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민족이 사는 길』중에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력사적인 로씨야방문을 마치시고 돌아온 후에 새로 창작된 노래 《추억깊은 두만강》에 대한 말씀을 하시였다.

지난날 우리 겨레가 애절한 마음을 안고 부르던 《눈물젖은 두만강》을 이제는 추억으로 부르고있다는 뜻이였다.

조국땅이 아니라 이국땅에서 살고있는 나로서도 비행기를 타고 두만강우를 지날 때면 이 노래의 여운을 깊이 간직하군 한다.

지난날 나라를 잃고 떠나가던 저 두만강가의 류랑민들의 참상이 그대로 안겨오는 노래였다. 그러한 참상이 저 남녘땅에서 지금도 벌어지고있는것이다.

우리 민족은 더는 이러한 치욕과 아픔을 당하지 않기 위하여 어제날의 피어린 력사를 잊지 말아야 하며 그것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하여 억세게 살아야 한다.

나는 평양에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관람한적이 있다. 릉라도에 있는 락하산모양을 한 5월1일경기장에서 10여만의 청소년학생, 예술인들이 《아리랑》공연을 펼치였다. 해외동포들은 물론 수많은 외국의 대표단, 관광객들로 초만원을 이룬 경기장에서는 세계의 그 어디에서도 볼수 없는 말그대로 희한하고 놀랄만 한 공연이 펼쳐지고있었다.

《아리랑》공연은 공화국의 막강한 힘과 일심단결의 위력, 강한 조직성과 규률성 그리고 강성하는 나라를 건설하려는 인민들의 강인한 의지와 창조력을 분발시킨 대걸작의 공연이였다.

15만석의 5월1일경기장은 그 규모가 대단할뿐아니라 배경, 무대효과를 노리는 수많은 조명장치, 레이자장치, 음향장치, 배경장치들로 장비되여있어 마치도 황홀한 신비의 세계를 보는듯 하였다.

이 희한한 공연을 보면서 가장 감동스러웠던것은 역시 《눈물젖은 두만강》장면이였다. 배경대에는 어둠이 짙은 두만강우에 나루배가 나타나고 찌그러진 노대가 강을 휘젓는데 괴나리보짐을 진 로인들과 아낙네들이 배우에서 고국산천을 보면서 눈물짓는 모습이 나타났다.

그러는 속에 녀가수가 부르는 《눈물젖은 두만강》의 선률이 울려퍼지고 경기장바닥에는 류랑민들의 행렬이 줄을 잇고있었다. 류랑민의 옷을 입은 할아버지, 할머니를 비롯하여 이국으로 떠나는 남편을 바래우며 울고불고하는 녀인들과 아이들의 처절한 모습이 나타났었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젓는 배사공

    흘러간 그 옛날에 내 님을 싣고

    떠나던 그 배는 어데로 갔소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일제의 조선강점과 식민지지배로 하여 정든 고향, 정든 고국을 떠나며 부르는 내 민족의 설음과 눈물이 젖은 노래이다. 앙상할대로 앙상해진 어린것들을 등에 업은 녀인들의 처량한 모습, 괴나리보짐 하나를 걸치고 정처없이 떠나는 이 나라 초부들의 가련한 모습이다.

나라없는 백성은 상가집 개보다 못하다는 말은 이래서 생겨난것이 아니겠는가. 일제에 의하여 빚어진 민족적참상이 그대로 보여지는 장면이였다.

원래 우리 민족은 일본의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고대말과 삼국시기에 벌써 조선사람들의 진출로 일본원주민들속에서 우리의 우수한 문화와 언어가 전파되였다. 조선사람들은 일본인들에게 농사짓는 법과 금속도구를 만드는 방법을 배워주었다. 그 과정에 우리 말이 일본인들에게 많이 전수되였다.

례하면 곡식을 심어먹는 밭고랑은 《고라》, 밭을 뚜지는 괭이를 《구와》라고 하는 사실은 일본말속에 조선말이 많이 전수되였다는것을 실증해준다. 현재 일본말속에 조선말단어 1,000여개이상 남아있다고 한다.

《일본서기》와 《고사기》에 의하면 백제의 왕인이 5세기이전에 일본에 건너가 원주민들에게 천자 문을 가르쳐주고 처음으로 한자를 보급하였다. 《홍인사기》, 《서기결석총목》에도 5세기이전에 가야 사람들이 일본에 가서 문자를 전달하였다고 기록되여있으며 《일본서기》에는 왜가 신라에 사신을 보내여 문인을 초청하여다가 문자를 배웠다고 씌여있다.

조선사람들은 일본에 음악과 무용도 가르쳐주었다. 백제는 6세기 중엽 우수한 음악가들을 야마도왕정에 파견하여 교대제로 음악을 가르쳤다. 《일본서기》에 554년에 백제의 음악가들이 야마도왕정에 가서 음악을 가르쳐주었다고 기록되여있다. 백제의 예술가 미마지는 일본에 건너가 음악학교를 세우고 음악을 가르쳤고 신라에서는 80명의 음악가들을 일본에 파견하여 왕궁행사음악을 보장하였다고 한다.

백제의 미마지는 일본사람들에게 음악뿐만아니라 기악무도 배워주었다. 고구려악무도 일본의 고전악무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4인무인 《신도리소》, 《시끼데》, 6인무인 《고도리소》 등은 다 고구려의 우수한 악무들이 전해준것들이다.

그러나 1905년 강제적인 《을사5조약》날조로 우리 민족은 왜의 식민지노예가 되였다. 리조사대는 우리 민족을 끝내 불행에로 몰아갔던것이다. 민족적인 대를 지키지 못하고 힘이 없었기때문에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것이다.

일제는 조선을 강점하자마자 우리 글과 말을 없애려고 책동했고 《황국신민화》를 강요했으며 심지어는 《창씨개명》까지 강요했다. 일제는 조선말을 없애기 위하여 조선인학교의 페쇄, 조선어교육의 금지, 일본어를 《국어》로 가르칠것을 중요내용으로 하는 《사립학교령》, 《조선교육령》을 공포하였다. 1911년에 공포한 《조선교육령》에 기초하여 일제는 일체 모든 학교들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도록 했으며 조선력사와 지리교육을 금지시켰다. 1938년에는 《신조선교육령》을 공포하여 그것을 더욱 개악하였다.

일제는 《황국신민화》정책으로 조선사람을 일본인화하기 위하여 악랄하게 책동하였다. 1931년 10월 《천황》 히로히도는 문부대신 다나까에게 내린 칙령에서 《황국신민화》를 다그칠것을 지시하였다. 이에 따라 학생들은 아침마다 《궁성요배》와 《신궁참배》, 일장기띄우기, 《황국신민서사》랑독을 강요당했다. 《창씨개명》이 강요되여 조선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고치도록 하였고 그에 불응하는 사람들을 가차없이 처벌하였다.

일제는 조선사람 840여만명을 강제련행하고 100만명을 살해하였으며 20만의 조선녀성들을 일본군《위안부》로 끌어갔다. 잔악무도한 일제의 만행은 우리 민족이 천추만대를 두고 씻지 못할 죄행이였다.

그리고 우리 나라의 전국각지에서 이루 헤아릴수 없이 많은 철과 금, 쌀, 소 등을 략탈하여갔다.

이러한 일제가 식민지기간에 끼친 죄행에 대하여 사죄도 하지 않고 보상도 하지 않은채 지금까지도 온갖 죄행을 다 저지르고있다.

그처럼 간악한 일제의 만행이 나라의 이르는 곳마다에서 벌어져 조선사람은 이 땅에서 살수 없는 처지에 빠지게 되였다. 그래서 우리 겨레는 나라를 빼앗긴 설음을 안고 정처없이 이국땅으로 떠나지 않으면 안되였다. 《눈물젖은 두만강》의 노래는 우리 민족의 그러한 불우한 력사를 알게 하는 노래이다.

어째서 그렇게 되였는가. 우리 민족이 옳바른 령도자를 모시지 못했고 그래서 자기를 지킬 힘도 없었고 그것을 회복시킬 방도도 찾을수 없었기때문이다.

사대를 하면 민족은 망하게 되는 법이다. 우리 나라 력사를 돌이켜보면 오늘에 친일파가 득세하면 일본군대가 왕궁을 지키고 래일에 친로파가 득세하면 로씨야군대가 임금을 호위하였다. 그리고 모레 친청파가 득세하면 청나라군대가 대궐의 파수를 섰다.

한 나라의 왕비가 궁궐안에서 외국테로단의 칼에 맞아죽고 왕이라는 사람이 다른 나라 공사관에 가서 1년동안이나 갇혀있게 되는가 하면 임금의 아버지가 외국에 랍치되여 귀양살이를 해야 하는 비극이 바로 우리 민족사의 비극이였다.

이제 우리 민족은 더는 《눈물젖은 두만강》의 노래만 불러서는 안된다. 울밑에 선 봉선화를 붙들고 울 때가 아니다.

리상화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고 한탄했고 박세영은 창공을 자유로이 날아예는 《산제비》를 부러워하며 식민지노예의 처지를 한탄했다.

그 수난의 력사는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이끄시는 항일무장투쟁에 의하여 종식되였다. 《압록강의 노래》를 부르며 조국땅을 떠나셨던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조선민족이 주인이 되여 민족해방의 길을 여는 성스러운 항일무장투쟁을 조직령도하시여 마침내 민족수난의 력사를 끝장내고 력사적인 조국광복을 이룩하시였다. 백두산 줄기줄기마다에, 압록강 굽이굽이마다에 뿌린 이 나라 애국렬사들의 선혈이 있어 우리 민족은 자주독립의 날을 맞을수 있었다.

조국해방을 위하여 바치신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혁명업적을 회고하시면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력사적인 로씨야방문차로 두만강을 건느실 때  수난많던 민족사의 어제날을 떠올리시였다.

사대로, 망국으로 수난많던 우리 민족이 오늘의 시대에 세계에서 가장 자주적이고 존엄높은 민족으로 만방에 위용을 떨칠수 있게 된것은 전적으로 위대한 김일성주석과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덕이다.

우리 민족은 오늘 명실공히 자주로 존엄높은 민족이며 강력한 자위적힘을 가진 힘있는 민족이다. 때문에 우리 민족은 마땅히 과거에 빼앗겨진 모든것을 다시 찾아야 할것이다.

그러나 일본군국주의자들은 저지른 죄행에 대하여 사죄도 보상도 하지 않고있다. 1985년 이전 서도이췰란드의 바이츠체커대통령이 《과거에 눈을 감는자는 현재에 대해서도 눈을 감게 된다.》고 하면서 과거에 지은 죄를 사죄했고 보상도 성근하게 하였다. 도이췰란드의 배상은 지금도 계속되고있다.

그러나 일본의 태도는 어떠한가. 1965년 《한일협정》체결때에 일본측 대표였던 다까쯔끼 신이찌는 《조선을 식민지로 삼았다고 하지만 일본은 좋은 일을 하였다. 일본이 계속 20년간 <한국>을 가지고있었으면 좋았을것이다.》라고 지껄였고 1986년 당시 문부장관이였던 후지오 마사유끼는 일본의 침략에 대하여 말하는데 대해 《말을 하는 놈은 세계사속에서 그런 일을 한적이 없다는 말인가. 세계사는 침략사다.》고 떠들어댔다.

력사는 일본군국주의는 절대로 침략의 야망을 버리지 않고있다는것을 웅변해주고있다. 이에 대한 대응이 어떤것으로 되여야 할것인가는 명백하다.

우리 민족은 어제날의 민족이 아니다. 만약 일본 오랑캐들이 또다시 재침의 불을 지를 때에는 세기를 두고 쌓이고쌓인 분노를 폭발시켜 결산을 하고야말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