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선군정치문답』중에서 
 



 

특출한 군사가적천품과 자질, 비범한 실력에 토대하여 1960년대말에 선군정치를 시작하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1970년대, 1980년대를 거쳐 그것을 더욱 심화발전시켜나가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군대를 틀어쥐고 선군정치를 하여오신 이러한 력사가 있었기에 1990년대초에는 군대와 인민의 열렬한 지향에 받들리시여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의 중임을 지니시였으며 이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되시였다.

그로부터 1년후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너무도 뜻밖에 서거하신것으로 하여 전혀 예견치 못한 정황이 조성되였다.

위대한 주석께서 서거하신 이후 나라와 민족의 운명, 사회주의의 장래운명과 관련하여 사람들은 많은것을 생각하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영생을 어떻게 지켜드리고 주체혁명위업을 어떻게 계속 전진시켜나가며 나라와 민족의 장래운명을 어떻게 해결해나갈것인가, 이것은 본질에 있어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혁명과 건설을 어떠한 방식으로 령도하여나갈것인가 하는 커다란 기대가 담겨져있는 문제라 할수 있었다.

한편 세계정치계와 보도계는 《김일성주석서거이후 조선의 정치양상》에 대해 이러저러하게 추측하고있었다. 그들은 앞으로 조선에서 《선행로선과는 일정한 정도의 간격을 가진 정책》이 실시될것이라느니, 《개혁, 개방에로의 정책변화가 있을것》이라느니 하는 억측을 내돌리였다.

세계가 이렇게 조선을 주시하고 장군님께로 향한 인민의 기대가 하늘땅을 꽉 메우고있을 때 경애하는 장군님의 심중을 가득 채우고있은것은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해방후 걸으셨던 만경대갈림길이였다.

온 나라가 《고난의 행군》으로 힘겹던 주체86(1997)년 3월 어느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인민군지휘성원들에게 동무들은 내가 왜 나라의 경제형편이 어려운 때에 공장이나 농촌을 현지지도하지 않고 인민군부대들에 자주 나가는가 하는것을 알아야 한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나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서거하신 다음 만경대갈림길에 대하여 많이 생각하여보았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말씀은 계속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제를 때려부시고 조국에 개선하시여 조부모님들이 기다리시는 만경대에도 들리지 않으시고 강선의 로동계급부터 찾아가시였다, 광복직후 우리에게는 당도, 국가도, 정규군대도 없었으며 국고도 텅 비여있었다, 그때 새 조국건설에서 우리가 믿을것이란 오직 로동계급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지금 우리에게는 강력한 당과 국가가 있고 자립적민족경제의 토대도 튼튼히 마련되여있다, 우리가 현 조건에서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의 끈질긴 고립압살책동을 단호히 분쇄하고 이미 이룩한 혁명의 전취물을 옹호고수하고 빛내여나가자면 인민군대를 결정적으로 강화하여야 한다.…

조국의 안전만 수호된다면 경제를 활성화하고 인민생활을 추켜세우는것은 문제로도 되지 않는다는것, 그러므로 현시기 가장 절박한것은 원쑤들의 침략책동으로부터 사회주의의 운명, 조국과 인민의 안전을 수호하는것이라는것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만경대갈림길에 대하여 생각하시면서 찾으신 결론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한생을 바쳐 키워오시였고 혁명의 고귀한 유산으로 물려주신 인민군대를 혁명의 기둥으로 내세워 사회주의도 지키고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하실 단호한 결심을 내리신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주체84(1995)년 1월 1일 위대한 김일성주석서거이후 첫 현지지도로 어느 한 인민군부대 중대를 찾으시였는데 여기에 이러한 중대한 의미가 깃들어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다박솔중대로 부르신 이곳 인민군초소에 대한 현지지도를 통하여 자신의 정치는 사회의 그 어느 부문보다도 군사를 중시하는 정치이고 사회의 어느 집단보다도 인민군대를 선차적으로 강화하고 인민군대에 의거하는 정치라는것을 내외에 엄숙히 공표하신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다박솔중대에 대한 현지지도는 선군정치가 전면적으로 실현되는 주체혁명발전의 새로운 력사적단계를 열어놓았다고 할수 있다.

이렇게 격변하는 정세속에서 자기 발전의 새로운 리정표를 세운 선군정치는 인민군대에서 주체혁명의 새시대를 대표하는 혁명적군인정신이 창조되고 일반화되는 과정을 통하여 전면적으로 확립되여갔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나는 <고난의 행군>시기에 인민군군인들속에서 높이 발양되고있는 수령결사옹위정신과 육탄정신, 자폭정신을 혁명적군인정신이라고 하였으며 전당과 온 사회가 혁명적군인정신을 따라배우도록 하였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선군정치를 전면적으로 펼치시면서 기둥으로 내세운것은 인민군대였다.

제국주의의 침략과 군사적위협이 살판치는 오늘의 정세는 사회의 그 어느 집단보다 혁명성과 전투성, 조직력과 규률이 강한 집단인 군대에 의거하는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판단하신것이다. 총에는 총으로 맞서야지 마치와 낫으로 맞설수 없다는 응당한 리치이기도 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믿음과 기대를 조국과 인민, 시대와 력사의 요청으로, 사명감으로 받아들인 인민군군인들은 조국보위도 사회주의건설도 우리가 다 맡자는 숭고한 사상정신력으로 무비의 희생성과 대중적영웅주의를 발휘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고난의 행군》시기에 군인들속에서 높이 발양된 수령결사옹위정신, 결사관철의 정신, 영웅적희생정신을 혁명적군인정신으로 명명해주시였다. 수령결사옹위정신을 핵으로 하는 혁명적군인정신은 인민군군인들의 수령에 대한 끝없는 충실성에 기초하고있는 가장 고결한 사상감정이며 수령을 위해 청춘도 생명도 다 바치는 투철한 투쟁정신, 육탄정신, 자폭정신이다.

혁명적군인정신은 김정일장군님께서 주도하시는 력사의 새시대를 상징하는 위대한 혁명정신으로서 그후 전사회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치였다.

혁명적군인정신을 온 나라의 로동계급과 인민들이 따라배웠다. 그리하여 《강계정신》이 창조되고 《라남의 봉화》, 《성강의 봉화》가 타올랐으며 경제활성화의 세찬 동음이 울려퍼지고 《고난의 행군》이 락원의 행군으로 바뀌여 온 나라에 사회주의강성대국건설의 북소리가 울려퍼졌다. 그것은 곧 모든 사람들이 선군사상으로 무장되고 인민군대식으로 일해나가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군대와 인민의 사상의 일치, 투쟁기풍의 일치가 이루어져갔다.

이 혁명적군인정신의 일반화가 곧 선군정치방식의 전면적확립과정으로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민족의 대국상이후 선군의 기치를 더욱 높이 드시고 인민군대를 강화하는것으로 선군정치를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 심화발전시키시였으며 인민군대에서의 혁명적군인정신창조와 그 일반화과정을 거쳐 선군정치방식을 전면적으로 확립해나가신것이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강위력한 국방위주의 국가기구체계를 확립하는 과정을 통하여 선군정치를 하나의 체계화된 정치방식으로 확립하시였다.

새로운 사회주의기본정치방식인 선군정치가 완성된 정치방식으로 되자면 그에 맞는 국가기구체계를 가져야 했다.

이것은 주체87(1998)년에 헌법을 개정하여 국가기구를 국가방위와 국가관리권능으로 가르고 국가기구체계를 국방위원회를 중추로 하는 국가기구체계로 발전시키는것으로 해결되였다. 선군정치방식이 국가적기틀우에 확립됨으로써 선군정치실현의 제도적, 법적담보가 마련되게 된것이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선군정치가 이러한 력사적과정을 거치면서 국가사회생활의 전반에 걸쳐 체계화된 사회주의정치방식으로 확립되고 선군정치의 정당성과 생활력이 뚜렷이 나타났을 때 비로소 선군정치를 자신의 기본정치방식이라고 선포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88(1999)년 2월 우리가 강성대국을 건설하자면 인민군대를 강화하는데 계속 큰 힘을 넣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선군정치는 자신의 기본정치방식이며 혁명을 승리에로 이끌어나가기 위한 만능의 보검이라고   가르치시였다. 자신의 정치가 어떤 정치라고 먼저 표명하지 않으시고 소문없이 그 기초를 튼튼히 다지고 여러 단계를 거치며 과학성을 확증하고 위력을 나타낸 다음에야 비로소 그것이 선군정치라고 천명하신것은 말보다 실천을 중시하시고 실리를 중요시하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로련한 정치예술과 특출한 정치실력의 과시로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