조높이 웨치며 그이를 우러러 칭송하였다. 그의 아들  정몽헌도 경애하는 장군님을 《도량이 크신분》, 《웃사람을 공경하는 마음이 강하신분》으로 존경을 금치 못했으며 그의 녀동생은 《김정일장군의 모습에서 김일성주석의 모습을 보았다.》, 《하고싶은 이야기를 자신감이 있게 하시는분》 등 자기들이 받은 감동에 대하여 눈물을 머금고 이야기하였다.

장군님을 처음으로 만나뵈온 직후 남조선을 행각한 미국대통령 클린톤과 미행정부의 대북정책조정관 페리로부터 면담요청이 제기되였을 때에 정주영명예회장은 몸이 불편하다는 핑게로 그들의 요청을 단호히 거절하기도 하였다. 이에 대하여 남조선의 어느 한 출판물은 《외교관들과 정부관리들의 무조건적인 대미추종에 자존심이 상해왔는데 미국대통령의 면담요청마저 거절한 정명예회장의 주대는 높이 평가할만 하다.》고 했다.

그의 이와 같은 행동은 이 세상 제일의 위인중의 위인이신  김정일장군님으로부터 신임과 사랑을 받아안은 행운아라는 더없이 높은 인간적, 민족적자존심이 그의 가슴속에 깊이 자리잡고있었기때문이였다.

이렇듯 북남경제협력의 개척자로 높이 평가해주시고 내세워주신 장군님의 크나큰 믿음과 사랑을 받아안은 정주영명예회장과 정몽헌회장은 자기들의 생을 그에 보답하는 길에 바쳤다.

주체90(2001)년 3월 21일 정주영명예회장은 로환으로 86살에 사망하였다.

정주영명예회장이 사망하였다는 슬픈 소식을 받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못내 애석해하시며 그 즉시 조의표시를 특별히 잘할데 대하여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러시고도 아픈 가슴을 달랠수 없으시여 3월 22일 자신의 이름으로 정주영명예회장의 유가족들에게 조전을  보내시였다.

 정주영선생의 유가족들에게

나는 북남사이의 화해와 협력, 민족대단결과 통일애국사업에 기여한 정주영선생의 사망에 즈음하여 현대그룹과 고인의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

김  정  일

주체90(2001)년 3월 22일 평양

통일애국사업에 이바지한 남조선의 한 대기업가를 나라와 민족앞에 내세워주시려는 장군님의 하해같은 은정이 자자구구에 어려있는 조전은 만사람의 가슴을 후덥게 해주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전을 보내신 다음날에는 고인을 추모하여 조의대표단을 파견할데 대한 특별조치까지 취해주시였다. 그리하여 3월 24일 오전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조의대표단이 북남직항로를 따라 비행기로 서울을 향해 날아가게 되였다.

장군님의 크나큰 은덕에 의해 어제는 정주영명예회장이 살아생전에 민간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판문점을 거쳐 북행 길에 올랐다면 그가 사망한 오늘에는 또 이렇게 장군님께서 파견하신 조의대표단이 고인을 추모하여 분렬의 장벽을 날아넘고있었다. 이 광경은 정녕 통일애국에 나선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이든 끝까지 믿고 품어주시는 장군님의 위대하신 덕망과 숭고한 광폭정치를 온 세상에 보여준 하나의 력사적화폭이였다.

조의대표단은 고인의 빈소를 찾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보내시는 화환을 정중히 진정하였다. 그리고 대표단단장은 장군님께서 보내신 따뜻한 위로의 말씀을 유가족들에게 정중히 전달하였다.

민족의 태양이신 김정일장군님의 정깊은 말씀을 전달받고 화환에 모셔진 위대하신 존함을 우러르면서 유가족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였다.

장군님께서 남조선의 한 대기업가의 사망과 관련하여 력사상 처음으로 조의대표단을 파견해주시고 조전과 화환을 보내주신 소식은 남조선에 일대 파문을 일으켰다. 남조선의 신문, 방송들은 이 소식을 일제히 보도하였고 각계층 인사들은 장군님의 고매한 덕망에 감탄을 금치 못해하였다.

장군님께서는 정주영명예회장의 애국적소행을 잊지 않으시고 그가 사망한 후에도 남조선의 《현대》가 금강산관광활성화를 위한 사업을 계속 추진하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였고 주체92(2003)년 4월 평양의 보통강기슭에 체육관이 건설되였을 때에는 류경정주영체육관으로 명명하도록 하시여 그의 이름이 후세에 길이 전해지게 해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정몽헌회장이 사망하였을 때에도 유가족들에게 아까운 사람이 갔다고 위로의 말씀도 보내주시고 금강산에 그의 추모비를 세우고 추모행사를 하도록 해주시였다. 통일애국의 길에 바친 정주영부자의 깨끗한 성의와 땀을 잊지 못하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정몽헌회장이 사망한지 1년이 되는것과 관련하여 위문전문도 보내주고 금강산에서 진행된 추모행사에 우리 일군들이 참가하도록 하여주시였다.  

이것은 비단 남조선의 한 기업가가정에 베푸시는 은정만이 아니라 남녘겨레에게 베푸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어버이사랑이였다.

력사적인 평양상봉의 나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남조선당국자가 림진강수해방지문제를 비롯한 여러 문제들을 제기하였을 때에도 즉석에서 필요한 모든 대책을 다 세워주시였으며 물부족을 느끼고있는 남녘겨레들을 생각하시여서는 금강산물을 가져다 쓰도록 은정어린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뿐만아니라 장군님께서는 남에서 온 기업가들을 몸소 만나주시고 경제협력과 관련하여 그들이 제기하는것이라면 어려운 문제들도 다 풀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 넓은 도량과 은정을 가슴에 새겨안고 남조선의 경제인들은 통일애국사업에 떨쳐나섰다.

이렇듯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마련해주신 력사적인 6.15북남공동선언과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 그이의 뜨거운 동포애적사랑이 있어 북과 남사이의 경제협력이 날을 따라 더욱 활발해지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