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인민적시책에 비낀 위인일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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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포성이 멎은 다음해인 주체43(1954)년 4월 어느날이였다.

이날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봄방학을 마치고 새 학기를 맞는 평양시의 여러 학교들을 한낮이 기울도록 돌아보시였다.

동행한 일군들이 점심시간이 지났다는것을 거듭 말씀올리였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늘은 전쟁에서 이긴 우리 아이들의 뜻깊은 개학날인데 점심을 한끼 번지더라도 한 학교만 더 돌아보자고 말씀하시였다.

그리하여 그이께서 타신 승용차는 평양제19인민학교(당시)로 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학교에 도착하시여 마중나온 교원들과 학생들의 인사를 받으시고 아직도 전쟁의 상처를 가시지 못한 학교를 이윽토록 바라보시다가 아이들이 공부하고있는 교실을 좀 보자고 하시면서 앞서 걸으시였다.

어느 한 교실의 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서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중히 인사를 올리는 교원의 손을 다정히 잡아주시며 불비한 교실에서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기에 수고가 많겠다고, 잠간 교실을 돌아보아도 일없겠는가고 다정히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비록 규격은 달랐으나 윤기가 나게 닦은 책상이며 교실의 비품들을 하나하나 주의깊게 살펴보시다가 뒤벽에 만들어붙인 벽보판앞으로 가시였다.

학생들의 학습과 소년단생활이 반영된 벽보판의 한가운데에 있는 벽돌모으기경쟁도표에서 한동안 눈길을 떼지 못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만족한 웃음을 지으시며 벽보를 잘 만들어붙였다고, 내용이 참 좋다고 하시면서 벽돌모으기경쟁도표라고 쓴 웃부분을 짚으시며 《여기에다  <우리의 손으로 학교를 복구하자!>라고 구호를 달아주었더라면 더 좋았겠습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우리 아이들이 정말 기특하다고 하시면서 아이들의 학교를 하루빨리 지어주어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일군들은 그이의 말씀을 커다란 자책속에 받아안았다. 시안의 수많은 학교들을 며칠사이에 일제히 꾸릴수 없었으므로 이만한것도 상당하다고 생각한 그들이였다.

이윽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밖으로 나오시였다.

그이를 따라 교사를 나선 일군들은 학교마당에 쌓여있는 아이들이 모아들인 벽돌무지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학교를 어서 빨리 지어달라는 아이들의 간절한 심정이 담겨있는듯 하였다.

아이들의 랑랑한 글읽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며 조용히 걸음을 옮기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맞은편쪽에 우뚝 서있는 건물을 가리키시며 저것은 무슨 집인가고 물으시였다.

불탄 지붕을 갓 복구하고 든 상업성 청사라는 한 일군의 대답을 들으신 그이께서는 《상업성 청사라…》 하고 되뇌이시더니 《저 건물을 학교로 쓸수 있지 않습니까?》라고 다시 물으시였다.

그 일군은 대답을 올리지 못하였다. 당장 청사를 학교로 내주면 상업성을 옮길 집이 없었던것이다.

그 일군의 심중을 헤아리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상업성은 자체로 집을 지을수 있고 당장은 정무원들이 작은 집에서도 사무를 볼수 있으니 여러 생각 말고 학생들에게 청사를 내주라고 이르시였다.

이렇게 되여 나라의 국가기관청사가 학교로 바뀌는 희한한 일이 생겨나게 되였다.

이날 동행한 일군들에게 학교건설에서 제기되는 자재와 자금, 로력문제를 풀기 위한 일련의 가르치심을 주시고 학교를 떠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 학교건설을 기본건설계획에 포함시켜 추진시키는 한편 성, 중앙기관들과 기관, 기업소들이 학교들을 맡아 전군중적운동으로 짧은 기간에 건설해주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그리하여 수도의 중앙기관들은 물론 온 나라의 기관, 기업소들이 학교건설에 떨쳐나서게 되였다.

실로 이것은 후대교육을 모든 사업의 첫자리에 놓으시는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만이 취하실수 있는 은혜로운 사랑의 조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