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3)중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외세에 의하여 국토가 인위적으로 갈라진 해방후와 마찬가지로 전후시기에도 민족의 분렬을 끝장내기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령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정전직후 정전을 공고한 평화에로 전환시키고 어떠한 외세의 간섭이 없이 조국을 통일할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조선인민이 미제의 무력침공을 물리치고 조국해방전쟁에서 력사적승리를 쟁취함으로써 조국의 통일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수 있는 가능성을 얻게 되였지만 미제와 남조선괴뢰들의 민족분렬영구화책동으로 하여 조선반도의 정세는 의연히 긴장상태에 놓이게 되였다.

조선정전협정 제4조 60항에는 조선문제의 평화적해결을 위하여 교전쌍방이 정치회의를 소집하고 조선으로부터의 모든 외국군대의 철거와 조선문제의 평화적해결에 관한 문제 등을 협의할것이 규정되여있었다.

하지만 미제는 조선정치회의소집을 파탄시키기 위한 비렬한 모략책동에 매달렸다. 1954년 4월에 소집된 제네바회의에서 미국대표 덜레스는 외국군대를 철거시키고 조선사람끼리 선거를 실시하여 조선의 통일정부를 세우자는 우리의 제의에 대하여 《우리가 조선에 와서 몇십만명의 희생을 냈는데 어찌 조선을 거저 내놓겠는가? 우리는 조선에서 나가지 않겠다.》고 공공연히 떠벌이면서 《항복하면 평화는 속히 올것이며 항거하면 평화의 실현은 곤난하다.》는 등 위협적인 언사까지 서슴지 않았다.

한편 미제는 《무력만이 조선문제를 해결할수 있다.》고 하면서 정전협정을 란폭하게 짓밟고 남조선에 각종 전략물자들을 대대적으로 끌어들이며 괴뢰군을 정전당시 16개 사단으로부터 30여개 사단으로 확장하기에 광분하였다.

미제의 이러한 무력증강책동에 추종하여 전후 리승만괴뢰도당은 조선에서 모든 외국군대를 철거시킬데 대한 우리의 주장과 《조선문제는 조선사람끼리 평화적으로 해결하자.》는 우리의 제의를 무조건 반대하였다.

전후 미제의 끊임없는 무력증강책동으로 조선문제의 평화적해결전망은 더욱 어두워졌을뿐아니라 조선반도에 전쟁의 검은구름이 무겁게 실리게 됨으로써 조선민족뿐아니라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 진보적인류의 커다란 우려를 자아냈다.

이러한 엄중한 정세속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라의 분렬로 말미암아 민족이 당하고있는 온갖 고통과 재난을 끝장내고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합리적인 통일방안들을 련이어 내놓으시였다.

전쟁의 방법으로가 아니라 조선인민의 지향과 요구에 맞게 북과 남이 협상의 방법으로 조국통일문제를 해결하려는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시종일관하게 견지하신 조국통일방침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전직후만 하여도 당중앙위원회 제6차전원회의와 최고인민회의 제1기 제8차회의를 비롯하여 여러 기회에 조선에서의 항구적인 평화를 보장하기 위한 통일방안들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조선에서 미제를 몰아내고 자주적으로, 평화적으로, 민주주의원칙에서 조국을 통일할데 대한 조선로동당의 방침을 다시금 밝히시고 조국통일위업수행에 북과 남의 모든 애국력량을 조직동원하는것을 중요한 과업으로 내세우시였다. 그리고 8. 15해방 10돐 경축대회에서 하신 보고와 주체46(1957)년 9월 최고인민회의 제2기 제1차회의에서 하신 연설에서 남조선에서 미제침략군을 철거시키며 북과 남의 군대를 각각 10만 또는 그아래로 줄이고 서로 무력을 사용하지 않을데 대한 협정을 맺으며 북과 남사이의 자유로운 래왕과 통신거래, 경제와 문화교류, 정당, 사회단체들과 개별적인사들의 접촉을 이룩하며 통일문제를 토의할 실제적인 대책을 취할수 있는 상설위원회를 내올데 대한 적극적인 방안들을 내놓으시였다.

정전의 공고한 평화에로의 이행을 보장하고 조선의 평화적통일에 실질적으로 이바지할수 있는 이 합리적인 통일방안들은 조선인민과 세계평화애호인민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성원을 받았다.

조선문제의 평화적해결을 위한 조선로동당과 공화국정부의 적극적이며 주동적인 조치들과 그 실현을 저지시키려는 미제와 남조선괴뢰들의 방해책동을 통해 과연 누가 조선의 평화와 통일을 진심으로 원하고 누가 악랄하게 반대하는가 하는것이 여실히 증명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탁월한 선군혁명령도로 미제와 남조선괴뢰들의 민족분렬책동을 물리치고 전체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을 조국통일위업실현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전직후인 주체42(1953)년 10월에만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에서 하신 결론과 조선인민군 어느 한 군부대관하 장병들앞에서 하신 연설, 조선인민군 대대장, 정치부대대장회의에서 하신 연설 등에서 인민군대를 강화하지 않고서는 적들의 온갖 침략책동을 분쇄할수 없고 전후인민경제복구건설도 성과적으로 진행할수 없으며 조국의 평화적통일도 기대할수 없다는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인민군대를 강화하여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한 튼튼한 담보를 마련해놓으시려는 위대한 수령님의 선군혁명령도는 사회주의기초건설시기에도 변함이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6(1957)년 11월 조선인민군 군정간부회의에서 하신 연설 《조국통일문제와 인민군대앞에 나서는 몇가지 과업》에서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위한 조선로동당과 공화국정부의 시종일관한 방침들을 알려주시면서 그 실현을 위해 인민군대앞에 나서는 과업들을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당은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할데 대한 구호를 내놓고 그 실현을 위하여 투쟁하고있습니다. 우리가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하려고 하여도 인민군대의 전투력이 강해야 합니다. 만약 인민군대의 전투력이 약하면 적들은 우리를 먹자고 덤벼들것입니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군대의 전투력과 전투준비를 강화하기 위한 과업으로서 인민군대를 간부군대로 만들데 대한 문제, 군인들에 대한 사상교양사업을 강화할데 대한 문제 등을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군대에 의거하여 조국통일을 평화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지침을 제시해주시였을뿐아니라 몸소 인민군부대들을 찾으시여 그것을 군인들에게 깊이 심어주시였다.

주체47(1958)년 2월 어느 한 인민군군부대를 찾으시여서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관하장병들에게 오직 인민군대가 강화되는 조건에서만 우리는 평화를 유지하며 평화적통일을 달성할수 있다는것을 강조하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가 강해야만 적들이 덤벼들지 못할것이며 평화적통일도 이루어질수 있다고, 또 설사 놈들이 달려든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들을 때려눕힐수 있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그렇기때문에 평화적통일을 주장한다고 하여 우리가 전투훈련을 약화시킬 아무런 근거도 없습니다. 안일해지고 해이해져서는 결코 안됩니다. 인민군 전체 장병들은 이것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인민군대에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과업관철을 위한 전투정치훈련이 더욱 맹렬히 진행되였다.

인민군대가 수령의 군대, 당의 군대로 강화발전되고 미제가 전쟁의 불길을 일으킨다면 단매에 때려부실수 있는 만단의 전투동원준비를 빈틈없이 갖추어나가게 됨으로써 조선반도에서의 긴장상태의 완화와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이 군력으로 튼튼히 담보되고 미제의 새 전쟁도발책동은 걸음마다 분쇄되게 되였다. 뿐만아니라 위대한 수령님의 선군혁명령도로 전후복구건설과 사회주의기초건설이 성과적으로 추진되여 지난날 뒤떨어진 식민지농업국가였으며 전쟁으로 말미암아 재더미로 되였던 우리 나라는 자립적경제토대를 가진 사회주의공업농업국가로 전변되게 되였다.

공화국의 이 눈부신 발전은 미제의 새 전쟁준비와 군사기지화책동으로 인해 1950년대 후반기 《4천년래의 민생고》라고 불리울만치 심각하고 극심한 처지에서 굶주림과 가난에 허덕이고있던 남조선인민들속에 공화국에 대한 동경심과 새 정치, 새 생활을 요구하는 기운이 더욱 높아가게 하였다.

안팎의 정세가 저들에게 더욱 불리하게 조성되고 식민지파쑈통치의 지반이 밑뿌리채 뒤흔들리게 되자 미제는 리승만역도로 하여금 남조선에서 급격히 높아가는 평화적조국통일기운을 총칼로 억누르기 위한 무시무시한 사회적공포분위기를 조성하도록 하는 한편 《북진》소동에 더욱 매여달리도록 부추겼다. 이에 따라 리승만역도는 1959년 6월에 《우리가 앞으로 더 기다린다면 공산주의자들은 보다 더 강해질것이니 남조선을 살리기 위한 때는 바로 지금이》며 그렇기때문에 《무력으로 이 나라를 통일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공공연히 뇌까리기를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무너져가는 식민지파쑈독재를 유지강화해보려는 미제의 발악은 사회의 민주화와 조국의 평화통일을 바라는 남조선인민들의 대중적투쟁으로 여지없이 분쇄되게 되였다.

1960년 3월 리승만괴뢰도당의 부정《선거》를 반대하는 마산의 청년학생, 시민들의 투쟁으로부터 시작된 항쟁의 불길이 4월 중순에 들어와 반《정부》폭동과 무장충돌에로까지 발전하여 서울과 부산, 대구, 광주를 비롯한 온 남녘땅을 휩쓸었다.

우리 민족의 조국통일사에 4월인민봉기로 기록된 이 대중적투쟁으로 하여 마침내 리승만괴뢰정부는 거꾸러졌다.

이것은 강위력한 군력의 담보밑에 조국통일위업을 평화적으로 성취하려는 공화국의 정당한 투쟁에 고무된 남조선인민들이 미제와 그 앞잡이들을 반대하는 투쟁에서 이룩한 커다란 첫 승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4월인민봉기이후 남조선에서의 사태발전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시고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위한 새 국면을 열어놓기 위한 사업도 불패의 혁명무력에 의거하여 진행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유로운 남북총선거와 북남조선의 련방제실시 등 적극적이며 현실적인 통일방안을 제시하시는 한편 우리 인민의 조국통일위업실현을 무력으로 담보하기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이끄시였다.

주체49(1960)년 9월 조선로동당 인민군위원회 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위하여서도 우리의 힘이 강해야 한다고, 평화적통일이기때문에 군대는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는것은 큰 잘못이라고 지적하시면서 우리의 힘이 약해가지고서는 평화적통일을 절대로 실현할수 없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그렇기때문에 싸움을 하고 안하고는 별문제로 하고 우리가 평화적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의 인민군대를 더욱 강화해야 하며 우리의 힘을 더욱 축적해야 합니다. 우리의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평화적통일은 더욱 빨리 실현될것입니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리승만은 없어졌으나 장승만이 북진해오면 어떻게 하겠는가, 우리는 평화적통일을 주장하기때문에 전쟁은 안하겠소 하고 가만히 앉아있겠는가, 그럴수 없다, 침략에 대항하지 않을바에는 인민군대는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침략자들에 대해서는 언제나 용서없이 단호한 반격을 가해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날의 연설은 인민군장병들에게 미제가 남조선을 강점하고있는 한 전쟁의 근원은 계속 남아있으며 조국의 평화적통일은 인민군대의 강위력한 총대에 의거할 때에만 성과적으로 실현될수 있다는 진리를 다시금 깊이 새겨주었다.

조국의 통일독립을 위해서는 혁명의 총대가 굳건해야 한다는 위대한 수령님의 이 말씀의 정당성은 4월인민봉기이후 변화된 정세속에서 뚜렷이 확증되였다.

4월인민봉기이후 남조선에서 공화국의 자주적평화통일방침에 적극 호응하고 조국통일기운이 전례없이 높아지자 궁지에 몰리게 된 미제는 1961년 5월 보다 극악한 군사파쑈도당을 내세워 군사정변을 조작하고 군사파쑈독재로써 민족분렬의 영구화와 새 전쟁도발책동을 더욱 로골적으로 감행하도록 부추겼다.

미제의 집요한 모략책동으로 하여 조선인민은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하기 위한 투쟁에서 보다 험난한 시련의 고비들을 헤쳐나가게 되였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의 탁월한 선군혁명령도가 있는 한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은 반드시 이룩되고야 만다는 승리의 신심을 안고 우리 인민은 선군혁명의 길을 더욱 힘차게 걸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