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선군정치문답』중에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선군령도의 길에 나서신 1960년대는 나라의 국방력강화에서 대단히 중요한 력사적시기였다.

1962년 10월 미제는 꾸바를 반대하는 《까리브해위기》를 조성하여 국제정세를 극도로 긴장시킨데 이어 남조선에 병력을 계속 끌어들이는 한편 군사분계선일대에서 공화국북반부를 반대하는 군사적도발책동을 매일과 같이 감행하고있었다. 국제혁명운동안에 나타난 수정주의자들은 전쟁이 일어날가봐 겁을 먹고 미제와 타협하는 길로 나갔으며 제국주의자들의 압력에 굴복하여 반제투쟁의 기치를 내리우고 미제에 대한 환상을 조성하고있었다.

이러한 정세에 대처하여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주체51(1962)년 12월 당중앙위원회 제4기 제5차전원회의에서 국방력을 더욱 강화할수 있도록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새로운 방침을 제시하시고 나라의 방위력을 강화하기 위한 일련의 중요한 대책을 세우시였으며 인민군부대들에 대한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렇듯 중요한 시기인 1960년대의 근 10년간에 끊임없는 선군령도의 길을 걸으시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 특출한 정치군사적실력을 과시하시며 군건설에서 위대한 업적을 이룩하시였다. 하여 인민군대의 령도자로서 전체 인민군장병들의 절대적인 신뢰와 흠모를 받으시였다. 그때 인민군지휘성원들은 경애하는 장군님을 지도자로서만이 아니라 최고사령관으로 대하고 받들어모시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전체 인민군장병들의 절대적인 신뢰와 흠모를 받고계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탁월한 정치군사활동과 군건설에 쌓으신 업적에 탄복하시여 선군혁명의 대를 이을 계승자, 후계자는 장군님밖에 더는 없다는것을 확신하시고 벌써 이 시기에 경애하는 장군님께 인민군대사업을 맡아 지도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때부터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선군사상과 선군혁명로선을 계승하여 인민군대를 강화하는데 선차적힘을 넣는 선군정치를 시작하시였다.

그러면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 1960년대말부터 선군정치를 어떻게 실현하여오시였는가.

이 시기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총대중시, 군사선행의 원칙에서 인민군대의 정치사상적, 군사기술적위력을 강화하는데 기본을 두고 선군정치를 하시였다.

1960년대말 인민군대의 정치군사적위력을 강화하기 위한 장군님의 군령도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것은 주체58(1969)년 1월에 진행된 조선인민군당위원회 제4기 제4차전원회의 확대회의였다. 이 회의를 통하여 인민군대에 대한 당의 령도를 약화시키고 군대의 강화발전에 커다란 해독을 끼친 군벌관료주의자들이 폭로분쇄됨으로써 인민군대안에 경애하는 장군님의 령군체계확립과 선군혁명위업계승의 기초축성 그리고 인민군대를 수령의 군대, 당의 군대로 만드는데서 근본적인 전환의 계기가 마련되였다.

1960년대말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선군령도, 선군정치실현에서 또 하나의 봉우리를 이루는것은 그이께서 미제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나포와 미제의 대형간첩비행기 《EC-121》격추를 위한 작전을 직접 지휘하시고 이를 계기로 전쟁접경에로 치달은 미제와의 군사대결전을 승리에로 이끄신것이다.

당시 미제는 침략적인 웰남전쟁에서 당하고있던 참패에도 불구하고 조선에서 또 하나의 전쟁을 도발하려고 악랄하게 책동하고있었다. 정세를 전쟁접경에로 몰아가기 위하여 미제의 전쟁수괴들은 조선령해를 침범할데 대한 지령을 주어 1968년 1월초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를 침입시켰다. 정탐과 적대행위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1 000여t급의 무장간첩선인 《푸에블로》호에는 함장을 비롯하여 총 83명이 타고있었다.

공화국에서 나오는 출판물 《로동신문》 주체97(2008)년 2월 3일부에 실린 글에 의하면 그때의 상황은 다음과 같다.

무장간첩선은 조선령해에 깊숙이 들어와 전파탐지기구와 각종 감시기구를 리용하여 공화국연해의 수심과 조류, 바다물온도와 해저상태, 염분과 투명도를 판정하며 인민군대의 레이다망배치상태와 해군함정들의 기동상태, 항구수용능력과 선박들의 수, 동해안의 각종 군사시설물들과 무력배치상태 등을 정탐하면서 1월 23일에는 원산앞바다에 있는 려도로부터 7. 6mile(북위 39° 17. 4´, 동경 127° 46. 9´)까지 접근하였다.

조국의 바다를 경각성있게 지키고있던 조선인민군 해군전파탐지기초소들에서는 이미 령해에 침입한 정체불명의 선박을 발견하고 그시그시 해군사령부를 통하여 조선인민군 총참모부에 보고하고있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23일 아침 조선인민군 총참모장으로부터 제기된 해상정황을 보고받으시고 정체불명의 배를 빨리 단속하여 국적과 공화국령해를 침입한 목적을 밝힐데 대하여 지시하시였다.

이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총참모부의 한 일군을 통하여 정체불명의 배가 공화국령해인 원산앞바다에 침입한 해상정황을 구체적으로 료해하시고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교시하신대로 해군사령부에서 빨리 그 배를 단속처리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그 배가 도주하거나 저항할수 있는 경우를 예견하여 나포전투를 빈틈없이 조직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해군에서 경비함과 어뢰정의 협동작전을 잘하며 공군에서는 그들의 전투행동을 지원할데 대한 비범한 작전적명안까지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령활한 작전적지휘밑에 정체불명의 배를 나포할데 대한 총참모부의 명령이 해군사령부에 하달되고 만단의 전투동원태세를 갖추고있던 해군어뢰정과 경비함들이 비행대의 엄호하에 긴급출동하였다. 적들은 도주하기 시작하였다.

미제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나포작전을 처음부터 하나도 놓치지 않고 지휘하고계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도주하는 배를 추적한다는 정황보고를 받으시고 적들이 발악적으로 저항해나올수 있으므로 그때에는 단호한 행동으로 무자비하게 제압할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인민군군인들의 맹렬한 추격에 적들은 기관총까지 쏘아대며 발악적으로 나왔으나 일당백해병들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강력한 화력으로 적들의 화력을 제압함과 동시에 단호한 행동으로 적함에 뛰여올라 저항하는자들을 제끼고 80여명을 포로하였다.

《푸에블로》호가 나포된 이후 미제는 다른 나라들을 내세워 간첩선과 성원들을 끌어가기 위해 온갖 술수를 다하다 못해 그것이 통하지 않게 되자 20여척의 대기동함선집단과 150여대의 각종 전투기들을 남조선에 끌어들였으며 방대한 무력을 전투태세에 진입시켰다.

정세가 시시각각 전쟁접경에로 치닫고있던 이무렵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장군님께 최고사령관이라는 립장에서 《푸에블로》호를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겠는지 한번 결심채택을 해보라고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수령님, 저는 미제가 항복서를 내기 전에는 《푸에블로》호 선원들을 절대로 석방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푸에블로》호는 우리의 전리품이므로 미제가 항복서를 낸다 해도 돌려주지 않겠습니다, 우리 인민군대가 나포한 미제무장간첩선을 먼 후날 박물관에 전시해놓고 후대들에게 이것은 우리가 미제침략자들에게서 빼앗은 간첩선이라고 말해주겠습니다라고 경건히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간첩선을 나포한 그날부터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총정치국을 통하여 적정을 완전히 장악하신데 기초하여 전군이 전투동원태세를 갖추고 미제의 불의의 침공에 대처할 만단의 준비를 갖추어나가도록 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후 11개월에 걸치는 미제와의 외교전을 승리에로 이끄시여 미제가 세계면전에서 공화국령해에 대한 침입을 공식인정하고 사과하는 동시에 다시는 공화국의 령해를 침입하지 않는다는것을 담보하는 사죄문에 서명하지 않을수 없게 만드시였다.

공화국정부는 조선인민군 해군이 살상포로하였던 시체 1구와 승무원 82명을 공화국령외로 추방하였으며 무장간첩선《푸에블로》호와 거기에 설치된 전자첩보장비와 기밀문서, 무기들을 전부 몰수하는 단호한 조치를 취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그 이듬해에 벌어진 미제대형간첩비행기 《EC-121》격추과정에서도 작전적지휘권을 발휘하시여 미제를 패배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으시였다.

미제는 《푸에블로》호사건이후 거의 매일과 같이 대형간첩비행기 《EC-121》을 조선동해안일대의 령공에 침입시켜 공중정탐행위를 감행하였다. 이 간첩비행기는 1964년부터 일본 오끼나와에 기지를 둔 4발프로펠러추진식비행기로서 조종사와 부조종사외에도 30여명의 정탐군들이 탈수 있는 대형전자정찰기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미제의 대형간첩비행기를 단호히 징벌할것을 결심하시고 주체58(1969)년 3월 23일 조선인민군 총참모부의 한 작전일군에게 미제의 대형간첩비행기를 격추할데 대한 명령을 주시였다.

이 사실을 보고받으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미제침략자들이 지난해에 바다에서 된타격을 받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이제는 공중으로 접어들고있습니다. 우리 함께 수령님께서 명령하신대로 이번에 하늘에서 된매를 안깁시다.》라고 단호히 말씀하시였다.

이어 그이께서는 현대적인 정탐전용대형특수비행기인 《EC-121》의 순항속도와 항속거리, 비행고도와 무장장비, 비행기동체의 너비와 길이를 비롯한 제원을 알아보시고 적들의 《EC-121》정찰기가 전자기재를 장비하고있는 대형정탐비행기인것만큼 그것을 잡으려면 묘한 수를 써야 한다고 하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EC-121》대형간첩비행기는 비행기로 잡는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작전에 인입할 비행기도 선정해주시고 비행기편대도 무어주시였으며 비행사들이 전투정황에 따라 능동적으로 대처해나가는데서 나서는 전술적문제들까지 세심히 가르쳐주시였다.

미제간첩비행기 《EC-121》은 이렇듯 만단의 전투태세를 갖추고 기다리는 조선인민군 비행대의 그물에 걸려든 꼴이 되여 하늘에서 박산이 나고 거기에 타고있던 30여명의 간첩들은 순간에 황천객이 되고말았다.

필자는 이것을 현대공중전에서 조선인민군의 주체적공중전법의 위대한 승리로, 선군으로 다져진 공군무력의 위력의 과시로 확언한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사건이후 치렬하게 벌어진 미국과의 정치외교적, 군사적대결에서도 선군령장의 무비의 담력과 배짱, 견결한 반미의지에 기초한 초강경대응으로 적들의 기를 꺾어놓으시고 승리를 이룩하도록 현명하게 이끄시였다.

두차례의 반미군사대결전에서의 승리를 통하여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정치군사적실력은 인민군대의 정치사상적, 군사적위력으로 내외에 널리 과시되게 되였으며 선군혁명은 인민군대의 지위와 역할이 비상히 높아지는 자기 발전의 새로운 력사적단계를 맞이하게 되였다.

이 시기 장군님께서는 선군정치라는 표현을 쓰지 않으셨다. 하지만 군사중시, 군사선행의 원칙에서 인민군대를 무적필승의 강군으로 강화발전시키시고 사회주의위업을 추진시켜나가시는 장군님의 정치를 선군정치라 하지 않고 달리 부를수는 없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