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태양 김정일장군』 (3권)중에서

 

3. 현대전에 준비된 군력을

감이 익는 계절에

 야전복을 입으신 우리 장군님의 혁명일과는 전선길에서 흘러갔다.

끊임없이 이어가시는 현지시찰의 나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언제나 중대를 찾으시고 일군들을 중대강화의 한길로 따뜻이 이끄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몸소 뜨거운 정을 담아 불러주신 다박솔중대, 감나무중대, 들꽃중대, 부자중대, 본보기중대, 잘사는 중대, 인상에 남는 중대…. 천만사람들의 심장을 울려주는 그 부름들은 중대강화를 위해 바쳐오신  그이의 헌신과 사랑을 전설처럼 전해주고있다.

그 많고많은 중대들가운데에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오늘 선군시대의 7련대 4중대로 불러주시며 각별한 사랑을 쏟아부으시는 감나무중대가 있다.

주체84(1995)년 1월에 다박솔중대를 현지시찰하시였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감나무중대를 처음 찾아주신것은 그해 2월 어느날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날 맵짠 추위와 해풍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녀성해안포병중대 군인들의 훈련모습도 보아주시고 중대교양실과 침실, 식당도 일일이 돌아보시며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이께서는 현지지도를 마치시고 중대를 떠나실 때 헤여지기 아쉬워 눈물을 흘리며 따라서는 녀병사들에게 건강한 몸으로 조국의 방선을 철벽으로 지키라고 하시고 감이 익는 계절에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남기시였다.

이렇게 중대를 떠나신 장군님께서는 어느 한시도 녀병사들과 하신 약속을 잊은적이 없으시였다.

마가을의 찬바람에 나무잎새들이 하나 둘 떨어지던 그해 11월초 어느날이였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중대군인들에게 대를 두고 전해갈 귀중한 선물을 보내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일군들을 부르시여 감이 익는 계절인데 녀성해안포병들이 나를 기다리겠다고, 그런데 자신께서 짬을 낼수 없다고, 대신 동무들이 가보라고 하시면서 선물을 보내주시였던것이다.

감나무중대 군인들은 크나큰 격정에 휩싸였다. 평범한 전사들과 하신 약속을 그렇듯 소중히 여기시며 친부모도 줄수 없는 뜨거운 사랑을 거듭 베풀어주시는 장군님의 그 은정에 녀병사들은 목이 메여 평양의 하늘가를 우러르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또 흘리였다.

중대를 처음으로 찾아주시였던 그 다음날에 장군님께서는 해풍에 녀성해안포병들의 얼굴이 튼것이 가슴아프시여 약크림도 보내주시였으며 그후에도 여러가지 선물을 거듭 보내주시였다.
그러므로 바쁘신 장군님께서 감이 익는 계절에 다시 오겠다고 하신 약속을 굳이 지키지 않으신들 그들 녀성해안포병들로서는 그 어떤 서운함도 가질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것이 그리도 마음에 걸리시여 자신을 대신해 일군들을 보내주시였으니 이런 어버이 최고사령관이 그 언제, 그 어디에 또 있었던가.

하지만 녀성해안포병들은 장군님께서 자기들을 얼마나 못 잊어하시는가를 다는 알지 못했다.

그 이듬해 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영화예술인들이 출연하는 경희극 《약속》을 보아주시였다. 그 경희극은 바로 그이께서 감나무중대의 녀병사들과 하신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신 실재한 사실에 기초하여 창작한 극이였다.

공연을 다 보아주신 장군님께서는 경희극을 잘 만들었다고 만족해하시면서 일군들에게 자신께서 감나무중대를 찾으시였던 때의 일을 감회깊이 회고하시였다.

《나는 지난해 2월에 녀성해안포병중대를 방문하고 돌아올 때 그 중대군인들과 감이 익는 계절에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가을에 여러가지 사업이 제기되여 좀처럼 시간을 낼수 없었습니다. 가을이 저물어갈수록 무르익는 감을 바라보면서 안타깝게 나를 기다릴 녀성해안포병중대 군인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깊은 추억에 잠기시여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그래서 한 일군을 내려보내여 군인들에게 자신의 인사와 선물을 전해주도록 하신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그이께서는 나는 오늘 공연을 보면서 앞으로 내가 지난해에 방문하였던 녀성해안포병중대에 다시한번 가보아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다, 나는 아직 그 중대군인들과 한 약속을 다 지키지 못하였다고 진정을 담아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절절한 말씀을 새겨안는 일군들은 북받치는 격정을 억제할수 없었다. 세상에는 지금까지 약속에 대한 이야기가 수없이 전해졌어도 최고사령관과 전사들간에 맺어진 이런 전설같은 약속에 대한 이야기는 일찌기 없었거니와 그 약속이 이처럼 무한대한 사랑과 그리움으로 달과 해를 이어 전해진 례도 없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바로 이런 친어버이사랑을 안으시고 주체86(1997)년 11월 감나무중대를 또다시 찾으시였다. 그이에게는 두번째로 만나보시는 중대군인들이건만 류달리 애정이 가는 군인들이였다.

그이께서는 처음 이곳 중대를 찾으시였을 때 감나무에 둘러싸인 아담한 병영과 전투진지들 그리고 군인들의 혁명적이며 전투적인 생활기풍, 오래동안 헤여져 기다리던 친부모에게 매달리듯 눈물이 글썽하여 품속에 안겨들던 그들의 모습을 언제나 잊지 못하시였다. 녀병사들은 또 그들대로 감이 익는 계절에 다시 오겠다고 하신 장군님을 못 잊어 그 절절한 그리움을 무르익은 감 한알한알에 소중히 담아 가꾸었다.

녀병사들은 다시 찾아오신 어버이 최고사령관을 마중하여 《만세!》의 환호성을 터치며 막 달려나갔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들을 사랑의 한품에 안으시고 《동무들이 보고싶어 이렇게 감이 익는 계절에 왔습니다. 건강한 동무들을 다시 만나니 정말 기쁩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오늘 이렇게 찾아왔으니 약속은 지킨것으로 된다고 하시면서 환하게 웃으시였다. 그것은 진정 오래동안 헤여졌던 친어버이와 딸자식들의 감격적인 상봉 그대로였다.

이날 그이께서는 감나무중대 군인들의 수영훈련을 보아주시였다. 평소에 물속에서도 땀을 흘릴만큼 이악하게 수영훈련을 해온 군인들은 찬 날씨와 높아지는 파도에도 아랑곳없이 속도를 내고있었다.

군인들의 훈련모습을 믿음어린 눈길로 바라보시며 중대군인들이 수영을 잘한다고 치하해주시던 그이께서는 귀환점을 돌아서 헤염쳐오던 맨 마지막조의 한 병사가 점점 뒤떨어지는것을 포착하시고 걱정어린 안색을 지으시였다.

그 군인이 화력복무중 상처를 입고 치료를 받다보니 수영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병사라는 사실을 아신 그이께서는 일군들에게 그 병사에게 구명대를 빨리 보내주라고 이르시였다. 그런데 그 병사는 구명대에 의지하지 않고 완강히 제힘으로 수영을 계속하는것이였다.

그 광경을 지켜보시던 장군님께서는 그의 소행이 못내 대견하신듯 참 기특합니다, 저 동무는 중대의 명예를 위하여 완강한 인내력을 발휘하고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이윽하여 그 군인이 마지막까지 제힘으로 헤염쳐 돌아왔다.

그이께서는 중대전원이 바다에서 헤염칠수 있게 준비된것을 보면 군인들이 투지가 있다고, 중대가 전투력이 있다고 치하하시고나서 정렬한 군인들을 향해 대단히 만족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오늘 수영훈련에서 불굴의 투지와 완강한 인내력을 발휘한 …군인들을 열렬히 축하합니다. 나는 중대의 모든 …군인들이 훈련을 잘한데 대하여 높이 평가합니다.》

파도세찬 수영훈련장에서 그이께서 녀병사들에게 주신 축하는 정녕 평시훈련에서 많은 땀을 흘려온 미더운 군인들에게 보내는 최고사령관의 값높은 평가였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중대를 떠나시기에 앞서 오늘 인상깊은것은 25년전 중대에 오신 위대한 수령님께 꽃다발을 드린 녀성군인의 딸이 자기 어머니세대들이 중대에서 군사복무를 할 때 심은 감나무에서 딴 제일 큰 감을 나에게 보여준것이다, 나는 어머니가 지켜섰던 초소를 대를 이어 지켜나가는 그 군인이 너무 대견스러워 그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하시면서 내가 만나본 그 녀성군인의 부모가 길주군에 있다고 하는데 앞으로 꼭 만나보려고 한다고 또다시 믿음어린 약속을 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감나무중대 아니 전군의 장병들모두와 하나의 피줄로 이어져있음을 감동깊이 펼쳐보이신 뜻깊은 그 순간이 력사적인 기념사진에 담겨졌다. 기념사진에 남기신 장군님의 그 모습과 뜻은 수령결사옹위의 기치로 되였고 병사들의 참된 좌우명, 한생을 빛내주는 복무의 표대로 되였다.

그때로부터 며칠후 북방에 위치하고있는 인민군부대에 대한 현지시찰의 길에 오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 바쁘신 길을 지체하시여 녀성해안포병중대 그 녀병사의 부모들을 몸가까이 부르시고 딸이 군무생활도 잘하고 몸도 좋아졌다고 하시며 딸의 소식이며 옛 중대의 소식을 자상하게 알려주시였다.

그리고 그이께서는 막내딸도 다음해에 중학교를 졸업하면 인민군대에 내보내려고 한다는 그 병사의 아버지에게 생각을 잘하였다고 따뜻이 고무해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그렇게 되면 아버지도 군관이기때문에 그야말로 군인가정이 될것입니다.

온 가족이 총을 잡고 조국보위초소를 지켜가고있는것은 아주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내가 오늘 동무들을 부른것도 동무들이 그 어떤 영웅적위훈을 세웠거나 미인을 낳아서가 아니라 어머니와 딸이 수령님께서 다녀가신 최전연의 바다가초소를 대를 이어 굳건히 지켜가려는 그 마음이 기특하기때문입니다. 동무들은 조국보위투사들입니다.》

일군들은 장군님의 이 말씀을 듣고서야 비로소 녀병사의 부모들을 친히 불러 만나주신 그이의 깊은 심중이 헤아려져 가슴이 더욱 뜨거웠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이름없는 한 녀병사와 하신 약속을 지켜 천금같은 시간을 바치시며 평범한 한 가정을 찾아 혁명적군인가정으로 내세워주신 이 전설같은 이야기는 이 세상 그 어느 명장들의 전기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사랑의 찬가였으며 최고사령관과 병사들이 선군혁명동지로 굳게 결합된 혼연일체의 숭고한 모습을 보여주는 일단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주체89(2000)년 2월 10일 감나무중대를 세번째로 찾으시였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의 기본전투단위인 중대를 강화하자면 중대장들이 제구실을 바로 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그날로부터 며칠후인 2월 16일이였다.

자신의 탄생일에도 쉬지 않으시고 인민군지휘성원들을 부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감나무중대를 잘 키워 전군에 적극 내세워주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어버이수령님께서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오중흡동지가 중대장으로 있던 7련대  4중대를 시범단위로 꾸리고 그 경험을 조선인민혁명군 대오안에 일반화하신데 대하여 감회깊이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그이께서는 일군들에게 감나무중대를 7련대 4중대처럼 잘 키우고 전군에 내세워주기 위한 사업에서 나서는 방향과 방도를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감나무중대를 오늘의 7련대 4중대로!

이 한마디의 말씀이 각별한 의미를 띠고 일군들의 뇌리를 쳤다.

감나무가 따사로운 해빛을 받고 충분한 자양분을 섭취하여야 알차고 풍만한 열매를 맺을수 있듯이 전군의 본보기로 된 감나무중대의 성장과 발전은 거기에 쏟아부으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뜨거운 어버이사랑에 의해서 이룩된것이였다.

이렇듯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감나무중대를 본보기로 내세우고 적극 따라배우도록 하심으로써 전군의 모든 중대들은 수령결사옹위정신이 차넘치고 일당백의 전투력을 가진 강철의 집단으로, 정규화의 면모가 확립되고 항일유격대식 중대관리기풍, 살림살이기풍이 지배하는 정예화된 백두산혁명강군으로 자라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