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인민적 시책에 비낀 위인일화  중에서

1. 가장 우월한 교육제도를 마련해주시여

(3)

□ 정치위원회결정으로 채택된 견학문제

1960년대의 마지막해가 저물어가고있던 12월말의 어느날, 그날은 일요일이였다.

이날 오후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평양시 중구역에 있는 한 학생의 가정을 방문하시였다.

학생의 학습과 소년단조직생활정형을 알아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엇인가 생각되는것이 있으신듯 그 집을 나서시는 길로 학교를 하나 찾아가보자고 하시며 중구역의 평양창전중학교가 있는 곳으로 앞서 걸으시였다.

학교에는 마침 소년단실을 꾸리느라 몇명의 학생들과 교원들이 나와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과 마주앉으시고 학교의 교육과정안이 어떻게 되여있고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써먹기 위해 어떤 대책을 세우고있는가를 알아보시였다.

그러나 학교의 실태는 그이의 기대와는 퍽 먼거리에 있었다. 어떤 학생들은 소나 돼지도 잘 모르고 산과 바다도 모를뿐아니라 강철이며 기계들이 어떤 공정을 통하여 생산되는지도 모르고있었다.

늦은저녁에야 그이께서는 사색깊은 걸음으로 학교정문을 나서시였다. 그것은 이 학교에서 학생교육과 관련하여 시급히 대책을 세워야 할 문제가 있다는것을 다시한번 헤아리시였기때문이였다.

다음날 한 일군을 부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아이들을 키우는데서 문제가 있는것 같아 의견을 좀 들어보자고 불렀다고 하시며 자리를 권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최근에 평안북도를 비롯한 지방의 학교들을 돌아보아도 그렇고 어제 학생들의 가정과 학교를 찾아가보아도 그렇고 지금 학생들이 현실을 잘 모르고있는데 아이들을 이렇게 키우면 나중에 어떻게 되는지 아느냐고, 그렇게 되면 우리 아이들이 숙맥이 되여버린다고 하시면서 숙맥이란 무슨 말인지 아는가고 물으시였다.

그가 평소에 알고있던대로 어리숙하고 주대가 없는 사람을 비겨 이르는 말같다고 말씀드리자 그이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더니 숙맥이란 밀, 보리도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일깨워주시였다.

그러시면서 현지지도과정에 만나시였던 산간지대의 어느 한 학교학생들에 대하여 말씀해주시였다.

그때 학생들은 바다도 보고 황해제철소와 같은 큰 공장들도 보았는가고 물으시는 위대한 수령님께 하나같이 큰소리로 보았다고 대답을 올리였으나 그러니 기차도 타보고 배도 타보았겠다고 하시는 그이의 말씀에는 대답을 못하고 서로 얼굴만 마주보았다.

잠시후 한 학생이 기차나 배 같은것은 영화에서만 보았다고 말씀드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럼 바다도 큰 공장도 영화에서 보았는가고 물으시였다.

순박하고 천진스러운 두메산골의 학생들은 일제히 《예.》 하고 합창을 하듯 대답하였다.

그이께서는 그만 가슴이 아프시여 고개를 돌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그때 나는 이 학교가 깊은 산골에 있는 학교여서 그런가부다 했는데 창전중학교를 돌아보고 일군들의 말까지 들어보니 이것이 전반적형편이라는것이 명백해졌다고 하시면서 이러다간 정말 우리 아이들을 다 숙맥으로 만들고말겠다고 엄하게 말씀하시였다.

그 일군은 자책감으로 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잠시 동안을 두시였다가 우리가 학생들에게 우리 나라의 현실을 알게 하자고 하는것은 그들에게 산지식을 배워주자는데 목적이 있다고, 학생들이 교과서에만 매달리게 하여서는 안된다고 하시면서 《당장 여러가지 조직사업은 하지 못하여도 견학려행만은 조직해주어야 하겠습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례컨대 함흥에 가면 룡성기계공장도 보고 비날론공장도 보며 바다가에 나가 수산사업소도 보고 랭동공장도 보며 함주쪽으로 나가 협동농장도 보고 과수농장도 보도록 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들끓는 공장과 농촌, 바다를 보게 되면 우리 아이들이 사회주의경치를 보게 되는셈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이 말씀에는 학생들의 견학을 단순히 현실을 보고 파악하는 실무적인 방법으로가 아니라 그들에게 창조적인 실천능력을 키워주며 나아가서는 가장 우월한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제도의 참모습을 학생들에게 보여주어 그들의 가슴마다에 열렬한 애국심을 깊이 심어주는 교양사업의 한 수단으로 보시는 높은 뜻이 담겨져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로부터 며칠후인 주체58(1969)년 12월 24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비서국회의를 여시고 청소년학생들의 견학문제를 토의하시였다.

그이께서는 회의에서 먼저 자신께서 료해하신 학교들에서의 학생교육실태를 알려주시고 지금처럼 하다가는 우리 아이들을 머저리학자, 옛날에 관을 쓰고다니던 그런 학자로 만들수 있다고 하시면서 온 나라의 학생들이 공장과 농촌을 비롯한 들끓는 사회주의건설의 현실을 대대적으로 참관, 견학하도록 하는 혁명적인 조치를 취해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우리 아이들을 잘 키우는 일인데 현재 나라사정이 긴장하지만 가능한 모든 조건과 수단, 방법을 다하여 이 사업을 보장해주자고, 그러기 위하여 이 문제를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결정으로 채택하게 하자고 말씀하시였다.

그리하여 학생들의 견학문제가 당과 국가의 중대문제를 토의하는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에서 결정으로 채택되게 되였다.

후대들을 사회주의건설의 믿음직한 역군으로, 조국의 미래를 떠메고나갈 앞날의 주인공으로 키우시기 위하여 기울이신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심혈과 로고는 이렇듯 숭고하고 끝이 없는것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