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선군의 어버이 김일성장군(3)중에서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시기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사랑에 의하여 총대를 잡고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용감히 싸우다가 부상을 입고 제대된 사람들의 공적을 높이 평가하여 그들을 영예군인으로 내세워주고 보살펴주는 새로운 전설이 창조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가렬한 조국해방전쟁시기 조국의 통일독립과 자유를 위하여 영용하게 싸우다가 부상을 당한 영예군인들을 따사로운 한품에 안아 보살펴주시던 은정으로 모든것이 부족하고 어렵던 전후시기에도 영예군인들을 따뜻이 돌보아주시고 그들이 혁명의 꽃을 계속 피워나가도록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독창적인 선군혁명령도로 전후복구건설을 승리에로 이끄시는 바쁘신 가운데서도 영예군인들에게 친어버이사랑을 다 안겨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3(1954)년 3월 영예군인학교사업을 강화할데 대한 내각지시를 하달하시여 영예군인들을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돌봐주기 위한 조치들을 취해주시였다.

원래 영예군인학교들은 조국수호의 제일선에 서서 총을 잡고 싸우다가 부상을 당한 혁명전사들을 보살펴주시려는 위대한 수령님의 도덕의리심에 의하여 조국해방전쟁이 한창이던 주체40(1951)년 4월에 영예군인들에게 공업과 농업, 통계부기를 전문으로 교육하는 1~2년제학교들로 창설되였다.

영예군인들이 혁명의 꽃을 계속 피워나가기를 바라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후의 변화된 환경에 맞게 학교들을 계획통계, 설계, 체신, 농업 등을 교육하는 4년제학교들로 개편하시고 학생들에게 의수, 의족, 기타 교정기구와 학습에 필요한 학용품, 교복, 생활필수품들을 무상으로 공급해줄뿐아니라 매달 정기적으로 건강진단을 받도록 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영예군인들에게 베풀어주신 가슴뜨거운 사랑은 길주영예군인생산작업소에도 깃들어있다.

주체47(1958)년 5월 어느날 이곳을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영예군인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시며 인사를 나누시다가 차렷자세를 취하고있는 한 영예군인앞에 이르시여 걸음을 멈추시였다.

딱딱한 의수를 차마 위대한 수령님앞에 내밀수 없어 어쩔바를 몰라하는 그의 심정을 헤아려보신 수령님께서는 그의 의수를 꽉 잡아주시더니 두팔이 없는 그의 량소매를 걷어올리시고 한참이나 그것을 어루만지시였다.

고향은 어딘가, 부대는 어느 부대였으며 부상은 어디서 당했는가 등을 하나하나 알아보시다가 더 말씀을 잇지 못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손으로 글도 쓸수 있소?》라고 물으시였다.

빨리는 쓸수 없어도 쓸수 있다는 그의 대답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래?! 그럼 한번 써보오.》라고 반가와하시며 친히 자신의 웃주머니에서 만년필을 뽑아 그에게 주시였다.

너무나 흥분하여서인지 그 영예군인의 의수가 제대로 만년필을 받아쥐지 못하게 되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좋소, 그럼 글쓰는 동작만이라도 해보오.》 하시며 만년필을 몸소 그의 의수에 꼭 끼워주시였다.

그는 흥분된 자신을 억제하느라고 애를 썼으나 끝내 흐느끼고야말았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영예군인들과 그 안해들과 함께 기념사진도 찍어주시고 수수한 긴의자에 허물없이 앉으시여 그들이 제기하는 문제들도 다 들어주시고 해결해주시였다.

정녕 영예군인들을 보살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자애로운 모습은 항일전의 나날 자신의 신변을 걱정하는 대원들의 만류도 뒤로 미루시고 미혼진밀영에 있던 열병환자들을 찾으시던 그걸음으로 전화의 나날 전상자병원까지 찾아가시여 부상자들의 어깨를 다정히 껴안아주시며 힘과 용기를 안겨주시던 친어버이의 모습 그대로였다.

하기에 위대한 수령님의 따뜻한 사랑의 손길을 온몸으로 받아안은 이곳 영예군인들만이 아니라 온 나라 영예군인모두가 수령님께서 베풀어주시는 하늘같은 은정에 감격의 눈물로 격정을 터뜨렸다.

영예군인들을 내세워주고 보살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은정과 크나큰 믿음에 의하여 주체48(1959)년 11월에는 전상자영예휘장수여사업을 조직진행할데 대한 내각결정이 발표되고 주체49(1960)년 4월에는 영예군인들에 대한 국가적방조와 사회적원호사업을 일층 개선할데 관한 내각명령이 하달되였다. 그리하여 《영예군인》이라는 값높은 칭호로 불리우며 그들은 당과 국가의 관심속에, 인민들의 사랑속에 부러움없는 행복한 생활을 누리게 되였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영예군인들에게 한없는 사랑과 은정을 베풀어주시였을뿐아니라 전화의 나날에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피를 흘린 그들이 혁명의 꽃을 계속 피워나가도록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영예군인들이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전선에서 미국놈들을 반대하여 용감하게 잘 싸운것처럼 오늘도 인민들을 교양하는데 앞장서며 일상생활에서 모범이 되여 그들이 세운 위훈과 업적이 절대로 헛되지 않도록 하자는것이 바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바라시는 의도였다.

하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3(1954)년 4월에는 어느 한 기계공장의 한 청년작업반장이 전쟁시기에 한팔을 잃은 영예군인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계획을 매일 평균 170~250%로 넘쳐 수행하고있다는데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이 동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라고 높이 평가하시였으며 주체47(1958)년 6월에는 신의주영예군인생산작업소 룡천분공장 영예군인들과 담화하시면서도 영예군인들은 지금까지 당과 조국에 충실하였지만 앞으로도 계속 우리 혁명의 승리를 위하여 일을 잘하여야 한다고 뜨겁게 고무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8(1959)년 10월 전국지방산업부문 및 생산협동조합열성자대회에 참가하였던 영예군인들앞에서 하신 연설에서도 영예군인들은 혁명의 꽃을 계속 피워야 한다는데 대하여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애가 아주 강하고 우리 당중앙위원회를 보위하려는 사상이 강한 영예군인동무들은 전시에는 피로써 조국을 지켰으며 오늘은 보람찬 로동으로써 조국의 번영과 사회주의건설에 이바지하고있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내가 오늘 이 기회에 먼저 동무들에게 부탁하고싶은것은 이러한 혁명적기개를 늦추지 말고 혁명의 꽃을 계속 피워야 하겠다는것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무들은 조국을 피로써 지킨것만큼 오늘 그 누구보다도 조국을 더 사랑하며 우리 당중앙위원회를 튼튼히 보위하며 그 로선과 정책을 관철하는데서와 우리 당의 령도밑에 우리 인민이 쟁취한 사회주의전취물을 보위하는데서 언제나 모범이 되고 계급투쟁을 더욱 강화하고 당성을 더욱 단련하여야 한다는데 대하여 하나하나 밝혀주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꽃은 계속 피여야 한다고, 어제 꽃이 피였다고 하면 오늘도 계속 꽃이 피여있어야 한다고, 어제는 혁명투쟁을 잘했는데 오늘은 투쟁하지 않는다면 어제까지는 좋은 꽃이였지만 오늘에 와서는 그 꽃이 시든것이나 다름없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그렇기때문에 우리 영예군인동무들도 지난날 자기가 조국을 지키기 위하여 피를 흘렸고 혁명의 꽃을 피웠다면 지금도 꽃을 피우고 앞으로도 조국의 무궁한 번영을 위하여 혁명의 꽃을 계속 피게 하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항상 투쟁하며 꾸준히 노력해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영예군인들에게 원쑤들과의 판가리싸움에서 무비의 영웅성을 발휘하였으며 피로써 조국의 영예와 우리 혁명의 전취물을 지킨 동무들은 오늘 사회주의건설에서도 모범이 되여 당의 두터운 신임과 인민들의 높은 기대에 보답하여야 할것이라는 크나큰 믿음을 다시금 안겨주시였다.

그후 영예군인들은 자기들을 따뜻이 안아주고 극진히 보살펴주시며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은혜로운 사랑에 혁명의 꽃을 계속 피워나가는것으로 보답하기 위해 당의 로선과 정책을 관철하는데서 언제나 앞장에 섰으며 사회주의건설에 적은 힘이나마 이바지하려고 생산에서 로력적성과를 이룩하였다.

정녕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은 조국과 인민을 수호하기 위한 정의의 총대, 애국의 총대를 틀어잡았던 어제날의 전사들을 한품에 안아 따뜻이 보살펴주시는 혁명적의리의 최고체현자이시였고 선군혁명의 한길에서 그들의 삶을 영원히 빛내여주시는 사랑과 믿음의 최고화신이시였다.