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3)중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전후시기에 군사분야에서 주체를 철저히 세우기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이끄시여 인민군대를 당의 군대로 강화발전시키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안의 당정치사업을 개선강화하여 전군에 당적사상체계를 철저히 세우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3월전원회의가 있은 후 인민군대내 당정치사업에서는 교조주의와 형식주의를 없애고 주체를 세우며 당적사상체계를 세우는데 있어서도 커다란 성과가 이루어졌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7(1958)년 3월에 진행된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하신 결론에서 인민군대안의 당정치사업을 개선하기 위한 혁명적인 조치를 취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원회의에서 조선인민군 당위원회를 내오게 하시고 인민군당위원회가 당중앙위원회의 지도밑에 사업하도록 하시였다. 인민군당위원회가 조직됨으로써 선군의 요구에 맞게 인민군대에 대한 당의 유일적령도체계가 더욱 철저히 확립되게 되였으며 인민군대안에서 당정치사업을 개선강화하여 선군의 위력을 더욱 높이 발양시킬수 있는 정치사상적담보가 마련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군단과 사단, 련대들에도 각각 당위원회를 내오고 대대에는 초급당위원회를, 중대에는 초급당단체를 두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군대안의 당정치사업에서 사대주의, 교조주의를 극복하고 주체를 확립하여 전군에 당적사상체계를 철저히 세우도록 하시였다.

전후시기 수정주의에 물젖은 사대주의, 교조주의자들은 인민군대에서 다른 나라의 본을 따서 당정치사업은 정치일군들에게만 맡기고 군사일군은 군사사업만 하도록 하였으며 다른 나라 군대의 교양체계를 그대로 인민군대에 받아들이려 하였다.

인민군대안에서 나타난 이러한 교조주의적편향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군인들을 당의 사상으로 무장시킬수 없었고 당의 군사로선과 정책도 제대로 관철할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8(1959)년 5월 조선인민군 군단이상 군사, 정치일군들과 하신 담화 《인민군대내 당정치사업에서 교조주의를 반대하고 주체를 세울데 대하여》를 비롯한 여러 로작들에서 인민군대안의 당정치사업에서 주체를 세우기 위한 방향과 방도를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인민군대에서는 교조주의와 사업에서의 낡은 틀을 마스고 주체를 세우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려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군대안의 당정치사업에서 주체를 세우기 위하여 모든 군인들에게 인민군대는 우리 당이 내세우는 혁명임무와 과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당의 군대라는것을 철저히 인식시키도록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모든 군인들을 우리 당의 로선과 정책, 당의 혁명전통으로 무장시키는 사업을 기본으로 틀어쥐고나가면서 계급교양과 혁명교양을 강화하여 군인들을 착취제도를 미워하고 사회주의위업을 위하여 목숨바쳐 싸우는 혁명전사로 키우도록 하시였다.

그리하여 사대주의, 교조주의를 반대하는 투쟁과정에 인민군대는 조선로동당의 주체사상으로 튼튼히 무장된 당의 군대로 억세게 자라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군사분야에서 주체를 확립하기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령도하시였다.

전후시기 인민군대안에 기여들었던 사대주의, 교조주의자들의 책동으로 군사분야에서는 주체를 세우기 위한 투쟁이 철저히 진행되지 못하고있었다. 군사학교들의 실태만 놓고보더라도 교육강령에 다른 나라에서 제2차 세계대전때에 진행한 작전을 배워주는데 많은 교수시간을 배정하면서도 인민군대가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진행한 작전들을 배워주는데는 적은 시간을 배정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군사학교를 찾으시여 군사교육에서는 마땅히 조국해방전쟁경험을 종합체계화하여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하시면서 다른 나라에서 진행한 작전을 가르치는데 많은 시간을 배정할것이 아니라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에 우리가 진행한 작전들을 가르치는데 많은 시간을 배정하고 전쟁의 매 계단에서 진행한 작전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병기부문에서도 주체를 세워 우리 나라의 실정과 조선사람의 체질에 맞는 무기를 많이 만들도록 하시였다. 이 나날에 수령님께서는 우리 나라에도 좋은 나무가 많은데 총가목 만드는데 쓰는 나무마저 다른 나라에서 수입해다 쓴다는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고 엄하게 지적하시고 총가목같은것은 우리 나라에 있는 나무를 가지고 만들도록 구체적인 대책을 세워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인민군대는 군사분야에서 주체를 철저히 세워나갈수 있게 되였으며 나라의 자주성을 군사적으로 튼튼히 담보할수 있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대적투쟁에서도 주체를 철저히 세우도록 하시였다.

전후시기 현대수정주의자들은 저들의 추종분자들을 통하여 인민군대신문에서 《미제침략자들을 소멸하라!》라는 구호를 없애자고 하였다. 그들의 견해에 의하면 이런 구호가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데 방해가 된다는것이였다. 그들은 또한 미국비행기가 우리 령공을 침범해들어오면 쏘지 말고 내려앉히도록 하는것이 긴장상태를 완화하는데 좋다고 말하였다.

대적투쟁에서 주체를 철저히 세우지 못하고있는 현상은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일부 성원들속에서도 나타났다. 일부 사람들은 판문점에서 미제와 그 어떤 《타협책》을 모색하면서 다른 나라 식으로 외교를 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들고나왔다. 그들은 다른 나라에서 미제와의 대결상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나가니 우리도 판문점에서 미국측과 될수록 충돌을 피해야 하며 지어 적들을 되게 때리는 언사를 삼가해야 한다고까지 하였다.

판문점은 조선인민이 미제를 반대하여 싸우는 가장 치렬한 투쟁전선의 하나이다. 그런데 미제와 직접 맞서 투쟁하는 사람들속에서 수정주의바람에 흔들려 제정신이 없이 사업하려 하는것은 인민군대의 면모를 대외적으로 떨어뜨리는 매우 엄중한 후과를 가져올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일부 성원들속에서 나타난 그릇된 현상을 료해하시고 주체46(1957)년 2월 어느날 민족보위상과 하신 담화에서 대적투쟁에서 견지하여야 할 원칙적립장을 명백히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담화에서 조선의 주인은 우리자신이며 미제는 남조선을 강점한 침략자이다, 주인인 우리가 무엇때문에 미제국주의자들에게 할 말도 하지 못하고 굽신거리며 그들과 타협하겠는가, 이것은 생각조차 할수 없는 일이며 미제에 대한 환상을 조성시켜 우리 인민의 반미사상과 혁명적경각성을 무디게 하고 대적투쟁을 적극적으로 하지 못하게 하려는 반혁명적인 행동이라고 단호히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미제와의 대결에서 견결히 투쟁하지 않고서는 정전을 공고한 평화에로 전환시킬수 없으며 조선문제의 평화적해결을 기대할수 없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대적투쟁에서 주체를 철저히 세워 미제를 반대하는 투쟁을 더욱 강화하여야 합니다.》

계속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적투쟁에서 우리는 조금도 피동에 빠지지 말고 언제나 주도권을 튼튼히 틀어쥐여야 하며 자주적이고 혁명적인 립장을 견지하고 추호도 양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견결한 반미적립장을 견지하도록 하시였다.

대적투쟁에서 주체를 철저히 세울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은 인민군대가 나라와 민족의 자주성을 군사적으로 튼튼히 담보해나가는데서 틀어쥐고나가야 할 강령적지침으로 되였으며 제국주의와의 《평화적공존》을 떠들던 현대수정주의자들과 그에 추종하던 사대주의, 교조주의자들의 투항주의적책동에 대한 무자비한 반격으로 되였다.

나라와 민족의 자주성을 첫자리에 놓으시고 조국과 인민의 존엄과 리익을 건드리는자들은 그 누구도 용서치 않는다는 위대한 수령님의 철의 신념과 의지는 그후 인민군장병들에 의하여 조국의 하늘과 땅, 바다에서 남김없이 과시되였다. 그리하여 인민군대는 위대한 수령님의 주체확립에 관한 사상과 령도를 충직하게 받들어 제정신을 가지고 자기 식을 지켜나가는것이 조국과 민족의 존엄을 빛내이는 가장 옳바른 길이라는것을 실천적으로 보여주었다.

참으로 군사분야에서 울려퍼진 주체확립의 포성은 인민군군인들뿐아니라 온 나라 전체 인민을 사상정신적으로 일신시키고 과학, 교육, 문학예술을 비롯한 사회의 모든 부문에 주체를 세워나가는데서 커다란 전변을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