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3)중에서 


 



 

 1950년대 중엽부터 우리 나라에 조성된 정세는 매우 복잡하였다.

이미 정전직후부터 중립국감독시찰소조의 눈을 속여가며 수많은 군사장비를 끌어들여 남조선괴뢰군에 넘겨주던 미제는 1956년 6월 중립국감독시찰소조성원들을 비법적으로 철거시켰으며 1957년 7월에는 일본에 있던 《유엔군사령부》까지 남조선에 옮겨놓고 각종 신형무기들을 넘겨주면서 괴뢰군의 무장장비강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였다. 이와 함께 남조선강점 미제침략군과 괴뢰군을 대대적으로 증강하고 남조선에서 군사기지와 군사시설물들을 대량적으로 확장하면서 괴뢰들이 《북진》나발을 더욱 요란스럽게 불어대도록 부추겼다.

여기에다 이 시기 현대수정주의자들은 대국주의자들의 리용물로 전락된 《쎄브》(《경제호상원조리사회》의 략칭)에 들라고 압력을 가하면서 우리가 정치적독립과 경제적자립의 길로 나가는데 장애를 조성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자체의 강력한 자위적국방력이 없이는 나라와 인민의 자주권을 지킬수 없고 민족의 자주독립도 조국의 번영도 이룩할수 없다는 철의 의지를 지니시고 튼튼한 국방공업에 의거하여 자위의 원칙을 확고히 고수해나가시였다.

국방에서 자위의 원칙을 관철한다는것은 자기의 힘으로 자기 나라를 보위한다는것을 의미한다. 국방에서 자위의 원칙을 관철하여야 제국주의자들의 침략과 현대수정주의자들의 간섭을 물리치고 나라의 정치적독립과 경제적자립을 고수할수 있으며 혁명의 전취물과 인민의 안전을 보위할수 있다.

여기에서 국방공업은 자위적군사력의 물질적담보이다.

조선은 지난날 자기를 지켜줄 군력이 약하였던탓으로 하여 장기간의 식민지노예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되였던 피눈물나는 력사를 가지고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이 쓰라린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하여 전후시기에도 인민무력을 강화하고 전체 인민을 무장시킬수 있는 자체의 국방공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령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후 인민군대를 질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군건설의 전략적과업을 관철하기 위하여 인민군대를 정치사상적으로, 군사기술적으로 튼튼히 준비시키는 한편 국방공업발전에 힘을 넣어 인민군대의 무장장비를 더욱 현대화하도록 하시였다.

현대적무기를 더 많이 생산하려면 무엇보다도 나라의 중공업토대를 튼튼히 닦아야 하며 그에 기초하여 국방공업을 빨리 발전시켜야 했다.

이로부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전직후에 열린 당중앙위원회 제6차전원회의에서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킬데 대한 로선을 제시하시면서 국방공업발전에 힘을 넣을데 대한 과업을 내세우시였다.

그리하여 전후 그 어려운 속에서도 국방공업의 발전을 담보하는 중공업의 우선적발전에 관한 경제건설로선이 철저히 관철되여 우리의 기술, 우리의 자재, 우리의 힘으로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게 국방공업의 물질기술적토대를 튼튼히 갖추게 되였다.

이 나날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국방공업부문에서 나타나고있는 교조주의적편향들도 바로잡아주시고 군수공장 로동계급이 만든 새로운 포의 위력과 명중률도 보아주시면서 우리 식 국방공업의 발전을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그리하여 전후 그 어려운 속에서도 짧은 기간에 자위적국방력을 담보하는 국방공업의 물질기술적토대가 튼튼히 마련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천리마를 타고 경제건설을 힘차게 밀고나가는 시대적환경에 맞게 자체의 국방공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사업에 커다란 심혈과 로고를 다 바치시였다.

당시 사대주의, 교조주의에 물젖은 일부 사람들속에서는 우리가 자위라는 말을 하면 다른 나라로부터 원조를 받지 못한다고 하면서 당의 자위적군사로선관철을 달가와하지 않는 편향이 나타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군대의 현대화에 요구되는 군수품을 다른 나라에 의존하려고 해서는 안된다고,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필요한 모든 무기와 전투기술기재들을 자체로 생산보장할수 있는 국방공업의 토대를 마련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 실현을 위한 사업을 정력적으로 밀고나가시였다.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높이 발양하여 자립적인 현대적국방공업을 창설할데 대한 방침은 국방에서 자위의 원칙을 훌륭히 관철할수 있게 하는 혁명적인 방침이였다.

조선인민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자위의 군사로선을 관철하기 위하여 자재와 자금이 몹시 긴장하였지만 국방공업의 발전에 큰 힘을 돌리였다. 그리하여 이미 있던 군수공장들이 새로운 기술에 토대하여 개건확장되고 현대적군수공장을 새로 건설하는 사업들이 자체의 힘, 자체의 기술과 자재로 믿음직하게 진행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위적군사로선을 철저히 견지하기 위하여 인민군대를 더욱 강화하고 전체 인민을 무장시킬수 있도록 병기생산을 빨리 늘일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는 한편 이 사업을 현명하게 령도하시였다.

여기에서 중요한 계기로 된것이 바로 주체50(1961)년 5월에 소집된 전국병기공업부문 당열성자회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회의에서 《병기공업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하여》라는 력사적인 연설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연설에서 지난날 우리 인민이 강력한 국방력을 가지지 못하였기때문에 일제의 침략을 막아내지 못하고 나라를 빼앗기고만데 대하여, 제국주의는 있어도 전쟁의 위험은 없 다고 떠드는 현대수정주의자들의 궤변에 대하여 하나하나 까밝혀주시면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나는 오늘 병기공업부문 당열성자회의를 계기로 병기공업부문의 전체 로동자, 기술자, 사무원들에게 혁명적경각성을 높이고 더욱 긴장하게 일하며 병기생산에서 새로운 혁신을 일으킬것을 다시한번 호소합니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모든 병기공장들에서 짧은 기간에 생산을 2~3배 또는 그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하시면서 무기생산을 늘이는것과 함께 그 질을 높일데 대하여, 새로운 품종의 병기들을 더 많이 만들어낼데 대하여 등 병기생산을 발전시키기 위한 과업들을 환히 밝혀주시였다.

그러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군대는 당의 무력이고 병기공장일군들은 당의 무력을 물질기술적으로 보장해주는 사람들이라는 값높고 영예로운 칭호를 안겨주시였다.

회의이후 병기공업부문의 전체 로동계급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안겨주신 믿음을 심장에 새겨안고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전투적과업관철을 위한 투쟁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섰다.

새 전쟁도발을 위한 미제의 무력증강책동을 자위의 총대로 짓부셔버리시려는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과 령도는 이렇게 튼튼한 국방공업에 의거하여 빛나게 관철되게 되였다.

후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느 한 나라 대통령을 접견하시면서 나라를 방위하자면 군대를 잘 꾸리는것과 함께 자위적국방력의 물질적담보인 자체의 군수공업을 창설해야 한다는데 대하여 강조하시면서 만일 우리가 지금처럼 군사장비를 생산하지 않고 그대신 인민생활필수품을 대량적으로 생산한다면 우리 나라는 세계에서 제일 잘사는 나라로 될것이다, 모든것을 자체로 생산하자니 곤난은 많다, 그러나 남에게 예속되지 않고 마음대로 살수 있어 좋다, 우리는 누가 이래라저래라하여도 절대로 그들에게 순종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 식대로 살아간다고 긍지높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선군의 기치를 높이 추켜드시고 인민대중의 자주위업실현을 위하여 투쟁하여오시는 과정에 체득하신 이 철리는 나라의 자주적존엄과 민족의 무궁한 번영은 오직 강위력한 총대에 의하여 담보된다는것을 력사에 뚜렷이 아로새겼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의 선군혁명령도로 강력한 국방공업이 튼튼히 마련되였기에 조선은 그 누가 위협과 제재를 가하고 《원조》를 주지 않아도 언제나 조국과 민족의 자주성과 존엄을 철옹성같이 지켜낼수 있었고 인민의 안녕과 혁명의 전취물을 굳건히 수호할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