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인민적 시책에 비낀 위인일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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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소 궁전에 찾아오시여

평양학생소년궁전은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마음속에서 떠나본적이 없는 곳이였다.

희망찬 새해의 첫날에도 이곳에 나가시여 아이들과 함께 명절을 즐기시고 외국에서 귀한 손님이 와도 아이들의 궁전, 이곳을 찾으시는 위대한 수령님이시였다. 평양학생소년궁전에 나가시면 조국의 미래를 떠메고나갈 새 세대들의 힘찬 숨결이 들리고 생기발랄한 모습을 보시여 더없이 기쁘시였다.

주체57(1968)년 6월 어느날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평양학생소년궁전을 찾으시였다. 이때로 말하면 미제의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 나포사건으로 조선반도에서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를 긴박한 정세가 조성되여있던 때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궁전에 들어서시자 학생들이 꽃묶음을 흔들며 만세의 환호성을 터치였다.

구김살없는 웃음이 가득 넘치고 건강한 얼굴들, 행복과 기쁨이 출렁이는 새별과 같은 눈동자들, 온 나라에 전쟁의 무거운 구름이 드리웠어도 랑만과 활기만이 차넘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더없이 기뻐하시였다.

이윽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휴계실에서 소년궁전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궁전의 운영실태에 대하여 알아보시였다.

그 과정에 궁전의 동식물박물관이 완비되지 못하였다는것을 아신 그이께서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아무리 정세가 긴장하다 해도 동식물박물관을 훌륭히 꾸리지 못하겠는가, 모두 달라붙어 잘 꾸려주자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일군들에게 다 꾸려놓은 후에 자신께서 꼭 와보시겠다고 하시였다.

후대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담겨진 그이의 말씀에 일군들은 감동을 금할수 없었다. 그들은 당장 전쟁이 일어날수도 있는 엄혹한 환경속에서 어떻게 박물관을 다 꾸리고있겠는가고 생각하였던것이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처럼 준엄한 정세속에서도 학생소년들의 과외교양을 위해서는 온 나라가 달라붙어 궁전박물관을 잘 꾸려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것이 아닌가.

휴계실에서 나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과 함께 궁전을 돌아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천체망원경실에 들리시였을 때였다.

천체망원경으로 관측작업을 하고있던 학생소년들이 일제히 인사를 올리였다. 지도교원은 태양흑점을 관측하는중이라고 말씀드리면서 그이를 망원경앞 의자로 모시였다.

의자에 앉으시여 천체망원경으로 태양표면을 관찰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안광에는 기쁨의 빛이 어리였다. 1억km이상 떨어진 불덩어리 태양의 표면이 지척인듯 가깝게 보이는 훌륭한 망원경이 아이들에게 차례진것이 더없이 기쁘시였던것이다.

이윽고 전망대란간과 주위를 가늠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망대가 너무 좁다는것을 헤아리시고 탑지붕과 계단을 완전히 고쳐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하실 일이 많으셨지만 궁전의 매 건물, 매 층을 찾으시여 운영실마다 다 돌아보시였다.

복도를 지나실 때는 주단의 폭과 두터이도 가늠해보시고 복도주단을 바꾸어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고 계단을 내리실 때는 아이들에게 무리가 있지 않겠는가 념려하시며 계단의 높이와 단수를 헤아려보기도 하시였다. 궁전의 일군들이 그이께서 자주 찾으시여 이미 잘 알고계시는 가야금실이나 체육실같은 곳을 그냥 지나치려고 하면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이들이 있는데는 다 들어가보아야 한다고 하시며 빠짐없이 들어가보시였다.

이렇게 궁전의 여러곳을 구체적으로 돌아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궁전예술소조원들의 예술공연도 보아주시였으며 그들과 함께 기념사진까지 찍으시고 궁전을 떠나시였다.

그날 저녁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당 일군을 부르시여 가지가지의 수많은 실험설비들과 비품들을 보내주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외국의 벗들이 다함없는 존경과 흠모의 정을 담아 그이께 올린 희귀한 동물표본들도 궁전에 보내주시였다.

그러시고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로부터 며칠후에 열린 내각전원회의에서 평양학생소년궁전을 꾸리는 문제를 토의하시였으며 그것을 내각결정 제40호로 채택하도록 하시였다.

그리하여 평양학생소년궁전은 학생소년들의 종합적과외교양기지로서의 완전한 면모를 갖추게 되였다.

참으로 혁명도 건설도 후대들을 위하여 한다는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변함없는 철석의 의지와 뜨거운 사랑에 의하여 그 준엄한 정세속에서도 학생소년궁전은 더 훌륭히 꾸려지게 되였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