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선군정치문답』중에서 
 


 

새 세기에 들어선 어느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과 담화하시는 자리에서 선군정치실현문제와 관련하여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선군정치실현의 력사적과정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 주체혁명의 개척기에 총대중시, 군사중시사상을 제시하시고 그것을 구현한 선군사상을 창시하시였으며 선군혁명령도로 조국의 해방과 새 조국건설, 사회주의위업을 이끌어오신데 대하여, 그리고 자신께서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선군혁명위업을 계승하시여 일찌기 1960년대초부터 선군령도의 길에 오르시였으며 1960년대말~1970년대초에 벌써 선군정치를 시작하신데 대하여 하나하나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수령님께서는 1960년대말~1970년대초부터 자신께 당과 군대사업을 직접 맡아 지도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1960년대말에 벌써 인민군대지휘성원들은 나를 지도자로서만이 아니라 최고사령관으로 대하고 받들었습니다. 우리 당의 선군정치는 그때부터 시작되였다고 할수 있습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1960년대말에 선군정치를 시작하시였다는것은 그이께서 이미전부터 선군정치를 하실수 있는 조건을 충분히 성숙시켜오시였다는것을 의미하였다.

그러면 선군정치시작의 전제는 어떻게 마련되였는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주체49(1960)년 8월 25일 조선인민군 근위 서울류경수제105땅크사단에 대한 현지지도로 선군령도의 첫 자욱을 새기시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해방후 인민군대를 정규적혁명무력으로 강화발전시키신데 이어 첫 땅크부대를 조직하시고 그 강화발전을 위해 커다란 심혈을 기울이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어머님과 함께 땅크부대가 조직된 첫 시기부터 자주 부대를 찾으시였다.

백두산3대장군의 기대와 관심속에서 급속히 성장한 땅크부대는 조국해방전쟁시기 개전 3일만에 서울에 돌입하여 서대문형무소를 해방하고 《중앙청》꼭대기에 공화국기를 휘날렸으며 여러 전투들에서 빛나는 위훈을 세우고 무공을 떨치였다.

이날 위대한 김일성주석과 함께 부대를 찾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오랜 시간동안 부대사업을 지도하시면서 인민군대의 강화발전을 위해 심혈을 쏟아부으시는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모습을 우러르며 그이께서 개척하신 선군혁명의 길을 끝까지 걸어갈 굳은 결심을 다지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특히 부대군인회관 정문채양우에 써붙인 《김일성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당중앙위원회를 목숨으로 사수하자!》는 구호를 보시고 이 구호는 우리 인민군대와 인민의 확고부동한 신념을 그대로 담은 아주 좋은 구호라고 하시면서 인민군대는 이 구호를 높이 추켜들고 조선혁명의 종국적승리를 앞당겨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구호 하나를 써붙인것을 보아도 부대안의 정치사업이 잘되고있다는것을 알수 있다고 하시며 인민군대가 제일이라고, 땅크병들은 수령님을 목숨으로 사수할 사상적각오를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을 목숨으로 사수할데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수령결사옹위에 관한 가르치심은 그후 장군님께서 펼쳐가시는 선군정치에 일관하게 관통되였으며 혁명적군인정신에 전면적으로 구현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날 서울해방전투에서 발휘한 땅크병들의 위훈을 높이 평가하시고 내세워주시였으며 인민군대를 강화발전시키는데서 나서는 귀중한 가르치심도 주시였다. 그이의 가르치심 하나하나에는 장차 인민군대에 의거하여 혁명과 건설을 이끌어나가시려는 선군의 의지가 뜨겁게 맥박치고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근위 서울류경수제105땅크사단에 대한 현지지도는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선군사상과 선군령도를 높이 받드시여 진행하신 영광스러운 혁명활동인 동시에 인민군대를 수령옹위의 핵심력량으로 강화발전시키는데서 나서는 강령적지침과 함께 무장장비의 현대화, 사회주의건설에서 인민군대가 차지하는 역할을 밝혀준것으로 하여 장군님의 선군혁명활동사에서 새로운 력사적단계를 여는 일대 사변으로 되였다.

근위 서울류경수제105땅크사단에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선군혁명령도는 그후 선군정치로 심화발전되고 전면적으로 구현되여 사회주의위업수행에서 심원한 영향을 미치였다.

근위 서울류경수제105땅크사단에 대한 현지지도로 선군령도의 첫 자욱을 새기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어 주체49(1960)년 9월 1일 선군위업을 대를 이어 계승완성할 원대한 구상과 포부를 안으시고 김일성종합대학에 혁명활동의 자욱을 찍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김일성종합대학시기에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선군혁명사상을 심화발전시키기 위한 정력적인 사상리론활동과 인민군부대들에 대한 끊임없는 현지지도, 사회주의건설에서 인민군대의 역할을 높이기 위한 령도 등으로 영광스러운 선군혁명활동을 벌리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미 체득하시고 쌓으신 폭넓은 군사지식과 풍부한 군사경험에 토대하시여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선군사상과 군사리론, 주체전법을 깊이 체득하시고 더욱 심화발전시키기 위한 정력적인 사상리론활동을 벌리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특히 어은동군사야영훈련기간에 현대정치가는 문무를 겸비해야 한다는 사상과 군사제일주의사상을 밝히시여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총대중시, 군사중시사상을 심화발전시키시였으며 선군혁명위업계승의 확고한 사상적기초를 마련하시였다. 또한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주체적인 군사사상과 리론, 탁월한 군사전법과 령군술 그리고 조국해방전쟁전투경험과 세계전쟁사와 관련한 수많은 군사서적들을 독파하시였으며 수많은 저작들을 발표하시여 김일성주석의 군사사상과 리론, 주체전법을 더욱 깊이 심화발전시키시였다. 이 과정에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군사사상을 전면적으로 종합체계화하시였으며 독창적인 군사사상의 제시로 장차 실현하실 선군정치의 사상리론적토대를 튼튼히 마련하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한편 인민군부대들에 대한 끊임없는 현지지도를 통하여 선군령장으로서의 풍모를 세련시키시였으며 인민군대의 싸움준비완성과 나라의 방위력강화에 심혈을 기울이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52(1963)년 2월 6일 위대한 김일성주석을 모시고 최전연에 위치한 대덕산초소를 찾으시여 주석께서 제시하신 《일당백》구호의 본질과 요구, 그 구현방도를 환히 밝혀주시여 인민군대를 일당백의 혁명무력으로 강화발전시켜나갈수 있는 지침을 마련하여주시였다. 그에 이어 공군부대와 해군부대를 찾으신것을 비롯하여 수많은 인민군부대들과 군수공장들에 대한 선군령도의 길을 걸으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을 시작하신 이후에도 인민군부대들에 대한 선군령도의 길을 끊임없이 이어가시며 군인들에 대한 정치사상교양과 싸움준비완성을 위한 사업에 이르기까지 군대의 전반사업을 장악지도하시였다.

1960년대 경애하는 장군님의 인민군대에 대한 선군혁명령도는 인민군대에 대한 정치사상적령도와 함께 군사작전지휘권을 행사할수 있도록 전군을 확고히 틀어쥐시는 과정이였으며 장군님의 선군정치가 펼쳐질수 있는 전제가 마련되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이 나날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과 꼭같으신 군대의 령도자로 인민군장병들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으시였다.

이것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특출한 정치군사적실력의 뚜렷한 과시였으며 선군정치실현의 결정적조건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